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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20:03:39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근위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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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렌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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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Flavius Antiochianus
출생 미상, 로마 제국 시리아 속주 안티오키아
사망 222년 3월, 로마 제국 이탈리아 로마
신분 에퀴테스 노부스 호모 → 귀족
가족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아들)
경력 레가투스, 총독, 집정관, 근위대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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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 황제의 해, 세베루스 왕조 시대의 군인, 세베루스 왕조 시대의 원로원 의원, 장군, 집정관, 근위대장.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폭정을 종식시키고자 222년 3월 11일 프라이토리아니가 봉기하자, 동료 근위대장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과 함께 엘라가발루스와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히에로클레스 등을 붙잡아 죽이고, 세베루스 알렉산데르를 옹립했다. 하지만 황궁 정원에서 있던 수색 중 한 명령이 꼬투리잡혀, 율리아 마이사, 울피아누스의 명으로 누명을 쓰고 처형됐다.

2. 생애

전체 이름은 미상이나, 개인이름은 티투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 속주의 안티오키아 출신 에퀴테스로, 조상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 혹은, 셀레우코스 제국 아래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그리스 사람의 후손인, 그리스 혈통 로마인이다. 그의 이름처럼 일가는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 로마시민권을 받았다. 아내 역시 신원은 불분명하나, 같은 기사계급이었다.

로마군에 일찍이 입대해, 능력을 바탕으로 백인대장까지 지내다가,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래 로마군 하급 장교들에게 원로원 문호가 개방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원로원에 입성한 '신참자( 노부스 호모)'의 전형이다.

그는 세베루스 황제 아래에서 기용된 직업 군인 출신 신참자로, 세베루스 황제 치세 말이던 211년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 보조군 사령관을 지냈고, 이후 오늘날 북아프리카 서쪽의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로 건너가 이곳 주둔 레가투스로 여러 군공을 세웠다. 게르마니아, 포에니쿠스 등 복무지 모두에서 병사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덕장, 용장이라는 평을 두루 들었다. 따라서 기행, 실정, 폭정, 군부의 신뢰 하락 속에 위기에 빠진 엘라가발루스 정부는 그를 주목했다.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소아이미아스는 군대의 신망을 얻는 그를 통해, 사태를 수습하고자, 마우레타니아에 있던 그를 로마로 소환했다. 두 시리아인 아우구스타는 안티오키아누스를 221년 집정관에 추천했고, 그의 임기가 종료되자마자, 프라이토리아니를 이끌면서 프라이펙투스 우르비까지 차지해 권세를 누린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의 동료 근위대장으로 지명했다.

이렇게 안티오키아누스는 엘라가발루스 아래에서 프라이토리아니를 이끄는 근위대장이 됐다. 천상군인으로 세베루스 왕조에게 큰 은혜를 입어 귀족까지 신분이 오른 그는 충직했는데, 엘라가발루스와 율리아 소아이미아스는 이 점을 파고 들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암살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는 코마존과 함께 알렉산데르를 지지했고, 황제를 보호하는 근위대에서 이런 식으로 선례를 만드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따라서 그는 이를 황제 모자에게 계속 명받자, 꺼림직하게 여겨 그 명을 받들길 망설였다가, 코마존과 함께 이 사실을 부하에게 알려, 222년 3월 황제 모자를 로마 근교의 카스트라 프라이토리아로 오게 하여, 삼자대면 속에서 프라이토리아니 입장을 밝히겠다고 통보했다.

이 통보는 당시 프라이토리아니 전체에서 황제 모자를 불신임한다는 뜻이었지만, 엘라가발루스와 율리아 소아이미아스는 이른 아침 세베루스 알렉산데르를 데리고, 당당하게 병영으로 찾아가, 그 자리에서 알렉산데르를 죽여달라고 하고, 자신을 지지하면서, 카라칼라의 유일한 아들임을 다시 한번 승인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병사 전체는 일제히 이렇게 외쳤고, 곧 정변이 시작됐다.
"알렉산데르!"

안티오키아누스는 코마존과 함께 군을 나눠, 시종들의 보호와 희생 속에서 팔라티노 황궁으로 마차를 타고 도주한 황제 모자를 추격했다. 이후, 코마존과 안티오키아누스의 진두지휘 속에서 프라이토라이니는 나무궤짝에 숨어 있던(또는 황궁의 구석진 화장실에 몸을 숨긴)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엘라가발루스를 찾아내, 이들을 조리돌림 후 죽였다. 이후 코마존과 안티오키아누스는 이 사실을 원로원을 소집한 자리에서 보고했고, 곧 로마 전체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의 외할머니로, 엘라가발루스의 외할머니이며, 율리아 소아이미아스의 어머니인 율리아 마이사는 갓 근위대장에 취임하게 된 울피아누스의 이름을 빌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엘라가발루스의 협력자, 간신으로 몰아 처형했다.

위서로 유명한 <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중 222년 정규 집정관이 되어 율리아 마이사를 제어하면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 첫 재위년도를 도와준 마리우스 막시무스 기록을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안티오키아누스는 엘라가발루스를 죽이려는 프라이토라이니 병사들에게 엘라가발루스를 변호했고, 스페스 베투스 정원에서 수색하던 병사들에게 등장해 황제에 대한 맹세를 상기시키면서 그를 죽이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익명의 고발자들의 주장으로 고발당해, 그가 엘라가발루스 몰락 직후 어이없게 살해됐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 언급했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에게는 동명이인의 아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가 있다. 아들 안티오키아누스는 엘라가발루스에게 아내 안니아 파우스티나를 빼앗긴 뒤, 재판없이 누명을 쓰고 반역죄로 처형된 폼포니우스 바수스의 딸 폼포니아 움미디아와 결혼했다. 그는 군인황제시대의 혼란 내내 후대 황제들의 통치 기간 동안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