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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에오니우스 (라틴어: Maeonius) |
출생 | 미상 |
사망 | 2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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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미라 제국의 기틀을 다진 오다에나투스의 조카였다. 267년 오다에나투스와 하이란 1세 부자를 암살하고 팔미라의 권력을 찬탈했다가 제노비아에게 제거되었다.2. 행적
팔미라의 총독이자 왕중왕으로서 사산 왕조의 연이은 침략을 격퇴하여 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를 지켜낸 오다에나투스의 조카[1] 또는 사촌[2]으로 알려져 있다. 267년, 팔미라를 공동으로 통치하던 오다에나투스와 하이란 1세 부자를 암살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오다에나투스와 하이란 1세 부자의 암살 사건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갈리에누스의 생애>에서는 마에오니우스가 스키타이인[3]이 로마 제국을 침략하는 것을 막고자 오다에나투스 부자가 출정했을 때 그들을 배신하여 죽였다고 기록했다. <마에오니우스의 생애>에서는 마에오니우스가 오다에나투스를 질투했으며, 하이란 1세가 자기 아들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제노비아와 동맹을 맺고, 그들을 죽였다고 기술했다.조시무스는 암살이 오다에나투스의 친구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가 개최되던 에메사에서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요안니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오다에나투스가 아들 하이란 1세와 함께 사냥을 나섰을 때, 동물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사냥을 맡겼는데 마에오니우스가 창을 먼저 던져 짐승을 죽이자 마에오니우스에게 경고했으나, 마에오니우스가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하자 그의 말을 몰수하고 나무에 쇠사슬로 묶었다. 이때 하이란 1세가 격노한 아버지에게 사촌을 용서해달라고 한 덕분에 풀려났으나, 이 일로 원한을 품은 마에오니우스는 연회 석상에서 부자가 취한 틈을 타 죽여버렸다고 한다. 안티오키아의 요한에 따르면, 오다에나투스가 왕중왕을 칭하며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품은 황제 갈리에누스가 암살을 사주했다고 한다.
요안니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마에오니우스는 오다에나투스 부자가 죽은 직후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반면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왕중왕으로 자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노비아의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