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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5:54

애티튜드 시대/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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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996년: 애티튜드 시대, 서장 - Austin 3:163. 1997년: 변화 - 디 제네레이션 X4. 1998년: 새로운 전설의 시작 - The Stone Cold Saga5. 1999년: 전환점 - The People's Champion6. 2000년: 비약적인 발전 - The Great One7. 2001년: 전쟁의 끝, 최후의 승자 - Invasion8. 2002년: 애티튜드 시대, 종언 - Brand Extension9. 애티튜드의 마지막 황혼10. 이후의 시청률 경쟁

1. 개요

WWE 애티튜드 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로, 문단이 길어짐에 따라 하위 문서로 분리되었다. 비단 WWE의 내용 외에도 WWE와 경쟁했던 WCW, ECW의 내용도 일부 서술되어 있다. 특히 월요일 밤의 전쟁이라고 검색해도 본 항목으로 들어올 정도로 당시 WCW의 전개 또한 애티튜드 시대의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WCW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단하게 훑어보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그야말로 오늘날 프로레슬링 팬이라고 하면 누구나 리즈 시절이라고 꼽는 프로레슬링의 최대 황금기이자, WWE 역사 가운데 가장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나 10대들의 전유물로 보이던 프로레슬링이란 종목이 '어른의 종목'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고, 통칭 '애티튜드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와 같은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이 시기를 전후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 때를 전후해 프로레슬링은 그야말로 '상남자들이 보는 마초 드라마'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다만 음지도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변한 경기력으로 인해 심의단체의 눈초리에 시달려야 했으며[1][2], 과도한 성적인 묘사, 특히 여성들을 성적 만족의 존재로 묘사한 부분들이 많아 이에 대한 반발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3]. 게다가 시청률이라는 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해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진행까지 포함시켜 진성 팬들을 외면하게 만든 시기도 바로 이 때이기도 했다[4].

2. 1996년: 애티튜드 시대, 서장 - Austin 3:16

평균 시청률: 2.6% (3.2%)
최고 시청률: 4.7%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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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8일, 스티브 오스틴이 WWF에 데뷔했다. 같은 달 21일 WWF 로얄럼블(1996)에서, 숀 마이클스는 18번으로 등장해 제리 롤러, 요코주나, 오웬 하트 등을 탈락시키고 마지막으로 디젤마저 탈락시켜 우승을 차지한다. 이로써 숀 마이클스는 2년 연속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루었다.[5] 이후 숀 마이클스는 챔피언 브렛 하트를 상대로 WWF 레슬매니아 12에서 전설적인 60분 아이언맨 매치를 치른 후 마침내 챔피언에 등극한다.[6]

레슬매니아 12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사비오 베가에게 승리를 거두고, 본인이 고안한 링네임인 '스톤 콜드' 를 최초로 사용한다. 또한 레슬매니아 12의 흥행을 위해 급하게 복귀시킨 얼티밋 워리어 트리플 H를 순식간에 초살시켰다. 그리고 이 무렵 세이블이 데뷔한다.

4월 1일, 애티튜드 시대의 핵심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활동했던 믹 폴리가 맨카인드 기믹으로 WWF에 데뷔한다. 이후 그는 언더테이커와 대립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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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19일, 이후 WWF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 커튼 콜 사건이 발생한다. WWF의 사조직 클리크의 일원이었던 디젤 레이저 라몬은 WCW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이적하게 된다. WWF는 이를 스토리라인에 반영하여 디젤과 레이저 라몬이 숀 마이클스 트리플 H에게 패배하면 WWF를 떠나야 한다는 조항을 건 경기를 치렀다는 설정을 했고, 숀 마이클스 & 트리플 H 팀이 승리를 거두면서 두 사람은 각본상 WWF를 떠나게 되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클리크에서의 인연으로 서로 친했던 네 사람은 이 경기가 끝나고 경기에서의 캐릭터를 버린 채 서로를 끌어안았다. 프로레슬링의 룰을 어긴 행동이었기에 빈스 맥맨은 크게 분노했으나, 디젤과 레이저 라몬은 WCW로 떠나서 처벌을 할 수 없었고 숀 마이클스는 WWF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적인 스타 선수였기에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결국 독박을 쓴 것은 가장 만만했던 트리플 H로, 이후 트리플 H는 예정된 푸쉬를 받지 못하고 동네북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스티브 오스틴에게 푸쉬가 몰빵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7]

커튼 콜 사건이 벌어진 후 WCW로 이적한 스캇 홀과 케빈 내시는 마치 WWF 선수가 WCW에 난입한 듯 행동하면서 WCW를 조롱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WWF를 대표하던 선수였고, 상황을 모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게 돌발상황인가, 진짜인가.'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면서 빠져들게 만들었다.[8]

6월 16일,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에서 '아웃사이더즈' 케빈 내시와 스캇 홀은 그들을 인터뷰하는 에릭 비숍에게 본인들은 WWF 소속이 아니라고 말한 뒤, 에릭 비숍을 잭나이프 파워 밤으로 스테이지 아래 테이블에 처박아버렸다. 바로 이 순간을 기점으로 WCW는 WWF를 시청률 경쟁에서 압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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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it there and you thump your Bible, and you say your prayers, and it didn't get you anywhere! Talk about your psalms, talk about John 3:16…… Austin 3:16 says I just whipped your ass!"

6월 23일, WWF 킹 오브 더 링(1996)에서 WWF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그먼트가 탄생했다. 킹 오브 더 링 결승전에서 제이크 로버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스티브 오스틴 종교를 믿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제이크 로버츠를 조롱하며 "오스틴 복음 3장 16절 가라사대, 난 단지 네 엉덩이를 걷어찼을 뿐이다!" 라는 WWF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날렸다.[9] 이에 팬들은 곧바로 호응하며 스티브 오스틴의 캐릭터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고, 이미 킹 오브 더 링 우승 등으로 푸쉬를 받던 오스틴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져 갔다. 한 마디로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오스틴의 명대사가 탄생하는 동안에도 WCW발 태풍은 멈추지 않았다. 7월 7일의 WCW 배쉬 앳 더 비치(1996)(Bash at the Beach)에서 아웃사이더즈는 스팅, 렉스 루거, 마초맨 랜디 새비지를 상대로 메인이벤트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인터뷰를 맡은 민 진 오클랜드가 "'제 3의 멤버'는 어디에 있는가?" 라 질문하자 "그는 여기 왔고, 준비되어 있다" 라고 한 뒤 링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경기 도중 렉스 루거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면서 2대 2로 경기가 전개되었고, 후반으로 접어든 경기는 네 명이 모두 쓰러지며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 때 헐크 호건이 링으로 걸어들어오고, 중계진과 관객들은 당연히 호건이 천하의 무뢰배 케빈 내시 스캇 홀을 혼쭐을 내주리라고 예상하며 환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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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링으로 들어온 헐크 호건은 마초맨에게 레그드랍을 날렸고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충격에 빠진다. 헐크 호건이 바로 아웃사이더즈의 3번째 멤버였던 것이다. 경기는 아웃사이더즈의 승리로 끝났고, 경기 후 헐크 호건은 민 진 오클랜드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바로 레슬링의 미래이고, 너흰 이것을 '새로운 세계의 질서(New World Order)'라 불러도 좋다" 라고 말한다. 이렇게 전설적인 스테이블인 nWo가 탄생했다.

미국의 영웅, 아이들의 영웅, 무적 선역 기믹의 상징이자 아이들에게 "기도 많이 하고 비타민을 열심히 먹으라." 고 말했던 그 헐크 호건이 최강의 악당 할리우드 호건으로 변신한 이 턴힐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WCW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임팩트 있었던 WCW 데뷔 이후 점점 추진력을 잃고 인기와 주목을 상실해가던 호건은 이를 기점으로 다시 자신이 프로레슬링계의 가장 거대한 아이콘 중에 한 사람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WCW의 기세는 가히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다음 달인 8월, 대립이 격화된 언더테이커와 맨카인드는 WWF 섬머슬램(1996)에서 역사상 최초의 보일러룸 매치를 치렀다. 이 경기의 종반부에서 언더테이커의 측근이었던 폴 베어러는 언더테이커를 배신하여 맨카인드의 승리를 돕는다. 챔피언 숀 마이클스 베이더와의 경기에서 탑로프 문설트를 사용하여 그를 물리치고 챔피언을 유지했다.

맨카인드와 언더테이커의 대립은 절정에 이르러 10월의 WWF 인 유어 하우스 11: 베리드 얼라이브[10]에서는 언더테이커가 승리를 거두지만 경기 후 언더테이커는 다른 레슬러들의 공격으로 생매장을 당하고 만다. 맨카인드와 언더테이커의 대립이 11월의 서바이버 시리즈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WWF 챔피언 숀 마이클스 사이코 시드에게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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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6)에서 락키 마이비아(Rocky Maivia)라는[11] 레슬러가 데뷔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패션과 외모의 프로레슬러가 훗날 프로레슬링계의 가장 거대한 아이콘 중 한 사람에서 5년 후엔 영화계에도 진출해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3. 1997년: 변화 - 디 제네레이션 X[12][13]

평균 시청률: 2.6% (3.7%)
최고 시청률: 4.1% (5.0%)

WWF 로얄럼블(1997)에서 숀 마이클스 사이코 시드를 꺾고 WWF 챔피언 타이틀을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클스의 부상 때문에 WWF 챔피언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또한 로얄럼블 경기에서 5번으로 출장한 스티브 오스틴은 45분 7초를 버티며 로얄럼블에서 우승, 푸쉬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스틴은 한 번 탈락했으나, 심판이 이를 보지 못했기에 몰래 링에 다시 들어와 브렛 하트를 탈락시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오스틴은 당시 WWF의 최대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와 대립을 벌이게 되었다.

2월 16일, WWF 인 유어 하우스 13: 파이널 포에서 팬들에게 인기 없었던 재미없는 선수 락키 마이비아는 트리플 H를 격파하고 데뷔 후 3개월만에 역대 최연소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한다.[14] 이 당시는 단일 브랜드였기 때문에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의 가치가 아주 높았던 시절이었으므로, 락키 마이비아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락의 푸쉬는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대단히 보기 드문 수준의 빅푸쉬였다.[15]

같은 날, 브렛 하트 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베이더와 경기를 치러 승리를 거두었고, 공석이었던 WWF 챔피언이 되어 통산 4회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뉴 제너레이션 세대의 아이콘 브렛 하트의 이번 챔피언 기간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세계 정상급의 테크니션 레슬러로서 진중한 캐릭터였던 브렛 하트의 체제는 각본상으로든 실제로든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WWF 팬들은 브렛 하트를 여전히 최고의 선수로 여기면서도 온갖 망나니 짓을 보여주던 또 다른 아이콘 숀 마이클스는 물론, 빅 푸쉬를 받으며 Bad Ass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혜성같은 신예 스티브 오스틴에게, 그들이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을지 모르지만) 완고한 캐릭터였던 브렛 하트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선역 아이콘이던 브렛 하트는 자극적인 것만 찾는 미국 관중들에게 점차 야유를 퍼붓는가 하면, 미국과 전세계의 팬들에게 캐나다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최고의 테크니션 레슬러였던 브렛 하트는 점차 가시돋힌 말을 내뱉는 독설가로 변했다. 이 당시는 WCW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수준이었고 WWF의 상징이었던 브렛 하트마저 WCW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이러한 각본은 팬들에게 더욱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더해 브렛 하트는 3월 7일의 RAW에서 빈스 맥맨을 밀치기까지 하였다.[16] 그리고 선역 메인이벤터이자 아이들의 영웅이며 신사적인 히트맨 캐릭터로 활동하던 브렛의 입에서 최초로 "Son of Bitch!""Fuck You! Asshole!"이란 수위 높은 욕설이 나와서 보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이는 오스틴과 빈스 맥맨의 역사적인 대립이 벌어지기 6개월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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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파이널 포 이후의 RAW에서 브렛 하트 사이코 시드와 타이틀전을 치렀고, 여기서 스티브 오스틴의 도움을 받은 사이코 시드 브렛 하트를 꺾고 새로운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 대립이 WWF 레슬매니아 13까지 이어지면서 브렛 하트와 스티브 오스틴은 서브미션 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실로 역사적인 경기가 탄생했다. 브렛 하트와 스티브 오스틴은 레슬매니아 13에서 엄청난 명경기를 펼쳤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는 이 경기를 1997년 올해의 경기로 선정했으며, 데이브 멜쳐는 이 경기에 별점 다섯 개를 주었다.[17] 경기 자체도 엄청난 경기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티브 오스틴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부분이었다. 이 경기의 최후반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브렛 하트의 샤프슈터에 걸려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탭아웃을 치지 않고 어떻게든 브렛의 샤프슈터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나중에는 죽을 힘을 다해 버텼다. 시청자들은 피까지 흘리며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오스틴의 캐릭터에 매료되었으며, 브렛 하트는 경기에서 이기고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급기야 기절한 오스틴을 두들겨 패다가 당시 특별 심판이었던 켄 샴락에게 무력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분명히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오스틴은 손을 내미는 관중들에게 짜증을 내며 등장하고, 브렛 하트는 관중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어린아이의 응원까지 받으며 등장했지만,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고, 스티브 오스틴이 비틀거리며 걸어가자 그에게 환호하게 되었다.[18] 이 한 경기로 인하여 스티브 오스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같은 날 언더테이커는 사이코 시드를 꺾고 통산 2회 WWF 챔피언이 되었지만, 이 경기의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에 상대적으로 묻혔다. 이후 선역으로 전환한 오스틴과 언더테이커의 대립이 잠깐 벌어지다 숀 마이클스 VS 오스틴의 대립이 킹 오브 더 링까지 이어졌고,[19] WWF 킹 오브 더 링(1997)에서 트리플 H가 1년간 먼 길을 돌고 돌아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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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의 위상이 WWF에서 점차 커지는 와중에, 주목을 독차지하며 연예계 등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던 WCW는 NBA 시카고 불스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1997년의 WCW 배쉬 앳 더 비치(1997)에 출연시켰고, 심지어 경기를 하게 만들었다. 데니스 로드맨은 할리우드 호건과 팀을 이뤄 렉스 루거, 더 자이언트를 상대했는데 생각보다 준수한 기량을 보인 로드맨 등으로 인해 의외로 볼만하다는 평과 함께 WCW는 언론의 주목, 흥행 수익을 쓸어담게 되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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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까지의 시청률 경쟁 추이. WWF는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2위 단체가 되어 허덕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WWF 섬머슬램(1997)에서는 언더테이커가 브렛 하트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다.[22] 그러나 가장 큰 이슈는 스티브 오스틴 VS 오웬 하트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파일 드라이버가 잘못 들어가는 사고가 터지며 오스틴의 목이 실제로 부러지게 된다. 이후로 오스틴은 지속적인 목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오스틴은 초인적인 프로 정신으로 어찌어찌 롤업으로 경기를 끝내고[23],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며 경기장을 나가는 엄청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연히 이때 얻은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은 경기를 치를 수 없어 반납해야만 했다. WWF는 지난 1년간 공들여 푸쉬를 준 특급 선수가 WWF 챔피언 한 번 되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만다. 실제로 이 목 부상은 이후 커리어 내내 오스틴을 괴롭혔고, 오스틴이 이르게 은퇴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실제 상황을 WWF에서 각본으로 이용한 것인데, 오스틴의 부상 복귀 과정에서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라고 주장하는 오스틴과 선수 생명을 걱정한 수뇌부의 갈등 장면이 Raw Is War를 통해 그려진 것. 이 장면들이 가지는 상징성이 대단한데 엄연히 선수 위의 존재였던 수뇌부들이 일개 선수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처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시 커미셔너였던 서전 슬로터를 시작으로 해설자 짐 로스에 이어 가장 높으신 이 분까지 당했다. 이는 이후 본격적인 악덕 사장 기믹으로 변신한 그 분과의 치고받는 갈등관계에 대한 빌드업이기도 한 것이다.


오스틴 VS 맥마흔의 시작점으로 빈스가 당한 첫 스터너. 3분 40초 경 나온다. 감전당한 듯한 회장님의 연기가 일품이다.

이 사이, 락키 마이비아는 1997년 8월 11일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The Nation of Domination)에 가입, 악역으로 완전히 턴힐하면서 이때부터 더 락이라는 닉네임을 처음으로 사용한다. 턴힐한 더 락은 거만을 떨고 흑인식 음담패설과 조롱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우리가 아는 더 락의 캐릭터를 확립하기 시작한다.

9월 7일 WWF 인 유어 하우스 17: 그라운드 제로는 WWF 역사상 최초로 5대 페이퍼뷰 이외에 2시간이 아닌 3시간 체제로 방송된 페이퍼뷰였다. 이는 WCW를 견제하기 위한 WWF의 선택이었다. 브렛 하트는 패트리어트를 상대로 승리한 뒤, 성조기로 상대의 목을 조르며 미국을 조롱했다. 10월 5일, WWF 인 유어 하우스 18: 배드 블러드에서는 또 다른 역사적인 경기가 탄생했는데, 바로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역사상 최초의 헬 인 어 셀 매치였다. 치열한 경기 끝에 언더테이커는 승기를 잡아 숀을 요리했고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으나, 케인의 난입으로 인해 패배하고 말았다. 빅 레드 머신 기믹 케인의 데뷔이기도 했던 이 경기는 1997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3위에 선정되었으며, 데이브 멜처에게 별 다섯 개를 받았다.[24]

1997년 9월 22일, WCW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웬 덩치 큰 무명 자버는 휴 모러스와 경기를 치렀다. 경기 결과는 의외로 이 덩치 큰 선수의 승리였고, 팬들은 무명 선수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이것이 바로 빌 골드버그 무적 전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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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그 이후로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된 전설의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7)가 열렸다. 이때 4개월 전 섬머슬램에서 목이 부러졌던 스티브 오스틴은 더 레슬링을 계속하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귀를 강행했고[25] 오웬 하트를 물리쳐 통산 2번째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숀 마이클스 브렛 하트의 메인 이벤트 도중,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인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발생한다. 이 당시, 지난 10년 가까이 WWF의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의 WCW 이적은 확정된 상태였다. 빈스 맥맨은 WWF의 이미지와 챔피언의 가치를 고려하여 브렛 하트가 서바이버 시리즈에게 숀 마이클스에게 패배하여 타이틀을 내주기를 바랐다.[26] 그러나 서바이버 시리즈가 열리는 곳은 브렛 하트의 조국, 캐나다의 몬트리올이었다. 조국 팬들 앞에서 사이가 나빴던 숀 마이클스에게 패배하길 원하지 않았던 브렛 하트는[27]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경기 후반에 하트 파운데이션과 DX의 난입으로 인한 경기 무효 판정으로 타이틀을 방어하고, 그 다음 날 RAW에서 자신이 타이틀을 반납한다는 의견을 내었다.[28] 이 문제로 브렛 하트와 빈스는 계속해서 다툼을 벌였고 브렛 하트는 불안감에 시달렸으나 결국 브렛 하트의 의견 대로 가자고 결정되었다.[29] 그리고 결국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이루어졌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빈스 맥맨은 내부적으로든[30] 외부적으로든 무수하게 욕을 얻어먹었으나, WWF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빈스 맥맨의 악덕 회장 이미지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이를 스토리라인에 그대로 써먹게 된다. 또한 비록 위대한 테크니션이지만 진중한 레슬러였던 브렛 하트의 이미지 때문에 어느 정도 막 나가는데 제한이 있었던 WWF는, 그야말로 개망나니였던 악동 숀 마이클스와 Bad Ass 기믹의 오스틴을 이용해 극한의 자극을 줄 수 있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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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아 삽시간에 급등한 WWF의 시청률 추이.
"Are you ready?"

이런 WWF의 행보에는 디 제네레이션 X가 전면에 있었다. 숀 마이클스, 차이나, 트리플 H 등으로 구성된 스테이블 디 제네레이션 X[32] 대체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온갖 막장 짓을 TV쇼에서 여과없이 저지르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WWF도 이런 DX를 지원했다. 당장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졌던 서바이버 시리즈 이후 그 해 12월의 페이퍼뷰 이름이 D-Generation X였을 정도니... 이 시기부터 WWF의 시청률은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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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기부터 더 락과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애티튜드 시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두 영웅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악역이었던 더 락은 스티브 오스틴이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나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이라며 시비를 걸었고, WWF 인 유어 하우스 19: 디 제네레이션 X에서 오스틴은 더 락을 박살내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RAW에서 빈스 맥맨이 재경기를 가질 것을 요구하자, 오스틴은 "이딴 타이틀은 나에게 격이 맞지 않는다, 나는 이제 WWF 챔피언을 노릴 거니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라며 더 락에게 타이틀을 넘겨준 후, 바로 스터너를 날렸다. 그리고 벨트를 내놓으라는 더 락의 이야기에 아예 벨트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짓까지 보인다. 이는 오스틴과 더 락이 가진 대립의 전초전이자 애티튜드 시대를 상징하는 오스틴과 빈스 간 대립관계의 실질적인 시작이기도 했다.

12월 28일의 WCW 스타케이드(1997)에서 스팅은 특별 심판으로 나온 브렛 하트의 도움을 받아 할리우드 호건을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원래 젊었을 때의 스팅은 화려한 페이스 페인팅의 열혈 서퍼 기믹이었는데, WCW에 nWo가 결성된 후 가짜 스팅을 이용하여 WCW팀 선수들을 교란시켜 동료들에게 변절자라는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WCW팀을 떠나면서 기믹을 바꾸게 되었다.

이 기믹 변경은 원래는 WCW에 잔류할 것인지, nWo에 가입한 것인지 팬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의도로 검은색과 하얀색의 페이스 페인팅 및 복장을 준비하면서 컨셉을 브랜든 리 유작 영화 크로우에서 따온 것인데[33] 결과적으로 대단히 좋은 반응을 얻어서 대박이 터졌다. 이 경기는 스팅 본인이 자신의 경기 중 가장 좋아하는 매치이기도 하다. 스팅의 경기중 역대 최고의 간지 입장 씬이 나오니 스팅의 팬이라면 필견이다.

4. 1998년: 새로운 전설의 시작 - The Stone Cold Saga

평균 시청률: 4.35% (4.5%)
최고 시청률: 5.69% (6.0%)


WWF 로얄럼블(1998) 하이라이트 영상
"STONE COLD! STONE COLD! STONE COLD! He's going to Wrestlemania!"
짐 로스
나는 레슬링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가, 이 업계 사람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믹 폴리

1998년의 로얄럼블에서 24번으로 등장한 스티브 오스틴은 5번으로 나와 51분 32초를 버틴 더 락을 마지막에 탈락시키고 헐크 호건, 숀 마이클스에 이어 2년 연속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영광을 달성했다. 이후 그는 WWF 챔피언 숀 마이클스와 대립하게 되었는데, 정작 그 숀 마이클스는 로얄럼블에서 언더테이커와 가진 경기 중 치명적인 허리 부상을 당해 제대로 경기를 치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이 때 로얄럼블을 보면 당시 WWF의 로스터 상황이 대다수 스타들이 WCW로 이적하고 텅텅 비었던 1996년보다는 좀 낫지만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믹 폴리가 맨카인드, 듀드 러브, 캑터스 잭의 3가지 기믹으로 3번 출전한 것도 모자라 하나의 스테이블이 전부 총출동하는 등 로얄럼블 30인 매치를 채울 인원수조차 모자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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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 역시 완만하게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스티브 오스틴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WWF의 시청률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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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20일 빌 골드버그 레이븐을 격파하며 WCW US 타이틀을 따게 된다.[34]

한편, WWF는 WCW가 그러했던 것처럼 외부 유명인사를 레슬매니아 게스트로 출연시켰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이크 타이슨. 그런데 오스틴은 이 타이슨에게 뻐큐를 날렸고 이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35] 이런 상태에서 열린 WWF 레슬매니아 14에서 숀 마이클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렀고, 오스틴이 이런 마이클스를 꺾으면서 마침내 WWF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36][37] 또한 언더테이커는 툼스톤 3방을 날려 케인을 상대로 승리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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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 14는 무려 73만 가구의 구매율을 기록하며 작년(23만)은 물론, 98년 한 해 전체를 통틀어 최대 흥행을 기록했고 이후 RAW의 시청률도 상승곡선을 기록하며 4월 13일 WWF RAW가 무려 2년 만에 WCW 나이트로의 시청률을 추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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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 다음의 Raw에서, 트리플 H는 디 제너레이션 X의 리더 숀 마이클스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를 DX의 리더로 임명했고, 엑스팍과 뉴 에이지 아웃로즈를 새로운 멤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2인자에 머물러만 있던 트리플 H가 메인 이벤터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39] 또한 더 락 역시 자신이 소속된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의 수장이었던 파룩을 몰아내고 본인이 직접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새로운 세력구도를 이루게 된다.

4월 26일의 WWF 인 유어 하우스 21: 언포기븐에서는 케인 언더테이커의 역사상 최초의 인페르노 매치가 열렸고 그 다음날인 4월 27일, 그 유명한 DX의 WCW 침공이 방영되었다.

7월 6일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빌 골드버그는 할리우드 호건을 격파하여 WCW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여, 명실공히 WCW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40]

WWF가 최악의 시기를 이겨내고 반등을 하며 급격하게 치고 올라오는 동안[41], WCW는 7월 12일의 WCW 배쉬 앳 더 비치(1998)에서 전년도의 데니스 로드맨에 이어 또다시 NBA 스타를 링 위로 불러들여 경기를 치러 흥행성을 가져오려고 시도했다. 이번에도 데니스 로드맨이 참가한 가운데, 여기에 더해 NBA의 파워포워드 레전드인 유타 재즈 칼 말론이 경기장에 올라 시합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괜찮은 반응을 얻은 전년도의 배쉬 앳 더 비치에 비하여 할리우드 호건 & 데니스 로드맨 VS DDP & 칼 말론의 시합은 그야말로 눈이 썩는 경기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로드맨은 잠이라도 자는 듯 했으며 뛰어난 하드웨어를 지닌 칼 말론도 30분 짜리 메인이벤트 시합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단 칼 말론과 데니스 로드맨의 시합이라는 홍보 때문에 흥행과 주목은 최대치에 달하긴 했으니 여기서 끝났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WCW는 그만둘 시기를 놓치고 유명인사 집착증에 계속 매달리고 말았다.[42] 여기서 WCW 쪽은 망조가 보이기 시작하게 되고 WWF는 또 다시 자신들이 준비한 거대한 역작을 선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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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Look out! (Oh No!!) GOOD GOD ALMIGHTY! GOOD GOD ALMIGHTY! ARE YOU KIDDING ME?!
조심해요! (안 돼요!!) 오, 하느님 맙소사! 세상에 이럴 수가! 지금 장난합니까?!
- 언더테이커가 처음으로 믹 폴리를 중계석으로 밀어 떨어뜨릴 때 나온 짐 로스 제리 롤러의 중계 멘트.
Good God... good God! (That's Enough! He is dead!) Will somebody stop the damn match!! enough is enough!
이제... 이제 그만 됐습니다! (이제 됐어요! 그는 죽었다구요!) 누가 제발 이 정신 나간 경기를 좀 끝내주십쇼!! 이제 충분하잖습니까!
- 짐 로스 제리 롤러가 초크슬램으로 두번째 추락을 한 믹 폴리를 보며.[44]
나는 나중에 언더테이커에게, 그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소름 끼칠 정도로 단순했다.
"자네가 죽은 줄 알았다네."
- 믹 폴리 자서전 中[45]

1998년의 WWF 킹 오브 더 링(1998)에서는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의 켄 샴락이 우승했는데, 이 킹 오브 더 링에서 최고의 장면은 다른 경기에서 나왔다.

바로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언더테이커 VS 맨카인드의 헬 인 어 셀 경기.[46] 위대하고, 경이적이며, 공포스럽고, 소름 끼치는, 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믹 폴리는 철장 위에서 중계석 테이블 위로 떨어지고, 셀 구조물 천장에서[47] 초크슬램을 당했으며, 2분 간 모든 의식을 상실했으며, 턱이 나갔고 입술 밑에 혀가 통과될 정도의 구멍이 생겼고 치아의 한 개가 절반이 나갔다.[48] 셀 위에서 초크 슬램을 당하는 순간에는 잘못했으면 정말 그대로 죽었거나, 반신불수가 될 뻔했다.[49][50] 게다가 해설진은 생동감 있는 해설을 위해 경기 진행이나 결과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기에, 제리 롤러와 짐 로스는 이 광기어린 참사를 직접 목격하곤 충격과 공포에 빠져 경악을 금치 못한 채 해설은 커녕 아연실색했을 정도였으며, 짐 로스는 두 번이나 셀에서 추락당하는 믹 폴리의 모습에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주겠다는 듯이 상술한 말을 외치며 제발 좀 누가 이 정신나간 경기를 중단시켜 달라고 애원까지 한다.

경기 상대였던 언더테이커조차 믹 폴리를 추락시킨 뒤부터 표정이 깨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빈스 또한 경기를 지켜보던 중 믹 폴리가 진짜로 추락해버리자 중계와 지휘를 내팽개치고 서둘러 현장으로 찾아가 안색이 파래질 정도로 굳은 얼굴을 한 채 믹 폴리의 상태를 지켜볼 정도로 방송사고나 다름없는 수준의 경기에 할 말을 잃기까지 한다. 믹 폴리를 병원으로 이송시키기 위해 언더테이커가 아직 셀 위에 있음에도 믹 폴리를 빨리 빼낼 목적으로 언더테이커가 꼭대기에 올라 서있는 상태인데도 불안정한 상태의 셀을 들어올리는 조치까지 취했을 정도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믹 폴리는 각본가인 빈스 루소가 오스틴과의 경기는 식상하다며 언더테이커로 경기 상대를 바꾸자, 어차피 언더테이커도 워낙 많이 붙어서 식상한 건 똑같고 언더테이커가 발에 부상이 있어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태라 경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하드코어 레슬링의 스승이자 선배인 테리 펑크와 함께 별 다섯 개를 받은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보고, "내가 저 정도 수준의 경기를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테리가 농담처럼 말했던, 셀 위에서 떨어진다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켰다. 물론 테리 입장에선 믹 폴리를 격려하고자 던진 농담이었으나 몰려있을대로 몰려있던 믹은 일말의 농담기 없는 진지한 태도로 이 각본을 현실화시켰던 것. 당연히 언더테이커는 시합 하루 전까지 믹 폴리의 제안을 묵살했고, "대체 왜 자살 행위를 하려고 하느냐" 며 믹 폴리를 말렸으나 믹 폴리의 황소고집에 못 이겨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초크슬램 이후에 언더테이커가 난데없이 올드 스쿨을 구사한 것은 사실 믹 폴리에게 시간을 벌여주려는 행위였다고 한다.[51] 초크슬램 직후 믹 폴리의 상태를 확인하던 테리 펑크도 언더테이커가 천장에서 내려오자 언더테이커에게 덤벼 초크슬램까지 맞아가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본인의 고집으로 인해 간신히 링 안으로 들어서며 경기를 재개한 믹 폴리는 언더테이커에 의해 자신이 깔아놓은 압정 무더기에 두 번씩이나 처박히는 스턴트 액션을 치른 뒤에[52] 툼스톤을 맞고 핀폴패를 당했다. 경기가 간신히 종료되고 나서야 언더테이커는 물론 해설진까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특히 짐 로스는 중계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5년간, 난 이런 시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여러분들에게 몸과 영혼을 다 주었습니다."

이 경기는 1998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위를 차지한다. 또한 이 경기 하나로 언더테이커와 믹 폴리는 WWE의 Don't Try This At Home 광고 영상에 10년 넘게 출연하기도 했다. 빈스 맥맨은 경기가 끝난 후 믹 폴리를 찾아가 "자네의 활약은 대단했고 이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건 고맙지만, 두 번 다시 절대로 이딴 미친 짓은 하지 말게!" 라며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분노를 드러낼 정도로 믹 폴리가 하드코어 스타일의 경기를 자제하도록 설득했다. 애초에 헬 인 어 셀에서 믹 폴리가 추락하자마자 중계를 확인하던 회장실에서 황급히 뛰어와 믹의 상태를 확인하며 충격받은 표정을 지은 것만 봐도 설마 믹 폴리가 작심하고 떨어질 거란 건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 심지어 믹 폴리의 아내조차 믹 폴리의 이런 정신나간 각본 수행 계획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두 번이나 헬 인 어 셀에서 추락해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 펑펑 울며 절규했을 뿐더러 경기가 끝나고 치료받던 중인 피칠갑 상태의 믹 폴리에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라고 극대노하며 오열하여 믹 폴리가 죄책감을 느껴 레슬러를 관둘까 진지하게 고민하기까지 했다.

한편, WWE 역사를 대표하는 스티브 오스틴 VS 빈스 맥맨 대립이 시동을 거는 가운데, 언포기븐에서 듀드 러브를 격파한 오스틴은 킹 오브 더 링에서는 케인을 상대로 퍼스트 블러드 매치(상대에게 먼저 피가 나게 하면 승리하는 경기)를 치렀는데, 언더테이커와 맨카인드가 난입하며 난장판이 된 경기[53] 끝에 언더테이커에게 체어샷을 맞고 패배하며 WWF 타이틀을 내준다. 그러나 다음 날 오스틴은 하루만에 타이틀을 다시 얻어 통산 2회 챔피언이 되었으며 케인은 1일 챔프가 되는 굴욕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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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이 챔피언이 되며 1998년 7월 26일 등장한 스모킹 스컬 벨트(Smoking Skull Belt). 오스틴이 챔피언이었던 1998년, 1999년 한정으로 사용되었으며, 오스틴이 타이틀을 뺏기자 이전 모델인 애티튜드 이글로 돌아왔다. 오스틴이 2001년에 다시 챔피언에 올랐을 땐 이 벨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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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과 빈스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WWF는 5점대가 넘는 레이팅을 기록하며 점차 WCW를 역으로 떡실신시키기 시작한다.

이후 언더테이커와 대립을 이어가던 오스틴은 케인 vs 언더테이커와의 3자 대결에서 패배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잃는데, 언더테이커와 케인이 오스틴에게 더블 초크슬램을 사용하고 동시에 핀폴함으로써 승자가 두 명이 되었다. 빈스 맥맨은 챔피언이 공석이라고 선언한 뒤 타이틀 벨트를 가지고 도망가 버렸으며, 오스틴은 빈스를 습격하다 제지당하자 이후 그 유명한 병원에서의 습격[54]을 감행해 빈스 맥맨을 구타한다.

8월 30일의 WWF 섬머슬램(1998)에서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을 이끄는 더 락과 디 제네레이션 X의 트리플 H는 막상막하의 사다리 매치를 치렀다. 경기의 승자는 트리플 H였지만, 락의 명성은 계속해서 높아졌다. 이후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이 완전히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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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오스틴은 10월 WWF 인 유어 하우스 25: 저지먼트 데이에서 펼쳐진, WWF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한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경기에서 특별 심판을 맡았으나 시종일관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다 마지막에는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빈스는 오스틴을 (각본상) 해고한다. 그러자 오스틴은 거의 막무가내로 장난감 총을 들고 빈스를 협박하여 재계약과 함께 타이틀 도전권을 얻어낸다. 이때 겁을 먹은 빈스는 바지에 실례를 해버리고 오스틴은 "새로운 티셔츠를 발매해야겠어. '맥맨 3장 16절 가라사대, 난 바지에 실례했어'라고 말이야." 라는 멘트와 함께 스터너를 날려버렸다.

또한 저지먼트 데이에서 언더테이커는 폴 베어러와 다시 결합하여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 라는 악의 교주 컨셉으로 기믹을 변경한다. 그 후로 언더테이커의 집단은 인간 제물, 납치, 십자가형 같은 해괴한 짓을 일삼게 된다.

한편 10월 25일의 선데이 나잇 히트에서는 테스트라는 또 다른 선수가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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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는 공석이 된 상태인 WWF 챔피언을 정하기 위한 토너먼트가 열렸다. 여기서 강력한 우승후보 오스틴은 맨카인드를 상대로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지만, 심판으로 나온 셰인 맥맨이 카운트를 거부하여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한 편 더 락은 빅 보스 맨, 켄 샴락, 언더테이커를 이기고 마지막으로 맨카인드를 상대로 승리하여 처음으로 WWF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맥맨 부자와 야합한 상태였다.[55]

또한 이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세이블이 98년 여름 WCW에서 이적한 재클린을 꺾고 위민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WWF 위민스 챔피언십은 1995년 WCW로 이적한 메두사가 타이틀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 뒤 폐지되었으나, 세이블과 재클린의 라이벌리를 더 띄우기 위해 부활하였다.[56] 케빈 내쉬의 말에 따르면 WCW가 WWF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세이블이었다고 한다. 이전에 등장한 적 없는 도발적이고 육감적인 세이블의 캐릭터는 상당히 인기가 있어, 그녀가 등장할때마다 RAW의 시청률이 하늘같이 치솟았기 때문이라고.[57]

챔피언을 상대로 도전할 방법을 찾던 스티브 오스틴은 내년의 로얄럼블에 참가하여 우승을 해 도전권을 획득하고자 했지만, 맥맨 부자의 방해로 언더테이커를 상대로 생매장 경기를 치러 승리해야만 로얄럼블에 참가할 수 있다는 조건이 걸리고 만다. 그러나 오스틴은 케인의 도움으로 언더테이커를 이기고, 기어코 로얄럼블 출전권을 따내고 말았다. 그렇게 WWF의 1998년은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해'가 되었다.[58][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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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WCW의 시청률 상승은 점점 답보 상태에 빠지고, 반대로 WWF의 시청률은 끝을 모르고 상승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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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WCW의 WCW 스타케이드(1998)에서는 빌 골드버그 케빈 내시의 경기가 열렸다. 최강의 무적 선역과 단체 최악의 악의 근원이라는 빅 매치업에서 케빈 내쉬는 스캇 홀의 도움을 받고[61] 파워밤을 작렬, 마침내 빌 골드버그의 173연승을 종결시켜버렸다.

5. 1999년: 전환점 - The People's Champion

평균 시청률: 5.90% (3.7%)
최고 시청률: 8.09%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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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s, as Hollywood Hogan walks away and you look at this 40,000 plus on hand, if you're even thinking about changing the channel to our competition, fans, do not, because we understand that Mick Foley, who wrestled here one time as Cactus Jack, is going to win their world title. Ha! That's gonna put some butts in the seats, heh."
"팬 여러분들……채널 돌릴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그러지 마십시오…왜냐하면 저희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한때 여기서 캑터스 잭으로 활동했던 믹 폴리가 월드 챔피언이 된답니다. 하! 많은 사람들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겠군요. 헤헷!"

1999년 1월 4일, 그동안 끊임없이 이어져오던 이 '월요일 밤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날 WCW는 지난 WCW 스타케이드(1998)에서 열린 케빈 내시 VS 빌 골드버그의 재경기가 열릴 것이라 홍보했다. 그러나 4만명의 관중이 모인 이날 무대에서 열린 경기는 할리우드 호건을 상대로 한 케빈 내시의 방어전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RAW is War는 생방송과 녹화 방송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었고, 이날 방송될 Raw는 12월 29일 녹화가 된 상태였다. 즉 생방송으로 방영하는 WCW 먼데이 나이트로와 녹화방송이었던 WWF Raw is War의 대결이었는데, 이때 WCW는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Raw의 내용을 스포일러해 버렸다.[62] 당시 나이트로의 아나운서인 토니 쉬보니는 믹 폴리가 더 락을 꺾고 새로운 WWF 챔피언이 된다는 사실을 스포일러했고, "이제 누가 그 경기를 보겠냐" 며 조롱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타 단체를 조롱하던 WCW의 경기는 최악 중의 최악의 내용이었다. 케빈 내시와 한통속이던 할리우드 호건이 케빈 내시의 가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내시는 총이라도 맞은 것마냥 쓰러졌고 이를 커버한 호건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nWo 할리우드와 nWo 울프팩의 대립이 허무하게 종결되었으며, 이 날의 사건은 핑거포크 오브 둠(Fingerpoke of Doom)이라고 불리고 있다.

WCW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이 따위 쓰레기 경기를 방영하는 동안, 600,000명의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려 결과가 스포일러된 Raw를 시청했고, 0.6의 시청률이 Raw에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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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kind has achieved his dream, and the dream of everyone else who's been told, "you can't do it!"
"맨카인드가 자신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모두가 이룰 수 없다고 말했던 그 꿈을 말입니다!"
마이클 콜
"아빠가 해냈다!"

그리고 동시간에 방영된 이날 Raw에서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가 탄생했다. 이 날 Raw에서 믹 폴리는 기존에는 서로 대립했던 DX와 스티브 오스틴의 도움을 받아 회장인 빈스의 조력까지 얻은 스테이블인 코퍼레이션과 그 수장급이었던 악역인 더 락을 물리치고 마침내 WWF 챔피언이 되었다. 비록 믹 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락에게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지만 소년 시절의 꿈, 평생의 꿈을 이룬 믹 폴리는 아이들에게 이 승리를 돌렸고, 비록 스포일러된 결과였지만 이 장면은 WWF를 대표하는 명장면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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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 포크 오브 둠과 믹 폴리의 역사상 첫 WWF 챔피언 등극이 있었던 1월 4일 이후로, 두 번 다시 먼데이 나이트로는 Raw의 시청률을 추월하지 못했다.[64]

그리고 DX의 수장인 트리플 H 차이나와 같이 DX를 배신하고 코퍼레이션으로 이적, 본격적인 악역 커리어를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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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폴리의 챔피언 등극 이후, WWF 로얄럼블(1999)에서 더 락과 맨카인드는 아이 큇(I Quit) 매치를 치렀다. 이 경기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락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락은 맨카인드의 머리를 박살이라도 낼 것처럼 미친듯이 체어샷을 날려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카인드는 아이 큇을 외치지 않았지만, 락은 녹음되어 있던 음성을 사용해서 결과를 조작하여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다음 페이퍼뷰인 WWF 인 유어 하우스 27: 세인트 발렌타인 데이 매서커에서도 맨카인드와 더 락은 다시 대결을 하게 되는데, 바로 역사상 최초의 라스트 맨 스탠딩 매치를 가지게 된다.

한편, 빈스 맥맨은 로얄럼블에서 있을지 모르는 스티브 오스틴의 우승을 막기 위해 오스틴의 출전 번호를 1번으로 하고, 오스틴을 탈락시키는 선수에게 10만 달러를 주겠다는 선언을 하더니, 난데없이 자신이 30번으로 로얄럼블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커미셔너 숀 마이클스는 빈스 맥맨을 2번으로 바꾸고 만다. 결국 빈스는 아들 셰인 맥맨과 지옥 훈련을 감행하는데, 록키를 패러디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세그먼트는 애티튜드 역사상 가장 웃긴 세그먼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로얄럼블에서 빈스 맥맨은 코퍼레이션 수하들의 도움을 받아 악전고투하는 오스틴과 함께 최후의 2인까지 남게 되었고, 더 락의 도움으로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오스틴은 숀 마이클스의 지지를 얻고 인 유어 하우스에서 로얄럼블 우승자의 타이틀 도전권을 놓고 스틸 케이지 매치를 벌이자며 빈스를 도발해 경기를 성사시켰다. 경기 당일 오스틴은 당연히 시종일관 빈스를 압도했다. 심지어 빈스는 케이지에서 아나운서 테이블로 추락까지 당해 들것에 실려나갔으나 오스틴은 억지로 빈스를 다시 링으로 끌고 왔다. 그러나 실컷 두들겨 패주고 이제 여유롭게 나가려는 찰나 빈스의 뻐큐에 오스틴이 다시 케이지로 들어오면서 경기가 재개되는데 그 와중에 WWF에 데뷔한 빅 쇼가 난입하여 오스틴을 공격했으나, 빅 쇼가 오스틴을 케이지 벽에 던져 케이지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오스틴은 레슬매니아로 직행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빅 쇼 역시 데뷔하면서 자신의 괴력을 어필하여 훗날 메인이벤터로 자리잡게 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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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믹 폴리는 슈퍼볼의 휴식 시간에 펼쳐진 무관중 경기였던 '하프타임 히트' 에서 지게차로 더 락을 누르고 핀해 타이틀을 되찾았으나, 다시 락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레슬매니아 15에서 락과 오스틴의 경기가 확정된 이후, 3월 22일의 Raw에서 오스틴은 빈스 맥맨 일당인 코퍼레이션에게 맥주 세례를 퍼붓는 화끈한 세그먼트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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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를 보았을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끝났군.”
케빈 내시

이리하여 애티튜드의 절정기에 펼쳐진 WWF 레슬매니아 15는 800,000의 구매율을 기록하여 당시까지만 해도 경이적이라고 보였던 레슬매니아 14의 구매율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대결에서, 더 락은 역대 최초로 스터너를 킥아웃 하는데 성공했고, 갑툭튀한 빈스 맥맨은 심판의 죽빵을 때린 후 오스틴을 죽도록 공격했다.[65] 그러자 맨카인드가 또 갑툭튀하여 빈스를 패서 몰아내고 자신이 심판 노릇을 했는데[66], 락은 오스틴에게 락 바텀을 날리고 오스틴을 조롱하며 코퍼레이트 엘보우를 썼으나 오스틴은 이를 피했고, 이후 오스틴의 킥을 방어한 락이 다시 한번 락바텀을 시도했으나 이를 벗어난 오스틴이 스터너를 날려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화끈하게 빈스를 박살내면서, 경기 전개부터 마무리까지 그야말로 정신없는 애티튜드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후 WWF 인 유어 하우스 28: 백 래쉬에서 락과 오스틴의 재경기가 확정된 가운데, 락은 오스틴의 타이틀을 훔치고 그를 강물 위에서 밀어버린 후 오스틴을 추모한다면서 타이틀을 자기가 가지려는 속셈을 보였으나 오스틴은 몬스터 트럭을 몰고 귀환하여 난장판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백래쉬에서는 경악스럽게도 빈스의 도움을 받아 락과 특별 심판 셰인을 엿먹이고 챔피언 자리를 지키게 된다.
스티브 오스틴과 빈스 맥맨이 손을 잡은 이유는 다름아닌 언더테이커 때문. 백래쉬에서 언더테이커는 스테파니 맥맨 리무진을 마음대로 운전해서 스테파니를 납치하고는, 스테파니와 결혼식을 올리려 했다. 이는 스테파니를 손에 넣어 WWF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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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쉬 다음 날인 4월 26일 Raw에서 언더테이커는 스테파니를 꽁꽁 묶어서 데려와 세상에서 가장 불경한 결혼식을 올리려 했으나, 전날 빈스에게 도움을 받은 스티브 오스틴이 난입하여 깽판을 침으로써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후 언더테이커와 스티브 오스틴은 대립에 들어갔고, 빈스와 셰인이 각각 심판이 되어 5월의 WWF 오버 디 엣지에서 결전을 치렀으며, 언더테이커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 셰인 맥맨은 광속 카운트로 1, 2, 3를 찍어 언더테이커의 승리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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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날의 오버 디 엣지에서는 최악의 비극이 나오고 말았다. 당시 '우스꽝스러운 수퍼 히어로' 컨셉의 블루 블레이저로 활동하던[67] 오웬 하트는 공중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링 위에 매달려 버둥대는 장면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악의 안전사고로 인해 그대로 공중에서 떨어졌고 비극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68] 페이퍼뷰는 10여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 스티브 오스틴과 언더테이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선수들은 오웬이 추락하는 장면을 라이브로 봤다고 한다. 오웬이 떨어지자 오스틴과 언더테이커는 "오웬이 추락..."이라는 말만 짦게 내뱉으면서 패닉에 빠졌고, 1분 30초 뒤에 오웬이 즉사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스티브 오스틴은 그 날 경기 하는 동안 정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그리고 경기 예정이였고 경기복까지 갖춰 입으며 트리플 H와 경기 내용을 상의하던 더 락은 추락 소식을 듣자마자 고릴라 포지션[69]으로 달려갔지만, "지금 네가 나오면 관중들은 이것을 쇼로 받아들일 것이다." 라는 빈스의 설득에 링으로 나가지는 못했다고. 참고로 당시 경기 상대이자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의 주인이던 갓파더는 때마침 경기를 위해 고릴라 포지션에서 링 입장을 준비하며 대기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런 소란과 경기 중단 선언에 어안이 벙벙하다 오웬이 추락사했다는 소식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충격을 받아 멍해졌다고 당시의 사고를 씁쓸하게 회고했다.

다음날 Raw에서는 그동안 스토리라인을 접어두고 선악 상관없이 오웬 하트를 추모하는 선수들의 경기와 인터뷰가 방영되었다. 오스틴은 마지막에 나와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시며 추모의 뜻을 밝혔고 언더테이커는 여기에 참석하지 않고 직접 브렛 하트를 찾아가 그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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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스맥다운이 첫 방송되었다. 초창기에는 WCW의 서브 쇼였던 썬더를 견제하기 위해 편성한 쇼였고 히트와 비슷한 위치였지만 점차 RAW IS WAR와 맞먹는 대형 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히트는 이후로 쩌리급으로 전락하기 시작. 그리고 이 시기부터 엑스 팍과 케인이 같이 태그팀을 이루게 되어 케인에게 인간적인 면모가 생겨나는 각본이 진행되었는데, 이 역시 대 히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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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셰인은 자신과 대립하는 오스틴에게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의 진정한 실세를 알려주겠다며 흑막을 두른 인물을 소개했는데 놀랍게도 빈스 맥맨 본인이라는 게 드러나며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70] 즉, 오스틴 한 명 견제하겠다고 딸까지 이용해먹었단 사실에 전미가 경악했던 것. 그렇게 빈스와 언더테이커가 연합하면서 스티브 오스틴은 궁지에 빠지나 싶었지만 빈스의 치졸함에 빡쳐버린 빈스의 아내인 린다 스테파니가 자신들의 주식을 (각본상) 스티브 오스틴에게 넘기면서, 오스틴은 삽시간에 WWF의 CEO가 되었다.
CEO로 활약하는 스티브 오스틴

그러나 6월 27일 WWF 킹 오브 더 링(1999)에서 맥맨 부자와의 핸디캡 래더 매치에서 패배하여 오스틴은 CEO 자리를 내놓았으나, 다음 날 Raw에서 언더테이커를 격파하여 WWF 타이틀을 되찾아오고 통산 4번째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7월 WWF 풀리 로우디드(1999)에서 언더테이커와 스티브 오스틴이 질 경우 오스틴은 영원히 타이틀 도전 불가능, 언더테이커가 질 경우 빈스의 WWF 퇴출이 걸린 퍼스트 블러드 매치에서도 승리하면서, 빈스를 실업자로 만들어버렸다.

6월 29일에는 매트 하디, 제프 하디 하디 보이즈가 처음으로 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었다. WWF 섬머슬램(1999)에서는 트리플 H, 맨카인드, 스티브 오스틴의 트리플 쓰렛 매치가 치러졌고, 이 경기에서 맨카인드가 승리를 거둠에 따라 맨카인드는 통산 3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리플 H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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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또 한 명의 위대한 슈퍼스타인 크리스 제리코가 충격적인 WWF 데뷔를 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 제리코는 WWF 역사에서도 길이 남을 선수 중에 한 사람이지만, 이 당시는 WCW에서 미드카더 대우를 받고 거의 굴욕을 당한 채 쫓겨나온 상태였다. 헌데 WWF에서는 이 제리코에게 더 락을 상대로 그야말로 역대급 간지의 등장신을 선보이게 했고 이는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그리고 WCW에서 주목을 받지못한 선수들에게 WWF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한편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막대한 환호와 인기를 끌어모으며 점점 선역으로 변하고 있던 더 락은, 챔피언 트리플 H에게 재도전하려고 했으나 "부정한 동맹"[71]을 맺은 빅 쇼 & 언더테이커의 태그팀 챔피언 조합에 쳐발려서 이에 실패하고 말았다. 분노한 더 락은 타이틀을 걸고 그 두 명을 때려눕히겠다고 선언했는데, 마침 더 락과 비슷한 처지였던 맨카인드가 태그팀으로 힘을 합칠 것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운 사이였기에 락은 탐탁지 않아했으나, 결국 손을 잡았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어 태그팀 챔피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설적인 태그팀 락 '앤' 삭 커넥션(The Rock 'n' Sock Connection)이다. 안그래도 인기가 많은데 본격적인 선역 전환 후 락 앤 삭 커넥션에서의 예능감 폭발까지 터지며 남녀 모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받은 락은 마침내 인민의 챔피언(People's Champion)이라는 기믹으로 오스틴 못지않은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this is your life!"

9월 27일, Raw에서 애티튜드 시대의 전설로 남을 세그먼트가 탄생한다. 시크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락의 성격을 좀 완화시켜주고, 락의 선한 본성을 깨우치기 위해 맨카인드는 락의 생일을 기회로 삼아, 락의 어렸을때의 선생님, 풋볼 코치, 그리고 전 여자친구까지 불러와 락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락의 입담에 처참하게 털려 돌아가야 했는데, 맨카인드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광대까지 동원하고 락 앤 삭 커넥션의 티셔츠를 선물했다. 이어서 생일 축하 노래와 생일 케잌이 등장하고, 묵묵히 바라보던 락의 한 마디로 세그먼트는 끝이 난다. "더 락의 생일은 5월 2일이야. 멍청한 개자식아.(The Rock's Birthday is May 2nd You Stupid Son of a Bitch.)". '이것이 너의 삶이다(this is your life)'라 불리게 된 이 세그먼트는 무려 8.4%의 순간 시청률을 기록, 지금까지도 Raw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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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빈스 맥맨은 9월 16일 스맥다운에서 챔피언 트리플 H가 맥맨 일가를 조롱하고 도발하여서 급조된 타이틀전을 벌였는데, 트리플 H와 대립각을 보이던 오스틴이 갑자기 난입해 스터너를 먹이는 바람에 빈스 맥맨이 WWF 챔피언이 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73] 물론 빈스는 오래 타이틀을 유지하지 않고 곧 반납했으며 그 과정에서 트리플 H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빅 쇼, 케인, 맨카인드, 더 락의 순서로 연달아 하는 식스팩 매치로 보복을 때렸고[74] 그럼에도 아등바등 버텨온 덕분인지 이후 새로운 챔피언을 정하기 위한 매치가 WWF 언포기븐(1999)에서 열려 트리플 H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트리플 H는 또다시 챔피언이 되었다.[75]

10월 5일, 애티튜드 시대 WWF의 각본에 큰 영향을 미쳤던 빈스 루소경쟁단체인 WCW로 이적한다. 이는 빈스 맥맨과의 불화 때문이었는데, WCW는 빈스 루소가 상황을 뒤집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를 바랐겠지만 실제로는 빈스 루소가 WCW의 헤드 부커직을 맡은 지 3개월만에 WCW의 페이퍼뷰 수익은 반토막이 났다. 루소는 WCW에서도 WWF에서 하던 자신의 크래쉬 TV, 자극적이고 성적인 요소를 잔뜩 집어넣은 쇼를 기획했지만 이는 이미 패망해가고 있던 WCW의 모습을 더욱 막장스럽게 만들었을 뿐이며 별다른 진전을 주지 못했다. 루소는 아예 극단적으로 상황을 전개시켜서 선수들이 백스테이지에서 각본에 대해 논의하고, 각본진과 선수의 대립을 만들기도 했다. 루소의 사고방식은 '어차피 모든 것은 엔터테인먼트니 상관없다' 는 것인데, 사실 대부분의 관중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돌아가는 상황이나 각본에 대해 논의하는 매니아들하고는 달리 이러한 요소를 전혀 모르거나, 거북스러워했을 뿐이었다.

WCW의 래리 즈비스코(Larry Zbysko)가 회상한 바에 따르면 당시 에릭 비숍이 물러나고 회계사였던 빌 부쉬가 운영하게 된 시점이었는데, 이때 부쉬는 즈비스코에게 자신이 빈스 루소를 "훔쳐왔다" 며 좋아했다고 한다[76]. 그러나 즈비스코는 부쉬에게 맥맨이 루소와 계약을 하지 않은건 루소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소리 해줘야 했다[77].

10월 17일의 WWF 노 머시(1999)에서 그동안 갈등이 누적된 하디 보이즈와 에지, 크리스찬은 상금 10만 달러와 테리 러널즈[78]를 매니저로 둘 수 있는 권한을 놓고 래더 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스티브 오스틴은 경기를 치르기 전에 (각본이 아니라 실제로) 네 사람에게 "모두들 몸 조심해라." 라고 격려를 했고, 네 명은 엄청난 명경기를 치르고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경기는 애티튜드 시대 태그팀 디비전의 전성기를 알린 서막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99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위에 선정되었다. 한편 이 노 머시에서 차이나 제프 제럿을 상대로 승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한다. 크리스 제리코는 이를 빌미로 타이틀 벨트의 위신이 떨어졌다며 차이나에게 시비를 걸어 대립을 벌였다.

한편, 이 시기에는 솔로파 파투가 리키시라는 링네임으로 WWF에 복귀한다.

이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9)에서는 타이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던 트리플 H와 더 락, 그리고 스티브 오스틴간의 3자간 경기가 펼쳐지게 되었으나 스티브 오스틴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79] 대신 참가한 빅 쇼는 트리플 H와 더 락을 물리치고 생에 첫 WWF 챔피언이 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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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또 한명의 역사적인 선수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커트 앵글이 데뷔한다.

한편, 11월 29일의 Raw에서 테스트 스테파니 맥맨의 결혼식이 열리는데 갑자기 트리플 H가 나타나 자신이 스테파니와 이미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증거영상을 보여주는데 스테파니가 잠든 틈을 이용해 웨딩채플에서 스테파니 몰래[80]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81] 분노한 아버지 빈스는 12월 WWF 아마겟돈(1999)에서 트리플 H와 노 홀즈 바드 매치를 하게 되고 경기 막판 슬랫지 해머로 트리플 H를 끝장낼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스테파니가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며 해머를 건네받았는데 바로 그 순간 트리플 H가 해머를 빼앗아 휘둘러버린다. 다행히 아버지가 딸을 밀쳐내고 대신 맞긴 했는데 결국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경기 후 스테파니는 슬퍼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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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배신하고 트리플 H에게 붙어버렸다.

스테파니를 등에 업은 트리플 H는 명실공히 WWF의 최정상급 악역으로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엑스 팍과 뉴 에이지 아웃로스가 트리플 H의 편이 되면서 DX가 재건, 맥맨-햄슬리 동맹을 맺으며 WWF를 지배하게 된다.

6. 2000년: 비약적인 발전 - The Great One

평균 시청률: 5.88% (2.7%)
최고 시청률: 7.3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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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오스틴의 공백 속에 더 락은 WWF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스티브 오스틴은 부상으로 빠지긴 했지만 그의 위상 역시 견고했다. 연기력과 엔터테이너로서 최고의 능력을 지닌 더 락의 위상이 상승한 상황에서 WWF 로얄럼블(2000)에서의 30인 로얄럼블 우승자는 The Great One, 더 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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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권력을 잡은 트리플 H는 1999년 후반기부터 맨카인드를 압박하여 더 락과 해고빵 경기를 하게 하였고, 여기서 패배한 맨카인드는 은퇴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믹 폴리는 캑터스 잭 기믹으로 복귀해서 트리플 H와 치열한 대립을 가졌다. 로얄럼블 2000에서는 격렬하게 펼쳐진 경기에서 트리플 H는 캑터스 잭에게 수갑을 채워 거의 승기를 잡았으나, 더 락이 트리플 H를 공격하는 한편 캑터스 잭의 수갑을 풀어주며 승부의 방향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트리플 H는 믹 폴리를 잡아 압정 위로 페디그리를 구사해서[82] 승리하였다. 이 경기는 2000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위로 평가받았다.

1월 31일 Raw에서는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딘 말렌코, 페리 새턴이 레디컬즈(Radicals)라는 이름의 스테이블로 WWF에서 데뷔했다. 당시 크리스 벤와는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WWF 이적이 결정된 벤와는 패배를 통해 타이틀을 내주고 WCW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WCW 측에서는 벤와는 흥행력 따위 없는 바닐라 난쟁이(vanilla midget)일 뿐이니 그냥 떠나도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WCW의 부커였던 케빈 설리반은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 실제 결혼까지 한 크리스 벤와를 nWo 멤버들과 함께 어떻게든 까내리곤 했는데, 이 '바닐라 난쟁이'들이 나왔던 RAW의 순간 시청률은 8.1%까지 치솟았다.

또한 ECW에서 활약하던 더들리 보이즈의 WWF 페이퍼뷰 데뷔도 로얄럼블 2000이었다. 엘리미네이션 테이블 매치를 치른 양 팀의 경기는 하디 보이즈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 경기에서 제프 하디발코니 위에서 디본 더들리에게 스완턴 밤을 시전했다. 경기를 치르기 전, 더들리 보이즈의 버버레이 더들리는 하디 보이즈가 자신의 기술을 베껴 썼다고 여겨 "만나면 작살을 내놓겠다" 고 말하고 다녔는데,[83] 정작 WWF에 와서 경기를 치르게 되자 '하디 보이즈 뒤를 언더테이커가 봐준다' 는 헛소문을 들어 하디 보이즈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때의 경기를 치르면서 서로가 하드코어한 액션을 하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훗날 전설적인 매치를 함께한 E&C(에지&크리스찬)과 같이 절친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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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웨이 아웃 2000에서 더들리 보이즈가 뉴 에이지 아웃로스를 꺾고 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된다. 트리플 H와 캑터스 잭은 헬 인 어 셀 매치로 맞붙는데, 트리플 H는 WWF 타이틀을 걸었고 믹 폴리는 자신의 커리어를 걸었다. 경기 도중 캑터스 잭은 셀 구조물 위에서 백 바디 드랍을 당해 그대로 링 아래쪽으로 쳐박혔다.[8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믹 폴리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트리플 H는 그런 캑터스 잭에게 페디그리를 시전해 결국 승리를 가져갔다. 이 경기는 2000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6위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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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하드코어 챔피언이었던 크래쉬 할리심판만 있다면 24시간 내내 어디서든 방어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내내 심판만 있다면 하드코어 타이틀전을 치를 수 있는 24/7 룰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하드코어 타이틀 전선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공항, 파티장, 호텔 방, 서커스 주차장 등 수많은 곳에서 방어전이 발생했고 낮잠을 자다 타이틀을 빼앗기는 일도 있었다. 24/7 룰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하드코어 타이틀의 변동이 너무 잦았고, 2001년부터 세그먼트 형식으로 하루에 타이틀이 3-4명을 왔다갔다 하는 등 타이틀 가치가 폭락했고, 타미 드리머를 마지막으로 폐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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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디바 디비전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디바들인 리타 트리쉬 스트래터스가 데뷔했다. 2000년 2월 선데이 나잇 히트를 통해 데뷔한 리타는 데뷔무대에서 문설트를 선보이며 여성 프로레슬러들은 눈요깃감에 지나지 않다는 인식을 전환시켰고, 하디 보이즈의 매니저로 활약하면서 웬만한 남성 스타들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되어 동년 8월 21일 RAW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하기에 이른다.

리타가 데뷔하고 약 한달 뒤인 3월의 선데이 나잇 히트에서 수많은 WWE 팬들에게 최고의 디바로 손꼽히는 트리쉬 스트래터스도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알버트 테스트를 거느리고 T&A라는 스테이블을 만들었고, 리타와의 질긴 라이벌 관계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펼쳐진 레슬매니아 2000은 824,000의 판매율을 보이며 흥행 기록을 계속해서 경신했다. 하지만 레슬매니아 자체는 스티브 오스틴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었고, 최초로 페이탈 포 웨이 방식으로 펼쳐진 메인이벤트[85]에서는 빈스 맥맨이 더 락을 배신하고 트리플 H의 타이틀 방어를 도우면서 역사상 최초로 악역이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하는 이변이 발생했다.[86]

이 레슬매니아에서 가장 회자되는 장면은 더들리 보이즈, 하디 보이즈, E&C의 사다리 경기였다.[87] 세 태그팀은 경기 내내 눈 돌아가는 스턴트 액션을 선보였는데,[88] 승리팀은 사다리 위에 테이블을 장식해서 챔피언 벨트를 내린 에지와 크리스찬이었다.[89] 이들의 스턴트맨 뺨치는 경기력으로 이후 사다리 경기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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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더 락은 백래쉬에서 트리플 H와 싱글 타이틀전을 갖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맥맨-햄슬리 패거리들의 다굴을 당해 승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부상으로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있던 오스틴이 등장,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지른다. 오스틴은 트리플 H는 물론 링 주위에 있던 패거리들을 모조리 철제의자로 때려눕히고, 더 락은 트리플 H에게 스파인바스터-피플스 엘보우 콤보를 작렬시키고 핀폴하여 통산 4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경기후에 오스틴이 링위로 올라와 챔피언 벨트를 든 더 락과 함께 맥주파티를 벌이는 장면도 볼거리. 오스틴은 이후 몇개월 뒤 링으로 컴백한다. 이로부터 3주 뒤인 저지먼트 데이에서 두 사람은 60분 아이언맨 매치라는 격렬한 방식으로 타이틀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경기의 특별심판으로는 숀 마이클스가 나왔다. 스코어가 5 대 5가 되고 60분이 거의 지난 상황, 락은 트리플 H 패거리들에게 그야말로 다굴을 맞고 있었는데 경기장은 갑자기 암전이 되었고, 갑자기 언더테이커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다. 언더테이커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American bad ass라는 파격적인 기믹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 언더테이커는 트리플 H의 패거리를 모조리 정리하고 트리플 H마저 날려버렸는데, 특별심판 숀 마이클스가 이를 반칙으로 선언하여 트리플 H에게 1승이 추가, 6 대 5로 트리플 H는 통산 4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트리플 H의 지배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킹 오브 더 링 2000의 메인 이벤트는 태그 팀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는 '챔피언이 커버를 당하지 않고도 타이틀을 잃을 수 있다' 는 규정이 룰에 추가되었다. 이때 트리플 H는 빈스 맥맨, 셰인 맥맨과 팀을 이루었고, 더 락은 언더테이커, 케인과 팀을 이루어 대결했는데 트리플 H는 본인이 커버를 당하지 않고도 빈스 맥맨이 락에게 커버를 당하는 바람에 타이틀을 락에게 내주었고, 더 락은 통산 다섯 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한편 킹 오브 더 링에서는 커트 앵글이 우승자가 되었다. 이후 풀 리로디드 2000에서 더 락은 크리스 벤와와 타이틀전을 벌이는데 셰인 맥맨과 벤와의 함정에 의해 경기에 패배하지만 당시 커미셔너인 믹 폴리가 벤와의 타이틀 획득을 무효처리하고 재경기 선언을 하였다. 그 뒤 바로 더 락이 크리스 벤와를 쓰러뜨리면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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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WWF 섬머슬램(2000)에서 더 락은 커트 앵글과 트리플 H를 모두 격파하고 타이틀을 유지했는데, 이때 화제가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TLC 매치였다. 이 당시 더들리 보이즈는 테이블로 유명했고, 제프 하디와 매트 하디는 사다리 경기로 유명했으며, 크리스찬과 에지는 의자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콘체어토(Conchairto)로 악명이 높았다. 믹 폴리는 이에 착안점을 얻어 빈스 맥맨에게 제의, 그대로 통과되어 이 세 태그팀의 특징을 하나씩 모아 만들어진 매치가 TLC 매치였으며 한동안 세 팀은 이 TLC로 대결을 하는 일이 잦은 편이었다.

이 경기의 마지막 종반에서, 제프 하디와 디본은 서로 벨트에 매달리고 아웅다웅을 하다가 디본이 먼저 떨어지게 되었다. 하디 보이즈의 승리가 눈에 보이는 순간 에지와 크리스찬은 사다리를 던져 제프 하디를 떨어뜨리고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90]

이후 언포기븐 2000에서 펼쳐진 하디 보이즈와 E&C의 스틸 케이지 경기에서, 에지와 크리스찬은 경기 직전부터 제프 하디를 구타하여 승기를 잡았으나, 결국 최후에 철장 위에서 에지가 콘체어토를 맞아 떨어져 패배하고 태그팀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한편 더 락은 크리스 벤와, 언더테이커, 케인을 상대로 한 페이탈 포 웨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유지했다.

한편 부상으로 그동안 빠져있던 스티브 오스틴도 언포기븐에서 정식으로 복귀했다. 이날 오스틴은 스티브 블랙맨과 셰인 맥맨에게 스터너를 날렸는데, 특히 셰인은 혼자 3방이나 맞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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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WCW는 망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당시 빈스 루소는 배쉬 앳 더 비치에서 헐크 호건 제프 제럿의 챔피언십 매치에서 호건이 제럿에게 패배하는 각본을 작성했지만, 각본 거부권이 있었던 호건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빡친 빈스 루소는 제프 제럿에게 그냥 링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말했고, 제프 제럿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호건은 당황하면서도 제프 제럿을 커버해서 승리했는데, 화가 나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헐크 호건은 WCW를 영영 떠나버렸다.

그 이후 빈스 루소는 호건의 승리를 무시하고 곧바로 부커 T와 제프 제럿의 경기를 챔피언 결정전으로 만들었다. 전혀 개연성 없는 스토리라인 전개였지만 당시의 WCW에서는 흔하디 흔한 상황이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부커 T의 모습은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전의 장면에 비교적 묻히고 만다.

이 외에도 WCW의 선수들이 많이 출연한 영화 "레디 투 럼블" 의 주인공 역 데이브 아퀘트에게 챔피언 벨트가 간다거나, 아예 리부트를 시켜버리는 등 그야말로 혼란의 반복이 지속되었다.[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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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머시 2000에서는 이변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데뷔한지 1년도 안 된 커트 앵글이 더 락을 격파하고 WWF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한편 오스틴은 교통사고를 내어 자신을 부상시킨 사람인 리키시와 경기를 가져 묵사발내기도 했으나, 실상 이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트리플 H였다.[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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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언포기븐에서 에지와 크리스찬이 패배하면서, 이 두 사람은 다시는 하디 보이즈의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에지와 크리스찬은 로스 콘퀴스타도스라는 복면 레슬러로 등장하여 노 머시에서 승리를 거두어 타이틀을 얻어내었다. 이후 크리스찬이 부상을 당하자 에지는 단독으로 나와서 미리 자신이 짜놓은 로스콘퀴스타도스 대역들을 상대로 가짜 경기를 벌여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넘겨 받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복면을 쓴 레슬러가 스완턴 밤을 사용하여 에지를 묵사발내고 만다. 사실 이 콘퀴스타도스들은 에지가 미리 짜놓은 대역[93]들이 아니라 하디 보이즈였던 것.

당시 커미셔너였던 믹 폴리는 에지와 크리스찬이 로스 콘퀴스타도스로 분장해서 자신을 속였지만 이들의 창의성을 인정해서 노 머시의 승리를 인정해주고, 대신 하디 보이즈의 창의성도 인정하여 이 승리도 인정한다고 하여 결국 타이틀은 하디 보이즈의 차지가 되었다.[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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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버 시리즈 2000에서는 커트 앵글이 언더테이커를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한 가운데, 트리플 H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던 스티브 오스틴은 경기를 포기하고 달아나려는 트리플 H를 추격했다. 트리플 H는 차를 타고 달아나려고 했으나, 오스틴은 중장비로 이 차를 잡고 공중에서 떨어뜨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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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 챔피언 전선이 커트 앵글, 언더테이커, 더 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트리플 H와 스티브 오스틴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그 해 마지막으로 열린 페이퍼뷰, 아마겟돈에서는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최초이자 최후의 6인 헬 인 어 셀 경기가 만들어졌다. 트리플 H, 커트 앵글, 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더 락, 리키쉬가 참가한 이 경기에서 언더테이커는 철장 위에서 리키쉬에게 초크슬램을 사용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었고, 경기 막판 스티브 오스틴은 락에게 스터너를 먹여 거의 승기를 잡나 했으나 트리플 H가 방해하는 동안 커트 앵글이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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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CW가 이 시점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데 이미 재정적 어려움이 지속된지 오래였고, 2000년 초부터 태즈, 더들리 보이즈, 마이크 어썸 등이 단체를 나가게 된 것이 치명타가 되었다. 특히 마이크 어썸은 벨트를 들고 WCW로 가버려 팬들의 속을 뒤집어 버렸으며[96], RVD나 다른 선수들 역시 보수를 잘 받지 못해 출연을 하지 않는 등 악순환의 반복이 되어있던 상황이었다.

7. 2001년: 전쟁의 끝, 최후의 승자 - Invasion

평균 시청률: 4.64% (2.3%)
최고 시청률: 5.7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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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 로얄럼블(2001)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커트 앵글과 타이틀전을 치르는 트리플 H에게 스터너를 먹이며 그를 방해했는데, 이후 트리플 H는 로얄럼블에 참가하려고 하는 스티브 오스틴을 구타하여 큰 부상을 입힌다. 그러나 오스틴은 피를 흘리면서도 집념으로 버티면서 마침내 케인을 제거하고[97]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로 3회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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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경기에서는 WWF 역사에 남을 만한 명경기가 하나 탄생했는데, 바로 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가 벌인 인터컨티넨탈 사다리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제리코는 사다리 위에서 월스 오브 제리코를 사용하는 명장면을 만들었고, 현란한 공방전 끝에 결국 승리하는데 성공했다. 이 경기는 데이브 멜쳐로부터 별점 4.75성을 받았으며 2001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6위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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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에는 3개월 동안 이어지며 인기를 끌었던 리타와 딘 말렌코의 대립이 종결되었다. 딘 말렌코는 리타를 유혹해 한번 해보려는 목적이었고 리타는 거부했으나, 말렌코는 자신의 라이트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건 경기까지 치른 끝에 리타에게 승리해 기어코 데이트를 받아낸다. 하지만 리타는 호텔방에 하디 보이즈를 잠복시켜 말렌코를 두들겨 패게 하여 엿을 먹이고, 팀 익스트림과 래디컬즈의 대립이 이어진다.

이 대립의 승자는 리타였기 때문에 딘 말렌코는 여자에게 져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아 했지만[98] 막상 경기에 들어갔을때는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였다. 당연히 리타는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매트 하디의 도움으로 간신히 승리했고,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는 명장면을 만들며 공개 연인이 된다.[99]

사실 이 각본은 레슬매니아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하디 보이즈와 래디컬즈의 사이가 껄끄러워 여기서 끝나게 되었고, 그 해 봄부터 에디 게레로가 리타에게 추근덕대는 방향으로 재개됐으나 에디가 약물 검사에 적발돼 방출되면서 흐지부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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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럼블 이후 펼쳐진 노 웨이 아웃에서 더 락은 챔피언 커트 앵글을 꺾고 통산 여섯 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편, 로얄럼블을 우승한 스티브 오스틴의 입장에서는 노 웨이 아웃 당시까지 챔피언이었던 커트 앵글을 노리거나, 아니면 도전자였던 락을 노리던가 해야 했지만 트리플 H와의 끈질긴 대립이 문제였다. 두 선수는 이 대립을 종결시키기 위해 노 웨이 아웃에서 3판 2선승제 경기를 펼쳐지기로 했는데, 빈스는 경기당일까지 서로 터치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오스틴이 어길시 타이틀 도전권 박탈, 트리플 H가 어길시 6개월 출장 정지라는 조건을 건다. 그런데 계약식이 끝나자마자 트리플 H가 오스틴을 기습공격한다. 놀란 빈스는 즉각 6개월 출장 정지를 부과하지만 놀랍게도 트리플 H는 오스틴이 보는 앞에선 싸인을 한 척하고 실제론 하지 않았던 것.

그러자 스티브 오스틴이 분풀이로 트리플 H의 아내였던 스테파니를 공격하는등 서로의 감정이 폭발하는 가운데, 노 웨이 아웃에서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고 오스틴이 1승을 따내는데 성공했으나 트리플 H가 2, 3경기를 연속으로 잡으며 역전승에 성공했다.[100] 이 경기는 데이브 멜쳐로부터 별점 4.75성을 받았으며, 2001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5위에 선정되었다. 한편 빈스가 트리쉬와 바람을 피우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스테파니에 의해서 스테파니 VS 트리쉬의 경기가 펼쳐지기도 했는데 캣파이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경기니 한번쯤 볼 만하다. 경기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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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WCW는 결국 WWF를 쫓지 못하고 패망하고 만다. WCW는 결국 WWF에 팔리고 말았으며, WCW의 마지막 이벤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WWF의 이벤트였다. 이 마지막 이벤트에서 스팅과 릭 플레어는 경기가 끝나고 서로 얼싸안았다.[101]

한편 WWF의 선수들도 이런 갑작스런 사태에 실제로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빈스 맥맨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 사태로 해고되는 선수도 없다. 앞으로 어느 시점이 되면 양 단체가 서로 맞붙는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3월 26일의 Raw에서 빈스 맥맨은 WCW의 먼데이 나이트로를 보면서 경쟁사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WWF의 라커룸에서 WCW 방송이 나오고 있었던 것.

Raw가 시작된지 40분 정도가 지난 후, 빈스는 링으로 들어와 자신이 언론 재벌 테드 터너를 이겼다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셰인 맥맨의 음악이 울려퍼졌고, 빈스는 셰인과 싸울 준비를 했지만 셰인은 그곳에 없었다. 셰인은 1000마일 가까이 떨어진 WCW 먼데이 나이트로의 마지막 이벤트 무대에 등장하여 자신이 WCW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WCW의 영광을 다시 이룩하여 WWF를 삼켜버리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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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펼쳐진 레슬매니아 X-Seven은 1,040,000이라는 판매율을 보이면서 백만이 넘는 판매율을 보였고, 그 내용도 알찼다고 평가받고 있다. 역대 레슬매니아 중에서도 최고의 레슬매니아의 하나로 손 꼽히는 퀄리티 였으며, 애티튜드 시대를 상징하는 거의 모든 아이콘들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경기들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건 바로 전설의 TLC-2 경기. 수없이 붙어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극에 달한 하디 보이즈, E&C, 더들리 보이즈라는 세 태그팀에 더해 리타, 라이노, 스파이크 더들리라는 태그팀의 도우미들이 각각 출연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 액션을 보이면서 쉴틈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제프 하디는 작년에 이어 이 해에도 사다리 위에서 테이블 위로 스완턴 밤을 날렸고, 거기다 사다리를 연달아 설치하여 꼭대기를 걸어가며 타이틀을 잡으려 했으나 이 액션은 실패했다. 그 이외에 타이틀에 매달린 제프 하디에게 에지는 사다리 위에서 뛰어 스피어를 날렸으며, 리타 역시 탑 로프 허리케인 러너를 작렬하는 등 모든 선수들이 그야말로 TLC에서 보여줄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경기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매트 하디와 버버레이 더들리가 사다리 위에서 옥신각신하다가 라이노에 의해 모두 링 밖으로 떨어져버렸으며, 라이노는 크리스찬을 어깨에 태우고 사다리를 올라가서 타이틀을 따내게 했다. 이 경기는 애티튜드 시대에 벌어진 태그팀 대결의 정점으로 기억되고 있다.[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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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전설적인 레슬매니아인 만큼 눈여겨볼 경기도 많았는데, 게중에 빈스 맥맨과 셰인 맥맨의 패륜 부자 대결의 경우에는 부자간의 대립에 트리쉬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트리쉬는 그동안 빈스 때문에 경기장에서 옷을 벗는다던지, 무릎을 꿇는다던지, 개처럼 짖어본다던지 하는 굴욕이란 굴욕은 모두 당했는데 레슬매니아에서 빈스의 뺨을 때리면서 분풀이를 한 것.[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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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펼쳐진 대망의 메인이벤트에서 만인의 영웅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은 최악의 적수였던 빈스 맥맨의 도움을 받아 더 락을 꺾었다. 그리고 빈스 맥맨과 같이 맥주를 마셨는데, 당시 스티브 오스틴은 데뷔 이후 만인의 영웅이었기에 오스틴이 빈스의 개로 전락한 이 모습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경기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WWF 챔피언이 되었고[104],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이 걸린 스틸 케이지 매치가 벌어진다. 그리고 오스틴의 갑작스런 변화에 갈피를 못 잡는 팬들에게 치명타를 날린 사건이 발생하는데 얼마 전까지 격렬한 대립을 주고받았던 트리플 H가 오스틴을 도와준 것. 더 락은 이 경기의 패배 후에 영화 스콜피온 킹을 찍기 위해 할리우드로 떠나게 되었다.[105] 순식간에 WWF의 양대 선역 아이콘이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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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티브 오스틴은 여기에 더해 트리플 H[106]와 함께 다니면서 언더테이커와 케인이 가지고 있던 태그팀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당시 오스틴에 대한 팬들의 배신감은 엄청나서 관중들은 SOLD OUT 혹은 Sell Out, Don't Trust Austin이라 적힌 팬피켓을 들어보이며 그에게 엄청난 야유를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오스틴은 악역 이미지를 더 강하게 살리기 위하여 팬들에게 인기 있던 하디 보이즈를 두들겨 패는가 하면, 여자인 리타에게 미친듯이 체어샷을 먹이기도 했다.

한편 오스틴의 베프였던 짐 로스는 왜 빈스에게 심장을 팔았냐며 해명을 요구했고 이에 오스틴은 "멍청한 놈, 난 스티브 오스틴이야.[107] 빈스는 나에게 승리를 보장했고, 곧 미래를 본 거지"라고 답했다.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전세계의 팬들을 등돌린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내가 왜 내 행동에 반성해야 하지? 내가 언제 '난 영웅이 되고싶어', '난 WWF팬을 사랑해' 라고 말한 적 있나? 넌 매주 '방울뱀! 방울뱀!' 을 외치는데 이봐, 짐!! 난 오늘 이곳에 DTA - Don't Trust Anybody를 말하러 온 거야."라며 팬들의 야유에 전혀 신경쓰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108]

그러나 사실 이 악역 전환은 오스틴 본인에게는 썩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트리플 H와의 태그팀 타이틀은 곧 제리코와 벤와에게 뺏겼고, 같이 활동하던 트리플 H가 부상으로 장기 결장을 하게 되면서 혼자 붕 떠버리게 된 것. 여기에 더해 악역 전환으로 스티브 오스틴의 상품 판매량도 급락했다.[109] 이후 오스틴은 한동안 반쯤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게 된다.

이 당시 트리플 H가 입은 부상은 굉장히 심각한 부상이었다. 트리플 H는 경기중에 대퇴사두근이 찢어지며 근육이 뼈에서 떨어졌고, 왼쪽 다리로 무릎을 지탱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트리플 H는 그런 상태에서 계속 경기를 소화했으며, 심지어 윌스 오브 제리코를 접수하기도 하면서 끝까지 경기를 소화했다.[110] 이후 트리플 H는 8개월 동안 재활기간을 거치게 된다.

2001년 5월 28일 Raw에서 WCW 출신 선수인 랜스 스톰 스티브 블랙맨 페리 새턴의 경기에 난입하여 훼방을 놓았다. 그 후에는 휴 모리스가 WWF에 등장했고, 킹 오브 더 링에서는 부커 T가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스티브 오스틴을 공격했다.

킹 오브 더 링 다음날의 Raw에서는 마이크 어썸이 테스트와 라이노의 경기 이후에 난입해서 라이노를 공격하고 하드코어 타이틀을 빼앗아갔다. WCW 소속의 선수가 WWF 타이틀을 차지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 이후에는 더들리 보이즈 하디 보이즈의 태그팀 챔피언 결정전에 WCW 태그팀 챔피언이었던 척 팔럼보, 션 오헤어가 난입해서 난장판을 만들다 WWF 소속 선수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다.[111]

본래 WWF의 계획에서는 WCW의 침공군을 선역처럼 만들려는 계획도 안에 포함되었으나, '월요일 밤의 전쟁' 을 겪으며 WWF를 지지한 충성스런 팬들은 WCW에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고, WCW의 선수들에게 엄청나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112][113] 부커 T와 버프 배그웰의 경기에서 이런 양상이 절정이 이르자,[114] WCW는 확고하게 악역 단체로 굳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응급처치로 ECW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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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킹 오브 더 링에서는 팬들의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경기가 있었는데, 바로 셰인 맥맨 커트 앵글의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 여기서 셰인 맥맨은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어서 레슬링 팬들의 인상에 깊게 남게 되었다[115]. 참고로 저 유리창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라는 명장면이 나오기까지엔 비하인드가 있었는데 유리창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커트 앵글이 꼬리뼈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는데 셰인이 도발을 해준 덕에 아드레날린이 돋아 수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플렉스를 위해 쓰이는 유리창은 본래 액션 영화 등에서 쓰이는 설탕 재질로 만든 것이어야 했으나 당시 WWF 소품을 담당했던 백스테이지 담당자가 잘못 주문한 탓에 진짜 아크릴 소재 유리로 만든 것이 설치되었고 이 탓에 유리가 깨지지 않아 뒷통수가 땅바닥에 처박힌 셰인은 뒷통수가 깨져 진짜로 피를 흘리는 방송사고를 일으켰다.[116]

당연히 관객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열광했지만 이를 지켜보던 빈스와 심판, 그리고 시전자인 앵글은 크게 패닉에 빠져 당황했으나 셰인은 쿨하게 "아버지가 뭐라해도 무시해도 좋으니까 깨질 때까지 던져!" 라고 받아쳤고 이에 앵글은 죽으려고 작정했냐며 거부했으나 셰인이 "쫄리냐? 하남자 새끼가?" 라는 식으로 도발을 하자 이미 일을 저질렀겠다 뒤가 없다고 판단한 앵글은 격노한 빈스와 빈스의 오더를 받은 심판이 뜯어말렸음에도 기어이 유리창이 깨질 때까지 셰인을 유리창에 처박았다. 이로 인해 경기가 끝나고 통로에서 빈스의 격노어린 눈빛을 마주했지만 그러건 말건 앵글과 셰인은 만족스럽게 경기를 뽑아낸 것에 서로 하이파이브까지 하며 역사를 새롭게 써냈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날, WCW 챔피언 부커 T는 메인 이벤트에서 등장하여 스티브 오스틴을 공격했다.


"이것 보세요, JR."
"죽을 때 까지 기억에 남을 순간입니다!"

7월 9일의 Raw에서는 랜스 스톰과 마이크 어썸이 케인과 크리스 제리코를 상대하고 있었다. 헌데 경기 도중 ECW의 스타인 랍 밴 댐 타미 드리머가 등장해 랜스 스톰과 마이크 어썸을 도왔다. 이에 WWF의 로스터들이 케인과 제리코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났는데, 갑자기 WWF의 로스터였던 더들리 보이즈, 레이븐, 라이노, 저스틴 크래더블, 태즈갑자기 WWF 선수들을 배신하여 두들겨 팼다.[117]폴 헤이먼이 지휘 아래 ECW가 WWF에 등장한 것.

ECW의 갑작스런 습격이 있자 WCW를 지휘하는 셰인 맥맨은 빈스에게 일단 ECW를 몰아내자고 제안하여 손을 잡았는데, 정작 WCW는 동맹을 맺은 WWF를 배신하고 ECW의 편을 들었다. 사실 ECW의 새로운 소유주는 스테파니 맥마흔이었고, ECW와 WCW가 손을 잡고 WWF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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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선수들이 WWF에 새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자연스레 몇몇 여자 선수들도 WWF에서 새로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데, 스테이시 키블러 토리 윌슨이 바로 그들이고, 2002년 로스터 분리 이후 두 사람은 각각 RAW와 스맥다운!을 상징하는 미녀들이 되었다. DDP, 부커 T, 스캇 스타이너 등 WCW 출신 선수들은 메인 이벤터들까지도 죄다 자버나 개그 캐릭터로 소모되고 버려졌기 때문에 진정한 승리자는 이미지 구기는 일 없이 잘나간 이 둘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WCW & ECW의 연합, 즉 얼라이언스(Alliance)와 WWF는 페이퍼뷰인 인베이전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예정이었다. WWF의 선수들은 분전을 해서 APA는 션 오헤어와 척 팔럼보를 상대로 승리하고, 틈만 나면 머리채 잡고 싸운 앙숙이었던 리타와 트리쉬는 최초의 브라 & 팬티 태그팀 매치에서 스테이시와 토리를 꺾었다. WCW의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빌리 키드먼은 WWF의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엑스팍을 상대로 상대로 승리했다. 심지어 심판들의 경기까지 부킹되어서 WWF의 심판 얼 헤브너는 믹 폴리의 도움으로 WCW의 심판 닉 패트릭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승리했다.

양 진영의 스코어가 똑같이 5대 5가 된 가운데, 가장 중요한 5대 5 경기에서 얼라이언스는 부커 T,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더들리 보이즈, 라이노를 내세웠고 WWF는 언더테이커, 케인, 크리스 제리코, 커트 앵글, 그리고 WWF의 상징인 스티브 오스틴을 내세웠다.

경기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커트 앵글이 부커 T를 상대로 앵클 락을 걸어 WWF가 거의 승기를 잡으려던 찰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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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 챔피언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은 같은 팀원이었던 커트 앵글의 얼굴을 발로 차고, 스톤 콜드 스터너를 먹여 부커 T가 커트 앵글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게 했다. 즉 배신을 때린 것. 지난 몇년간 WWF를 이끌었던 아이콘이자, WWF 그 자체였던 스티브 오스틴의 배신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인베이전이 개최되기 전에 빈스가 레슬매니아 17 이후 자신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오스틴에게 끊임없이 과거의 스톤 콜드로 돌아오기를 종용했다. 이 시절의 오스틴은 상술한 바와 같이 한때 철천지 원수였던 빈스를 위해 우스꽝스럽게 노래를 불러주는 등 카리스마가 바닥으로 떨어진 개그 캐릭터였다. 연합군 로스터와의 일전을 위해 스톤 콜드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던 빈스는 그를 위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예전처럼 자신을 두들겨 패라고 종용하기까지 했었지만 오스틴은 이를 거부하고 백스테이지로 퇴장하기도 했다. 그와중에 인베이전 직전 RAW에서 WWF와 연합군의 모든 로스터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막바지에 오스틴이 난입하여 대부분의 연합군 선수들에게 스터너를 날리고 맥주쇼를 펼치며 WWF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런 오스틴이 마지막에 배신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118] to the WWF!"
"Yes! Yes! The Rock has come home!!"

아이콘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이 얼라이언스의 앞잡이로 전락한 상황에서, WWF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이제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또다른 아이콘의 가세. 그러나 셰인은 한발 앞서 할리우드에서 돌아오는 더 락을 연합군으로 초대했고, 7월 30일의 Raw에서 마침내 오랜 공백을 깨고 피플스 챔피언 더 락이 등장했다. 셰인 맥맨과 빈스 맥맨은 각자 더 락을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을 했는데[119], 긴 침묵을 하고 이야기를[120] 듣고만 있던 더 락은 갑자기 빈스 맥맨에게 락바텀을 선사했다. 셰인은 기뻐서 춤을 추어댔고, 스티브 오스틴에 이어 더 락마저 얼라이언스에 넘어가 WWF가 끝장나려는 찰나, 락은 셰인에게도 락바텀을 선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름아닌 WWF에 돌아왔음을 선포했다. 해설을 하던 짐 로스는 그 말을 듣고 "이것은 WWF의 승리입니다! 예스! 예스!" 를 외쳤으며, 폴 헤이먼"셧업!"만 연신 연발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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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더 락 외에 WWF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선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커트 앵글이었다. 이 무렵 커트 앵글은 엄청난 호응을 얻으면서 가히 WWF의 영웅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포스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부커 T를 상대로 WCW의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얻어오지만 이를 뺏긴 후, WWF 섬머슬램(2001)에서 오스틴과 대결을 했지만 스티브 오스틴이 DQ로 타이틀을 지켜냄에 따라 이에 분노,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 방어를 자축하는 오스틴과 얼라이언스 일당에게 전설의 우유 세례를 퍼부었다. 이는 과거 스티브 오스틴이 코퍼레이션을 상대로 한 맥주 세례의 패러디.



이 당시 커트 앵글의 포스는 가히 후덜덜했는데 심지어는 스티브 오스틴을 질질 짜면서 빌게 만들기도 했다. 이는 스티브 오스틴이 커트 앵글의 금메달을 훔치자 커트 앵글이 오스틴을 물에 빠뜨려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인데, 사실은 낚시였다.

한편 더 락이 부커 T를 상대로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얻어낸 후, 언포기븐에서 커트 앵글은 기어코 스티브 오스틴을 상대로 WWF 타이틀을 얻어내게 되었다.[121] 하지만 당시 커미셔너였던 윌리엄 리걸이 얼라이언스의 편을 들게 되면서 이 여파로 오스틴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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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측의 대립이 절정으로 치닫게 되면서 이제 그 모든 것을 종식시키려는 경기가 11월 18일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그런데 서바이버 시리즈가 열리기 전, WWF의 영웅이었던 커트 앵글이 갑자기 동료들에게 체어샷을 날리며 배신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더 락과 크리스 제리코가 사사건건 대립을 벌이며 분열의 씨앗을 보인다는 점도 WWF 측에서는 불리한 점이었다.
하지만 얼라이언스 측도 문제가 있었는데 얼라이언스를 이끌게 된 스티브 오스틴이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선수들과 마찰을 겪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빈스가 "누군가가 얼라이언스를 배신할수도 있다. 그는 바로 스티브 오스틴!!!" 이라는 떡밥을 흘리면서 얼라이언스는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해 셰인은 "믿지마, 아무도 배신하지 않아! 그자는 심리전의 대가야! 이런 유언비어를 흘려 우릴 와해시키려는 수작이라고!" 라며 얼라이언스 멤버들을 진정시킨다.
마침내 펼쳐진 서바이버 시리즈 제거 매치는 역대 서바이버 시리즈 제거 매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경기로 남았는데, 치열한 격전 끝에 마지막에 남은 것은 양대 아이콘, 더 락 스티브 오스틴이었다. 그런데 WWF를 배신하고 얼라이언스에 가담한 듯했던 커트 앵글은 이 마지막 순간에 스티브 오스틴에게 벨트 샷을 먹였다. 커트 앵글은 빈스가 숨겨 놓았던 이중 스파이였던 것이다. 락은 앵글의 도움을 받아 오스틴에게 락바텀을 먹인 후 승리를 거두어 마침내 전쟁을 종결시켰다.


한편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 직전 스맥다운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파이프밤이 나오기도 했는데, 바로 폴 헤이먼 빈스 맥맨의 면전에서 수위 높은 독설을 날린 것이다. 이때 관중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단순한 악역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폴 헤이먼에게 야유를 퍼붓다가 헤이먼의 진심이 섞인 세그먼트에 감화되었는지 나중에 가면 조용히 경청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승리한 빈스는 셰인과 스테파니도 모조리 쫓아내버리고 해설자인 폴 헤이먼을 해고하고 제리 롤러를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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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빈스 맥마흔은 얼라이언스 선수들 중 챔피언 자리에 있던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로스터에게 짤리고 싶지 않으면 나의 엉덩이에 키스하라는 굴욕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그리고 11월 19일 RAW에서 Kiss my Ass 클럽의 1호 가입자가 탄생했다. 바로 윌리엄 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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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빈스의 배신 떡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얼라이언스의 편에 남았던 스티브 오스틴은 얼라이언스가 패퇴함으로써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WWF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던 스티브 오스틴이었지만, 갑자기 스테파니의 지분을 사들였다는 네이쳐보이 릭 플레어가 등장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스틴은 다시 한번 스톤 콜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26일 RAW에서 빈스는 오스틴에게 자신의 엉덩이에 키스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오스틴은 껌과 가글로 시간을 끌다가 로블로를 먹여버리고 허리띠로 빈스를 마구 채찍질한다. 두들겨 맞던 빈스는 더들리 보이즈와 커트 앵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나게 되는데 이 장면을 보던 중계석의 짐 로스는 통쾌한지 크게 웃다가 빈스에게 찍히게 된다. 결국 커트 앵글에게 끌려와 강제로 키스할 위기에 처했는데 이 때 또 다른 최강자, 언더테이커가 나타나 이를 가로막았다. 언더테이커는 짐 로스에게 키스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당연히 짐은 "존나 싫어!!(HELL NO)" 를 외친다. 그런데 갑자기 언더테이커는 짐에게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더니 그를 공격하고 강제로 키스하게끔 만든다. 언더테이커가 턴힐한 것이다.

기고만장해진 빈스는 급기야 연합군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WWF를 위해 열심히 싸웠던 트리쉬 스트래터스까지 자신의 엉덩이 키스 클럽에 가입시키려고 한다. 천만다행히 락이 나타나 트리쉬를 구해주었고, 트리쉬는 락에게 고마움을 담은 키스를 해준다. 12월 3일 RAW에서 더 락은 트리쉬와 팀을 이루어 빈스 & 앵글 팀을 상대하는데, 이 경기에는 락이 이기면 빈스가 락의 엉덩이에, 락이 지면 락이 빈스의 엉덩이에 키스한다는 조항이 붙었고 경기 막판 제리코에게 라이언설트를 맞은 락은 패배 위기에 직면하지만 간신히 킥아웃한다. 그리고 오스틴의 도움으로 앵글에게 락 바텀을 날리고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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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빈스가 더 락의 엉덩이에 키스하기로 되어 있던 12월 6일 스맥다운에서 빈스는 락에게 "나 같은 억만장자가 왜 키스함? 난 여기있는 거 다 살 수 있음ㅋ" 이라며 거부한다. 그런데 갑자기 오스틴이 스크린에 나타나 "커트 앵글 믿고 깝치나본데 그 쓰레기는 지금 내 뒤에서 걷어차이고 있음" 이라며 앵글을 두들겨패버린다. 멘붕이 온 빈스는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락의 엉덩이에 키스를 하게 됐는데, 갑자기 락이 짐 로스의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하는 듯 했으나 다시 트리쉬를 불러 트리쉬의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한다. 이에 빈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무릎으로 기어가다가 락에게 제지당했다. 그리고 락은 마지막으로 리키시를 불러 그의 엉덩이에 빈스를 파묻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리키쉬는 빈스의 얼굴에 스팅크 페이스로 굴욕을 줬다.

12월, 한 해 마지막 PPV인 벤전스에서 언더테이커는 랍 밴 댐을 물리치고 하드코어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 때의 언더테이커는 그동안 길러왔던 장발을 깔끔히 밀어버리고 캐릭터 변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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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릭 플레어의 배려 덕에 오스틴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박탈되지 않았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 WWF 타이틀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이를 통합하기 위한 경기가 벤전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여기서 크리스 제리코는 빈스 맥맨의 도움을 받아 락을 물리쳤고 이어서 커트 앵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스티브 오스틴을 부커 T의 도움으로 승리하며 하룻밤 사이에 양대 아이콘 더 락과 스티브 오스틴을 모두 꺾게 되었다. 이렇게 크리스 제리코는 최초의 통합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8. 2002년: 애티튜드 시대, 종언 - Brand Extension

평균 시청률: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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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 로얄럼블(2002)에서는 통합 챔피언 크리스 제리코 더 락을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한 가운데, 릭 플레어 빈스 맥마흔과 격렬한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를 치러서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2002년의 로얄럼블 우승자는 오랜 부상에서 돌아온 트리플 H였다.[123][124] 트리플 H는 부상 이전에는 악역이었지만 복귀했을때는 팬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선역이 되었다. 로얄럼블 우승 이후 트리플 H는 커트 앵글과의 노 웨이 아웃에서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십 도전권을 건 경기에서 패배하나 다음 RAW의 재경기에서 꺾었고, 레슬매니아까지 크리스 제리코와 대립을 가졌다.

한편 빈스는 릭 플레어를 상대로 한 경영권 다툼이 생각처럼 유리하게 되지 않자,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만든 단체에 내가 독을 풀어 넣겠다 라며 WCW의 상징 nWo를 WWF에 부활시킨다. 이에 따라 스캇 홀, 케빈 내시, 무엇보다 헐크 호건이 WWF에 돌아오게 되었다. nWo는 노 웨이 아웃 메인이벤트에서 스티브 오스틴을 공격하며 화려하게 컴백을 알린다. 이렇게 한 시기에 세 명의 아이콘이 WWF에 모여있는 가히 전무후무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는데…



2월 18일의 Raw에서 더 락은 호건의 감성팔이 및 추억팔이 세그먼트 중에 난입, 호건에게 도전을 하게 되면서 레슬매니아에서 역사적인 아이콘 vs 아이콘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다. 세그먼트 후 락은 악수를 풀지 않고 호건에게 락바텀을 날리지만 이내 내쉬와 홀의 습격을 받아 엠뷸런스에 실려간다. 그러나 호건은 대형트럭을 몰아 엠뷸런스와 충돌시키고 결국 락은 공백기를 가지다가 다시 복귀, 혼자서 nWo 3명을 상대하던 오스틴과 함께 nWo에 맞섰다.

이후 펼쳐진 레슬매니아 18은 이전의 레슬매니아보다는 전체적으로 힘이 빠진 모양새였다. 판매량도 880,000를 기록함으로써 레슬매니아 14 이후 최초로 판매량이 줄어든 레슬매니아였고, 아무래도 이전 레슬매니아가 라인업부터 워낙 대박이라서 비교가 되는 면도 있었다.

메인 이벤트에서 트리플 H 크리스 제리코를 상대로 승리하여 통합 챔피언이 되었는데, 실질적인 메인이벤트는 더 락과 호건의 대결이었다. 이 경기는 그야말로 두 선수가 쌓아올린 위상과 아이콘이라는 가치의 대결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경기력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경기 내내 대단한 장면이 나온 건 아니지만, 헐크 호건을 보고 자라고 더 락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관중들은 양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엄청난 호응을 해 주었다. 관중 호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레전설급. 이 경기에서 호건은 악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환호를 받았으며, 더 락은 되려 야유를 받았을 정도였다. 결국 경기에서는 락이 승리했고, 호건은 이후 자연스레 선역으로 전환하게 된다.

레슬매니아 이후, 역사적인 Raw와 스맥다운의 로스터 분리가 이루어지면서, 양측 선수를 분리하기 위한 드래프트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Raw와 스맥다운은 하나의 쇼가 아닌 양대 브랜드로 나뉘었으며, 오직 통합 챔피언이 양대 브랜드를 오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다.[125] 이러한 로스터 분리가 가능했던 것은 세 단체의 통합 덕분에 WWF 로스터가 풍부해졌기 때문. 또한 그 시기 스맥다운에서는 데이브 바티스타 랜디 오턴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인 두 선수들이 데뷔했다.
2002년 5월, WWF는 세계 자연보호 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과의 소송에서 지면서 명칭을 WWE로 바꾸게 되었다. 바로 이를 기점으로 애티튜드 시대가 종결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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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레슬매니아 이후의 RAW에서는 웬 거한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하드코어 챔피언십을 치르던 레슬러들을 때려눕히며 데뷔했다. 폴 헤이먼이 데려온 이 엄청난 거물급 신예의 이름은 바로 브록 레스너. 훗날 역사적인 선수 중 한 명이 되는 브록 레스너는 데뷔하자마자 유례없는 엄청난 푸쉬를 받으며 초고속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는 레스너를 차세대 아이콘으로 만들려는 WWE의 움직임이었다. 레스너는 하디 보이즈, 리키쉬, 알 스노우, 헐크 호건 같은 잘 알려진 레슬러들을 파죽지세로 격파해가며 우승자에게는 WWE 타이틀 도전권을 준다는 규정하에 진행되던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에 참가하는데 첫 상대는 바로 스티브 오스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스티브 오스틴과 WWE 간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다. WWE는 앞으로 회사를 지탱해나갈 것으로 보이는 이 차세대 괴물의 먹이로 오스틴마저 던져주려 하였다. 프로레슬링에 있어서 현재의 아이콘이 차세대의 기둥이 될 선수에게 져주는 것은 미덕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오스틴도 자신이 브록 레스너의 먹잇감이 되는것에는 흔쾌히 동의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WWE 측은 당시 진행하던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 첫 경기 상대로 오스틴을 지목하고 레스너에게 일방적으로 완패당한다는 오스틴 입장에서 보면 다소 섭섭한 역할을 요구하였다. 브록 레스너는 PPV도 아니고 스맥다운 무대에서 헐크 호건을 베어 허그로 실신 패배시키는 희대의 괴물이었고 이에 대한 반발 여론 역시 많았다.[126] 스티브 오스틴은 이런 마구잡이 잡이 아니라 팬들이 주목할만한 대립을 진행하고 비중있는 무대에서 레스너에게 잡을 해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비중이 낮은 토너먼트 첫 경기의 일방적인 패배가 아닌 PPV 킹 오브 더 링 메인이벤트에서 레스너와 격전을 벌이다 패하는 각본을 요구하지만 WWE 측에서는 레스너의 이미지 상승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127]
이 무렵의 오스틴은 개인적으로도 목 부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회사 내에서의 위치와 받는 대우도 점점 내려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감정이 폭발하게 되면서 스티브 오스틴은 6월 10일의 Raw 생방송을 앞두고 그냥 집에 가버리는 무단 탈단을 저질렀다. 이에 WWE는 계약 위반을 한 스티브 오스틴을 해고해버렸다. 오스틴에게 무리할 정도의 잡을 요구한 WWE도, 그렇다고 무책임한 행동을 한 스티브 오스틴도 모두 잘한 것이 없는 상황.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스티브 오스틴 정도의 레슬러가 이렇게 의미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부분이었다.[128]

당시 WWF 챔피언 자리는 트리플 H에서 헐크 호건으로, 헐크 호건에서 언더테이커로, 다시 언더테이커에서 더 락으로 바뀌는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브록 레스너는 더 락을 털어버리고 데뷔 5개월만에 챔피언에 등극했다![129] 이후로도 브록 레스너는 언더테이커와 두 차례 PPV에서 대립하면서 언더테이커를 영혼까지 털어버리거나 빅 쇼, 커트 앵글 등 네임드 레슬러들과 대립을 펼치면서 흠좀무한 푸쉬를 받으며 로스터의 모든 선수를 작살내게 된다.
6월 3일의 Raw에서 또 다른 위대한 선수가 복귀하게 되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바로 숀 마이클스. 숀 마이클스는 nWo의 일원으로 복귀했지만, 정작 그 nWo의 핵심 멤버들인 스캇 홀 케빈 내시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WWE에 나올 수 없게 되면서 붕 뜨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악역으로 전환한 트리플 H와 대립을 벌이면서 정말 오랜 시간만에 선수로 복귀했고, 이후 전설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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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기 빈스 맥마흔 릭 플레어를 꺾고 RAW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왔으며, 새롭게 RAW의 단장으로 임명한 인물은 과거 자신과 WWF를 벼랑 끝까지 몰고갔던 WCW의 수장, 에릭 비숍이었다. WWE의 충격적인 복귀 순간을 논하면 반드시 꼽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후 비숍은 수년간 RAW의 단장직을 맡았다가 TNA로 가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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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John cena!"
"Ruthless, Aggression!"
오스틴이 WWE를 떠나버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27일의 스맥다운에서, 헐크 호건을 킹 오브 더 링에서 털어버린 커트 앵글은 자신을 상대할 선수는 아무도 없다며 어그로를 끌었는데, 갑자기 젊은 선수 한 명이 패기롭게 튀어나왔다. 커트 앵글은 니 까짓게 뭔데 최고의 선수인 자신에게 덤비느냐 물었고, 이에 그 선수는 스스로를 존 시나라 소개했다. 앵글은 뒤이어 네가 뭐가 잘났느냐, 네 장점을 하나만 말해보라 도발했고, 시나는 "무자비한 공격성(Ruthless Aggression)."이라는 말과 함께 커트 앵글을 공격하기 시작, 바로 경기를 펼쳤다.[130] 이 경기에서 존 시나는 꽤 선전했으나 경험 부족을 보이며 커트 앵글에게 패배한다.
"네 이름이 어떻게 되냐, 꼬맹아."
"존 시나 입니다."
"존 시나...잘했다."
이 후 백스테이지에서 커트 앵글 같은 대선수와 괜찮은 경기를 했다며 선수들에게 칭찬을 받다가, 당시 WWE 챔피언이자 WWE 역사의 거인인 언더테이커와 만나, 언더테이커가 존 시나를 격려하자 시나가 감격을 금치 못하는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도 있었다. 이후 WWE의 아이콘으로까지 성장한 존 시나의 미래를 보자면 상당히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존 시나는 아직 여러모로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고, WWE에서도 어느정도 밀어주고 있기는 했어도 아이콘급으로는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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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의 WWE 섬머슬램(2002)에서 브록 레스너는 기어코 더 락을 상대로 승리하여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경기 이후 락은 영화를 찍으러 떠났고, 스티브 오스틴은 무단 탈단을 한 상황.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이 모두 사라진 시점이니, 애티튜드 시대는 이제 종결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남아 있었으니…

9. 애티튜드의 마지막 황혼

WWE에서 무단 탈단을 한 이후 스티브 오스틴은 아내인 데브라 마샬 폭행 사건 등으로 이혼을 겪으며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132]. 그렇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만 지내던 스티브 오스틴에게, 2002년 10월 경 하나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절친했던 짐 로스였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내 도움을 원한다면, 나는 여기 기다리고 있겠네."

짐 로스의 편지를 받은 스티브 오스틴은 즉시 전화를 걸었고, 장시간 통화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커리어를,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

이후 짐 로스는 오스틴에게 빈스를 만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오스틴이 그럴 생각이 있다고 말하자 얼마 후 휴스턴의 호텔에서 빈스와 오스틴은 서로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무렵 이미 오스틴은 이번에 치를 경기를 '마지막 경기' 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빈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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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은 자신의 마지막 상대로 더 락을 선택했다. 오랜 라이벌인 더 락에게 완패하고 물러나는 것만이 최고의 마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더 락은 몇 차례 영화 촬영을 하며 자리를 비우면서 팬들에게 야유가 나오고 있던 참이었는데, 되려 이것을 기믹으로 사용해서 '거만한 할리우드 스타' 이미지를 내세운 악역 노릇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당시 WWE의 계획으로는 락이 레슬매니아 이후 골드버그와 대립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골드버그와의 대립 이전에 최대한 락을 강한 이미지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오스틴을 꺾는다면 더할 나위 없었기에 이 계획을 승인했다.

이렇게 되어 락과 오스틴의 경기가 WWE 레슬매니아 XIX에서 잡히게 되었다. 벌써 레슬매니아에서만 세 번째 펼쳐지는 양대 아이콘의 격전이었다. 이때까지 락은 같은 시대의 라이벌인 오스틴에게 단 한번도 일 대 일로 이겨본적이 없었기 때문에,[133] 이것은 락에게도 꽤나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레슬러로서의 수명이 끝난 상태인 오스틴의 몸 상태였다. 오스틴은 락과의 경기가 잡힌 이후 체육관에서 몸을 만들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목 부상을 비롯해서 등, 무릎 등 사방에 부상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더구나 지나친 카페인, 강장제 섭취 후에 훈련을 하면서 심장에도 큰 무리가 오고 있었다. 여기에 간헐성 경련 증세로 다리가 경련으로 뒤틀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결국 오스틴은 경기 바로 전날 하마터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었던 위급한 상황이 되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야만 했다. 이날 밤을 병원에서 보낸 오스틴은 겨우 상태가 호전되어 경기를 하러 올 수 있었다. 실제로 경기 중에도 기술을 접수한 이후 큰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모습을 여러차례 볼 수 있다.


경기에서 오스틴은 경기 운영의 상당 부분을 락에게 맡겼고, 서로의 피니쉬 무브를 연달아 먹이며 경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경기의 절정 부분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피플스 엘보우를 맞은 후 락바텀을 맞고도 킥아웃을 했다. 그러자 락은 또다시 락바텀을 작렬시켰지만, 오스틴은 또다시 킥아웃을 했다.

그러자 락은 마지막으로 오스틴에게 세 번째의 락바텀을 날렸고, 이번만큼은 오스틴도 킥아웃을 하지 못했다[134]. 애티튜드 시대를 이끈 영웅이자, WWF를 구원한 인물이며 한 시대의 지배자였던 오스틴의 마지막 경기는 이렇게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락은 오스틴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135]
"난 자네를 사랑해."
"나도 마찬가지야."

오스틴이 그렇게 대꾸하자 락은 또 한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넌 모를 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레슬매니아 다음날인 3월 31일 RAW에서 더 락은 세그먼트를 통해 이 업계에서 이름 난 선수는 모조리 꺾어보았다면서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거만을 떨었는데, 그 순간 WCW의 상징과도 같았던 골드버그가 등장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짦은 대립을 했지만 백래쉬에서 골드버그는 더 락을 꺾었고, 이후 더 락은 영화 배우로 성공을 하기 위해 떠났다. 이전까지의 단발성 이탈이 아닌, 사실상의 은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 시대를 지배했던 또다른 위대한 아이콘, 피플스 챔피언도 WWE를 떠났다. 한 시대를 이룩했던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두 레슬러가 모두 떠남으로써 그 시대도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WWE는 'Ruthless Aggression' 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5년동안 이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2009년 1월 12일, WWE는 스티브 오스틴의 명예의 전당 헌액을 발표했다. 명예로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공식 은퇴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슬픈 광경이었다.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펼쳐진 헌액식에서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은 자신이 직접 나서 "WWE 역사상 가장 터프한 SOB(개자식)"을 소개했고, 오스틴은 선수 시절에는 절대로 입지 않았을 양복을 입고 나와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레슬매니아 25 당일, WWE 명예의 전당 입성자의 자격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것 말고 아무런 역할도 맡지 못했기에 팬들이 굉장히 아쉬워한 상태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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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끝나자마자 수트가 아닌 Austin 3:16 티셔츠를 입고 ATV를 타고 링으로 폭풍질주, 7만 관중 앞에서 맥주쇼를 선보였다. 이 때 자신의 베프였던 짐 로스와도 함께 잔을 나누었다. 짐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진정한 오스틴 시대(Austin Era)의 마지막 입니다."

이렇게, 프로레슬러로서 스티브 오스틴의 시대는 모두 마무리되었다.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Home."[136]

그리고 2011년 2월 14일, 더 락이 무려 7년만에 WWE에 컴백했다. 이후 더 락은 미즈, CM 펑크, 무엇보다 존 시나와 대립을 가지며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 이 기간 동안 락의 활약에 대하여 옛 스타의 귀환이라며 환영할 수도, 알바 주제에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며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확실한 부분은 락의 출연이 WWE의 상업적인 부분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락이 출연한 레슬매니아 27~29가 전부 백만 가구의 구매율을 돌파하며 역사상 최고흥행을 달성했다. 이는 WWE 네트워크 출범 준비 등 적자로 고생하고 있는 WWE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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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 30에서는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 더 락이라는 아이콘이 모이며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 세그먼트를 장식했다. 모든 업적을 이룬 이 세 선수가 한데 모여 있는 광경만 보아도 전율이 돋았다는 것이 레슬링 팬들의 반응이다.

10. 이후의 시청률 경쟁

2010년 1월 4일 헐크 호건이 임팩트 레슬링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또 다른 월요일 밤의 전쟁을 선포하고 임팩트 레슬링이 월요일 RAW와 같은 시간에 진행되었으나 일방적으로 RAW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3개월만에 다시 방영 일자를 바꾸게 된다. 진정한 월요일 밤의 전쟁 재현은 2019년 WWE NXT 올 엘리트 레슬링 AEW 다이너마이트의 시청률 전쟁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단, 둘 다 수요일 편성이라서 수요일 밤의 전쟁이라 불린 이 대결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펼쳐지다 NXT와 방송사의 사정으로 인해 편성이 바뀌며 종료된다.

[1] 접이식 철제의자, 접이식 탁상, 철제 사다리, 심지어 철선 방망이, 압정, 슬레지 해머까지. 그야말로 사람들을 가격했다간 그대로 불구가 돼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물건들이 등장했던 때가 이 시기였다. 당장 새로 생긴 TLC 매치는 인기도 1위였다. [2] 결국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었는지 나중에는 레슬링 기믹으로 라잇 투 센서라는 스테이블 기믹까지 등장시키고 만다. 더 웃긴 건 이 멤버들 중 하나가 과거 '포르노 배우 출신 레슬러' 기믹을 연기했던 발 비너스였다는 것. [3] 지금이야 여성들도 여자부 경기를 신설, 위민스 챔피언을 가릴 정도로 경기 참가가 활발하지만 이 당시 여성이란 그저 남성 레슬러의 파트너이자 눈요깃감에 불과했다. 차이나의 등장으로 이러한 개념이 약간 개선되긴 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차이나에 대해 묘한 성적 매력을 느끼는 팬들도 없지 않아 있었을 정도였다. 어딜가나 특이한 것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부류는 있기 마련이다. [4] 심지어 불이 등장했고 멀쩡한 차까지 파손시키거나,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인 미수, 각본상이긴 하지만 70살이 넘은 노인과 잠자리를 가져 아이를 임신시키고 출산 장면까지 방송에 내보내는 막장 연출을 등장시켰으니 말 다했다. [5] WWF 로얄럼블(1995)에서 이룬 첫 우승은 1번으로 나와 우승했다. [6] 레슬링 옵저버 선정 1996년 올해의 경기 5위.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와이어 로프를 타고 나타난 등장 장면이 나왔다. [7] 다만 트리플 H는 훗날 이에 대해 빈스가 분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커튼 콜 사건 문서 참고) 어쨌든 트리플 H는 이 시절을 묵묵히 견디면서 자신의 입지를 키워나갔다. [8] 다만 WWF의 캐릭터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격노한 빈스가 WCW를 고소하기도 했다. [9] 성경의 유명한 구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을 비튼 것이다. [10] Buried Alive, 말 그대로 생매장. [11] 그의 외할아버지였던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High Chief' Peter Maivia)'와 아버지였던 '록키 존슨(Rocky Johnson)'의 이름을 조합해 만든 링네임. 참고로 드웨인 존슨은 이 링네임을 싫어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본인의 힘으로 성장하고 많은 것을 이뤄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빈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3세대 레슬러인 만큼 네 스토리는 특별하다. 그렇기에 조부와 부친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라고 답하면서 락키 마이비아로 데뷔하도록 했다. [12] 이 시기를 기점으로 WWF는 당시 시청 등급(PG 등급)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유혈이 낭자하는 과격하고 잔혹한 액션,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거친 마이크웤, 그리고 노골적인 섹스 어필을 선보인다. 예를 들면 숀 마이클스와 트리플 H가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바지를 벗어 엉덩이를 까버린 장면이 대표적이다. 애초에 그들이 만든 스테이블인 D-Generation X가 타락한 X세대를 뜻했고 이는 WWF가 본격적인 성인 취향의 애티튜드 노선을 밀고 나가기로 했던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DX가 등장하게 된 1997년을 애티튜드 시대의 진정한 시작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은 편.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부터 시작으로 여기는 의견 또한 많다. [13] 커튼 콜 사건, DX, 몬트리올 스크류잡과 같은 주요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인성 개차반 시절의 숀 마이클스가 본인이 의도했던 안 했던 기존의 WWF 분위기를 깨고 성인 지향적인 애티튜드 시대의 물꼬를 틔워줬다고 볼 수 있다. [14] 훗날 이 기록은 랜디 오턴에 의해서 갱신된다. [15] 이 당시까지만 해도 락은 "락키 죽어라!(Die Rocky Die!)"라는 팬들의 말까지 들어야 했으며, 신인이 선역을 맡으면 안되는 한 예시가 되었다. 당시 락키가 받던 푸쉬는 이후의 브록 레스너, 바비 래쉴리, 셰이머스 등과 비교될 정도이다. [16] 여기서 그 유명한 "난 과거에 최고였고, 현재도 최고이며, 미래에도 최고일 것이다!(I am The best There is, The best There was, and The best There Ever Will Be!!!)라는 명대사가 나왔다. [17] NXT 브랜드를 제외하고, WWF/WWE 역사상 별점 다섯 개 경기는 이 경기를 포함해 오직 10개뿐이다. 다른 경기로는 1992년 섬머슬램에서 있었던 브렛 하트와 브리티쉬 불독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매치부터, 1994년 WWF 레슬매니아 10에서 있었던 WWE 역사상 최초의 래더 매치이자 레슬매니아 역사상 첫 별점 다섯 개 매치가 된 숀 마이클스와 레이저 라몬 기믹의 스캇 홀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매치, 같은 해 섬머슬램에서 있었던 브렛 하트와 오웬 하트 형제의 WWF 챔피언십 매치, 1997년 배드 블러드에서 있었던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최초의 헬 인 어 셀 매치, 2011년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있었던 존 시나 CM 펑크 WWE 챔피언십 매치, 2022년 헬 인 어 셀에서 있었던 코디 로즈 세스 롤린스의 헬 인 어 셀 매치, 같은 해 클래시 앳 더 캐슬에서 있었던 군터 셰이머스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매치, 그리고 2023년 WWE 레슬매니아 39에서 있었던 1일 차의 새미 제인 케빈 오웬스 태그팀과 우소즈 통합 WWE 태그팀 챔피언십 매치와 2일 차의 군터, 드류 맥킨타이어, 그리고 셰이머스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트리플 쓰렛 매치가 있다. [18] 이는 프로레슬링 사상 첫 더블 턴(Double Turn, 한 경기나 세그먼트에서 선역과 악역이 동시에 서로의 역할을 교대하는 것)이다. 다만 오스틴은 자신이 여전히 악역으로 연기할 거라 믿었는지 브렛이 이제 넌 선역이 될 거라며 칭찬하자 의아해했고 못 믿는 오스틴에게 직접 관객들이 오스틴에 대한 열성적인 환호를 보내는 걸 보여주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이때의 일이 인상깊었는지 자신에게 있어 브렛과의 경기는 최고의 경기였다고 회고했으며 브렛 역시 오스틴 덕분에 자신은 좋은 쪽으로 역사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되었다며 오스틴에게 고마워했다. [19]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 팀이 되어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으며, 오스틴이 WWF에서 얻은 첫 타이틀이 바로 태그팀 타이틀이었다. [20] 이 무렵 숀 마이클스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WCW로 보내달라고 빈스에게 사정을 했지만, 빈스는 WCW는 자네와 같은 선수를 활용할 줄 모른다며 숀을 잔류시켰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당장 WWF 시절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아이콘과도 같은 상징성을 지녔던 브렛 하트가 WCW로 이적한 이후 그야말로 듣보잡 및 쩌리가 되어버렸다. [21] 그러나 이때부터 WCW의 유명 인사 집착증이 발생했으며, 결국 이는 WCW의 몰락에도 일조한 원인이 된다. [22] 그리고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간의 대립의 시발점이 된다. [23] 나중에 오스틴의 말에 따르면 목이 부러진 직후 경기를 정상적으로 계속 진행할수는 없는 상태였고 롤업으로 오스틴이 승리하는 데엔 의견이 일치했으나, 당시 챔피언이었던 오웬 하트가 롤업에 맥없이 질 수는 없고 3카운트 직후에 킥아웃을 해야된다고 밀어붙여서 그렇게 하였고, 그 킥아웃으로 이미 부러진 목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24] 이로써 1997년은 1994년, 2022년, 2023년과 더불어 WWE에서 데이브 멜처 선정 별 다섯 개 경기가 두 번 이상 나온 해가 되었다. [25] WWF 내에서도 복귀는 절대 안된다고 했지만 오스틴이 밀어붙였기에 복귀 이후 부상을 입어도 WWF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계약 조건까지 걸려 있었다. [26] 빈스가 이 같은 결정을 한 계기 중 하나가 WWF의 디바였던 메두사의 WCW 이적이었다. WWF 위민스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재정 절감을 이유로 해고당한 메두사는 1995년 WCW로 이적한 후 자신의 WCW 방송 데뷔에서 WWF 위민스 타이틀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만행을 저질러버렸다. 빈스는 이같은 행위를 회사와 타이틀의 가치 하락이라고 여겼고 브렛의 경우도 이와 같은 경우라 생각하고 반대한 것이다. 훗날 메두사는 그 일은 에릭 비숍이 시켜서 한 짓이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계약해지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도 WWF 위민스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7] 대립 상대가 숀이 아니라 오스틴이라면 얼마든지 져주고 타이틀을 줄 수 있다고 했으나 당시 오스틴의 상대는 브렛의 동생 오웬 하트였고 대립이 현재진행형으로 격렬히 진행되고 있어서 갑자기 상대를 브렛으로 바꾸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오스틴은 오웬에게 입은 목 부상이 완치되지 않아서 바로 메인 타이틀전으로 가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28] 당시 브렛에게는 수뇌부가 선수에게 제시하는 각본이 탐탁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의견을 조율해서 변경을 할 수 있는 각본 조정 권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는 브렛의 정당한 항변이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빈스가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강행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브렛이 각본 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의도하는 대로 쉽사리 일이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했다. [29] 베이더는 경기 전에 브렛 하트에게 "빈스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엿 먹이는데 도가 텄으니 조심하라." 고 경고했다고 하며, 같은 스테이블로 활동하던 브리티쉬 불독 역시 주의하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사실 브렛은 이러한 충고 역시 귀담아들었으나, 시합 자체의 완성도를 위해 사이가 좋지 않은 숀 마이클스, 그리고 절친했던 심판 얼 헤브너 등과 계속 의견을 맞추어가는 도중이었던지라 설마했다고. [30] 선수 노동조합의 조합장님 되시는 백스테이지의 거물 언더테이커는 직접 빈스의 멱살을 잡고 브렛에게 끌고 오기까지 했다. [31] 만약 스크류잡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WWF의 거물들을 닥치는 대로 데려오던 WCW가 브렛 하트로 WWF 죽이기를 완성할 상황이었다. WWF는 브렛이 챔피언을 반납하고 본인의 위상을 유지한 채로 WCW로 이적했다가 WCW에서 전투력 측정기로 전락하거나, 브렛이 메두사처럼 WWF를 노골적 디스해 WWF를 확인사살하는 그림을 우려했고, 스크류잡을 일으킨 후 이를 기믹과 각본에 녹여내어 WCW에게 밀리던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32] 결성 당시에는 릭 루드도 있었지만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대한 불만으로 WCW로 가는 바람에 비교적 묻혔다. [33] 아이디어를 준 건 레이븐. [34] 레이븐은 전날 챔피언을 획득했기 때문에, 하루만에 타이틀을 잃게 되었다. [35] 문자 그대로 엄청난 화제인 것이 우리나라 스포츠 언론에 소개가 되었고 마이크 타이슨이라는 이름을 안다 싶은 세계 각 나라의 신문의 스포츠 카테고리의 한 면씩을 차지했고 미국 방송 뉴스에서도 나오는 등 문자 그대로 엄청난 화제였다. [36] 애티튜드 시대의 문을 연 숀 마이클스는 이 부상 때문에 2002년에 복귀할 때까지 선수로서는 은퇴하여 애티튜드의 전열에서 이탈했다. 당시 숀 마이클스의 상태가 정말 좋기 않았기 때문에, 오스틴은 경기가 정말 열릴지 긴가민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경기가 열리는 것을 보고, 비즈니스의 비정함에 대해서 놀랐다고. [37] 한편, 90년대 숀 마이클스의 화려한 전적 때문에 혹시 이 경기에서도 숀 마이클스가 오스틴을 상대로 술수를 부릴지 모른다고 생각한 언더테이커는, 숀 마이클스를 찾아가서 "혹시 브렛 하트와의 경기 때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재미없을 줄 아는 게 좋다."는 식의 경고를 했고, 경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 끝나게 되었다. 다만, 숀의 입장에선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는 몸 상태인데다 브렛에 대한 트라우마급 죄책감을 품고 있었기에 언더테이커의 우려와 같은 일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38] 이 경기 전 신시내티 레즈의 전설적인 빅 레드 머신 타선을 이끌었던 피트 로즈가 출연해 개최지였던 보스턴을 깠다가 케인에게 툼스톤을 맞고 실려나갔다. 이후 피트는 3년 연속으로 케인과 얽혀서 툼스톤과 리키쉬의 스팅크 페이스를 맞는 등 온갖 고생을 했으며, WWE는 이 노고를 인정하여 피트를 2004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켜주기까지 했다. [39] 엑스팍은 이전에 94년에 1-2-3 키드란 이름으로 등장하여 타이틀을 얻기도 했고, 클리크에도 가입하여 트리플 H 등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nWo의 초창기에도 식스(Syxx)란 이름으로 활동하였다가 에릭 비숍과의 관계 악화로 DX에 가입하게 된 것. [40] 사실 이 정도 매치업을 위클리쇼에 배치한 WCW의 오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헐크 호건을 비롯한 네임드들이 권력을 차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으로 골드버그가 자신들보다 돋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41] 이 시기에 강그렐 에지가 WWF에 데뷔했다. [42] 그리고 여기서부터 호건이 WCW에게 회의감을 느끼게 된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배쉬 앳 더 비치가 끝난 뒤부터 호건은 점차 눈이 썩는 경기와 안하느니만 못한 막장 시나리오를 일일이 소화해야만 했고 결국 이것이 폭발하여 2000년에 탈퇴를 해버리며 WCW를 영원히 손절해버렸으니. [43] 파일:takershocked.jpg 이 경기에서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언더테이커의 경악하는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다. 2013년 발매된 For All Mankind - The Life and Career of Mick Foley에 수록된 장면인데 믹 폴리가 실려나가고 언더테이커는 셀에서 내려오던 중 자신을 뜯어말리는(관용구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을 뿌리치고 링으로 복귀하는 믹 폴리를 보고 지은 장면이다. 저 상태로 3초 정도 행동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셀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배드 애스 기믹을 제외하면 웃는 모습은 커녕, 표정 변화조차 거의 없던 언더테이커의 기믹이 무너져내리며 제4의 벽이 파괴된 몇 안 되는 순간. [44] 두 번째 중계 도중 내뱉은 말의 경우 믹 폴리가 뜯어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다시 셀 위로 올라가 언더테이커와 경합하다 언더테이커의 초크 슬램으로 인해 셀 천장을 뚫고 링 위로 떨어진 직후의 발언. 전체 영상의 14분부터 나온다. [45] 더불어 이 경기 회고 부분은 폴리 본인이 추락의 충격으로 기억을 못 해서 경기 영상을 보고 작성했다. 언더테이커는 믹 폴리를 철장 밑으로 던질 때 '시간이 멈췄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참고로 언더테이커의 경우 믹 폴리를 추락시킨 순간부터 "심장이 멈출 뻔할 정도로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46] 믹 폴리의 상징으로 유명한 미스터 삭코(Mr. Socko)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47] 초크 슬램을 당하고 셀 구조물이 부러지는 바람에 믹 폴리는 링 바닥에 직격으로 처박히게 된다. 언더테이커에 따르면 원래 그 구조물은 부러지지 않았어야 됐다고. 즉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당시의 헬 인 어 셀은 경기가 창시된 지 1년이 채 안 된 탓에 상태가 불안정해서 언더테이커와 믹 폴리가 한 번 밟았다가 구멍나거나 천장이 뜯길 뻔할 정도로 움푹 파이는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이후 테이커는 믹 폴리에게 '제발 그냥 누워 있어라' 라고 했다. [48] 여기서 이빨은 셀 구조물 천장에서 언더테이커에게 초크 슬램을 당하고 구조물을 부러지는 순간, 믹 폴리가 들고 나온 철제 의자가 같이 떨어져 폴리의 얼굴을 직격해서 부러진 것. 이후 링 코너에 몸을 기대고 있던 폴리를 클로즈업 했는데 부러진 이가 코로 나와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49] 언더테이커가 믹 폴리에게 철장 위에서 구사한 초크슬램은 사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그 순간을 보면 믹 폴리가 접수를 못 해 발이 거의 뜨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제대로 들어갔다면 믹 폴리는 정말로 죽었을 거라고. 심지어 두번째 추락을 본 중계 아나운서가 믹 폴리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그만해달라고 애원까지 했다. [50] 한편, 셀에서 떨어지는 무브먼트는 믹 폴리의 레슬러 인생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믹 폴리가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지미 스누카가 셀 위에서 수퍼 플라이 스플래시를 하는 걸 현장에서 본 것이고, 자신을 전설의 위치로 끌어올려준 것도 셀에서 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 [51] 믹 폴리는 언더테이커의 노련함이 없었다면, 철장 위에서 초크슬램을 당했을때 경기는 중단되어서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52] 심지어 첫 번째는 위치를 잘못 잡아 제대로 안박혀서 본인이 압정 위에 직접 굴러서 압정을 온 몸에 박는 자해를 했다.(?!) 그러고 나서 언더테이커에게 초크슬램을 맞고 나서야 제대로 처박히게 된다. [53] 다시 강조하지만 사느냐 죽느냐 했던 헬 인 어 셀 경기가 끝난 당일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54] 빈스 맥맨은 말을 듣지 않는 언더테이커와 케인에게 뻐큐를 날리다 걸려 철제 계단에 발목을 맞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55] 사실상 1년 전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셀프 패러디, 더 웃긴건 WCW에서도 스크류잡의 패러디를 했는데 이때는 브렛이 상대( 골드버그)를 엿먹이는 입장이었다. 한풀이 다만 이 경기가 바로 브렛의 은퇴의 계기가 된 그 슈퍼킥이 나온 경기이기도 했다. [56] 새 챔피언을 가리는 첫 경기에서는 재클린이 승리했는데, 졸속으로 이뤄진 부활이라 새 벨트조차도 만들어놓지 않고 경기를 치러서 분명 링 아나운서는 챔피언십 매치라고 선언하나 타이틀은 보이지 않는다. [57] 다만 케빈 내시의 이 발언은 "여자가 나와서 벗기나 해야 WWF가 WCW를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라고 비꼰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58] 스티브 오스틴은 이 해 WWE 역사상 가장 많은 상품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존 시나조차 이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 존 시나는 2008년의 기록으로 2위까지는 올랐다. [59] 더불어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1998년도 루 테즈/ 릭 플레어 어워드(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다. [60] 연봉에서도 오스틴의 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해를 기점으로 오스틴의 연봉은 1200만~1300만 달러를 기록하는데 미국의 국민 스포츠인 MLB에서도 당시에 1000만 달러는 초특급 선수 몇명정도만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61] 전기충격기로 골드버그를 지졌다. [62] 이전부터 비슷한 짓을 몇번 했다. [63] WCW에서 스포일러를 날렸던 아나운서 토니 쉬보니는, 나중에 울면서 믹 폴리에게 이 일은 에릭 비숍이 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64] 1999년 2월 8일은 Raw가 결방되었기 때문에 예외. 나이트로는 결방 버프로 0.7포인트의 시청률이 올랐으나 다음주 Raw가 재개되자 3점대로 바로 추락했다. [65] 이때 관중석을 보면 거의 모든 관중들이 빈스에게 뻐큐를 날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66] 레슬매니아 당일 맨카인드는 빅 쇼와 이 경기의 심판 자격을 놓고 보일러실 경기를 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심판 자격이 있었다. 단지 경기가 너무 과격한 나머지 부상이 심해서 처음부터 나오지 못하고 빈스 맥맨이 멋대로 나왔던 것이다. [67] 사실 오웬 하트는 1980년대 말 블루 블레이저라는 이름의 가면 레슬러로 WWF에 등장한 적이 있는데 이즈음(1999년 오버 디 에지 시점)에는 본명인 오웬 하트로 등장하면서 과거 사용했던 블루 블레이저 캐릭터를 가면 레슬러라는 점을 이용해서 바꿔치기를 하는 등 교활하게 사용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즉, 이 당시 오웬 하트는 본명으로 활동 중이었지만 과거 캐릭터인 블루 블레이저도 사용하고 있었던 것. [68] 게다가 이는 어찌보면 막을 수도 있었던 예견된 비극이기도 했는데 오웬 하트 문서에 기재된 것처럼 오웬은 그날따라 유달리 와이어에 불길함을 느껴서 절대 와이어 액션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었다. 그럼에도 짐 로스와 빈스가 각본 수행을 하도록 명령과 설득을 해서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얄궂게도 오웬의 불길한 예감이 최악의 방향으로 적중해버리고 만 것이며 짐 로스는 이 일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씻어내지 못할 최악의 과오이자 죄라며 크게 후회하게 된다. [69] 백스테이지와 입장로의 중간지대. 쇼와 현실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라고도 한다. [70]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애티튜드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등극했고 여기에 짐 로스가 "Ah, Son of a Bitch!"라는 대사 역시 일품으로 들어간다. [71] Unholy Alliance. 빅 쇼, 언더테이커 태그팀 시절 사용하던 테마곡 제목. [72] 순간 시청률이 아닌 Raw 자체의 시청률은 1999년 5월 10일의 8.09%가 최고. [73] 이게 가능했던 건 당시 악역 트리플 H가 오스틴을 괴롭혀대던 악덕 회장 빈스를 초월할 정도로 악랄했고 그에 대한 반동인지 빈스가 턴페이스로 선역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지금에 오면 이런 각본을 짰냐고 욕을 먹을테지만 그만큼 애티튜드 시대가 회장조차 챔피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혼돈 시기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74] 1경기 VS 빅 쇼 - 초크슬램 매치, 2경기 VS 케인 - 인페르노 매치, 3경기 VS 언더테이커(부상으로 결장) 비세라&미디언 - 캐스킷 매치, 4경기 VS 맨카인드 - 보일러룸 매치, 5경기 VS 더 락 - 브라마 불 스트랩 매치. [75] 부상으로 결장한 언더테이커는 1년 뒤 대 반전의 컴백을 보여준다. [76] 당시 루소는 WWF측과 계약도 안된 상태였다. [77] WWE 50의 월요일 밤의 전쟁: The End 챕터에서 [78] 골더스트(더스틴 로즈)의 전 아내 [79] 오스틴의 몸 상태가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태라 이런 각본상 부상이 나오게 되었다. [80] 트리플 H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냐는 질문에 트리플 H는 스테파니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Yes I do라고 말해버린다. [81] 이 당시 트리플 H의 실제 여자친구는 바로 차이나였다. 그런데 부부 연기를 하는 동안 스테파니가 트리플 H에게 반해 고백해버리고 마침내 트리플 H는 WWF의 역사를 바꾸게 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03년 10월 두 사람은 정말로 결혼하게 된다. [82] 믹 폴리의 애드립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압정이 아닌 일반 매트에서 페디그리를 맞고 지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킥 아웃해서 트리플 H가 놀랐으며 믹 폴리가 트리플 H에게 이렇게 끝내는 게 더 멋있고 화끈할 거라며 설득했던 것. 당연히 트리플 H는 이걸 진짜 해야하나 시전을 준비하면서도 망설였었고 가뜩이나 믹 폴리의 하드코어한 각본 수행에 안 좋은 추억이 있던 빈스는 당연히 이런 믹 폴리의 애드립에 크게 격노하며 꾸짖었다. [83] 하디 보이즈는 WWF 활동 초창기에 더들리 보이즈의 태그팀 피니쉬 무브 3D와 비슷한 기술을 썼다. 버버레이 더들리가 한 성깔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다른 프로레슬러의 피니쉬 무브를 무단으로 베끼는 건 프로레슬링에서 결례인데, 하디 보이즈가 무단으로 베낀 건 아니고, 당시 하디 보이즈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헤이즈의 권유로 몇 차례 쓴 것이었다. 매트 하디가 주저할 때 마이클 헤이즈는 본인이 고안한 기술이라며 쓸 것을 종용했다. [84] 당연히 1998년 킹 오브 더 링의 사태는 피하고자 링이 함몰하며 쿠션 역할을 했고 헬 인 어 셀의 뚜껑 역시 미리 풀려 안전하게 추락하도록 기믹을 갖춰놓았을 것으로 보이나 트리플 H가 정말 놀라며 기겁하는 걸 보면 또 사고가 발생한 것일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믹 폴리가 떨어진 장소는 1998년 당시 맨카인드 시절 언더테이커에게 초크슬램을 당하며 추락한 바로 그 위치였다. [85] 트리플 H, 믹 폴리, 빅 쇼, 더 락의 대결이었다. 거기다 각각의 후원자가 스테파니 맥맨, 린다 맥맨, 셰인 맥맨, 빈스 맥맨인지라 그야말로 콩가루 가문의 대결이 끝까지 간 상황. [86] 관중들이 쓰레기를 던지는 등 적극적으로 야유에 나섰다. 엄연히 말하자면 최초는 아니다. 레슬매니아 9의 메인이벤트에서 악역인 요코주나가 선역인 브렛 하트를 이미 이겼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헐크 호건이 뜬금없이 난입하며 원래 예정에 없었던 타이틀매치에서 요코주나를 몇십초만에 초살했기 때문에 결국 끝에는 선역이 이긴 셈이긴 하다. [87] 본래는 E&C와 하디 보이즈의 대결로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이후 삼자간 대결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88] 특히 제프 하디는 제일 높은 사다리에서 테이블 위로 버버레이 더들리에게 스완턴 밤을 날렸다. 근데 조금 위치가 안맞아 본인의 엉덩이에 충격이 다 가버렸다. [89] 사실 본래 승자는 하디 보이즈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빈스가 에지와 크리스챤의 악역 소화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그 둘을 태그팀으로 좀 더 유지시키기 위해 승자로 바꾸었다. [90] 사실 디본은 고소공포증 환자라, 이 장면을 찍는것을 매우 두려워했으나 눈 딱 감고 했다. [91] 이 상황에 뜬금포를 맞은게 무토 케이지. 에릭 비숍의 간곡한 부탁에 일본에서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다시 한번 그레이트 무타로서 WCW로 등장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에릭 비숍은 짤렸고, 주위 각본진들은 "어? 님 왜옴?" 정도였다고 하며 각본도 영 좋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92] 사실 리키시를 띄워주기 위한 각본이었으나 별 신통치않은 반응이 나오자 결국 대립 대상이 트리플 H로 변경된 것. [93] 참고로 이때 대역으로 등장하던 선수들 중엔 크리스토퍼 다니엘스도 있었다고 한다. [94] 이 각본은 E&C, 하디 보이즈가 서로 엄청 친했기 때문에 가능한 각본이었다. 하지만 5년뒤 이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95] 태그 팀 전성기를 이끈 이 넷은 남성지향적인 애티튜드 시대에서 잘 생긴 외모와 날렵하고 준수한 경기력과 연기력으로 여성 팬, 어린이 팬들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기력은 서로의 케미스트리가 훌륭하기에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티튜드 시대에는 위클리쇼에서 하디 보이즈 테마곡이 나오면 못 듣던 여자 환호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96] 그래도 ECW에서 WCW 소속의 마이크 어썸과 WWF에 가있던 태즈를 잠시 복귀시켜 WCW vs WWF라는 기묘한 경기를 치렀고, 결국 ECW팬들의 지지를 받던 태즈가 타이틀을 다시 가져왔었다. [97] 케인은 이 경기에서 한경기 최다 인원 제거 기록을 세웠다. 2014년 로만 레인즈에게 깨지지만. [98] 딘 말렌코는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 레슬러를 꼽으면 이름이 언급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99] 두 사람은 리타가 WWF에 오기 전부터 연인 사이였다. [100] 허나 그 직후 오스틴에게 스터너를 맞고 뻗었다. [101] 참고로 이 마지막 이벤트 3일 전에 갑작스럽게 인수가 결정되면서 WWF 스태프들이 제작하게 되는데 모기업이었던 AOL에서 WCW 내부 인사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이벤트 현장에서 모든 사태를 파악하게 된 WCW 레슬러들은 '우린 이제 X됐다. WWF로 가봐야 그동안 적이었던 우리를 좋게 보지 않을텐데' 라면서 절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그 불안감은 적중하고 만다. [102] 훗날 2014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리타는 TLC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103] 트리쉬 본인은 자신이 개처럼 짖는 굴욕을 당한 후 빈스의 뺨을 때린 이 시기를, WWF 내에서 디바들의 위상이 스토리상으로 높아진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104] 이 경기는 멜쳐로부터 별 4개 반을 받고, 2001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7위에 선정된다. [105] 명목상으로 빈스가 무기한 출장정지처분을 내렸다. [106] 이 두 사람은 투 맨 파워 트립(The Two Man Power Trip)이라는 태그팀으로 활동했다. [107] 바로 그 순간 팬들의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고 오스틴은 이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했다. [108] 인터뷰 말미에 짐 로스는 부상당하던 오스틴을 위로한 사람은 자신이었으며 WWF에서 오스틴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이는 자신과 자신의 부인뿐이었지만 지금 자신은 베프를 잃었다며 그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마침내 오스틴은 짐 로스의 모자와 안경을 쳐내며 흥분해버리고 이에 짐 로스가 인터뷰한게 실수였고 이제 끝났다며 돌아서자 공격해버린다. [109] 오스틴은 이때의 기억 때문에 존 시나의 악역 전환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실제 오스틴은 자신의 자서전인 'Stone Cold Truth' 에서 악역 전환을 "바보같았던 결정" 이라며 후회한다는 내용을 실었다. [110] 이 경기는 2001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위에 선정되었다. 본래 트리플 H를 매우 안 좋게 보던 크리스 제리코 역시 자서전에서 이 경기를 언급하면서, 트리플 H는 이 일로 자신의 존경을 얻었다고 작성했다. [111] 이때 WWF 무리를 이끌던 브래드쇼는 진짜로 무시무시하게 척 팔럼보와 션 오헤어를 팼다고 한다. 인베이전 각본이 진행되면서 WWF 소속 선수들의 사기도 뒤숭숭해졌었다고. [112] 사실 이건 이미 레슬매니아 17 에서 전조를 보였다. 쇼 중간 세그먼트에서 셰인이 WCW 선수들을 소개하는 씬이 있었는데 이때 관중들이 엄청난 야유를 퍼부었다. 참고로 이때 셰인은 선역이었고 아버지 빈스와 대립 중에서 엄청난 환호를 받던 중이었는데도 이랬다는 것. [113] 거기에 WCW/타임 워너 사와의 계약 때문에 nWo, 빌 골드버그, 릭 플레어, 스팅 등의 메인 이벤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유명세가 있었던 선수라면 부커 T와 DDP 정도였다. [114] 이후 버프 배그웰은 WWF 출연을 접었다. [115] 셰인은 실제로 레슬링 경기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무술 유단자들과 개인 트레이너까지 두어 훈련에 임했다고 한다. [116] 이에 대해 훗날 셰인과 함께 이 경기를 보면서 추억을 회고하는 자리를 가진 앵글은 저 상황을 회고할 때 유리창에 부딪히자마자 "설탕유리 참 더럽게 단단하네. 뭔가 ㅈ된거 같아."라며 황당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연히 백스테이지 담당자는 빈스에게 깨진 뒤에 해고 처분을 당하는 댓가를 치렀다고 한다. [117] 이들은 모두 ECW 출신이었다. [118] 이 당시 장소가 필라델피아였기 때문에 'to Philadelphia!'라고 관중들이 외쳤다. 이 뒤에 나오는 것이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119] 논지는 셰인은 "더 락 당신이 저 자(빈스 맥맨)가 함께 하는 한 배신의 배신 가운데 지낼 수밖에 없다. 우리와 함께 새 시대를 열자" 였고 빈스는 "난 사업가이니 사업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난 언제나 더 락을 존중하고 진실하게 대할 것" 이란 내용이었다. [120] 이때 빈스가 했던 말은 "Don't listen to him. Listen to the voice of reason. Listen to the voice of an experience. Give this people what they want!" 이었다. [121] 당시 미국에서는 9.11 테러가 벌어진 여파로 금메달 영웅이어던 커트 앵글의 이 타이틀 획득은 상당히 숙연한 광경이었다. 다음 페이퍼뷰인 노 머시 2001의 포스터는 성조기와 커트 앵글의 조합이었는데 아무래도 테러로 인한 미국 내 분위기를 고려한 포스터였을 것이다. [122] 짐 로스는 폴 헤이먼에게 "얼라이언스가 졌어요, 당신은 또 졌어요! 커트 앵글이 당신들을 엿먹인거야!" 라는 통쾌한 멘트를 날렸다. [123] 본래 로얄럼블에서 컴백할 계획이었으나 이것이 유출되자 1월 7일 RAW를 통해 복귀하는 것으로 각본이 수정되었다. [124] 그리고는 "아마도 나에 대해 모르고 있을 몇몇을 위해 내 소개를 하지. 난 게임이다!" 란 간지나는 멘트까지 곁들였다. [125] 이는 브록 레스너가 스맥다운과 전속 계약을 함으로써 깨지게 된다. [126] 지금에 와서는 WWE 내부에서도 이때 레스너에게 너무 급푸쉬를 줬다고 인정할만큼 파격적인 푸쉬였는데 어찌보면 WCW가 위클리 쇼인 나이트로에서 헐크 호건을 골드버그의 먹잇감으로 던져준 것보다 더 큰 푸쉬를 받은 것이다. [127] 양측의 의견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오스틴은 한때 회사의 대표격이었던 자신이 빅푸쉬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일개 신인 레슬러에게 별다른 대립없이 스쳐지나가듯 일방적으로 완패당한다면 본인의 이미지 타격과 함께 보는 팬들 입장에서도 결코 납득하지 못할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상식적으로 근거가 충분한 의견이다. 훗날 오스틴 자신이 밝힌 바로는 레스너에게 잡을 하는것은 얼마든지 좋으나 잡을 하는 과정 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술회했다. 반대로 WWE 입장에선 세대교체를 노리고 급푸쉬를 주며 미는 레스너의 강력함을 어떻게든 더 빠른 시일안에 팬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거물이 신예 브록 레스너에게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완패당한다면 이미지 상승과 충격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128] 오스틴은 2009년 레슬매니아 25를 앞둔 명예의 전당 헌액식 연설에서 "애틀란타에서 온 팬들이 있다면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당시 무단탈단이 일어난 RAW의 개최지가 애틀란타였기 때문. 오스틴은 이후 비슷한 상황을 만든 CM 펑크에게도 미디어 매체를 통해 충고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129] 본래 이렇게 급하게 레스너를 챔피언에 올릴 계획은 아니었으나 더 락이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되면서 벨트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자 이를 차세대 아이콘으로 점찍어 놓았던 레스너와의 대립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130] 이 'Ruthless Aggression' 은 이후 애티튜드 시대와 PG 등급 이후의 The Universe Era 사이를 구분짓는 WWE의 시대 구분 용어로도 쓰인다. [131] 크리스 제리코 등을 이기기는 했지만, 이는 제리코가 "시나는 가능성이 있다." 며 자신이 져주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빈스는 제리코가 시나에게 지는것을 탐탁지 않아했다. [132] TV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스틴은 매우 가정적인 면이 많은데 데브라와 결혼하기 전 이혼했던 전처가 이혼 후 딸의 양육권을 갖고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가버렸는데 가끔씩 딸과 통화하면서 그리움에 눈물짓곤 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그의 자서전 Stone Cold Truth에 그의 어린 딸과 장난을 치는 모습의 사진이 나와 있다. [133]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마지막 2인으로 남았을때 이겨본 게 전부다. 그나마도 커트 앵글의 도움으로 이겼다. [134] 락바텀을 3방이나 맞고 지는 경기 시나리오도 오스틴 본인이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완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깔끔하게 떠나고 싶었다고 한다. [135] 경기 영상을 보면 핀폴승 후 오스틴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심판 얼 헤브너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내면서 오스틴에게 말을 건네는데, 자신의 악역 역할을 지킴과 동시에 자신의 라이벌에게 쑥스러운 이야기를 건네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 거칠게 얼 헤브너를 밀쳐낸 것으로 보인다. [136] 더 락이 이 멘트를 쓰는 건 두 가지 경우인데 장기간 물러나있다가 다시 WWE로 돌아왔을 때와 자신의 홈타운인 마이애미에서 경기가 열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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