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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비서실장 (1948~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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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기붕 |
제2대 김양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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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유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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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장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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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1960~20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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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장 (2008~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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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2013~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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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대 정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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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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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장 | |||||||||||||||||||||||||||||||||||||||||||||||||||||||||||||||||||||||||||||||||||||||||||||||||||||||||||||||||||||||||||||||||||||||||||||||||||||||||||||||||||||||||||||||||||||
신설 | → |
제17대 전반기 허태열 |
→ | 활동 종료 | ||||||||||||||||||||||||||||||||||||||||||||||||||||||||||||||||||||||||||||||||||||||||||||||||||||||||||||||||||||||||||||||||||||||||||||||||||||||||||||||||||||||||||||||||||
신설 | → |
제18대 후반기 허태열 |
→ | 활동 종료 | ||||||||||||||||||||||||||||||||||||||||||||||||||||||||||||||||||||||||||||||||||||||||||||||||||||||||||||||||||||||||||||||||||||||||||||||||||||||||||||||||||||||||||||||||||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장 | ||||||||||||||||||||||||||||||||||||||||||||||||||||||||||||||||||||||||||||||||||||||||||||||||||||||||||||||||||||||||||||||||||||||||||||||||||||||||||||||||||||||||||||||||||||||
제18대 전반기 김영선 |
→ |
제18대 후반기 허태열 |
→ |
제19대 전반기 김정훈 |
대한민국 국회의원 ( 부산 북구·강서구 을) | ||||
제15대 한이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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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8대 허태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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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1대 김도읍 |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실장 | |||
<nopad> | |||
<colbgcolor=#082e59><colcolor=#fff> 출생 | 1945년 7월 25일[1] ([age(1945-07-25)]세) | ||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장산마을[2] # | |||
본관 | 김해 허씨[3] | ||
재임기간 | 제16대 경기도 의정부시장 | ||
1985년 3월 11일 ~ 1986년 12월 23일 | |||
제10대 경기도 부천시장 | |||
1989년 9월 1일 ~ 1991년 1월 9일 | |||
제28대 충청북도지사 | |||
1994년 9월 23일 ~ 1995년 6월 30일 | |||
제5대 대통령실장 | |||
2013년 2월 25일 ~ 2013년 3월 22일 | |||
제30대 대통령비서실장 | |||
2013년 3월 23일 ~ 2013년 8월 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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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배우자 | 서영슬[4] | |
자녀 | 장녀 허서희, 차녀 허상희 | ||
학력 |
동신국민학교 (졸업) 경남중학교 (졸업) 부산고등학교 (졸업 / 17회)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 법학 67 / 학사)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공공정책학 / 석사) 국방대학원 (졸업) 건국대학교 대학원 ( 행정학 / 박사[5]) |
||
병역 | 병역면제 (제2국민역) | ||
종교 | 개신교 | ||
소속 정당 |
|
||
의원 선수 | 3 | ||
의원 대수 | 16, 17, 18 | ||
경력 |
제8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서울특별시 내무국 행정과 사무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실 과장 제16대 경기도 의정부시장 (관선) 경기도 기획관리실장 제10대 경기도 부천시장 (관선)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제28대 충청북도지사 (관선) 신한국당 국책자문위원 신한국당· 한나라당 부천시 원미구 갑 지구당위원장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제16대 국회의원 ( 부산 북구·강서구 을 / 한나라당) 한나라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 (부산 북구·강서구 을 / 한나라당) 한나라당 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 전반기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제18대 국회의원 (부산 북구·강서구 을 / 한나라당)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제18대 국회 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장 제18대 국회 후반기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 제5대 대통령실장 ( 박근혜 정부) 제30대 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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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출신 정치인. 본관은 김해(金海). 대통령비서실장, 관선 충청북도지사와 3선 대한민국 국회의원직을 지냈다.2. 생애
1945년 7월 25일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장산마을에서 아버지 허복도(許福道, 1922. 4. 29 ~ ?)와 어머니 여주 이씨(1919. 3. 21 ~ ?) 이인옥(李仁玉)[6]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남중학교[7], 부산고등학교(17회),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 67학번)를 졸업하였으며 1999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성균관대학교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관료로 근무하였다. 관료로 재임 중 관선 의정부시장, 부천시장, 충청북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관선 부천시장을 지낸 이력 때문인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현역인 새정치국민회의 안동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민주국민당 문정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으나 8월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창중이 일으킨 엽기적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이후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삼성동계에 끼게 되었다.
2019년 11월 25일 부인상을 당했다.
2024년 8월 자서전 '대한민국의 구조조정과 혁신'을 낸 후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서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크게 강조했다. 본인에게 있어선 아마 마지막 기록일 테니, 최대한 절제하면서 글을 썼다고 밝혔다. #
3. 논란
3.1. 지역감정 자극 발언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합동유세장에서 상대 후보였던 노무현을 향해 "이번에 노무현 후보를 낙선시켜야 부산 죽이기에 골몰하는 김대중 정권이 정신차린다."라느니, "살림살이 나아지셨다는 분들은 전라도에서 오셨나?"라는 등의 말을 비롯하여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망언들을 한 것도 모자라 "허황되게도, 전라도당인 민주당에서 영남 출신이면서 차기 대권주자 운운하는 얼빠진 사람이 있습니다."는 발언도 하였다.
16대 총선 출마 당시 노무현에게 지속적으로 여론조사에서 밀릴만큼 상황이 어려웠지만 이런 발언들로 지역구 한나라당 표심이 결집하면서 그는 무난하게 당선되었고 노무현은 예상보다 큰 표차로 낙선했다. 하지만 2년 후 이 결과가 묘하게 작용하면서 정치권에 엄청난 나비 효과를 가져왔다.
소감이라고요? 물론 섭섭하지요.
그러나 억울하게 귀양을 가서도 아침마다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여 절을 올려야하고 임금님을 원망하거나 하는 일은 삼가야 하는 것이 충성스러운 신하의 도리라고 하니 유권자를 원망하는 이야기는 삼가야겠지요.
다만 성실히 자신을 변명하고 직언을 드린다는 선에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 해야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습니다.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다 아시는 일이라 새삼스럽습니다만 더러 오해도 있는 듯 하여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제가 부산으로 간 이유를 말씀 드리기 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염려가 있는 표현 몇 가지를 바로 잡았으면 합니다.
저의 부산행을 두고 민주당의 "동진"이라거나 지역감정 "돌파"를 위하여,
또는 지역감정과 "싸우러" 갔다는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영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민주당의 동진으로 해결 될 일도 아니고 정면돌파나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자꾸만 전투적인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지역감정 해소에 해로울 것만 같다는 것이 근래의 저의 생각입니다.
감히 말씀 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린 일 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훗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 속에서 겪어야 할 우리 민족의 불행을 막아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산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90년 3당 통합당시 김영삼 총재가 여당으로 가고 나서 저는 야당을 다시 살려 보려고 동분서주 해 보았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탄식을 하며 가는 곳마다 외쳤습니다.
"김영삼 총재님, 부산에는 민주주의가 필요 없습니까?
야당없는 민주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이후 저는 부산에 야당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뻔히 떨어질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했고 이번에 다시 부산에 도전 한 것입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당선되면 부산에도 정당간에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고 경쟁하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그리고 어느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항시 중앙 정부와의 교섭통로가 열려 있는 정치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저의 낙선을 보고 이번 도전이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짓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야 패배로 나타났지만 투표 바로 직전까지도 여론조사는 저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도전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홈페이지에 많은 글이 올라 와 있더군요.
대부분이 부산 시민들을 비난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부산 시민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외마디로
부산 시민을 비난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주의가 어디 부산만의 문제인가요?
지역주의가 이기주의와 편견 또는 독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지역주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호남에서 부산을 욕하시는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지금도 과거의 행적을 모두 덮어두고 김 대중 대통령 옆에 서기만 하면
무조건 지지하고 만세를 부르는 일은 없습니까?
지금이라도 제가 민주당을 떠나거나 김대중 대통령과 맞서게 되더라도
호남에서 제가 당선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들이야 모두 고맙지만 마구 욕설을 퍼붓는 일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왜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그 사람 곁에 서서 우리에게 표를 달라고 합니까?"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저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단호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왜 그토록 그를 미워하십니까?
아직도 그 분이 빨갱이라고 믿기 때문입니까?
그분이 거짓말쟁이고 권모술수를 부린다는 거지요?
김영삼씨나 이회창씨는 그만한 거짓말을 하지 않던가요?
노태우 정권을 군정이라 규정하고 군정종식을 그토록 외쳐놓고
그 군정과 손잡은 것 보다 더 큰 거짓말이나 권모술수가 따로 있던가요?
지금도 김대중 정권이 부산 경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믿고 계신가요?
우리 영남 사람들이 정권을 가지고 있을 때 광주사람들이 백주 대로에서
정권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에게 총질을 당한 사실은 알고 있는지요?
지금도 서울의 잘 사는 동네는 영남사람들이 많이 살고 못사는 동네에는
호남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권력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던 지난 수십년간 권력 근방에는 얼씬도 해 보지 못했던 그들의 한을 이해 해 주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못마땅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지난 수십년간 우리 영남사람들이 그들에게 했던 일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저의 낙선을 애석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감정이 아니라 관용과 지혜로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갑시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 한 발씩 물러서서 생각합시다.
그리고 합리적인 대안도 모색해 봅시다.
선거구 제도는 반드시 바꾸었으면 합니다.
지역구도의 해소에 그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노무현이 남긴
낙선 소감까지 발굴되어 이와도 비교되면서 더더욱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지고 말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매체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회자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해 국론분열을 일으키는 정치인이란 큰 불명예를 얻었으니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그러나 억울하게 귀양을 가서도 아침마다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여 절을 올려야하고 임금님을 원망하거나 하는 일은 삼가야 하는 것이 충성스러운 신하의 도리라고 하니 유권자를 원망하는 이야기는 삼가야겠지요.
다만 성실히 자신을 변명하고 직언을 드린다는 선에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 해야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습니다.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다 아시는 일이라 새삼스럽습니다만 더러 오해도 있는 듯 하여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제가 부산으로 간 이유를 말씀 드리기 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염려가 있는 표현 몇 가지를 바로 잡았으면 합니다.
저의 부산행을 두고 민주당의 "동진"이라거나 지역감정 "돌파"를 위하여,
또는 지역감정과 "싸우러" 갔다는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영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민주당의 동진으로 해결 될 일도 아니고 정면돌파나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자꾸만 전투적인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지역감정 해소에 해로울 것만 같다는 것이 근래의 저의 생각입니다.
감히 말씀 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린 일 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훗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 속에서 겪어야 할 우리 민족의 불행을 막아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산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90년 3당 통합당시 김영삼 총재가 여당으로 가고 나서 저는 야당을 다시 살려 보려고 동분서주 해 보았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탄식을 하며 가는 곳마다 외쳤습니다.
"김영삼 총재님, 부산에는 민주주의가 필요 없습니까?
야당없는 민주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이후 저는 부산에 야당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뻔히 떨어질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했고 이번에 다시 부산에 도전 한 것입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당선되면 부산에도 정당간에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고 경쟁하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그리고 어느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항시 중앙 정부와의 교섭통로가 열려 있는 정치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저의 낙선을 보고 이번 도전이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짓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야 패배로 나타났지만 투표 바로 직전까지도 여론조사는 저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도전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홈페이지에 많은 글이 올라 와 있더군요.
대부분이 부산 시민들을 비난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부산 시민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외마디로
부산 시민을 비난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주의가 어디 부산만의 문제인가요?
지역주의가 이기주의와 편견 또는 독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지역주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호남에서 부산을 욕하시는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지금도 과거의 행적을 모두 덮어두고 김 대중 대통령 옆에 서기만 하면
무조건 지지하고 만세를 부르는 일은 없습니까?
지금이라도 제가 민주당을 떠나거나 김대중 대통령과 맞서게 되더라도
호남에서 제가 당선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들이야 모두 고맙지만 마구 욕설을 퍼붓는 일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왜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그 사람 곁에 서서 우리에게 표를 달라고 합니까?"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저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단호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왜 그토록 그를 미워하십니까?
아직도 그 분이 빨갱이라고 믿기 때문입니까?
그분이 거짓말쟁이고 권모술수를 부린다는 거지요?
김영삼씨나 이회창씨는 그만한 거짓말을 하지 않던가요?
노태우 정권을 군정이라 규정하고 군정종식을 그토록 외쳐놓고
그 군정과 손잡은 것 보다 더 큰 거짓말이나 권모술수가 따로 있던가요?
지금도 김대중 정권이 부산 경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믿고 계신가요?
우리 영남 사람들이 정권을 가지고 있을 때 광주사람들이 백주 대로에서
정권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에게 총질을 당한 사실은 알고 있는지요?
지금도 서울의 잘 사는 동네는 영남사람들이 많이 살고 못사는 동네에는
호남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권력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던 지난 수십년간 권력 근방에는 얼씬도 해 보지 못했던 그들의 한을 이해 해 주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못마땅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지난 수십년간 우리 영남사람들이 그들에게 했던 일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저의 낙선을 애석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감정이 아니라 관용과 지혜로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갑시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 한 발씩 물러서서 생각합시다.
그리고 합리적인 대안도 모색해 봅시다.
선거구 제도는 반드시 바꾸었으면 합니다.
지역구도의 해소에 그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민주자유당| |
1991 - 1995 | 정계 입문 |
[[신한국당| |
1995 - 1997 | 당명 변경 |
|
1997 - 2012 | 합당[8] |
[[새누리당| |
2012 - 2013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3 | 탈당[9] |
[[새누리당| |
2013 - 2017 |
복당 정계 은퇴 |
[[자유한국당| |
2017 - 2020 | 당명 변경 |
[[미래통합당| |
2020 | 합당[10] |
|
2020 - 현재 | 당명 변경 |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경기 부천 원미 갑 |
[[신한국당| |
22,957 (34.19%) | 낙선 (2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북·강서 을 |
|
40,464 (53.22%) | 당선 (1위) | 초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
47,625 (52.46%) | 재선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41,225 (64.19%) | 3선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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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총선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 16대 총선 (부산 북구·강서구 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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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 (부산 북구·강서구 을) | 18대 총선 (부산 북구·강서구 을) | }}}}}}}}} |
6. 둘러보기
부산광역시 제16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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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영도 | 부산진 갑 | 부산진 을 | |
정의화 | 정문화 | 김형오 | 김병호 | 도종이 | |
박관용 | 김무성 | 정형근 | 허태열 | 서병수 | |
안경률 | 엄호성 | 박종웅 | 김진재 | 권태망 | |
유흥수 | 권철현 | ||||
* 해운대·기장 갑 손태인 작고 (2002.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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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제17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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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제17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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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 서 | 영도 | 부산진 갑 | 부산진 을 |
정의화 | 유기준 | 김형오 | 공석 | 이성권 | |
남 갑 | 남 을 | ||||
김정훈 | 김무성 | 정형근 | 허태열 | 서병수 | |
사하 갑 | 사하 을 | 금정 | 연제 | ||
안경률 | 엄호성 | 조경태 | 박승환 | 김희정 | |
수영 | 사상 | 동래 | |||
박형준 | 권철현 | 이재웅 | |||
* 부산진 갑 김병호 의원직 상실 (2007.12.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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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제18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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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제18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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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 서 | 부산진 을 | ||
정의화 | 유기준 | 김형오 | 허원제 | 이종혁 | |
남 갑 | 남 을 | ||||
김정훈 | 김무성 | 박민식 | 허태열 | 서병수 | |
사하 갑 | 사하 을 | 금정 | 연제 | ||
안경률 | 현기환 | 조경태 | 김세연 | 박대해 | |
수영 | 사상 | 동래 | |||
유재중 | 장제원 | 이진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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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제19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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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 홍준표 | 김원길 | 강인섭 | 이재오 |
이성헌 | 박명환 | 원희룡 | 오경훈 | 이승철 | |
권영세 | 김덕룡 | 최병렬 | 오세훈 | 맹형규 | |
정의화 | 정문화 | 김형오 | 김병호 | 도종이 | |
김무성 | 정형근 | 허태열 | 서병수 | 안경률 | |
엄호성 | 김진재 | 유흥수 | 권철현 | 현승일 | |
강신성일 | 강재섭 | 안택수 | 김만제 | 윤영탁 | |
박종근 | 이해봉 | 박근혜 | 서상섭 | 황우여 | |
이윤성 | 박상규 | 이경재 | 이양희 | 강창희 | |
이재선 | 정갑윤 | 최병국 | 윤두환 | 권기술 | |
박종희 | 신현태 | 남경필 | 고흥길 | 임태희 | |
홍문종 | 심재철 | 김문수 | 전재희 | 원유철 | |
목요상 | 이근진 | 안상수 | 전용원 | 조정무 | |
강성구 | 이재창 | 이해구 | 이규택 | 박혁규 | |
정병국 | 한승수 | 최돈웅 | 최연희 | 김용학 | |
윤경식 | 송광호 | 신경식 | 심규철 | 전용학 | |
함석재 | 김용환 | 이완구 | 이병석 | 이상득 | |
임인배 | 권오을 | 김성조 | 박헌기 | 이상배 | |
신영국 | 박재욱 | 주진우 | 정창화 | 이인기 | |
김찬우 | 김광원 | 김종하 | 이주영 | 김정부 | |
강삼재 | 김학송 | 김동욱 | 이방호 | 김영일 | |
김용갑 | 김기춘 | 윤한도 | 박희태 | 이강두 | |
김용균 | 현경대 | 양정규 | 홍사덕 | 이연숙 | |
강창성 | 신영균 | 서정화 | 박세환 | 윤여준 | |
이한구 | 김정숙 | 김락기 | 박창달 | 이원창 | |
이원형 | 손희정 | 김영선 | 유한열 | 장광근 | |
송병대 | 김영구 | 박경섭 | 이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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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박진 | 진영 | 홍준표 | 이재오 | 정두언 |
원희룡 | 권영세 | 이혜훈 | 김덕룡 | 이종구 | |
공성진 | 맹형규 | 박계동 | 김충환 | 정의화 | |
김형오 | 이성권 | 이재웅 | 김정훈 | 정형근 | |
허태열 | 서병수 | 안경률 | 박승환 | 김희정 | |
박형준 | 권철현 | 주성영 | 유승민 | 강재섭 | |
이명규 | 안택수 | 이한구 | 주호영 | 김석준 | |
박근혜 | 황우여 | 이윤성 | 정갑윤 | 최병국 | |
김기현 | 정몽준 | 윤두환 | 남경필 | 신상진 | |
고흥길 | 임태희 | 심재철 | 임해규 | 차명진 | |
전재희 | 김영선 | 안상수 | 고희선 | 이재창 | |
유정복 | 정진섭 | 고조흥 | 정병국 | 허천 | |
이계진 | 심재엽 | 정문헌 | 박세환 | 정진석 | |
이진구 | 김학원 | 홍문표 | 이병석 | 이상득 | |
정종복 | 임인배 | 권오을 | 김성조 | 장윤석 | |
정희수 | 이상배 | 최경환 | 김재원 | 김광원 | |
권경석 | 이주영 | 안홍준 | 김재경 | 김학송 | |
이방호 | 김정권 | 김용갑 | 김기춘 | 김영덕 | |
김양수 | 박희태 | 이강두 | 김애실 | 박찬숙 | |
윤건영 | 황진하 | 전여옥 | 정화원 | 이계경 | |
박재완 | 나경원 | 이주호 | 김영숙 | 고경화 | |
이군현 | 진수희 | 배일도 | 안명옥 | 서상기 | |
박순자 | 이성구 | 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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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 진영 | 진수희 | 김동성 | 권택기 |
홍준표 | 정양석 | 신지호 | 김선동 | 권영진 | |
홍정욱 | 이재오 | 이성헌 | 정두언 | 강승규 | |
원희룡 | 김용태 | 구상찬 | 김성태 | 권영세 | |
이범래 | 안형환 | 정몽준 | 이혜훈 | 고승덕 | |
이종구 | 박영아 | 유일호 | 김충환 | 윤석용 | |
정의화 | 유기준 | 김형오 | 허원제 | 이종혁 | |
김정훈 | 김무성 | 박민식 | 허태열 | 서병수 | |
안경률 | 현기환 | 김세연 | 박대해 | 유재중 | |
장제원 | 이진복 | 주성영 | 유승민 | 홍사덕 | |
서상기 | 이한구 | 주호영 | 이해봉 | 조원진 | |
박근혜 | 박상은 | 홍일표 | 윤상현 | 황우여 | |
조전혁 | 조진형 | 이상권 | 이학재 | 이경재 | |
정갑윤 | 김기현 | 안효대 | 강길부 | 남경필 | |
신영수 | 신상진 | 고흥길 | 심재철 | 임해규 | |
이사철 | 차명진 | 전재희 | 원유철 | 김성수 | |
이화수 | 박순자 | 손범규 | 김태원 | 백성운 | |
김영선 | 안상수 | 주광덕 | 김성회 | 박보환 | |
박준선 | 한선교 | 김학용 | 유정복 | ||
정진섭 | 김영우 | 정병국 | 권성동 | ||
황영철 | 한기호 | 윤진식 | 송광호 | 김호연 | |
이병석 | 이상득 | 정수성 | 이철우 | 김광림 | |
김태환 | 장윤석 | 정희수 | 이한성 | 최경환 | |
이인기 | 정해걸 | 강석호 | 권경석 | 이주영 | |
안홍준 | 김학송 | 김재경 | 이군현 | 김정권 | |
김태호 | 조해진 | 윤영 | 박희태 | 조진래 | |
여상규 | 신성범 | 강명순 | 배은희 | 강성천 | |
이정선 | 김장수 | 김소남 | 이은재 | 나성린 | |
조윤선 | 조문환 | 손숙미 | 원희목 | 이애주 | |
이춘식 | 정옥임 | 임동규 | 김옥이 | 이정현 | |
이두아 | 김성동 | 최경희 | 이영애 | 송영선 | |
김을동 | 정하균 | 정영희 | 노철래 | 김혜성 | |
윤상일 | 김정 |
}}} }}}}}} |
[1]
음력 6월 17일.
[2]
김해 허씨 집성촌이다.
[3]
26세 태(泰)◯ 우(遇) 만(萬) 항렬.
[4]
달성 서씨 서상태(徐相泰)의 딸이다. 1952년 8월 11일 ~ 2019년 11월 25일.
[5]
박사 학위 논문 :
地方自治團體의 政策決定 參與者間 네트워크에 관한 硏究(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 참여자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
[6]
이규보의 후손이다.
[7]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경남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은 케이스로
박찬종,
정홍원,
김무성 등이 있다.
[8]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
[9]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10]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