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의 행정구역 변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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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부 釜山府 Fuzan C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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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당시 부산부의 영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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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2e2e><colcolor=#fff> 부청 소재지 |
경상남도 부산부 중앙통7정목 부산부청 (慶尙南道釜山府中央通七丁目釜山府廳 現 중구 중앙동7가 20-1 롯데백화점 광복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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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행정구역 | 경상남도 | |||
하위 행정구역 | 31정 | |||
면적 | 241.12km²(1942년) | |||
인구 | 329,215명(1944년) | |||
인구밀도 | 1,365.36/km²(1944년) | |||
장관직 | 부산부윤 | |||
전신 | 동래부 | |||
설치 |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 | |||
폐지 | 1949년 8월 15일 | |||
후신 | 부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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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부청 원래 부산부청은 동광동에 위치했으나 1936년에 옮겨왔다. 광복 이후에도 해당 건물은 1998년까지 부산시청으로 쓰였으며[1], 이후 일제 잔재 청산 목적으로 철거되어 현재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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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초량동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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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던 부관연락선 부산은 조선과 일본을 연결해주는 관문이었다. |
1. 개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인 1910년 10월 1일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 8월 15일에 부가 폐지되고 시로 전환될 때까지 만 39년 동안 존속한 경상남도의 행정구역으로, 현재 부산광역시의 전신이다. 일본어로는 후잔후(ふざんふ, Fuzan)라고 했다. 그래서 구글 등에 Fuzan City 등을 검색하면 일제강점기 부산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본래 이 지방은 경상남도에 속한 동래부(東萊府) 지역이었으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인 10월 1일 부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가 시행되며 동래부가 부산부로 개칭되어 일시적으로 동래라는 지명이 사라졌다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을 하며 현재 부산의 원도심 지역인 당시 개항장 일대만 부산부로 남고 나머지 지역은 동래군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대확장 이후에는 대략 현재 부산광역시의 금정구, 북구, 강서구, 기장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2. 역사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 동래부로 승격하였으나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가 공포되며 다시 부산부로 개칭하게 되었다.1914년 4월 1일에는 개항지 지역만을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동래군으로 이관시켜 면적이 대폭 축소되었다.
개항 이후 일본과 가까운 도시의 특성상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했다.[2] 다른 도시와 달리 부산에는 왜관이 이미 조선시대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정착 기반과 인프라가 있었고[3] 이 위치에 일본인 구역이 형성되었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발전하였다. 대체로 오늘날의 중구(부산)은 일본인 구역, 동구(부산) 등은 조선인 구역이었다
산업이 형성되어 타 지방의 조선인들도 유입되었고 화교 인구도 유입되었다.[4] 결국 경상도의 평범한 고을이었던 부산은 구한말~일제강점기에 경성부에 이어 평양부와 제2의 도시 지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조선 3대 도시로 성장하였다.[5] 부산부가 전통적인 경상도의 중심지였던 상주, 경주, 진주 등 보다도 더 성장하게 되면서 1925년에는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부민정으로 옮겨왔다.[6]
1936년 4월 1일에는 1차 시역확장을 하게되어 서면 전체와 사하면 일부를 편입했다.
1942년 10월 1일에는 2차 시역확장을 하여 동래읍, 사하면, 남면 전체와 북면 일부를 편입되었으며 동래 출장소, 사하 출장소, 수영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49년 8월 15일에 부가 폐지되면서 부산부 역시 경상남도 부산시로 전환되었다.
3. 둘러보기
[1]
참고로 시청 밑에 지하도로 보이는 곳은
남포역이다.
[2]
실제로 일제에 의해 계획도시로 건설된 나진부를 제외하면 일본인 비율이 가장 높았다.
[3]
대표적으로
용두산 신사가 있다.
[4]
현
부산역 맞은편이 화교 밀집지역이었다. 꾸준히 귀화해 현재는 많이 줄었다.
[5]
## 광복 직전까지 부산과 평양 두 도시는 대체로 인구가 비슷했다.
[6]
이미 도시 규모도 부산이 크고 교통 등 인프라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대한제국 시기부터 도청 부산 이전은 계속 논의되었으나 그때마다 진주 주민들이 촉석루에 모여 시위해 무산시켰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선 이미 두 도시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져 있었고 결국 총독부는 자혜병원 건물로 짓고 있던 건물을 돌연 도청 청사로 용도변경하는 꼼수를 써서 도청을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