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파르티아가 최초로 대규모로 맞붙은 전투이다. 1차 삼두정에서 점점 입지를 잃어가던 로마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군공을 얻기위해 추진한 원정이었으나, 크라수스의 졸속한 지휘와
수레나스의 궁기병 포위전술로 로마군은 궤멸하고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지휘하에 일부부대만 시리아로 철수했다.
페르티낙스가 살해당하고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황제가 되자 로마 제국 각지에서는 황제를 참칭하는 인물들이 나타났는데 북아프리카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동방의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도 그 참칭자들 중 하나였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처형된 후 세베루스가 로마에 입성하여 황제가 되자, 니게르는 동방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공히 하고 세베루스와 일전을 벌였다. 여기서 파르티아는 니게르를 지원했지만 군사력에서 열세였던 니게르는 결국 세베루스에게 패배하고 처형되었다. 세베루스는 니게르를 제거한 후, 니게르를 지원한 파르티아를 응징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북부로 행군했다. 하지만 브리타니아에서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세베루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중단하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철수했다.
경쟁자들과 정적들을 제거하고,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여 안정을 얻은 세베루스는 동방 속주와 로마 제국의 속국들을 위협하는 파르티아에 대해 다시 한번 원정에 나섰다.
198년, 크테시폰을 점령한 로마 제국.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점령한 후 유프라테스 강의 수로와 육로를 통하여 로마군이 폭풍처럼 몰아치자 파르티아군은 속수무책으로 패퇴했고
크테시폰까지 함락되었다. 당연하게도 크테시폰 점령 이후 엄청난 약탈과 학살이 자행되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나갔다. 이후 세베루스는 크테시폰에서 철수했지만 메소포타미아 북부는 로마 제국의 영토로 계속 남게 되면서 파르티아의 멸망 이후 발흥한
사산 왕조와의 전쟁에서도 주요 전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