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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0:40:56

양현종/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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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여담
2.1. 야구 관련
2.1.1. 김광현과의 라이벌리2.1.2. 류김양
2.2. 인간관계2.3. 모자의 이니셜들2.4. 선행과 미담2.5. 개인 관련2.6. 별명2.7. 기행2.8. 한때 열성 소덕에 탱빠2.9. 기타
3. 윤석민과 원투펀치?4. 어록

1. 개요

양현종에 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여담

2.1. 야구 관련

2.1.1. 김광현과의 라이벌리

2014시즌 부진에서 탈출한 후 동갑내기 좌완 에이스인 김광현과 라이벌리가 형성됐다. 두 투수 모두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된 좌완 강속구 투수이며 소속팀의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 국가대표 에이스, 통산 160승 선발투수라는 등의 공통점이 있다. 2013시즌까지는 정규시즌 MVP에 국가대표 에이스이기까지 했던 김광현에 미치지 못했으나 김광현이 2011년부터 부상과 부진이 겹치고 양현종은 2014시즌 최동원 상을 수상하며 부활하면서 라이벌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2007년~2013년까진 김광현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7]2007년에는 두 투수 모두 신인의 한계를 드러내며 다소 고전했지만 김광현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투구로 먼저 앞서 나갔다. 이 기세를 바탕으로 김광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며 군 문제까지 해결했고 정규시즌 MVP에 우승반지까지 획득한 반면, 양현종은 조범현의 양아들 소리를 들으며 마운드에서 불이나 지르고 홈런 맞은 뒤 덕아웃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2009년은 두 투수가 함께 잘했던 첫 시즌으로 김광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부진이 있었지만 ERA 타이틀을 획득하며 여전히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였고 양현종은 팀의 3선발로 성장하며 타이거즈의 1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2010년에는 다승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과 2012년은 두 투수에게 모두 힘겨운 해였다. 김광현은 뇌경색과 어깨 부상으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으며 양현종 역시 어깨 통증과 함께 밸런스가 무너지며 선발 자리에서 밀려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3년에는 두 투수 모두 부활의 가능성을 보이며 팬들을 기대하게 했다.

그렇게 맞이한 2014년. 양현종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김광현 역시 토종 선발투수 ERA 2위에 이름을 올리며 두 투수가 최동원 상 유력 후보로 꼽혔고 양현종이 최동원 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데뷔 후 처음으로 두 투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돼 대표팀의 금메달을 함께 이끌었고 시즌 후에는 동시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했으나 아쉽게 이뤄지진 못했다. 이후 몇 년 동안은 양현종이 우위를 가져갔다. 양현종은 2015시즌 ERA 타이틀, 2016년 200이닝, 2017년 20승- 골든글러브- 정규시즌 MVP-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기를 보낸 반면, 김광현은 팔꿈치 부상으로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17년에는 수술까지 받으며 1년을 아예 쉬면서 두 투수 간의 간격이 상당히 좁혀졌기 때문이다. 이 즈음부터 KIA 타이거즈 팬들을 중심으로 양현종과 김광현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격화되기 시작했다.[8]

김광현이 복귀한 2018년. 김광현은 수술 여파로 인해 제한된 이닝만을 소화하면서도 sWAR 전체 4위, 국내 투수 1위에 이름을 올리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고 양현종도 막판에 페이스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선발투수의 기량을 유지했다. 한편 2017시즌에는 KIA, 2018시즌에는 SK 두산을 상대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팀의 우승 순간을 양현종과 김광현이 각각 세이브로 장식하는 인상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2019년은 두 투수의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시기로, 양현종은 시즌 초반 상당한 부침을 겪었지만 그 뒤 경이로운 페이스로 개인 통산 두 번째 ERA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김광현 역시 조쉬 린드블럼과 함께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군림하며 2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20년에는 김광현이 숙원이었던 메이저 리그 진출에 성공하면서 두 투수는 처음으로 다른 리그에서 뛰게 됐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두 투수의 격차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다. 김광현은 2020년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다소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마무리로 출발했다가 팀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맹활약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9] 2021년에도 괜찮은 성적을 올리며 메이저 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10] 양현종 역시 2020시즌 종료 후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으나, 새롭게 장착한 커브와 끌어올린 구속으로 인해 밸런스가 무너지며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고 미국 진출 과정 역시 순조롭지 않았다. 다행히 텍사스 레인저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고, 팀 선배인 윤석민과 달리 메이저 리그 데뷔에는 성공, 초반에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후 마이너 리그에서도 부진하며 미국에서의 시간은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김광현은 이전부터 슬라이더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다는 점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위 리그에서의 경쟁력을 인정 받았으나 양현종은 20-80 스케일에서 모든 구종이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두 투수가 동시에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던 2021년에 이같은 모습이 사실임이 드러나며 두 투수의 격차는 극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벌어졌고 둘 간의 경쟁은 김광현의 승리로 굳어졌다.

미국 도전을 마친 뒤 2022년, 두 투수 모두 100억대 계약을 성사시키며 나란히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두 투수 모두 이제는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어느새 팀의 최고참급 선수가 됐기에 선수 생활 말년을 어떻게 보낼지도 관심이었다. 김광현은 2022시즌 안우진과 함께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이끌며 개인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양현종은 확연히 전성기에서는 많이 내려온 모습을 보였지만 팀 내 최다 이닝을 소화하며 팀을 4년 만의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2023년에는 둘 다 다소 고전했지만 여전히 팀의 1선발로 맹활약했고 각종 대기록을 갱신해나가며 KBO 리그 전설의 반열에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두 투수의 선발 맞대결은 총 8번 성사됐다. 2007년 5월 25일, 첫 선발 맞대결을 포함한 4경기에선 김광현이 모두 우위를 가져갔다. 그리고 2015년과 2023년에 각각 2번씩 맞대결이 성사됐는데 이 4경기는 모두 양현종이 승리를 가져갔다. 둘 간의 맞대결은 양현종이 4승 2패 2ND, 김광현이 2승 5패 1ND를 기록하고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두 투수 모두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가 된 2015년 이후 8년 간은 애매하게 로테이션이 엇갈리거나 1명이 로테이션을 거르는 등의 사유로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2021년에는 둘 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면서 미국에서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김광현은 내셔널리그, 양현종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며 맞대결이 성사되진 않았다.


국가대표 단골멤버이자 에이스인 양현종과 김광현이 함께 출전한 국제대회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9 WBSC 프리미어 1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양현종이 한창 불을 지르던 시절이라 출전하지 못했고, 2015 WBSC 프리미어 12에는 양현종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출전이 불발됐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김광현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출전하지 못했다. 두 투수가 모두 불참한 대회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20 도쿄 올림픽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두 투수 모두 이전 시즌에 커리어 로우를 찍었던 시절이었고 2020 도쿄 올림픽은 둘 다 메이저 리그에 뛰고 있었기 때문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11]

2.1.2. 류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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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인간관계

2.3. 모자의 이니셜들

[오!클릭] 양현종 모자에 새긴 특별한 이니셜…뭉클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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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선행과 미담

2.5. 개인 관련

2.6. 별명

한창 방화를 해대던 시절에는 숨만 쉬어도 별명이 양산되는 수준이였다. 에이스로 거듭난 지금은 대투수라는 가장 대중적인 별명과 야갤의 붉은청룡, 갸갤에서 부르는 붕개나 안쪼, 양쪼가 가끔 나오는 것 빼고는 거의 사장되었다. 이 당시 양산된 별명으로는 아래와 같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2013년 시범경기 직후부터 한 야갤러가 "양현종 대투수님 올해는 정말로 부활하실거 같지 않냐?" 식의 꾸준글을 도배하며 대투수님이란 별명을 밀었는데, 이후 양현종이 정말로 리그 최고의 토종 투수가 되면서 어지간한 KIA 팬 커뮤니티에서는 주로 대투수, 머투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2017시즌 대활약과 함께 해설위원, 선수, 팬들의 대투수 언급이 잦아졌다. 못하면 비틀어서 '소투수'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소투수는 약과고 더 비틀면 대주는 투수라고 조롱당할 때도 있다.

야구 관련 갤러리 계열 커뮤니티에서는 붉은청룡이라는 별명이 쓰인다.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한 어그로가 관심을 끌 목적으로 유명 야구 선수들에게 오글거리는 억지 별명을 밀며 개념글을 주작했는데[26] 그 중 거의 유일하게 흥한 별명. 당연하게도 청룡은 이름부터가 이미 푸른색인데 붉은 청룡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작명을 당당하게 밀어서 그 이상함에 오히려 유명세를 탔다.[27]

흔히 붉은청룡갑, 줄여서 붉청갑, 청룡갑 등으로 불리며 이젠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투수 떡밥이 돌 때마다 붉은청룡이 안 나오면 야갤러들이 댓글로 붉은청룡갑은 어딨냐며 아우성치는 수준이 되었다. 하도 인기가 좋아서 타자 관련 주작을 할 때도 꼭 사진이 들어가는 야갤스타. 2019년에는 아예 검은백호, 하얀현무, 푸른주작 병맛 사신도를 만들었다.[28] 야갤이나 해야갤 등 디시인사이드에서만 많이 쓰이고 디씨 밖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별명이었으나 비디오머그에서 이 별명을 인용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야갤의 야, 코를 붙이는 문화에 힘입어 야은코룡이라는 파생형도 간혹 쓰이는 편.

이에 몇몇 키움 히어로즈 팬들은 이 별명을 응용하여 양현에게 붉은청, 대투 등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29] 양기현은 대기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양지율로 개명했다.

한 팬이 양현종 마킹 유니폼을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양종현으로 잘못 마킹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유니폼 사진을 올리자 대수투라는 드립이 쏟아져 나왔다.

타팀 팬들은 ‘대투수’라는 별명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과거 ‘국민타자’, ‘조선의 4번 타자’ 등 그 선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별명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붙인 선수에게 가능했다. 단순히 한 팀의 선수가 아닌, 한국 야구를 대표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양현종은 2023 WBC 0이닝 3실점 등 최근 들어서는 국제 대회에서 영 힘을 못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대투수라는 별명은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 양현종의 팬이 많은 곳에서 주로 쓰인다. 타 갤이나 해야갤, 퓨마갤 등에서 쓰일 때는 보통 ‘그들만의 대투수’라는 식으로 조롱의 뉘앙스가 섞여있다.

보통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 인터넷상의 KIA 팬들이 양현종을 친근하게 부를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별명은 붕개이며, 비하 발언과 욕설이 난무하는 디씨 특성상 타 팀 갤러리에서는 안쪼, 양쪼라는 별명이 주로 쓰인다. 붉은청룡, 붉청갑은 인터넷상에서 중립적으로 부를 때 자주 쓰이며, 앞서 언급한 별명들이 방송에 쓰기엔 좀 진지하지 못한 뉘앙스인지라 방송 등 오피셜한 자리에서는 KIA의 대투수 같은 별명이 가장 자주 보인다. 양현종이 MLB를 가기 직전 경기에서 엠스플이 ‘대투수의 마지막 경기’라는 자막을 띄운 것이 그 예시.[30]

2020시즌에는 다른 선발 투수들이 3점대 ERA를 찍는 와중에도 아직 ERA가 4점대였을 때가 있어 5선발이라는 드립도 생겨났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사실 시즌 초만 해도 단순 농담으로 쓰는 말이었는데[31] 도저히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팬들이 제발 좀 쉬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부진이 이어지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아예 '대만 국적의 괴투수 야옹 후옌 주옹', ' 빨강 안경', '그 안경'으로 부른다. 대투수라는 별명에서 파생된 중투수, 소투수 등의 별명도 붙었다... 다행히 시즌 중후반 반등에 성공하며 이 별명은 사용 비율이 줄었다. 공교롭게도 어느 팬이 '문어지지마요 양현종'이란 플랜카드를 들고 오자마자 반등에 성공하면서 '문어좌'라는 별명도 추가.

특이하게도 일본 5ch 스포츠 스레에서는 '우호홍구'(ウホホング) 라는 별명이 있다. 2016시즌 FA 자격을 얻고 해외 진출을 추진할 때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입단이 유력해지자 "하필이면 요코하마라니 우헝헝"이라는 국내 반응이 일본으로 그대로 퍼졌기 때문. 훗날 요코하마 출신의 투수 조 윌랜드가 KIA로 입단하게 되자 "대신에 우호홍구 줘" 라는 반응도 나왔다.

참고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양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성이 양씨이기도 하고 중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 양양을 닮아서 그렇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메이저 리그 첫 선발 등판 이후 현지 팬들로부터 ‘ 양갱’이라는 별명을 선사받았다. 성씨인 양(Yang)과 갱스터(Gang)를 결합한 별명으로, 영어로 성씨가 같은 앤드루 양의 지지층 이름 역시 Yang Gang이어서 이와 연관된 것 같다.

2.7.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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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을 노리는 날카로운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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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은 내꺼 우유빛깔 양현종[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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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즈를 괴롭히는 양현종[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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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 관리인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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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혼삿길 막는 양현종(최희섭 옆에 있는 선수가 안치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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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앞에서 대놓고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에게까지..[34] 너가 바람의 손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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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강정호에게.

약사님에게도

해맑은 현종이

2.8. 한때 열성 소덕에 탱빠

2009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공연하는 소녀시대 태연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그 이후 기자를 통해 싸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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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양현종에게 사인 외에 10승 달성~!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써 주었는데, 이 사건이 기사로 나가자 이강철 투수코치에게 엄청나게 털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팀 선배들도 엄청나게 놀려댔다고.

그리고 진짜로 10승을 달성했다. 무려 12승을 기록, 팀도 우승시켰다. 그해 다승왕은 아쉽게 놓쳤는데 다승왕이 된 사람은 동 시즌 14승 투수인 아킬리노 로페즈였다.

게다가 KBS N SPORTS 야구 프로그램인 야생야사에서는 '자신의 10승 달성과 팀 우승은 태연 덕분'이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소덕 인증한 셈.

11월 9일에 열린 우승 축하행사에 소녀시대가 초대가수로 왔으나 막상 양현종이 감기 몸살을 앓는 바람에 병원에서 뒤늦게 와 선수들이 앉은 앞자리도 아닌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출연했던 출발 드림팀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에요?" 라는 질문이 나오자 태연을 언급한 후 태연에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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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태연 갤러리 국내야구 갤러리에 태연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열성적으로 시청하는 모습이 올라와 진성 탱빠 인증에 성공, 뭇 갤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이런 건들로 인해 그에게 붙은 별명이 소퀴. 이후 다른 인터뷰에서는 최희로 이상형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본인은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된 이후로는 상기한 일들 모두를 스스로 상당한 흑역사 취급한다. 2017년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그게 언제적 일이냐면서 결혼도 했고 애도 있으니 이제는 그만 언급해 달라고 한다. 영상 해당 발언은 1분 42초부터.

2.9. 기타

3. 윤석민과 원투펀치?

KIA 팬들이 가장 바라는 우완 에이스 윤석민-좌완 에이스 양현종의 선발 원투펀치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양현종의 포텐이 터진 2009년부터 살펴보면 양현종이 12승 투수를 하며 잘 나갈 때 윤석민은 정작 2009년에 초반 부진했다가 후반부에 호투를 이어나갔다. 실상 이 시즌은 구톰슨- 로페즈의 용병선발 듀오가 더 대활약해서 KIA를 우승까지 이끌고 갔으니.

2010년에는 양현종이 나올 때마다 팀의 연패를 끊고 승리를 챙기면서 다승그룹에 이름을 올리는(!) 무려 16승을 거두었다. 김광현이 17승을 기록해 다승왕은 놓쳤지만 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던 반면에 윤석민 SK전에서 승리가 날아가며 락커룸에서 자해 부상을 입어 2군행, 이후 복귀 후에는 불펜 투수로 뛰며 롯데전에서 연속 사구 사건을 일으키며 바람잘날 없는 시즌을 보냈다. 결국 그 해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에 뽑힌 양현종은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고 다음 시즌 기분 좋게 시작하나 했는데...

2011년, 둘의 처지는 정반대가 되는데 윤석민이 무려 17승을 따냈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정규시즌 MVP까지 받는 등 완벽하게 부활하여 리그를 대표하는 오른손 선발투수로 이름을 날린 반면, 전해 다승 그룹에 있던 양현종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아시안 게임 이후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투구 밸런스가 실종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2012년에는 윤석민은 전년도의 특급 투수같은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고 불운도 겹치긴 했으나 일반적인 A급 투수의 모습은 보여주었고, 양현종은 계속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양현종은 겨우내 단내나는 훈련으로 좌완 에이스의 면모를 회복하는 듯했으나 결국 후반기를 말아먹으면서 추락. 양현종은 부상 후 선동열의 무리한 복귀 앞당기기로 말아먹었다고 평가 된다. 그리고 윤석민은 타이중 참사에 어깨 문제 등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특히 후반기에 윤석민은 사실상 강제로 마무리로 전환하지만 마지막 경기까지 별 재미를 못 보았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안 좋은 한 해를 보내버려 반비례 징크스는 깨진 셈. 무엇보다 2014년부터 윤석민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 반비례 관계는 따지기도 애매해졌다.

2014년 윤석민 미국의 AAA에서 10경기 연속 피홈런 기록을 세우는 동안, 양현종은 팀의 토종 에이스로서 위엄을 보였다.

2015년 윤석민 KIA로 리턴한 후, 마무리를 하게 되며 두 투수가 함께 선발로 터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사실상 둘 다 잘 해주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양현종, 윤석민 둘 이 각각 WAR 1, 2위다. FIP는 중간에 합류해서 표본이 적은 에반을 제외하고, 윤석민이 팀내에서 1위고 양현종은 선발 에이스로서 잘 해주고 있다.

2016년에는 양현종은 200이닝을 돌파했으나 시즌 막판에야 10승 투수가 되는 등 불운의 에이스가 되었는데 마무리 알바를 마치고 선발 투수로 복귀한 윤석민은 시즌 초부터 어깨 부상으로 드러누우며 얼굴도 거의 볼 수 없다가 2017년에는 수술로 사실상 전반기에는 출장을 하지 못하게 됐다.

2017년에는 양현종은 그야말로 커리어 하이, 20승이라는 어마무시한 승수를 찍고 완봉승을 비롯해 한국시리즈에서 큰 활약을 하고 리그 MVP까지 된 반면 윤석민은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재활하며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결국 2017년 복귀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먹튀의 정점을 찍었다.

2018년에는 드디어 윤석민이 복귀했으나 선발로 몇 경기 출장하여 거하게 털린 이유로는 계투 및 마무리로 전환하며 이번 해도 두 투수의 선발 공동 폭발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2019년에는 윤석민이 선발 투수로 복귀한다는 발표가 났으나 스프링캠프 기간 중에 어깨 통증이 재발하였고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했다. 한편 양현종은 평균 자책점 2.29를 기록하여 리그 1위를 달성하였고 WAR 역시 투타 종합 리그 1위의 위엄을 달성하며 대활약을 보였다.

결국 윤석민이 2019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두 투수의 원투펀치는 이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4. 어록

못 떠나겠어요. 내 최종 목표는 영구결번인데 그 꿈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게 결코 소박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KBO리그에서도 인정받고 싶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정말 많잖아요. 최소한 타이거즈 팬들에게만은 인정받고 싶거든요. 지금이 내 전성기겠지만 훗날 바닥에 떨어져있을 때도 타이거즈 팬들만은 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내가 내세울 것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하고 싶은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사랑하는 가족과 태어난 곳에서 집도, 차도 사고 많은 연봉 받으면서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으면 최고로 성공한 것 아닌가요. 여기서 이렇게 사랑받았는데 다른 팀에 가서 감히 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KIA에 남겠다는 거예요.
2017 시즌을 마치고 KIA 잔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
도전의 가장 큰 적은,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경험이다.
곽도규의 프로 첫 홀드 기념구에 적은 글귀

[1] 포스트시즌 1호 등판은 헥터 노에시였지만 그 경기에서 패했다. [2] 은퇴 후 자신의 이미지 이야기는 4분 8초에서 언급된다. [3] 이준수는 방출된 후 한화 이글스 kt wiz에서 뛰었고 은퇴 후에는 kt에서 지도자 생활 중이다. [4] 심지어 미국에 진출했던 1년간은 54번을 양현종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비워놨었다. 비슷한 경우로는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김광현의 등번호인 29번을 비워놨다가 김광현이 복귀한 후 다시 돌려줬던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가 있다. [5] 다만 당시 양현종은 1차 지명감으로 평가받았음에도 2차 1순위로 밀렸는데 어차피 KIA가 1순위인 만큼 계약금 아끼려고 꼼수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6] 양현종은 2007 2차 1라운드 지명이지만 드래프트는 2006년도에 시행되었음으로 지명받은 년도는 2006년이다. [7] 이 기간에는 사실 양현종과 김광현이 라이벌로 언급되는 경우가 없었고, 오히려 류현진 김광현의 라이벌리가 유명했다. 물론 이 라이벌리는 류현진의 압도적 우위로 끝났다. [8] 팬들 사이에서는 둘의 별명을 따 일명 쪼랄대전(쪼다 vs 오랄)으로 불렸다. [9] 이 해 김광현은 로테이션 합류 이후 첫 다섯 경기에서 ERA 0.33을 기록하며 맹활약하였다. 이 수치는 1913년 이후 메이저 리그에서 데뷔 첫 선발 다섯 경기 평균자책점으로는 2위 기록에 해당한다. 1위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0] 2020~2021년 2년동안 총 145.2이닝 ERA 2.97. 2년 중 1년 반 가량은 선발투수로 뛴 것 치고는 이닝 수가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2020시즌의 코로나 단축시즌을 고려한다면 꽤 성공적인 커리어임에는 분명하다. [11] 잘 알려졌다시피 메이저 리그 사무국은 자신들이 주관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제외한 국제대회에 40인 로스터에 속해있는 메이저리거들의 출전을 금지하고 있다. [12] 실제로 양현종과 김광현이 대표팀 투수조 최고참이었다. [13] 김광현 외에도 양의지, 김현수 등도 은퇴 의사를 밝혔다. [14] 칸베 토시오 코치는 아직도 호사방등의 KIA 타이거즈 커뮤니티의 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이 시기에 꽃을 피웠던 투수진이 가히 엄청나다. 유동훈, 곽정철, 손영민, 이범석 등등. [15] 양현종은 이 답변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16] 양현종이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 후, 54번은 28, 29, 47번과 함께 좌완 투수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다. [17] 아예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계약이 확정됐다는 오보까지 뜰 정도였다. [18] 기존 버스는 후원 받은 5,000만원으로 구입했던 2008년식 중고 버스로, 좌석도 좁고 에어컨도 제대로 안 나오는 애로사항이 꽃피었는데, 양현종이 누군가의 후원 없이 본인의 사비를 깨서 기증했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공하면 버스를 기증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바 있다. [19] 3분 10초쯤에 나온다. [20] 한국시리즈 우승, 좌완 투수 신기록, 둘째 아이 [21] 구단 유튜브에서 밝혔다. [22] 양현종은 미국 진출 전까지는 오로지 KIA 타이거즈에서만 활동한 원클럽맨이었기 때문에 부진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런 관점에서 보면 KIA만의 대투수라는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23] 여담으로 양현종에서 이름 마지막 글자가 빠진 투수 양현은 같은 원리로 대투수에서 마지막 글자를 뺀 '대투' 또는 '붉은청'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4] 하지만 모 팀에서 이를 뛰어넘은 볼넷 그랜드슬램이 터졌다. [25] 2019 프리미어 12 도중 일본에서 붙여준 별명. # [26] 사신 김광현, 대부 최형우, 마이스터 이용규 등등. # [27] 공교롭게도 메이저 리그 진출 도전 후 입단한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팀 상징색이 파란색과 빨간색이다. [28] 김상수가 왜 주작이냐면 동생이 음원 사재기로 차트를 주작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윤성환에게 별명이 넘어갔다. 게다가 김상수는 상징색이 검은색인 kt로 이적해서 더 이상 푸른 주작이라는 드립을 칠 수가 없다. [29] 반대로 양현이 잘 하고 양현종이 부진했던 2020년 개막전에 한해선 대투수종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30] 정작 그 경기에서 대량 실점하며 웃음거리가 됐다. [31] 작년 시즌에 8점대 ERA를 기록했다가 점차 각성하여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초반에 부진해도 어차피 후반에 살아날 것을 알고 있으니까 팬들도 5선발을 농담으로만 썼다. [32] 해당 사진에는 임태훈이 작성한 글이 있는데, 임태훈과는 벨트를 빌려주는 등 상당히 막역한 사이다. [33] 참고로 당시 로페즈의 나이는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34] 과거 리그베다위키 시절 이 항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 부분이 '이종범의 아들 정후군에게까지'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대략 '어린애한테 무슨짓이냐'는 느낌의 뉘앙스였는데, 그랬던 이정후가 저 양현종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 [35] 사실 이것도 와이프가 얘기해서 이 정도일 가능성도 있다. 즉 원래 옷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신경쓰는 듯. [36] 해당 경기는 3연전 모두 우천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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