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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0:55:46

야마모토 유타카

야마칸에서 넘어옴
야마모토 유타카
山本 寛 | Yutaka Yamamoto
파일:yamakan2019.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야마모토 유타카
([ruby(山本, ruby=やまもと)] [ruby(寛, ruby=ゆたか)], Yutaka Yamamoto)
출생 1974년 9월 1일 ([age(1974-09-01)]세)
일본 오사카부 미노오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연출가, 작사가
신체 O형
학력 교토대학 문학부 (철학과 / 학사)
소속 야마모토 유타카 사무소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1. 개요2. 약력3. 연출 특징
3.1. 연출 샘플
4. 성향
4.1. 영화감독적 성향4.2. 반사회적인 인간을 증오하는 반사회적인 인간
5. 작품별 특징6. 언행7. 사건 사고8. 평가9. 작품
9.1. 감독 작품9.2. 참가 작품
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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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야마모토 유타카/성공한인생.jpg
사진 가운데에 있는 안경 쓴 남자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별명은 야마칸(ヤマカン). '칸'은 감독의 일본어 발음인 '칸토쿠'의 앞글자이기도 하고, 이름인 유타카(寛, 훈독)를 음독으로 읽은 것이기도 하다. 참고 삼아 덧붙이면 야마칸(山勘)이란 단어에는 사기꾼, 요행을 바란다는 뜻이 있다. 별명이 너무 유명해진 탓에 그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면 야마칸으로 검색하는 게 더 많이 나온다.

자신의 심미안에 자부심을 갖고, 주변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칭 구원자로서의 사명감에 도취되어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소비자 및 애니메이션 업계를 쓰레기라며 매도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센스를 부정하는 사원들을 쓰레기라고 칭하던 오카노 테츠,[2] 업계에서 실력은 있었으나 각종 언행 문제를 일으키면서 업계인들과 팬을 적으로 돌리며 몰락을 자초했다는 점에서는 나나세 아오이와 유사하다.

후술할 행보 때문인지 실명제를 지키는 자 중 자신과 뜻을 함께할 사람만 모이라고 선언하였다. 당연히 유타카와 엮였다가 신상정보가 유출되면 생활에 지장이 가기 때문에 실제 참가한 팬은 12명 정도다. 게다가 참가자 수가 실제 인원인지 주작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2. 약력

오사카교육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교토 애니메이션에 입사했다. 참고로 교토대학은 일본에서 도쿄대학와 마찬가지로 구 제국대학이며 간사이 지방 최고의 명문대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잘 나가던 커리어 초기에는 교토대 출신 엘리트가 애니도 재미있게 만든다는 식으로 학벌이 이미지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술하는 여러 기행, 말실수, 범죄가 구설수에 오른 후부터는 교토대학 출신(웃음) 같은 식으로 더 까이는 단초가 된다.

입사 후에 쿄애니 및 그 자회사 애니메이션Do에 걸쳐 다양한 작품에서 연출을 담당했다. 2001년 경 본격적으로 연출을 다루게 되었으며 타케모토 야스히로에게 사사했다. 당시 독특한 감각과 센스를 십분 발휘하여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내어 업계 내에서 유능한 인물로 손꼽혔으며 이 당시의 일화로 <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에서 연출을 담당했을 무렵에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 "저 녀석보다 재미있게 못 만들면 앞으로 먹고 살기 힘들 거야"(출처 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대학에서의 전공도 그러거니와 기본적으로 연출가 출신인 관계로 콘티 러프 정도 외에 직접 디자인이나 작화를 담당한 경험은 없다. 스스로 그림에 자신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3]

이후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의 < 풀 메탈 패닉? 후못후>, < 풀 메탈 패닉! The Second Raid>, < AIR> 등을 거쳐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연출을 담당, 작품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만든 엔딩 댄스씬을 표절해 만들어 내는 등 작품 전반에 걸쳐 그의 독특한 연출을 활용하며 지명도를 높였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다음 해인 2007년, < 러키☆스타>의 감독으로 기용되지만 4화만에 강판됐다. 강판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추측이 있지만, 제작 스케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방영이 펑크가 나기 전에 잘라버린 것 아닌가 하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때 교토 애니메이션이 감독 강판의 이유로 설명한 "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후에 감독을 맡게 된 칸나기에서 야마칸 자신이 네타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 해 말에 애니메이션 Do에서 퇴사하고 자신과 뜻을 함께한 직원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사 ' Ordet(오스)'를 설립한다. 이후 Ordet의 사장을 역임하다 2016년에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연예계 활동, 강연 활동을 병행하며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오카다 토시오[4]와의 크리스마스 대담에서는, 심야 TV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칭 트와일라잇 프로젝트로,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여고생의 키 이미지가 회장에서 공개되었다.

그 밖에 라인 공식 블로그에서 애니메이션 감상, 먹었던 음식 등을 간단한 평과 함께 공개하기도 한다. 주소는 이곳이다.

이후 2018년 일본 네티즌들은 어떻게 일감이 끊긴 43세의 야마칸이 재정적으로 방탕하게 생활하면서 남에게 고소라는 말을 쉽게 남발하고 다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트와일라잇의 크라우드 펀딩이 잘 되지 않아 실패할 게 뻔했는데 갑자기 2000만엔이라는 거금이 들어온 것도 의구심에 한몫했다.[5] 다만 트와일라잇은 아마미야 소라를 성우로 기용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펀딩이 달성된지라 오히려 야마칸 입장에서는 횡령은 아니지만 굴욕적이다. 야마칸 개인의 홍보가 아닌 유명 성우의 성공을 위해서니 트와일라잇을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야마칸이 실수로 자기 친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설회사의 이름을 발설하는 바람에, 이를 놓치지 않은 유지(有志)가 야마칸에게 고소당할 위험을 각오하고 야마칸이 건설회사의 바지사장 명의로 적혀 있었다고 인터넷에 서류를 유출시켰다.[6]

이후 야마칸은 해명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였으며[7], 일본 네티즌들은 헬리콥터 부모처럼 야마칸이 사고치는 걸 혼내지 않고 감싸고만 있다고 야마칸의 친가로 보이는 건설회사를 비판하였다. 결국 친가의 도움으로 연명하지 못하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다 천식까지 호흡기를 달고 다녀야 할 정도로 악화된 40대 백수에 불과하게 된 것. 정황상 야마칸이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관을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1기 스태프 강판 사태 당시 카도카와를 비판하지 않은 점에 의구심을 느껴 카도카와에게 뒷돈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참고로 문제의 사건이 요약된 링크에선 이것말고도 까일 거리가 수두룩하다. 코이케 카즈오의 사기의혹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야마칸이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까자고 선동한다거나, 마토메 블로그에 자기 신상정보가 털리자 안 삭제하면 블로거의 신상을 털겠다거나, 대선배인 카타부치 스나오의 아내이자 애니메이터 업계에서 명성이 높은 우라타니 치에를 비방하다가 본인의 항의를 듣고 적반하장으로 군다거나, 자기를 비판한 일반인의 신상을 털다가 법적으로 만났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쭈구리 모드가 됐다거나, 잔혹한 천사의 테제 작곡가의 대표곡을 쓰레기라고 비방하다가 분노한 당사자의 항의를 감당하지 못해 항의창구가 될 수 있는 자기 계정의 모든 것을 차단한다거나.

3. 연출 특징

온갖 인성 문제와 사건 사고로 묻혔지만 야마칸의 연출자로서의 연출력은 업계에서도 인정받는다. 움직임과 표정이 자연스럽고 다양하고 인간답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동과 연기의 묘사를 중시한다고 여러 번 말하였다.

댄스 연출로도 유명한데 2D 작화로 안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뛰어나다. 그가 만든 댄스 영상은 한때 니코니코 동화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클립만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장편을 못 만드는건 아니다. 프렉탈도 망했어도 재미없단 소리는 듣지 않았다. 연출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콘티도 매우 잘 그리며 안티 팬조차도 "그림 잘 그리네?" 하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작화 매수를 매우 많이 쓰는 연출가이다. 거의 풀프레임까지 동화를 마구 써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움직임이 역동적이거나 빨리 재생한 것처럼 보인다. 오프닝이나 라이브 신 같은데선 높은 컷 수와 프레임을 사용하고 본편에서는 낮은 프레임을 주로 사용하지만 중요한 장면에선 동화를 몰아 써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넣어 완급을 조절한다. 문제는 이게 별 거 아닌 거 처럼 보이는데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연출이란 것이다. 한 장 한 장을 다 그림으로 채워야 그 움직임이 나오는데 그게다 인건비다.

예로 웨이크 업 걸즈의 1화의 경우는 2분도 안 되는 라이브 신에 다른 TV애니 2편 만들 돈이 들어갔다고. 대사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애니메이터의 부담이 심한 연출. 이런 연출은 미즈시마 츠토무 타케모토 야스히로가 자주 하는 것인데 이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2020년 블로그에서 타케모토 야스히로를 자신의 스승이라 부르고 있다. 칸나기 2화도 무의미한 장면까지 동화를 엄청나게 많이 썼다.

이런 뛰어난 재능에도 쿄애니를 나온 뒤 제대로된 작품이 안 나오는 이유는 정말 순수하게 그의 파탄난 인성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와 스폰서가 없으면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 야마칸의 인성이 글러먹었다고 소문이 퍼져 같이 일해주는 애니메이터와 스폰서가 없는 것이다[8]. 야마모토 유타카와 자주 일하던 마츠오 유스케, 코바야시 케이스케, 카도와키 사토시는 논란 이후로는 야마칸 작품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쫓겨난 야마모토를 지원하던 우에다 마스오 프로듀서도 그가 망언을 거듭하자 전혀 지원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연출을 가르친 제자 야마자키 유타도 Wake Up, Girls! 시리즈 후에는 야마칸을 손절하고 자신이 몸담았던 XEBEC 출신 인물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거듭된 망언 논란으로 야마모토는 인맥이라 할 사람이 싹 사라졌다. 당연히 작화의 질이 떨어지고 야마칸이 연출을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된 작품이 안 나오게 된다. 그나마 치카오카 스나오[9], 히라마츠 타다시는 그는 논란은 있는 건 맞지만 연출력은 확실히 있다며 계속 같이 일해준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웨이크 업 걸즈부터 애니메이터를 공개 모집하는데 인망이 있는 감독이면 알아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지만 이건 그와 작업하려는 애니메이터가 없음을 의미한다. 급기야 돈을 대주는 스폰서마저 없어졌다. 안 그래도 돈 많이 들고, 실력있는 애니메이터가 필요한 연출을 하고 있으면서 이 두 개를 잃어버렸다.

요컨데 재능은 뛰어나지만 돈이나 인간이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안일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해 업계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 애니메이터 뿐만이 아니라 야마칸의 음악적 동지라고 불렀던 코우사키 사토루하고도 Wake Up, Girls! 건으로 사이가 파탄났다가 2024년 겨우 화해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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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G의 오오타 쿠니요시.

칸나기 비처녀 논란 이후 오타쿠 박멸을 목표로 하면서 오타쿠를 불쾌하게 하는 고의적인 연출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짤은 후일 밈으로 유명해졌지만, 애초에 연출 의도부터가 이러했고 밈의 목적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웨이크 업 걸즈의 부자연스러운 팬티 노출이나, 관객인 오타쿠들의 모습을 추하게 비추는 연출이 대표적. 트와일라잇에서는 여자아이가 생리를 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야마모토 유타카 말로는 현실을 직시시켜주는 연출이라고. 문제는 이런 연출은 오타쿠 당사자만 불쾌한 게 아니라 일반 시청자도 불쾌한 연출이라서 악평에 불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AKB48 악수회 피습 사건에서 피해 여아이돌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성희롱을 하였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예쁜 여자만 보인다 싶으면 성희롱을 일삼았던 것이 재조명되면서 그냥 오타쿠 혐오를 핑계로 예쁜 여자를 음흉하게 취급하고 싶어서 문제의 장면들을 넣었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물론, 유타카 본인은 자신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힌 자폭행위인 만큼 이 사건이 여기저기서 언급되면 극도로 부정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작품의 주제가 작사를 하기도 한다. Wake Up, Girls!의 대표 타이틀 곡 대부분을 작사했다. 의외로 작사가로서 능력은 있었다는 평. 토미노 요시유키가 이걸로 유명하지만 야마모토 유타카는 토미노를 대놓고 욕할 정도로 싫어하므로 그의 영향이라기 보단 미즈시마 츠토무의 영향으로 보인다.

3.1. 연출 샘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ED
콘티, 연출 야마모토 유타카 / 작화감독 이케다 쇼코
원화 카도와키 사토시, 이시다테 타이치, 와타나베 마사하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2화 삽입곡 God knows...
콘티, 연출 야마모토 유타카 / 작화감독 카도와키 사토시
원화 니시야 후토시, 야마다 나오코
러키☆스타 OP
콘티, 연출 야마모토 유타카 / 작화감독 호리구치 유키코
원화 호리구치 유키코, 아라타니 토모에, 카도와키 사토시, 이케다 쇼코, 이케다 카즈미
[kakaotv(424650163)]
칸나기 OP
콘티, 연출 야마모토 유타카
작화 감독 미마 카케루(三間カケル)[11], 카도와키 사토시
원화 아카이 토시후미, 와타나베 마사하루, 마츠오 유스케, 사토 토시유키
타니구치 준이치로, 야나기 류타, 하야시 이사오, 카도와키 사토시
작안의 샤나 Ⅱ OP2
콘티 야마모토 유타카 / 연출, 원화 셋샤 고로(拙者五郎)
작화감독 오오츠카 마이
원화 카도와키 사토시, 코다 마사유키, 미마 카케루(三間カケル) 등

4. 성향

4.1. 영화감독적 성향

작품 보는 눈이 굉장히 까칠하다. 지금까지 극찬한 작품은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이나 에반게리온 구작(EOE 포함), 이 세상의 한구석에, 너의 이름은. 정도다.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을 좋아하나 유루캠△처럼 리얼리즘에 충실해도 굿즈가 나와버리면 오타쿠들에게 더럽혀졌다고 분개한다. 보통 정도로 칭찬하는 작품은 와카코와 술, 울려라! 유포니엄 정도로 드물다.

일본 애니메이션 판 전체를 까는데 그 중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이 둘은 인정하다 미야자키 쪽만을 변태 오타쿠와 다를 바 없다고 비하했다. 간혹 이 둘을 까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담아서 까는 정도. 그러나 토미노 요시유키 오시이 마모루는 퇴물이라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토미노를 매우 싫어해서 토미노 특유의 현실보다 과장된 레이아웃이 일본 애니메이션 계를 망쳤다고 크게 비난했다.

이러한 성향은 이제까지 했던 발언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연출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기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건담, 신극장판 에바[12], 공각기동대, 어른제국의 역습 등 역대 인기작이나 명작 그리고 그 작품들을 담당한 감독들은 죄다 비판하면서도 유독 지브리의 작품과 미야자키 하야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 만은 깐 적이 없으며 자신도 지브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어조의 발언을 자주 했다.

다만 발언 수위가 인신공격 수준으로 너무나 심해 당사자들의 항의를 받았으며 정작 당사자들에게 상황이 유리해지면 차단하기 급급해하는 추태를 보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인터넷에서 시비걸고 다니다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스즈키 슌지를 못 알아보고 싸움을 건 적도 있다. 스즈키 슌지는 에반게리온을 그린 사람이다.

한편으로 이유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디어믹스를 위시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활용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 라이트 노벨의 애니화는 갈 데까지 간 애니메이션계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13] 2010년대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의 판도가 블루스와 재즈의 정서에서 팝의 정서[14]로 바뀌는 추세인데 야마칸은 이를 부정적으로 여길 듯하다.

덧붙여, 자신의 블로그에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등 작고한 일본의 명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만약에 케모노 프렌즈 2기 감독을 맡는다면 오모토 타츠키한테 넘기겠다고 말을 하였다.

이러한 강력한 오타쿠 비판의 계기는 2008년 칸나기 비처녀 논란 사건이다. 그 전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마인드였으나, 이 야만적이고 충격적이고 어리석은 비처녀 논란 사건을 보면서 이성 없는 오타쿠 층과 오타쿠를 생산하는 작품에 더 이상 타협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하지만 정작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들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2008년 감독작 < 칸나기>에서 특유의 댄스 연출을 어필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측면이 있다. 더불어 2010년에는 영화 <나의 상냥하지 않은 선배>의 감독을 맡았지만 썩 좋지 않은 평으로 흥로도 좋은 실적을 남기기는커녕 흥행에 실패[15], 이후 2011년 아즈마 히로키, 오카다 마리 등과 함께 열의를 담아 만든 < 프랙탈>이 흥행에서 참패하고 연출이나 서사 등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감독 은퇴 선언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하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야마모토 유타카/사건 사고 문서
8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세간의 평가는 애니메이션 연출가로서는 그 재능을 발휘할지 몰라도 감독으로서 또한 리더로서의 실력은 지명도에 비해 상당히 낮다. 프랙탈 제작에서도 역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좀 더 고찰해보면 야마칸의 문제는 영화적 기법을 애니메이션 주류 기법으로 끌어올려야만 업계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맹신하는 점에서 있다. 리얼리즘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흔히 영화에서 자주 보인다. 그런데 영화의 정서를 영화를 즐기지 않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강요하듯 주류로 끌어올리려니 당연히 합이 맞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모에 열풍을 제외하더라도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소년만화의 애니메이션화를 즐기는 쪽이 주류라 동심을 지켜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거기다 대고 동심을 파괴하는 리얼리즘적 영화 기법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하면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이다.

차라리 영화감독적 성향을 주류로 삼고 싶다고 진작에 정리했으면 '아, 저 사람은 애니메이션 업계보다 영화계가 어울리는 사람이구나'라고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그거 하나 제대로 설명을 못해가지고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차라리 TV 애니메이션 쪽을 포기하고 예술제에만 애니메이션을 제출하거나 영화 쪽으로 가는 것이 본인한테도 업계인한테도 무난했을 것이다. 리얼리즘 영화감독에 가까운 성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예술적 혹은 철학적 집념만은 이해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문화계 전체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데 무슨 빌드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러키스타, 칸나기 등 그가 감독한 주요 작품들 대부분은 스태프 롤을 세로쓰기로 표기한다.

4.2. 반사회적인 인간을 증오하는 반사회적인 인간

急務なのは非社会的な人間どもに発言の場を与えないこと、すなわち匿名の禁止である。
僕はそれしかないと思っている。
시급한 것은 반사회적인 인간들에게 발언의 자리를 주지 않는 것, 즉 익명 금지다.
나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炎上参加者の三分の一は「無職・主婦・バイト・学生」
염상참가자의 3분의 1은 「무직・주부・알바・학생」[16]
#アンチの誹謗中傷にはまず通報を
안티의 중상비방에는 먼저 신고를
야마모토 유타카가 기획고소를 유도하기 위해 쓰는 태그
Q. 질문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지금처럼 많을 필요 없습니다. 선별해서 필요한 인간이 남는 게 좋은 겁니다'라고 트윗하셨지요. 저는 애니메이션이 누구나 봐도 되는 오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선별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야마칸).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죠.

Q. 또, 혹시 야마모토 씨 자신이 선별된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이것이 옳다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A. 물론입니다.
트위터에서의 즉석문답( #1 #2)
지금이야말로 '오타쿠 이즈 데드'를 선언합니다.
"야마칸은 애니메이션 감독인데 오타쿠를 공격하고 있다!"라는 망언은 비정상적인 자신들에게 다른 애니메이션 팬을 끌어들이고 싶은 소망이겠지요.
「애니팬」과「오타쿠」는 다르다, 모두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 이상의 데이터로부터 나는 그렇게 분석합니다.
자기 팬이 편향적으로 지지했을 통계로서의 가치가 없는 오타쿠 혐오 선동 통계를 근거 삼으면서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고, 이 '공범관계' 를 손절하면서 그렇게나 철저하게 비판과 경고를, 거기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배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꾸로, 그 '공범관계' 를 환영하면서 계속 이어나갔다.
しかし僕はすぐさま目覚め、この「共犯関係」から手を切り、その徹底した批判と警告と、やがて排除を始めた。
でも彼らはむしろ、その「共犯関係」を歓迎し続けた。
(중략)
나는 이 재앙을, '우리들이 저지른 실패' 에 대한 '대가' 라고, 여기서 감히 단언하겠다.
僕はこのカタストロフを、「ぼくたちの失敗」に対する「代償」だと、敢えてここで断言する。
僕と京都アニメと、「夢と狂気の12年」と「ぼくたちの失敗」에서,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고인드립. 원문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요약하자면 "익명게시판에서 찡얼대기나 하는 오타쿠 개돼지 놈들 진작에 손절한 깨어있는 나님과는 달리, 쿄애니 니들은 그 광기에 가득찬 오타쿠 놈들한테 굽히고 같이 붙어먹었으니, 니들이 그토록 붙어먹은 오타쿠 개돼지한테 방화 당한 건 그 대가를 치른 것 뿐이다" 라는, 애니메이션 소비자들에 대한 '우매하고 광기에 가득 찬 개돼지'라는 비하 & 억울한 방화 희생자들에 대한 고인드립이 한군데 들어간 어마어마한 망언이다.

애니업계에서 입지를 제대로 잡지 못한 영향으로 비공식적인 반오타쿠계 아마추어 사회평론가 겸 광고로 생계를 유지하는 파워블로거로서 활동이 많아지자, 반오타쿠 사상이 반사회적인 인간들(특히 익명을 쓰는 네티즌)[17]에게 발언의 기회를 박탈해야 한다는 극단주의로 구체화되었다.

극단주의자가 되면서 어떻게든 기획고소를 유도하기 위해 법이란 법은 다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싶으면 신상털이(...)를 하고 사진까지 도용해서 조롱하기 위해서며, 그로 인해 법적으로 불리하다 싶으면 조리돌림당한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면서 계산적으로 법에 걸릴 만한 악플을 다는 비판자를 고소하려 들기도 한다.

5. 작품별 특징

6. 언행

이 인물의 지명도는 사실 약력이나 작품보다는 언행에서 유래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인치고 상당히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낸다는 긍정적인(?) 평도 있지만[19], 이것이 대단히 독선적이고 기이하며 자신이 뒷담화를 악용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탓[20]에 좋지 않은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는 원인을 제공하며 덩달아 그가 맡은 작품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계속 자신의 극단주의를 정당화하려고 애니업계 안팎을 가리지 않고 유명인들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인용해 불쾌감을 산다.[21] 2023년 들어 오타쿠를 분석하기 위해서라면 오카다 토시오라는 애니메이션 업계를 돈벌이에 악용하는 사이버 렉카 사이비 분석론을 인용할 정도로 맛이 갔다.[22] 후술하였듯 2023년부터 갑작스럽게 언행 전반이 무너지면서 뜬금없이 본인과 원한 관계가 하나도 없는 업계인한테마저 범죄자나 프로 정신이 없는 자라고 깔보기 시작하여 일반적인 대화가 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뮤트나 차단을 눌러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른 데로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개중 사건 사고급으로 분류되는 수준의 기행은 별도 항목에서 다루며 여기에서는 논란이나 애교(?) 레벨의 언행을 정리했다.

7.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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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문서로 분리할 정도로 긴 이런저런 사건 사고들은 일어나는 족족 인터넷에서 이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예사다. 이쯤되면 아주 나쁜 의미로 멘탈이 상당히 강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은 덤이다.

8. 평가

종합적으로 보면 순수문학 계열에 가까운 철학과를 전공하고 자부심 넘치는 일본 애니메이터가 자신과 상성이 맞지 않는 미소녀 동물원 하렘물이 일본 애니업계에서 인기를 얻는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 위주로 일본 애니업계를 흥행시켜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 애니업계에 한몫하는 일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은 나름대로 90년대 이후의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해서 일종의 회귀주의와 개혁관을 가지고 있는 모양. 대략 80년대 전후로 발생한 오타쿠 문화를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을 좀먹는 편향적인 세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독선적인 사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처신에 대한 충고를 해도, 비판과 반감에 취해 기행적인 망언을 일삼는다. 게다가 언행 목차에서 정리된 망언을 보면 본인의 취향에 맞는 메가존 23에 참여했던 전(前) 애니메이터의 팔로워 수를 자기보다 적은 300명이라고 비하하여 애초에 애니업계의 부흥은 안중에 없었고 자기보다 수준이 낮다 싶으면 타 애니메이터를 깎아내리는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입증하였다. 이는 여론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주제라고는 하지만, 야마칸은 자기한테 인기가 집중되지 않으면 타 업계인과 팬층을 진정한 애니메이션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하하기 급급해하여 의도는 좋았다고 볼 수조차 없다. 모에풍도 싫다고 깎아내리고, 작가주의도 싫다고 깎아내리면, 도대체 주변 업계인들이 야마칸한테 뭘 어떻게 보답해줘야 하는 것인가? 제3의 길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현대미술처럼 개혁하겠답시고 파격적인 시도라도 해야 만족하는 것인가? 현대미술처럼 싹 갈아엎어 평론가층만 끌어모아도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겠으니 업계는 썩었다고 억지를 부릴 가능성이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만족하는 것인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길은 본인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완전히 작가주의적인 예술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감독으로 돌아서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건 또 본인이 대중문화에 대한 미련이 강해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2010년 이후에 내놓는 썰들을 보자면,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아즈마 히로키 워너비 같은 인식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상은 강하지만 현실이 못 미치는,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맡게 될 작품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여지는 너그럽게 보자면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게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 주류로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것이, 그가 높게 평가하는 신카이 마코토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이상적인 일본 작가주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데, 야마칸에게 그만한 포텐셜이 있었더라면 품행 문제가 있었어도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확보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대중들에게도 애니업계에도 업계 판도를 흔들 정도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과연 순수문학계를 존경하는지도 의문점이 드는게 오사카예술대학이라는 일본 관서에서 명성이 높은 예술대를 졸업한 작가이자 무라카미 하루키를 주로 평론하는 저서를 지속적으로 집필한 평론가로 이름을 알린 도이 유타카(土居豊)가 야마모토의 작품 '트와일라잇'의 고증이 미흡하다고 평론했다는 이유로 듣보잡 취급 한 것도 모자라 게이새끼라고 돌려 욕하는 말까지 했다. 도이가 1967년생이라 야마모토보다 7살이나 많은 예술계 선배인데다 일제 군국주의를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 망언에서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조잡한 후배 예술가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듣보잡 취급을 당해버린 것이다.

정황상 문화계 대선배에게 무례하게 대들어 찍힐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모르고 덤빈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가 주로 활동하는 애니업계를 포함한 미디어믹스 업계만이 아닌 문화계, 특히 영화계[44]에서 스스로 발을 들이지 못하게 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도이를 돌려서 깐답시고 게이새끼가 아니냐고 호모 같은 취미 없다고 조롱하는 바람에 스스로 호모포비아라는 걸 자백해버렸다. 이전부터 인지도 높은 영화평론가인 우타마루(래퍼)를 도를 넘은 피해망상으로 지속적으로 비방중상했는데 도이한테까지 저랬으니 영화계에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던 본인 입장에서만 큰 타격이다.

철학 전공자로서 순수문학계를 동경한다고 자부했기에 이름 높은 순수문학가에게 비판받은 것이 내심 타격이 컸는지 그냥 오타쿠에게 까일 땐 여유로워보이던 가면이 완전히 깨져서 고소하겠다고 극대노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덤이다. 본인도 이후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 생각했는지 트위터 글은 지우지 않았지만 블로그 글에 걸어놓는 일은 없었다.

결국 도이 유타카를 모욕한 시점에서 타이하 코나미가 애니업계의 거물이 쓰는 가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모욕한 비슷한 전례까지 있어, 그가 전공한 철학 이외의 다른 전공 지식을 모르는데다 지속적으로 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소홀히 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뿐이다.

애니메이션 업계를 자기 자신이 떼돈을 버는 것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흑심을 품은 적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면서 지금까지 나름 애니메이션 업계를 걱정하는 모습조차 스노비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생겼다. 이는 야마칸 본인의 언급으로는 교토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퇴사 이후에도 자기를 유일하게 걱정해준 스승인 키가미 요시지와 여전히 교류를 나누고 있어 왔는데, 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어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스승님한테 '그딴 걸 하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한 소리를 들은 점에서 비롯되었다.

이 부분에서 열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상 애니 제작 자금을 횡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받는 편인데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와 달리 대체 불가 인력이라 꽤 많은 페이를 받으며[45] 유명 애니 감독이 좋은 차를 타는 건 금기시되지 않았으므로 횡령했을 가능성은 없다. 있었더라면 이미 대형사고로 번졌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던 방향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변태 오타쿠의 포스트모더니즘화가 아니다'라고 업계 전설을 비하하면서 대체 이 사람이 회귀주의를 갖고 있다면서 왜 회귀주의의 중심이 될 만한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감독까지 비하하는 것인지 더 이상 제3자가 보기에 회귀주의와 모에 열풍을 동시에 부정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나중에 변태 오타쿠 취급할 거였으면 왜 회귀주의를 가지다 부정하고 왜 모에 열풍을 부정한 건지 알 수가 없고,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의 부흥 따윈 진짜 목적이 아니고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인데 남한테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도 못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전이 좋다면서 싫어하고 이후의 해체주의도 싫어하면 제3의 길을 걷겠다는 소리인데 어디서 어떻게 걸어서 애니메이션 업계인과 팬들을 설득하겠단 말인가? 좀 더 고찰해서 본인이 추구한다는 제3의 길을 상술한 영화감독적 성향에 근거한 리얼리즘 애니메이션만을 주류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라 어떻게든 억지로 이해해봐도 결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주류 시청자층인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동과 소년만화 애니화를 기대하는 청소년들의 동심을 파괴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화계와 예술계를 제외한 관점에서도 문제가 굉장히 많은데 예쁜 여자가 보인다 싶으면 성희롱을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추잡하게 일삼는 본성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AKB48 악수회 피습 사건에서 피해 여아이돌을 2차 가해 성희롱하고 조롱하다가 뒤늦게 인실좆될 위험을 느끼면서 삭제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타카는 자신이 오타쿠처럼 성희롱이나 일삼는 존재가 아니라고 항변하려고 불법적인 물귀신 작전까지 저지르면서 동귀어진하려고 오타쿠들의 욕설을 악용한 기획고소를 유도하고 있다. 이미 선입견, 편견, 악의적인 해석으로 실패했다고만 여겨질 단계를 넘어버린 것.

2019년에는 성 소수자 권리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호리에 타카후미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게 주목하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뒤늦게 페미니즘 진영과 정치적 올바름 지지층에 참여한다고 해도 AKB 악수회 피습 사건 당시 피해 여아이돌에게 2차 가해 성희롱을 가한 전적이 있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데 대한 세간의 평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감독을 맡아서 실적을 낸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힌다. 쿄애니를 나와서 직접 감독을 맡기 시작한 게 2008년부터인데도 작품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2020년 시점까지도 2008년에 나온 < 칸나기>가 유일하다. 아울러 작품 전반적으로 늘 말하는 '이상적인 작품'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여기에다 스스로 일으킨 수많은 트러블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 프랙탈>은 그 정도로 망할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판 이런저런 무덤에 의해 상업적으로 대실패했고, 실적 부재와 언행으로 인한 악평이 악순환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 그 결과 본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더 악의적인 해석이 더해지며 비웃음거리로 전락 → 맡은 작품에 안 좋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이 쳇바퀴는 계속되었으며 이런 점들을 따지고 들면 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쫓아낸 교토 애니메이션의 판단은 당시에는 어쨌거나 대국적으로 옳았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또한 친가로 보이는 건설회사가 야마칸을 바지사장 명의로 세워 사실상 회사돈으로 용돈을 줬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동안 야마칸의 독선적인 행보에 의문이 완벽히 풀리기 시작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친가 속에서 유복하게 자라 명문대 철학과를 졸업하는 등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난 몸만 어른이 된 아이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처음 자신보다 열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예상치 못한 일을 연달아 당하자, 인지부조화가 와서 귀족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다 애니업계의 제작진과 오타쿠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 실수를 반복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사이 심리적 빈부격차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덫에 걸려버린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유타카는 자신이 유복하게 자란 아이였다는 것을 의도치 않게 밝힌 시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여 사회적 강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전국민적 증오를 받게 되었다.

집안 사정만 잘 함구했더라면 잘난 척하는 괴팍한 명문대생 애니메이터 정도로만 남았을 것이 순식간에 암묵적인 사회적 명분이 걸린 대립 구도로 번질 수 있게 되었다. 문화계 바깥에서의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진 않으나, 문화계 내부의 상대적 사회적 약자인 오타쿠층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행보가 대립 구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칸나기 이후 야마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분노와 증오에만 취한 나머지 오타쿠 비판 주장에서 논리를 짤 생각조차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타쿠를 비판하려면 대중들을 설득할 논리가 필요하다. 야마칸은 그러한 논리가 전무하다. 논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KADOKAWA처럼 진짜 대중문화의 병폐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지 않는 강약약강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오타쿠 비판 학자로서의 품격이 애초에 없었고 떨어져 갔다.

그가 자기 주장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강자에게도 강한 행보를 보였다면 설득력은 있는 독설가 정도로 달라졌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그가 택한 길은 그가 극도로 혐오하는 충성도 높은 팬과 비틀린 공의존 관계를 맺는 갈라파고스화였다. 이처럼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에 미달할 뿐이다. 지식인은 대중을 설득해 지식을 공존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지식인이 분노와 증오에 빠져 대중을 분열시켜봤자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또한 야마모토 유타카가 철학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의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했어야 했다. 그런데 사회 문제를 비판하긴커녕 철학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에서 도망치고 약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뿐이다. 야마모토 유타카가 일본의 사회 문제를 비판해 위험을 감수하고 대서특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9. 작품

9.1. 감독 작품

9.2. 참가 작품

10. 기타



[1] 오타쿠 혐오 성향이 강해지면서 매일 전력으로 오타쿠의 글을 리트윗해 혐오스럽다고 팔로워들과 조리돌림하고 있으므로 일본어에 능한 접속자, 특히 심약자가 링크를 클릭한다면 증오발언으로 인해 심신에 충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주의. 결국 규칙 위반으로 2023년 5월 25일 정지를 받았다. [2] 그나마 오카노 테츠는 업계에서 쌓아올린 모든 위상을 잃어버린 후 2014년 트위터를 시작하고 나서 옛날 문화를 소개할 뿐이며 이전과 달리 사고도 안 치고 조용히 살고 있다. 또한 그림 인공지능 문제에 진중한 분위기로 업계의 미래를 회고하는 비공식 평론을 트윗하면서 매일 네티즌과 싸우느라 동력을 상실한 야마칸보다는 나아졌다. [3] 그런데 2021년부터 트와일라잇에서 인력 부족으로 자신이 그린 부분이 비판자들에게 까이자 그림 못 그린다고 선동하지 말라고 열폭중이다. 당시에는 그림 담당이 자기가 아니었으니까 겸손하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애니업계에서의 입지를 잃어가는 현재엔 그가 그림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 자존심이 상한 듯하다. [4] 야마칸과 친분을 쌓고 있으며 이쪽도 논란이 심각하다. [5] 다르게 말하면 야마칸이 친척 돈을 자기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횡령했다는 것이 된다. [6] 유지(有志)는 그냥 공무원이 아닌 동네에서 영향력 있는 공무원이다. 웃긴 것은 야마칸이 자기 친가의 건설회사 이름을 발설한 이유가 미개한 오타쿠들의 일자리를 여기서 알아봐주겠다고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나잇값 못하고 친가가 돈 잘 번다고 자기 돈도 아닐 텐데 애처럼 자랑질하다 역풍을 맞은 것. 43살 먹은 어른이 아직도 잼민이마냥 까분다. [7] 일본 네티즌들은 긍정해도 부정해도 바지사장 명의로 적혀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 될 경우 법적 문제가 될 거라 우려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아무리 그가 안하무인해도 유지(有志)와 법적 소송을 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공무원에게는 고개를 숙이면서 오타쿠를 만만하게 보는 강약약강인 셈. [8] 야마칸 본인의 언급으로는 교토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퇴사 이후에도 자기를 유일하게 걱정해준 스승인 키가미 요시지와 여전히 교류를 나누고 있어 왔는데, 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어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스승님한테 '그딴 걸 하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를 사랑하는 스승조차 그의 평소 행실을 안 좋게 보는 것이다. 이후 야마칸은 스승의 이름을 반오타쿠 운동에 팔아먹는 배은망덕한 배신행위로 보답한다. [9] 치카오카는 Wake Up, Girls!의 감독이 이타가키 신으로 바뀌자 "야마모토가 없는 Wake Up, Girls!는 Wake Up, Girls!가 아니다." 라면서 바로 하차하기도 했다. [10] 프레임을 늘리거나, 고속 재생한 게 아니다. [11] 야마모토 유타카가 소속되었던 회사 Ordet의 크리에이터들의 공동 필명이다. [12] 신 극장판을 까는 이유가 에바를 까는 게 아니고 신극장판의 변경점이 구 TV판보다 못하다고 까는 것이다. 이 인간은 구판 원리주의자다. [13]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일반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이자 제작에 참여한 작품 중 최대 히트작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이다. [14] 순수 팝이라기보다 모에가 가미된 팝의 정서지만. [15] 그래도 TAMA 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고 영화예술에 거론되는 등,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다. [16] 경제학자 야마구치 신이치(山口真一)의 무직, 주부, 알바,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는 논란이 된 강연을 비판한 유타카의 블로그 글이다. 여기서 유타카는 간접적으로 무직, 주부, 알바, 학생보다 오타쿠가 유해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논조로 증오심을 쏟아내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무직, 주부, 알바, 학생에게 증오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 [17] 특히 5ch를 2ch라고 언급하면서 경멸한 적이 있는데 모든 오타쿠를 2ch 할 부류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2ch는 사칭범이 많아서 일반인의 여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18]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대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야마칸이 직접 말하지는 않고 다른 성우를 쓴다. [19] 딱 영미권에서 태어났으면 레딧에서 키배를 잘할 것 같은 성격이다. 물론 이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20] 그나마 오타쿠와 자기 기준으로 반사회적인 인간을 증오하기 전까진 애니메이션 업계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나, 증오 감정에 편승하여 타락한 이후로는 일본 내에서도 그저 차별주의자 이상은 아닌 존재로 전락했다. 이후 친가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설회사가 야마칸에게 회사돈으로 용돈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왜 사고방식이 현실적이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이제 왜 독선적인지만 알면 된다 [21] 애니메이션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다른 분야의 팬이 기분 좋은 팬심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갑자기 모르는 예술계의 독선적인 자칭 전문가한테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인의 문구가 인용당한다면 당연히 불쾌할 것이다. [22] 2022년까지만 해도 오카다의 사이비 이론을 인용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신건강에 악영향이 간 것이 이전보다 잘 보인다. 문제의 분석론을 야마칸이 생각한 바에 따르면 귀멸의 칼날이나 진격의 거인이 어머니를 잃어버린 남자애의 줄거리를 다뤘었는데 오타쿠들이 원래 여자가 중심이라서 어린 남자 주인공의 모험을 방해하는 것이 어머니라는 잠재의식이 업계까지 작용한 것이라면 원래 오타쿠가 남성 위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성 청소년 위주로 시작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만화를 좀 본다는 사람 중 오타쿠든 일반인이든 귀멸의 칼날과 진격의 거인을 가지고 오타쿠의 기원이 어떻냐고 따지는 사람은 야마칸말고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논란이 되는 사람의 이론을 반쯤 진지하게 분석해 어떤 수요층을 겨냥했는지 모를 지경의 통할지 의문인 정체불명의 이론을 주장한 것이다. [23] 훗날 야마칸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가 언급한 '브랜드의 힘'은 애니메이션 회사의 명성을 올리는 것이 아닌 애니메이터의 자의식을 높이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애니메이터의 명성이 높아져도 사회현상을 일으킬 정도까지는 아닌 추세가 오래 지속되었기에 야마칸의 비전은 그시보못을 강요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애니메이터를 중심으로 한 상명하복 똥군기 피라미드 계급제를 야마칸 본인이 주장하는데 애니환경의 열악함을 목격한 업계인과 애니 팬덤이 그의 변명을 들어줄 리가 없다. [24] 우타마루가 인지도 높은 영화 평론가로서 나의 상냥하지 않은 선배를 보고 야마칸이라는 자기 자신을 아이돌화하여 실패한 아이돌로서의 단편을 보여주는 감독의 영화라는 혹평을 했을 뿐인데 유리멘탈이 깨져서 저렇게 반응한 것이다. 감독 본인을 인격적으로 비방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상처입은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 유리멘탈이 타락한 전형적인 예시다. 정리본 피해망상이 심해졌는지 우타마루를 영화제작자에게 굽신거리는 랩도 제대로 못하고 영화평론도 제대로 못하는 본업이 뭐인지 모르겠는 놈이라고 디스하고 있다. 한국에서 저런 발언을 했으면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먹어도 할 말이 없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25] 앞뒤 내용을 따져볼때 실제로 유태인을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 발언의 해명 트윗이 더 가관이라. [26] 원본은 뒤늦게 불길한 예감을 느낀 2차 가해자 '야마칸'이 삭제하였으나 이미 박제되어 퍼진 지 오래였다. 야마칸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예뻐보이는 여성이 보인다 싶으면 성희롱을 일삼는 등 자신이 싫어하는 오타쿠가 할 법한 짓을 하고 있었으니 예견된 사고였다. 이후 한 방문자에게 '파워블로거지처럼 금모으기 운동이나 한다는 자각은 없는 거냐?'라고 까였다. [27] 사정을 설명하자면 유타카가 산케이 신문에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을 계기로 오타쿠를 박멸하고 애니업계를 모에물의 마수에서 완전히 정화해야 한다는 논조의 찌라시 인터뷰를 했다가 정체불명의 압력으로 삭제당하는 일을 겪는다. 이에 유타카는 쿄애니에게 그럴 힘이 있을 리가 없으며 있다고 한다면 쿄애니의 애니 스폰서가 된 적이 있는 애니메이션 스폰서계의 거대기업 부시로드의 짓일 것이라 생각해 다이스케 이사한테 따지게 된다. 그러나 다이스케가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유타카는 고집을 부려도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압력을 가한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애니업계를 바꾸겠다는 야마칸이 부시로드 하나도 못 이긴다며 안티들이 강약약강이라 조롱하는 것은 덤. 부시로드가 애니업계 중 보수적 성향이 덜하고 진취적인 성향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애니메이션 연출가로서의 비전에 장기성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28] 산케이 신문은 혐한 성향인데다 일본인에게도 악평을 받는 찌라시 신문이다. 본인 말 때문에 혐한 관련으로 주목받으면 부시로드 이사가 넷 우익의 테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받을 요소가 되었다. 다이스케는 유타카의 질문에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이후 그가 지속적으로 묻는 일은 없었다. [29] 논란을 지속적으로 일으켜 반성조차 하지 않아 몰락한 일개 애니메이터가 자기보다 직책이 높은 부시로드 이사에게 거짓발표하는 거 아니냐고 하극상이나 마찬가지인 항의를 한 것. [30] 모에 열풍과 전혀 상관없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업계 선배인데도 변태스러웠다고 사실상 비하했다. [31] 暴れん坊. 보통 망나니라는 뜻이며 한국어로 치면 [32] 오사카예술대학이라는 일본 관서에서 명성이 높은 예술대를 졸업한 작가이자 평론가로 이름을 알렸다. 1967년생이라 야마모토보다 7살이나 많은 예술계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본 망언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듣보잡 취급을 당해버렸다. [33] 참고로 도이 유타카는 태평양 전쟁 무타구치 렌야 야마토 정신을 깔 정도로 일제 군국주의를 비판한 예술계의 거물이다. [34] 평론 내용은 트와일라잇의 주연들이 PTSD를 앓고 있는데 그것이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아 개연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요지의 글. 도이가 일제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으로서 PTSD 묘사를 섬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었으나 야마모토는 무지에서 비롯된 경솔한 언행으로 이를 묵살했다. 사건 사고 문서의 역사인식을 보면 알 수 있듯 야마모토는 군국주의를 정당화하였다. [35] 도이 유타카는 아마존 프라임으로 당당히 합법적으로 보고 샘플 사진만을 걸어 리뷰한 것이다. 따라서 야마모토는 자신보다 예술적으로 이름난 존재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듣자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여 발악하며 깎아내릴 뿐이다. 순수문학적 복고주의를 추구하는 그가 순수문학계의 명성이 높은 존재에게 부정적인 평론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으며 자신의 이상에 부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6] 비슷한 사례로 오타쿠가 자기 작품 사진을 사용하자 JASRAC을 비롯한 건수가 잡힐 만한 단체란 단체에 무작정 저작권 위반 신고글을 작성했는데 JASRAC에서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못박아버렸다. 이후 유타카는 왜 저작권 위반이 아닌 거냐고 발광했다. # JASRAC이 일본 저작권법의 병폐라는 걸 생각하면 오타쿠를 박멸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37] 야마모토의 트집이다. 평론 본문에서 표절 얘기는 하나도 언급되지 않았다. [38] 도이가 비판 평론으로 오타쿠들에게 트위터에서 좋아요를 받는 걸 보고 자기를 스토킹한 거 아니냐고 망상해서 자기 혼자 기획고소를 유도하는 것이다. [39] 원문 かまってちゃんかよ。 かまって는 외로워서 관심받고 싶은 사람을 말한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어감이 다르지만 상대방을 모욕할 때 조롱하는 어조로 쓰면 '너 관종이니?'처럼 쓰인다. 야마모토가 쓴 의미는 당연히 관종 취급. [40] 한마디로 문화계 선배를 게이새끼라고 돌려깐 것이다. [41] 할 말이 얼마나 없었는지 'WUG 때는 말이야 모 명감독이 있었는데'라고 영양가도 실용성도 없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42] 정작 일상물 난민들은 일상물이 나오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뿐이며 일상계 비평을 빌미로 남한테 무근거한 인신공격을 하는 야마칸한테 학을 떼면서 질색한다. 패러디나 밈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도 '작품은 무조건 독립적이어야 하고 다른 것과 엮여서는 안 된다는 야마칸' 한테 질색한다. 야마칸의 논리대로라면 어떠한 작품이 역사서에 실리는 것조차 원작자가 죽어도 싣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는 것인데 이 논리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43] 안 줄이면 불펌 트윗으로 주목받기 때문에. [44] 오사카예술대학은 문화계에서 이름난 인재를 배출했으며 특히 영화계에서 그러하기 때문. [45] 그래서 의외로 외제차 타는 감독도 꽤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경우는 자동차 매니아라 차를 자주 바꾸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참고로 미야자키가 외제차를 처음 산 시절의 환율은 1달러가 350엔이었다. 지금이야 미야자키가 거장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때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들기도 전이었고 인기 감독도 아니었다. 스다 마사미 포르쉐를 끌고 다니는 걸로 유명했다. 애니 업계는 연예계와 같아서 유명하고 능력있는 사람과 신인의 임금 격차가 굉장히 크다. [46] 도호쿠 대지진 피해자를 위한 자선 목적에서 기획된 숏 애니메이션. 오피셜 페이지. [47] 여기서도 언행이 경솔한 건 변하지 않았다. 도호쿠 대지진 자선보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한 듯한 뉘앙스의 대사로 홍보 트윗을 과장된 느낌표까지 써가면서 올렸기 때문. [48] 약력 항목에서 알 수 있듯 친척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논란이 있다. [49] 콘티는 니시키오리 히로시. [50] 야마모토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만들고 싶었던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이런 일상적인 연기가 많은 작품이었다. [51] 반대급부로 내가 좋아하던 그 에피소드를 만든 게 이런 인간이었냐 하고 충격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52] 2012년에 새로이 만들어진 레이블로 대표작으로는 유미즈루 이즈루 인피니트 스트라토스가 있다. 이 구역의 미친 놈은 나야 [53]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동명 영화에서 스튜디오 명을 따왔다. [54] 아니마치온은 오타가 아니다. 철학과 졸업 이력을 살려 Animation을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발음한 것을 가타카나식으로 쓴 것. 필아니마치온의 유래는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와 Animation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보그체처럼 소위 있어보이려고 허장성세를 부린 것이라 안티들에게 스노비즘이라 욕먹고 있다. [55] 자기 손으로 삭제한 것이 아니라 라인을 고소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라인은 병먹금으로 일관했고 야마칸은 오타쿠처럼 광기로 가득한 라인 따위 필요없다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는데 자기 혼자서 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