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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9:03:21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colbgcolor=#DDF6EC><colcolor=#000> 러시아 제국의 여대공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великая княжна Анастаси́я Никола́евна России
파일:3128381381.jpg
이름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Анастасия Николаевна Романова)
출생 1901년 6월 18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사망 1918년 7월 17일 (향년 17세)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예카테린부르크 이파티예프 하우스
장례식 1998년 7월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신체 157cm[1]
아버지 니콜라이 2세
어머니 헤센의 알릭스 공녀
형제 올가, 타티야나, 마리야, 알렉세이
서명 파일: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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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a3c,#ddd {{{#!folding [ 시성 정보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DDF6EC><colcolor=#000> 시성 1981년: 해외 러시아 정교회
2000년: 러시아 정교회
축일 그레고리력: 7월 17일
율리우스력: 7월 4일
호칭 해외 러시아 정교회: 황실 순교자[2]
러시아 정교회: 황실 수난자[3]
성인 추대 종파 러시아 정교회
해외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불가리아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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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차르 부부의 막내딸2.2. OTMAA 5남매2.3. 병약한 신체, 활달한 성격2.4. 러시아 혁명, 황가의 몰락과 죽음
3. 사후4. 생존설
4.1. 사기꾼 안나 앤더슨
4.1.1. 정체
4.2. 유해 발견
5. 가족관계6. 대중매체
6.1. 영화6.2.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6.3. 기타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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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16524182924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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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1남 4녀 중 막내딸. 러시아 혁명으로 일가족과 함께 폐위되어 유배 길에 올랐고 결국 어린 나이에 처형당했다.

일가족과 함께 총살된 이후에도 그녀가 살아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관련된 이야기들이 등장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후 시신이 발견되면서 1918년에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2. 생애

2.1. 차르 부부의 막내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가 넷째를 임신했을 때 이미 위로 딸들이 셋이나 있는 반면 황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 부부는 물론 온 국민들이 황자의 탄생을 간절히 열망했다.

황후는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 미신에 의존하기도 하여 이번에는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으나, 결과는 또 다시 딸이었다. 이에 예언가에게 따져 묻자, 예언가는 "공주님은 남자로 태어날 운명이었는데 여자로 태어났으니, 위대한 삶을 살 것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훗날 공주는 겨우 17살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 이름은 영원히 남아 여러 예술 작품의 소재와 모티브가 되었으니 이 예언이 어느 정도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름의 모티브는 4세기의 순교자인 성녀 아나스타시아(또는 패턴사 아나스타샤·Анастасия Узорешительница)로, 딸이 태어난 기념으로 니콜라이 2세는 체포된 사람들에게 특사를 내려 '사슬을 끊은 황녀'로도 불렸다.

2.2. OTMAA 5남매

파일:Otma1914recep.jpg
파일:OTMAA_1910_in_court_dress.3.jpg
<rowcolor=#000> 로마노프 황가의 남매
아나스타시야 위에는 이미 딸이 셋 있었고 아들을 기다리던 러시아 황실이었지만, 차르 일가는 자식들을 사랑하고 5남매 모두 사이가 좋아 구김살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황녀들을 부르는 애칭이 있었는데, 아나스타시야는 '나스탸(Настя)'라고 불렸다. 그 외에도 '나스텐카(Настенька)', '스비브지크(Швыбзик, 작은 장난끼)', '말렌카야(Маленькая, 작은 것)', '우리 착하고 통통한 투투' 등의 애칭으로 불렸다. 궁정 사람들은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니콜라이의 딸 아나스타시야[4])'라고 호칭했다고 하며, 공식적인 호칭은 '아나스타시야 여대공'(Великая княжна Анастасия)이었다.

황실의 아이들은 비교적 소박하게 자랐으며 아나스타시야는 바로 위의 언니 마리야와 방을 같이 썼다. 아프지 않으면 베개도 없이 간이침대에서 잤고, 아침에는 냉수로 목욕을 했으며 방은 정갈히 정돈하고 수예를 해서 자선 사업에 팔았다. 6월 중순마다 가족들과 함께 휴양지로 여행을 떠났으며 리바디아의 궁전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다른 형제 자매처럼 8살부터 가정 교육도 받았으며 여러 언어, 역사, 지리학, 과학, 그림, 문법, 춤과 음악을 배웠다. 아나스타시야는 문법을 특히 싫어했고 일기장에 오자가 많았다.

아나스타시야는 서로가 일기 등에서 머리글자인 'OTMA'( 올가, 타티야나, 마리야, 아나스타시야)로 표현할 정도로 언니들과도 사이가 좋았으며, 특히 남동생 알렉세이 황태자와 매우 친했다고 한다. 5남매 모두 우애가 매우 좋아서 가끔 OTMAA라고 쓰기도 했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 혈우병을 앓고 있기도 했고 몸이 약해 앓아 눕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때때로 우울증에 빠져드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상태의 알렉세이를 웃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막내누나인 아나스타시야뿐이었다고 한다. 둘은 또한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고 한다.

2.3. 병약한 신체, 활달한 성격

취미는 사진 촬영이었으며, 아나스타시야가 찍은 사진집은 후에 정리되어 책으로 발간되기도 하였다. 영어에도 능숙했고 시종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수도 잘 놓았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키가 큰 언니들과 비교하면 체구가 작았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장신인데 본인은 단신이다.

발가락에 염증이 있었고 기관지염을 앓는 등, 잔병치레가 잦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혁명이 일어나고 유배생활을 할 땐 마리야를 제외한 다른 언니들과 함께 홍역을 앓기도 했다고. 건강한 체질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몹시 허약했던 남동생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와 잘 어울렸던 듯하다.

아나스타시야는 비록 몸은 허약했어도 장난기가 많아서 바로 위의 언니 마리야를 늘상 골려먹었다고 한다. 아나스타시야와 마리야가 서로 친한 것처럼, 첫째 언니 올가와 둘째 언니 타티야나도 서로 가장 친했다. 올가와 타티야나는 big pair, 마리야와 아나스타시야는 little pair이라고 묶여 불렸을 정도. 마리야는 알면서도 아나스타시야에게 당해 주었다고 하니, 자매 간의 깊은 우애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자매들끼리 눈싸움을 할 때 아나스타시야가 재미삼아 돌멩이를 넣은 눈덩이를 타티야나에게 던진 적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저 눈덩이에 정통으로 맞은 타티야나가 기절한 일이 있었다. 이때 아나스타시야는 충격을 받아 울었고 이후 심한 장난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또한 남동생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와 내기를 해서 이기고는, 알렉세이가 분개하는 모습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세이가 울상을 지으면 일부러 져 주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짖궂고 활기찬 말썽쟁이였으며 연기하는 재능이 배우처럼 뛰어나면서도 재치 있었다. 황실 의사에 의하면 아나스타시야가 말썽 부리는 분야에선 천재적이었고 하인들을 넘어뜨리거나, 교사들에게 장난을 치는 일은 일상에다 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고도 한다. 자신과 함께 놀던 7촌 니나 대공녀[5]가 자신보다 키가 큰 게 분해서 니나를 속이거나 발로 차고 할퀴기도 했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마음씨 착한 일면도 있어서 언니들과 동생과 매우 사이가 좋았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부상병들을 위문하며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으며, 자선하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감금 생활을 할 때는 언니들과 함께 연극을 해서 부모와 측근들을 웃겨 주려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장난기가 많아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어째 황녀답지 않은 괴악한 표정을 지은 사진이 많다. #

그리고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골초였다. 실제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우는 사진도 여럿 남아 있다. 1, 2, 3 사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은 모두 아나스타시야.

물론 당시에는 미성년자의 흡연이 몸에 나쁘다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 때 기준으로는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대목에서 짐작했을 수 있겠지만, 니콜라이 2세 부부는 물론이고 언니인 올가, 타티야나, 마리야와 심지어 알렉세이까지 모두 흡연자였다.

장녀인 올가의 일기를 보면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6] 당장 마지막 사진은 아버지 니콜라이 2세가 딸 아나스타시야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려는 모습을 찍은 건데 딸이 흡연하는 걸 면전에서 보고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대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황녀이자 우애 깊은 가족으로 평온한 삶을 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4. 러시아 혁명, 황가의 몰락과 죽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마노프 왕가의 몰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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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망한 뒤 차르 일가는 유폐되었다가 후일 러시아 내전 기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형되었는데, 당시 17세 소녀였던 아나스타시야 역시 가족과 함께 끔찍하게 살해당해 죽었다.

볼셰비키 내부적으로도 죽이는 건 지나치지 않냐는 이견이 있었지만 당시 로마노프 황가를 붙잡고 있었던 볼셰비키 적군 부대는 이미 본대와 낙오되어 떨어져 있던 상황에 백군이 코 앞까지 당도했단 소식을 듣곤 공포에 질려서 자체적인 회의를 통해 결국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었다.

더군다나 볼셰비키 내부 주요 인사들이었던 스탈린, 트로츠키 등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강경파들의 의견이었고[7], 내전 당시 로마노프 왕조의 생존한 황족을 추대해 복벽을 하려는 반동 모의가 많아서 황족 제거를 통해 그 가능성을 예방하려 했던 것이다.

처형 집행자들은 잠자는 차르 일가를 깨워, 이동한다고 속여 지하실에 집합시킨 뒤 총살했다.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첫 사격을 당했던 직후에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코르셋이 방탄 작용을 해서 기절만 하고 즉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통에 신음하는 바람에 생존 사실이 들켜 이를 눈치까고 만 처형 집행자들의 총검에 찔렸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코르셋 전체에 보석을 박아넣어 황녀들을 향해 쏜 총알이 마구 튕겨나올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평소에 황가 여성들이 보이지도 않는 코르셋에 보석을 잔뜩 박아넣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유배 생활을 시작하면서 몰래 가져온 보석들을 숨겨둘 장소가 필요했고, 옷을 입으면 안 보이는 데다가 남이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적격의 장소가 코르셋이었던 것.

매사를 감시당하는 굴욕적이고 힘든 유배 생활을 할 때에도, 애지중지하던 애완견 지미와 늘 함께 다니며 극진히 보살필 정도로 정이 많았다. 그리고 이 애완견 지미는 아나스타시야가 처형당하던 그 순간까지도 주인과 함께 하다가 같이 최후를 맞았다.

다음날에는 아나스타시야의 둘째 이모 옐리자베타 대공비도 살해되었다. 옐리자베타 대공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둘째 언니로, 알렉산드라 황후보다 10년 먼저 러시아 제국에 시집와서 살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것도, 세르게이 대공[8]과 옐리자베타의 결혼식에서였다.

세르게이 대공이 죽은 후 옐리자베타 대공비는 자신의 집을 수녀원으로 개조하였고, 수녀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자선과 봉사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러시아 내전 와중에 다른 황족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3. 사후

2001년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적백내전 당시 순교한 종교인과 다른 가족들과 함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4. 생존설

그 와중에 황제인 니콜라이 2세와 막내인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만 먼저 처형되고 황녀들은 다른 곳에서 처형되었는데 아나스타시야만 빠져나갔다는 등 소문만 무성했다.

황녀의 죽음이 불분명하고 여러 흥미로운 소문들이 떠돌았기 때문에 아나스타시야 생존설은 끊임없이 퍼졌고, 심지어는 자신이 아나스타시야라고 자칭하는 이들도 우후죽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로마노프 왕조의 정당한 상속인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인정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멸망한 제국의 마지막 황녀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낭만적이기도 하고, 공교롭게도 아나스타시야라는 이름의 뜻이 부활이라는 뜻이어서(그리스어로 부활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에서 유래) 생존설이 더욱 인기를 얻었다고도 한다.

4.1. 사기꾼 안나 앤더슨

아나스타시야의 사칭자들 중 가장 유명한 자는 미국의 안나 앤더슨(Anna Anderson, 1896~1984)이란 사람으로, 그녀는 외모가 아나스타시야 공주와 조금 닮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나스타시야의 둘째 언니 타티야나와 닮은 외모였다. 자신은 여러 가족들이 살해당하는 와중에 기절만 했다가 공산당 군인이 구해줘서 살아났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아나스타시야의 가정교사와 집사 및 친척들은 안나를 만나서 확인한 결과 가짜라고 비난했다. 생전의 황실 일가에는 아는 사람 중 안나가 아나스타시야가 맞다고 말한 사람들도 몇 있었으나 당시 나이가 많이 든 하인이나 극히 일부 사람뿐이라 신빙성도 없었다. 이들 중에는 아나스타시야의 고모이자 오빠인 니콜라이 2세 부부 가족과 평소 친밀하게 지냈던 막내 여동생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도 있었다.

올가는 어머니 마리야 황태후, 언니 크세니야 여대공과 같이 이모 알렉산드라 왕대비가 있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영국에 망명하면서 조카들이 살아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들을 사칭한 여러 사기꾼들을 만났는데, 그중 안나 앤더슨의 말에 넘어간 것. 물론 이 사실을 어머니 마리야 황태후에게 말했지만 황태후는 올가를 꾸짖었다고 한다.

특히 아나스타시야의 모국어 러시아어와, 유창하게 즐겨 사용했던 프랑스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고,[9] 아무리 오래 사용하지 않은 언어라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닌데 전혀 사용할 수 없음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나스타시야가 유독 약했던 독일어만 잘 구사하는 것이 가짜라는 가장 큰 근거였다. 수십 년의 논쟁 끝에 내려진 법적 결론은 '앤더슨은 본인이 황녀임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고 황녀라는 증거가 없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는 것. 그럼에도 안나는 자신이 아나스타시야라고 주장하며 유럽 각지에 남은 로마노프 왕조 상속권을 요구했으나 역시 무시당했다.

할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도 죽을 때까지 안나를 아나스타시야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다. 이후 안나 앤더슨은 세월이 훨씬 지나 연하의 미국인 교수와 결혼했다. 하지만 가난하고 출신도 모르지만 자신이 황녀라고 주장하는 안나 앤더슨과 경제력 있는 엘리트지만 26세나 연하 남자의 결혼, 거기다 그는 심한 관종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안나의 남편은 '앤더슨이 아나스타시야로 밝혀질 경우 받게 될 유산을 노리고 결혼했다'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후로도 잔존한 추종자들에게 후원받아 경제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살다가 편안히 갔다. 살아 있는 한 아나스타시야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묘비에도 '아나스타시야 로마노바'라고 새겼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안나 앤더슨은 보통 사람은 알기 힘든 러시아 제국 황실의 각종 정보들과 황실예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외모도 아나스타시야와 상당히 흡사했다. 심지어 얼굴로 사람을 판별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모양은[10] 법적으로 아나스타시야와 동일인 판정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비슷하다고 밝혀져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

안나 사후 5년 뒤 1989년 살해당한 황가의 유해가 뒤늦게 발견된다.[11] 이에 러시아 정부는 안나의 유전자와 니콜라이 일가의 유전자를 대조하여 검사하려 했으나, 화장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당시에는 화장이 드물었는데도 안나가 일부러 가족들에게 화장을 요청하여 그렇게 했다. 후에 유전자 검사를 받아 아나스타시야가 아니라고 밝혀질 경우에 대비하여 일부러 화장을 부탁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있다. 그러다 안나가 조직 검사를 받기 위해 버지니아 주의 한 병원에서 조직 샘플을 떼어냈는데, 아직 샘플을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조직 샘플로 검사한 결과 안나는 아나스타시야이기는 커녕, 아무 혈연 관계도 없다고 드러나는 바람에 자식들[12]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더구나 안나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전 빗질하면서 빠진 머리카락들이 있어서 검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조직 샘플과 머리카락이 동일 인물이라고 드러나 사기꾼으로 확정되었다.

4.1.1. 정체

안나는 사실 폴란드인으로 본명은 프란치스카 샨코프스카(Franziska Schanzkowska)인데, 독일 대법원에서 아나스타시야 공주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고 패소한 뒤 이름을 안나 앤더슨으로 바꾸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13]. 다만, 우연이라 해도 어떻게 안나가 러시아 제국 황실의 비밀과 예법에 대해 자세히 알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사기극에는 배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안나 앤더슨은 단지 가짜 아나스타시야를 연기한 배우일 뿐이고 사기극을 연출한 감독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안나 앤더슨이 단독범이라면, ' 모양이 법적으로 아나스타시야와 동일인 취급까지 받을 수 있을 만큼 흡사한 폴란드의 평민이 어찌어찌 러시아 제국의 예법 등을 알아내서 고퀄리티로 가짜 황녀 행세를 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배후 조종자가 있다면 '우연히 폴란드에서 아나스타시야와 닮은 여자를 찾아낸 누군가가, 모종의 이유로 그를 가짜 공주로 내세우기로 하고 러시아 예법 등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되어서 그럭저럭 앞뒤가 맞는다. 안나는 로마노프 황실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면 모를, 아나스타시야와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사소한 일화까지 알았으므로, 만약 배후가 있었다면 아나스타시야의 주변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러시아 혁명에 반대하는 구 황실의 일족이거나 러시아 제국 귀족들이 사기극을 연출한 흑막일 가능성이 높다.

단독범 설도 존재한다. 안나 앤더슨이 단독범이 아니라면 그녀를 조종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지거나, 조종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것인데 많은 조사에도 누군가 안나 앤더슨을 조종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나 흔적이 뚜렷히 드러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드러난 사람 중 안나를 조종했을 만한 인물은 안나의 강력한 후원자 겸 지지자였던 글렙 보트킨(Gleb Botkin)[14]인데, 전문가들은 글렙이 안나를 조종한 게 아니라, 반대로 글렙이 안나에게 놀아났다라고 본다. 즉, 글렙은 안나가 진짜 공주인 줄 알고[15], 평생 그 사실을 믿고 안나를 지지하며 후원해 주었다는 것.

결국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자 검사로 검증까지 거친 결과, 니콜라이 2세 일가는 모두 1918년에 총살 당해 죽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자세한 것은 러시아 내전 참고.

그러나 아직도 안나 앤더슨의 일부 추종자들은 앤더슨이 진짜 아나스타시야인데 유전자 검사 결과가 조작되거나 뒤바뀌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나가 샨코프스카로 밝혀진 결정적인 증거는 샨코프스카의 동생의 후손과 앤더슨의 조직에서 나온 유전자 타입이 일치한다고 나온 것이다. 추종자들은 샨코프스카는 안나 앤더슨보다 키가 10cm 가까이 더 컸고 발 사이즈도 달라서 키를 줄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냐며 검사 조작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키는 나이에 따라 줄어들기도 한다.) 루이 17세를 사칭한 사기꾼 나운드로프의 후손들이 나운드로프가 죽은 지 1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루이 17세라고 주장하는 꼴과 비슷하다.

안나 앤더슨의 과거와 사기 행각을 벌인 사유가 분명치 않다 보니 그녀에 대한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스스로 러시아 공주라고 주장한 교묘한 사이코패스라는 설부터 자신이 진짜로 아나스타시야라고 믿었던 망상병 환자, 혹은 전술한 것처럼 흑막에게 조종당한 꼭두각시 배우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또 망상병 환자든 사기꾼이든 허구의 사실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세상을 뒤흔든 인물답게 능력 또한 비범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사람을 빠져 들게 만드는 언변과 놀랄 만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미국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에서도 이 설을 차용해 드미트리 일당이 적임자인 주인공 아냐에게 황실 가계도와 예법을 가르쳐 아나스타시야로 '조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설에서 지목받는 것처럼 여기서도 일당 중 한 명이 귀족 출신이라 황실 정보에 빠삭했고 실제 역사와는 달리 주인공이 실제 아나스타시야였다는 내용으로 나온다.

4.2. 유해 발견

안나가 사기꾼임이 밝혀진 이후에도 아나스타시야의 생존설은 유효한 상태였다. 1989년에 발견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해에서 마리야나 아나스타시야로 추정되는 유해와 알렉세이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발견되지 않은 여대공의 유해가 마리야인지, 아나스타시야 인지에 대해서서는 의견이 갈렸다.

러시아 법의학자들은 해당 유해가 마리야라고 주장했고, 미국 법의학자들은 아나스타시야라고 주장했다. 이는 논란거리가 되었고 아나스타시야의 유해는 사실 마리야이고 아나스타시야는 생존했다는 또다른 음모론을 낳기에 충분했다. 또한 상술한 유전자 검사 결과는 아나스타시야와 안나 앤더슨의 DNA를 직접 검사한 것이 아니라,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해에서 얻은 DNA를 안나 앤더슨의 DNA와 검사한 결과다. 따라서 안나 앤더슨이 가짜라는 사실만 밝혀냈지, 아나스타시야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다. 아무튼 결국 장례식은 러시아 법의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아나스타시야의 이름으로 치러지긴 했다.

그러다 2007년 8월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해가 묻힌 장소에서 6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두 구의 유해가 새로 발견되었다. 이후 DNA 채취 및 검사를 진행했고, 10대 남성의 유해는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라는 것과, 10대 후반 여성의 유해는 마리야 여대공 또는 아나스타시야 여대공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유해가 마리야의 것인지, 아나스타시야의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의 DNA를 비교한 대상이 5촌 조카인 필립 공[16]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두 구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모든 유해가 발굴되었기에, 니콜라이 2세 일가가 모두 1918년 러시아 내전 시기에 사망했다는 것은 사실이 되었다. 따라서 2008년 이후로 아나스타시야 생존설은 확실하게 부정되었다.

또한 DNA 검사를 통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 혈우병 환자였다는 것을 확인했고, 아나스타시야 여대공 또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17]이 혈우병 보인자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5. 가족관계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Великой княжны Анастасии Николаевны)
<colbgcolor=#fff3e4,#331c00> 니콜라이 2세
(Император Николай II)
<colbgcolor=#ffffe4,#323300> 알렉산드르 3세
(Император Александр III)
알렉산드르 2세
(Император Александр II)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Императрица Мар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마리야 표도로브나
(Императрица Мария Фёдоровна)
크리스티안 9세
(Kong Christian 9.)
헤센카셀의 루이제
(Louise von Hessen-Kassel)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Императрица Александра Фёдоровна)
헤센 대공 루트비히 4세
(Großherzog Ludwig IV. von Hessen und bei Rhein)
헤센의 카를 공자
(Prinz Karl von Hessen-Darmstadt)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공주[18]
(Prinzessin Elisabeth von Preußen)
영국의 앨리스 공주
(Princess Alice
of the United Kingdom)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공자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빅토리아 여왕
(Queen Victoria)

6. 대중매체

'아나스타시야 생존설'이 낭만적인 이야기라서 영화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몰락한 제국의 마지막 황녀가 기적적으로 생존했다'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데다가, 상술하듯 아나스타시야라는 이름에 부활이라는 의미가 있어 극적인 요소를 더한다.[19] 1990년대 이후 나온 영화나 애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국내에 번역된 서적 중에서는 에드바르드 라드진스키의 < 러시아 마지막 황제>라는 책이 니콜라이 2세의 행적을 묘사하면서 그의 가족을 언급하는 중에 아나스타시야에 관한 이야기가 간략히 나오고 있다.

6.1. 영화

1956년에 20세기 폭스 배급으로 잉그리드 버그먼, 율 브리너가 주연한 영화 <아나스타샤>는 상당히 좋은 평을 얻었다. 이를 두고 위에 나오는 안나 앤더슨이 저작권 관련으로 딴지 걸면서 잠깐 화제가 되었으나 영화감독 아나톨레 리트뱌크는 안나를 가짜라고 하면서 엉터리 주장하지 말라고 무시했다고 한다. 이름을 봐도 알겠지만 그도 러시아(정확히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여기서는 백군 장교 출신인 부닌(율 브리너)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자살하려던 여자 안나 코레프( 잉리드 베리만)를 우연히 구해서 가짜 아나스타시야 공주로 내세워 러시아 황실이 남겼다는 유산을 가로채려는 사기극을 세운다. 그런데 여자에게 황실의 예법이나 각종 교양 등을 가르치고 제정 러시아 황실 관련 인사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진짜 아나스타시야일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드러나 당혹해하다가 나중에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감정을 여자에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한편 아나스타시야도 부닌을 사랑하게 되지만, 부닌이 그저 사기극을 위해 자신을 이용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덴마크로 가서[20] 아나스타시야의 할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21]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진짜 아나스타시야라고 인정받는다.

황태후는 옛 러시아 제국에서 황족들과 귀족들을 모아 성대한 무도회를 열어, 아나스타시야를 러시아 제국의 황녀로 공표하며 동시에 아나스타시야와 자기 조카와의 약혼 발표까지 하기로 한다.[22] 하지만 황태후는 아나스타시야와 부닌이 서로 사랑한다는 걸 눈치채고, 손녀가 이미 과거로 사라진 러시아 제국 황실 속에 파묻혀 살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부닌과 도망치게 도와준다.

영화 시작 초반에 자막으로 '아나스타시야 공주는 죽었다고 역사적으로 알려졌다. 행여나 살아있다고도 하지만....'이런 글귀가 나온다. 1991년 9월 7일 토요명화 더빙 방영했다.

이 영화에서 아나스타시야 역을 맡은 잉그리드 버그먼은 195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6.2.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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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돈 블루스(Don Bluth)[23] 감독이 연출하고 20세기 폭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배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다. 상술한 1956년작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몇몇 차이점을 들자면 아나스타시야와 짜고 사기를 치는 남자 주인공이 군인이 아닌 민간인 청년인 점,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악마와 거래를 한 마법사이며 로마노프 왕조에 앙심을 품고 저주를 걸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만든 악역으로 나온다는 점 등이 있겠다. 아나스타시야 역에 멕 라이언, 남자 주인공 드미트리 역에 존 쿠삭, 그리고리 라스푸틴 역에 크리스토퍼 로이드, 황태후 역에 안젤라 랜스버리를 비롯한 올스타 캐스팅[24]을 자랑하였으나 흥행은 그냥 그런 편이었다.

아나스타시야의 진짜 유해가 발견된 후 사기꾼의 이야기를 미화시킨 꼴이 되고 후반기 로마노프 왕조를 살기 좋은 시대라고 묘사한 심한 역사왜곡을 제외하면 수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황실의 일원이었던 주인공 아나스타시야 입장에서는 그리운 추억일 수밖에 없지만 실제 당시 러시아 역사를 보면 로마노프 왕조는 멸망 이전 제1차 세계대전 종전때까지 무능했고 시대 흐름에 적응하는 데 실패해 결국 폭발한 민중들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켜 왕조를 끌어내릴 정도였다. 문서 위쪽에도 나와 있다시피 아나스타시야 가족이 몰락한 과정이 바로 러시아 혁명이다.

물론 러시아 혁명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니콜라이 2세 치세의 러시아 제국을 미화해서 문제였다. 차라리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였던 표트르 대제 치세나 예카테리나 2세 치세 그리고 러시아 제국의 중흥기였던 알렉산드르 2세 치세에 대해서만 긍정적인 언급이 나오고 그와 비교해서 니콜라이 2세 치세의 어두운 모습이 대비되는 연출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 월트 디즈니 컴퍼니 작품으로 오인하는 사람도 꽤 있는데[25] 폭스에서 제작했다. 정작 디즈니 측에선 이 작품의 흥행을 방해하려고 인어공주를 재개봉시켰다. 그런데 이후 2019년 3월에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게 되면서 드디어 아나스타시야도 디즈니 프린세스에 합류한다는 유머가 나왔다.

6.3. 기타

7. 관련 문서


[1] 가족들 중 최단신이다. [2] Царственные мученики [3] Царственными страстотерпцами [4] 러시아 문학에서도 종종 나오듯이 러시아어에서 상대방을 '이름+부칭', 즉 '아무개의 아들/딸 누구'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높여 부르는 것이다. 즉 한국어로 조금 의역하자면 '아나스타시야님' 혹은 '아나스타시야 공주님' 정도의 느낌. [5]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의 두 딸들인 니나와 크세니야 자매 중 장녀. [6] 흡연이 미성년자의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없었던 건 동양에서도 매한가지였다. 한국만 해도 광해군의 치세 때 서당에서 학동들이 훈장과 맞담배를 태웠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조선시대 궁녀들의 예법에서 어린 궁녀들이 자신들이 모시는 선배 궁녀들로부터 담배를 배울 때 눈 앞에 별빛이 아른거릴 때까지 흡연을 해야 했다는, 현대 기준으로 충공깽스러운 기록들이 꽤 있다. [7]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이 시점에서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로마노프 왕가에 대한 입장만큼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강경했다. [8] 니콜라이 2세의 작은아버지. 아나스타시야에게는 작은 할아버지이자 이모부가 된다. [9] 이 시절 프랑스어는 현대의 영어와 비슷한 수준의 필수 교양이라 유럽의 상류층은 당연히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했고, 특히 상류층 중에서도 최고봉인 각국의 왕족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만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으며, 심각한 경우 모국어는 몰라도 프랑스어는 유창하게 했던 귀족들도 있었다. 당시 프랑스어의 위상은 전유럽 공용어일 정도로 위상이 매우 높아, 21세기에는 상상할 수 없겠지만 영어를 몰라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영국인이 꽤 있을 정도였다. 러시아 제국 시절뿐만 아니라 전체 러시아 및 전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소설가 중 하나로 평가되는 레프 톨스토이도 본인의 역작인 전쟁과 평화》 역시도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하여 집필했다. [10] 눈, 코, 입은 뜯어 고치거나 노화로 인상이 변하거나 할 수 있지만 모양은 레슬링이나 무에타이 같이 귀에 부담을 주는 운동이나 사고 등으로 큰 상처를 입지 않는 이상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11] 하지만 이때는 일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서 아나스타시야 생존설은 유효한 상태였다.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유해는 마리야 여대공과 알렉세이 황태자의 것이었는데, 이는 아나스타시야의 유해를 찾아 놓고 마리야의 유해라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12] 친자식이 아니라 남편이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들이다. 친자식이 있었다면 안나의 신체 일부가 남아있지 않더라도 친자식의 DNA로 검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 이후로는 존 에콧 "잭" 매너핸(John Eacott "Jack" Manahan)이라는 남자와 결혼했다가 고양이와 개를 여러 마리 데리고 불결하게 살면서 동물들을 죽은 친구들과 친지들의 환생이라고 믿거나, 사실 로마노프 왕가는 처형을 피해 달아났고 그때 죽은 건 대역들이라고 주장하는 등, 정신이 불안정한 행보를 보이다가 1984년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매너핸은 끝까지 그녀를 아나스타시야로 믿었기에 사망신고서에도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매너핸'으로 적었고 1990년에 죽었다. [14] 1900~1969. 이 사람은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이 살해당할 때 함께 살해당했던 주치의 예브게니 보트킨의 아들이며 그 자신도 추방된 니콜라이 2세의 자녀들과 교류하며 친분이 있었다. 그만큼 황실 정보와 아나스타시야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작가 겸 삽화가로 활동하여 스토리텔링에도 능했다. 안나가 진짜 아나스타시야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와 책을 집필하여 로마노프 황실 생존자와 대중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15] 안나가 먼저 어렸을 때 자신(아나스타시야)과 글렙이 어떻게 놀았는지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가 본인의 기억과 맞아 떨어졌기에 글렙은 안나가 진짜 아나스타시야였다고 확신했다. [16] 마리야 여대공의 어머니 헤센의 알릭스 공녀가 필립 공의 외할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의 여동생이다. [17] 2007년에 발견된 유해가 혈우병 보인자인데, 마리야 여대공인지 아나스타시야 여대공인지 불분명하기 때문. [18]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손녀이다. [19] 그 이름은 그리스어로 부활이라는 뜻의 아나스타시스(anastasis, αναστασις)를 어원으로 한다. 아나스타시야 생존설을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에서도, 적당한 여성을 가짜 황녀로 내세워 돈을 받으려는 일당이 그 이름의 의미를 거론하는 장면이 있다. [20] 이때 국경을 넘으려면 여권이 필요해서, 부닌이 아나스타시야를 위해 가명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이때 쓰는 가명이 바로 안나 앤더슨이다. 그래서 실제의 안나 앤더슨이 저작권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21] 실제 황태후는 안나 앤더슨을 만나주지 않았고, 안나를 자신의 손녀로 인정하지 않았다. [22] 이 조카는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아나스타시야가 처음 무도회에 나갔을 때 댄스 파트너였고, 아나스타시야와 약혼할 뻔했는데 러시아 혁명이 터져 약혼을 못 한 상태였다. [23] 이 사람의 다른 작품 중 하나가 드래곤즈 레어이다. [24] 어린 아나스타시야 역은 당시 아역 배우였던 커스틴 던스트가 맡기도 했으며, 행크 아자리아, 켈시 그래머 등 유명 배우들이 조연으로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 [25] 그럴만도 한 게, 돈 블루스는 초창기에 디즈니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26] 참고로 블랙 위도우는 남성 마법사를 두려워 한다. 출처는 2013년 1월 the winter soldier. [27] 일종의 혼입 효과 [28] 볼셰비키 병사들에게 강간당해서 생긴 아이다. [29] 최대 버프 수치는 안정도 +20%, 정치력 +10%, 전쟁지지도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