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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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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브존스포르 | ||
Trabzonspor Kulüb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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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ec0f1><colcolor=#a41d34> 이름 |
셰놀 귀네슈 Şenol Güneş[1] |
|
출생 | 1952년 6월 1일 ([age(1952-06-01)]세) | |
트라브존 | ||
국적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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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9cm | |
직업 |
축구 선수 (
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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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4ec0f1><colcolor=#a41d34> 유소년 |
에르도으두 겐출리크 (1967~1968) 세바트스포르 (1968~1969) 트라브존스포르 (1969~1970) |
선수 |
세바트스포르 (1970~1972) 트라브존스포르 (1972~1987) |
|
감독 |
트라브존스포르 (1988~1989 / 수석 코치) 볼루스포르 (1989~1992) 이스탄불스포르 (1992~1993) 트라브존스포르 (1993~1997) 안탈리아스포르 (1997~1998) 사카리아스포르 (1998~1999) 튀르키예 대표팀 (2000~2004) 트라브존스포르 (2005) FC 서울 (2007~2009) 트라브존스포르 (2009~2013) 부르사스포르 (2014~2015) 베식타스 JK (2015~2019) 튀르키예 대표팀 (2019~2021) 베식타스 JK (2022~2023)[2] 트라브존스포르 (2024~) |
|
국가대표 | 31경기 ( 튀르키예 / 1975~1987) | |
종교 | 이슬람 |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초기3.2.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1기3.3.
안탈리아스포르 감독3.4.
사카리아스포르 감독3.5.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기3.6.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2기3.7.
FC 서울 감독3.8.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3기3.9. 2013년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설3.10.
부르사스포르 감독3.11.
베식타스 JK 감독 1기3.12.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3.13.
베식타스 JK 감독 2기3.14. 야인 생활
4. 기록5. 여담6. 관련 문서7. 둘러보기3.14.1. 2024년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설
3.15.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4기[clearfix]
1. 개요
튀르키예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선수 시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골키퍼로 뛰며 쉬페르리그 우승에 여러 번 기여하며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고, 선수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튀르키예 대표팀을 이끌고 조국을 2002 한일 월드컵 3위에 올려놓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외에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세 차례의 쉬페르리그 준우승과 두 차례의 컵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베식타스 JK의 감독으로 두 차례의 쉬페르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0년에는 튀르키예 대표팀을 UEFA 유로 2020[3] 본선에 진출시키는 등의 실적을 쌓았다.
트라브존스포르에서는 홈구장 이름을 셰놀 귀네슈 스타디움으로 붙였다.
한국에서도 2007년~2009년 FC 서울의 감독을 맡으면서 2000년대 중후반부터 축구를 봤던 팬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감독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때마다 후보로 자주 이름을 올렸다.
2. 선수 경력
고향 트라브존의 프로 구단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골키퍼 생활을 했다. 선수로서도 트라브존스포르의 레전드인데 골키퍼로 453경기에 출전했다. 무엇보다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기에 리그 우승을 여섯 차례 기록했다. 그리고 이 6회의 리그 우승은 트라브존스포르가 2021-22 시즌 리그 우승을 하기 전까지 구단의 리그 우승 기록의 전부였다. 이러한 공로를 높이 사 트라브존스포르 구단은 2016년 12월 개장한 홈구장 명칭을 셰놀 귀네슈 스타디움으로 명명했다.
3. 지도자 경력
3.1. 초기
은퇴 후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친정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수석 코치로 활동하다가, 1989년 당시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하위 구단이던 볼루스포르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2부 리그와 1부 리그를 왔다갔다하던 볼루스포르를 3개 시즌 동안 슈퍼 리그에 잔류시키며 명성을 쌓았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이스탄불스포르의 감독을 맡았다.3.2.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1기
1993년 친정인 트라브존스포르에 감독으로 복귀하여 1997년까지 4년동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4년간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직을 수행하며 94-95시즌 튀르키예 컵 우승을 이끌었고, 리그에서는 94-95시즌과 95-96 시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3.3. 안탈리아스포르 감독
1997년에는 안탈리아스포르로 자리를 옮겼으나 리그 12위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으로 1998년 한 시즌만에 사임했다.3.4. 사카리아스포르 감독
안탈리아스포르에서 사임한 직후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는 2부리그 구단인 사카리아스포르의 감독을 맡았으나 승격에는 실패했고 곧 팀을 떠났다. 골키퍼 출신이지만, 전술은 수비보다 공격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3.5.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기
2000년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조국 튀르키예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4]에 진출시켰다. 튀르키예로서는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6개국 본선에 진출[5] 이후 무려 48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기에 이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성과였는데, 그렇게 오랜만에 올라온 월드컵에서 튀르키예 대표팀을 3위로 이끄는 대활약을 펼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2002년 UEFA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던 것도 이 당시의 활약 덕이다.특히 3위 결정전 상대가 바로 대한민국이었기에 이 때부터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귀네슈 또한 당시 한국 대표팀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으며 한국과의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3위를 기록하며 월드컵에서의 이변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2004년 UEFA 유로 2004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라트비아에 발목잡히며 유로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해 결국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었다.
3.6.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2기
2005년 1월 다시 친정인 튀르키예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팀을 2위로 이끌었음에도 6개월 만에 해임되었다.이 시기에 팀에 입단해있던 이을용을 지도하기도 했다. 함께 했던 시간이 짧긴 했지만 이후 FC 서울에서 재회하게 된다.
3.7. FC 서울 감독
그렇게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경질된 뒤 약 2년 동안 휴식을 취하던 귀네슈는 2006년 12월 K리그의 FC 서울 감독으로 부임해 2007 시즌부터 2009 시즌까지 총 3시즌 동안 FC 서울 감독을 지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역대 K리그 감독 중에서 감독 커리어가 가장 화려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큰 화제를 모았다.[6]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뛰어났지만, 어그로를 끌어 내부를 단결시키는 유럽식 언플을 많이 해서 안티들에게 입네슈라고 조롱을 받았다. 심판 판정 항의만 해도 2010년 들어 국내파 감독들이 훨씬 더 심하게 돌아가면서 했다.
2007년 처음 등장했을 때 기존 K리그 감독들의 교과서적인 멘트와 달리, 흥미로운 멘트를 던지는 인물이었다. "우리 팀은 우승을 위한 팀, 우리 팀 정도면 모든 대회 우승을 노려야 한다." 등등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호화군단 수원 삼성을 2007년 3월 4:1로 대파하며 이목을 끄는데, 4월에는 수원 삼성에 홈에서 0:1로 패하며 호각세를 이룬다. 차범근 감독도 귀네슈 특유의 언플에 화답하며 이 때를 기점으로 수원 삼성과 FC 서울은 완벽한 숙적으로 자리잡았고, 이는 K리그의 흥행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2009 피스컵 코리아 대회 4강전에서 FC 서울 선수들이 괜히 심판에게 항의하다 단체로 퇴장 당하고[7] 포항에 5:2로 쳐발린 다음에 말한 '친한 심판 3명이면 우승 가능', '야구나 보지 뭐하러 K리그 보나'로 돌출 발언이 절정을 이룬다.
비록 컵대회에선 포항에 대패하긴 했으나 이때(2009. 08. 27)가 서울이 정규 리그에선 1위를 달리던 시점인데다, 하필 상대였던 포항 스틸러스가 스틸러스 웨이로 깔끔한 경기 매너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팀 감독 파리아스와 대비되면서 더욱 혹독히 비난받았다. 물론 누가 진짜 더 뛰어난 감독이었는지는 이후 커리어가 증명해줬다.
감독 역량은 나쁘지 않은데, 그 놈의 FC 서울 선수들의 공대 기질 때문에 여러 모로 도매금으로 까였다. 감독 본인도 뒤에서는 선수들 많이 혼내고는 한다는데, 선수단 내에서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해줘야 할 김한윤, 이을용 같은 고참급들이 되려 앞장서서 날뛰는 통에 감독 혼자 힘으론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귀네슈가 떠나고 후임으로 빙가다 감독이 부임한 2010년에 베테랑 선수들을 대대적으로 수혈하면서 해결되었다.
FC 서울에서 보여준 매력적인 축구나 K리그 전후로 쌓은 커리어에서 알 수 있듯 충분히 뛰어난 감독이었으나, K리그에서 우승컵을 반드시 한 번은 들고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는 결국 이루지 못했다. 2009년 계약 만료인데 처음 3년 계약 당시 2+1(옵션 계약)으로 2009년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약을 했는데 결국 아무 타이틀도 얻지 못한 것이다.
결국 2009년 리그를 마지막으로 FC 서울과 계약 만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서 3년 간의 K리그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떠나면서 솔직하지 못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3년간 FC 서울을 맡으면서 선수 조련과 전술적인 면에서 그 성과를 부정할 수 없으나, 결국 선수들의 멘탈을 잡지 못했다는 점과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K리그를 거쳐간 비운의 외국인 감독 중 한 명으로 남았다.
하지만 성과도 많았다. 이장수 시절의 투박한 축구에서 벗어나 서울의 컬러가 된 빠른 템포와 패싱을 골자로 하는 공격 축구를 정립시켰고 이청용과 기성용처럼 서울의 자랑이 된 젊은 선수들을 발굴한 성과들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귀네슈 감독에 대한 서울 팬들의 지지도는 절대적이다. 재임 기간에 트로피는 하나도 없었음에도 서울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탄탄한 기반의 인기구단으로 떠올랐다.[8] 한동원, 송진형, 고명진, 김동석 같은 다른 유망주들보다 존재감이 없었던 이청용을 국가대표에 승선 가능한 재능이라 평하며 중용해 능력을 꽃 피울 수 있도록 도왔으며, 기성용 역시 귀네슈 취임 후 중용되었다. 귀네슈 감독의 재직 시절 이청용, 기성용, 박주영 등이 유럽 리그로 진출했고 2010년 월드컵 원정 16강의 주역이 된다. 서울 역시 후임으로 온 넬루 빙가다 감독이 귀네슈의 유산을 기반으로 단점을 보완하며, 시즌 내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선수단 운영에 있어서 보면 자율을 많이 부여하고 마찰이 있어도 너그럽게 대처하는 편이었다. 이런 성향은 그의 밑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은 최용수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쳐 최용수 감독은 젊은 지도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널널한 스타일로 유명했다.[9] 다소 강압적인 편이었던 이장수 시절보다 화기애애해지고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었으나 젊은 선수들의 멘탈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단점도 존재했다. 다만 훈련 강도는 엄청 빡셌다고 한다. 김병지 선수는 본인이 만난 감독 중에서 가장 훈련을 빡세게 시킨 감독이었다고 회고한다.
3.8.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3기
한국을 떠난 귀네슈는 이전에 여러 차례 맡았던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직을 다시 맡아 09/10 시즌 튀르키쉬 쿠파스(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비록 3차 예선에서 리버풀 FC에게 덜미를 잡혀 일찍 탈락했지만.2010/11 시즌 28라운드까지 페네르바흐체 SK를 승점 2점 차이로 제치고 1위를 기록 중이다. 선수 시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해봤지만 감독으로서 우승 경험은 없기에 이번에 감독으로서 팀을 27년 만에 리그 우승을 거둘지 아니면 페네르바흐체의 3년 만에 리그 탈환일지 더 두고봐야겠다. 막판 30라운드 에스키히얀스포르 원정에서 아쉬운 0:0 무승부로 골득실에 밀려 2위로 내려가면서 상대인 페네르바흐체의 경기 여부에 따라 우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리그 33라운드. 안탈리야스포르를 3:1로 이겼으나 페네르바흐체가 MKE 앙카라귀쥐를 6 대 0으로 크게 이기는 바람에 골득실에서 7점으로 떨어져 사실상 우승이 어렵게 되었다. 34라운드 시바스스포르(15위)가 페네르바흐체를 반드시 이기거나 비기고 트라브존스포르가 카르디미르 카라북스포르를 이기면 역전 우승이 가능하지만 시바스스포르가 아쉽게 3:4로 지면서 마지막 경기를 4:0으로 이기고도 트라브존스포르는 27년 만의 리그 우승을 놓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챔피언스 리그 최종예선에선 포르투갈의 벤피카에게 1무 1패로 밀려 탈락했다.
그런데,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승부조작으로 우승팀 페네르바흐체의 챔피언스 리그 32강 진출권이 박탈되어 트라브존스포르가 챔피언스 리그 32강 본선 진출권을 얻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조 추첨에선 인테르, 릴 OSC, PFC CSKA 모스크바와의 32강 조대전이 이뤄졌다.
자신의 처음이자, 트라브존스포르로서도 처음인 챔피언스 리그 첫 경기인 인테르 원정은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체코 출신인 온드레이 셀루츠카가 골을 기록하여 1:0으로 인테르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낳았다. 2007/08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페네르바흐체가 안방에서 인테르를 1:0으로 이긴 걸 계기로 조 2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오르고 8강까지 최종 성적을 낳았던 바 있지만 적어도 인테르 원정에서는 고전하고 져 왔던 튀르키예 팀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이긴 거였다. 당시 리그에서 동네북이었던 인테르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1위로 16강에 올랐던 걸 생각하면 거저 이긴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론 릴과 인테르에게 안방경기를 모두 비기는 아쉬움[10] 속에 모스크바에게 승점 1점차로 밀려 아깝게 32강에서 탈락했다. 그나마 릴을 1점차로 앞서 UEFA 유로파 리그나마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32강에서 만난 PSV 아인트호벤에게 1:2, 2:6 대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리그에선 29차전에는 49점으로 3위로 올라섰다. 챔스 리그에 주력하느냐 한때 리그 11위까지 떨어졌다가 1월부터 2월까지 6승 1무 1패라는 상승세를 찾고있다.이대로 남은 5경기를 잘 지내면 4강 플레이오프인 쉬페르 피날 진출권을 가져서 리그 우승을 노릴 기회를 가지게 된다.( 승부조작 파동으로 11-12 시즌부터 플레이오프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페르 피날에서도 3위로 마무리하면서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012/13 시즌 리그와 유로파 리그에서 모두 고전하면서 리그 11위로 추락하고 유로파 리그에서도 약체이던 헝가리 비데오톤에게 2경기 모두 득점없이 비겨서 가진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일찌감치 탈락했다. 2013년 1월 들어서 강등권인 엘라지그스포르에게 1:3으로 완패하자 1월 27일 스스로 감독에서 사임하고 옛 동료이던 톨루나이 카프카스가 새로운 감독으로 들어왔다.
3.9. 2013년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설
2013년 6월 들어서 최강희의 후임으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귀네슈를 언급하는 주장이 나왔다. 마침 무직 상태였고, 본인도 후보에 오르내린다는 걸 알고 있는지 한국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라면서 감독직 제안이 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라고 언급했다. 허정무 부회장이 U-20 월드컵 대표팀의 한국 선수단 대표로 튀르키예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때 한국전을 관전하겠다는 귀네슈 감독과 접촉할 것으로 보여졌었고 당시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귀네슈 감독은 어지간히도 한국 국대 감독직에 욕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튀르키예의 팀에서도 감독 제안이 왔지만 이를 거절하고 한국에서 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대체로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과 더불어서 최종 후보에 오른 두 명의 후보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엘사 감독도 명장이긴 하지만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한국 축구를 전혀 모르는 비엘사보다는 K리그 감독을 했고 이청용, 기성용 등 한국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귀네슈가 더 낫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결국 하고 싶다는 귀네슈는 결국 축협의 언플 희생양이 되고, 하기 싫다는 홍명보 감독을 억지로 찍어 눌러서 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었고 결국에는 이변없이 축구 대표팀 감독은 홍명보가 되었고, 귀네슈 감독은 5월 말에 부르사스포르와 계약했다.한국 대표팀 감독을 강하게 희망한 것에서 드러나듯 한국과 FC 서울에 대한 애정은 깊다. 서울 시절 제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이를 도와주려 애쓰기도 하는데 기성용이 셀틱 이적 주전에서 밀려나 폼이 떨어지자 트라브존스포르로 임대해 오려 한 바 있으며 무직 신세가 된 박주영에게도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2014년 7월 17일 튀르키예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 대표 팀 감독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했고 결국 불발된 것에 대한 회한도 깊어 보인다. 사실 저 당시에는 귀네슈가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경질되고 하락세를 타고 있었고, 현대축구의 흐름과는 동떨어지는 전술을 고집한다는 비판을 받던 시기라 축협에서 과거 명성만 보고 귀네슈를 선임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후에 부르사스포르와 베식타스 감독을 맡아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축협이 예언가도 아닌 이상 하락세를 타고 있던 과거의 명장이 부활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3.10. 부르사스포르 감독
부르사스포르 취임 첫 해 리그 팀 득점 1위로 만들고 리그 6위, 튀르키예 쿠파스 결승까지 올려서 다시 지도력을 인정받아 베식타스 등 여러 구단에서 감독으로 점찍게 되었다.3.11. 베식타스 JK 감독 1기
14-15 시즌 베식타스 감독이 되어 15-16 시즌 7년 만에 팀을 리그 우승을 시켰다. 귀네슈 개인에게도 20년이 넘는 감독 생활에 처음해본 리그 우승이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도 리그 우승을 거두며 그간 베식타스에게 25년 만에 리그 2연패 우승을 안겨 줬다.2017년 슈틸리케호가 월드컵 본선 탈락 위기에 처하면서 또다시 그를 한국 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언급하는 의견도 보인다. 하지만 튀르키예에서 손꼽히는 인기 구단 베식타스에서 25년 만에 리그 2연패를 거두며 승승장구 중인 감독이 미쳤다고 팀의 재계약 제안을 물리치고 월드컵 진출도 불확실한 팀에 부임할까? 귀네슈는 2014년 포포투 선정 역대 감독 순위 50위 안에 들었고 튀르키예에서는 역사상 월드컵 최고 성적인 3위를 선물한 올타임 넘버원 감독이다. 또한, 2017/18 시즌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 포르투갈 원정에서 포르투를 3:1로 이기고[11] 분데스리가 2위 라이프치히를 홈에서 2:0, 리그 앙 챔피언인 모나코를 원정에서 2:1로 이기며 3연승을 기록하고 조 1위를 차지했고 결국 마지막 1경기랑 상관없이 5라운드에서 조 1위를 확정지었고 4승 2무 무패로 32강 조 본선을 끝내며 느긋하게 16강에 올라갔다. 이는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조 1위로 16강에 오른 기록이다. 2000년대 와서 튀르키예 구단으로서 챔피언스 리그 2라운드를 넘어선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는 모두 조 2위였고 원정 경기에서 고전하던 걸 생각하면 원정 경기에서 엄청 선전한[12] 베식타스가 돋보였다.
결국 차기 국대 감독은 신태용으로 정해졌고, 현재로서는 귀네슈 감독과 한국 국대가 인연을 맺게 되는 미래를 상상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단, 앞으로도 수년간은 국대 감독을 찾을 때 귀네슈가 하마평에 오르내릴 것도 분명하다.
2017/18 시즌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에서 라이프치히, 모나코, 포르투와 한조가 되었고 5라운드까지 3승 2무를 거둬 조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유러피언컵에서 지금의 챔피언스 리그 체제로 개편된 후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가 조별 리그를 통과한 적이 있으나 조 1위로 통과한 건 베식타스가 최초다.
하지만 16강 상대는 우승후보 뮌헨. 결국 1차전 원정에서 0:5로 대참패하면서 16강전에서 최다실점패를 당하고 만다. 18년 4월 19일 페네르바흐체 SK전에서 관중이 투척한 물건에 맞아서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벌어졌다. *
전체적으로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2017/18, 2018/19 시즌에는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는 실패했다.
3.12.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2019년 2월 28일 부로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베식타스 JK와의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음에 따라, 2019년 5월까지는 베식타스 감독직과 국대 감독직을 겸직하고, 2019년 5월부터는 전임으로 튀르키예 국가대표팀만을 이끈다. 이후 팀을 재정비하여 UEFA 유로 2020 지역예선전에서 알바니아와 몰도바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6월 8일에는 예선 3차전에서 직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챔피언 프랑스를 만났는데, 특유의 빠른 압박 축구로 프랑스의 유효 슈팅을 0개로 묶으며 2:0 완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켜 다시 한 번 자신이 유능한 감독임을 증명했다. 프랑스 원정 경기도 1:1로 비기면서 튀르키예를 지역예선 최소 실점팀으로 만들어 유로 24강 본선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이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지역 예선에서도 초반에는 순행했는데 그와 함께 유로 2020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가 이제 관심사였다. 참고로 본선에서는 이탈리아, 웨일스, 스위스와 함께 24강 조별 리그 A조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유로 2020 개막전에서부터 이탈리아에게 0:3으로 참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웨일스와의 대결에서도 0:2로 완패하면서 탈락 일보 직전에 놓였고, 스위스와의 대결에서 1:3으로 완패하면서 유로 2020 A조 꼴찌로 탈락하게 되었다.[13]
결국 2021년 9월 10일, UEFA 유로 2020 3전 전패 최하위 24등과 이로부터 이틀 전에 있었던 카타르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네덜란드전 1:6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튀르키예 축구연맹(TFF)과의 계약을 합의 해지했다. #
3.13. 베식타스 JK 감독 2기
2022년 10월 28일, 발레린 이스마엘 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베식타스 JK의 감독으로 다시 재부임했다. 부임 후 8위로 처진 팀을 4위까지 끌어올리는 등 다시 부활을 노리고 있다. 2023년 3월 26일, 페네르바체 원정에서 4:2 완승을 거두며 3위로 올라섰다.2022-23 시즌을 3위로 마무리하며 UEFA 컨퍼런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023-24 시즌이 시작되고 UEFA 컨퍼런스 리그 루가노전에서 충격의 2-3 대역전패를 당하자, 2023년 10월 6일, 자진 사임 형식으로 물러났다. #[14]
3.14. 야인 생활
사임 이후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감독직이 공백이 된 FC 서울 측에서 다시 접촉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동시에 아제르바이잔 대표팀 감독직을 맡기위해 협상 중인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FC 서울에서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었던 김기동 감독을 영입하며 국내 복귀는 무산되었다.3.14.1. 2024년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설
이후 2024년 초 위르겐 클린스만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전격 경질된 이후 귀네슈 감독 본인의 측근 세리프 시섹 코치를 통해 스스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크며 축구협회가 감독직을 제의하면 수락하겠다는 말을 해서 관심이 높아졌다. #[15] 그동안 대한민국을 거쳐간 여러 외국인 감독들 중에서도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있는 베테랑 감독이고 성과도 풍부하기 때문에 긍정적 여론이 큰 편이다.한편 같은 날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을 맡은 정해성이 첫 전력강화위 회의 후 대표팀 감독의 조건[16] 등을 언급했는데 귀네슈 감독은 이 조건에 대부분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정해성 위원장이 외국인 감독보다는 내국인 감독에 더 무게를 두는 뉘앙스로 말을 해서 귀네슈의 한국행 가능성에 바로 찬물부터 끼얹었다는 거다.
물론 쉬페르리그에 복귀를 한 이후부터는 귀네슈의 연봉이 갑절로 뛴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부채를 떠안고 있는 협회의 재정 이슈와 연봉 문제가 가장 크지만, 한편으로는 튀르키예 대표팀 말기부터 이어진 하락세, 그리고 고령의 나이[17] 등으로 인해 현재는 선임이 사실상 어려워진 측면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2024년 4월 2일, KBS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 감독 후보자 중 7인의 외국인 지도자 중에 셰놀 귀네슈가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사(KBS) 이틀 뒤인 4월 4일에는 KBS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공개됐다. 영상(KBS 스포츠)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성인 2기)/선임 과정 문서 참조.
2024년 4월 30일 개최한 전력강화위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추린 감독 후보군에도 포함되어 있음이 복수의 매체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물론 고연령인 까닭에 제시 마치에 비해 후순위 협상 대상인 것으로 추론되나, 만약 여타 후보[18]들과의 협상이 전부 틀어질 경우 이미 이전부터 본인이 한국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연봉 등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고 마지막 커리어를 마무리 하고 싶다고 수차례 밝혀왔던 만큼, 귀네슈 감독 선임은 상대적으로 협상이 수월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5월 6일 이후 튀르키예 언론에서 베식타스로의 합류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후임 감독 선택에 애를 먹은 베식타스 회장 하산 아라트가 다시 한 번 귀네슈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며칠 안으로 선임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5월 11일 튀르키예 매체에서 최종 결정자인 정몽규 회장이 늙었다[19]는 이유로 귀네슈의 선임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또다시 협회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졌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포토스포르) 이렇게 되면 사실상 마지막 한국 대표팀 부임 기회였으나, 이번마저도 귀네슈의 선임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셈.[20]
다만 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차기 사령탑 후보군에 있는 지도자 가운데 협상이 종결된 상황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전히 협상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
제시 마치 유력 기사를 낸 박찬준 기자가 축구 전문 유튜브 채널 '볼만찬 기자들'을 통해 제시 마치와의 협상이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팬들의 질문에 셰놀 귀네슈 감독은 협상의 여지가 있으며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인데 전력강화위원회가 다시 모이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지켜봐한다고도 전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제시 마치와 축구협회와의 협상이 최종 결렬됨에 따라 현재로서는 감독 선임 후보군에 귀네슈 감독과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대표팀 감독 밖에 없는 상황이고, 카사스 감독에 비해서 우선순위에 있으며, 현재로서는 가장 선임 가능성이 큰 감독으로 보인다. 특히, 귀네슈 감독 본인이 베식타스행까지 미루면서 대한축구협회의 컨택을 기다리는 중이고, 연봉 등 조건도 큰 욕심이 없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한국행에 대한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마침(?) 제시 마치 선임이 불발된 대한축구협회가 연락을 하기만 한다면 선임 작업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예 선임 작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가고 전력강화위 자체가 재편성될 가능성도 생기면서 그 어느 쪽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5월 15일 기준 카사스 감독이 이라크 잔류를 선택하면서 축협의 리스트에는 귀네슈 감독만 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귀네슈 감독을 선임할지 위 문단에 언급된 것처럼 판을 아예 새로 깔지는 미지수지만 후자를 선택할 경우 목표로 한 5월은 커녕 6월까지도 감독 선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부담을 안게 된다.
5월 16일 귀네슈 감독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유력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협상 진전이 빠르다고 하며 협상이 완료되는대로 대표팀에 부임할 것으로 보이지만 제시 마치의 사례가 있어 축구팬들은 오피셜이 보고 판단을 해야한다는 여론이 많고 일부 팬들은 71세의 고령에 해당하는 귀네슈의 나이에 우려를 표하기도 하는 상황, 실제로 귀네슈의 나이는 71세로 결코 적지 않은 편으로, 만약 귀네슈 감독이 한국 감독을 맡아 2026 FIFA 월드컵까지 진출에 성공해 본선 무대를 나갈 경우, 귀네슈는 지난 카타르 대회에서 71세의 나이로 월드컵 최고령 감독 기록을 새로 세운 루이 판할을 넘어 73세로 역대 최고령 감독 기록을 갱신하게 될 정도이다. 협회가 고령을 이유로 귀네슈의 선임을 망설이는 것이 절대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닌 것. 그렇기에 6월 예선 역시 임시 감독 체제로 돌린 다음 감독 매물들이 나오는 6월에 감독을 선임해도 늦지 않다는 여론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귀네슈 감독은 최근까지 현역으로 감독직을 수행했고 베식타스 JK를 우승시킨 경력도 있다. 물론 튀르키예 대표팀 2기 때 UEFA 유로 2020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것은 불안 요소이지만, 최근의 베식타스 JK 2기 때도 팀을 빠르게 정상화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유럽 대항전 진출권까지 따내는 등 여전히 현직으로서의 감각이 날카롭게 살아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자진 사임 형식으로 베식타스 JK를 떠나긴 했으나[21] 귀네슈가 떠난 직후 베식타스 JK가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베식타스 팬들은 그래도 귀네슈여서 이 정도 성적을 낸 거라는 여론이 많아졌고 구단 수뇌부도 생각은 다르지 않아서 베식타스 JK로 컴백 제의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 이전의 커리어만으로 보면 원래는 협회가 준비한 금액으로 데려오기 힘든 인물이지만 순전히 귀네슈 감독 본인의 한국행 의지가 워낙 강해서 성사가 될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22]
이후 대한축구협회의 입장문에서 귀네슈 감독과의 계약 건은 전혀 의논된 바가 없으며 감독 선임 상황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기사에 떠도는 감독 부임설은 모두 오보라고 밝혔다. 귀네슈 감독의 대리인 역시 축구협회로부터 따로 연락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떠도는 잘못된 정보들을 부인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기에 아직 감독 선임과 관련해 정해진 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축협은 2024년 6월에도 임시 감독 체제를 유지하면서 김도훈을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 귀네슈를 선임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선임했으면 될 일이라 임시감독 체제를 길게 끌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사실상 귀네슈 선임은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를 설명하는 인터뷰에서 정해성 위원장이 귀네슈는 제대로 된 후보로 본 적 자체가 없다는 취지의 충격적인 발언을 하며 아예 확인사살을 했다. # 이 발언에 대한 귀네슈 본인의 반응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아무리 한국 축구 대표팀에 애정이 있고 한국생활을 선호한다고 해도 축협 실무 대표로부터 "앞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수준의 모욕적인 얘기를 듣고도 그 관심이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후 약 1달 뒤인 7월 8일, 이임생 기술위원장이 울산 HD FC 홍명보 감독 선임을 확정지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할 가능성은 완전히 소멸했다.
김도훈 임시감독 이전 최종 후보였던 탓에 많은 축구팬들은 선임하지 못한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3.15.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4기
2024년 9월 3일,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으로서의 선임 합의가 완료되었다는 오피셜이 뜨면서 사실상 트라브존스포르의 감독직을 맡는 것이 확정되었다.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 트라브존스포르 (1972~1987)
4.2. 감독
4.2.1. 대회 기록
-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2000~2004, 2019~2022)
- FIFA 월드컵 3위: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3위: 2003
4.2.2. 개인 수상
- UEFA 올해의 팀: 2002
4.3. 수훈
- Devlet Üstün Hizmet Madalyası: 2002
5. 여담
- 높은 명성에 비해 리그 우승 경력이 적은데, 이유는 한국에서 보낸 3년을 빼면 자국 튀르키예에서만 감독 생활을 하며 고향 구단 트라브존스포르에 강한 애착을 보였고 2015년 베식타스 JK 부임 전까지 튀르키예 축구판을 지배하는 이스탄불 연고 구단( 페네르바체, 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스 JK)에서 감독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23] 대신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감독으로 준우승만 네 번을 했다.
- 포포투 한국어판에 의하면 포포투 기자가 귀네슈가 FC 서울 감독 시절, 인터뷰할때 ‘앗살람 알라이쿰’이라는 아랍어 인사를 먼저 건네자 순간 귀네슈 감독의 얼굴이 당황했다고 한다. 통역을 맡던 에네스 카야가 거긴 아랍어 인사이고 튀르키예는 '메르하바' 라는 인사말이 따로 있다고 하여 기자가 곧바로 사과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생활할 때 김맛에 반해 그전까진 입에 안 대던 흰쌀밥에 김을 싸먹길 즐겼다고 한다.
-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는 전북 현대 감독이었던 최강희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 세종텔레콤의 국제 전화 00365 광고에도 출연했다.
-
친정
FC 서울의 창단 40주년 영상을 찍었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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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ˈʃenoɫ ˈɟyneʃ\].
[2]
2023년 10월 6일 구단 인스타그램에 자진 사퇴 게시물이 올라왔다.
[3]
24개국 본선 진출 체제
[4]
32개국 본선 진출 체제
[5]
지역예선에서 스페인을 이기며 진출하였고 1954 월드컵 9위를 기록했다.
[6]
이 당시 챔피언십 결승전 주심을 맡았던 독일인 심판
펠릭스 브리히가 귀네슈 감독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UEFA 올해의 팀을 수상했던 감독이 K리그에 있을 거리고 상상을 못했던 모양. 여담으로 펠릭스 브리히는 키슬링의 유령골이 나온 경기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주심,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등 여러 굵직한 경기의 주심을 맡은 인물이다.
[7]
이전에 포항은 김형일이 퇴장 당했으나 별다른 항의가 없었고, 이미 경기는 3:2로 뒤집어졌으나 추스려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처음 퇴장 당한 선수 이후 추가로 심판에게 항의하고 포항 선수에게 머리박기를 하는 꼴사나운 장면 끝에 결국 김치우와 김치곤 2명이 퇴장 당해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8]
이전에는 박주영 등 스타 마케팅을 활용한 반짝 인기 성격이 강했다.
[9]
최용수 감독 스스로 감정 추스리고 선수들 대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언급한 바 있다.
[10]
튀르키예 여행을 가서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 리그를 직접 본
샤다라빠가 그린 만화만 봐도 여러 기회를 골대에 맞힌다든지 해서 놓친 끝에 인테르에게 안방에서 비긴 걸 아쉽게 그렸다. 만일 이겼더라면 모스크바를 제치고 2점차로 앞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조 2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만일 대량득점으로 이겼더라면 골득실에 앞서 인테르를 제치고 조 1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고. 그랬으니 귀네슈 감독도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11]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팀은 이상하게도 포르투갈 리그 팀과 챔피언스 리그 경기 성적이 아주 나쁘다. 원정만 가면 싸그리 졌다고 봐야할 지경인데 벤피카와 더불어 포르투갈 리그 우승을 다투는 포르투를 그것도 원정에서 이겼으니 그 뜻이 더 크다.
[12]
되려 홈경기 2경기를 비겼고 원정은 모두 이겼다.
[13]
심지어
UEFA 유로 2020에 진출한 24개국을 모두 통틀어서도 유로 24등으로 대회 최하위다. 역대 최초로 유로 대회에 진출한
북마케도니아에게 득실차에서 밀렸다.
[14]
사실 리그 경기 성적은 4승 1무 2패의 4위로 그리 나쁜 것도 아니어서 굳이 경질될 이유는 없었는데, 베식타스 운영진과의 불화가 한몫한 듯하다. 애초에 튀르키예 리그는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의 압도적인 2강 체제가 굳건하게 잡힌 상태라서 그 외의 클럽들은 3~4위권에만 들어가도 충분히 성과를 냈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15]
특이하게도 축구협회가 아닌
KBS에 직접 연락해 의사를 밝혔는데, 귀네슈 본인의 의도와 다른 뜬소문이 나오거나 축구협회에서
답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언론사에 직접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16]
전술적 역량, 취약 포지션 육성 능력, 지도자로서의 성과, 풍부한 경험, 전방위적 소통 능력, 리더십, 코칭스태프 구성 능력, 성적을 낼 수 있는 종합적 역량 등 8가지를 언급했다.
[17]
이미 칠순을 넘겼으며, 북중미 월드컵 즈음에는 70대 중반에 접어들게 된다. 물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때 칠순이 넘은 몸에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끈
루이 판할이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때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끈
오스카르 타바레스도 있어서 나이 문제는 그렇게까지 아킬레스건은 아니다. 다만 판할은 대회 당시 암을 앓고 있어서 이 커리어를 끝으로 축구계를 은퇴했으며, 타바레스도 대회 당시
지팡이를 짚고 있는 등 건강이 좋지는 않았었다.
[18]
현재 최종 후보는 3~4인 정도로 추론된다.
[19]
정작 정몽규 본인도 귀네슈보다 10세 어리지만 2024년 기준 사회에서는 노년 초입으로 보는 62세.
[20]
반론인데 대한민국 농구 대표팀 감독인 안준호 감독도 60대 후반인데 선임되었다.
[21]
이 자진 사임도 성적 때문이 아니라 구단 보드진과 마찰을 빚은 게 원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귀네슈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베식타스의 전적은 나쁘지 않았다. 베식타스가 죽을 쑨 건 귀네슈가 떠난 이후의 이야기.
[22]
귀네슈가 감독 경력 내내 해외 팀을 맡아본 건 K리그의 FC 서울이 유일하다. 아무래도 자신이 경험해 본 유일한 해외 리그가 K리그였기에, 커리어 마지막은 튀르키예 밖이지만 그래도 잘 알고 있는 해외 국가인 한국에서 마무리해 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걸로 보인다. 한국에 대해 지금도 좋은 감정을 지닌 걸로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게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무려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해 보았던 곳이기도 하고,
FC 서울을 맡았을 때도 나름 강렬한 커리어를 기록해 봤다.
[23]
쉬페르리그 우승은 현재까지도 사실상 이 3개 구단끼리의 대결 구도로 굳어져 있다. 그걸 처음으로 깼던 게
트라브존스포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