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활동 중인 Our Lady Peace 멤버들의 모습
위쪽 사진 : 왼쪽부터 덩컨 쿠츠, 스티브 머주어, 레인 마이다, 제러미 태거트
아래 사진 : 왼쪽부터 덩컨, 제러미, 스티브, 레인
Our Lady Peace,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Our Lady of Peace' 로부터 유래된 밴드명이며 줄여서 OLP라고 부르기도 한다. [1]
캐나다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1992년 결성되어 거의 20년에 가까이 활동하는 베테랑 중견 밴드이다. 캐나다 내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북미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컬트적인 인기를 보유하고 있다.
초기 밴드 결성은 1992년 마이크 터너(Mike Turner)가 토론토의 주간 잡지 'Now Magazine' 에 뮤지션을 구하는 광고를 싣고 토론토 대학교 범죄학과 학부생인 마이클 마이다(Michael Maida, 이후 'Raine Maida' 로 개명하여 활동)가 그에 응하며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이다의 친구인 짐 뉴얼(Jim Newell)이 드러머로, 터너의 친구 폴 마틴(Paul Martin)이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여 비로소 밴드로서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폴 마틴은 곧 밴드를 탈퇴하고, 그 자리를 크리스 어크릿(Chris Eacrett)이 대신한다.
그 후 음악 세미나에서 아니어드 스튜디오(Arnyard Studios)의 경영주로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아널드 래니(Arnold Lanni)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고, 터너의 친구인 샘 시칠리아노(Sam Siciliano)의 도움으로 그들의 첫 뮤직비디오인 'Out of Here' 를 제작한다. 그 후 그들은 1993년 4월 소니 뮤직과 접촉하며 본격적으로 대중 음악 활동을 시작하려 하는데, 그 시기에 짐 뉴얼이 탈퇴하고 새로운 드러머인 제러미 태거트(Jeremy Taggart)가 합류한다.
그리하여 1994년 소니 뮤직과의 계약이 성사되어 Our Lady Peace 의 첫 메이저 데뷔 앨범인 『Naveed』 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캐나다에서 상당한 히트에 성공하였고 북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앨범 수록곡 "Starseed" 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그리하여 이 곡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유명 SF 영화 아마게돈(Armageddon)의 OST로 수록되기도 하였다.
1997년 베이시스트인 크리스 어크릿이 음악색의 차이를 이유로 밴드를 탈퇴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베이시스트 덩컨 쿠츠(Duncan Coutts)가 대신한다. 그리고 그 해, Our Lady Peace 는 그들을 일약 캐나다 얼터너티브계의 불멸의 존재로 만든 최고의 명반인 2집 앨범 『Clumsy』 를 발표한다. 'Superman's Dead' 와 'Clumsy' 는 지금까지도 OLP 팬들이 밴드 역사상 최고의 곡으로 꼽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뜨거운 사랑을 받은 곡이다.
그 후 그들은 1999년 3집 앨범 『Happiness... Is Not a Fish That You Can Catch』 을 발표하고 곧이어 2000년에는 4집 앨범 『Spiritual Machines』 를 발표하였다. 또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을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순회 공연을 할 정도로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높은 인기를 누리는 그들이었지만, 오히려 그 시기가 밴드 내부적으로는 가장 큰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밴드 멤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밴드 결성 이후 단기간에 너무 높은 인기와 광범위한 활동을 경험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6집 앨범 발매 당시 레인 마이다의 고백에 의하면, 4집 앨범 투어를 마친 이후 밴드는 해체 위기에까지 임박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2001년 12월, 밴드는 원년 결성 멤버인 마이크 터너를 떠나보내며 커다란 변화의 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마이크 터너가 밴드를 탈퇴하게 된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레인 마이다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는 다른 스타일의 기타리스트가 필요했고, 그래서 마이크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마이크 터너의 탈퇴에는 크리스 어크릿의 경우처럼 멤버들 사이의 음악 취향적인 갈등이 작용했지만, 그 갈등의 정도는 더욱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2]
다행히 밴드는 마이크 터너를 떠나 보낸 후 레인 마이다의 친구인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 기타리스트 스티브 머주어(Steve Mazur)를 영입하여 활동을 계속한다. 그들은 2002년 5집 앨범 『Gravity』 를 준비하면서부터 아널드 래니가 아닌 밥 록(Bob Rock)을 프로듀서로 영입하여 음반을 제작하였는데, 그 때부터 밴드의 음악색이 상당히 바뀌어 예전에는 매우 유니크하고 컬트적인 음색을 들려주었다면 이후로는 비교적 소프트하고 대중적인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팬들은 5집 이후의 앨범에 거부감과 반발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더 오랜 세월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3]
2003년에는 Live 앨범을 발매하였고, 2005년에는 6집 앨범 『Healthy in Paranoid Times』 을, 2006년에는 10주년 기념 앨범 『A Decade』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7집 앨범 『Burn Burn』[4]과 베스트 컴플리에이션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2012년 초 8집 앨범인 『Curve』를 발표했다. 잦은 멤버 교체와 내부 갈등으로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활동을 지속하는 것면 확실히 캐나다의 국민 밴드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리더 보컬은 레인 마이다(Raine Maida)로 개명한[5] [6] 마이클 마이다가 맡고 있으며, 들어온 순서대로 드러머 제러미 태거트, 베이시스트 덩컨 쿠츠, 기타리스트 스티브 머주어가 고정 멤버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다만 레인 마이다는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으며 그의 아내 샨탈 크레비아주크(Chantal Kreviazuk)와 함께 자선 사업 모금을 위한 합동 앨범에 참여하거나 다른 뮤지션의 작사· 작곡을 맡는 등 음악적으로 더 광범위한 개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참고로 레인과 샨탈 두 부부는 2004년에 에이브릴 라빈의 2집 앨범 『Under My Skin』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7]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프로레슬링 덕분에 널리 알려진 밴드인데, 바로 이 Our Lady Peace 가 과거 유명 WWE 레슬러였던 제프 하디의 데자이어 영상곡인 'Not Enough' 와 역시 인기 레슬러였던 크리스 벤와의 등장 테마곡 'Whatever' 를 작곡한 밴드이기 때문이다. 그 곡들은 프로레슬링 관련 곡들 중에서도 상당한 명곡에 드는 것들이었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귀를 집중시키고 OLP의 존재를 알게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OLP 팬들은 거의 8~90% 이상이 그 곡들 때문에 OLP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
실제로 리더 보컬 레인 마이다와 크리스 벤와는 테마곡 계약을 위해 서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 때 서로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리하여 레인 마이다는 밴드의 라이브 공연 당시 같은 캐나다인으로서 미국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벤와를 응원하며 그의 테마곡 'Whatever' 를 공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벤와는 WWE에서 활동하던 중 2007년 불미스러운 자살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 사건이 일어나자 레인 마이다는 자신의 마이스페이스에 절제된[9] 추모의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1]
레인 마이다는
미국의 시인 마크 밴도런(Mark Van Doren)이 쓴 시의 제목을 차용하여 밴드명을 지었다고 한다.
[2]
이후 마이크 터너는 'Crash Karma' 라는 다른
캐나다
록밴드의 멤버로 참여한다.
[3]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팬들이 OLP 최악의 곡으로 뽑는 'Somewhere out there'가 2002년 미국 빌보드 차트 모던락 부분 7위까지 오르는 등 대외적·대중적인 면으로는 가장
성공한 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Somewhere out there' 를 비롯하여 'Not Enough', 'Innocent' 등 기존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5집 앨범의 곡들 때문에 OLP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다.
[4]
레인 마이다 자신이 직접 프로듀서로 나섰다.
[5]
마이클 마이다가 레인으로
개명한 것은
밴드가 첫 메이저 데뷔 앨범 『Naveed』 를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같은 밴드 멤버였던 마이크 터너가 비슷한
이름(Michael과 Mike)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마이크 터너가 탈퇴한 지금도 마이클 마이다는 레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6]
그러나 원래 마이클 마이다의 풀네임은 마이클 앤서니 마이다 (Michael Anthony Maida) 로서 굳이 다른 이름을 쓴다면 중간 이름인
앤서니를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은 어릴 적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Our Lady Peace의 노래 중 '4AM' 이라는 곡에서도 다루고 있다.
[7]
하지만 여기서 웃기는 일화가 있는데,
에이브릴 라빈의 3집 앨범에 샨탈이 예전에 에이브릴 라빈한테 이메일로 보냈었던 자신의 데모곡과 제목이 같은 곡(Contagious)이 수록되자, 이를 오해한 샨탈은 인터뷰에서 에이브릴 라빈을 공격하며, '라빈 본인은 실제로는 작곡/작사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라는 발언을 했다. 그 이후로 라빈은 샨탈에게 큰 불쾌감을 드러내며 결별 선언을 하고 만다. 샨탈이 에이브릴 라빈에게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라빈과 샨탈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8]
'Not Enough' 는 현재
대한민국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OLP의 곡이다. TJ노래방 기기로만 가능.
[9]
이미 벤와가 가족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