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서는 김선희 교수의 저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사평론가 박가분 씨의 저서에 대한 내용은 혐오의 미러링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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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미러링 여성주의 전략으로 가능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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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12월 30일 |
저자 | 김선희 |
출판사 | 연암서가 |
ISBN | 9791160870435 |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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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워마드의 혐오 발언에 대해 사회적 비판은 물론 심지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거리를 두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두고 기사와 칼럼이 넘쳐나지만 정확한 분석을 찾아보기 어려워 아쉬움이 많다. 나는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워마드 현상' 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동기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 pp.5-6
본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워마드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직접적이고 진지하게 논의한 페미니즘 학술서이다. 더 자세히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저자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워마드를 대하고 있다. ① 일단 워마드는
페미니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② 워마드가 특이한 이유는
미러링이라는 방법론 때문이다. ③ 미러링은 여성들을 각성시켰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외의 목표에는 실패한 전략이며 위험한데다 윤리적 정당화조차 불가능하다. ④ 미러링의 한계는 워마드의 놀이문화를 통해 당장은 회피되겠지만, 놀이가 끝날 때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⑤
탈코르셋 운동 이후로 워마드는 실제로 놀이가 끝나 가는 모습을 보인다.- pp.5-6
2. 상세
본서는 워마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페미니즘적 분석서이기 때문에, 주류 페미니즘이 워마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본서는 워마드를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서문에서 두 가지의 이유를 들고 있다. 요컨대, ① 워마드에는 기존의 페미니즘과는 구분되는 특성들이 나타나며 ② "분노에 찬 여성들의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소모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발현" 하게 함으로써 "남녀 성대결로 흐르는 이 논란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이상 p.8)한다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으로, 본서는 저자의 제자의 지인 30여 명을 대상으로 워마드에 대한 심층설문을 실시하여 부록으로 첨부하여 놓았다. 녹취록을 직접 전사한 것은 아닌 듯하고, 개방형 지필 설문 내용을 옮겼거나 혹은 면접 내용을 저자가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워마드에 대한 기존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는 상당히 갈리지만, 전반적으로 단호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은 편이었다. 먼저 워마드에 반대하는 의견의 경우,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직후인 2018년 7월 11일에 한국여성대표연합이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라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튿날에는 은하선 씨도 "의미 없이 내뱉는 욕은 의도조차 망친다" 면서 성체훼손 사건을 비판했다. #1 #2 또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고병진(2018)의 여성학 석사학위논문은[1] 워마드가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주장하며, 내부의 TERF가 권력획득을 목표로 하여 처음으로 익명성을 벗어던지고 자신들의 적성세력을 '학계 페미니스트' 로 규정하였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워마드에 판단을 유보하는 의견으로, 조한혜정 명예교수는 2018년 7월 20일 《주간동아》 기사에서 워마드를 "이례적 문화 현상" 으로 봐야 한다면서, 페미니즘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 마지막으로 워마드를 지지하는 의견으로 대표적인 윤김지영 연구전임교수의 경우, 워마드가 퀴어 진영이나 장애인 진영에서도 얼마든지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공론화한 의미가 있는 활동이라고 옹호했다. 또한 본서에 언급은 없으나, 《 근본없는 페미니즘》 의 출간으로 유명해진 페미니즘 출판사 "이프북스" 의 유숙열 대표 역시 워마드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본서의 관점은 어느 하나에 명확히 걸쳐지지 않는다. 단순히 찬반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더 미묘한 형태로 분석의 틀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를 소개하자면, 저자 김선희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며 한국여성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철학상담 전문가로서 단체 및 개별상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철학적 사고실험이라는 방법론을 활용하여 개인의 내면을 치유하는 상담기법을 연구하는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 사건 당시 시위참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상담을 진행하여 오마이뉴스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 또한 2018년 4월 21일에는 한국여성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워마드를 주제로 발표한 이력도 있다.[2]
표지그림은 김혜주(2018)의 〈검은 코뿔소-봄을 맞다〉(162.2×130.3) 유채화이다.
3. 목차 및 주요 내용
- 여는 글
- 1장: 새로운 여성 세대의 출현
- 2장: 혐오의 정의, 그리고 여성 혐오란 무엇인가?
- 3장: 여성 혐오를 미러링하는 메갈리아-워마드의 등장 배경
- 4장: 혐오 미러링의 방식과 그 효과
- 5장: 혐오 미러링의 전략적 한계
- 6장: 혐오 전략의 한계에 대한 워마드의 대응 방식: 놀이와 가벼움의 논리
- 7장: 워마드의 변모와 다양한 스펙트럼
- 8장: 해결 방향과 대책: 어디로 향할 것인가?
- 닫는 글
- 부록: 설문과 인터뷰 정리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성차별적 사회 속에서, 비로소 현대 한국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일상으로 실천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 속칭 미러링은 여성들의 의식화 및 정치세력화에 성공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고 매우 위험하며 정당화되기도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 워마드는 미러링을 놀이처럼 대하면서 이 한계를 피해 갔지만, 탈코르셋 운동 이후로 놀이의 요소가 사라진 미러링은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3.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하단에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먼저 본서에서 소개하는 미러링의 성질과 전략적인 장점, 그리고 전략적인 단점을 열거한다. 다음으로 워마드가 미러링을 소비하는 양상이 놀이문화와 유희성에 기초해 있음을 검토하면서, 이론에 비추어 그 놀이가 끝날 때 미러링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임을 예측한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부록에 수록된, 워마드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약간의 해석을 첨부한다.-
1. 새로운 여성 세대의 출현
워마드로 대변되는 남녀 간의 극심한 상호 비하는 우연이나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될 수 없으며, 그 세대 특유의 공통된 경험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영페미들은 주체적이고 민주적이며 정치적 실천이 활발하고, 자신이 페미니즘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지를 진지하게 숙고한다. 이들은 자신의 삶의 주체성을 여성 비하 표현에 침묵하지 않는 활동에서 찾고자 했으며, 워마드에 대해서도 복잡한 심경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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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혐오의 정의, 그리고 여성 혐오란 무엇인가?
혐오는 사전적으로는 선호에 있어서의 불호에 해당하는 태도이지만, 여성혐오는 그 사회구조적 압력으로서 가부장제가 전제되는 차별과 멸시이다.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들은 타자이자 제2의 지위로 위치지어지며, 그 열등한 자리에 해당하는 역할과 규범들로부터 여성들이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내부에서 작용하는 모든 역할과 규범들이 여성혐오의 사례이며, 심지어는 여성을 칭찬하거나 추앙하는 것도 여성혐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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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성 혐오를 미러링하는 메갈리아-워마드의 등장 배경
2005년 이후의 기존 여성들은 김치녀 등의 젠더 규범적 평가에 대해 최대한 맞춰 주면서 개념녀라는 인정을 받으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2015년 이후, 온/오프라인에서의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여성들은 비로소 여성 이슈에 대해 직접 행동에 나설 만큼 의식화되었다. 오늘날 더 이상 김치녀와 같은 젠더 규범적 평가는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지 못하며, 도리어 그 의미가 전복적으로 수용되면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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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혐오 미러링의 방식과 그 효과
페미니즘은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성차별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이를 철폐하기 위해 애쓰는 사상으로, 따라서 워마드 역시 페미니즘에 속한다. 워마드의 여성사적 특이성은 그것이 유사-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채택한 미러링이라는 특수한 방법론에서 찾아질 수 있다. 방법론으로서의 미러링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미러링을 하는 여성들 본인들에게 의식고양 및 정치적 세력화가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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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혐오 미러링의 전략적 한계
여성혐오는 구조적이고 남성혐오는 개인적이라는 비대칭성은 결과적으로 미러링 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또한 혐오는 타자배척과 오염회피의 정동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자기혐오에 빠지고 남성이나 소수자에 대한 동정심 및 공감도 약화되게 한다. 마지막으로, 혐오는 아무리 앙갚음의 맥락에서 나타나더라도 비윤리적인 것이며,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가치에 대한 허무주의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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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혐오 전략의 한계에 대한 워마드의 대응 방식: 놀이와 가벼움의 논리
워마드는 상기된 전략적 한계에 대해서 유희성과 놀이문화로 대응하여, 도덕적 엄숙주의를 배격하고 가벼운 장난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모든 놀이는 결국 언젠가는 종료되기 때문에, 그간 워마드가 회피했던 전략적 문제들이 그때 드러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워마드는 탈코르셋 참여 강요와 같은 몇몇 이슈들에서 놀이의 종료를 암시하는 징후들을 점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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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워마드의 변모와 다양한 스펙트럼
혜화동 시위 이후, 워마드는 비장미와 편재성의 출현, 여성들 간의 계급화와 분리주의로의 퇴행을 일으키면서 복잡한 설명을 요하게 되었다. 워마드의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탈코르셋 운동에서 나타난 지시적, 권위적, 분리주의적 메시지는 여성에 대한 검열과 억압이기도 하다. 탈코르셋 운동에서 드러낸 워마드의 양상은 그들의 놀이가 종료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워마드가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면 새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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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해결 방향과 대책: 어디로 향할 것인가?
워마드가 남긴 것은 이후의 여성운동에 있어 여성 각자가 놀이 공동체로서의 결속감과 공통의 동질적 놀이경험을 공유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차후 여성운동은 여성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미러링보다는 정치적 제도개혁의 실천, 페미니즘 교육의 확대 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법의 영역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선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이른바 '젠더 정체성의 법적 수행' 의 길을 찾아야 한다.
3.2. 미러링 설명하기
미러링을 설명하기 이전에, 저자는 먼저 메갈리아와 워마드, 특히 워마드가 페미니즘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무엇이 페미니즘인지 말할 수 있으려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미 이와 관련하여 1997년에 두 가지 기준을 제안했던 적이 있는데,[3] ① "인류의 역사를 통해 구조적으로 부당한 성차별이 있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② "부당한 성차별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상 p.60)이다. 만약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페미니즘이라고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워마드가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p.62). 즉, 저자에 따르면 워마드를 비판할 경우 그들이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어서' 가 아니라, '미러링이라는 자신들만의 방법론을 활용하는 특수성' 에 대한 비판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4장에서 미러링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먼저 밝힌다. 우선, 남성들에게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충격요법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워마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여성혐오에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미러링이 무엇보다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러링의 최대 수신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 자신이었다"(p.73). 여성들은 미러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삶의 고충을 여성혐오라는 인권침해 상황으로 이해하였으며, 이를 통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특히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정치적 연대의 힘을 키웠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미러링이 긍정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여성들의 의식을 고양시켰고, 자신의 경험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 여성들과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뒤이어 5장에서, 저자는 방법론으로서의 미러링이 네 가지의 전략적인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하였다. 이를 각각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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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성혐오와 그 미러링인 남성혐오는 서로 비대칭적이기에, 여성혐오와 동일한 효과를 산출하지 못한다.
결혼식에서 두 남녀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만일 주례가 아닌 하객이 나서서 부부 선언을 한다면, 그 선언은 공적으로 남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언어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Butler)는 《Feminist Contentions》 에서 화자의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는 그 화자의 권력이 받쳐주지 않을 때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여성에게는 남성을 비하할 권한이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미러링 전략은 남성이 퍼붓는 여성비하 표현들과 같은 효과를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남성이 여성을 ' 걸레' 에 비유한다면 여성이 입는 정신적 대미지(?)는 매우 크다. 자신의 출산 및 양육에 결부된 역할과 순결 등의 도덕적 평가에 심적으로 내리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여성이 남성을 '걸레' 라고 똑같이 받아친다면 남성은 정신적 대미지를 크게 입지 않는다. 남성의 성적 방종은 지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러링이 효과적이려면 남녀가 동등해야 하는데, 남녀가 동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러링을 한다면, 왜 미러링을 하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정동에 대한 문화비평 이론을 통해서, 여성혐오가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차별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저자는 여기에서, 남성혐오란 존재할 수 있고 미러링의 방식으로 전달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구조 속에서 생존하기 어렵고 득세하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본다. 국내에 이와 관련하여 " 남성혐오 같은 건 없다" 를 강경하게 외치는 윤김지영(2015)의 저 유명한 문헌에 대해,[4] 저자는 여성들의 남성혐오적 미러링이 분노라는 정동 하나만으로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론한다. 여기에는 분노에 더하여 혐오도 있고, 다시 그에 더하여 풍자나 놀이 요소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노의 정동과 혐오의 정동을 배타적으로 상정한 채 무작정 남성혐오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미러링은 명백히 남성혐오다. 단지 그것이 구조적 혹은 정치적 수준의 정동이 아닐 뿐이다.
본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런 비대칭적 관계와 관련하여 이미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 역시 비슷한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우에노는 2016년에 "여자들의 사상을 말하다" 토크콘서트를 위해 방한했을 때 미러링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그것이 패러디(parody)라는 언어적 저항운동임을 알아보았는데, 이때 두 가지 지적을 남겼다. 첫째로는 본인의 수준을 상대방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로는 특히 언어적 발화권력은 남성들이 더 강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반발하면 그 언어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허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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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모든 혐오는 결국 여성혐오로 귀결되는 딜레마를 갖는다.
미러링을 판타지 세계관의 무기에 비유한다면, 저자가 이해하는 미러링은 그것을 사용하면 할수록 서서히 자기 자신도 오염되고 타락하여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사악한 무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여성혐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반격하기 위해 미러링을 무기로 활용했는데, 결과적으로 미러링을 하면 할수록 여성들이 자기혐오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이해하려면 저자가 인용한 마사 너스바움(M.Nussbaum)의 《 혐오와 수치심》 도서가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너스바움은 혐오라는 정동이 주체가 타자를 배척하여 그것이 자신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혐오는 여성으로부터 인간의 동물적이고 점액적인 속성, 불결함과 부정함, 주체의 정결함이나 거룩함을 타락시키는 특징을 발견한 것에 대한 반응이 된다. 결국, "혐오의 감정은 여성성의 부정이며, 취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성에 대한 부정의 사고"(p.86)가 되고, 그 혐오를 전략적 무기로 여성이 사용한다면 마침내 자기 자신을 겨누는 무기가 될 뿐인 것이다. 적을 향해 던진 부메랑이 내 뒤통수로 날아드는 형국이 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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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미러링의 혐오는 동정심이나 공감과 같은 도덕적 감수성을 훼손한다.
저자는 이를 주장하기 위해 다시금 너스바움의 문헌을 빌려온다. 《Upheavals of Thought》 에서 너스바움은 혐오가 동정심이나 공감을 약화시키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어렵지 않은 논변인데, 왜냐하면 혐오는 어떻게든 주체가 떼어내고 거부해야 할 타자에 대한 정동이므로, 자연히 그것을 결함 있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서 그들에게 공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현실 문제에 적용하면, 남성이 여성을 바라볼 때, 백인이 유색인종을 바라볼 때 상대방을 동물화, 기계화, 대상화한다면, 결과적으로 그 '대상' 에 대해서는 도덕적 관심과 염려를 끄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러링 중에는 실제로 남성이라면 게이든 장애인이든 막론하고 일체의 배려와 연민, 동정을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페미니즘의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돌본다' 는 기본 정신과 어긋나므로, 혐오를 무기화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취해서는 안 되는 무기를 취하는 것이라는 게 저자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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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혐오를 혐오로 앙갚음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서로 마주 치고받으며 싸우는 두 사람을 뜯어말렸는데, "먼저 때린 게 누군데!" 라면서 길길이 뛴다고 해서 항상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개는 쌍방폭행으로 귀결될 뿐이다. 불의를 불의로 갚을 수는 없고, 욕설을 욕설로 갚을 수 없으며, 적개심을 적개심으로 갚을 수는 없다. 그것은 평등의 대의가 아닌, 단순한 보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설득하기 위해 알베르 카뮈(A.Camus)의 《반항하는 인간》 에 등장하는 '양심적 살인자' 이야기를 빌린다. 이 살인자는 정말 불가피한 이유에만 암살을 저지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암살에 대한 책임을 자기 목숨 값으로 내놓으려 한다. 페미니즘 역시 그 정도 책임감은 보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만일 페미니즘이 되갚는 혐오는 혐오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정당화한다면, 이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허무주의"(p.94)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페미니즘으로서는 철학적인 파국과도 같다는 것.
3.3. "놀이는 언젠가는 끝난다"!
위의 한계들에 대해서 워마드는 과연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일단 워마드는 이러한 한계를 알고 있고, 일견 교묘하게 피해 간다. 미러링이 효과가 없으면 '더 센' 신조어를 찾고, 자기혐오를 막기 위해 철저히 익명성을 유지하며, 남성이나 퀴어에 대한 동정심을 버린 것에 죄책감을 갖지도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워마드는 자신들이 가볍게 놀고 웃고 즐긴다고 생각하지, 무슨 비장미 넘치는 거창한 정치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워마드 사이트는 놀이터이고, 이용자들은 놀이를 즐길 뿐이며, 각자의 정체성은 익명성 속에 가려진다. 이들은 그저 워마드에 놀러 왔을 뿐이다. 워마드에 딱히 소속감이나 자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자신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믿을 필요도 없으며, 그만큼 자기검열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워마드는 " 웃고 넘어가야 할 놀이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고 준엄하게 비판하려는 것을 웃기는 일이라고 조롱한다"(p.98). 그래서 워마드는 놀이터 밖으로부터 욕을 먹는 걸 당연시한다.여기서 저자는 유용한 분석의 틀로서 《호모 루덴스》 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J.Huizinga)의 놀이 이론을 가져온다. 놀이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활동이 아니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또한 누군가의 명령이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서 하는 것이며,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진행된다. 이 규칙은 놀이터 내부에만 한정적으로 자기들끼리만 적용되기에, 놀이터 밖의 도덕성과 때로 괴리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상한 규칙이 형성될 때, 그 유일한 형성 목적은 오직 '재미' 를 위해서다. 이렇게 본다면, 워마드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미러링의 규칙들은 분명 비장한 정치적 실천이라기보다는 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놀이로 볼 수 있다. 즉, 놀이 이론의 조망에 비추어서 워마드를 해석하고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모든 놀이의 미래는 자명하다. 궁극적으로, 모든 놀이는 '언젠가는' 끝난다.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은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고, 영어권의 관용어구 "파티는 끝났다"(The party is over) 말마따나 영원히 이어지는 파티는 없으며, 모든 클럽은 언젠가는 셔터를 내려야 한다. 하위징아가 확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하위징아는 놀이가 끝나게 되는 경우를 몇 가지로 분류했는데, 자발적으로 끝내자고 합의할 수도 있고, 놀이의 요소가 사라지거나 규칙이 깨져서 흐지부지될 수도 있고, 놀이터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으며(…), 놀이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상의 이론적 예측을 바탕으로, 저자는 워마드의 놀이문화와 그 유희성이 놀이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으로 인해, 그리고 놀이의 요소가 사라지는 상황으로 인해 곧 끝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선, 워마드는 2018년 이후로 변화를 겪었고, 이로 인해 놀이문화 역시 변화가 나타났다. 그 첫째 변화는 2018년 혜화역 시위였다. 저자는 혜화동 시위가 워마드의 언어와 문화가 현실의 광장문화로 영향을 끼친 사례임을 지적한다. 미러링 용어를 활용하고, 생물학적 여성들만 참여하며, 운동권과의 연대를 금지하고, 친목이나 사적 대화를 금지하고 익명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즉, 워마드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비로소 소위 '비장한' 현실 운동으로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향전환은 워마드가 생각하는 놀이의 '놀이터' 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을 불러왔다. 어디까지가 미러링을 할 수 있는 놀이터인가? 놀이터 밖의 현실로까지 놀이를 끌고 나가도 될까? 저자는 직접 지목하지 않았지만,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을 저지른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놀이터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 세계였다. 저자가 이미 말했듯이, "놀이를 넘어서 현실의 실천을 추구할 때 윤리적 문제를 간과하기는 어렵다"(p.105). 혜화동이라는 현실로 뛰쳐나온 이상, 더 이상 온라인에서처럼 전부 놀이라며 치부할 수는 없었다.
다음 변화로서, 워마드는 탈코르셋 운동을 홍보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기존에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들을 대변했지만,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을 '명예한남', '흉내자지' 등으로 마구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집단에서 제외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는 복잡한 규칙들을 전부 지킬 수 있는 극소수의 여성들만을 표방하게 되었으며, 소위 '진짜 페미니스트', 즉 페미니즘에서의 성골과 진골을 나누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워마드는 "여성들 간에 계급을 나누며 분리주의적으로 나아가고 있다"(p.116). 투블럭 머리에 쌩얼, 바지 차림의 20대 고학력 ( 유학생이거나 ' 탈조선' 했다면 금상첨화) 비연애/ 비혼/비출산 여성이 아니고서는 감히 자신을 '여성' 이라는 존엄한(?) 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런 소수의 '여성' 들은 나머지 '되다 만 흉자' 들에게 훈수를 두고 쏘아붙이고 마구 불합격 딱지를 붙여 댔다. 이건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세상 어느 누가 놀이터에 와서 대뜸 "그렇게 노는 거 아니야, 그건 틀렸어, 이렇게 놀아, 저렇게 놀아" 하는 식으로 마구 몰아가겠는가? 그것을 진짜로 놀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워마드도 마찬가지였다. 워마드의 놀이는 곧 그 자발성과 능동성을 잃었다. 이용자들의 놀이는 명령과 평가와 규제의 대상이 되었고, 일방적이고 획일적이며 경직된 사고로 재단되었다.
결과적으로, 워마드의 놀이는 끝났거나, 거의 끝나 가고 있다는 조짐이 분명해 보인다. 저자가 활용하는 하위징아의 이론적 조망에 따르면, 워마드의 변화는 더 이상 기존의 미러링 활동의 문제점을 회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록 그 변화의 과정에서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탈코르셋 이슈를 다루는 워마드의 태도는 놀이는 고사하고 뼈아픈 퇴행이었다. 워마드의 대변 대상은 "탈코르셋을 지키는 '자격 있는' 여성"(p.122)으로 한정되어 갔으며, 이를 위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식의 분리주의를 따르고, 그 분리의 기준은 탈코르셋이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탈코르셋은 다양한 규제를 가한다는 점에서 넷페미 운동의 양상과 정반대되는 것이며, 탈중심적, 자율적, 탈권위적인 기존의 넷페미 활동과도 전면 충돌하는 여성검열주의이고, 여성성에 대한 획일적 강요이며, 결국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억압"(p.123)이다. 워마드는 탈코르셋을 통해 여성성에 대한 사유를 독점했으며, 놀이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완벽한 여성이 흉자들을 계도하고 규제하고 평가하는' 똥군기의 현장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워마드는 그간 놀이를 빙자하여 치워 두었던 윤리적 후폭풍을 이자까지 쳐서 고스란히 돌려받을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워마드는 자기 소임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페미니즘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워마드가 다시 한 번 스스로 변화한다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다고 여지를 살짝 남겨둔다. 하지만 워마드는 분명 어떤 유산을 하나 남겨두었다. 그것은 바로 "놀이 공동체의 결속감"(p.128)이다. 하위징아의 이론은 마지막으로, 놀이가 종료된 이후에도 그 놀이에 참여했던 개인들은 놀이의 기억을 계속 유지한다고 예측한다. 그래서 다시 유사한 놀이가 어딘가에서 벌어지면 긴밀하고 끈끈한 분위기를 쉽게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워마드가 아예 사라진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도, 이후의 페미니즘은 워마드에게 좋든 싫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여성 개개인이 이미 마음 속으로 "우리 그때 워마드에서 미러링하면서 놀던 거 재밌었지~" 라는 기억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워마드 경험을 공유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차후 비슷한 이슈가 터지면 쉽게 다시 모이고 단합하고 또 다른 놀이를 재개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제2, 제3의 워마드가 계속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건대, 하위징아의 이론적 조망을 활용한 본서는 기존의 미러링 분석과는 사뭇 다른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현실에서의 미러링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상황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제공한다. 이 분석틀에 따르면, 아무리 어떤 놀이가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진행된다 해도, 놀이터 밖에서까지 억지로 놀이행위를 지속하려는 시도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 행동이 된다. 워마드에게 있어서 그들의 놀이터는 워마드 사이트라는 하나의 사이버 공간이었다. 설령 트위터나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곳도 여전히 온라인 환경이었다. 워마드의 문제점은 놀이터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놀이가 과격해지면 쉽게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워마드는 '현실' 이라는 놀이터 바깥까지 억지로 그 놀이의 규칙을 이어가려 했으며, 실제로 워마드가 혜화동 시위 이후 오프라인에서의 현실정치를 지향했다는 동향은 《 근본없는 페미니즘》 과 같은 다른 도서들에서도 공히 감지된다. [5]
하지만 놀이터 밖에서 놀이의 규칙은 설득력이 없다. 현실에서 거하게 사고를 친 후 '남성들이 밥 먹듯 여성혐오를 하는 것에 대한 미러링이었다' 고 변명하는 것은 워마드 바깥의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다. 아무리 소꿉놀이가 재미있었어도, 놀이가 끝난 후의 저녁식사까지 모래밥을 먹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이지 않겠는가? 하위징아의 이론은 현실에서 행동으로 사고를 치는 미러링에 대해 결코 합리화하지 않는다.
3.3.1. 《 혐오의 미러링》 과의 비교
미러링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본서와 비교할 만한 도서로 박가분 시사평론가의 《 혐오의 미러링》 을 들 수 있다. 두 도서는 서로 대비해 볼 때 의견이 모이는 지점도 있고 극적으로 달라지는 지점도 존재한다. 이를 표의 형태로 정리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모바일 환경에서는 열람이 어려울 수 있다.)
《혐오의 미러링》 (박가분 저) |
《혐오 미러링》 (김선희 저) |
Q. 분석 대상은 무엇인가? | |
메갈리아/워마드 | 워마드 |
Q. 인식론적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 |
아키텍처 이론 by 로런스 퍼시그 |
놀이 이론 by 요한 하위징아 |
Q. 그 분석 대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 |
남성혐오 사이트 | 영페미들의 주체성 실천 장소 |
Q. 그 분석 대상을 페미니즘으로 볼 수 있는가? | |
NO. 본인들부터 그런 대의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 | YES. 성차별의 존재를 인식하며, 이를 없애려 하기 때문 |
Q. 그 분석 대상은 왜 미러링을 시도하는가? | |
그냥 재미삼아서, 대의명분 없이 | 페미니즘의 전략적 수단으로서 |
Q. 미러링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 |
유희성, 놀이, 가벼움 | |
Q. 미러링의 사회정치적 결과는? | |
과격화되는 적색테러임에도 옹호 받음 | 발화자 여성 간의 정치적 연대감을 형성 |
Q. 미러링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 |
부정적임. 비윤리적이며 정당화될 수도 없음 | |
Q. 미러링의 현실적 미래는? | |
지금보다 더 크고 예상할 수 없는 사회적 파국 | 놀이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니, 그때 윤리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 |
Q.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
혐오의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인터넷 환경의 '아키텍처' 를 개조해야 함 | 그들 내부로부터 새로운 변화의 모색이 나타나야 함 |
3.4. 심층설문 및 인터뷰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본서는 마지막에 부록으로 워마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심층설문 및 인터뷰를 수록해 두고 있다. 사실 이 부록 자체가 갖는 의의도 매우 크다. 저자가 응답자 정보를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본서에서 가용한 정보를 최대한 소개하자면, 응답자 수는 N= 30, 연령은 20세 이상 39세 미만, 대략 66% 정도가 대학생 이상의 학력이고 나머지 33%는 직장인, 대략 75% 정도가 여성이고 나머지 25%는 남성이라고 한다. 응답자들 중에는 실제로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본서는 워마드에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는데,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에 대해 모든 응답자들이 응답한 내용을 질문 별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그러나 본서에서 인용된 응답 내용들을 최대한 모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의견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의견 우측의 숫자는 동일한 의견을 제기한 사람들이 다수일 때 그 사람들의 수이다. 옛말에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는 말도 있는 만큼, 세 사람 이상으로부터 얻어진 동일한 의견에 대해서는 빨간색으로 표기하였다.
Q. 워마드를 지지하는가, 혹은 비판하는가? |
- 지지의견 (8)
- 소강되었던 넷페미 활동의 최전선이자 새로운 피난처이자 보루이고, 새로운 페미니즘적 아이디어의 산실임 (2)
- 단지 이들은 생소하고 과감하며 충격적일 뿐, 온건한 메시지가 남성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건 착각임
- 여성혐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고 포스트페미니즘을 무력화시킴 (3)
- 여성들의 정치적 연대가 가능하게 하였음
- 페미니즘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임
- 다른 반사회적인 남초 사이트도 많은데 워마드만 유독 악한 것처럼 다루어지는 것은 성차별적임
- 비판의견 (7)
- 상식에 반하는, 범죄에 가까운 자극성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접점을 상실했음 (3)
- 어떤 대의나 의도를 갖고 활동하는지 불명확함
- 게이, MTF, 난민, 심지어는 탈코르셋에 반대하는 여성 등, 또 다른 약자들을 공포스러운 존재처럼 묘사하며 혐오함 (3)
- 자신의 악행을 자신이 피해자이고 약자라는 논리로 합리화함
- 진정한 여성을 규정하는 가혹한 규범을 강요함
- 여성 이외의 계급이론을 말하면 '스까' 로 규정됨
- 2010년대 이전의 한국 여성운동사를 일축하고 무시함
- 이견이 생겼을 때 대화보다는 관철을 지향함
- 자세히는 모르지만, 미디어에서 소개한 미러링들에서 불쾌감을 경험함
- 유보의견 (4)
- 지지하지 않으나 비난하지도 않음 :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솔직히 말하면 감정적인 해소감과 통쾌함을 느꼈음
- 지지하는 면이 있고 반대하는 면이 있음 : 워마드 운영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 수사에는 워마드 편을 들고 싶지만, 극우 성향 및 약자혐오에는 비판하고자 함
- 지지하지 않으나 존재는 긍정함 : 워마드는 국내 페미니즘 운동의 다양성과 활성화에 기여했음
- 평가 보류 : 적어도 이들은 그들이 믿는 가치의 관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고 있으며, 왜 그들이 나타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가치를 지켜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함
지지의견은 워마드의 정치적 효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비판의견은 이들이 비윤리적이고 약자혐오를 재생산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제3의 의견 혹은 복합적인 의견들이 보인다는 것은, 젊은 지식인 층에서 조차 워마드에 대해 양가감정을 드러낸다는 걸 보여준다. 위에서 보면 반대의견이 지지의견보다 유독 다양한데, 각각의 반대측 응답자가 폭넓게 응답했던 영향이 크다. 또한 지지의견은 다수로부터 몇 종류로 수렴되는 반면, 반대의견은 소수로부터 다양하게 나누어지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Q. 온라인에서의 운동이 혜화역 시위로 이어지게 된 계기나 동력은? |
- 온라인에서 여성으로서의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의식화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2)
- 미러링 발화행위를 통해서 남성권력에 대항하는 경험을 하고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 홍대 몰카 사건을 수사당국이 편파적으로 수사하는 것 같아 화가 나서 (5)
- 성범죄 문제에 동조하는 공권력,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2)
- 특정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여성들이 억압당해 왔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2)
- 남성중심적 사회에게 여성들의 정치적 위력을 드러내고 보여주고자 해서
이 질문에 대해서는 더 특기할 것이 없을 만큼 명백하게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의 편파수사 논란이 자주 언급되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혜화역 시위는 기본적으로는 여성들 사이에서 여성으로서의 동일한 경험이 공유되었다는 배경 속에서, 결정적으로 홍대 몰카 사건이 트리거로 작용하면서 나타났다고 설명될 수 있다.
Q. 안티페미니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전략은? |
- 남성 안티페미니스트를 설득하기보다는 여성 안티페미니스트를 설득하는 것이 우선임
- 대중에게 공감 받고 이해될 수 있도록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모색해야 함 (4)
- 난민 문제에서와 같이 자기 안의 혐오부터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함
- 반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나서야 함 (3)
- 남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온건한 노선을 활용해야 함
- 남성들의 페미니즘적 참여가 더 확대되어야 함 (2)
- 권력 있는 고위직에 여성들이 최대한으로 진출해야 함
-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부터 뿌리뽑아야 함
- 페미니즘에 대해서 조기교육을 더 확대해야 함
- 외부의 반대에 대항하기보다는 내부에 있는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돕는 게 먼저임
- 모든 전략을 긍정하고 모든 방법론을 허용해야 함
응답 사례 15건 중 6건에서 응답의 서두부터 "반대가 있는 게 당연하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는 인식을 전제하며 출발했다. 이들 응답들은 대중적 공감을 얻거나 반대여론을 불식시키는 것을 포기하고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관점을 공유했다. 이렇게 응답한 응답자들은 어차피 자신들이 어떻게 하든 안티페미니즘은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으로 인해 설득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런 관점이 나타나지 않은 응답들에서는 남성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거나 대중의 상식과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즉 이들은 남성들과 대화하려는 자신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안티페미니즘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이번 질문에서는 매파에서부터 비둘기파까지 응답의 온도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일부 응답자들은 그야말로 화난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릴 것처럼 강경하게 대답한 반면, 일부 응답자들은 그렇게까지 기가 죽어도 괜찮겠냐는 걱정이 떠오를 정도로 조심스러운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기한 대로, 전반적으로 매파의 경우 '마이웨이' 로 수렴되고, 비둘기파의 경우 '대화를 합시다' 로 수렴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Q.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시급한 대책이나 장기적인 대책은? |
- 단기적 대책
- 사회 전체적으로 재사회화 교육이 필요함
- 법제도적인 개편과 차별방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함 (2)
- 사법분야의 편파수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함
- 채용 차별에 대한 적발 및 처벌을 강화해야 함
- 출산지도 등 몰상식한 국가정책을 철회해야 함
- 독박육아 및 싱글맘 문제를 지원해야 함
- 아프리카TV나 유튜브에 존재하는 여성혐오 콘텐츠들을 지금보다 더 검열해야 함
- 장기적 대책
- 법제도적인 개편과 차별방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함
- 사회 전체적으로 재사회화 교육이 필요함 (4)
- 초/중/고 교과목에 여성학이라는 과목을 편성해야 함
- 성매매를 지금보다 더 단속해야 함
- 탈코르셋 운동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어야 함
- 페미니즘의 여성세대 간 의견교환 및 제휴가 이루어져야 함
- 기타의견
- 가장 효과적인 대책 : 권력 있는 고위직에 여성들이 최대한으로 진출해야 함
- 가장 효과적인 대책 : 법제도적인 개편과 차별방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함
- 우선적으로 떠오른 대책 : 권력 있는 고위직에 남녀동수(parity)가 달성되어야 함
- 가장 중요한 대책 : 사회 전체적으로 재사회화 교육이 필요함 (2)
- 더 중요한 대책 : 팩트나 데이터보다는 서사와 스토리텔링 위주로 접근해야 함
많은 응답자들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서는 정부와 수사권력, 입법권력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 반면,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즉 여성들을 법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고, 최소한 어깃장을 놓지 말아야 할 정부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페미니즘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에 대해서는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의견이 없었다. 물론 교육은 간접적으로 시민사회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이조차도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보다는 '얼마나' 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는 국내의 페미니즘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방향성이 매우 명확하다는 근거가 된다. 즉, 페미니즘은 정치 압력 단체 내지는 페미니즘 정당의 형태로서 권력을 쟁취하고 싶어하는 징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저자 본인이 8장 말미에서 강조했던 페미니즘의 미래상과도 상통한다.
이처럼 공권력과 엄중한 법적 처벌에 호소하는 경향을 들어서,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는 자신의 저서 《 잘못된 길》 에서 비판하기를, 여성들이 스스로를 주체적인 어른으로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가부장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연약하고 무력한 어린아이의 지위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페미니즘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우리나라가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에 얼마나 시민사회의 힘이 부족한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권력이 얼마나 빈번하게 요청되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4. 학계의 논의
워마드를 직접 겨냥한 학술서로서는 본서가 최초이긴 하지만, 기존에 여성학계에서 워마드에 대한 논의가 아예 안 이루어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기존 학계에서도 본서와 유사한 방향으로 워마드를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예컨대 김리나(2017)의 경우[6] 메갈-워마드 세력이 익명성에 기대어 활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커뮤니티에 소속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을 딱히 형성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한 적이 있다. 또한 김보명(2018)의 문헌에서는[7] 미러링이 원본을 전복하기보다는 원본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보인다고 비판했으며, 워마드가 놀이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퀴어 및 성소수자 진영에 대해 배척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 역시 본서의 독자라면 낯설지 않은 주장이다. 단, 이 문헌에 대해서는 이후 정승화(2018)가[8] 자신의 각주 8번에서 해당 문헌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한 교차성은 언급했지만 성소수자 집단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를 논의하기 위한 교차성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간접적으로 워마드를 변호하기도 했다. 또한 이현재(2016)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9] 메갈-워마드 류의 넷페미니즘을 "비체(abject)들의 소란스러운 연대" 라고 묘사하기도 하였다.본서 출간 이후, 조주현(2019)은[10] 미러링이 메갈-워마드 계통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는 단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갖고, 미러링의 가치는 워마드 본인들 외에도 그것의 대상이 되는 남성들의 평가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있다면서 저자와는 다소 입장을 달리했다. 이 문헌에서는 그 대신, 워마드가 교차성을 지지하는 소위 '기득권 페미니스트', 즉 앞 세대 여성 운동가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여성들은 더 이상 권력에 이용당하지 않겠다" 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철저한 익명성 유지 정책을 만들고, 명확한 리더를 제거했다는 것. 이는 사회학의 이론적 조망에 비추어 보면 전형적인 '도전자' 집단에 가까운 양상이며, 워마드가 성평등과 여성우월에 관련하여 규범적 판단과 의미를 유연하게 변화시킨다면 살아남겠지만, 자신들이 믿는 단순한 해법만 일관되게 관철시킨다면 그저 역사적 의의만을 갖는 한때의 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가 본서에서 미러링의 한계점으로 언급한 네 가지는 이미 상기했던 2018년 4월 21일의 한국여성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미리 발표된 것이며, 이때의 발표자료집 논평에 따르면[11] 이혜정(2018)은 김선희(2018)의 발표에 대해 몇 가지 반론들을 제시하고 있다.
- 첫째, 남성혐오와 여성혐오의 비대칭성에 대해서는, 남녀관계가 동등했다면 민주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을 것이며, 동등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러링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미러링의 발화효과는 그나마 동등하지 못할 경우에 가장 극대화된다고 하였다.
- 둘째, 혐오는 위험하기 때문에 분노가 더 나은 정동이라는 것에는, 혐오는 어디까지나 전략적 도구이지 궁극적 목적이 아니기에 괜찮으며, 오히려 분노로 해결되지 않았기에 혐오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반박하였다.
- 셋째, 미러링의 근본적 비윤리성에 대해서는, "살인을 살인으로 갚지 말아야 하듯, 혐오를 혐오로 갚으면 안 된다" 는 저자의 카뮈 인용이 살인과 혐오를 잘못 대비하는 것이라면서, "오히려 여성주의를 분열시키고 여성주의의 목적을 희석시키는 일"(p.126)이라고까지 평가 절하했다. 더불어, 억압 받던 여성들로서는 부도덕한 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삶의 맥락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건 "또 하나의 폭력 행위"(p.127)라고도 하였다.
본서가 이 반론에 직접 응답한 것은 아니지만, 본서가 활용한 하위징아의 놀이 이론은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이 될 수 있다. (위 논의를 잘 따라왔다면, 워마드의 놀이가 '끝나는 순간' 그들이 스스로 면책했던 도덕성의 책임을 직시하게 될 것임을 이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논평은 본서를 완독한 독자라면 왜 이런 반론을 하는 건가 싶은 부분이 있는데, 김선희(2018)의 당초 발표가 논리의 초기 단계여서 그럴 수도 있고, 해당 논평을 접하고 자신의 논리를 본서에서 이론으로 보완해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여성학계 외부의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 본다면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도덕윤리가 위반되는 문제에서조차 옹호 논리가 필요하고, 또 그것이 실제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착잡한 기분이 드는 지점. 즉 약자의 부도덕은 부도덕으로 비난 받을 수 없다는 논리가 학술현장에서 소통되고 심지어 활자화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살펴보자. 먼저 여성철학 전문 학술지 《한국여성철학》 에 실린 김은주(2019)의 서평을 살펴볼 수 있다.[12] 이 서평은 우선 저자가 미러링의 거친 언어 뒤에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칭찬한 뒤, 본서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하고는, 그 이상의 학술적 논의는 불행히도 전혀 하지 않는다! 이 서평은 안타깝지만 이화여대 학부생들이 레포트 내지는 독후감을 썼을 때 나올 법한 글과 큰 질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자기 대학교 교수진으로부터 나온 신간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원로 철학자인 정대현은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먼저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추가적으로 혐오 미러링 개념의 미투 문맥에서의 지속성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13]
5.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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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엘리트 페미니즘이 아닌가?
저자의 정보원은 대부분 이화여대에서의 철학상담 강의나 토론수업에서의 경험들로 한정되며, 캠퍼스 밖으로 나가는 자료는 흔치 않다. 한 예로, 저자가 각주 7번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철학 수업에서 자유토론 주제로 매우 빈번히 선정되는 것이 "나는 어떻게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라고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화여대나 대학원쯤 되는 곳이니까 이런 발제가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정도의 성찰적인 발제가 가능할 만큼의 학업성취를 이루어 낸 '운 좋은 여학생들' 의 사고방식을, 과연 모든 영페미 인구집단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소위 영페미, 넷페미라고 불리는 다른 여성들도 이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삶에 여유가 있는 것일까?
고학력자라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인구집단이며, 그것이 대학원생일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다. 괜히 WEIRD 문제가 나온 게 아니다. 본서에서의 저자의 분석을 일반화할 수 있으려면, 저학력자가 "파란색, 빨간색" 이라고 말할 때, 고학력자는 "프러시안 블루, 버밀리온 레드" 라고 말하는 상황이 성립해야 한다. 그러니까, 고졸 저소득층 여성들도 똑같이 "한남들이 내 인생에 참견하는 게 싫어서" 넷페미 활동을 한다고 말한다면, 본서의 분석이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저학력자가 엉뚱하게 "노란색, 초록색" 이라고 말할 가능성이다. 그러니까, 고졸 저소득층 여성들은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내연녀와 야반도주했다, 그때 이후로 남자들은 전부 죽이고 싶었다" 거나, 저 ' 원사운드' 명대사처럼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거지!" 같은 예상치 못한 논리로 자신의 영페미 활동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이건 어찌봐도 지식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집단 자체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는 영페미들은 자신의 삶의 주체성을 추구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실천한다던 저자의 분석이 힘을 잃게 된다. 잘해봐야 상아탑 내의 일부 '운 좋았던' 고학력 페미니스트 여성들에 대한 분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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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워마드는 공생관계인가
본서의 부록에 수록된 설문조사 및 인터뷰를 살펴보면, 저자의 제자지인 그룹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미러링으로부터 성체훼손 사건에 이르는 다양한 워마드 이슈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드러냈다", "수많은 여성들을 의식화했다", "그들 덕분에 순식간에 목표를 달성했다" 는 식으로 의견이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것은 워마드에 대한 외부자적 관점(etic perspective)으로 보이며, 마치 워마드를 자기들 운동의 유용한 수단처럼 여기는 도구적 관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삐딱하게 보자면, 이들 엘리트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는 않으면서 워마드를 통해 코를 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워마드에게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어쨌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니까 괜찮다는 식의 논리는, 마치 이들이 워마드를 자기 휘하의 용역깡패처럼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엘리트 페미니즘이 어째서 워마드를 배격하지 못하는지도 이 관점에서 보면 명확해진다. 이들은 워마드가 잘 되어야 자기들이 잘 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때까지 워마드의 강력한 동원(mobilization) 능력을 '이용' 하고 싶어한다. 엘리트 페미니즘은 워마드와 공생관계, 혹은 워마드에게 ' 을' 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차마 내치지 못한다. 워마드조차 없으면 이들에게는 당장 페미니즘을 이슈화할 채널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이들이 워마드를 뒤늦게 배격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그 시점은 워마드의 이용가치가 사라졌을 때일 것이다. 결국 이는 대중으로부터 '꼬리자르기', '손절' 같은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워마드를 자기네 텐트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한국 페미니즘 진영에 족쇄가 되어, 향후 어떤 온건하고 발전적인 방안을 내놓더라도 워마드만큼 반사회적인 언동처럼 대중에게 각인되는 어려움을 안고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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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마드의 유희와 가벼움의 논리 vs. 일베의 유희와 가벼움의 논리
한국 남성들의 남성성에 대해 논의한 핸드북인 《 그런 남자는 없다》 에서, 김학준(2017)은 일베의 게시물들을 분석해 보았을 때 유희적인 의도로 자신의 반사회적인 언행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문제시한 적이 있다. 약자들을 괴롭히고 멸시하는 글을 쓰면서, 그것을 " 에이, 우리끼리 웃자고 하는 말인데 선비처럼 왜 그러냐" 논리를 들어서, 혐오를 유머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김학준(2017)은 이를 '루저문화' 라고 부르면서, 남성들이 남성성에서 탈락하면서 느끼는 상처가 반영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본서를 보면 이는 꼭 남성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본서에서 워마드가 드러내는 유희성과 일베의 유희성은 그 양상이 정확하게 같기 때문이다.
워마드의 유희적 분위기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생소한 것이 전혀 아니다. 철저한 익명성의 유지 및 친목행위의 금지는 DC인사이드의 양상을 띠고, "도덕규범을 적용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억압이다" 를 외치는 것은 일베저장소와 닮았다. 특히 도덕규범에 대해 일베가 드러내는 조롱, 그리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일베의 전면적인 회의론과 의심은 결과적으로 " 5.18이 성역이냐", " 일제가 그렇게 잘못했냐" 면서 대중과 동떨어진 가치관을 낳았다. 그러면서도 일베는 기존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들을 선비 취급하거나, 선동당한 우매한 대중 취급을 했다. 이는 워마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워마드 또한 "성체 따위가 뭐가 대단하냐", "예수도 자지 달렸으니 패야 한다" 식으로 타인의 신앙심을 조롱했으며, 기존의 보편적 가치를 '남성중심적 가치' 라면서 전면적으로 악마화했다. 그저 용어만 다를 뿐이지, 기존의 도덕관념과 금기를 비웃고 멸시하면서 일말의 죄책감이나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건 무섭도록 동일하다. 괜히 "일베나 워마드나" 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이들 설문 참여자들은 " 일베는 억압자이고 워마드는 피억압자" 논리를 들어서 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사회적 약자들의 표현은 '특별히 더'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베 측에서 인지하는 현실은 일베야말로 약자라는 것이다. 압제자는커녕 도리어 사방에서 우겨싸임을 당하면서도 힘들다고 말도 못 꺼내는 사람들의 최후의 피난처가 일베라는 것이다. [14] 이렇게 보면, " 우리는 약자니까 괜찮아" 논리조차도 양쪽에게서 똑같이 발견되는 자기합리화밖에는 되지 않는다. 또한, 여성들이 과연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는가? 당장 워마드에게 피해를 입은 소수자들과 약자들은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일베의 유희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논리는 워마드의 유희성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문제는 관찰자가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로 사전에 결정했느냐다.
본서의 행간에서는 워마드의 이러한 유희성이 속칭 메갈-워마드 류의 흐름에서만 나타나는, 현대에 갑자기 나타난 독특한 전략인 것처럼 암시되기도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여성운동사에 있어서 사회운동 특유의 비장미와 진지함을 배격하려는 움직임은 결코 생소하지 않았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즈음의 오리지널 '영페미' 들이야말로, 군 가산점 제도 위헌 논란이나 월장 사건 당시에 이미 워마드의 그 유희적인 태도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2030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기성 페미니스트로부터 "자유분방한 N세대", "유쾌한 몸짓", "발랄한 도전", "발칙한 반란" 같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인터넷 환경이 대중적이지 못했고, 워마드가 자기들 이전의 여성운동사 전체에 몰이해적인 태도를 드러내기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렇게 본다면 '진지함과 비장함, 엄숙함을 버릴 것' 이라는 요구사항은 그저 사이버 공간 자체의 특수성 때문일 수 있다. 결국 유희성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워마드에 한정되는 분석조차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덤으로,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라도 무조건 유희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본서에서도 언급하듯이 2018년 이래 워마드는 점점 교조적이고 강압적인 성격으로 변해 갔으며, 혜화동 시위 이후 현실정치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그렇다면 메갈리아는 '초심을 잘 지켰던' 사이트인가? 그조차도 아닐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언급할 만한 문헌이 있는데, 《 그럼에도 페미니즘》 에서 윤보라(2017)는 DC 남자 연예인 갤러리(이하 남연갤)와 메갈리아를 대비하면서 전자를 유희로, 후자를 비장함으로 특징지었다. 남연갤러들은 메갈리아가 단순히 노는 곳 이상으로 비장한 '정치적 구호' 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을 "노잼" 이라고 불렀으며, 메갈리아 창설 당시 그곳으로 넘어가지 않고 남연갤에 그대로 머물렀다. 이는 일베저장소도 마찬가지다. 초창기 일베저장소 유저들이 "일베 노잼 됐다" 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일베가 심각하고 진지한 정치적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데 치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유희성이라는 것은 남초든 여초든 불문하고 원래 사이버 환경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정치적 실천이 개입하는 순간 유희성은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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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병진 (2018). 연대 거부를 통한 '여성'경계의 획정.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서울.
[2]
김선희 (2018). 혐오담론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전략의 재검토: 워마드의 혐오 전략을 중심으로. 2018년 한국여성철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집.
[3]
김선희 (1997). 성별과 인식적 협상. 한국여성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52-53.
[4]
윤지영 (2015).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한국여성철학, 24, 5-79.
[5]
사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영향력을 키운 우익집단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한 시도는 상당히 많다. 일베의 폭식시위, 거리로 나온 넷우익, 대안우파의 샬러츠빌 폭동까지.
[6]
김리나 (2017). 메갈리안들의 여성 범주 기획과 연대. 한국여성학, 33(3), 109-140.
[7]
김보명 (2018). 혐오의 정동경제학과 페미니스트 저항: 〈일간베스트〉, 〈메갈리아〉, 그리고 〈워마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34(1), 1-31.
[8]
정승화 (2018). 급진 페미니즘을 퀴어혐오로부터 구해내기. 문화과학, 95, 50-73.
[9]
이현재 (2016).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도서출판 들녘, 파주.
[10]
조주현 (2019). 논쟁 중인 한국의 여성운동: 전략적 행동장이론과 실천이론의 관점에서. 경제와사회, 123, 110-154.
[11]
이혜정 (2018). [논평] 혐오담론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전략의 재검토. 한국여성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125-127.
[12]
김은주 (2019). [서평] 혐오 미러링-여성주의 전략으로 가능한가? 영영 페미니스트에게 보내는 올드 페미니스트의 애정 어린 서안. 한국여성철학, 31, 169-172.
[13]
정대현(2019), 서평 - 김선희, 혐오 미러링, 철학연구, 제125집(2019 여름), 1-6, 철학연구회
[14]
구체적으로 일베의 흔한 레토닉은 좌편향된 인터넷 환경과 우파소리만 꺼내도 왕따당하는 20대의 현실에서 만들어진게 일베고, 여기에 대하여 인터넷 세계의 반발은 기득권 좌파세력의 백래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