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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中 전주 이씨 가문의 화목한 조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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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묘사된 전주 이씨 가문을 소개하는 문서.2. 배경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여말선초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대서사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류의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 용의 눈물〉이나 〈 정도전〉을 봐야 한다. 당초 제작진이 ' 대부를 많이 참조했다.'고 밝힌 방향이나 '가(家)와 국(國)을 나란히 놓은 예고 편도 그렇고 이 드라마는 여말선초라는 격동기에 전주 이씨 집안의 군상들을 다룬 드라마로서 시대극보다는 인물극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다.〈용의 눈물〉을 제외한 여말선초 사극에서 희미한 비중 밖에 주지 않은 이방원의 형제들에 엄효섭, 김명수, 홍경인 등 숙련된 연기파 배우를 배치해 비중과 캐릭터성을 주었고, 양녕대군 이전에 요절한 이방원의 세 아들[2]이나 이성계와 이방원 슬하의 공주들도 빠지지 않고 가문 이야기의 디테일을 보강했다. 32화라는 적은 회차로 위화도 회군부터 시작하는 모험도 전주 이씨 집안으로 다루는 범위를 좁혔기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이며, 제작진이 설명한 기존 정통 사극과의 차이도 여기서 발생한다. 〈태종 이방원〉 이전에 전주 이씨 가족 이야기를 제대로 다룬 사극은 24년 전에 나온데다가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초장편(159부작) 사극이었던 〈 용의 눈물〉이 유일했다. 분량이 159회나 되었기에 전주 이씨 가족 이야기뿐만 아니라 정치극, 기타 여말선초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전부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1 ~ 4화만에 이미 기존 여말선초 사극에서는 큰 비중을 담당했던 최영, 우왕, 조민수가 전개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빠졌고, 정몽주, 정도전은 물론이고 이방원의 복심이었던 하륜조차도 플롯 아머에서 크게 벗어나지않았다. 전주 이씨 사람들에 집중하지 않고 앞의 인물들에게 '캐릭터 빌드업이 없다.', '디테일이 아쉽다.' 운운하며 여말선초의 전반적인 역사를 기대한다면 계속 실망하게 될 확률이 높다. 기존 여말선초 사극의 감상 포인트에서 벗어나 그들은 NPC로 생각하고 넘기는 쪽이 낫다.
실제로 빠른 전개 속에서도 전주 이씨 가문의 가족 사항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며,[3] 이성계의 아들들 하나하나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형제들의 우애와 갈등을 골고루 담아내기 위해서 가족 회의나 식사 장면 등도 꾸준히 들어가면서 가족들 간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성계가 "형제들끼리 칼을 겨누는 것만은 용서하지 못한다."라는 장면을 2회부터 넣은 것은 물론, 이성계와 신의왕후 소생의 다섯 아들들 사이 갈등과, 그 사이에 개입해 이성계를 휘어잡고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올리려는 신덕왕후의 행보까지 꽤나 세세하게 묘사하며 후일 왕자의 난의 빌드업을 쌓았다.
또한, 역대 여말선초 사극을 통틀어 이성계의 부정적인 면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장으로써의 명성과 위엄만큼이나 군주로써 드러낸 단점이나 실책 등을 굳이 공들여 포장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돋보이게 만드는 연출을 선보였다.
그간의 작품들에서 단골처럼 쓰였던 대업을 목전에 두고도 정몽주를 포기하지 못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본인데, 이게 32부작과 회당 50분 편성이라는 촉박한 분량으로 인해 관련 서사가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상황과 맞물려 이성계의 행보를 더 답답하게 보이는 효과를 빚어냈다. 또한 작중에서 이성계가 신덕왕후 강씨에게 휘둘리는 듯한 묘사가 비중있게 다뤄지며, 이성계 개인도 정몽주의 죽음에 관여한 신의왕후 소생의 아들들을 공신록에서 제외하는 판단을 강행하는 것은 물론, 용서를 구하는 이방원을 매정하게 내치는 등과 같은 행동을 보이며 뒤끝을 보여준다. 여기에 방석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도 정도전의 영향력을 적지 않게 할애하여 묘사했던[4] 그간 사극과는 달리 실제 기록과 가깝게 이성계가 본인의 뜻으로 신하들의 반대 의견을 찍어누르고 내린 결정이라 묘사하며, 그가 창업 군주로써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정치적인 감각은 부족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변화는 시청률과 후기에 정확하게 반영되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당연히 '〈정도전〉 mk.2'라 생각하고 있던 '사극 매니아' 층에게선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5]
이에 더해 빌드업 방향이 철저하게 전주 이씨 가문의 가족사에 집중되고 있는 점에서 왕자의 난 중에서도 무인정사보다는 2차 왕자의 난이, 그리고 그에 더해 태종 재위 시기에 일어난 조사의의 난이 본 작품의 클라이맥스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많았는데, 결론적으로는 세 사건 모두 1회에서 2회 정도에 그쳤다.
또 해당 사건 이후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세자와 충녕대군의 갈등을 실록의 기록을 받아들이면서도 각색한 진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세자, 즉 양녕대군의 막장 행각이 묘사된 사극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다만, 제작진의 언급처럼 '전주 이씨 가문의 이야기'로 한정으로 해도 사실 향처(鄕妻) 한씨 소생의 장성한 아들 5명[6]으로도 이미 수가 많고, 사실상 한씨 소생의 막내이자 문관인 방원을 빼고는 같은 갑옷(1~2회 한정)을 착용하고, 형제 전원이 카메라에 담기는 장면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방원의 처가인 여흥 민씨 집안도 어머니까지 등장해 비중 있게 나오고, 드라마에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후에 이들과 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7]까지 고려하면 캐릭터의 수가 20명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사실 본 드라마에서는 '인물 관계도'를 그리는 자체가 어려운 편이다.[8] 물론, 사극 장르의 배우 풀이 중견 이상의 고인물이 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매니아층이나 좀 본 사람이라면 헷갈리는 배우나 배역이 극히 드물다.
3. 전주 이씨 가문 사람들
3.1. 이성계
자세한 내용은 이성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성계(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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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김영철 扮 |
3.1.1. 향처(鄕妻) 한씨
자세한 내용은 신의왕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신의왕후(태종 이방원)| |
|
배우 | |
예수정 扮 |
3.1.2. 경처(京妻) 강씨
자세한 내용은 신덕왕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신덕왕후(태종 이방원)| |
|
배우 | |
예지원 扮 |
3.1.3. 이화
자세한 내용은 이화(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화(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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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이원발 扮 |
3.1.4. 이천우
이천우
李天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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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반상윤 扮 |
이천우도 엄연히 이 드라마의 주역 가문인 전주 이씨다보니 이성계의 입을 통해 인적사항이 알려지며, 동시에 저돌적인 놈이라며 이성계에게 행동원리를 파악당한다. 아무래도 전주 이씨의 가주였던 만큼 일가의 특징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작중에선 젊게 묘사되었지만, 본래 이천우는 이방우와 동갑이다.
3.2. 이성계와 신의왕후간의 소생과 그 가족
|
2화 中 신의왕후 소생들의 점심 자리 |
3.2.1. 이방우
자세한 내용은 이방우(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방우(태종 이방원)| |
|
배우 | |
엄효섭 扮 |
3.2.2. 이방과
자세한 내용은 이방과(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방과(태종 이방원)| |
|
배우 | |
김명수 扮 |
3.2.2.1. 정안왕후 김씨
자세한 내용은 정안왕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정안왕후(태종 이방원)| |
|
배우 | |
김서연[11] 扮 |
3.2.2.2. 불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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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김도원[12] 扮 |
18회에서 등장. 왕이 된 이방과가 장차 왕위를 물려줄 것이라고 한다. 이방원이 정전에 들이닥쳤을 때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방과가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러주게 되면서 왕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27화에서는 태상왕인 이성계가 승하하고 정종과 함께 제를 올리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했는데 세월이 지난 만큼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나온다.
사실 고증에 따르면 불노가 아닌 의평군 이원생이 등장해야 한다. 실제 정종은 불노를 키웠으나 친자식으로 여기지 않아 정종의 장자는 사실상 의평군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3.2.3. 이방의
자세한 내용은 이방의(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방의(태종 이방원)| |
|
배우 | |
홍경인 扮 |
3.2.4. 이방간
자세한 내용은 이방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방간(태종 이방원)| |
|
배우 | |
조순창 扮 |
3.2.4.1. 이맹종
이맹종
李孟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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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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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박장호[13] 扮 |
19회에서 숙부인 이방원의 동태를 엿보고선 이방원이 자신들의 거병 움직임을 파악한걸 깨닫고선[14] 아버지한테 바로 말해주고, 결국 아버지가 거병을 하자 같이 따라 나선다. 길목을 미리 군사들로 막아두고서 이방원의 군과 대치하다, 이방원에게 화살을 쏘는데 이방원이 간신히 피하지만 낙마를 하게 된다. 이에 화가 난 조영무를 선두로 이방원의 군사들이 결국 공격을 감행하게 되고, 그렇게 치열한 난전이 펼쳐지게 된다. 칼을 들고 싸우지 않고 계속 화살을 쏘면서 이방원의 군사들을 죽이지만, 전투가 민가까지 확대되면서 얼떨결에 백성까지 맞춰 죽이고[15] 본인도 당황한다. 주무기인 화살이 떨어지고 활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아버지가 와서 구해주지만, 이내 중과부적으로 방원의 군사에게 포위당하고 방간이 칼을 버리자 따라서 항복한다.
난이 진압되고 이방간과 함께 자택에 감금된 뒤, 아버지에게 우린 이제 죽는 거냐면서 두려운 기색으로 묻는다. 방원이 자신들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두려워하지만, 방간은 100살을 살고 죽으면 미련이 없을 것 같냐며 다그치고 들어가서 자라고 한다.[16] 하지만 이방과의 부탁과 형제간의 마지막 정이 남은 방원이 방간과 맹종을 유배 보내되 목숨은 살려주고, 노비와 전답까지 내려주며 사실상 유배가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살도록 배려해주자 아버지와 함께 감사인사를 한다. 이에 이방원이 자신에게 아버님을 잘 모시라고 하자 알겠다고 대답한 뒤 방간과 함께 떠난다.
3.2.5. 이방원
자세한 내용은 이방원(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방원(태종 이방원)| |
|
배우 | |
주상욱 扮 |
3.2.5.1. 원경왕후 민씨
자세한 내용은 원경왕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원경왕후(태종 이방원)| |
|
배우 | |
박진희 扮 |
3.2.5.2. 효순궁주 김씨[17]
자세한 내용은 효순궁주(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효순궁주(태종 이방원)| |
|
배우 | |
이주은 扮 |
3.2.6. 경신공주
경신공주 (김채린[18] 扮)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장녀로 남편은 상당부원군 이애(上黨府院君 李薆)[19]이다.
1회~2회에서 어머니들과 친오빠 방원과 여동생, 이복동생 방번, 방석과 함께 고생한 모습이 비춰졌고, 이후 여동생과 함께 포천에서 지내는지 6회에서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빠들이 포천 전장에 들어설 때, 여동생과 상복을 입은 채로 울먹거린 모습이 유일하게 등장했다.
25회에서 이거이와 그 아들들이 폐서인되어 귀양가면서 그녀도 휘말리게 되었는데, 관련 언급만 잠깐 나왔을 뿐이다.
3.2.7. 경선공주
경선공주 (천지원 扮)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차녀로 남편은 심종(沈悰)[20]이다.
1회~2회에서 어머니들과 친오빠 방원과 언니, 이복동생 방번, 방석과 함께 고생한 모습이 비춰졌고, 이후 언니와 함께 포천에서 지내는지 6회에서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빠들이 포천 전장에 들어설 때, 언니와 상복을 입은 채로 울먹거린 모습이 유일하게 등장했다.
최종회인 31~32회에서 심온 일가가 숙청되면서 그녀도 휘말리게 되었지만 언급조차 없다.
3.3. 이성계와 신덕왕후간의 소생과 그 가족
|
10화 中 신덕왕후 소생들과 그 가족 |
3.3.1. 경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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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최다혜 扮 |
10회에서는 세자에 책봉되지 못한 동생 이방번을 다독이지만,[21] 동생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동생의 군호를 부르면서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12회에서는 친동생들, 남편과 같이 신덕왕후의 위독한 병세를 지켜보면서, 아버지인 태조에게 제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이후 처소 앞에서 동생들, 남편과 함께 기도를 올린다.
13회에서 결국 사망한 어머니를 울면서 애도한다.
17회에서 궐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면서 기다리다가 이방원과 만난다. 자신의 둘째 남동생인 방석이 죽은 걸 눈치채고, 첫째 남동생인 방번과 남편인 흥안군만이라도 살려주기를 바란다. 이에 이방원이 흥안군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면, 살려줄거라고 말하자 안심해하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후 어떻게든 남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흥안군에게 계속 오라버니께 가서 용서를 빌라고 권유하며, 그러기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직접 약속하셨다며 필사적으로 설득한다. 이에 흥안군이 "처남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인은 나를 살리는 게 그리 중요하십니까?"라고 허탈하듯이 물어보자, 울면서 "그럼 함께 죽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명이라도 살아남아야지요. 절 위해서라도... 제발... 제발 살아남으십시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순간 박포와 군사들이 집에 쳐들어오자 남편 앞을 가로막아 지키면서, 잠시만 시간을 더 달라며 지금 가려던 참이었다고 애원하지만 그대로 밀쳐진다. 결국 눈앞에서 박포의 칼에 베인 흥안군의 시신을 껴안고 울부짖으면서, 하루아침에 남동생들과 남편 모두를 잃게 되었다.
18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신덕왕후의 자식으로서 경순공주의 안전을 걱정한 아버지 이성계의 권유로 결국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성계가 자신은 이젠 경순공주를 보호해줄 힘도 없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도 죽게 될 거라며 이 애비의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오열하자, 울면서 "저라도 살아남아서 아바마마와 같은 세상에 머물겠사옵니다."라고 하고 이에 미안하다고만 되뇌이는 이성계와 부둥켜 안는다.
|
이후 절에 들어가서 이성계가 직접 머리를 깎아주면서 삭발한다.[22]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폭풍오열을 하는 두 부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성계는 직접 경순공주의 머리를 깎아주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통곡하며 주저앉아 중단되고, 사찰의 비구니가 대신 머리를 깎으며 마무리해주지만 자신도 아무말 안 하고 눈물만 흘린다. 머리를 완전히 다 깎은 뒤 마주한 이성계가 "이리 하여도 어여쁘시구나. 어여쁘셔서 서글프구나."라고 한탄하자, "부디 강녕하십시오, 아바마마."라고 말하고 이성계도 "성불하세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23]
이후 등장은 없었으나 실록에 의하면, 1407년(태종 7년) 8월 7일에 아버지 이성계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3.3.1.1. 흥안군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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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장태훈 扮 |
7회에서 이성계가 낙마를 하고 휘하의 문신(조준, 남은, 윤소종)이 파직, 국문을 당하는 등 가문에 위기가 오자 장모인 강씨의 부탁으로 한씨의 시묘살이(3년상)을 지내고 있던 이방원을 찾아서 이성계의 낙마 사실을 알리고 같이 벽란도로 이동한다.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온 후, 이방원이 정몽주 제거를 주장하자 적극 찬성한다.
8회에서 정몽주가 제거되자 이방과, 이화를 따라 입궐해 공양왕을 압박하는데 참여하고, 이후에는 아내와 처남들이 장인인 이성계와 담소를 나누는 사이 장모 강씨에게 조정 내 동향이 이성계 측에 완전히 기울었음을 전해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11회에서 태조가 궁궐을 비우자 신덕왕후의 명에 따라 궁궐 전체를 호위하며 정도전에게 갑주를 입고 중전의 처소에 오라는 명을 전달한다.
12회에서 민제의 집안을 잘 감시하라는 신덕왕후의 당부를 듣다 신덕왕후가 통증을 호소하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아내, 처남들과 함께 신덕왕후 처소 앞에서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올린다.
13회에서 정안군이 사병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정도전에게 전하며 각별히 경계해야한다고 조언한다.[24] 그리고 민제의 집이 역당의 소굴이며 하륜이 책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정도전에게 전달해준다. 이후 철저히 정도전의 곁에 있으면서 그의 지시를 따라 삼군부를 지키는 모습을 보인다.[25]
16회.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실록에 기록된 대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려 했으나 형제간의 일에 왜 끼어드느냐는 이화의 어깃장으로 실패한다. 드라마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주역들의 행적과 달리 이화, 이제, 이방번 등은 1차 왕자의 난 시기 실록 기사를 그대로 옮겨온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17회에서 경순공주가 애원한 끝에 이제가 직접 찾아와 무릎을 끓고 정도전의 주구가 되어 죄를 저지른 잘못을 공개적으로 뉘우치면, 즉 정도전을 고발하는 증인이 되면 살려주겠다고 이방원이 약속한다. 귀양을 가는 방번을 배웅하고 허탈하게 집에 돌아온 이제를 붙들고 경순공주가 어서 오라버니께 가서 용서를 빌라며 그렇게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자신에게 직접 약속하셨다며 설득하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처남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인은 나를 살리는 게 그리 중요하십니까?"라고 물어본다. 그러자 경순공주가 울면서 "그럼 함께 죽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명이라도 살아남아야지요. 절 위해서라도... 제발... 제발 살아남으십시오."라고 설득하자 자신도 눈물을 글썽인다. 그순간 박포와 군사들이 집에 쳐들어오고 자신의 앞을 지키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던 경순공주마저 강제로 밀쳐지자, 분노하여 "정안군에게 전하거라.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라는 유언을 남긴 뒤 박포의 칼에 베여 살해당한다.
3.3.2. 이방번
자세한 내용은 이방번(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방번(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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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오승준[26] 扮 (아역: 홍동영 扮) |
3.3.2.1. 경녕옹주 왕씨
경녕옹주 왕씨 ( 한윤지[27] 扮)공양왕의 동생인 왕우의 딸이자 무안군 이방번의 처.
3.3.3. 이방석
자세한 내용은 이방석(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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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김진성 扮 (아역: 장재하 扮) |
3.3.3.1. 현빈 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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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이하은[28] 扮 |
방석의 부인으로 7회 즈음에 방석과 혼례를 올렸다는 송씨의 언급이 있었다.
10회에서 남편인 방석은 세자로 책봉되어 그의 모친이자 유씨의 시어머니인 강씨와 함께 궁으로 떠나지만, 부인인 본인은 세자빈으로 책봉되지 않아 홀로 사가에 덩그러니 남은지라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옆에 서있던 내시가 수일 안에 세자빈으로 책봉될 것이란 강씨의 언질이 있었으니 곧 그녀도 궁에 들어갈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류씨는 책봉문에 몇자 더 적으면 되는데 그리 하지 않은 건 본인의 가문이 보잘 것 없기에 강씨가 자신을 가벼이 봐서 챙겨주지 않은 거라며 불만을 표출한다.[29]
12회에서 세자빈으로 등장하는데 자신을 위로하던 그 내시[30]와 간통을 저지르고, 이 사실이 대부분의 궁녀들에게 발각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간통 사실을 들통나자 모든 게 끝났다고 체념했는지 겉옷인 치마와 저고리조차 입지 않은 채로, 여전히 내시와 간통을 할 때의 옷차림인 하얀 속치마와 속적삼을 입고 왼쪽 어깨와 가슴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후 신덕왕후가 자신의 처소에 들이닥치자 옷을 급하게 다시 고쳐입고, 태연하게 인사를 올리지만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신덕왕후에게 뺨을 맞아 쓰러지며 어디서 내 아들의 앞길을 막느냐는 말을 듣는다. 이에 자신을 애초에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중전과 사내 구실을 못 하는 이방석을 탓하며 대든뒤, 일어서서 자신을 내쫓고 다른 세자빈을 들여도 마찬가지일거라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나 신덕왕후가 다시 한 번 뺨을 때려서 말을 끝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을 치켜뜨며 노려보지만 신덕왕후가 "어디 더 지껄여 보거라. 왕실을 능멸한 죄로 너의 아비와 어미까지 모두 목을 베어 주마"라고 협박하자 그제서야 울면서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리고 궁녀들에게 끌려나간 뒤 언급이 없는데, 정황상 폐서인이 된 뒤에 궁궐에서 쫓겨난 듯 하다.
3.4. 이방원과 원경왕후간의 소생과 그 가족
3.4.1. 정순공주
정순공주 (배우 불명, 아역: 임예진 扮)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맏딸로 남편은 이백강(李伯剛)[31]이다. 늘 여동생, 유모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10회에서 할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부모에게 남동생[32]의 죽음을 알려준다.
21화에서 원경왕후가 이거이와 사돈 관계라는걸 언급해서 혼인을 한 사실이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25회에서 이거이와 그 아들들이 폐서인되어 귀양을 가게 되자 그녀도 여기에 휘말리게 되는데, 고모인 경신공주처럼 언급만 살짝 나온다. 이는 태종이 자식들이 정치에 휘말리는 것을 방관한 꼴로서 이제까지 정치판에 자식들이 휘말리는 걸 방지했던 태종이 결국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식들을 희생시키는 상황이 벌어진 것. 그리고 이는 26회에서 첫째에게 세자 양위 소동에 휘말리면서 태종의 처남들이 몰락하는 복선이 된다.
3.4.2. 경정공주
경정공주(慶貞公主) ( 이도연 扮, 아역: 박수언 扮)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둘째 딸로 남편은 조대림(趙大臨)[33]이다. 늘 언니, 유모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회에서 언니 정순공주와 함께 아버지 이방원을 배웅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작중 최소 만 5세는 지난 모습으로 보이는데, 위화도 회군은 1388년에 일어났고 경정공주는 1387년생이므로 이는 고증에 맞지 않다.
22회에서는 오누이들과 함께 궁에서 살게 되는데, 언니가 시집을 가서 그런지 오누이의 큰 누나 행세를 한다.
25화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명나라로 시집을 보내는 게 내키지 않은 부모들이 차라리 혼인을 일찍 시키자는 말을 한다.
3.4.3. 조졸한 아들
조선 개국 전에 낳은 이방원의 셋째 아들이자 양녕대군의 형이다. 두 아들을 잃은 경험 때문에[34] 이방원과 원경왕후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10회에서 병이 생겨 죽음을 맞는다.[35]3.4.4. 경안공주
경안공주(慶安公主) (이예서 扮)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딸로 남편은 권근의 아들 권규이며, 권규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낳았다.
22회에서 배게 싸움을 하는 남동생 셋(양녕, 효령, 충녕)에게 꿀밤을 먹여준다. 양녕이 장차 왕이 될 적자에게 너무 하지 않냐며 대들자,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동생이라면서 꿀밤을 한 대 더 먹인다. 양녕은 잠자리에서 왕에 오르면 벌 주겠다고 씩씩거리지만 동생들이 누나가 잘 놀아주지 않냐며 변호하자 화를 푼다. 이를 보면 여느 오누이와 다를 바 없는 관계이다. 결국 이제가 원자가 되어서야 동생에게 존대를 하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 등장이다.
25화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명나라로 시집을 보내는게 내키지 않은 부모들이 차라리 혼인을 일찍 시키자는 말을 한다.
실제 역사상 경안공주는 태종 15년인 1415년 4월에 23세로 요절했는데 드라마에서는 경안공주의 죽음이 생략되었다. 언니인 경정공주의 심성이 침착하고 부드러운 누나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경안공주가 앙칼진 모습으로 나오는데 되려 경안공주가 침착하고 부드러운 누나가 맞다. 실록에 경안공주의 졸기를 기록하며 공주가 매우 지혜롭고 아름다웠으며, 천성과 기품이 충녕과 같다며 묘사할 정도였다.
3.4.5. 양녕대군
자세한 내용은 양녕대군(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양녕대군(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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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이태리 扮 (아역: 김인우, 김준의 扮) |
3.4.5.1. 숙빈 김씨
수성부부인 김씨 (이송이 扮)김한로의 딸이자 양녕대군의 부인. 이성계의 장례식 때 양녕대군 옆에 앉아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1회에서 남편이 폐세자당하면서 아들, 딸과 함께 출궁하는 길에 세자가 되어 입궁하는 충녕 일가와 마주치자, 시동생을 세자 저하로 존칭하며 인사하고, 자녀들에게도 세자 저하께 인사드리라 한다. 딸이 아버지가 세자 아니냐며 의아해 하여 난처한 입장이 되지만, 충녕의 배려로 넘어간다.
3.4.5.2. 어리
어리
於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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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임수현 扮 |
29화에서 처음 등장. 대비의 상중 주색잡기에 눈이 먼 양녕에게 납치당하다시피 궁으로 끌려간다. 궁에서 양녕의 부당한 처사에 소극적으로 항의도 하지만, 막무가내인 양녕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후 30화에서 다시 양녕의 부름을 받는데, 역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등장한 원경왕후에게 걸려 곤혹을 치르게 된다.
3.4.6. 효령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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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정시훈 扮 (아역: 신서우 扮) |
22회에서 밤중에 형제들과 시끄럽게 놀다가 형인 양녕이 누나인 경안공주에게 혼나고 잠자리에서 화를 내자 동생인 충녕과 함께 누나를 변호하며 형을 달래는 모습을 보여준다.
23회에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우는 충녕을 달래주었고, 24회에서 호(祜)라는 이름[36]과 효령이라는 군호를 받는다.
26화에서 장성한 모습으로 등장해, 형제들과 함께 아침 문후를 드리러 부왕에게 갔을 때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바람이 찬데 왜 나와 계시냐며 부왕을 염려하는 효심 깊은 모습을 보인다.
27회에서 글을 가슴에 새겼다는 세자에게 태종이 시험해 보겠다며 따라 오라 하고, 충녕까지 같이 부르자, 충녕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따라가라고 하고, 대전으로 드는 아버지와 형, 동생을 뒤에서 바라본다.
29화에서 세자의 책거리 때 형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만 바로 옆에서 신경전을 벌이며 대립하는 형과 막내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37]
30회에서 충녕이 신료들에게 주연을 베풀 때, 큰 형님은 술이 과하고 작은 형님은 술을 전혀 못해 자신이 중간인 것 같다는 말로 언급된다. 원경왕후가 충녕에게 왕위를 포기하라고 설득할 때도 효령대군처럼 살라고 하는 것 보면, 정치에 관심 없이 조용히 살고 있는 모양.
31회에서 양녕이 폐세자되고 충녕이 세자로 책봉된 후 태종에게 불려간다. 태종은 대신 세자에게 명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며 형인 네가 전해주면 기뻐할 것이라 말한다. 이에 효령은 세자에게 양위를 하겠다는 태종의 명을 전해준다. 이를 들은 세자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어명이니 어서 가보라고 말한다.
32회에서 어머니 민씨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다. 어머니는 이제 어디로 가시는 거냐는 양녕의 말에, 극락왕생을 하실 거라고 답해 불경을 가까이했던 왕자임을 보여주었다. 이후 아버지 이방원이 죽고 나서 장례절차를 흐느끼면서 지켜보았다.
어린 나이부터 앞으로의 행적을 암시하는 형과 동생에 비해 별다른 특징이 없는 편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충녕과 세트로 등장하는 씬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충녕의 곁다리로 등장하는 느낌.[38] 하지만 그래도 대사를 하는 등 기존 대중 매체에서의 효령대군에 비해서 분량이 많은 편이다.[39] 다른 사극에서 효령대군은 대사는커녕 등장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양녕대군의 패악질과 달리 동생인 충녕과 어머니를 위로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29화에서 충녕이 양녕에게 했던 언급을 보면[40], 학식은 물론 인간성 면에서도 양녕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권력욕이 없지만 하필 형과 막내가 왕의 자리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중이라 자신은 중간에 끼어서 어찌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도 보인다.
아역 배우가 항상 밝은 표정으로 웃는 모습만 보여주는데, 실록에서 태종이 자신과 중전은 효령이 항상 웃는 것만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3.4.6.1. 숙의옹주 정씨
예성부부인 정씨 (배우 불명 扮)정역의 딸이자 효령대군의 부인. 이성계의 장례식 때 효령대군 옆에 앉아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이방원의 장례 때도 효령대군과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4.7. 세종
자세한 내용은 이도(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세종(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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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김민기 扮 (아역: 구현, 주안, 김로운 扮) |
3.4.7.1. 소헌왕후 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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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김비주[41] 扮 |
심온의 딸이자 충녕대군의 부인으로, 태종을 중심으로 다룬 드라마이고 주어진 회수가 적다보니 처음에는 비중은 적은 편이었으나 이후 남편이 왕위에 도전하는 행보를 보며 걱정하면서 분량이 늘어나면서 태종의 왕자들의 부인 중에선 비중이 가장 많다.[42]
27회에서 승하한 이성계의 장례식에서 충녕대군의 옆에서 모습을 비춘다.[43] 29회에서 충녕대군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야심을 눈치채고, 아버지인 심온과 걱정스레 대화하는 모습이 나왔다. 심온은 '전하께선 적장자의 원칙을 지키시는 분이고, 충녕대군은 성품이 온순하시니 그리 하지 않으실 것' [44]이라고 딸을 달래서 일단은 안심하지만..
30회에서 궁에 다녀온 남편이 자신도 부왕에게 기회를 받아서 왕위에 도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듣자 경쟁에서 진다면 서방님이 죽을 것이라며 눈물 지으면서 만류하는 모습을 보이나, 남편이 결심을 꺾지 않자, 결국 시어머니인 원경왕후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밝히면서 남편을 멈춰달라고 청한다. 그럼에도 남편이 삼군부까지 둘러보는 행보를 보이자 아버지 심온과 함께 더욱 걱정한다.[45]
시어머니인 원경왕후의 가문이 그랬듯 나중에 본인의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 해보면 심씨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46]
31화에서 기어코 충녕이 세자의 자리를 얻어내며 다음 보위를 확정짓지만 이를 반기지 못하는 듯한 기색이다. 시어머니인 원경왕후도 "우리 민씨 만큼이나 너희 심씨도 명문가"라며 외척 숙청의 대상이 될 것임을 경고하고, 심씨도 아버지에게 절대 자중할 것을 당부한다. 이후 충녕이 양위를 받아 즉위하고 심온이 영의정이 되자 그런 큰 벼슬을 내리면 어떡하냐며 불안해 하지만, 심온이 곧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거니 당분간 상왕의 눈을 벗어나는 것이 좋을 거다란 말에 다소 진정한다. 그리고 아버지인 심온에게 다시 한 번 '절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말고 자중하시라'라고 한다.[47]
32화에서 아버지와 일가족이 시아버지인 상왕 태종의 손아귀에 박살이 나는 꼴을 보고야만다.[48] 심온이 국문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세종에게 가족을 지켜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나며 항변하지만 세종은 그저 죄책감만 느끼며 답을 않고, 심온이 사사된 후 다시 한 번 세종에게 따진다. 상왕 전하를 꺾을 힘이 없다고 변명하는 세종에게, "그 지엄하신 상왕 전하도 자식에게는 지고 들어가시는 분인데, 정말 사력을 다해 막아 보았냐"고 묻는데, 세종이 답을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사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하며 세종의 사과를 뿌리치고 떠난다.[49]
이후 남편 세종과 함께 원경왕후 민씨와 태종의 임종을 지킨다.
3.4.7.2. 정소공주
정소공주31회에서 세자로 책봉된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궁한다.
3.4.7.3. 이향
이향 (김예성 扮)30회에서 원경왕후가 충녕대군의 집에 왔을 때 부모와 함께 마중 나온 모습으로 등장.[50]
31회에서 세자로 책봉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궁한다.
3.4.7.4. 정의공주
정의공주31회에서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어 가족과 입궁할 때 유모에게 안긴 채로 등장.
3.4.7.5. 이유
이유31회에서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어 가족과 입궁할 때 유모에게 안긴 채로 등장.
4. 청해 이씨
이지란과 이화상은 엄밀히는 전주 이씨가 아닌 청해 이씨이지만, 이성계와 이지란이 의형제를 맺어 서로 형제로 대하는 것처럼 이방원 및 그 형제들도 이지란을 숙부로 대하며, 이화상의 사이도 사촌처럼 가까워 한 집안이나 다름없이 지낸다.4.1. 이지란
자세한 내용은 이지란(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지란(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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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선동혁 扮 |
4.2. 이화상
자세한 내용은 이화상(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화상
李和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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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상(태종 이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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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
태항호 扮 |
5. 그 외 인물
-
유모 (박여름 扮)[51]
작중에서는 이방원의 두 딸을 비롯해 슬하의 아이들을 잘 챙기고 있으며, 10회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던 민씨 앞에 나타나 중전마마가 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1]
2회에서
위화도 회군이 끝나고 방원이 피신시킨 포천의 식구들이 무사히 만난 자리에서 군무가 바빠서 바로 군영으로 가려는
이성계를 한씨와 강씨가 붙잡고 밥 한 끼라도 드시고 가시라며 개경의 이성계의 집에서 만든 자리였다. 난리통 직후인지라 총사령관의 식사에 어울리지 않게 각자 밥과 국 한 그릇에 나물 반찬 한 두 접시가 고작인 조촐한 식사지만 그래도 위기를 넘긴 가족들이 화목하게 모였던
마지막 모습이다.
[2]
직접 등장하는 건 셋째 아들뿐인데 얘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앞서 잃은 두 아이 이야기가 나오며, 결국 10화에서 죽어 이방원과 민씨가 죽은 아들을 직접 묻고 절망하는 장면이 나왔다.
[3]
그렇다보니 일반적으로 정통 사극에서 생략되는 딸들이 꾸준히 묘사된다.
[4]
용의 눈물에선 정도전이 태조에게 대놓고 직언을 올려 태조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듯한 묘사가 있으며, 정도전에서도 왕권 중심 체계를 지향하는 이방원의 모습을 보고 이성계의 뜻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서 이방원과 척을 지는 전개를 차용하며 적지 않은 비중을 부여했다.
[5]
다만, '불호'가 순수하게 작품을 놓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방향이 다른 작품인 정도전 시절 인물 간의 비중이나 연기 스타일을 안 보여준다고 욕하는 식이라 불판이 쉽게 벌어진다. 주연인 주상욱과 박진희의 연기 지적도 다른 게 아니라 '사극의 발성을 못 한다.'라는 식의 연기 지적을 벌이는 것이다.
[6]
경처(京妻) 강씨 소생의 방번과 방석은 작품 초반에는 어린 나이가 비중이 적은 편으로 조선 건국 이후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7]
청주 이씨
이거이 집안이나
청송 심씨
심온 집안,
평양 조씨
조준 집안으로 이들 중 조준은 2회부터 이거이는 21회에 등장했다.
[8]
실제로 '인물 관계도' 자체가 없다. KBS가 예전에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면서 타 방송사에 비해서 인물 간 관계도를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9]
이원계는
이자춘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이성계는 이자춘과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담으로 이성계는 왕으로 즉위하자 본인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멀쩡한 적자인 이원계를 서자로 격하시킨다. 하지만 이성계와 같은 '계'자 돌림자를 쓰는 것만 봐도 이원계가 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후에 이방원 역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이성계는 본인이 저지른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다.
[10]
이 말을 하는 시점이 장수 이성계의 전적에 처음이자 유일한 패배를 안긴 후라는 걸 감안하면 의미심장하다. 후에 27화에서 이성계를 찾아가 '제가 창칼로 무너뜨린 아바마마가 떠올랐다'라며 흐느끼는걸 보면 이때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드러났을 가능성도 있다.
[11]
인스타그램
[12]
출처
[13]
배우의 인스타그램. 맹종은 방석보다도
용의 눈물에서는 방석은 아역이 맡은 반면 맹종은 성인 배우가 맡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안다면 큰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이 드라마에선 두 배역의 배우의 나이차가 크지 않아 그런 문제는 없다. 참고로, 맹종 역을 맡은 박장호는
성균관대학교 출신이며, 이 드라마가 연기 데뷔작이다.
[14]
방원이 맹종에게 "아버지에게 그만두시라고 전하라."라고 주어없이 경고하는데, 이맹종은 그 말에 시치미를 뗄 생각도 안하고 우직하게 "예"라고 대답하고 물러간다. 염탐하려다가 되려 실토만 하고 돌아온 셈이다.
[15]
민가에서 진압 병력을 향해 쏘다가 병력이 피하는 바람에 무고한 백성이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이 여러 있다.
[16]
방간도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정작 맹종이 방에 들어가고 나서 맹종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사실에 미안함을 드러내고, 난에 합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러 온 방의에게 아들까지 죽게 생겼다며 분개하여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17]
효빈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까마득한 후대인 고종 때 받은 것이고 그전까지는 효순궁주로 불렸다.
[18]
출처;〈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에서는
중학생2 역을 맡았다.
[19]
본관은
청주 이씨로 태종을 도와 정사공신, 좌명공신이면서 좌정승을 지낸
이거이의 장남이다. 원래 이름은 이백경(李伯卿)이었으나, 이름의 음(音)이 정종의 휘(諱) 경(曔)과 비슷하다 하여 이저(李佇)로 개명하였다. 그 뒤 그 이름 또한 세자(양녕대군)의 휘 제(禔)와 음이 비슷하여 또다시 이애(李薆)로 개명하였다.
[20]
본관은
청송 심씨로, 정사공신 2등으로 개국공신이면서 한양 건설을 맡았던
심덕부의 여섯째 아들이자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세종의 고모부이자 처숙부.
[21]
방번이 재차 불만을 토로하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막내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어머니 신덕왕후의 처사가 무리한 일임을 경순공주도 내심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
[22]
이는 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같은 시대를 그린 용의 눈물에서도 나온 유명한 에피소드.
[23]
본 작품의 촬영 현장을 다룬 〈
다큐멘터리 3일〉에서 인터뷰에서 삭발 장면이 나올 것이라 했고 실제로 18회에서 일어났다. 참고로 해당 장면에서 배우가 실제로 삭발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앞서
용의 눈물에서 경순공주를 맡은 김나우도 실제로 삭발을 하면서 비슷한 시기를 다룬 두 드라마에서 경순공주 역으로 출연한 배우가 모두 삭발을 하는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다.
[24]
하지만 여기서 정도전에게 명분에 구애받아선 안된다며, 누명을 씌워서라도 이방원을 죽여야 된다는 도를 넘어선 말까지 한다. 이성계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정도전도 혈육의 죽음을 극도로 거부하는 이성계 때문에 그의 보복이 두려워 이방원을 포함한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해칠 엄두도 못내고 있었고, 이방원의 처신이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해칠 명분을 전혀 찾을 수 없어서 감옥에 잠깐 가두는게 고작이였으니 부마인 이제가 왕자인 이방원을 누명을 씌워서라도 죽이자고 적극 주장하는 건 명백한 무리수였다. 이쯤되면 이 사람도 장모인 신덕왕후의 망령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실제로 이방원을 죽여야하는 이유로 신덕왕후의 당부를 계속 인용한다. 이 드라마 한정으로 훗날
1차 왕자의 난에서 처남들과 함께 살해당하는 걸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25]
기존 사극에서
심효생이 담당하던 포지션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여말선초 사극에선 정도전, 남은, 심효생 3명이서 이방원의 적대세력을 형성하는 반면, 이 드라마에서는 심효생 대신 이제가 끼어있다.
[26]
마이 스윗 디어에서는 고재훈 역을 맡았다.
[27]
육군이 제작한
웹드라마인
백발백중 시즌2~4의 '백송이 하사'로 유명하다.
[28]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 본 작품의 촬영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3일을 통해 출연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배우 인스타그램
[29]
실제로 이후 재등장할 때 세자빈의 지위였던 것을 보면 내시의 말이 맞았다.
[30]
사료에서 현빈 류씨와 간통을 저지른 내시의 이름은 '이만'이라고 기록되었지만, 이 드라마에서 내시의 이름은 정확히 언급되지는 않았다.
[31]
본관은
청주 이씨로
이거이의 차남이다. 즉, 위에 나온 경신공주의 남편인 이애의 동생으로 경신공주와 정순공주는 친가(
전주 이씨) 기준으로 보면, 고모와 조카 사이이며, 시댁(
청주 이씨) 기준으로 보면 동서지간이다.
[32]
이방원이 정안군 이전에 낳았던
양녕대군의 바로 형으로 추정된다.
[33]
본관은
평양 조씨로
과전법을 만들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이면서 이방원을 간접적으로 도와 정사공신에도 오른
조준의 아들이다.
[34]
2회에서 임신한 원경왕후가 두 아들을 잃은 사실을 언급하며 이 아이는 잘 키울거라는 다짐을 한다.
[35]
이 날 두 아버지의 모습이 대비되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성계는 각각 왕비와 세자로 책봉된 강씨와 이방석을 대신관료들과 함께 맞이하며 웃고 있었지만, 이방원은 아내 민씨와 함께 슬픈 얼굴로 아들의 관을 지고 묘자리로 가서 쓸쓸하게 둘만의 장례를 치르고 민씨는 아들의 작은 봉분을 끌어안으며 오열하고 만다.
[36]
이름은 나중에 '보(補)'자로 고친다.
[37]
자신도 그리 학식이 뛰어나지 못하다며 형을 위로하지만 바로 옆에서 충녕이 "계속 정진하면 곧 저희들을 능가할 것이다." 라고 말해 난감해한다.
[38]
그나마 충녕이 세자가 된 후에는 단독 출연하는 장면이 있다.
[39]
효령대군이 비중있게 나온 사극으로는
용의 눈물과
대왕 세종이 있다. 이 드라마들은 분량도 넉넉하다 보니 형과 동생 만큼은 아니라도 효령도 어느 정도 캐릭터는 잡았다.
[40]
"계속 정진하면 곧 저희들을 능가할 것이다."
[41]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더불어 출연 소식을 밝혔다. 태종 이방원의 연출을 맡은 김형일 PD의 전작인
기막힌 유산에서 남자 주인공 부설악의 딸인 부가온 역을 연기했었다.
[42]
효령대군의 부인 정씨는 남편도 비중이 적으니 자연히 따라서 적다 치고, 세자빈 김씨는 세자 걱정하는 장면이라도 나올만 하지만 거의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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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서 이성계가 승하한 연도인 1408년에 충녕과 혼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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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방원은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면 적장자 계승을 포기할 결심도 했고, 충녕은 온순하면서도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 극 중에서 보여지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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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외척을 박살내는 것을 본 상황에서, 충녕대군의 왕권 도전은 심씨 집안에게는 그야말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충녕대군이 패배하면 역적의 처가가 되는 것이고, 충녕대군이 승리하더라도 태종이 살아있는 한 언제 숙청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가불기에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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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30화에서의 충녕과의 대화를 보면, 왕위 경쟁에서 질 경우에 충녕의 신변을 걱정한 것에 더 가깝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삼남이 적장자를 물리치고 왕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저 때만 해도 충녕에게 보위를 물려 주고 상왕이 된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집안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 집안을 숙청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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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태종의 양위 파동 당시 아버지 민제에게 '아우들에게 손톱만큼도 좋아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말고 절대 자중하라고 하시라'라고 했던 민씨와 비슷한 구도로 나온다. 대상은 다르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일종의 복선인 셈. 이에 심온은 자중하려 했지만 명문가+왕의 장인+영의정인 심온에게 많은 이들이 잘 보이려 들어 세간의 이목은 알아서 집중되어 본인이 자중하고 싶어도 자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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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심온은 자결, 가문의 남자들은 죄다 귀양을 가고 어머니와 여자들은 관노비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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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종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 중 하나인 원경왕후와 태종의 죽음의 순간에도 세종의 곁을 지키는 등, 최악까지 간 관계는 아니고, 화해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세종이 조선의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듯이 소헌왕후는 조선 최고의 왕비로 여겨진다. 둘의 관계도 상당히 좋은 편으로 아버지 부부의 뒤를 이어 조선 왕조에서 두번째로 가장 자식들을 많이 낳은 부부이다. 다만, 4남 임영대군까지 1~2년마다 한명씩 줄줄이 아이를 낳다가 갑자기 5남 광평대군의 터울이 6년이나 난다. 그리고 광평대군을 시작으로 다시 매년 아들들을 낳는다. 이것을 보면 실제로 심온 사사 직후 세종을 원망해서 사이가 소원해졌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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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은 없었지만 시기상 이 때 어린 남자 아이로 등장할 세종의 아들은 장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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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대학 동기 역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