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18-12-19 00:49:54

금지어/농구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금지어/스포츠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흑역사/목록/농구
,
,
,
,
,


1. 한국

1.1. 한국프로농구

1.2. 한국여자프로농구

2. 미국

2.1. 국가대표

2.2. NBA



[1] 04-05 시즌. [2] 09-10 시즌. [3] 외국인 선수의 잦은 교체가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과부하걸린 물탱크. [4] KGC의 키퍼 사익스도 재계약을 거부하고 터키 2부리그 팀과 계약하면서 5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긴 했지만 작년 시즌에 맹활약하고 시즌 중에 한국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아쉽다는 반응이 컸을 뿐, 비난을 받지는 않았다. 시즌 중 사익스가 좋은 활약에도 KGC는 교체이야기만 계속 꺼내는 갑질을 했기 때문에 팬들은 팀을 비난하고 사익스에게는 다른 리그로 가서 잘하라고 격려했다. 결정적으로, 키퍼 사익스는 KGC가 터키 구단으로부터 바이아웃 금액 10만 불을 다 받고 보냈다. [5] 다만 안양 SBS 시절의 정덕화는 운이 없었던 측면도 있다. 계약 기간이 단 두 시즌뿐이어서 우승을 두 번이나 거둔 현 시점에서는 존재감 자체가 희미한데다가 정덕화의 첫 시즌인 2002-03 시즌의 경우 은희석의 군 입대 공백과 함께 양희승의 잦은 부상과 은희석의 대체자로 데려온 김훈과 김광운의 먹튀화, 높은 외국인 선수 의존도 등으로 인해 시즌이 꼬여버린 쪽에 더 가까운데, 이 당시 국내선수 스쿼드가 거의 다 박살나다시피해서 식스맨으로 데려온 강대협과 이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김병천, 그리고 당시 신인이던 신동한[11]이 팀을 먹여살리다시피했을 정도. 2003-04 시즌도 선수 스쿼드 자체가 우승권 팀과는 거리가 멀었는데도 올드 안양 팬들의 이미지가 나빠진 건 전술된 저 몰수패 사건 단 하나가 가장 컸다. 참고로 이 몰수패 사건은 당시 상대 팀이던 전주 KCC 이지스에게 극단적인 원정콜을 시전한 심판에 대한 반발로 인해 선수단을 철수시켰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선수단을 다시 코트로 들여보내는 것을 끝까지 거부해서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이 당시 정덕화는 김인건 당시 전 감독이 태릉선수촌장으로 부임하면서 갑작스레 나가는 바람에 대체 인물을 찾을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선임된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여자농구에서 나온 그 사건 때문에... [6] 다만 이 몰수패는 정덕화가 아닌 이상범 당시 코치가 주도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당시 이상범의 징계가 정덕화의 징계보다 더 크게 나왔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정덕화는 벌금 300만원이라는 가장 가벼운 징계만 받았었다. [7] 당시 연고지였던 청주시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해인 1999~2000시즌 이후의 우승이었다. 그리고 연고지의 비협조 문제로 2년 뒤 서울로 연고이전 하게 된 이후 기나긴 암흑기를 거쳐서 여기까지 온거다. [8] 개명 전 이름은 [9] 2쿼터 단 4점. [10] 실제로 르브론이 떠난 이후 댄 길버트 캐벌리어스 구단주가 성명을 통해 "르브론과 클리블랜드와의 유대는 계속될 것이고,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이루어낸 업적에 또 한번 감사를 전한다. 우리는 그의 번호를 영구결번할 날을 기다리겠다" 라고 말을 했으며, 르브론 본인 또한 "클리블랜드에게 감사하다" 라고 말하며 떠난 것과 캐벌리어스에 우승을 안겨줬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점 때문에 대체적으로 캐벌리어스 팬들도 좋게 보내준 편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