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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후궁
효순궁주 김씨 孝順宮主 金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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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white> 시호 | <colbgcolor=#ffffff,#111111> 효빈 (孝嬪) |
신분 |
여흥 민씨
가노 (22회) → 조선국 중궁전 나인(22회 ~ 23회) → 조선국 후궁 (25회 ~ 29회) |
가족 |
태종 (배우자) 경녕군 (아들) |
등장회차 | 22회 ~ 29회 |
배우 | |
이주은 |
[clearfix]
1. 개요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로, 태종의 후궁이자 경녕군 이비의 어머니로 효빈 김씨로 알려진 인물이다. 배우 이주은이 연기한다.2. 작중 행적
여흥 민씨 가문의 가노 출신으로 송씨 부인에 의해 원경왕후와 함께 입궁하게 된다. 원경왕후와는 좋은 관계였지만 태종의 승은을 받을 사실이 알려지자 원경왕후의 분노를 샀으며 궐 밖으로 내보내지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정상궁은 김씨를 궐 밖으로 내쫓지 않고 당시 무릎꿇고 있던 곳에 가만히 있으라는 벌을 준다. 이 때문에 밤새 용서를 빌다가 비를 맞고 실신을 하게 되고 나중에 원경왕후와 정상궁 간의 대화에서 내의원 의관들에게 발견되어 몸이 상하지는 않고 조용히 사가로 보내졌다는 것이 밝혀진다.25회에서 만삭이 된 모습으로 재등장하는데, 이 사실을 안 송씨 부인은 태종과 좋은 관계를 회복한 원경왕후의 앞날에 김씨가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고 출산을 방해하기 위해 김씨의 방에 있는 이불과 겉옷을 빼앗고 불도 때지 못하게 하는 등 학대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아들을 낳자[1] 허술한 헛간에 가둬버리고 이를 보다못한 다른 여종이 옷가지 등을 송씨 몰래 갖다주자 이를 가지고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뒤늦게 사태의 전말을 안 원경왕후가 김씨를 편한 방으로 머물게 하며 씻기고 좋은 옷을 입히게 했는데, 이게 조금만 늦었으면 왕의 씨를 학대했다는 죄목으로 민씨 집안이 결단이 날 뻔했다. 이후 태종의 지시로 다시 궁에 복귀한다.
이후 26회에서 효순궁주라는 자막과 더불어 원경왕후와 함께 등장한다. 원경왕후가 가족을 대신해 사과 한다며 궁 밖에서 겪은 일을 묻어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태종이 그녀를 불러 궁 밖에서 겪은 일을 묻자 원경왕후의 부탁대로 반대로 얘기한다. 그 얘기를 들은 태종이 안색은 왜 안 좋냐는 질문을 더 하자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답하며 이를 넘어갔고, 그제서야 태종에게서 물러나라는 명을 받고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29회에서 원경왕후에게 자신을 수발 드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서 위신이 안 선다면서, 사람 좀 더 넣어달라고 요청하나 원경왕후가 자신은 이제 아무 힘도 없는 중전이라면서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도 못 해주냐며 여차하면 자신이 중전의 가문에서 겪었던 고초를 다 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원경왕후를 떠보기까지 한다.[2] 비록 친정이 숙청당했다지만 엄연한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에게 미천한 노비 출신의 일개 후궁 따위가 협박을 가하는 하극상에 원경왕후도 분노해 바로 표정부터 말투까지 바꾸고, 되려 효순궁주가 사가에 있던 시절 정을 통한 종놈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고 협박하자[3]그제서야 자신이 잘못했다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다가 겨우 중궁전에서 물러난다.
이 일로 감정이 상해 자신이 경녕군을 임신했을 때 민씨 가문에서 받은 핍박을 이방원에게 고하고, 결국 나머지 두 민씨 형제들도 국문을 받고 숙청된다. 비록 민씨 가문을 완전히 몰락시켰지만 효순궁주 역시 여태까지 이방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신뢰를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작중 이방원 역시 고변을 들으면서도 여태까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것이냐고 분노한다.[4] 이후 등장은 없다.
3. 극중 묘사
전작이라 할 수 있는 김혜리가 맡았던 용의 눈물의 효빈 김씨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인다.일단 태종의 승은을 받은 시기가 다르다.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의 여색 밝히기가 더 많이 부각되는 터라, 이미 사가 시절부터 태종과 정을 통하였고 그때부터 원경왕후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5] 이 작품에서는 원경왕후가 중전이 되어 궁궐에 입궁할 때 세트로 입장되었다가, 태종이 원경왕후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승은을 받는 것으로 차이점을 둔다.
그래서인지 원경왕후가 효빈을 대하는 방식도 다른데 전작에서는 민씨 가문이 숙청되기 전까지 원경왕후 본인이 직접 효빈을 경계하고 모질게 대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효빈이 자신을 견제하려는 태종에게 이용되었다는 걸 알기에 원경왕후가 딱히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해코지하는 장면은 없다. 직접적으로 모욕하지도 않고 손찌검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더 효빈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바람에, 그로 인한 후폭풍이 원경왕후에게 되돌아 오게되는 역할을 했다. 태종을 격분하게 한 비오는 날 효빈을 밖에 방치해 쓰러지게 만들었던 사건도 중궁전의 상궁이 한 일이였고, 효빈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려던 것도 원경왕후의 모친인 삼한국대부인 송씨가 단독으로 벌인 일이었다.[6] 사태를 바로 간파한 원경왕후가 아이를 낳은 효빈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이라고 명한 뒤, 궁궐에 데리고 오면서 관계가 호전될 듯 싶더니만 효빈이 원경왕후를 협박하면서 그 관계도 끝나버린다.
효빈이 원경왕후를 대하는 방식도 다른데 전작에서는 원경왕후가 자신을 그토록 모질게 학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들거나 따지지 않으며 윗사람으로 존중하면서 원경왕후가 마음을 고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 작품에서는 예전에 자기가 당한 수모를 복수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노비에서 후궁으로까지 출세한 자신에 대한 콧대가 높아졌는지 원경왕후를 협박하면서 속된 말로 주제 파악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7] 결국 분노한 원경왕후에게 역으로 협박을 당하고 이로 인해 그동안의 원한이 폭발하면서, 태종에게 자신이 민씨 가문에서 겪었던 핍박을 고변하면서 민씨 가문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효빈도 그동안 줄곧 민씨 가문과 관련된 일을 숨기며 태종을 속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 그의 신뢰와 총애도 모두 잃었으니, 후궁이 된 뒤에도 권력에 대해 일체 욕심내지 않고 원경왕후도 존중하면서 마지막까지 태종에게 총애받았던 용의 눈물의 효빈과 크게 다르다.
어찌 보면 대왕 세종에서 묘사된 효빈 김씨[8]랑 약간 비슷하게 묘사됐다고 볼 수 있다.
[1]
이빨로 탯줄을 끊었다는 늙은 여종의 말에 송씨는 '독한 것'이라는 듯 혀를 찼다.
[2]
이 시점에 원경왕후의 친정인 여흥 민씨 집안은 방원의 초강경 숙청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정치적 입지가 추락한 상태였고, 그 결과 원경왕후가 한때 자신이 몸종으로 부렸던 후궁에게 대놓고 협박을 받을 정도로 위신이 추락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왕실의 권위를 그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태종도 일개 후궁이 감히 중전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같은 만행을 저지른 효순궁주에게 처벌을 가하면 가했지 결코 그녀를 옹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경녕군이 왕자가 아니라 노비의 아들이고, 효순궁주는 왕의 씨를 낳았다고 사칭한 역적으로 만들겠다는 말.
[4]
실제로 효빈 김씨는 경녕군 이외의 소생이 없다. 40대에도 자녀들을 줄줄이(정선공주, 성녕대군, 조졸한 공주) 낳던 원경왕후를 생각하면, 경녕군 이후에 효빈이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은 태종이 효빈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5]
얼마나 요염한지 보자며 겉옷을 벗기고 수치심을 주었다.
[6]
심지어 이 일은 원경왕후 뿐만 아니라 송씨의 남편인 민제마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녀의 아들들도 왕의 씨를 가진 여인에게 이래도 되냐고 우려를 표하던 일이었다.
[7]
다만 기록이 없을 뿐, 원경왕후를 협박하는 일은 실제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후궁 따위가 정실 왕비를, 그것도 적자를 낳은 왕비한테 개기는 일은 조선 역사상 단 한번도 없다. 당장
인현왕후가 원자를 낳은
희빈 장씨에게 종아리 체벌을 내렸는데도 희빈 장씨는 가만히 맞아야만 했다. 그리고 태종이 원경왕후를 핍박한 것도 결국 외척 견제 및 왕권 강화라는 철저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뿐이었고, 그와 별개로 후궁이 중전한테 개기는 것을 용납하면 왕비의 소생들인 적자들의 권위도 깎이게 된다. '아들바보'에 '적장자 우선'이라는 명분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 그걸 용납할까?
[8]
김성령이 연기했는데 그녀는
왕과 비에서도
폐비 윤씨를 연기해
인수대비(
채시라)와 대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