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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없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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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없는 페미니즘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파일:근본없는 페미니즘 이미지.jpg
분류 사회과학
저자 김익명, 강유, 이원윤, 국지혜, 이지원[1], 히연, 정나라, 박선영
출판사 이프북스
ISBN 9791196135539
발행일 2017년 4월 25일

1. 개요2. 상세3. 지지측의 주장4. 목차 및 주요 내용
4.1. 챕터별 내용 정리4.2. 메갈을 고소하다: 어느 고소미의 나비효과4.3. 메갈이 고소하다: 부러진 각도기4.4. 남성 페미니스트?4.5. 여대 침입 사건과 TERF 논쟁4.6.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5. 메갈과 워마드 지지성향6. 워마드에 대한 근거가 의문인 주장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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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7년에 출간한 워마드, TERF의 관점이 전폭적으로 반영된 2015-2018년경의 인터넷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를 다루는 도서이다.

2. 상세

메갈리아 활동 이력이 있는 8명의 네티즌들이 모여서 저술한 자전적, 회고적 성격의 글이며, 페미니즘 운동가들에게는 기록물로서의 성격 역시 갖는다. 출판사인 이프북스의 서평에 따르면, 당초 텀블벅에서 온라인 펀딩을 받아 773명의 후원을 확보하여 제작된 것으로, 당시 홍보문구는 "읽고 까라!"(…)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다른 도서들과는 다소 다른데, 서문이 아니라 '타임라인' 을 배치하여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에서부터 시작하여 2018년 1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진상규명 촉구 시위에 이르는 다양한 메갈/워마드 관련 사건들을 정리해 놓았다. 이를 위해 메갈리아 페이스북 및 페미위키를 참조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그 POV를 고려한다면 나무위키 메갈리아 관련 사건 사고 문서들과의 교차검증독자들이 셀프로 해야 할 듯하다(…). 한편 후반부에는 박선영 변호사의 짧은 기고문을 추가하였으며, 부록으로는 117개의 단어가 수록된 "메갈리아-워마드 단어사전" 이 제공되었다.

표지 디자인 및 컬러링은 "fff: 포르티시시모" 에서 활동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작가 "물밭" 이 담당하였다. 이 인물은 다양한 페미니즘 전시에 작품활동을 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진짜 전쟁》, 《여자 인생 60부터》, 《개인사생활》 이 있다.

출간의 배경 및 목적은 메갈리아 워마드가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출판사들이 워마드라는 단어를 보고는 이 책의 출판을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사 이프북스의 대표 유숙열은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굳이 구분하는 것이 사상검증, 마녀사냥, 권력의 억압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두에게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허용하겠다고 하였다.

물론 제목에 워마드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공저자들은 워마드가 갈라져나오기 전까지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주 활동무대를 트위터 혹은 (특히) 페이스북으로 옮긴 사람들로, 워마드는 직접적으로 논의의 배경이 되진 않는다. 단지 4장 등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의 관점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소개되어 있을 뿐. 그러나 저자들이 워마드에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연대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이는 이들이 메갈리아를 떠난 후 워마드의 설립이 늦어짐에 따라 더 기다리지 않고 페이스북에 정착했기 때문이지, 워마드에 동의할 수 없어서 활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서 말미에서 더 다루기로 한다.

교보문고 책 설명을 참조하여, 저자들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6장의 공저자인 '히연' 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도 없거니와,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고, 정보를 찾는 것 자체가 신상털기의 한 종류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r.1 기준으로 교보문고 측에서 공개한 만큼만 공개한다.

3. 지지측의 주장

"지금은 메갈리아 워마드를 검열할 때가 아니라 그들의 진실을 들어야 할 때다. 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살리는 정의를, 자기들 식으로 찾아가는 그 거룩한 분노를 옹호하고 지지한다."
- 현경,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여성신학자
"어떤 페미니스트는 되고 어떤 페미니스트는 안 된다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그것은 결국 또 다시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 유숙열, 출판사 이프북스 대표

4. 목차 및 주요 내용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으며, 해당 챕터가 이 책에서 갖는 역할을 괄호 속에 정리하였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몇 종류로 추려서 하단에 다시 챕터 구분 없이 소개할 것이다. 먼저 1~3장에서 소개하는 바 메갈리아를 둘러싼 법적 분쟁 사건들이 국내 젠더갈등 이슈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무위키에 한정하여 살펴보고, 4~5장을 요약하여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흔히 듣는 비판인 " 남성 페미니스트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소수자에 적대적이다" 에 대해 이들이 취하는 태도가 정당화되는 급진적 논리를 살펴본다. 다음으로는 6~7장에서 한때 평범했던 메갈리아 이용자들이 어떻게 오프라인의 여성운동가로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짧게 논의하겠다. 마지막으로는 이 책이 워마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는지를 정리할 것이다.

4.2. 메갈을 고소하다: 어느 고소미의 나비효과

※ 이 단락의 내용은 본서에서는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으나,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 볼 때 그나마 『낢이 사는 이야기』 여혐 비난 사건이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의심된다. 이 단락의 서술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 악플러들의 활동을 옹호하기 위한 것 또한 아니다. r.1 기준으로, 이 단락에서는 저자를 옹호하거나 특정 웹툰 작가를 비난하기보다는, 이 고소가 저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이후의 젠더갈등 동향에 어떤 잠재적 파급효과를 끼쳤는지 살펴본다. 서술방향에 대한 대규모 수정을 원할 경우, 먼저 토론 탭을 이용해 주길 부탁드린다.

먼저 해당 사건을 사실 위주로 요약하면, 2016년 초에 한 메갈리아 이용자(저자)가 웹툰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에 대해 메갈리아에서 "뭐야 이 남자. 완전 여자 등골브레이커네. 좆뱀 새끼." 라는 덧글을 달았고, 약식 100만 원(차후 50만 원으로 조정)의 벌금에 대해 저자가 정식 재판을 신청하였으며, 이것이 실존인물에 대한 모욕죄라는 검사 측 주장이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검사의 항소는 기각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법원이 미러링이라는 명분을 인정했다거나 납득했던 판례라고 해석될 수 없다. 부록에서 박선영 변호사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이들의 활동이 '미러링' 이라는 의미의 사회운동으로서 정당성을 갖느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작물 속 캐릭터를 실존인물로 볼 수 있는지, 즉 모욕죄의 객체를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피고소인에게 모욕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사법부가 해당 판례에서 미러링의 공익적 의의에 공감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우며, 이 사건의 경우 "현재까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죄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일반화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1장 및 2장의 저자는 서로 지인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들의 회고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이 사건을 겪는 동안 저자가 경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미러링과 표현의 자유를 들어 스스로를 변호하려 했지만,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서 "얌전한 옷을 입고 어깨를 움츠린 채 반성문을 읽으며 뉘우치고 있는 철없는 여대생" 으로 스스로를 코스프레해야 했다. 또한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모든 온라인 활동기록과 계정을 삭제하고,[4] 사회적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진 상태에 처했다고 한다. 같은 사건으로 고소된 다른 메갈리아 이용자들과 연대하려 했지만, 저자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은 사건이 종료된 후 "페미니즘이고 메갈리아고 전부 잊고 싶다, 연락하지 말아 달라" 며 떠나면서 관계가 끊어졌다고.

이 인물들이 사건 내내 느꼈던 것은 고립감과 우울이었으나, 주변에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누구도 없었다고 한다. 선뜻 믿기지 않을 수도 있으나, 당시 그들이 여성단체들의 문을 두드렸을 때 대개의 반응은 "메갈리아? 그건 뭥미??"(…)였다고 한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온 뒤, 김익명 씨는 한국여성재단에서 주최한 《2016 페미니즘 이어달리기》[5]에 참여해서 이때의 경험을 털어놓았고, 법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메갈리아 악플러 이용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고 호소했다. 이때 여성 운동가들은 전폭적인 지원과 상담, 지지를 약속했는데, 이때 풍경은 다들 블로그 정도나 간신히 알고 있는 딱 기성세대 수준이어서(…) 김익명 씨가 포털 커뮤니티에 대해 뭘 하나 설명하면 다들 그걸 검색하고 찾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나는 일개 이용자일 뿐이지,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나 여성 네티즌 전체의 동향을 대변하지 못한다" 고 몇 번이고 일러주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필명도 김익명이 되었다는 것.

언뜻 보면 이는 그냥 어떤 악플러가 겪었던 일, 내지는 어느 무책임한 메갈리안의 행적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익명 씨는 소제목을 " 웹툰작가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라고 붙여놓았다. 그 말처럼, 가만히 보면 김익명 씨에 대한 고소는 이후의 젠더 갈등에 있어 엄청난 나비 효과를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금전적, 학술적, 법률적인 막강한 지원을 할 수 있었던 제도권 여성 운동가들과 여성학자들은 메갈리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여자 일베" 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6] 그런데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행사에서 김익명 씨가 이들에게 메갈리아를 도와달라는 헬프콜을 날렸다. 그 이후 제도권 여성계에서 메갈리아를 연대와 지원의 대상으로 선언하고 페미니즘의 일원으로 인정했으며 언론 인터뷰에서 정당화 논리들을 쏟아냈다. 괜히 김익명 씨가 글 말미에 웹툰 작가들은 이긴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졌고, 자신은 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겼다고 말한 게 아니다. 한 웹툰 작가의 대규모 고소미메갈리아와 제도권 여성계가 악수하는 상황을 이끌어낸 것이다.

침착하게 돌이켜 보면, 일부 네티즌들은 젠더갈등 이슈가 법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은연중에 남성들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이는 ' 불철주야', ' 무슨죄', '치킨 시켰다' 는 등의 인터넷 밈으로 잘 표상되지만, 남성들을 공분하게 했던 법에 무지한 페미니스트의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그들의 예상대로 무난히 마무리됐을지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7] 이는 남성들이 법을 잘 모른다는 비난이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고소가 진행되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남성들이 이미 최종 유죄판결이 나온 것인 양 인식하게 되면, 곧 그 사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약해진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관심이 시든 이후에도, 본서에서 보여주듯이 사건은 계속 진행되면서 마침내 모두가 모르는 사이에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렇기에, 젠더 간의 법적 분쟁 사건들과 그 이후 몇 년 간의 젠더갈등의 동향 사이에는 의외의 연결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당사자가 고소당한 이후 모두가 정의구현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떠난 사이, 피고소인이 페미니즘 행사로 달려가 '눈물의 호소' 를 함으로써 뜻밖에도 주류 여성계가 메갈리아의 편에 서게 되지 않았는가? 그 이후로 메갈리아 진영에서 아무리 반사회적인 활동을 하더라도 매번 그것이 그 바닥 학자들과 운동가들에게 매번 양해가 구해지고 정당화되고 칭송받게 된 것은, 그 당시 김익명 씨의 "우리가 공격받아 죽어가는데도 보호를 요청할 곳이 없다" 던 떨리는 목소리에 대한 부채감에서 일부 기원했을 수도 있다.

메갈리아가 여성운동가 및 여성학자들에게 존재감이 알려지고 연대의 대상이 된 계기가 2016년 초엽 웹툰 작가들의 고소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일반 대중 여성들에게 긍정적 인식을 획득한 계기가 어디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의 6장을 근거로 하여 일차적으로 추론할 만한 것은, 소라넷 폐지운동을 계기로 메갈리아가 일반 대중 여성들에게 공감대와 지지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초창기 메갈리아가 '여자 일베' 라고 불리며 이용자들의 대인관계를 위협했으나,[8] 이 이후로는 당당히 여성운동 사이트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차이를 생각해 보면 특히 그렇다.

여담으로 이들의 회고에 따르면, 처음에 이 웹툰 작가가 대규모 고소를 했을 때 메갈리아 내부에서 "법적인 문제에 해박한 회원이 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 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들이 이 회원과 접촉했을 때, 이 회원이 모욕죄를 철폐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학생운동가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렸고, 그 인물은 저자들에게 "선각자처럼 대의를 위해 불꽃처럼 타올라 한 줌의 재가 되라!" 며 마구 다그쳤다고 한다(…).

결국 저자뿐 아니라 다른 피고소인들도 이건 믿을 놈 못 되겠다고 여겼는지 그 사람을 떠나갔다고. 그런데 여기서 첨언하자면, 모욕죄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공격적인 미러링 발언들에 대해 고소를 하는 (그래서 메갈리아를 위협하는) 법 조항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남성들에게 언어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그래서 메갈리아에게 도움이 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김익명 씨(1장)와 강유 씨(2장)는 모욕죄 철폐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자신들이 이용당하는 것 같아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지만, 하단에 소개될 이원윤 씨(3장)는 반대로 모욕죄를 통해서 여성혐오적 덧글을 달았던 가해자들을 찾아내고 사과를 받아냈다.

이처럼, 어떤 법률이 당장 여성계에 위협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어떤 여성들은 그것으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비슷한 논란이 벌어지는 다른 사례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9]이 있다.

4.3. 메갈이 고소하다: 부러진 각도기


먼저 해당 사건을 사실 위주로 요약하면, 한 국내의 여성(저자)이 호주 방송사 다큐멘터리에 인터뷰를 하면서 소라넷 및 데이트 강간에 대해 언급한 것이 국내 커뮤니티들 사이에 신상정보 및 악플과 함께 퍼져나가게 된 사건이다. 당사자는 자신의 신상을 털고 심한 욕설을 한 악플러 10명에 대해서 모욕죄로 고소했으며, 모든 상대방에게서 반성문을 받았다. 저자는 그 중 일부가 진정성이 없는 반성문을 썼다고 판단하여 법원에 엄중 처벌을 요청했다.

3장의 저자는 한국에서 성폭력을 당한 호주 여성들을 돕고 있었는데,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성별 편향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에 대해 문제삼고 있던 중이었다. 그 중에 호주 다큐멘터리에서 해당 사건을 취재하러 와서 저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저자가 그 이야기를 하던 김에 "소라넷과 그 강간 모의는 이 나라의 문화 규범이다"[10] 라고 말한 것이 국내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게 되었다. 일베저장소를 포함하여 개드립, 루리웹, 웃긴대학 등의 사이트에서 "호주에서 방송된 한국의 성문화" 라는 제목으로 캡처 사진들이 올라왔고, 곧 저자는 신상이 털렸다고 한다. 일베가 아닌 다른 사이트들도 해당 캡처 사진들에 대해 반응하는 양상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고.

저자는 인터넷 모욕죄에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끼고 모욕죄로 고소를 준비했는데, 수사 중에 경찰은 처음에는 "모욕글이 삭제되면 수사 못 하는 거 알죠?" 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모욕글 삭제요청을 안 했네요? 합의금 장사라도 하려는 거 아닙니까?" 라고 정반대로 물어봤다고. 게다가 수사 중에 "인터뷰에서 욕 먹을 만한 소리를 했으면 고소가 기각될 수도 있다" 면서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게 맞는지만 계속 물어봤다고 한다. 저자는 자기에게 묻지 말고 자기 변호사에게 대신 얘기하라고만 넘겼는데, 변호사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한 부분.

하여간 저자는 최종적으로 모욕죄가 성립된다고 여겨지는 열 명과 송사를 진행했고, 가해자들과 대면했을 때 저자는 그들에게 본인이 한 욕설을 자신의 앞에서 소리내어 읽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이거나 죄송하다고 울기도 했지만,[11] 모두들 자기만큼은 일베충도 아니며 (자신은 어머니 및 가까운 주변 여성들을 아껴주고 있으므로) 여성혐오자도 아니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저자는 주변 여성들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그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느낌을 반성문에 적어오라고 요구했으며,[12]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와는 합의를 거부했다.

저자는 가해자들이 소라넷과 같은 여성혐오자들에 대해 분노하는 여성들과 함께하기는커녕 "한국 남성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 여자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자" 고 엉뚱하게 반응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정말로 한국 남성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람들은 소라넷에서 강간 모의를 한 남성들이며, 또한 호주 여성 피해자에게 충분한 법적 지원을 하지 않은 공권력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에게는 분노하지 않고, 그들에게 분노하는 여성에게 분노하느냐는 것. 물론 이 남성들도 " 극히 일부의 이야기를 전체 한국 남성들로 확장시켜 일반화한 저자의 인터뷰가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느껴졌다" 는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더 많은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하고, 섣불리 확정하여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동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특정성이 확보된 저자에게 모욕적인 덧글을 남긴 행위는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상의 다른 논리는 재판부에서도 공감하기 어려웠을 조잡한 사후합리화일 수 있다. 가해자들의 거친 악플에는 어떤 공익적인 대의도 없었으며, 단지 "조용히 잘 살고 있는 남자인 나를 괜히 전세계 사람들 앞에서 나쁜 놈 취급했다" 는 데서 나오는, 일시적이고도 정제되지 않은 보복감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가해자들은 저자와 면대면으로 만나서, 상대방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앞에서 자신의 덧글을 다시 입으로 옮겼을 때, 그것이 어떤 의로운 비분강개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행동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메모장드립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본서에서 저자는 당시 자신에게 쏟아졌던 덧글들 중 일부를 날것 그대로 공개했는데, 여기 다시 인용한다면 이는 다음과 같다. 거친 욕설들이 있으므로 접기 처리한다.
{{{#!folding (접기 클릭)

※ 이 덧글들은 저자가 실제로 캡처하여 열 건 정도의 송사에 활용했던 자료들 중 일부로 추정되며, 가능한 한 본서에 소개된 것을 교정 없이 그대로 인용하였다. 이를 나무위키에 인용하는 것은, 첫째, 이 덧글들 중 일부는 실제로 해당 상황에서 모욕죄의 요건들을 성립시킬 정도였다는 점을 밝히고, 성별 간의 모욕 행위를 방지하고자 하는 공익성에 그 목적이 있다. 둘째, 덧글의 작성자들이 갖고 있는 통합되지 않은 성 관념 역시 관찰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상단의 어떤 덧글은 여성을 취하게 한 뒤 강간하는 건 "어느 나라나 다 하는 관습" 이라며 정당화하고 긍정하지만, 다른 덧글은 "한국남자들 이미지를 하향시켰다" 거나 "손해배상 청구" 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그것이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치부임을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남성들이 사회화된 두 가지 통로, 즉 "외국에 알리기에는 부끄러운 것이다" 라는 근대적 공교육을 받은 시민으로서의 윤리 의식과 "솔직히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 않느냐" 라는 강간 신화의 신념이 남성 집단 속에 통합되지 않고 공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전자가 대외적인 사회 규범의 체현이라면, 후자는 암묵적인 사회 규범의 체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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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남성 페미니스트?

"나는 이 때 사실상 남성들이 잠재적 우군도 아니며, 아무리 친절하고 고운 말을 써서 설득해도 애초부터 들을 생각이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인류의 절반인 남성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페미니즘이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몇날 며칠 간의 설득과 논증으로 얻은 것은 짙은 분노와 패배감이었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앞뒤를 따지지 않고 패야 한다.' 나는 이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메르스 갤러리가 탄생하던 즈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전략적으로 싸워 온 똑똑한 여성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남성을 상대로 '이해시키는 것'을 우리의 운동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싸움과 언쟁 끝에 얻은 신중한 결론이다. 우리는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만 설득해도 된다. 세계 여성들의 10%만 각성해도 세상은 반드시 바뀐다. 10%면 충분하다고? 메갈리아의 유명한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바닷물이 짠 것은 3%의 소금 때문이라고. 이때부터 나는 남성을 향해 거칠고 격한 언어를 쓰는 운동방식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나 역시 필요할 때는 욕설이나 미러링을 서슴지 않았다."
- 국지혜, p.116

HeForShe 문서나 《 남성 페미니스트》 같은 문헌에서도 나오듯이 남성들이 과연 페미니즘의 동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굉장히 논쟁적이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엠마 왓슨이나 토니 포터를 포함하여 리버럴한 쪽에서는 남성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페미니즘의 대의가 성취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래디컬한 쪽에서는 남성들을 설득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 남성들을 동료로 맞아들이는 것이 페미니즘의 이상에 상충되지 않는 게 맞는지에 대해 비관하는 경향이 있다. 후자의 시선에서는 페미니즘의 대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백마 탄 왕자님' 들의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여성 간의 연대가 갖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에 따르면, 남성들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 된다.

본문 4장은 남성 페미니스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담은, 흔치 않게 활자화된 문헌에 속한다. 아예 저자 본인이 책 속에다 직접 " 좋은 남성은 죽은 남성" 이라는 식으로 글을 썼을 정도이니(…), 그 논지의 극단성과 선명함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처음에는 저자가 남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과거 HeForShe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 자신의 가장 큰 적들은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남성들이라고 말한다. 편의상 여기서는 이들을 저자의 표현에 따라서 ' 남페미' 로 부르기로 하겠다.

저자는 이들 남페미들을 일부 언급하고 있는데[13] 이들은 발화 권력에 있어서 여성운동가들보다 더 우월한 권력을 갖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즉, 남페미들은 인권의 관점에서 매우 당연한 말 몇 마디를 하고도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인기를 얻지만, 자신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곧바로 "극악무도한 여성혐오자의 본색" 을 드러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남페미들은 더 나아가 여성운동의 공론화 주제를 자신들이 정해주려 하고, 자신보다 목소리가 큰 여성운동가가 나타나면 뒷담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자신의 메시지에 호응하지 않고 (마치 마음대로 설치고 떠드는 듯한) 주체적인 생각을 하는 여성들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이들의 거친 발화는 가급적 문제삼지 않으려 하지만, 저자와 같은 논쟁적인 인물의 발화에 대해서는 유독 문제삼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

저자는 이 지점에서 온라인 페미사이드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에서 불편하고 듣기 싫은 말을 쏟아낼 때 그 사람의 계정을 차단하거나 제재함으로써 페친 및 지인들과의 연결을 전부 끊어버리고 언로를 막아버려서 사회적인 사망선고를 하는 경향을 의미하는 저자의 용어다. 저자는 온라인 페미사이드가 유독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더 많이 가해지고 남페미들에게는 유독 덜 가해진다고 주장한다. 즉, 저자는 일베 등의 여성혐오자들과 싸울 때보다 오히려 같은 페미니스트들 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했을 때 더 많은 신고를 당했다고 하는데, 남페미들은 이런 신고를 상대적으로 덜 받음으로써 발화 권력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해서 남페미들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발화를 견지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남성으로서 좀 더 여유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며, 자신은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점이 참작되지 않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저자는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죽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면서,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극히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전후 맥락을 보면 해외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여기는 듯하다. 저자는 해외에서 남성들이 성 평등을 위해 보여주는 사회 운동과 피켓 시위, 퍼포먼스들이 국내에서는 유독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기 때문. 저자는 남페미들이 "윤리적으로 당연한" 주장들을 하는 것에 대해 찬양도 칭찬도 하지 않을 것이며, 당연한 말을 가지고 어디서 여성들에게 인정받으려 생색이냐고 지적함으로써 그들을 마침내 침묵시킬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상의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보다 기능론적인 시각에서 반론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이 활동하는 SNS 서비스에서 동의를 구했던 이용 약관이나 운영 규정에 익숙하지 않았을 수 있다. 페이스북이든 나무위키든 심지어 일베저장소든, 어떤 개인이 특정 발언을 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다른 이용자들의 야유나 비난을 받는 것을 넘어서 운영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차단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정상적인 웹 사이트 운영의 양상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무위키는 반달을 저지르는 악성 이용자들을 차단할 뿐이지, 나무위키가 신봉하는 특정 지배 이념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을 탄압(?)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차단당한 이용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그 차단이 민주적으로 합의된 정상적인 과정을 따라서 이루어졌다면, 그리고 당사자에게 소명의 기회가 적절히 주어졌다면, SNS든 어디든 간에 차단자의 "탄압"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모임이나 동호회, 각종 자발적 결사체들에서도 흔하게 관찰되는 절차다. 회원 간 분란 조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또한 토니 포터가 자신의 저서 《 맨박스》 에서 인정하듯이, 남성들은 인권의 영역에서 아무리 뻔해 보이고 당연해 보이는 말일지라도 그것이 여성의 입에서 나오면 듣지 않으려 하고 남성의 입에서 나와야만 비로소 듣는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토니 포터는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뭇 남성들에게 남성성의 극의에 도달했다고 평가되는) 미식축구 코치 보디빌더 등의 마초 사나이(…)들이 페미니즘적 발언을 가능한 한 많이 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 말해야만 비로소 남성들이 진지하게 듣는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운동의 효과성을 생각한다면, 비록 페미니즘의 정신에 비추어 담론 수준의 논쟁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남페미들이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저자의 이 글이 흥미로운 부분은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리와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는 것, 그리고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 남페미들이 갖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를 포함하여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에 완전히 감화된 남성들에게조차 압제자로서의 남성, 권력자로서의 남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그 남성을 환영하고 포용하는 동료 페미니스트들이 암묵적인 권력의 위계를 재형성하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 어쩌면, 남성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래윈 코넬이 자신의 저서 《 남성성/들》 에서 소개했던 에페미니즘(effeminism)의 경우에는 연대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분류된 기존의 남성성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이전에 없던 변혁적이고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을 개척하려는 남성들의 움직임을 의미하며, 마스큘리즘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에 친화적인 남성들에 대해서 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그 남성들이 "언행에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는 점을 공통적으로 언급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남성이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으려 할수록 그나마 호평을 할지도 모른다. 저자의 홈그라운드(?)는 어디까지나 SNS이고, 따라서 이 남성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을 마구 표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는 글의 말미에 "국지혜가 말하는 진짜 남자 페미니스트가 되는 법" 이라는 짧은 글을 첨부해 두었는데, 여기서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자기 자신이 딱히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할 생각이 없는, 특히나 페미니즘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남성들이라면 위의 제안들이 터무니없고 "저게 무슨 개소리냐?"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임금격차 문제나 성매수 경험에 관련된 제안은 이들로부터 충분히 반론이 나올 여지가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라면, 만일 위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면 어째서 그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숙고하는 것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는 저자가 한편으로는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라" 고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괜히 나대지 말고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주도하도록 내버려두라" 고 요구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5. 여대 침입 사건과 TERF 논쟁


먼저 해당 사건을 사실 위주로 요약하면, 이화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양측의 페미니즘 단체에서 합동으로 기획한 《여대에 침입한 남성들과 여적여의 진실》 이라는 제하의 세미나를 준비중에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최측에서 주요 발언자의 보호 요청을 받아들여 "지정성별(생물학적 성별) 남성 참석 불가" 를 공지한 것이 빌미가 되어 퀴어혐오, 젠더폭력, 올바르지 않은 발언이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이대로는 발언자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겠다는 판단 하에 주최측에서 세미나를 취소했던 사건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이 갈등을 빚는 또 다른 지점은 TERF 논쟁으로, 여성주의 진영에서 내부적으로 도는 많은 주장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심지어 혐오적이라는 문제제기는 꽤 오랫동안 있어 왔다. 5장에서 언급하는 세미나 취소 사건은 당초 여성 전용 휴게실, 여자대학이라는 이슈로부터 출발했으나, 마침내는 여기에 TERF는 수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얽히면서 격렬한 논쟁 끝에 세미나 자체가 무산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그 흐름을 따라서 순서대로 설명하기로 한다.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공간학적인 논의가 필요하지만, 나무위키에 한하여 거칠게 설명하자면 어떤 공간들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만, 어떤 공간들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내쫓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 편안한 공간에서 개인은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이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언제든 어떤 상태에서든 그 공간에 출입할 수 있고, 잠재적 위협요소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사람을 쫓아내는(…) 공간에서 사정은 달라진다. 그 속의 개인은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없고, 그곳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신경을 써야 하며, 그 공간에 출입하려면 큰맘먹고 준비를 해야 하고, 잠재적 위협요소가 다가오는지에 대해 염려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공적인 공간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만일 편안한 공간을 거의 얻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 즉 안전 공간(safe space)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마음 편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실을 만들어서 배려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를 포함한 많은 여성 운동가들은 대학 캠퍼스는 남성들에게는 편안한 공간이지만 여성들에게는 불편한 공간이라고 본다. 여성들은 캠퍼스에서 느긋할 수 없고,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고 카우치 위에 드러눕지 않도록 하는 등 자신의 행동을 검열해야 하며, 반드시 옷을 단장하고 화장을 해야만 하고, 혹시라도 자신에 대한 폭력이 가해질지 불안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자대학이, 그리고 공학대학의 경우에는 여성 전용 휴게실이 여성들에게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대학에서 여성들은 앉든지 눕든지 어떤 옷을 입든지 화장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일체의 대상화와 자기검열, 폭력과 강간, 외모 품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학대학의 경우 여성 전용 휴게실이 그러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되며, 가옥의 경우 여성만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지정하는 것, 대중교통의 경우 여성 전용 객차를 지하철 내에 마련하는 것도 같은 논리에 닿아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와 같이 여성들에게 안전해야 할 공간에, 종종 남성들이 침입하는 젠더 폭력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화여자대학교는 이 문제로 꽤나 오래 몸살을 앓았는데, 저자는 그 중에서도 고려대학교 남학생들이 가장 지독했다고 말한다(…). 대동제에 외부인 출입이 1985년부터 허가된 이후로, 1993년, 1994년, 1996년마다 이화여대 축제 장소에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난입해서 폭행을 가한 역사가 있으며, 이 사례들은 하나하나가 기물파손, 구타로 인한 골절, 실신, 여교수들의 차량 파괴로 이어질 정도로 큰 사건이었지만 당시 사회는 끊임없이 이들을 두둔하고 양해를 구해 왔다는 것. 이화여대 기숙사로 성희롱 전화가 걸려오는 것은 2002년 이후로 매년 발생하는 연례행사였다고 한다. 또한 숙명여자대학교 역시 2017년 4월 21일 동국대학교 남학생들이 교내침입을 저지르는 일이 있었고, 신촌권 대학생들의 커뮤니티 "타임테이블" 에는 심지어 인근 여자대학 학생들을 "여대별 좆집 지도.jpg" 라고 표현하는 게시물이 올라와서 반짝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본서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대한민국 넷페미史》 라는 다른 책에서는 2013년 5월경에 연세대학교에서 발생한 일명 "논지당 사건" 을 거론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 전용 휴게실에 얽힌 비슷한 논쟁으로 이어졌던 유사 사례이다.

이상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이대 및 숙대 페미니즘 단체는 힘을 합쳐서 여자대학에 대한 남성의 침입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문제는 발언자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는데, 실제로 해당 사건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인물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고, "여대에서 강연을 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걱정이 되니, 현장에 남성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해 달라"고 주최측에 요청했다. 이에 주최측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지정성별(생물학적 성별)[14] 남성은 출입 불가"라는 내용을 참가자격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행사를 준비하는 인원 중 한 명이 여기에 대해 SNS상에서 태클을 걸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조치를 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고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 이것이 학내에 퍼지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해당 인원이 강경하게 입장을 내세움으로써 주최측은 발언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세미나를 취소했다.

논쟁의 양상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배려 vs. 퀴어에 대한 배려의 영역으로 넘어간 상태였고, 저자를 포함하여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후자의 요구로 인해 전자가 침해되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것이 여성들의 공간이 침해당한 사실을 말할 공간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사건이며, 퀴어 운동가들은 퀴어의 '기분권'('기본권'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을 위해 여성의 '생존권'은 무시하려 한다고 본다. 최소한 페미니즘의 정신에 입각한다면 여성이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억압을 말할 장소만큼은 허용해야 한다는 것. 퀴어 운동가들은 저자가 당시 학회장으로서 내렸던 조치가 시스젠더 여성의 특권이자 트랜스혐오라고 주장하지만, 저자가 보기에는 FTM[15]보다는 MTF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여성혐오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16] 저자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오늘날의 젠더 지형 속에서 시스젠더 헤테로남성들을 공격하는 역할을 맡아 왔지만, 트랜스젠더 운동은 시스젠더 여성을 공격함으로써 가부장제를 약화시키려는 여성계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려 한다고 평가 절하한다.

이상의 저자의 생각은 래디컬 페미니즘 TERF로 그들을 규정하는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특히, 저자가 표현하는 것처럼, 성소수자들이 보호받을 권리가 '기분권'이라면 여성들이 보호받을 권리는 '생존권'이라고 구분함으로써, 전자에 의해 후자가 방해받는다면 그것은 안티페미니즘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역할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생존의 욕구에 호소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리는, 그 호소력의 기초가 여성들이 느끼는 생존의 위협에 뿌리내려 있으며, 이 때문에 다른 모든 종류의 이항대립의 권력 관계들보다도 가장 최우선적으로, 시급히,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지정성별 남성 대 지정성별 여성의 전쟁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고 있다.

문제는 생존권에 대해서라면 성소수자들도 어지간히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강자는 약자의 생존 투쟁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적어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가부장적 남성들이 TERF 운동가들의 생존 투쟁을 '기분권'이라며 비웃는 것과 정확히 동일하게, TERF 운동가들은 트랜스젠더들의 생존 투쟁을 '기분권'이라며 비웃고 있는 셈이다. TERF 운동가들이 자신들이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생명이 얼마나 '경각에 달렸는지' 느끼는 것처럼, 트랜스젠더들도 자신들이 트랜스젠더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생명이 '경각에 달린' 느낌을 받고 있을 수 있다. TERF들이 젠더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지키기 위한 안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성 전용 휴게실을 신설하려고 하는 것처럼, 퀴어 운동가들도 성소수자들이 시스젠더 중심 사회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성중립 화장실을 신설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것을 생존욕구라고 보느냐 아니면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느냐의 여부는 의외로 TERF들의 주관에 달린 문제일지도 모른다.

4.6.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6장과 7장은 각각 간략한 내용의 챕터로서, 오프라인 페미니즘 활동에 투신하고 있는 두 명의 저자들이 어떻게 자신이 현재의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회고적으로 정리한 글이다. 두 명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메갈리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두 사람 모두 온라인에서 굉장히 평범하고 소극적인 네티즌으로서의 경향을 보였다는 것, 그러나 메갈리아가 표방하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할 만큼 자신의 평소 생각과 잘 통했다는 것이다. 6장의 저자는 좌우파 구분을 바탕으로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표방하고 있었지만, 메갈리아의 "통쾌함과 속시원함" 에 매료되었고 곧 전통적 성 관념을 갖고 있던 부모님까지 변화시켰다고 회고한다. 한편 7장의 저자는 온라인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덧글도 잘 달지 않고 눈팅만 하는 소극적인 네티즌이었지만, 메갈리아의 문제의식은 평소 저자가 갖고 있던 성차별이 부당하다는 인식과 잘 어우러졌다고 돌아본다. 즉 이들은 메갈리아를 통해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게 되었고 온라인 활동에 쏟는 열정도 증가하게 되었다. 7장의 저자는 오프라인의 동성 친구들을 상당수 잃으면서까지 미러링에 매달렸다고.

두 사람이 겪은 또 다른 전환점은 온라인의 문제의식을 오프라인으로 끌어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6장의 저자는 메갈리아가 퀴어혐오 논란으로 폭파되고 워마드가 설립되기 전까지 페이스북을 전전하며 키보드 배틀에 여념이 없는 삶을 보냈지만, 온라인에서의 말싸움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오프라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7장의 저자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페미니즘의 제2물결이 '한물 간 것' 이라고 치부되는 것을 지켜보며, 아직까지 그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더 명확히 관철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신 온라인 소집단의 특징인 '평등하고 느슨한 액체적 연대' 를 가급적 그대로 오프라인에 구현하고자 하였다고. 어쨌거나 이들 챕터들은 현대에 들어 메갈리아의 정신을 표방하는 페미니즘 단체들이 오프라인에서 결사체의 형태로 점차 조직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6장의 저자는 미러링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의 언어사회학적 기능을 들어 옹호 논리를 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러링이란 "...데이트폭력과 성폭력, 강간, 남편폭력, 직장 내 성차별 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여남의 관계를 뒤집어 남성들에게 이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미러링은 그저 텍스트 차원에서 실존하지 않는 현실을 그려낼 뿐이다..."(p.175) 라는 논리로 옹호될 수 있는 활동이다. 이런 접근은 미러링에 대한 보편적인 학술적 옹호 논리이기는 하지만,[17] 워마드가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 미러링들은 더 이상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옹호를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다만, 6장의 저자는 워마드에 대해서는 특별히 어떤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7장의 저자는 한편으로 교차성이라는 개념이 백래시의 형태로 오용되는 경향을 지적한다. 저자가 보기에, 교차성은 페미니즘의 제2물결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동원되는 전가의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교차성이란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의 차이를 논의하고자 제안된 개념이지,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겪는 차별의 차이를 논의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이렇게 오용되는 교차성의 논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입막음을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컨대 장애인 남성의 성희롱 사건을 지적할 때 종종 그 폭로자가 장애인 혐오자로 오히려 몰리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이는 교차성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결과라는 것이다. 해당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혐오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철학 등의 전공자 분들은 저자에 주장에 대해 교차검증바람.

5. 메갈과 워마드 지지성향

우선적으로, 워마드를 가장 명백하게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은 이 책의 저자들이 아니라 출판사의 대표인 유숙열 씨다. 출판사 서평에서도 언급하듯이, 그는 메갈리아는 괜찮지만 워마드는 나쁘다거나, 워마드를 긍정하는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모두 또 다른 권력의 탄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8월 19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로, 워마드가 분노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언론이 훈계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워마드의 반사회적 활동은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벌을 받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워마드에게 도덕적인 판단을 하려는 것이 워마드에게는 발화의 통로를 차단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으로,[18] 이는 5장에서 말하는 온라인 페미사이드라는 단어와도 상통한다.

실제로 4장과 5장에 짙게 깔려 있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관점은 워마드의 행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성들이 함께 연대하고 참여할 기회 자체를 원천 차단하려는 이들의 생각은 (비록 워마드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2018년 혜화역 시위 등에서 남성의 참여를 금지한 것과 유사하며, 워마드 자체도 공지에 직접적으로 표기하진 않았지만 "여자도 한남충 짓 하면 팬다" 고 명시한 데다 "자궁 없는 자 말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지지하는 걸 보면 남성 자체가 끼어드는 걸 막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성소수자 남성일지라도 남성은 남성일 뿐이며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워마드 사이트의 창설 자체와 관련이 있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해당 저자들은 워마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4장의 저자는 주로 페이스북에 서식하는 페미니스트일 따름이지만, 워마드 자체에 대해서는 사상이 상통하므로 옹호할 가능성이 높다. 워마드를 비판하는 논리의 《메갈리아의 반란》 에 대해서 대립각을 세웠음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또 한편으로 워마드는 본서에서 포스트-메갈리아로서의 성격도 부여되고 있다. 메갈리아가 폭파된 이후 여성들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고 결집하며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다른 공간이 필요했는데, 워마드는 아쉬운 대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이트라는 것. 워마드 본인들도 인정하듯이 그들의 행동이 더 이상 페미니즘적 이상에 부합하고자 애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공간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워마드가 온건한 지지를 받는 흔한 논리 중 하나가 "이상한 애들도 물론 많지만, 그래도 그 애들은 행동력 하나만큼은 진짜 대단하거든요" 임을 생각하면, 차후의 여성운동에서 워마드가 일익을 담당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행동력이 갖는 희망적인 가능성만큼 사회를 자칫 파괴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최소한 본서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조차도 안티페미니즘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는 듯한 눈치다.

6. 워마드에 대한 근거가 의문인 주장

나머지 저자들의 경우 워마드를 간간이 언급하고 있는데, 1장과 7장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워마드를 조심스럽게 긍정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메갈리아가 퀴어혐오 건으로 폭파되기 직전에 그 이용자들은 워마드가 창설될 때까지 이런저런 '대피소' 들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메갈리아에서 이루어졌던 여성운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방향성에 대한 성찰들이 제대로 기록되고 보존되지 못함으로써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것들을 대피소로 옮기려는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남성들의 공격을 받게 될까 두려워서 계속 주소를 옮기던 도중에 일일이 그런 것들을 챙길 새가 없었다고. 그 결과 워마드는 전후 맥락이 뚝 끊긴 채로 아무 이유도 합리화도 없는 무차별한 혐오 사이트인 것처럼 남아 버렸다는 것이다.

'진지한 고민과 성찰들' 이 남아있는지도 근거불명이고 워마드가 자정되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좀 어려워 보인다. 본서에서 저자들의 앞뒤 문맥을 살펴볼 때, 이들이 잃어버린 정보는 워마드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는 성찰이라기보다는 워마드의 반사회적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래디컬한 논리였을 수 있다. 즉, 메갈리아에서 지내면서 이들은 지금의 워마드가 보여주는 온갖 반사회적인 언행들을 합리화하고 양해를 구하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저거 사실은 다 이유가 있는데, 워마드로 넘어오면서 근거 논리를 다 잃어버리는 바람에 기억도 안 나고 해명도 못 함"(…) 정도밖에는 말할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 성찰이라는 것은 극단화되고 과격화되는 이념적 모의였을 뿐이며, 메갈리아는 그 속에 워마드의 싹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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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의당 당원이다. [2] 본문 서술에 따르면, 저자 본인은 자신이 온라인 여성운동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의미에서 필명을 '김익명' 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3] 본문 서술을 읽어보면 이화여성주의학회 학회장 경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즉 이런 자료들이 전부 삭제되고 있을 때, 경우에 따라 이는 법적인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 [5] PC통신 시절의 "올드페미" 와 강남역 이후의 "영페미" 가 서로 만나는 자리라는 컨셉으로 기획된 행사로서, 이 행사는 제도권 여성 운동가들이 메갈리아를 페미니즘의 일원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6] 즉 여성운동 분야에 있어서 메갈리아는 원래는 이미지가 좋았다가 점차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나빠진 게 아니라, 원래는 이미지가 나빴다가 이들이 "법적인 억압을 받아 도움이 필요한 여성" 으로 그들 앞에 나타남으로써 이미지가 좋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어떤 사건이 처음 점화되었을 때, 이는 나무위키에서 자칫 서술 폭주를 유발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이용자에게 곧바로 지워지는 경우가 많지만, 예컨대 호주국자나 다른 관련 사건들에서도 보듯이, "법적으로 이는 절대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일이 커지면 이러저러하게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는 호들갑들이 나온 바 있지만, 이런 추정이 현실을 과연 얼마나 잘 예측했는지는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면 먼저 토론 탭을 이용해 주길 부탁드린다.) [8] 이 책의 저자들이 언급하는 것은, 초창기 메갈리아 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주변 여성들에게 "너 메갈리아 하니?" 라는 소리를 들으면 친구 여럿 잃을 각오는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걸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오프라인 사회생활보다는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은 이구동성으로 언급하고 있다. [9] 이 법은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가해 용의자에게 송사를 당하여 공개적으로 성범죄 사실을 신고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어 왔고, 유엔에서도 마찬가지로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한여성변호사협회 서혜진 인권이사에 따르면, 성범죄 사건 이후 가해자가 피해자의 성범죄 피해사실이나 과거 행실을 사실에 기반하여 떠들고 다닐 때에는 오히려 이 법이 피해 여성을 보호한다고 한다. #관련기사 [10] 여기서 문화 규범이라고 자막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서 저자는 원래 자신이 강간 문화(rape culture)를 지칭하려는 것이었다고 정정했다. [11] 그 중 고등학생이 한 명이 있었는데, 면전에서 다시 한 번 자기 악플을 읽어보라고 하자, 이 학생은 마치 침이라도 뱉을 것 같은 분위기로 그 지독한 걸 고스란히 줄줄 읊었다고 한다. [12] 그 중에 한 명의 가해자는 "나는 당신에게 사과할 것이 아니라 해당 호주 여성에게 사과하고자 한다" 면서, 자신의 사과문을 저자에게 넘겨주며 "한영번역을 해서 전달하라" 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13] 복자처리를 하기는 하였으나 그 중 어떤 인물, 즉 유○○라고 언급한 인물은 대표 저서 《메갈리아의 반란》 을 언급하는 걸로 보아 사실상 복자처리를 안 한 것이나 다름없다(…). 참고로 이 사람은 메갈리아와 그 미러링 전략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주디스 버틀러 등의 문헌을 근거로 하여 그것을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며, 미러링에 대한 그의 적극적이고도 전폭적인 옹호는 해당 나무위키 문서에서도 소개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는 워마드가 동성애 혐오적인 노선을 취하자 여기에 대해서는 워마드를 비판해 왔고, 그 결과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다. [14]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관념은 생각보다 엄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트랜스젠더를 위시한 성별 정체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태어날 때 지정되어 양육된 성별에 근거하기 때문에 '출생시 지정된 성별', '지정성별'이라는 말을 쓴다. [15] 이 용어에 대해서도 TERF들은 트랜스젠더에 배타적이기 때문에 FTT, 즉 Female-to-Trans라고 바꾸어 부르도록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MTF에 대해서도 TERF 측에서는 MTT, 즉 Male-to-Trans라고 고쳐 부를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여성에 대해서 '외과적 수술로 획득할 수 있는 신체적 상태' 가 아닌, 그 신체적 상태를 가지고 살아온 사회적 억압의 경험의 총체라고 이해한다. [16] 맥락상 저자는 MTF를 남성으로 여기고 FTM을 여성으로 여기고 있다. 생물학적 성별을 중요시하기 때문인데, 그걸 FTM들이 좋아할런지는 모르겠다.(...) 만약 행사가 강행되어서 행사장에 찾아온 FTM들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해도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가만히 냅뒀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글쓴이의 의도는 그러하기에 여기서는 그렇게 읽자. [17] 위에서 언급했었던 《메갈리아의 반란》 이 바로 이 논리를 펴고 있다. [18]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워마드의 언로가 막히는 것은 탄압의 결과가 아니라 본인들이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경험들을 전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 으로 환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역시 또 다른 억압의 사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설령 약자와 강자의 구도가 세워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약자는 언제나 선량하며 어떤 행동이라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흔한 언더도그마일 따름이다. 약자라도 나쁜 짓을 하면 사회로부터 배척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