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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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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

1. 개요2. 활동 특징
2.1. 음악 활동2.2. 배우 활동
2.2.1. 전반적인 역할들
2.3. 작가 활동2.4. 방송 활동 및 진행
3. 캐릭터
3.1. 인상3.2. 성격3.3. 취향
3.3.1. 성공한 덕후3.3.2. 호러물 애호가
4.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5.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관련 일화

[clearfix]

1. 개요

Q. 호시노 겐에게 노래란? 연기란? 글쓰기란?
A. 목숨을 걸고 하는 즐거운 놀이라는 느낌입니다.

Q. 어떤 인생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A. 인생을 재미있게 살았던 사람으로 봐준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2020) #
호시노 겐의 여러 활동 속 특징을 서술한 문서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담문서와 중복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2. 활동 특징

2.1. 음악 활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특징/음악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 배우 활동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
(호시노 겐은) 공식적으로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다른 사람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자인 것은 음악가인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연주가였던 것은 그의 연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상호작용으로서 각각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 (중략)

' 죄의 목소리' 당시 같이 합을 맞추었던 오구리 슌은 기본적으로 '누르는' 연기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밸런스 볼'처럼 유연성으로 작용하는, 호시노 겐적 표현의 배경성에 시너지를 일으킨다. (중략) 호시노 겐이 가능한 '배경'으로서의 연기는,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중략)

그의 연기에는, 보란 듯이 '연출'이 전무하다. 스타일은 바뀌지만, 본질 자체는 일상의 인접한 발화에 의해 뒷받침된다. (후략)

}}}||
같은 세대의 전업 배우들에 비하면 참여 작품은 조금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꿀릴 것 없는 대표작들과 코믹부터 시리어스까지 소화하는 연기 스펙트럼과 팬을 가지고 있어, '배우 호시노 겐'을 먼저 알게 되거나, 혹은 '음악가 호시노 겐'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노기 아키코는 그가 작가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언어 능력이 높아 각본에 대한 독해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퇴고 중에 이 대사를 넣을까 뺄까 고민하고 뺀 대사를 호시노 겐이 애드리브로 유사하게 넣은 적이 있었다고.

2.2.1. 전반적인 역할들

20~30대 때는 비주류적인 작품 속 개성이 넘치는 배역이나, 비주류적인 감성, 또는 배우로서 상당히 부담스럽거나 망가지거나 다사다난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다.

5년동안 SNL스러운 일본의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에 고정크루였을 뿐더러, 그의 예전 필모그래피를 여럿 보다보면, 피칠갑되는건 기본이고, 망신당하거나 알몸이 노출되는 장면은 꽤나 흔하며[1], 여러가지 종류의 격한 키스씬과 베드신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 하는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대역없이 이루어진 걸 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꽤 있는 셈.[2]

그래서인지 그가 점점 네임벨류가 커졌을 때도 본인이 완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돋보인다기보다는,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밑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개성을 일부 챙기는 주조연 역할이 많다. 상대 배우나 주인공의 옆에 존재하는 역할,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순박하거나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할 땐 진중해지는 경향의 역할, 분위기를 띄우는 캐릭터, 염세주의적이거나 절망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 (호시노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된 인물'[3]의 역할, 겉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속에는 열정(이글거림)이 있는 역할, 어둠이나 사연 등을 숨기고 있는 듯 하면서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지켜보거나 남몰래 반응하는 역할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2020년 이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배역들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표현하여 압도하거나 휘몰아치는 눈빛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졌다. #1 #2 또한 소시민 캐릭터부터 도쿠가와 히데타다, 내각관방장관 정치적인 권력직, 그리고 성인까지 여러 캐릭터를 하기도 했다.

한 가지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가 이때까지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은 '호시노 겐'과는 거리가 멀다. 독신을 관철하다가 마음을 조금씩 여는 모태솔로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았었지만, 실제로 먼저 고백하거나 적극적인 연애 경험이 많은 건 물론이고, 대부분 소시민적인 중립성향이나, 질서 선, 질서 중립 등의 성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일이 많았지만 정작 '인간 호시노 겐'을 굳이 클리셰적인 성향으로 구분지어보면 혼돈 중립에서 점차 성장하고 소통을 늘리며 혼돈 선이 된 인물에 가깝다.

여담이지만, 수많은 팬들로부터 '호시노 겐의 악역이나 광기가 있는 사이코패스 빌런 역할을 한 번 보고 싶다'고 꽤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팬들과 소통하는 방송에서 '호시노 겐이 해줬으면 하는 역할은?'이라는 질문에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많았을 정도. # 호시노 겐 본인 또한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2.3. 작가 활동

십 년 정도 꾸준히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바는 문장 전문가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인간에게는 전달 욕구가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장을 구사할 때는 "이걸 전달함으로써 이런사람으로 보이고 싶다."하는 자기 인정 욕구에서 기인한 에고와 나르시시즘의 과잉이 일어나기 쉽고 음악도 그러하지만 표현과 타인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렘에는 늘 불순물이 따릅니다.

그것과 싸우며 한도 끝도 없이 덜어 내는 작업이야 말로 아마추어에게는 특히 어려우며, 프로 중의 프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양한 책을 읽은 지금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 경력과 관계없이 문장력을,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고와 나르시시즘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느긋하게, 꾸준히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불순물을 걸러 낼 수 있는' 작가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생명의 차창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풍경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는가? 그 마음의 움직임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거기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아무리 시시한 일이라도 그것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을 때 마음속이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이제 막 청소한 욕조에 들어가 말끔히 몸을 씻어 낸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졌다. (중략)

앞으로의 과제는 더 간결하면서도 자유롭게 떠들되 상대에게 진심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생명의 차창에서
제행무상. 모든 것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인간과 환경, 저의 생활과 사고방식도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과 과거에 발매한 에세이집 안에 '최신의 나'는 없고, 그 모든 것은 잔상입니다. 전구를 보고 시선을 뗀 후에 보이는 빛의 흔적과 같은 거죠.

그렇다고 해도, 그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나 보편적인 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제 안의 변하지 않는 부분들은 저보다도 호시노 겐의 활동에 쭉 함께 해주시고, 인식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차창에서 2

2.4. 방송 활동 및 진행

음악가이고, 배우이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어서 말하는 것이 본업은 아니지만, 매주 닛폰 방송까지 가서 뭔가 특별한 수다를 떨 수 있느냐고 하면 딱히 아무것도 없고요, 단지 청취자가 보내주는 메일이나 사연에 껄껄 웃고 있을 뿐이에요. 그냥 즐기러 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갤럭시상 라디오 퍼스널리티 상 수상소감 중 (2017) #
호시노 겐: NHK에서 '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을 시작한 것은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소개 방법을 포함해 점점 저와 인연이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술 얘기나 전략 얘기만 하는, 제가 좋아하는 말투가 전혀 없었어요. 그런 상황이 위화감이 있어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을 기획한 것도, "왜 TV에서는 「기술」이나 「팔리는 방법」의 문맥 밖에 음악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가?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스탠다드'가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 그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저에게 있어서의 창작입니다. #
진행에 있어 틀에 박혀있는 진행보다는 꽤나 자유로운 방송 진행을 선호하며, 본인의 이름을 건 방송들 다수 또한 일본의 지상파에서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좋아하거나 기존 방송들과의 차별점을 두고 하는 것들이 많다.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라디오를 약 9년동안 하고 있기도 하며 일본의 X(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자주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3. 캐릭터

3.1. 인상

3.2. 성격

집단따돌림,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부족한 외모와 몸매를 통한 자신감 상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들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잘 이해받지 못하는 것[5], 자신의 옆에 있는 어둠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인정하고 직시하는 그의 모습, 염세주의, 처음부터 스카우트도 되지 않아 여러 곳을 직접 뛰어다녔어야하는 초기 시절, 어릴 때부터 의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업계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 및 경계하고 결국 'NO WORK NO MONEY'가 머릿속에 가득찼던 날들, 생활의 열악함, 증오, 분노,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고독/ 소외/ "하나만 해"/ 스트레스, '호시노 겐은 재능이 없다', '연예계에서 못 버틸 것 같다'라는 계속되는 이야기들, 원한, 인간 혐오,

어느 한 곳에 속하지 못하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고질적인 문제, 조증, 악착같이 일하고 고통과 고뇌가 많았던 이른 나이에 자신이 원하지 않게 걸린 치사율이 높은 지주막하출혈과 두 번의 수술, 그 직후 투병생활 동안의 고통과 정신의 피폐, 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한 특정 대중들의 얼굴 비하, 여전히 자유와 자연스러움을 갈망하지만 스타가 되고 난 후 끊임없이 프레임화되고 비교평가당하는 자신의 모습, 책임감과 부담감, 머릿속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리와 음악과 말, 그의 말을 통한 대중들의 오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악플들과 안티, 허무주의, 억울한 찌라시
}}}그것들을 견뎌내거나 짊어지면서 '힘들고 추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6]의 주체성과 생명력을 북돋고 싶은 것'을 여러가지 창작활동으로 이야기하고 있다.[7] 그리고 그가 겪은 모든 것들은 (여기 위키에는 직접적으로 적긴 했지만) 미세하게 그림자만 풍길 뿐이지 표면적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주변인물들의 도움들 또한 크게 작용했겠지만.
나 또한 그에게 분노 에피소드를 두 배 분량으로 되돌려 줄 만큼 업무상 여러 불합리한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암묵의 규칙이 있다. '심각한 분노 에피소드일수록 웃기고 재미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토해 내는 행위란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을 크게 동요시킬 만큼 부정적인 에너지로 넘쳐 난다. 하지만 가만히 담아 두기만 하면 마음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몸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되도록 즐겁고 재미있게 토해 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생명의 차창에서
그러니까 힘들었던 것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보다는 '어떻게 그 이후 즐겁게 살았을까'라는 것... (중략)

제가 일들을 하는 의미라는 건 어쩌면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 즐겁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즐거움을 갱신하는 것이, 100% 괴롭고 절망적이었던 그날들의 제게 할 수 있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라면서요. (2021) #
  • 본인이 생각하기를 자신은 남들처럼 회사원이 되어서 하는 보통의 직장생활로 가는 미래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고 한다.
    '같은 것을 반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가 보기에는 왠지 (열등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느낌입니다만. 뭐 실제로 그렇게 정의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똑같은 걸 반복할 수가 없어서, 주변에서 '열등 취급'을 했다고나 할까, 안 되는 녀석이구나 하는 인식을 주위에서도 했던 것 같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학교라든지 그런 곳에서 다들 똑같이 못하면 '탈락'이 되니까. (중략) 그러나 문득 "'탈락'하는 게 뭐 어때서,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그, 모두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사회적으로는, 중요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사회라는 것도 일부 중 일부이고, 일과 생활방식에 따라서는, 거기에 억지로 속하지 않는 것이 재미와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소외됨'으로써 깨닫는다고 말할 수가 있겠네요.


    그래서 '소외'라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이미지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부분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

3.3. 취향

  • 2 아니면 ' 222'가 본인만의 행운의 넘버라고 한다. '할머니의 기일이 2월 22일로, 왠지 지켜주시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 인생이 도박 같아서 돈을 거는 도박은 질색이라고 한다.
    돈을 거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평소 하는 일만으로 충분히 스릴을 느끼고 있다. 안정적이지 않은 대신에 한번 터지면 대박이 난다. 때때로 음악이 좋아서 일을 하는지, ' 도박'에서 이기려고 일을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전자를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모하게 이기는 데에만 집착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일 자체가 사라져 버려서 끝내 자취를 감춘 선배들을 종종 봐 왔다. 인생을 건 일일수록 중독 요소도 너무 강하다.



  • 가장 좋아하는 산리오 캐릭터는 쿠로미다. 쿠로미 이름 후보 중에 우라미( 원한)가 있었다는 걸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면이 좋다고. 어릴 때는 케로케로케로피를 좋아했다고 한다.

3.3.1. 성공한 덕후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 서브컬 남자'의 이미지를 가진 대표적인 연예인 중 한 명이다.[8] 사실 호시노 겐 개인이 대중 J-POP 음악 및 여러 활동으로 연예인이 되어버리고 너무 떠서 그렇지 본인이 자기의 예전 에세이 겸 자서전
나는 덕후다. 아직 오타쿠라는 말이 퍼지지 않았을 무렵, 모에라는 말이 태어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고 적었을 만큼 매니아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여러모로 다방면에서 성공한 덕후 기질이 많다. (여담 문서의 내용과 일부는 중복된다)

3.3.2. 호러물 애호가

호러 장르를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다만 제작물을 보거나 플레이하는 것 외에, 여러 가지 일본의 심령 명소를 직접 가는 등의 실제는 정말 못한다고. (여담 문서의 내용과 일부는 중복된다)

4.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

호시노 겐은 어떤 사람인가? (중략)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소속사인 KAKUBARHYTHM[13]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중략) 정말 음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다지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굉장한 끓어오름과 하고싶은 일이 넘쳐나곤 합니다. 옛날에도 "카쿠바리씨, 이런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당시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큰 목표도, 실제로 곧바로 실행해보고 달성해 오거나 해요. (중략)

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는 악곡의 퀄리티와 내구성, 절묘한 어레인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필수로 주목할 점입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에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그가 이때까지 걸어온 행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끈기와 행동력 자체를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예체능적 재능보다 더 크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여러 일을 하는 엔터테이너로서 연예계에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전업 아티스트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업량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량이 꽤 있으며, 일본 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계속해오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독립 후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밴드 생활, 프리랜서 배우, 집필 다 병행한 건 물론이고, 뜨기 전까지 '재능이 없다'와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지만, 그때 당시 소속사에는 '이런 일이 직접 왔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 직접 발로 뛰며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런 행동력이 그에게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는데, 그가 솔로 데뷔 초중반에 걸렸던 지주막하출혈은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면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여러 방면의 작업과 일을 계속할 때 걸린 병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전 노래들 가사들을 보며 심적으로 위안을 받고, 여러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이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이후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메이저 히트 가수로 점점 올라가게 되는 작용이 되었기도 하다.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음악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 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의 행동력은 YELLOW DANCER Pop Virus로 음악적 측면, 상업적 측면 모두 대히트치고, 참여한 여러 드라마가 히트치며 30대 중후반에 뒤늦게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2019년 번아웃 증후군이 왔을 당시 '그것을 타파할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결과물로서 Same Thing EP를 발매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그렇게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직접 계속 하고 있고, 라디오 진행, 집필, 본인이 진행하는 여러 방송, 영상 기획 및 연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운드클라우드 및 유튜브 채널과[14] 광고 및 예능까지 하고 있기도 하며, 필모그래피는 같은 세대의 전업배우에 비하면 조금 적은 편이지만, 배우업도 계속 하고 있다. 또한 팬들과의 이벤트나 공연 라이브, 토크 스트리밍 라이브도 종종 하고 있으며 콜라보나 협업 하는 사람들 또한 그의 멀티 엔터테이너적 행보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있다.

더군다나 연기 활동은 그 배역에 대한 해석과 몰입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의 음악 제작 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喜劇(희극)을 만들고 있었던 당시 '17세의 제국'이라는 짧은 드라마에 참여했는데 이 드라마 촬영 당시에는 희극 악곡 제작을 하나도 잘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喜劇(희극) 속 풍경 및 인물들과 17세의 제국에서 그가 맡았던 '타이라 키요시' 배역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15]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으로 솔로 데뷔 13년 차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리믹스나 피쳐링, 콜라보, 음원으로 내지 않은 CM음악 등을 제외하고 '정규 5개[16]에, EP같은 곡 횟수를 가진 싱글 13개, 디지털 EP 2개, 디지털 싱글 9곡'이다. 물론 싱글 수록곡 중 일부가 정규 앨범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활동을 포함하여 20년을 보면 여기에다가 밴드 명의로 발매한 '정규 6개, 미니 앨범 1개, 사운드트랙 EP 5개'가 추가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도 1년에 한 곡은 어떻게든지 무조건 만들어야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또한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대외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이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기회삼아 40살에 DAW 작곡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그 작업에 몰두하며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재시작을 표방하는 여러 작업물을 냈다. 실제로 호시노 겐의 2021년 이후 노래는 DAW로 제작된 것이 많은 걸 감안하면, 그의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10~20살 차이나는 후배들과 같이 아직까지 현역으로 계속 뛰게 만들어준 또 다른 발판이 된 셈.

40대가 된 2020년 이후부터 컨디션 관리에 예전보다 탄력이 덜 붙으며, 2021년에는 결혼까지 해서 작업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가정 및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작업량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곡들보다는 의뢰형식의 곡들을 많이 만들고 있으나 '의뢰를 받아 일을 만들면 곡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 生命体(생명체)와 光の跡(빛의 흔적) 악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극복해나갔고 이후 꽤 건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5.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관련 일화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세탁실이 따로 있는 이 집과는 안녕이다. (중략) 창가에 대량의 벌레들의 사체가 떨어져 있는 이 집과 이제는 완전 바이바이다. (중략) 또, 점점 나무 바닥이 벗겨져서 플로링이 아닌 거의 합판 수준이 되어 버린 이 바닥과도 헤어진다. (중략)

그날 나는 대충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상당히 좋은 집을 발견했다. (중략)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질문을 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일을 좀 여쭙겠습니다만, 직업은요?”
직업?
“아, 네, 자격 심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계약할 때 방을 빌리려면 심사가 있고 빌리는 사람이 집세를 잘 낼 수 있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지를 묻고 그 집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배우.
음악가.
문필가.
촬영 감독.

전부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이 직업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일단 수입은 안정되어 있지만 이런 엔터테이너의 일이란 언뜻 겉만 번지르르한 꿈을 좇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직업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중간한 일이 아니며 배우라는 직업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며 때로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소속사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즉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극단은 굉장히 엄격해서, 지각을 하거나 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몰아친다.

음악도 그렇다, 우리 밴드는 내가 중심이어서 밴드의 책임=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도 생각보다는 크고, 소속된 소속사 겸 레이블도 큰 회사가 아닌 작은 인디 회사여서 권리관계 같은 것도 공부해 둬야 하고 음악 업계에는 나쁜 사람들이 지이~인짜 산더미만큼 있으므로 이 또한 항상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NO MUSIC NO LIFE 혹은 음악만 있으면 된다! 같은 멋진 기분이 되기는 좀처럼 힘든, 내 머릿속은 NO WORK NO MONEY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내 나이 정도쯤의 사람들 중에 이런 직업을 가지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무직’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으므로 일단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여러 가지 있는데요. (중략) 저는 배우와 밴드를 동시에 하고 있고 가끔 글도 쓰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합니다.” (중략)

옛날부터 딱 한 가지만을 추려내는 것이 서투른 아이였다. 옛날 동화를 읽을 때도 왜 작은 상자하고 큰 상자 중에서 하나밖에 고르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고 (중략)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과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깜짝 놀랐다.

“하나만 해. 이 세계에서 양쪽을 다하는 건 안 좋아.”
엄마도 말했다. “너 제대로 잘 못하잖니, 항상 부업이 되잖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이야.”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늘 ‘짚신을 두 개씩 신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짚신 위에 짚신을 하나 더 신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엄청 빠르게 도망치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 무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두 마리를 다 잡아 버린다면 멋지지 않은가.

둘 다 실현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절대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일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보려 하고, 만약 가능해진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하는 소박한 의문점이다.

또, 예전에는 '겐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배우보다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겠다'고 자주 들었고 글 쓰는 재능도 그다지 없으니까 이제 그만두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는 재능도 글을 쓰는 재능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였고 잘 못하기 때문에 동경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야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잘 못했던 일들을 잘 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후자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 후 내가 하는 일들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극단 사무소 선배 중에 쿠도 칸쿠로씨가 있다고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장이 슥 나와서 자기가 그분 드라마를 자주 본다며 유명한 분이 있는 사무소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거들어 주어 결과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쿠도 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쿠도 씨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배우이자 밴드맨이자 각본가로, 이 모든 일들을 온전히 해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댄 애크로이드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알았다.

"오~ 배우와 밴드를 하고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도 찍나요?"

이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을 때, 윽,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져, 내가 하는 일을 솔직히 말 한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그는 얼굴이 거무칙칙해지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저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과 음악을 시작하고, 고3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에 각자 마음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연기는 학교 안에서 처음으로 시작이 되어, 점점 일이 되었고, 그리고 글쓰기는 어른이 되고나서 점점 일이 됐어요.

그 와중에 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극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까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로 좁히지 않아?'라든가, '뭐가 제일 하고 싶어?'라고 하셨죠.

어렸을 때 부터 그야말로 여러사람의 활동을 보고있는 도중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하나로 좁히는 게 낫다고 하는 걸까요?

물론 두 켤레의 짚신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일이든 정말로 좋아하고, 이제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임하다가 점점 일이 되어갔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왠지 굉장히 쓸쓸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동경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항상 조금은 어긋나 있었습니다. (중략) 정말로 동경하는 듯한, 멀리에, 계속 등대처럼 이타미 씨가 불빛을 비춰주시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못 가게 되어 있고, 큰 바다가 저희 섬과 이타미 씨의 섬 사이로 흐르고 있었죠.

그것을 뒤쫓으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라고, 너는 너의 장소를 만들어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어쨌든 좋아하는 것에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일이나 하다 보니 이런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씨에게, "그것이 너의 장소야."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뻤습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1] 영화나 드라마 뿐만 아니라 무대 연극에서 90분동안 전라인 상태로 있었던 적도 있었다. [2]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작품들은 비주류적인 감성이 아닌 역할, 그리고 수위가 낮은 역할들이 많아, 상당히 한정적이다. 당장 위에서 말한 예시를 거의 하나도 볼 수 없을 정도다. 한국에서 들어온 것 중에 그나마 제일 비주류적인 건 묻지마 사랑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3] 영웅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 재능이 없는 인물, 성공하지 못한 인물, 모자라보이거나 미덥지 않은 인물. [4] 2019년 Same Thing 때는 깐머, 2020년 MIU404때는 덮머, 2021년 不思議, 創造 때는 깐머, 2022년 喜劇 때는 덮머, 2023년 라이트하우스(예능), 光の跡/生命体 때는 깐머다. [5]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인상깊은 가사가 있다: ' 나에게만 보이는 것과, 여러 사람이 보는 세계 중 어느 쪽이 거짓인지 선택하면 돼. 너는 어느 쪽을 갈래? 나는 한가운데를 갈래.' [6] 그리고 여기에는 노래를 부르는 호시노 겐 본인 또한 포함될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가 죽고 싶었을 때 음악을 만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 내가 내 자의로 죽으면 내가 만든 나의 음악을 배신하는 셈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 실제로 그의 곡들 중에서는 ' 염세주의 허무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창조 회복탄력성을 목놓아 외치는' 곡들이 꽤 있는 편이다. [7] 호시노 겐은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라는 악곡에서 자기자신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라고 말하고 있다. 호시노 겐의 (정신적) 행보들을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와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여기서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의 선물이 '인간은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뜻한다는 것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 문서 참고. [8] 서브컬은 서브컬처와 전혀 다른데, 중성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이나 영화 취미에 열중해있고, 당대 메이저와 거리가 있는 문화를 전반적으로 소비하면서 굳이 서브컬처를 완강하게 거부하지는 않는 사람에 가깝다. [9] MOTHER 시리즈와 젤다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오죽하면 나무위키 MOTHER 3 문서에 이런 감상도 있다. 그러나 닌텐도 게임만 하는 건 아니다. 집에 플레이스테이션 콘솔도 있는 모양인지 호라이즌 제로 던이나 바이오하자드, 콜 오브 듀티, 폴아웃76, 포탈 2 등의 게임을 한 적이 있고, Steam을 애용하며 OMORI, 두근두근 문예부!, SIGNALIS 등 여러 인디 게임들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0] 사카구치 안고의 걸작이라고도 불리는, 일본의 유명한 호러 단편소설이다. 워낙 유명해서 연극화, 영화화, 드라마화, 애니메이션화가 전부 다 이루어졌을 정도. [11] 이는 리미널 스페이스가 의도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12] 不思議(불가사의)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본다면 그가 좋아하는 리미널 스페이스와 유사한 기법이 들어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光の跡(빛의 흔적) 뮤직비디오 또한 그가 느꼈던 허무주의 코즈믹 호러적인 요소가 (따스함을 가장한 채로) 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들어가 있어 일종의 위화감을 자아낸다. [13] cero, 키세루 등이 소속된 일본의 인디 레이블 겸 소속사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호시노 겐은 음악가로서 이 소속사 소속 아티스트였다. [14]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지금까지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고 본인이 언급했었다. 그 유튜브 채널은 음악 쪽은 아니라고 한다. 사운드클라우드에도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계정으로 곡을 만들어 가끔씩 올린다고 한다. [15] '타이라 키요시'는 높은 호감도로 대중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 내각관방 부장관으로,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야심을 가졌으면서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정치인이다. 반면에 喜劇(희극) 속 인물들은 힘든 사회 속에서 서로가 다르고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마음을 주고 받으며 가족을 형성하고, 그 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마음에 있는 어둠을 해소하는 인물들이다. [16] 다만 2018년 12월에 낸 정규 5집 이후로 디지털 싱글이나, 디지털 EP, 싱글은 종종 냈으나, 새로운 정규 앨범이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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