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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23:48:22

쇼타 아르벨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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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흐 카라귐뤼크 SK
Fatih Karagümrük Spor Kulüb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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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3123> 이름 쇼타 아르벨라제
შოთა არველაძე
Shota Arveladze
출생 1973년 2월 22일 ([age(1973-02-22)]세)
소련 그루지야 SSR 트빌리시
국적
[[조지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73kg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3123> 선수 마르트베 티빌리시 (1990~1991)
FC 디나모 트빌리시 (1991~1994)
트라브존스포르 (1993~1994 / 임대)
트라브존스포르 (1995~1997)
AFC 아약스 (1997~2001)
레인저스 FC (2001~2005)
AZ 알크마르 (2005~2007)
레반테 UD (2007~2008)
감독 AZ 알크마르 (2008~2010 / 코치)
카이세리스포르 (2010~2012)
카슴파샤 SK (2012~2015)
트라브존스포르 (2015)
마카비 텔아비브 FC (2016~2017)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2017~2020)
헐 시티 AFC (2022)
파티흐 카라귐뤼크 SK (2023~)
국가대표 61경기 26골[1] ( 조지아 / 1992~2007)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경력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대회 기록
5.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지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파티흐 카라귐뤼크 SK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90-91시즌에 데뷔한 아르벨라제는 91-92시즌과 92-93시즌 리그에서 각각 22골과 18골을 기록, 리그 득점 순위 5위와 7위에 오르면서 에로브눌리리가의 정상급 공격수로 인정 받아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명문 트라브존스포르로 임대를 떠나게 된다.

93-94시즌 리그 18경기에 나서 15골 8어시를 기록, 득점 순위 공동 6위를 차지했고, 린필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예선 2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면서 조지아인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한 선수가 되었다.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보낸 아르벨라제는 결국 94-95시즌을 앞두고 트라브존스포르로 완전 이적하게 된다.

94-95시즌에는 로테이션으로 뛰면서 리그 19경기 12골 4어시로 팀내 득점 3위에 그쳤지만, 튀르키에 쿠파스(터키 리그컵)에서 6경기 6골 3어시를 폭격하며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는 동시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95-96시즌에는 트라브존스포르 공격의 핵심으로 34경기에 출전하여 25골 5어시를 기록, 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는 1983-84시즌 보스니아의 스트라이커 타리크 호지치가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 12년 만에 외인 선수가 득점왕을 차지한 것으로 이로 인해 아르벨라제는 트라브존스포르 스포터즈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외인 선수가 되었다.
96-97시즌에도 17골 2어시(리그 10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이전 시즌 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활약을 이어갔고 이러한 활약들을 바탕으로 97-98시즌을 앞두고 160만 유로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명문 구단인 AFC 아약스로 이적하게 된다.

아약스로 이적한 첫 시즌부터 별다른 적응기 없이 31경기 25골 6어시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쳐 16골을 기록한 야리 리트마넨 등과 함께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려놨으며 34골을 기록한 그리스의 스트라이커 니코스 마흘라스에 이어 리그 득점 2위에 오르는 영예를 얻었다.
또한 UEFA컵에서도 8경기에 나서 7골 1어시를 기록하는 미친듯 한 활약으로 팀을 대회 8강에 올려 놓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두 번째 시즌인 98-99시즌에는 잦은 부상으로 시즌 절반 가까이 결장하면서 19경기 7골 2어시에 그쳤고, 주포인 아르벨라제가 주춤하자 디펜딩 챔피언인 팀도 덩달아 리그 6위까지 성적이 떨어졌다. 챔피언스 리그 3경기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면서 무득점으로 마쳤고 팀도 조별리그 탈락했다.

이러한 아르벨라제의 부진에 아약스 수뇌부는 대안으로 리그 득점왕 출신인 니코스 마흘라스를 영입했고, 아약스 세 번째 시즌인 99-00시즌에는 마츨라스에 밀려 17경기 출전, 5골에 그쳤다. 팀은 약간 반등하여 리그 5위를 차지했다.

네 번째 시즌인 00-01시즌에는 18골 2어시를 기록, 리그 득점 5위에 오르면서 부활을 알렸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팀도 리그 3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렸다.
시즌 종료 후, 450만 유로에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레인저스 FC로 이적하게 되면서 이 시즌이 아약스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레인저스에서는 토레 안드레 플로, 클라우디오 카니자, 케니 밀러, 로날트 더부르 등과 주전 경쟁을 벌였고 첫 시즌인 01-02시즌에는 로테이션으로 리그 11골을 포함해 총 17골을 기록, 리그 득점 5위, 팀 내에서도 18골을 기록한 토레 안드레 플로에 이어 득점 2위를 차지하면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두 번째 시즌인 02-03시즌에는 리그에서 15골을 기록, 16골을 기록한 더부르와 함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스코티시컵 스코티시 리그컵에서도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03-04시즌에는 리그 12골을 기록하면서 여전한 활약을 이어갔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5경기 무득점으로 침묵하며 부진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04-05시즌에 새로 영입된 나초 노보, 다도 프르소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면서 시즌 종료 후 네덜란드로 복귀를 감행했다.

네덜란드의 AZ 알크마르로 FA 이적하였고, 이적 첫 시즌인 05-06시즌, 22골 8어시를 기록하며 클라스얀 휜텔라르(33골 2어시), 디르크 카윗(22골 19어시)에 이어 에레디비시 득점 3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06-07시즌에는 리그에서 14골 6어시를 기록하면서 리그 득점 9위, 팀 내에서는 대니 쿠베르만스(22골 7어시)에 이어 득점 2위에 오르는 데 그쳤으나, UEFA 유로파 리그에서는 세비야 FC,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등을 상대로 11경기 7골 1어시를 기록하며 팀의 8강을 캐리했다.

시즌 종료 후인 2007년 7월, 스페인 라리가의 클럽 레반테 UD에 입단하였지만 부상에 시달리면서 시즌 종료까지 3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8년 4월 선수 은퇴 선언을 했고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쳤다.

2.2. 국가대표 경력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자국 리그에서의 수준급 활약으로 1992년 9월 대표팀에 소집되어 리투아니아와의 친선전에 데뷔했다.

A매치 두 번째 경기인 아제르바이잔전에서 스코어를 4:1로 벌리는 쐐기골을 넣으며 데뷔골을 기록했다.

UEFA 유로 1996 예선 10경기에 출전하여 4골 1도움을 기록하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조지아를 독일 불가리아에 이은 조 3위에 올려 놓았다.[2]

1997년 3월 30일, 아르메니아와의 친선전에서 대표팀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유럽 지역예선에서는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이 속해 있는 죽음의 조에 걸려 6경기에 출전하여 2골 1도움만 기록했고 당연히 조지아도 조 4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내지 못했다.

UEFA 유로 2000 예선에서는 6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지만 조지아는 조 최하위로 예선을 마쳤다.

2002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 5경기 1골 1도움 만을 기록했고 조지아도 조 3위에 그쳐 다시 한 번 높은 월드컵 진출의 벽 앞에서 좌절했다.

UEFA 유로 2004 UEFA 유로 2008 예선에서도 4, 5골씩 넣었으나 유로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7년 3월 24일 스코틀랜드와의 유로 예선전에서 A매치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종합하자면 조지아 대표팀 출범 초창기 시절 팀을 대표하는 간판 스타였다.

3.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2008-09 시즌부터 2009-10 시즌까지 AZ 알크마르에서 루이 판할, 로날트 쿠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일했다.

2010-11시즌을 앞두고 터키 슈퍼리그의 팀인 카이세리스포르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했고 이전 시즌 8위의 성적을 거뒀던 팀을 6위까지 끌어올리며 준수한 지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바로 다음 시즌 11위까지 떨어지며 경질되었고, 2012년 승격팀인 카슴파샤 SK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첫 시즌 승격팀인 카슴파샤를 리그 6위의 성적까지 올려놓았고, 두 번째 시즌에도 6위에 안착시키면서 감독으로서의 재량을 어느 정도는 검증 받았다. 하지만 세 번째 시즌에는 13위까지 떨어지면서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2015년 7월, 트라브존스포르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또 다시 4개월여 만에 해임되었다.

리그를 옮겨 이스라엘의 명문 마카비 텔아비브 FC에 부임했지만 시즌 중반 경질되었다.

2017년, 우즈베키스탄 슈퍼리그의 명문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의 지휘봉을 잡았고 3시즌 간 수차례 우승을 경험하면서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

2020년 12월 21일에 팀을 떠난 뒤 약 1년여 간의 휴식 기간을 가졌고 2022년 1월 27일, EFL 챔피언십 헐 시티 AFC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데뷔전인 스완지 시티 AFC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2022년 9월 30일, 헐 시티 AFC와 결별 후 팀을 떠났다.

다시 1년여 간의 휴식기를 가진 후 2023년 12월 11일,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소속 팀인 파티흐 카라귐뤼크 SK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대회 기록

5. 여담



[1]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2] 알바니아, 몰도바는 물론이고 웨일스까지 제친 성적이다. 다만 유로 본선 진출권은 최소 2위 안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물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