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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진(축구선수)

고명진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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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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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파일:22. 고명진.png
이름 고명진
高明桭 | Koh Myung-jin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1988년 1월 9일 ([age(1988-01-09)]세)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79kg
학력 군포초등학교 (전학)
숭덕초등학교 (졸업)
석관중학교 (졸업)
병역 전시근로역[1]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윙어
등번호 FC 서울 - 36, 24, 16, 22
알 라이얀 SC - 20, 22
NK 슬라벤 벨루포 - 8
울산 현대 - 2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8
소속 구단 안양 LG 치타스/ FC 서울 (2003~2015)
알 라이얀 SC (2015~2019)
NK 슬라벤 벨루포 (2019)
울산 현대 (2020~2022)
국가대표 5경기 ( 대한민국 / 2012~2017)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
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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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팬들에게는 '고맹'이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FC 서울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이다.

2. 클럽 경력

2.1.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조광래 감독이 안양/서울 시절 야심차게 육성하던 유망주 중 한 명이다. 당시 서울은 1985~88년생 유망주들에게 구단에서 대체 교육을 제공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병역 면제를 위한 중학교 중퇴를 권하고 영입했다. 이렇게 모인 선수가 한동원, 안상현, 송진형, 김동석, 고요한, 이청용, 배해민 등으로 모두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쳤던 A급 유망주였다. 당시 석관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명진도 2003년 중학교를 중퇴하고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2004 시즌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기량을 인정받았고 2006 시즌에는 시즌의 절반 가량인 19경기에 출전해 10월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프로 데뷔골까지 기록하는 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다.

그러나 2007 시즌, 귀네슈 감독이 이끄는 팀에서 이 비상하는 동안 성장이 정체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12경기 출전에 그쳤고 2008 시즌에도 이청용, 기성용, 김치우, 김한윤, 이을용이 포진한 서울 중원에서 자리를 못 잡고 14경기에만 출전했다.

2009 시즌 이청용의 EPL 진출, 한태유의 부상, 김한윤의 노쇠화로 중원애 공백에 생기자 기회를 받았고 고요한과 함께 고라인이라 불리며 23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

2010 시즌에는 극심한 슬럼프와 잔부상에 시달리며 오프 시즌 광란의 영입을 선보인 팀에서 자리를 잃어 9경기 출장에 그쳤다.

역시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았던 2011 시즌 초반 발목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 사이 서울은 하대성, 한태유를 부상으로 잃어 백업이었던 문기한을 급히 기용할 정도로 중원의 구멍이 그야말로 싱크홀 수준이었고 거기에 제파로프 몰리나의 부진까지 겹치며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8경기 만에 사퇴하기까지 했다. 이후 최용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취임하면서 기회를 받았는데 국가대표 주전 미드필더 기성용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던 테크닉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만년 유망주였던 고요한과 함께 나란히 잠재력이 터져 23경기 2골 7도움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2012 시즌부터는 최현태를 밀어내고 하대성과 짝을 이뤄 중앙 미드필더로 나오고 있다. 패스를 활용한 공격 전개 능력은 괜찮지만 수비력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 시즌을 앞두고 하대성의 이적으로 주장직이 공석이 되자 김진규가 주장을 맡았고, 고명진은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4 시즌 31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했고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이후 비셀 고베와 이적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이적 확정 기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세부 조건이 안 맞은 건지, 마음을 바꾼 건지 막판에 이적을 철회하고 잔류했다.

2015 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진에 빠지며 서울 중원의 식물화에 일조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 알 라이얀과 링크가 떴고 7월 15일 이적이 확정되었다.

2.2. 알 라이얀 SC

2015-16 시즌 21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알 라이얀에서의 통산 기록은 ACL 포함 85경기 5골 6도움.[2]

2018-19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여름 이적 시장에서 친정 구단 FC 서울로 복귀할 것이라는 예측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생겨 서울 복귀는 사실상 불발되었고[3][4] 고명진은 해외 이적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

2.3. NK 슬라벤 벨루포

(현지 시간) 2019년 9월 1일, 크로아티아 1.HNL 소속 NK 슬라벤 벨루포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1년. #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유럽 무대에 진출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웬만한 K리그 구단보다도 턱없이 적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유럽 무대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다고 한다.

11월 26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개인 사정으로 구단을 떠나게 되었음을 밝혔다. 차기 행선지로는 FC 서울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2.4. 울산 현대

12월 24일에 서울이 아닌 울산으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3년. 기사

2.4.1. 2020 시즌

선수 소개 멘트는 중원 공격의 시작은 내게 맡겨라.

자신을 상징하는 등번호 22번을 달았다.

ACL 조별리그 1라운드 FC 도쿄전에서 67분 정동호와 교체 투입되며 울산 데뷔전을 치렀다.

5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이청용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울산에서의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파일:김인성 골 어시.gif

13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절묘한 스루 패스로 김인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2020 시즌 기록은 28경기 2도움. 리그와 FA컵 종료 이후 펼쳐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울산의 우승을 이끌며 커리어 첫 ACL 우승을 경험했다. 이로써 K리그에서 거둘 수 있는 모든 우승을 거머쥐었다.

2.4.2. 2021 시즌

시즌 개막 이후에는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경기에 잘 못 나오고 있다. 5R 대구전때 교체로 투입돼서 불투이스의 선제골에 기점이 된 중거리 슛을 한 차례 선보인 게 전부.

그러다가 13R 광주전 때 드디어 시즌 첫 선발 출전을 달성, 본인의 장기인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패스로 중원의 볼 배급을 크게 도우며 팀의 2:0 완승에 기여했다.[5]

파일:전북전 고명진 탈압박.gif

17R 전북전에도 선발로 나와 전북의 중원을 완벽하게 압도해내며 4:2 승리에 기여했다.

ACL 조별 리그 5차전 비엣텔전에서 후반 시작하자마자 바코에게 숏패스를 준 게 바코가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며 선제골을 넣으면서 얼떨결에 바코에게 어시스트를 적립했다.

휴식기를 가진 뒤 21R 수원 FC전에 신형민과 함께 투볼란테로 선발로 나왔지만 4백 보호가 전혀 안 되는 모습만을 보이며 울산의 대량 실점에 큰 지분을 자지했다.

순연경기 20R 대구전에서 선발로 출전해 전반전에는 약간 아쉬운 모습도 있었으나 후반전에는 공수 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울산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특히 후반전에 결정적인 찬스로 연결될 수 있었던 세징야의 에드가를 향한 크로스를 아크로바틱한 오버헤드킥으로 걷어내기도 했다.

28R 인천전에서 선발로 나와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허나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후반 시작하자마자 교체되었고 예상보다 심한 부상이었던 건지 10월 말까지 명단에도 못 들었다. 결국 인천전 부상 이후 시즌 아웃이 되고 말았다.

2021 시즌 기록은 21경기 1도움.

2.4.3. 2022 시즌

지난 시즌 인천전에서 입은 부상의 여파가 아직 회복이 안 된 건지 구단 훈련에는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나 3월 중순 현재까지도 출전을 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고명진을 대신해 이규성이 원두재의 파트너로 기용되고 있기에 주전 자리를 되찾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3월 15일, 울산이 코로나로 인해 스쿼드가 반토막 난 상황에서 치른 포트와의 ACL PO에서 벤치에 앉았다가 후반 정규 시간 종료 3분 전 엄원상의 다리 통증 호소로 인해 그와 교체되며 울산 복귀전을 치렀다.

4월 5일 제주와의 원정 경기에서 명단에 들었고 후반 40분 점수 굳히기를 위해 아마노와의 교체로 투입되면서 드디어 리그 복귀전도 치르는 데 성공했다.

4월 9일 대구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26분 박용우와 교체투입되면서 원 볼란치 포지션을 소화했다. 중원에서의 뛰어난 경기 조율로 울산의 후반전 맹공을 이끄는 조연 역할을 제대로 했으며 고명진 투입 후 팀은 두 골을 더 넣으며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4월 30일 조호르와의 ACL 조별리그 6차전에서 선발로 나왔다. 그러나 조호르의 강한 압박에 중원에서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패스미스와 턴오버를 남발했고 결국 후반 10분에 이청용과 교체되었다.

6월 20일 전북과의 현대가 더비에서 선발로 나왔지만 박용우와 함께 중원에서 부진하며 포백 보호를 전혀 수행해내지 못했고 팀이 전반에만 3실점을 하는 데 지분을 어느 정도 차지했다.

7월 30일 강원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왔으나 잦은 패스미스와 수비에서 어정쩡한 위치 선정으로 전반전 동안 최악의 폼을 보여줬다. 심지어 쇄도하는 김대원을 놓치며 실점까지 관여했다. 결국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이규성과 교체되었다.

작년에 장기 부상을 끊고 회복한 이후로 폼이 더욱 떨어진 모습이 거의 경기마다 나타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고명진이 원래 해 줘야 했던 2-3선의 연결고리 역할조차 이청용이 더욱 잘 해내면서 남은 경기에서 그가 선발로 나서는 모습을 더욱 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결국 강원전 이후로는 기회를 많이 줬던 홍명보 감독조차 포기했는지 명단 포함도 안 되고 있다. 시즌이 종료되면 FA가 되기에 이적이 예상되는 상황.

2022 시즌 울산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포함해 도합 9경기 출전.

시즌이 끝나고 2023 시즌 울산 선수단 홈페이지에서 등번호가 내려가게 되면서 결별이 확정되었다.

이후 2023년 여름 이적 시장이 5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 신형민은 새로운 구단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고명진은 아직 소식이 들리지 못하며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3. 국가대표 경력

U-17 대표팀에서 6경기 7골을 기록하며 미친 존재감을 보였고 성인이 된 후 중동에서의 활약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 들어 레바논과 태국을 상대하는 3월 A매치 명단에 소집되었다. 손흥민 권창훈의 올림픽 대표팀 합류로 인한 중원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보인다.

성인 대표팀의 경우 2011년 6월 A매치 주간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당시에는 실제로 출전하지는 못했으며 국가대표팀 데뷔는 2012년 11월 14일 평가전 호주전에서 이뤄졌다.

2016년 3월 27일 태국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석현준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2017년 3월 23일, 28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중국, 시리아 2연전 명단에 발탁되었다. 기성용과 짝을 이뤄 3선에서 투볼란치로 출전했는데 애매한 포지셔닝과 부족한 수비력, 그리 많지 않은 활동량으로 공수 간격만 벌어지면서 본인도 자신의 강점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2선에 알맞은 선수가 3선에서 뛰다 보니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의 경기였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중앙 2선 자원은 구자철, 이청용, 김보경, 이재성, 남태희, 권창훈 등으로 워낙 풍부했던 만큼 2017년 3월 이후에는 대표팀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A매치 출전 기록은 5경기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수준급 테크니션으로 측면 미드필더도 소화 가능하지만 본인은 중앙 쪽을 더 선호한다. 옛 동료 기성용과 비슷한 스타일로 뛰어난 패스 능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주로 후방에 위치하며 볼 배급과 공수 조율을 담당하는 기성용과는 달리 전진 배치돼야 빛을 보는 스타일. 2017년 3월 중국전에 기성용과 짝을 이루어 3선에 배치되었더니 부족한 수비력과 애매한 위치 선정이 계속 이뤄져 수비 라인과 3선 라인 사이에 공간이 휑하니 비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과는 창사 쇼크...

본인이 선호하는 포지션인 2선~3선 사이에 있을 때 패스 앤 무브먼트로 경기 템포 조절을 하면서 여차할 땐 스스로 드리블을 바탕으로 공간을 만들어 다른 선수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도와 준다.

상술했듯이 2~3선 사이에서 패스 앤 무브가 좋다. 공을 받기 위한 위치 선정과 침투, 받은 후의 공 처리, 공을 내준 후의 후속 움직임 모두 준수하다. 그래서 고명진이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팀 전체적으로 볼 순환이 빠르고 템포와 점유율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큰 키에 중미 포지션이라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스피드가 빠르다. 키가 크고 키에 비해서도 다리가 긴 편인데 그 다리로 성큼성큼 뛰는 게 은근히 빠르다. 그리고 빈 공간으로 찔러 주는 스루 패스도 일품이라 역습 상황에서 좋은 옵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잔 부상이 많고 기복이 심해 커리어 초기 부침이 많았고 피지컬이 나쁜 건 아니지만 딱히 좋다고 하기도 애매한 수준이다. 커팅 능력은 괜찮은 편이지만 수비 스킬이 떨어져 거친 플레이가 많기 때문에 하대성, 오스마르처럼 수비력을 갖춘 파트너와 짝을 이룰 때가 많다. 창사 쇼크 이후 시간이 지난 현재는 준수하다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볼 차단 능력으로 수비에도 도움을 주긴 하지만 역시 원두재와 같이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플레이를 돕는 정도다.

단점은 역시 득점력[선수曰] 상당히 앞쪽에 위치하고 플레이 스타일도 공격적이지만 시즌 평균 득점은 2~3골 정도다.

종합하자면 테크닉을 바탕으로 1선부터 3선 사이를 오가며 횡적인 움직임으로 플레이 메이커를 도와 주는 조연에 적합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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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력 미달 [2] 위키백과에는 9골이라고 나와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3] 팬들 사이에서는 2017년부터 FA 선수들만 왕창 영입하면서 대놓고 긴축 정책에 들어간 프런트가 서울 시절 성적도 좋았고 팬들의 인기와 충성도까지 높은 프랜차이즈 스타 고명진을 상대로도 연봉을 후려치려다가 파토 났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명진 이전에도 오르샤가 서울 이적을 희망했을 때 오르샤가 원했던 금액과 프런트가 원했던 금액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서 조금만 더 투자하면 영입이 가능했지만 그 돈을 아까워해서 시간만 끌다가 울산에 하이재킹당했던 적도 있었다. [4] 게다가 그나마 영입에 성공했던 FA 선수들도 대부분 연봉이 저렴한 국내 선수들 중심이었지 네임드 해외파 출신은 거의 없었고, 30대 FA로 데려온 해외파 출신 하대성 송진형도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는 별로 보탬이 되지 못했다. [5] 이 경기에서 무려 패스 성공률 96%를 찍기도 했다. [선수曰] 선수 본인은 포지션상 자기한테 기회가 잘 오지 않는 것일 뿐 형편없는 득점력은 아니라고 울산 현대 유튜브 코너 쉬면뭐하니? 영상에서 이 부분에 대해 반박하며 나무위키 수정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