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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3 09:04:00

일본항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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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립3. 화려했던 일본항공의 전성기4. 몰락의 시작5.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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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항공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서다.

2. 설립

1951년에 반관반민(半官半民)의 형태로 '일본항공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노스웨스트 항공[1]에서 대여한 마틴 202로 하네다 - 이타미 - 이타즈케를 운항한 것이 첫 정기 취항. 첫 해외 취항은 1954년 하네다 - 샌프란시스코 노선으로 당시에는 기체 성능의 제약으로 호놀룰루에 중간 기착했지만, 지금도 JL001편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물론 요즘은 직항이다.

특기할 사항으로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항공협정 체결로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조건으로 시베리아를 통과하는 유럽 노선을 운항하였다. 초창기에는 아에로플로트와의 코드셰어편으로 아에로플로트 소속 Tu-114에 일본항공 측 인원을 탑승시켜 1969년까지 운영했다. 이후 무려 747-200, 300을 투입시켰다. 당시 소련의 위상이 높았기에 보잉 747의 런치 커스터머인 팬암은 물론 영국항공, 에어 프랑스도 보잉 747을 투입하곤 했다.

3. 화려했던 일본항공의 전성기

1960년대 이후 일본의 고속 경제 성장과 1964 도쿄 올림픽, 1970 오사카 엑스포로 상당한 수익을 벌어들이게 된다. ANA의 출범으로 경쟁자가 생겨 국내선에서는 고전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일명 '45 / 47 체제'라고 불리는 정부 계획에 따라 국제선을 독점했다. 다만 국내 로컬선 취항은 전일본공수 동아국내항공(TDA)만 가능한 것으로 제한되었으나, 45 / 47 체제가 1980년대에 없어짐에 따라 하네다 공항을 중심으로 많은 지방 공항에 취항하여 환승 승객을 유치했다.

일본항공은 B747를 정말 많이 주문한 항공사였다. 그러다 보니 B747을 국내선용으로 개조해 사용하기도 할 정도로 많았다.[2]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엄청난 속도의 경제 성장과, 일본의 우수한 서비스 문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오모테나시 문화가 일본항공의 전성기를 더욱 부각시켰는데, 일본항공은 1970년대 후반에 가서는, 미국 항공사들도 하지 못하는 풀 플랫 시트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서비스와 시설에도 큰 정성을 들이곤 했다.

이는 일본항공의 매출이 올라가는 데도 자연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렇게 일본항공은 1980년대 초반까지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로 언급이 될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4. 몰락의 시작

상기한 45/47체제가 폐지됨에 따라 국내외 노선을 두고 전일본공수 등 경쟁사들과 치열한 경쟁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1985년 8월 12일에 단일 항공기 최악의 사고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가 일어나면서 기업 신뢰도 하락, 피해자 보상 문제가 발생하였고 일시적 경영 악화에 빠지기도 하였다. 또한 이 사고로 인해 시장 점유율을 경쟁사에 빼앗기게 되어 국내선은 전일본공수가 우세를 보이게 되었다.[3]

이후 1987년에 민영화되었다. 2002년에는 국내선 위주의 제3 항공사인 일본에어시스템(JAS)과 합병하여 각각 지주회사 '일본항공시스템'(Japan Airlines System, JALS)[4] 산하의 '일본항공인터내셔널'과 '일본항공재팬'으로 재편되었다.[5] 장기간 사용되어 오던 츠루마루 테일을 버리고 미국 브랜드 컨설팅사인 랜도 사에 의뢰하여 The Arc of the Sun 도장을 도입[6]한 것도 이 합병 때 이며, 일시적으로 국내선 점유율이 전일본공수보다 앞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영 기업 당시의 악습을 버리지 못한 채 걸프전과 9.11 테러를 맞으면서 경영이 급속히 악화되고, 2009년부터는 자금난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데다가[7], 델타 항공에서 스카이팀으로 이적하면 자금 지원해 준다는 소식에 원월드에서 스카이팀으로 옮긴다는 소식이 퍼졌다.[8] 그리고 이 일련의 경영난으로 노선 대폭 축소, 자금력은 외부 지원 없이는 돌아오는 부채를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그나마 자존심이던 일본내 셰어 1위 항공사 타이틀도 전일본공수에 내주고 말았다. 2010년 1월 법적정리 절차를 받았다. 한마디로 파산. 그리고 2010년 1월부로 상장폐지라는 굴욕을 받게 되었다. 2010년 12월에는 지주회사 체제를 해소하고 '인터내셔널' 딱지를 떼었다.

파산 이후 이나모리 가즈오[9][10] 교세라 회장이 취임하여 전 노선을 재검토, 상파울루, 로마, 암스테르담, 밀라노 등에서 지점을 아예 철수하는 등 2008년 위기 전과 비교해서 국제선 노선의 40%를 감축한다고 한다.

JAL의 경영 파탄 원인 중 하나는 JAL이라는 이 항공사는 항공 동호인들과 항덕들에게 막장으로 손 꼽혔던 전설적인 회사다. 예시를 몇 가지 들자면...
<nopad> 파일:B74R.jpg
<colcolor=white> 일본항공 소속 보잉 747SR-146B/SUD(앞)와 보잉 747-446D(뒤).
이 기종들은 각각 563석, 546석으로 운항했다.
첫째, 타 항공사와 달리 더 많은 승객 수송을 위해 아주 가까운 거리도 보잉 747을 투입했다. 이는 미국 플래그 캐리어였던 팬 아메리칸 항공이 경영난에 빠져 파산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똑같다.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의 사고기인 JA8119도 보잉 747-100SR 기종인데, 이는 기존의 구형 보잉 747을 단거리에 특화시킨 기종이다. 2014년까지 JAL과 ANA에 보잉 747-400D라고 하는 보잉 747의 파생형이 있었는데, 이들은 무려 568명까지 쑤셔넣을 수 있는 괴물급의 수용능력을 자랑했었다. 747의 일본 전용 파생기종은 -100을 베이스로 하는 747SR과 최대이륙중량을 늘린 747SR-100B, 거기서 2층을 더 늘린 747SR-100B/SUD, -300을 베이스로 하는 747-300SR, -400을 베이스로 하는 747-400D가 있었다.[11] 공통적으로 구조 강화로 이착륙 수명을 늘리고 항속거리가 필요없으니 연료적재량을 줄였다. 연료적재량이 줄어든 만큼 최대이륙중량(MTOW)도 줄어 공항 사용료도 낮출 수 있다.

도쿄 - 삿포로[12], 오키나와, 후쿠오카, 후쿠오카~ 삿포로, 오키나와~ 삿포로, 하코다테~ 후쿠오카, 하코다테~ 오키나와 등 같은 경우는 거리도 굉장히 멀고 수요도 굉장히 많으니 문제가 없지만[13] 문제는 도쿄- 나고야 도쿄- 오사카같은 단거리 노선까지 보잉 747을 쑤셔넣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해당 노선들은 JR 도카이의 신칸센 딸깍질 앞에 그냥 털려버렸다. 이 바보 짓거리는 젠닛쿠도 똑같이 했지만 일항의 돈지랄은 그 스케일이 더 컸었다. 보잉 747이 거의 퇴조하는 지금도 보잉 747과 수송능력이 비슷한 보잉 777-300까지 투입하고도 시간단위 이하 간격의 편성을 끊는 점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훗날 도입한 A350-900도 이러한 계보를 잇는 국내선용이다.[14]

그나마도 도카이도 신칸센이 시간당 13편 이상을 끼워넣는 과밀상태에다 선형도 나빠서 더 이상 열차를 넣기도 힘들고 속도를 높이기도 힘들어서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이지, 만약에 도카이도 신칸센이 도호쿠 신칸센처럼 과밀도 아니었고 선형도 좋았다면 진작에 털렸을 것이라 보는 의견도 많은 편. 실제로 공항 접근성이 너무 좋은 후쿠오카를 제외하면 나머지 산요 신칸센상의 도시들은 신칸센과 비행기가 적절한 선에서 경쟁을 하고 있으나, 정작 비행기가 불리한 경우가 많다. 단적으로 야마구치만 봐도 야마구치 우베 공항의 접근성은 그나마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신칸센이 서는 신야마구치역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며 기타큐슈 공항은 아예 고쿠라역과 한참 멀다. 그렇다고 도쿄행 열차가 적은 건 또 아니어서 웬만한 노조미 정차역에선 최소 시간당 2대 정도는 노조미를 탈 수 있다.

어쨌거나 국내선의 777-300 대체 투입은 어디까지나 보잉 777의 효율이 보잉 747을 압도했고 중고 보잉 747의 시장 수요가 충분해서 매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15] 벌어진 일. 대한항공은 2018년까지 김포-제주 노선에 747-400을 투입했다.

2010년 7월 18일 일본에어시스템 흡수합병 당시 들여왔던 에어버스 A300-600R 18대, 90년대 대량으로 도입해서 소유하고 있던 747 41대 그리고 MD-90 16대의 매각을 시작했으며 더불어 JAL 호텔도 일본 내 대형 호텔그룹에 매각할 예정이었다. 결국 일본항공은 마지막 보잉 747을 2011년 3월 3일 퇴역시킴으로서 기재 정리를 마쳤다. 일본 전역의 항덕후들이 마지막 터치다운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둘째, # 본사에 협동체가 없어서 9.11 이후까지도 국제선에 보잉 767 이상의 광동체 대형기만 투입했다는 것으로[16][17], 냉전시대 미국 유럽만 바라보던 시기에는 어울렸을지 몰라도 아시아, 특히 중국 노선의 위상이 강화된 시대에는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ANA도 마찬가지였지만...

셋째, 일본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민영화되었으나 국영기업 체질이 남아있던 일본항공에 국회의원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인 지방공항을 놀려둘 수 없다"는 지역 이기주의를 등에 업고 자신의 지역구 공항에 노선 개설 등을 둘러싸고 각종 청탁과 간섭을 해댄 것. 옆나라와 뭔가 비슷하다. 국제선에서도 정부의 필요나 로비 등으로 노선망의 거품이 컸던 편인데, 예를 들어 상파울루행을 LA와 뉴욕 경유 양쪽으로 굴린다거나, 호놀룰루행을 7~8개 도시발로 따로 굴린다거나 하는 식이 잦았다. 하와이는 그래도 일본인들이 많이 가는 휴양지이기에 그러려니 해도[18] 상파울루의 경우 브라질에 일본인들이 이민으로 많이 건너갔고 브라질에서도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거리가 지나치게 긴 데다 그 수요가 항상 있는 거도 아니었으니 확실히 무리였다. 게다가 원월드로 가입한 이후로는 아메리칸 항공이나 LATAM 항공[19]이 중남미행을 맡아줬으니 굳이 일본항공 자신이 들어갈 이유도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닛코 호텔 체인 등 관련사업의 손실[20]과 함께 무리한 일본에어시스템(JAS) 인수합병이 꼽힌다. JAL 자체는 1990년대를 통해 과거의 고비용 체제를 많이 삭감하고 9.11 테러 전후의 위기를 넘겼으나, 인건비나 구형 항공기 등의 부실을 안고 노선망조차 경쟁력이 없는 JAS 인수가 큰 부담이 된 것이다. 결국 일본의 장기 불황에 따른 수요 부진과 경쟁 격화,[21] 결정타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의 세계 불황까지 얻어맞아 도산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상장 폐지 발표 후 조정기간동안 주식 거래가 가능한데, 당연한 얘기지만 상장 폐지가 결정난 대기업이다보니 주식값이 역사상 유래없는 대 폭락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상장폐기후 1주당 10엔대를 가볍게 진입하더니 1월 19일 개장 기준으로 1주당 단돈 4엔. 도쿄 증권거래소 개장 이후 역대 최하치라고 한다. 그래도 주식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유는 1,000주가 있으면 주주 우대권으로 50%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1엔까지도 갔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이익.

회사의 몰락과 대량의 정리해고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여승무원들이 제복을 판매한다거나 숫제 술집이나 풍속업소 등에 취업하는 사태가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JAL의 객실 승무원 제복 풀세트는 10만 엔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승무원 제복 분실은 상당한 징계대상인 것을 생각해보면, JAL이 막장 오브 막장까지 치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다 회사 사정이 불안해지자 조종사들도 저비용 항공사로 옮기는 등,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5. 재기

2011년 4월 1일에 상표와 기체 도장을 변경했는데, 사실상 옛날 풍으로 회귀한 것이다. 츠루마루(鶴丸)라고 불리는, 두루미가 날개를 둥글게 펼치고 있는 모습의 붉은색 상표로, 1959년에 채용되어 줄곧 사용되다가 2002~2008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미국 랜도 사가 개발한 상표인 'The Arc of the Sun'으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그러다가 경영난을 겪게되자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명분 하에 다시 츠루마루를 채택하게 되었으니 The Arc of the Sun은 흑역사가 되었다고 볼 수밖에. 새로운 츠루마루는 옛날과 비교해 볼 때 글씨체 등에 사소한 차이는 있다. 사실 옛 츠루마루도 1958년 미국의 광고회사 직원인 제리 허프가 위탁을 받아, 일본 화보집 몇 권 보고 만들었으니 구 로고 신 로고 둘 다 미제이다.

이 때문에 루프트한자처럼 두루미 항공으로 불리거나 츠루마루 항공으로 불린다.

2010년부터 대한항공 등의 한국 회사로 일본항공 출신의 비행기 조종사들이 오고 있다고 한다.

라이벌 회사인 전일본공수에서는 일본항공이 공적자금 지원에 파산회사에 주는 특권인 법인세 면제 등 덕분에 연간 1천억엔 이상 순이익을 봤다고 특혜 없이 자립이 확인 된 뒤에 상장하는 게 맞지 않냐고 크게 반발 중. 사실 맞는 소리긴 해서 전일본공수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아직 공적자금으로 보호를 받는 일본항공이 재상장하는 건 시기상조가 아니냐라는 의견이 많다.

2012년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취임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얻게되었다. 그의 노력으로 파산 직전의 JAL은 8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했으며,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냈고 2년만에 재상장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구원투수로 나선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3월에 물러났다.

일본 정부 2016년까지는 JAL의 재생을 지도한다는 입장으로, JAL의 노선 확장은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신 JAL은 노선을 나리타에서 최대한 하네다로 옮기면서 마진을 높이는 정책을 취하면서, 정부의 간섭이 약해진 2016년 이후에는 매년 신규 노선도 2~3개씩 늘려 나가고 있다. 2018년 현재 공급량은 국내선 361억 인-km, 국제선 549억 인-km로 전년대비 국제선이 6% 증가했다. 다만 아직도 주요 경쟁사인 전일본공수(국내선 585억 인-km, 국제선 660억 인-km)나 대한항공(국내선 63억 인-km, 국제선 887억 인-km)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캐시카우인 하네다 국제선은 JAL이 하루 23편, 전일본공수가 하루 35편 정도로 격차가 현격하게 난다. 앞으로도 JAL의 성장은 하네다의 국제선 확장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태.[22] 아무튼 2019년 스카이트랙스 선정 5성급 항공사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선 일부 노선에서 무료로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대인배적인 모습도 보인다.

2010년부터는 저비용 항공사 시장에도 눈을 돌려서, 2011년 호주 젯스타 미쓰비시 상사와의 3자 합작으로 젯스타 재팬을 만들었다. 이어 2018년 5월에는 2020년 목표로 중장거리 LCC를 설립할 것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일본어)) 나리타 베이스로 787 2대로 시작하여 미주, 유럽이나 아시아 2선급 목적지로 취항할 계획이며, 2019년 3월에 ZIPAIR로 사명이 결정되었으며, 2020년 여름부터 인천 - 나리타, 방콕 - 나리타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코로나의 완화와 갈수록 증가하는 일본 방문객 증가로 국제선 규모를 크게 확대할 계획으로 2023년 3월, 약 1조8700억엔을 들여 A350를 비롯한 국제선용 광동체 항공기를 대량으로 도입하기로 결정했으며, 국제선 규모를 7년후 2030년까지 2023년 수준과 비교해 1.4배(40%)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2024년 10월 1일, 일본항공이 일부 국가의 외국인 승객을 대상으로 무료 국내선 항공편을 제공한다고 밝혔지만,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 한때 전일본공수보다 먼저 무료 국내선 항공편을 이벤트성으로 열었던 것과 대조적. 다만 실질적으로 다구간 예약을 해보면 도쿄 경유 기준 전일본공수대비 고작 10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일본공수가 운항하지 않는 지역의 경우[23] 일본항공도 나름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1] 현재 델타항공에 인수됨. [2] 1970년대부터, 일본인의 국내선 비행기 탑승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는 일본 열도가 길게 늘어져 있어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이동하는데 오래 걸려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 많이 있었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당시 일본의 경제성장이 매우 빨라 일본인들의 소득과 소비가 매년마다 계속 올라가자, 자동차나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 값비싸지만 그만큼 빠르고 편리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거나 친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3] 이후 2006년 일본항공 123편 사고 20주년만에 일본항공안전계발센터(日本航空安全啓発センター)가 개설하였으며, 8. 12 연락회 유족모음을 통해 123편 추락사고 잔해물을 전시하였다. [4] 2004년 6월에 다시 ‘일본항공’으로 변경 [5] 이후 '일본항공재팬'은 2006년 '인터내셔널'에 흡수되면서 JAS의 흔적은 소멸되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6] 일본에선 중간에 스치는 원호를 빗대서 JAノL이라고 표기하기도 했고, 서양에선 JAIL은 물론이고 미익의 빨간 태양 일부분이 수박 조각 같다고 해서 수박도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7] 2009년 9월말 발표한 것에 따르면 순 손실이 1,321억엔. 일본 정부에선 1,000억 엔이 넘는 공적 자금 투입까지 고려했었다. [8] 델타항공 대한항공이 한창 으르렁거리던 시절 이야기다. 나리타를 아시아 허브로 활용하던 델타항공이 스카이팀의 동아시아 협력 상대로 대한항공의 대체제를 찾기 위한 포석이었다. 델타항공의 CEO가 바뀌고 미중관계 악화 등으로 중국 항공사들과의 협력에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델타항공도 그냥 대한항공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인천으로 아시아 허브를 옮기는 경영 노선으로 선회하였다. [9] 교토세라믹(약칭 교세라)의 창업자로, 일본에서 손꼽히는 경영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이거 외에도 씨 없는 수박을 소개한(개발했다는 말이 아님)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의 막내사위라는 사적 부분도 알려져 있다.( 우장춘 박사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하지만 그가 맡은 회사는 강인한 구조 조정과 빡빡한 관리 체계로 인해 직원들이 근무하기에 최악의 조건을 지닌 ' 블랙 회사'로 변해 버린다. 교세라, 일본항공도 이와 같은 방침에 반발하여 지금 그만두는 사원이 늘어나는 추세. 그래서 이나모리가 설립한 교세라는 인터넷에서는 일본전산과 함께 절대 취직하지 말아야 하는 회사 1, 2위를 다투고 있다. 물론 1위는 당연히 일본전산. 국내 언론에선 찬양하기 바쁘지만 정작 일본전산은 박봉과 과로, 강압적인 노동 조건 때문에 젊은이들이 입사를 말리는 곳이다. 5ch에 '日本電産'으로 검색 해 보자. [10] 물론 일본항공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은지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평도 있다. 무엇보다 일본항공의 관료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 실제로 이나모리 취임 이후 일본항공의 상태나 평가가 호전되고 있다는 듯. 박지성 선수와도 관계가 있어, 한 때 "아시아 3개 항공사의 관심을 받는 죄 많은 남자"란 농담이 나올만한 시기가 있었다. [11] 이중 747SR-100B/SUD와 747-300SR은 전일본공수도 도입하지 않은, 오직 일본항공만 각각 2대, 4대를 도입한 형식이다. [12] 김포-제주 노선이 여객 운송량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이전에 세계 1위에 자주 오르던 노선이었다. 관동~관서는 도카이도 신칸센이 상당 부분 수요를 충당하지만 홋카이도 지역은 항공기가 절대 강세였다. [13] 실제로 도쿄- 오키나와 비행기 말고는 답이 없다. 후쿠오카 도카이도- 산요 신칸센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소요 시간이 길어 여전히 항공 우세다. (이것도 오사카부터 기타큐슈까지는 전부 공항 접근성이 안 좋아서 비행기가 이겨내기 힘든데, 후쿠오카만큼은 공항 접근성을 등에 업고 신칸센을 털고 있다.) 삿포로는 홋카이도 신칸센이 공사 중이지만, 다 되더라도 후쿠오카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14] 그래도 이 때 느낀 게 있는 건지 A350-900의 경우 도쿄-삿포로/후쿠오카/오키나와나 오사카-오키나와 같은 철도와의 경쟁이 거의 혹은 아예 안 되는 구간 중심으로 투입하고 있다. [15] 특히 여객에서 화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일본항공 출신 747을 몇 대 데려가서 화물기로 쓰고 있다. [16] 근데 지금도 본사에 협동체가 하나도 없는 항공사들은 은근히 있다. 예를 들어서 캐세이패시픽항공이라든가(현재는 캐세이드래곤 출신 A321neo가 있지만), 싱가포르항공(여기도 지금은 실크에어 출신 737이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 등. 하지만, 싱가포르항공이나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광동체 넣어서 돈 안나올 만한 노선은 아예 자회사한테 전부 넘겨 버리고, 에미레이트는 애초에 환승 장사를 주 목적으로 하는데다가 오일머니의 위엄이 있기 때문에 설사 돈지랄을 한다고 해도 넉넉하다. 덧붙여 열거된 항공사들이 일본항공을 제외하면 도시국가 내지 소국으로서 사실상 국내선이 무의미한 국가의 국적사들임도 염두에 두자. [17] 특히 DC-8& 보잉 727을 전량 퇴역시킨 1988년부터 보잉 737 클래식 운용을 시작한 1995년까지는 농담이 아니라 일본항공 내에 있는 협동체가 단 한 대도 없었다. 사족으로 일본항공에서 협동체가 완전히 사라졌던 날(JA8031(DC-8-62)가 퇴역한 1988년 5월 26일)과 협동체가 다시 복귀한 날(JA8991(B737-446)가 인도된 1995년 5월 31일)은 7년으로부터 5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18] 하와이는 단순히 일본인이 많이 가는 휴양지 정도가 아니라, 애당초 일본계 미국인이 하와이 주 인구의 50%를 넘어 오히려 역으로 본토 출신 백인을 차별하는 지역이다. 당연히 일본과 하와이 사이의 항공노선 수요는 매우 크고 스케줄이 빽빽하다. ANA가 A380을 하와이에 넣겠다는 것도 이 때문. [19] 단, JAL이 원월드 가입했을 당시에는 칠레 LAN 본사만 있었다. 브라질 TAM 항공이 원월드로 건너온 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4년, LATAM 발족은 거기서 2년이 더 지난 2016년. [20] 결국 닛코 호텔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2010년 8월 호텔 오쿠라에 지분을 매각했다. 2016년 1월 현재 호텔 오쿠라가 지분 78%, 일본항공이 지분 11%를 보유한 상태로, 일본항공 계열에서는 탈퇴했지만 여전히 일본항공과 같은 본사 건물을 사용하고 협력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21] 일본 국내에선 신칸센 노선망이 확충되고 스카이마크 항공, 스타플라이어, 피치항공 등이 등장했으며 이웃 나라 노선마저 진에어, 에어부산 등등의 경쟁사가 늘어나며 국내선과 단거리 국제선 경쟁이 심화되었다. 정규 운임으로 2만 5천엔쯤 하는 도쿄-오사카 노선이지만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할 때 설정된 정규 운임이 여태 그대로 있을 뿐더러, 3주만 일찍 예매해도 1만엔 남짓에 표를 살 수 있을 정도이다. [22] 일본의 양대 항공사는 2018년에야 국제선 매출이 국내선을 따라잡을 정도로 국내선의 마진이 높다. 그 때문에 하네다의 국내선 슬롯을 국제선으로 돌리는 발상은 할 수가 없다. [23] 야마가타, 미사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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