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스탈 작전
Operation Pedestal Battaglia di Mezzo Agos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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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날짜 | |
1942년 8월 9일 ~ 1942년 8월 15일 | |
장소 | |
지중해 | |
교전국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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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네빌 시프렛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 해롤드 버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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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케셀링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 알베르토 다 자라 |
]][[틀:깃발| ]][[틀:깃발| ]]
전력 | |
항공모함 4척 전함 2척 경순양함 7척 구축함 32척 코르벳 4척 소해함 4척 잠수함 11척 모터 런치 7척 수송선 14척 급유선 2척 예인선 1척 전투기 74대 뇌격기 28대 영국 공군 |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3척 구축함 12척 M,A,S 어뢰정 23척 잠수함 21척 폭격기 285대 |
피해규모 | |
항공모함 1척 격침 경순양함 2척 격침 구축함 1척 격침 수송선 9척 격침 항공모함 1척 대파 경순양함 2척 손상 항공기 34대 손실 350~550명 사망 |
잠수함 2척 격침 중순양함 1척 손상 경순양함 1척 손상 잠수함 1척 손상 항공기 48~60대 손실 100명 이상 사망 및 실종 |
결과 | |
영국의 전략적 승리, 추축국 수송선 항로 차단으로 북아프리카 전역의 전세가 연합군에게 넘어옴. |
1. 개요
영국 해군이 몰타 항공전 중 대규모 물자를 몰타에 전달하기 위해 진행한 대규모 수송작전.지중해 전역에서 가장 피비린내나는 혈전 중 하나로, 이 작전으로 인해 영국은 몰타 항공전에서 승리하고 북아프리카 전역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된다.
2. 서론
몰타는 그렇게 큰 섬이 아니었지만 몰타 항공전 문서에서도 나오듯 영국 해군이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는 주요 거점으로서 한때 영국 지중해 함대가 주둔하던 해군 기지이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행 영국 선단이 반드시 지나가는 중간기착지였다. 또한 이곳에 항공대를 배치하면 항속거리가 트리폴리, 뱅가지 항구에도 닿았기에 몰타를 장악하고 항공대를 배치한다면 지중해의 불침항모로서 북아프리카에서 아군 보급선을 유지하고 상대 보급선을 끊어버릴 수 있었기에[1] 매우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즉 몰타의 운명에 따라 북아프리카 전역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었다.3. 몰타의 상황
하지만 몰타는 시칠리아 바로 아래 있었기에 이탈리아와 독일이 해군, 공군을 동원해 두들길 수 있는 장소였고, 추축국도 무자비한 폭격을 퍼부으면서 몰타를 초토화시켰다. 특히 항공기 연료의 소모가 극심했다.영국도 1940년 8월부터 1942년 8월 말까지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항모를 통해 보급하며 추축국 선박 다수를 격침시켰지만, 추축국도 몰타로 향하는 영국 수송선단을 공격하고 기뢰를 뿌리며 몰타를 말려죽이려 했다. 게다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토브룩을 함락시키고 영국군을 엘 알라메인으로 밀어내면서 알렉산드리아도 위기에 처했다.
이에 영국은 1942년 6월 서쪽에서는 하푼 작전과 비고라스 작전으로 지중해 서쪽, 동쪽에서 동시에 선단을 돌입시켜 봉쇄를 뚫고 몰타를 보급하려 했지만 하푼 작전에서는 두 척의 수송선만 겨우 입항했지만 유조선은 없었으며 비고라스 작전에서는 몰타에 발을 들이밀지도 못했다. 그 결과 몰타는 8월이 되자 민간인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이 하루 필수 칼로리조차 채우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개조한 압디엘급 기뢰부설함 HMS Welshman과 잠수함들을 통해 보급을 받았지만 항공기에 필요한 탄약과 물자만 보낼 수 있었고, 9월 안에 몰타에 대규모 물자를 보급하지 못한다면 몰타는 진짜 말라죽을 수도 있었다.
이에 영국은 함락 직전의 몰타를 구하기 위해 지중해에 가용 가능한 함정을 전부 긁어모아 페데스탈 작전에 투입한다.
4. 양측 편제
4.1. 영국
영국 해군 - 항공모함 4척, 전함 2척, 경순양함 7척, 구축함 32척, 코르벳 4척, 소해함 4척, 잠수함 11척, 모터 런치 7척, 수송선 14척, 급유선 2척, 예인선 1척, 전투기 74대, 뇌격기 28대, 영국 공군.WS-21 수송선단
- 수송선 13척 - MV 엠파이어 호프(Empire Hope), MV 도싯(Dorset), MV 와이랑기(Wairangi), MV 로체스터 캐슬(Rochester Castle), 와이라마(Waimarama), 브리즈번 스타(Brisbane Star), MV 포트 찰머스(Port Chalmers), 알메리아 라이크스(Almeria Lykes), 산타 엘리사(Santa Elisa), MV 클랜 퍼거슨(Clan Ferguson), MV 글레노르치(Glenorchy), 멜버른 스타(Melbourne Star), MV 듀칼리온(Deucalion)
- 유조선 1척 - SS 오하이오(Ohio)
Force Z - 대형함. 추축군 항공기 공격범위 진입 전 지브롤터로 회항.
- 전함 - 넬슨(Nelson, R-28), 로드니(Rodney, R-29)
- 항공모함 3척 - 빅토리어스(HMS Victorious, R-38), 인도미터블(HMS Indomitable, R-92), 이글(HMS Eagle, R-94)
- 경순양함 3척
- 제19구축함전대 구축함 15척
Force X
- 제10순양함전대 경순양함 4척 - 나이지리아, 케냐, 맨체스터, 카이로
- 제6구축함전대 구축함 11척
- 예인선 1척 - 존티(Jaunty)
Force Y
- 수송선 2척
- 구축함 2척
Force R
- 급유선 2척
- 코르벳 3척
- 예인선 1척
벨로스 작전
- 항공모함 1척 - 퓨리어스(Furious, R-47)
몰타 항공전력
- 전투대대 9개
- 뇌격대대 3개
- 폭격대대 4대
- 정찰대대 2개
- 스핏파이어 38대[2]
4.2. 독일 및 이탈리아군
5. 전투
5.1. 준비
영국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운명이 걸린 보급작전을 위해 동양함대의 인도미터블을 차출하고 8월 대소련 수송선단 보급작전도 취소했다.1942년 8월 3일 페데스탈 작전을 위해 클라이드에 14척의 대형 수송선들이 모여 WS 21S 선단을 이뤘으며, 이 중 가장 중요한 배는 단연코 유조선 SS 오하이오였다. 이 유조선이 적재한 11,500톤의 연료를 몰타에 보내지 못한다면 몰타는 끝장이었다.
5.2. 8월 10일
5.3. 8월 11일
10시 53분 헬무트 로젠바움 대위의 U-73이 알제리 북동쪽에서 청음기로 수송선단의 소음을 포착하고 호위함들을 돌파해 13시 15분에 4발의 어뢰를 발사, 32초 뒤 항공모함 이글에 전부 명중시키며[3] 8분(4분이라는 기록도 있다) 만에 침몰하고 시 허리케인 12대까지 수장되면서 방공전력의 20%가 날아갔다. 그나마 승조원 1087명 중 전사자는 160명뿐이었던 것이 다행.5.4. 8월 12일
그날 밤 19시 55분, 이탈리아 잠수함 악숨이 호송선단을 노리고 네 발의 어뢰를 날려 모두 명중시켰다. 첫 발은 피지급 경순양함 나이지리아에 명중해 대파시켰고, 52명이 죽었으며 구축함 세 척의 엄호를 받아 지브롤터로 회항해야 했다. 2번과 3번 어뢰는 C급 경순양함 카이로에 명중해 선미와 프로펠러가 박살나 항행 불능에 빠진 뒤 구축함에 의해 처분되었다. 네 번째 어뢰는 오하이오에 명중해 선체에 큰 구멍을 내버렸다. 이 공격으로 호송대의 호위함 전력의 절반이 날아가다시피 했다.이를 시작으로 추축군 해군, 공군이 집중공격을 퍼부으면서 호송선단은 지옥을 경험했다.
자정에는 이탈리아 어뢰정들이 몰려와 공격을 가했고, 순양함 맨체스터와 수송선 와이랑기, 알메리아 라이크스, 산타 엘리사, 글레노르치가 격침당했다.
5.5. 8월 13일
6. 결과
전술적으로 봤을 때 영국군의 피해가 훨씬 컸으며 많은 배들이 격침당했다.하지만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수송선 5척은 몰타에 3만 톤 이상의 식량과 군수품을 전달했고, 특히 오하이오는 그렇게 얻어맞고도 1만 톤 이상의 연료를 전달해 몰타가 몇 주 동안 버틸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해주면서 지중해 전역과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