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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2:37:45

맨박스

맨박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Breaking Out of the "Man Box"
파일:맨박스 표지.jpg
<colbgcolor=#000000> 장르 에세이, 인문, 페미니즘
작가 토니 포터
번역가 김영진
출판사 한빛비즈
발매일 2016. 08. 10.
쪽수 232

1. 개요2. 맨박스
2.1. 주요 내용
2.1.1. 남성은 악하지 않다, 단지 그게 옳다고 잘못 믿을 뿐2.1.2. 여성적이지 않은 것으로서의 남성성2.1.3. 남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맨 박스2.1.4. 저자의 제안: 딸 가진 아버지의 심정으로 연대하는 선한 남성들2.1.5. 챕터별 요약
3. 책에 대한 여러 의견
3.1. 맨박스에 대한 비판론
3.1.1. 가해자 여성에 대한 면죄부와 이분법3.1.2. 제2의 남성성 강요 3.1.3. 그 외의 비판
3.2. 한국의 페미니스트의 의견
3.2.1. 여담
4. 기타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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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reaking Out of the "Man Box": The Next Generation of Manhood''(2016년)의 번역서.

맨박스는 남녀 문제가 사실, 한 갈래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담아 화제였던 페미니즘적 주장을 담은 책이다.

그 문제는 사회구조적 피해자이자 변화의 주체이기도 한 남성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함을 주장하는 책이다. 1차적으로는 미국 사회의 마초 문화를 겨냥하고 있지만, "남자다움" 에 대한 통속적 가르침은 전 세계 어디나 퍼져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은 우선적으로 가정폭력[1] 성폭력, 데이트 폭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저자 토니 포터(Tony Porter)는 뉴욕 브롱스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자신이 맨 박스(man box)라고 이름붙인 바 남성의 집합적 사회화(collective socialization)를 분석하고 바람직한 남성상을 정립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그는 또한 가정폭력 전문가 테드 번치(Ted Bunch)와 함께 《행동하는 남성들》(ACTM; A Call To Men)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TED 강연 역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TED 유사한 활동을 하는 다른 인물로 《 마초 패러독스》 를 저술한 잭슨 카츠(J.Katz)도 있으니 함께 참고할 만하다.

토니 포터는 미국에서 미식축구 선수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흑인 저소득층 주거구역, 미국 각지의 교정시설 등을 돌면서 성범죄 및 폭력 치료 세션을 남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로 여성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는데 맛깔나는 라임을 즐길 수 있다. 아래의 서술들에서도 느끼겠지만 "선한 남성 vs. 악한 남성" 과 같은 프레임화된 표현들을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번역의 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원색적인 성적 욕설이나 은어 등등 번역하기 난감한 지점들이 몇몇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자연스럽게 읽힌다. 일부 욕설은 XX 형태로 복자 처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성지원(?)이 되는 부분도 있다.

책의 내용을 대략 세줄로 정리하면,

이 책에서 맨박스란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에게 씌워지는 억압, 즉 '남성이 남성다울 것'을 강요하는 것을 뜻한다. 맨박스는 남성을 억압하는 굴레이다.

2. 맨박스

토니 포터에 따르면 맨 박스는 세대 간에 (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전수되는,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남성성에 관한 집합적 사회화이다.

이는 그 자체로 가부장제를 존속시키는 유지수단이 되며, 작게는 남성들이 여성 문제에 대해 단순히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들고, 크게는 실제로 그런 여성 문제를 저지르는 동료 남성을 제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저자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선량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고히 강조하면서도, 그런 선한 남성들이 여성들의 고통에 마음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사회화가 바로 맨 박스라고 말한다. 맨 박스로 인해 남성들 역시 희생당한다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맨 박스는 남성들이 보유한 성적 편견 고정관념을 강화하며, 이는 마침내 그 남성들의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된다. 맨 박스가 가미된 사회화는 자녀들이 아주 어릴 때의 양육에서부터 반영된다. 예컨대, 맨 박스의 영향을 받는 아버지들은 딸들이 울면 괜찮다고 안아주지만 아들들이 울면 먼저 호통부터 친다.

대표적으로 사례를 들면, "사내놈이 되어가지고 울고 있다니, 어서 뚝 그치고 고개를 들어라! 아버지 화나게 만들지 말고, 울지 말고 문제가 뭔지 확실히 얘기해라! 네 방에 들어가서 감정이 진정되면 그때 와라!"같은 식인데, 전부 저자가 실제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맨 박스에 기반한 사회화는 이미, 적어도 미국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2]

맨 박스의 영향은 성 평등에 대해 개인이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을 압도할 수 있으며, 이는 선한 남성들조차 여성억압적 사회구조를 막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선한 남성들이 맨 박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방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과감하게 "No" 를 외쳐야 한다.

혹은, 테드 번치의 제안에 따르면, "남자다움" 의 정의를 역이용하는 것도 좋다. 악한 남성이 여성을 학대할 때 선한 남성들이 "그러면 안 된다" 고 직접 제지하는 것 외에도 "그건 남자답지 못하다" 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3] 굳이 말하자면, 전자는 상당히 사회학적인 접근이라면 후자는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를 건드릴지 아니면 그 사람의 심리를 건드릴지의 선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저자를 포함한 뭇 남성들의 생각대로 정말 대부분의 남성들이 선한 남성들이라면, 주위의 방관하던 선한 남성들에게서 분명히 호응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맨 박스를 피상적으로 접하는 남성들이 종종 "우리도 피해자"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거론하는 경우가 있는데,[4] 토니 포터가 말하는 맨 박스는 거기서 더 나아가, (남성들에게 그런 피해를 입히는 악한 사회화인) 맨 박스를 굳이 거부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여성들을 더욱 큰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까지 포함한다.

여기에는 개인적으로 여성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선한 남성들에게도 사회적으로는 책임이 면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 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건 간에, 적어도 토니 포터의 본래 의도에 입각한다면, 맨 박스의 논리는 남성들의 책임 회피에 대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반대로 맨 박스로 인해 겪는 남성들의 고통을 온전히 남성들만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오류 또한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맨 박스의 형성과 작용에 있어서는 여성들 또한 절대 책임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맨 박스를 더 강하게 강요하기도 한다는 점은 저자가 명확히 지적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종종 맨 박스 개념을 통해 남성들이 겪는 차별의 원인을 남성들 스스로의 몫으로 온전히 돌리고 여성 집단에 면죄부를 주려는 주장들은 해당 개념을 입맛대로 왜곡한 잘못된 결과이다.

서양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로서 '맨박스'에 갇혀 있음을 주장하며 남성 역시도 페미니스트가 될 것을 권한다. 또한 여성 혐오가 결코 여성만을 혐오의 대상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피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 혐오의 해결이 맨박스로부터 벗어나는 중요한 기제임을 주장한다.

참고로 다른 젠더에도 박스는 있으며, 이런 개념을 합쳐서 젠더 박스(gender box)라 부른다.

2.1. 주요 내용

2.1.1. 남성은 악하지 않다, 단지 그게 옳다고 잘못 믿을 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남성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거나 여성을 괴롭히고 싶어한다거나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길거리의 여성에 대해 자기들끼리 음담패설을 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이 마음 속으로 여성을 악독하게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닐 수 있다. 단지 그런 대화 속에서 혼자 끼지 못하면 동료 남성들에게 "에이, 남자들끼리 이런 말도 못 하냐?", "너 혹시 게이냐?" 같은 배척을 겪게 될 것이 두려워서 (즉 맨 박스에 위협을 느껴서) 함께 즐기는 척하는 것일 수 있다.[5]

개인적으로는 그 여성에 대해 존중해 주고 싶은 남성들조차, 그 여성을 멸시하고 타자화하는 "남성들만의 세계" 에서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6] 그로 인해 정말로 악한 남성이 여성을 해코지하며 활개 치고 다녀도 신속히 그 사람을 제지하거나 처벌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좋든 싫든 다 같이 여성을 억압하는 풍조에 기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수의 남성들의 선의가 결국 여성의 고통이라는 파국을 낳는다는 것.

저자는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조차 "너는 집안의 가장" 이라고 말하고, 한참 나이가 많은 누나에게는 "네 동생이 집안의 가장" 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국 그 누나에게 의존성을 심어주게 된다고 경고하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이 실은 딸의 앞길을 가로막고 그녀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아들을 의젓하게 키워주고 싶어서라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나 아버지들은 아들을 남자다운 남자로 키워내는 것에 일종의 사명의식 비슷한 것을 갖고 있으며, 아들이 남성성을 드러낼수록 아버지는 흐뭇함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동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저자 본인조차도 일상 속에서 아차 싶을 때가 많다고.

여성 문제에 대해 남성이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역시 저자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10살 전후로 배우게 되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여자애들의 삶과 경험, 느낌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라. 2) 단, 성적인 관심은 어떤 경우에든 허용된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여러 메시지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남성이 섹스의 기회가 왔는데도 거절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이다", "남성이 성적인 목적 없이 여성과 '그냥 친구' 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친 또는 아내와의 섹스에 있어서 여성이 뭐라고 느끼는지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남자다운 것이다" 등등이 있다는 것. [7]

그 결과 남성들은 지금껏 그렇게 자기 앞일만 보면서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결과를 두고 저자는 자동운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저자는 여기서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선량하게 살아오고 여성들을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맨 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이들은 자신이 배운 대로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 왔다. 이렇게 살아가는 남성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느 순간부터 여성들이 억압받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선량한 다수의 남성들은 이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문자 그대로 "착하고 평범한" 선량한 남성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비록 가해자를 특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 역시 간접적으로 이 악한 사회구조를 유지시키는 데 공헌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라도 하자는 게 저자의 요청이다. 자신이 옳다고 배워 왔던 남성성, 즉 맨 박스가 우리 모두를 오도하는 위험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그저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들은 대체로 선량하기 때문이다.[8]

2.1.2. 여성적이지 않은 것으로서의 남성성

한 번은, 열두 살짜리 미식축구선수 남자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만약 코치가 다른 선수들 보는 앞에서 너한테 '여자애처럼 공을 던진다' 고 꾸중한다면 어떨 것 같아?" 저는 그 녀석이 뭐 화가 난다, 슬프다, 돌아버릴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대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녀석은 "죽어버리고 싶을 거예요"(It would destroy me)라고 대답하더군요. 도대체 우리가 남자아이들에게 여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뭐란 말입니까?

- 토니 포터[9]

문제는 남성들이 남자다움에 대해 정의하는 기존의 정의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남자를 남자답게 만드는가에 대해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답변은 "○○○(여성/게이스러운 무언가)이지 않은 것" 과 같은 포맷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기존의 남성성은 여성에게 가능한 한 거리를 두고 여성과의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으로 남성들을 몰아가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여성과의 공통점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남성은 곧바로 그 자신의 남성성을 부정당하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자존심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물론, 군대와 같은 몇몇 집단에서는 터프하고 거친 남성성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지향하기 위해서 우리가 굳이 "상냥하고 부드러운 남성은 남자답지 못하다" 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토니 포터는 "감정의 가드를 올리라느니,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하다느니 등등의 주장은 곰곰이 생각하면 낯설기 짝이 없는 논리다" 라고 말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남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때로는 울어도 괜찮고, 때로는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고, 때로는 다정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는 것을 아들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남성들을 비롯해서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의 남성들이나 아버지들의 경우는 이런 부분에 대해 꽤나 어려워하는 면모를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을 강하게 교육받고 성장한 경우가 많은 만큼[10] 직장이나 가정 내에서 감정적으로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스스로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현상이 학교 사회, 직장 사회 속에서도 흔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린 아이들의 또래가 모이는 세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눈물을 쉽게 흘리거나 나약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의존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남자 아이의 경우는 같은 나이 또래가 모여있는 무리에서 쉽게 배척을 받고 부정적인 인간군상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대다수의 여자 아이들도 이런 행동을 보여주는 남자 아이들을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여자 아이들도 남자답고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현대 사회에서 아무리 성평등을 강조하는 세상이 되었더라도,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남성의 호모포비아 성향을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가 맨박스에서 여성적이지 않은 것을 남성적으로 간주하는 맨 박스의 논리에 입각하면 남성 동성애자는 거기서 꽤나 어긋난 존재로 비춰지기 때문이며, 이것을 터부시하는 문화 관행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어오는 것과 맞물려서 호모포비아 성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1.3. 남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맨 박스

《행동하는 남성들》(ACTM) 치료 세션을 통해 저자는 맨 박스와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수집하여 5장에서 제시하기도 했다. 저자가 선정한 여러 피해 사례는 다음이 있다. 전부 저자의 세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증언한 실화.

2.1.4. 저자의 제안: 딸 가진 아버지의 심정으로 연대하는 선한 남성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사실 남성들끼리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도 별로 없거니와 말문을 여는 것도 쉽지 않기에, 저자는 상대방이 방어적이거나 저항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 자칫 남성을 악의 화신인 것처럼 몰아붙인다거나 만악의 근원이라거나 타도의 대상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흘러가고, 남성들이 갖고 있는 남성으로서의 소중한 자산과 덕목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저자는 두 가지를 제안하는데, 첫째로는 화자가 남성일 것, 특히 영향력 있는 남성일 것을 들고 있다. 미국미식축구리그(NFL) 코치쯤 되는 사람이면 가장 좋다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상 남자가 조언하는 것이 남성들에겐 효과적이라고 한다. 둘째로는 애정을 담아서 정중하게 말하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남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 남성들이 움직일 때 여성 문제에 큰 진전을 보일 것, 남성들은 본디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 남성들도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믿는 것과 상통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얼마든지 저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12] 그러나 적어도 화자가 남성을 혐오하고 멸시한다는 느낌만큼은 받지 않을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신의 주장에 대해 가장 격렬한 반발이 나오는 곳이 인터넷인데, 이런 곳의 악플들을 전부 찾아봤어도 저자가 남성혐오를 한다는 식의 덧글은 하나도 못 봤다고 한다.

영향력 있는 남성이 애정을 담아 조언할 때, 가장 좋은 접근방법은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마초적이고 거친 남성성을 아들들에게 가르친 결과, 이 세상이 과연 우리의 딸들이 살아가기에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되었는지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맨 박스가 옳다고 믿었던 남성에 대한 기본적 전제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일지라도 인간애를 되찾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갓 낳은 딸과 처음으로 눈을 맞추는 순간이고, 이때부터는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 따라서 저자는 과감히 "맨 박스는 남성들이 응당 갖고 있었던 이런 따뜻한 시선을 파괴하는 악한 사회화" 라고 말한다.

저자가 세션 중에 활용하는 기법 중 하나를 약간 각색하여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국과 한국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약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1. 남성들로 구성된 집단을 상상해 보십시오. 남고, 군대, 공학대학 랩 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이들이 한 20살 새내기 여대생의 처녀성을 이야기하면서 "아다", "분홍색", "정복하고 싶은", "따먹어 줘야 하는" 같은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들 사이에 함께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세월이 흘러서 당신은 막 20살이 된 외동딸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딸이 이 자리에 함께 앉아서 이들이 처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의 딸은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3. 당신의 딸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사회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사회는 당신의 딸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 사회의 남성들은 당신의 딸에게 성적으로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나타날 경우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4. 3번 질문의 답과 1번 질문의 상황이 서로 다릅니까? 만일 그렇다면, 1번 질문의 답은 3번 질문에서 가정한 상황에 부합합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습니까?

일단 남성들이 관점을 새롭게 바꾼다면, 남성들의 다수를 구성하는 선한 남성들이 새로운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저자는 희망한다. 직접적으로 페미니스트 투사가 된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동운항을 끄고 종종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변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이를 위해, "지금껏 여성 위주의 페미니즘 운동이 오랫동안 있어 왔지만 여성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는데, 이제 지금이야말로 우리 남성들이 나서야 할 때다" 라고까지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행복이 침해당하는 동안, 선한 남성들은 침묵해 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변화를 희망하는 남성들을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들을 제시한다.
남성들이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변화의 길에 접어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진실한 태도와 책임감, 그리고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학수고대하는 미래 세상에서는 진정한 남자의 기준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위협적인 말투, 고압적인 태도, 공격적인 눈빛, 야욕에 사로잡힌 사고방식, 주먹에 담긴 폭력성으로 대변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남자다움이 새롭게 정의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모든 연령의 남성이 다정하고 정중하게 행동하며 우리의 딸과 어머니, 누나와 여동생, 아내와 여자친구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 토니 포터

2.1.5. 챕터별 요약

각 챕터의 내용을 세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 책에 대한 여러 의견

3.1. 맨박스에 대한 비판론

3.1.1. 가해자 여성에 대한 면죄부와 이분법

얼핏보면 남성의 성차별을 폭로해 남성인권을 위한 용어라고 보일 수 있으나, 맨박스라는 개념은 오히려 남성의 상처를 통해 남성을 가해자로 만드는 동시에 남성차별 문제를 남성들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교묘하게 재단된 여성 중심적인 단어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현대에 많이 지적되는 페미니즘의 한계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가해자=남성 이라는 틀에 박힌 개념을 지독히도 강화하고 있다. 남성성이라는 개념은 사회 전체적으로 남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 남성으로 가해지는 압박만을 맨박스라고 딱 잘라 지칭하고 있다. 가해자를 남성으로 한정하면서 교묘하게 남성성을 요구하는 여성 가해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쥐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디까지나 맨박스의 개념은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차별-스스로 만들어낸 차별로서 문제의 해결 또한 남성 개인, 또는 남성 집단에 국한시켜 버리는 과오를 범하게 만든다. 결국 남성들의 문제는 남성들이 해결해야하는 문제일 뿐 여성들의 반성과 참여는 교묘하게 사라져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러한 맨박스는 남성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을 차별하기 위해 남성이 자기를 차별한다는 식으로 확장되어 그 해결방법으로 페미니즘이 제시된다. 괜히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남성억압적이고 편파적인 페미니즘 발언을 쏟아놓고서는 끝에 '남자들도 맨박스에서 꼭 벗어나길 바란다.'고 선심 쓰듯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성차별을 폭로해 남성 해방을 말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남성들의 일방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폭력적이고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이다.

3.1.2. 제2의 남성성 강요

저자가 새로운 남성성(Manhood)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 고정관념을 생산할 뿐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새로운 남성성이 다른 방법의 맨 박스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강요된 남성 역할' 을 재평가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옳은 태도를 가진 남성 역할' 이라는 것은 태그만 갈아끼운 또 다른 남성 억압과 동의어라는 주장이다. 이는 저자의 경험이 극단적인 남성성의 분출인 미국 저소득층 흑인 사회의 관찰에서 온 것이라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여성에게 심하게 부당한 행위를 남성적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이것에 대한 대체가 '여성에 대해 부당하지 않은' 것을 기준삼아 재정의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독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회유수단으로 선택한 비유가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 이라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무게를 더해준다. 설령 이것이 감정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좋은 수단이라 할지라도, 종전의 억압적인 남성성 개념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남성성에서 여성에게 불리한 부분은 제거하고 유리한 부분은 유지-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을 위한 책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전형적인 페미니즘 진영의 여권상승을 위한 이론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남성성과 여성성의 개념을 긍정하되 그 의미를 유익하게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보면 이 책은 그저 기존 페미니즘 담론의 바리에이션일 뿐이다.

3.1.3. 그 외의 비판

저자가 현대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성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 혹은 여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 배제된 사악한 것 등이다. 이러한 개념 정의는 기존의 긍정적 남성상을 배제하면서 교묘하게 제 2의 남성성을 대안책으로 강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된다. 독단적인 재정의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다가 오히려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성이 어떤 사회적 형성 과정을 거쳤는지 깊게 탐구하긴 한건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저자는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폭행에 남성이 반응하는 시간보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행에 남성이 반응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는데, 이는 여성을 암묵적으로 소유물로 전제하기 때문에 정황적 추론을 하느라 망설이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이는 통념과는 정반대의 주장이기도 하거니와 객관적인 실증도 부족하다. 또한 추가로 비교해 봐야 할 것으로서 여성 → 여성 폭행 상황, 그리고 여성 → 남성 폭행 상황도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를 위해서는 이 네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아야할 것이다.

3.2. 한국의 페미니스트의 의견

한국의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맨 박스는 가부장제로부터 파생되었으므로 가부장제가 사라지면 맨 박스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성이 집단의 지도적 위치여야 한다는 사회적 구조 와 편견이 '남자는 강해야 한다, 한 집단 내의 지배적 존재여야 한다, 책임을 가진 존재가 남성이어야 한다'는 맨 박스를 만들어낸다는 것. 가부장제가 먼저인지 맨 박스가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수준의 논의겠지만 최소한 이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이들은 맨박스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가 엉뚱하게도 여성들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맨 박스로 인해 약하거나 매력적이지 못한, 이른바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찍혀 피해를 본 남자들이 이 피해를 맨박스 잘못이 아니라 여성들 잘못으로 돌린다는 것.

더 나아가 맨 박스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도 언제나 어느 정도씩은 변명할 수 있는 언어가 주어지는 특권을 누리고, 따라서 맨 박스에 대한 분노는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에 비하면 한낱 투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또는 맨 박스로 인한 피해 그 자체가 변명이 된다는 주장[14]도 나온다.

그러나, 가부장제와 맨 박스의 상관관계가 사실이라고 해도 "가부장제가 사라지면 맨 박스도 사라질 것이다" 에 대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희망사항이 아니라 얼마나 믿을 만한 예측이 될지에 대해 입증되어야 한다. 토니 포터가 말한 것은 "맨 박스를 통해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 맨 박스를 극복하면 가부장적 사회구조도 개선될 수 있다" 는 정도뿐이다. 다만 가부장제가 사라질 경우 '남성이 지배자다'라는 사회적 구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맨 박스 또한 아주 사라질지는 몰라도 상당 부분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은 기대할 여지가 있다.

또한, "한낱 투정" 을 운운하는 것은 여성의 고통에 대해 남성이 보이는 비공감의 정확한 거울상이다. 여성들이 구조로부터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경험해서 알고 있다면, 남성들이 구조로부터 받는 피해에 대해서도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이해할 여지가 생기지만, 그러한 이해를 거부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흔히 맨 박스를 남성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사람들이 많지만, 맨 박스 형성의 책임에 대해서는 여성들 역시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도 또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주로 페미니스트들이 맨 박스로 인해 남성들이 겪는 고통을 전적으로 남성 집단 내부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여성 집단의 책임 회피인데다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맹목적인 반감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까지 한다. 맨 박스가 남성 집단 내부의 문제가 아니란 점은 저자의 저서에서 명확하게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므로 맨 박스 개념을 사용할 때 오용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된다. 애초에 자기들이 만들지도 않은 규범 때문에 고통받는 남성들에게 "니네 조상이 만들었으니 니 탓"이라고 하는 건 전형적인 연좌제다. 이런 식의 개소리라면 현생 인류의 조상이 자발적으로 전쟁 행위를 만들었으니 전쟁으로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은 닥치고 죽어야 하나? 실제로 이런 식으로 개인과 집단간의 차이, 구조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오류는 전체주의자들이 수시로 저지른다. 페미니즘이 소외받기 쉬운 약자들의 인권을 따져야 하는 인권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발상인 것이다.

심지어 토니 포터는 어떨 때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고집스럽게 맨 박스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까지 말한다. 많은 여성들이 연애, 결혼 상대를 찾을 때 '용감하고, 키가 크고, 힘이 세고, 경제력이 있으며, 매너있는 남성'을 선호한다. 이는 아직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고학벌, 고소득의 남성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 증명되며[15], 이는 가정에서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더욱 사회적, 경제적 책임감을 요구하는 가부장제적 가치관을 여성들도 암묵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짐작할 수 있게끔 한다.[16]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런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상당한 자살골을 넣고 있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저자는 남성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때 여성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한국 남성들의 역할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의 동지이자 지원자가 될 수 있다는 엠마 왓슨의 생각과도 유사하다. 저자는 남성 자체를 무시하게 되면, 남성들이 자존심과 자긍심에 상처를 입고 더욱 방어적이고 저항적이게 될 뿐이라고 경고하지만 이른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취하는 남성혐오는 이런 사태를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주장 또한 나온다.

저자가 접근하는 방식은 국내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많이들 취하는 사회구조적 담론의 지배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저자는 "남성 개개인은 선하지만, 사회구조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맨 박스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100% 선량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와 같이 개인적 분석수준과 사회구조적 분석수준을 엄밀히 구분하고 있다.

이 경계선이 무너질 때,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가 개인에 대한 분노로 잘못 치환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예컨대, 남성지배적인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지만, 그 분노를 특정 개인에게 돌려서 "애비충" 이라고 욕하는 것은 개인 수준으로 잘못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특정 개인에게 분노를 투영/투사하는 작업이 좀 더 쉽게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다. 사회구조는 설령 개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인식을 하고 분노를 느껴도 개인에 비해 명확하게 딱 잡아낼 수 있는 실체가 보이지 않으며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나, '구조' 에서 '개인' 으로 대상을 국한시켜버리면 타깃이 좀 더 쉽게 설정되니까 당연히 대상을 지목해서 감정을 쏟아거나 투사하는 것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을 자극시키는 것이 사회구조를 자극시키고 공격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것도 있다. 보통 사람은 찌르면 바로 반응이 나오는 편이지만, 사회구조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작정하고 달려들어서 여러 방면으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가한다거나, 사회구조 전체를 대놓고 손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큰 힘(권력)을 쥔 누군가가 한 번에 그 틀을 제대로 부수지 않는 이상 현재 구조에 대한 변혁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페미니즘에서 "혐오" 라는 용어를 여성학 비전공자들에게 마구잡이로 남용하는 것도 역시, 구조적 정동(structural affect)으로서 개념적으로 엄밀하고 조심스럽게 정의되어야 하는 그 단어를 맥락과 무관하게 개인 수준에서 휘두르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미소지니라는 단어의 번역오류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여성혐오라 번역되는 미소지니라는 말은 사실 사전적 의미에서의 혐오라고 보기엔 거리가 먼 단어이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포괄하는 개념의 폭이 넓기에 단순히 여성을 '싫어함(혐오)' 이라기보다는 여성에 대한 혐오, 여성에 대한 편견, 멸시, 성적 대상화, 성 상품화 등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이다. 저렇게 넓은 용례로 쓰이는 단어기에, 미소지니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와 완벽하게 대응되는 한국식 단어가 없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미소지니에 속하는, 엄밀히 말하면 모두 다 약간씩 다른 저 모든 개념들이 한 번에 여성혐오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러져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저 단어(미소지니)의 정확한 뜻과 기원에 대해 숙달한 사람도 그닥 많지 않은 게 실정. 이 때문에 "여성혐오라는 번역 자체가 틀린 번역이 아니냐?"는 말도 꾸준히 나오고 있으나 대체할 단어가 마땅치 않은데다 이미 저 단어가 너무 뿌리깊게 퍼져 있어서 고칠 생각도 안하고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남성 개개인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남성지배적 사회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대조시키고, 후자를 개선하기 위해 전자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저자의 접근은 상당히 신선하다고 볼 수 있다.

3.2.1. 여담

이 책은 기본적으로 남성 페미니스트가 쓴 페미니즘 서적이고, 한국에서도 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에게 페미니즘 입문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의 근본주의적인 세계관이나 위에서 언급한 지점 때문이다. 단지 남성 젠더문제에 대해 논한 책이라는 것 자체가 고깝게 보여서일 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 군대적 사고방식[17], 능력주의 등의 영향과 정치적 보수주의로 인해 안티페미니즘적 남성들은 절대 맨박스를 허물고 있지 않다. 인터넷에서 남성에게 가장 흔히 사용되는 비하어 중 하나가 찐따이고[18], 일진은 분명 빌런 취급이기는 하나 어떻게 보면 찐따보다 더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만 봐도 남성 집단 내부의 맨박스적 감성이 뿌리 깊음을 보여준다.[19] 과거에 조폭 경험이 있다는 사람들도 가오를 잡으며 인터넷 방송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많은 이들은 그들을 동경한다. 남성 여성을 막론하고 성범죄에 대해서는 민감해서 강간의 피해자는 그렇게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과 천지 차이라고 볼 수 있다.[20] 담당일진이라는 말은 아무런 문제 없이 쓰지만, 담당강간범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이는 남성에 대한 폭력이 더 가볍게 여겨지고, 피해자 비난화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성뿐만 아니라, 혹은 여성보다 더 남성 집단 내부에 뿌리박혀 있다.

4. 기타

저자가 흑인인데다 브롱스 출신이기 때문에 그 동네의 저소득층들의 길거리 문화에 대해 해박하다. 어찌보면 누구보다도 더욱 성차별적인 문화에서 자라난 것임에도 수 년에 걸쳐서 고통스럽게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남자들의 생각이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고 믿지도 않으며, 세상 남성들이 페미니즘의 연대자 vs. 여성혐오자로 양분된다고 믿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

저자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게 심지어 옆집의 16살짜리 지적장애 소녀를 남자애들이 모여서 집단으로 윤간한 이야기다. 이 일을 두 번 겪었다고 하는데, 12살 때에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에서 나와서 허세를 부렸고, 16살 때에는 강간을 위해 줄을 서 있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화를 내며 빠져나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이것도 (그 소녀를 직접 부축하여 끌고 나오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주 바람직한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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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부장제, 아동 학대와 연관 [2] Lytton, H., & Romney, D. M. (1991). Parents' differential socialization of boys and girl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bulletin, 109(2), 267. [3] 테드 번치의 사례에 따르면, 옆집 남성이 아내를 학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서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를 때리신 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정중히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 남성은 몹시 수치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며칠 못 가서 도망치듯이 이사를 갔다고 한다. [4] 이럴 경우 MGTOW 진영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위해 맨 박스라는 용어를 빌려 쓰는 사례일 수 있다. [5] 물론 정말로 즐기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저걸 즐기는 분위기가 자신이 속한 사회환경 내애서 고착화되어있고, 해당 사회환경 소속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저런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남성들의 경우 사화 속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존속되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이에 맞춰준다는 것. [6] 소속감의 문제는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옳지 않다고 이성이 판단한다 해도 소속되지 못하고 배척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 등으로 사회 내에서 폐단을 답습하거나 폐단을 묵인하는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샐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직이 아무리 썩어있다 쳐도 이를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내부고발자가 조직 내에서 나오기가 매우 힘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7] 종종 남성들이 연애관계 상황 등에서 여성들의 싫다는 말을 온전히 싫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론 좋아하면서 튕기는 거임' 하는 식으로 오해 - 확신하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건 여기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8] 이 의견에 대해 선량하다는 것에 대해선 부정해도 대체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해자와 지배자, 착취자의 입장에 서려는 경향성을 지니지는 않았다는 것까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성이 원래 호의적이고 선량한 선까진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남성이란 존재가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지배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려는 존재는 아니라는 말) [9] 그가 TED를 비롯한 여러 강연들에서도 꼭꼭 포함시키는 일화이다. 저서에서는 p.129-130에 소개. [10] "남자가 한 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처럼 강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남아일언중천금이 대표적일 단어일 것이다. [11] 예를 들자면, 자신보다 상대 여성의 키가 더 크거나, 여성이 무술을 전공했거나, 여성 쪽의 돈이 더 많거나, 여성의 직업이 더 높은 지위이거나 학력에 높을 경우에는 주변의 남성들과 여성들이 자주 "가오 빠지게",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남자 기를 죽이는..." 과 같은 표현으로 불만스러워하거나 남성들이 스스로 여성보다 잘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열등감을 느끼면서 비하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에 자신보다 키가 큰 여성들을 대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12] 실제로 저자의 책에서도 세션에 참가한 어떤 고령의 남성이 "여성 문제는 사실 여자들이 전부 자초한 문제이며, 이걸로 자꾸 남자들을 업신여기고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요즘 세태가 못마땅하다" 고 하소연하는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대단히 칭찬했다. 이런 이야기가 솔직하게 오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생각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13] 다시 언급하자면, 개인으로서는 선량한 남성들임에도 맨 박스라는 억압적 구조를 묵인하거나 편승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14] 예를 들어 남자들 모임에서 어떤 여자에 대해 언어적 성폭력이 오가고 있는데, 이를 방관하거나 거기 동조할 때 "여기서 동조 못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심하면 '메갈' 소리까지 듣기 때문에 나도 호응한 것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15] 이 현상을 남고여저나 Marry-up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남성을 배우자로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며, 그 반대는 Marry-down이라고 칭한다. 미국에서는 교육 수준과는 별개로 수천년 이상 변하지 않는 Marry-up이 주류이며, 평범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남성들은 결혼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반쯤 포기한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해당 기사 참고 [16] 이것은 비단 가부장제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정 대상을 차별하거나 타자화하는 대부분의 사회 구조는 그것이 타자화하는 대상에게까지 학습되고 내면화되어진다. 즉, 타자화된 대상은 곧 사회 구조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또다른 가해자가 된다. [17] 폐급, 관심사병같은 군대적 용어가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18] 조금 더 오래된 표현으로는 찌질이 같은 표현이 비슷한 감성이다. 조금 더 포괄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19] 연예인인 경우 일진이 규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나, 그것은 특수한 맥락이다. 정치인이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다면 정당을 불문하고 매장당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한국에 동성애혐오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20] 이것도 사실 최근의 일이고, 과거에는 강간죄의 피해자 역시 부끄러운 존재였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소설에서 여주인공이 강간을 당했던 과거가 나오면 더럽다고 하면서 극도로 분노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런 사고방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