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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be673> 갈리아 제국 제4대 황제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Gaius Pius Esuvius Tetricus |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집정관, 원로원 의원, 아키타니아 속주 총독 |
반란 대상 | 아우렐리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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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갈리아 제국의 제4대이자 마지막 황제. 로마 재통합 전쟁에서 아우렐리아누스에게 항복한 뒤 여생을 평온하게 보냈다.2. 생애
갈리아 출신의 원로원 의원으로, 271년 초 갈리아 제국 제3대 황제 빅토리누스가 쾰른에서 군수장교 아티티아누스의 아내를 유혹했다가 아티티아누스에게 암살당했을 때 아키타니아 속주 총독을 맡고 있었다. 빅토리누스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즉시 군대에 막대한 돈을 뇌물로 건네서 자신의 편으로 삼고, 부르디갈라(오늘날 보르도)에서 테트리쿠스를 새 황제로 선출했다.아들 테트리쿠스 2세의 주화
테트리쿠스는 보르도에서 수도 트리어로 이동하던 중 라인 강을 넘어 약탈하려드는 게르만족과 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271년 말 트리어에 도착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게르만족과 맞서기 위해 출정해야 했다. 272년 말 트리어로 귀환하여 승리를 기념하는 주화를 발행하였고, 273년 1월 1일 트리어에서 2번째 집정관 취임을 기념하는 주화를 찍었으며, 같은해 늦봄이나 초여름에 아들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테트리쿠스 2세)를 카이사르로 선임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동방 원정을 하는 동안, 그는 이탈리아를 공략하려는 시도를 딱히 하지 않고 아키타니아 속주 남동부와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서부의 영향력을 굳히는 데 집중했다. 또한 273년 갈리아 벨키카의 총독 파우스티누스가 일으킨 반란 진압에 착수했다. 274년 초 반란의 중심지였던 트리어를 장악한 사실이 동전을 통해 확인되지만, 완전 진압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제노비아의 팔미라 제국 정복을 달성한 뒤, 아우렐리아누스는 갈리아 제국을 정복하기 위한 원정에 착수했다. 274년 1월 1일 공동 집정관으로서 아들과 함께 취임한 테트리쿠스는 이에 맞서고자 군대를 일으켰다. 274년 2월 또는 3월, 양군은 샬롱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한 아우렐리아누스의 위명을 두려워했고, 병사들을 통제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기에 승리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아우렐리아누스에게 자신의 신변을 보장해준다면 항복하겠다고 제안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전투 당일 테트리쿠스는 아들과 함께 아우렐리아누스에게 귀순했다. 갈리아 제국 장병들은 두 사람의 배신에 비난을 퍼부으며 전투를 감행했으나, 끝내 아우렐리아누스에게 섬멸되었다.
274년 로마로 귀환한 아우렐리아누스는 거대하고 화려한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때 테트리쿠스는 팔미라 제국 여왕 제노비아와 함께 개선식에 참여해야 했다. 개선식이 끝난 뒤 아우렐리아누스는 그를 사면하고, 기존의 재산을 그대로 가지게 해줬으며, 아들과 함께 원로원 의원에 복귀하는 것도 허락했다. 이후 테트리쿠스는 루카니아 총독을 역임했으며, 이탈리아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냈다. 그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