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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광현/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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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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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시절의 김광현. 2006 세계청소년대회 MVP 김광현.

198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안산시로 이사했다. 어렸을 때 야구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잠실 야구장에 찾아가 경기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놀이였다고 한다. 야구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하자 흔쾌히 받아들여 안산 덕성초등학교[1] 3학년 때 안산리틀야구단에 입단,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중앙중학교 시절에는 숙소 생활을 했는데, 다른 명문고에서 입학 제의를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숙소 생활이 싫다는 것과 집에서 가깝다는덕성초가 있는 동네에서 안산공고 가려면 자차로 15분 버스로 30분인데...? 이유로 안산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2]

지금은 키가 큰 선수이지만,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150cm대 초반의 키로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학교 다니는 동안 키가 33cm나 커서 고등학교 들어갈때는 18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장통이 심해서 어떤 날은 무릎이 아파 달리기도 제대로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할 때 키가 많이 자란 비결은 부모님이 자주 해준 보양식과 본인이 즐겨 먹던 초코우유라고 한다. 컴퓨터 게임하면서도 작은 종이팩 초코우유를 14개나 먹었다고.이 썩지 않나


안산공업고등학교 김광현의 모습 이 영상은 2006년 4월 21일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동고를 상대로 탈삼진 19개를 잡는 장면이다. 참고로 동영상의 커브처럼 보이는 구종은 사실 슬라이더라고 본인이 밝혔다.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4:2로 안산공고가 패하는 바람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3]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팀의 에이스이자 기둥이였다. 당시 고교야구 팬들은 김광현의 초고교급 활약으로 안산공고를 광현공고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안산공고는 프로선수를 김광현 포함 5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학교이다. 한화 이글스 투수 정재원[4]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름 좋은 성적을 내줬던, 지금은 은퇴한 이우선[5] 2012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박찬도 등이 안산공고 출신.[6] 김광현이 졸업하자마자 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망했다. 예선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면 엄청나게 잘한 거다.[7] 야구부가 경기할 때 가서 경기를 봐야지만 점수를 주는 희한한 체육 수행평가 때문에 호감도가 날이 갈수록 하락 중...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호투를 펼쳤으며, 2006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는 예선 최종전인 네덜란드전을 시작으로 8강 대만전, 4강 캐나다전, 결승 미국전에서 모두 승리를 기록, 4승을 달성해 내는 호투를 펼쳤고 한국의 우승과 함께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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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8일 SK 입단식에서의 모습. 김원중?

이런 김광현에 대한 기대로 SK는 06년 지명에서 동산고 류현진을 건너뛰고 포수 이재원을 지명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세간에 알려진 류거이는 사실상 류거김이 더 맞는 표현이다. 물론 1차지명 당시에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으니, 주전포수 박경완의 은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포수가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결정이었다.[8] 하지만 김광현이 있었기에 SK는 이들을 포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대 속에서 김광현은 2006년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일찌감치 2007년도 SK의 1차 지명자로 낙점되었고 계약금 5억원에 SK 와이번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2. 프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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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에 배출된 최후의 투수 슈퍼루키[9]

2000년대 후반 SK 왕조의 시작을 알렸던 좌완 에이스 투수[10]

2.1. 2007 시즌

07시즌 시작 직전의 미디어데이에서 그 전해 괴물같은 성적을 보여준 류현진에 대해서 " 스프링캠프때 열심히 했으니 이길수 있다. 현진이 형은 제가 알기론 단순해서 타자들이 조금만 생각을 가지고 치면 충분히 공략할수 있다고 본다."라는 발언을 하여서 입광현, 오랄광현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때 좀 재미있게 하라는 구단의 부탁을 들어서 별 생각 없이 했다고 한다.

07시즌 문학구장 개막전에서 첫투구를 하였으나, 내용은 평범하였다. 첫해 4~5선발로 시즌을 시작하였고, 4월 10일 첫 선발 등판을 하였는데, 양준혁에게 첫 홈런을 맞고 4이닝 3실점하고 강판. 프로 첫 선발 등판은 노 디시전. 그 이후 어느 정도 선발로 버텨주는 듯 하였으나 7월달까지 1승 6패에 4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하였다. 이윽고 시즌 중반에 2군에 내려가는 등 기대치에 전혀 못미치는 페이스를 보여주었기에 오랄이라는 별명은 더욱 더 확산되었다.[11] 그럼에도 8~9월 들어서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그래도 기대주임은 확실히 인증하였다. 07년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20경기 3승 7패 77이닝 3.62. 최종 성적만 보면, 신인치고 나쁘지는 않지만, 그 외의 평가는 내리기 어려운 그저 그런 성적이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일단은 1~3선발만 사용하던 기존의 포스트시즌 전략에 따라 중간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다. 차전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⅔이닝을 무피안타 투구하였다. 시리즈가 1승 2패로 기울어있던 4차전에 김성근 감독에 의해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되었다. 당시 상대투수는 MVP이자 22승 투수 다니엘 리오스로, 야구사이트들의 의견은 '사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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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에이스의 탄생

이때도 장발인줄막상 경기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광현의 공에 두산 타자들이 맥없이 삼진을 당했다. 거기에, 두산 타자들의 배트가 김광현의 구위에 눌려 몇차례나 부숴지기까지 했다. 이날 해설을 맡은 이용철 해설위원은 삼진을 잡는 것 보다 배트를 부러트리는 게 투수에게 더 기분이 좋을 것이라며 칭찬일색인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삼진을 잡거나 이닝을 마무리하면 활짝 웃는 모습이 두산 팬에게는 얄미움을, SK팬에게는 즐거움을 주었다. 최종적으로 7⅓이닝 9탈삼진[12]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4차전 승리투수가 되었고, SK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스포츠 전문 주간지인 스포츠 2.0에서는 한국시리즈 MVP를 김광현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13]



중간에 임가놈이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이러한 투구는 코나미컵에서도 이어져, 한국 프로팀이 일본 프로팀을 처음으로 꺾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2.2. 2008 시즌

정규시즌 MVP, 골든글러브 수상
다승 1위, 탈삼진 1위, 평균자책점 2위, 승률 2위, WHIP 2위

시즌 초반 투구폼 노출로 약간 불안했지만, 추후 투구폼 수정으로 2007년 가을의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는 투수 주요 3부문 (평균자책점 - 다승 - 탈삼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노렸으나 평균자책점만 윤석민에게 내준 채로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이후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SK의 좌완 파이어볼러 에이스로 떠올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 두번 나가 모두 호투하였다. 구대성의 뒤를 이은 차세대 일본 킬러로 떠올랐다. 거기에 CF[14] 도 찍는 등 일반 대중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다. 일본전 이후에 이승엽 다음으로 검색어 순위가 높게 나왔다.

당시 일본 분석팀이 김광현의 '쿠세(투수버릇)'을 찾지 못하였다고 했을 정도로, 한국야구계에서 쿠세 찾기의 일인자로 소문난 김성근 감독의 조련을 제대로 받았다. 아마추어 시절의 위력적인 12시에서 6시로 떨어지는 커브는 아직 쿠세가 남아있지만 아주 가끔 쓰기도 한다.

결국 08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여기서 왼손투수가 받으면 글러브가 왼손잡이로 나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여서 아쉽다면 내년에는 꼭 왼손잡이용 트로피를 받겠다고 해서 또 다시 오랄광현 소리가 나왔다. 다만 이 경우는 김광현 본인의 쇼맨쉽과 08시즌의 훌륭한 성적이 합쳐져 애칭에 가깝게 오랄신, 오랄갓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역시 프로선수는 성적으로 말한다...
2.2.1. 2008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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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일본 킬러

이런 시즌 최종반의 일련의 활약이 겹쳐져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세계예선에 선발되어 멕시코와 대만을 상대로 선발로 나와 2승을 거두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서 일본 분석가들이 김광현의 쿠세(투수버릇)를 잔뜩 연구했었으나 결국 버릇을 알고 있다고 해서 김광현의 공을 칠수 있는 건 아니였다.

2차 예선에선 2경기 등판하여 11이닝 방어율 1.64(2자책) 3볼넷 9탈삼진 2승 0패를 기록하며 호투했고, 본선에서도 3경기 등판하여 14.1이닝 방어율 1.26(2자책) 3볼넷 12탈삼진 1승 0패를 기록했다.

2.3. 2009 WBC

NEW 일본 힐러

제2회 WBC를 목전에 두고, 쿠세가 남아 있어 봉인했던 12 to 6 커브를 해제함과 동시에 스플리터를 장착했다고 설레발을 떨었지만, 정작 일본전에서 2회에 스리런 홈런과 밀어내기 포볼 포함 8점을 얻어맞고 강판당했다.그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에 콜드패하게 되고 야갤은 대폭발(…), 김광현은 우는 듯한 짤방과 함께 김콜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15]

패인으로는 한국 프로야구 개막 시즌에 맞추어 페이스를 올리다보니 WBC까진 맞추지 못했다고, 그로 인해 슬라이더의 각이 많이 무뎌졌다.

일본과의 2차전에서 봉중근을 시작으로 임창용으로 이어진 투수진이 1점도 안내주고 1:0으로 한국이 영봉승하자 더더욱 까였다(...)

이후 2R 멕시코 전과 일본 전에서 중간계투조로 투입, 나름대로의 재미를 봤다. 선수 보호라는 측면에선 바람직한 일이긴 한데… 이번 WBC 2회 대회가 워낙 허를 찔리는 일이 많은 듯 하다.

조의 1, 2위를 정하기 위한 한일전에서 구원투수로 나와 또 한번 대량실점을 해버려서 일본 킬러에서 일본 힐러로 변신했다.

2.4. 2009 시즌

평균자책점 1위, 승률 1위
그러나 불의의 부상으로 2년 연속 MVP를 놓치다.

2009 시즌 WBC의 후유증으로 한화 이글스와의 개막시리즈에서는 선발로도 나서지 못했지만, 다음 기아와의 경기에 시즌 첫 선발 출장하여 7이닝 3실점 2자책으로 QS+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고, 이후 09시즌 내내 이닝이터의 면모를 과시한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예전의 기량을 다시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더욱 성장한 아니 전반기를 지배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득점지원을 받지못해 QS를 기록하고도 승리를 따지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6월 25일, 7번타자 정대현을 대신해 대타 김광현이 출전하였다.[16] 그 결과는 12회초 2사 상황에서 나와서 풀카운트(!) 접전 끝에 삼진당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팀들의 팬특히 한화들은 '우리팀 타자는 SK 투수보다 선구안이 구리단 말인가'라며 좌절. 게다가 최정과 포수 정상호 패스트볼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625 대첩참고.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타석이 첫 타석이 아니었다. 사실 07년에도 대타로 나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낸 적이 있었다. 이 자료를 보면 그의 타격실력을 알 수 있다. 김광현이 사순이를 보내버린 사건

투표수 50만 6213표, 전체 1위로 올스타전 동부리그의 투수로 뽑혔고, 구단 창단 이래로 첫번재 투수 올스타가 되었다.[17][18] 서부리그 올스타는 윤석민이 뽑힘으로써 올스타전 선발로 윤석민과 맞대결을 하게되었다. 올스타전에서 패전투수가 됐지만 정작 상금은 승리투수인 윤석민보다 많이 받았다.

그리고 8월 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3회 말 김현수의 직선타에 맞아서 시즌 아웃되었다.두산과 SK의 악연이 또.. 이 경기에서 해설을 하던 허구연위원은 공에 맞아 실려 나가던 김광현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올해는 국제대회가 없어서 괜찮다는 둥 김현수의 정신적 충격이 걱정된다는 등의 말을 해, 많은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당시 제일 먼저 12승을 찍었던 김광현의 페이스였으면 08시즌 아쉽게 놓쳤던 트리플 크라운을 노려볼 수 있었고, 2년 연속 투수 골든글러브, MVP 수상도 유력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시즌 종료 후 공동 다승왕의 승수는 14승. 결과론이지만 시즌 아웃을 당했을 8월 3일 당시에 12승이었던 김광현이 풀타임을 소화했더라면, 2~3승 추가는 충분했을 터. 게다가 2009년의 김광현은 대단했기에 더욱 아쉽다. 2009년은 극심한 타고투저였던 해로 류현진, 윤석민을 비롯한 많은 정상급 투수들도 조기강판 당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투수들의 수난시대였지만, 김광현은 김성근 감독의 착각으로 인한 조기강판[19],8월 2일의 부상으로 인한 조기강판외에는 5회 이전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 두 번 외에 가장 적게소화했던 이닝은 5이닝 1실점. 또한 방어율 역시 많은 투수들이 3,4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해에 독보적으로 2.57의 방어율을 찍으며 1위를 달리고 있었다.[20]

또한 QS도 리그 1위 였으며, 이닝소화율마저 거의 4일 로테이션을 돌았음에도 뛰어나, 전반기에만 규정이닝을 채우며 1위를 유지중이였다. 특히 타이틀이 걸려있는 다승, 승률, 평균자책점 모두 1위였고, 그해는 SK 팬들이라면 절대 잊지못할 KS를 치룬 해였다. 이런 상황에서 풀 시즌만 소화해줬다면 커리어 하이로 평가되는 2010 시즌을 능가하는 기록도 기대해 볼 수 있었던데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시리즈 향방을 가를 수도 있었기에 아직까지 많은 SK팬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시즌이다. 김현수...

정규시즌이 끝난 후 KIA 선수들은 아마 잘 모를거에요. 1위하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1위로 한국시리즈 가면 더 부담스러워요라는 발언으로 과연 오랄이라는 반응(...) 젊은 선수다운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지만, 해태 타이거즈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 멤버들과 팬들에게는 썩 기분 좋은 발언은 아닌 듯… 싶었으나 나중에 전체 동영상에서는 KIA의 젊은 선수들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의 낚시질로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김광현의 오랄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KIA가 김광현한테 패전을 안긴 적은 이때까지도 없었지 아마

또한 재활 도중 팔꿈치에 무리가 생겨 10시즌 초반출장 역시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2.5.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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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010151844777027_1.jpg

커리어 하이 시즌
다승 1위, 이닝 1위, 탈삼진 2위, 평균자책점 2위

평균자책점 2.37과 17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으나 한화의 어느 1점대 선발 투수 때문에 다승왕을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한 이 때 당했던 혹사는 2011년 KIA전의 벌투와 함께 어깨부상의 원인이 된다.

2.6.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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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부상과 사투가 시작된 시기

망했다. 그동안 고졸 투수치고는 관리받지 못했고, 국가대표도 꼬박꼬박 나간 결과, 부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게 되었다. 거기에 작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뇌경색까지 걸리며[21]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22]

2.7.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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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보단 나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영 좋지 않은 성적,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부활

2.8.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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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이후 오랜만에 10승 투수로 돌아오다.

2.9.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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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ph.spotvnews.co.kr/1183_855_3040.jpg

타고투저 시즌에 돌아온 에이스
좌완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

이번 시즌 내내 SK의 거의 유일한 에이스로 활약하며 준수한 시즌을 보냈다. 13승을 거두며 2010년 이후 개인 최다승을 거두었고 방어율은 토종투수들 중에서 1위, 전체 투수들 중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올 시즌 김광현이 소화해낸 173.2이닝은 데뷔 이후 두 번째로 많이 소화해낸 이닝수다.
2.9.1.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파일:김광현 아시안게임.jpg

첫경기인 태국전부터 선발투수로 등판했지만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1회말부터 8점이나 득점한 덕분에 2이닝 소화 이후 체력안배차 유원상과 교체 되었다. 이후 결승전인 중화 타이베이전에도 선발 등판해서 5⅔이닝 5피안타 4탈삼진 3실점을 기록하고 한현희와 교체 되었다.

2경기 등판하여 7.2이닝 방어율 3.52 (3자책점) 0볼넷 8탈삼진을 기록했고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포스팅 조건을 충족하였다.

2.10. 메이저리그 포스팅

11월 1일 SK가 포스팅을 신청했으며, 12일에 발표된 바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200만달러(당시 22억)으로 응찰했다고 한다. 기대한 것보다 많이 낮은 금액이었지만 김광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SK가 이를 수용했고, 에이전트를 통해 한 달간 협상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결국 계약에 실패하면서 메이저리그 행이 좌절되었다.

존 헤이먼의 트윗에 따르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제시한 조건은 2년 200만 달러 + 팀옵션 2년이라고 한다. 2년도 2+1도 아니고 2+2는 김광현이 KBO에서의 성적을 MLB에서 보여준다는 전제하에서는 헐값에 4년을 확보하겠다는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라서 여기에 응했으면 호구라는 것이 야구팬들의 중평. 구단옵션 +2년이면 SD 측에서 애초에 계약의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에도 계약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댓글 참조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내세웠다고 샌디에이고가 김광현을 호구계약 대상자라고 생각하고 이런 계약을 내새웠다는 것 자체는 어불성설이다. 우선, 200만 달러라는 헐값이나 다름없는 포스팅 금액으로 잡아서 2년을 보장해준 것, 그리고 자신들의 사비로 샌디에이고에 김광현을 초청했던 것 자체만으로도 샌디에이고는 정성을 다한 셈이고, 박병호 계약때나 템파베이 레이스 에반 롱고리아, 맷 무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앤드류 맥커천의 계약은 그럼 구단이 선수를 호구로 알아서 계약을 제시했다라는 것인가? 더욱이 저 선수들은 이 당시 팀내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최상위급 유망주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더욱이 메이저리그에서 FA가 되려면 6년 혹은 5년 128일의 서비스타임을 소비해야 하며 연봉조정신청 자격도 3년 혹은 2년 128일의 서비스타임을 소비해야 갖추어지는 판국에, 4년동안의 보유권을 샌디에이고가 갖는다는 것은 절대 폭리라고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보장받게 되는 2년도 최저연봉이 아닌데 샌디에이고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김광현에게 제시한 금액이 노예계약이라고는 절대 말할수 없다. 실제로 2018년 기준 무어나 박병호 계약은 구단의 손해로 판명났기도 했고.[23]

요약하자면 샌디에이고 측에서는 나름 성의있는 제안을 했지만 재정이 빈약한 스몰마켓이라는 한계, 그리고 어디까지나 김광현을 불펜 전력으로 생각했기에 큰 계약은 줄 수 없었고 금액과 기간 면에서 선발자원으로서의 대접을 생각한 김광현 측이 기대한 계약규모를 맞춰주지 못해 결렬되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것이다.

이로써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은 SK 입장에서나 김광현 입장에서나 희대의 흑역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구단에게는 이미지 메이킹용으로 손색이 없다는 의견들도 있다. 자기들은 항상 선수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니 망설이지 말고 오라는, 일종의 약팔이라는 의미. 2014년 SK는 고졸 최대어인 박효준을 끈질기게 데려오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가능성이 높다.

2.1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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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는 비룡의 에이스

이전 시즌 개인 최다 등판기록을 갈아치운 30경기 176⅔ 이닝을 등판하여 14승 6패 1홀드[24] 평균자책 3.72를 기록하였고, 탈삼진 또한 160개를 기록하며 10시즌[25] 이후 가장 많은 탈삼진을 기록했다.[26]. 또한 사사구도 전년도 대비 84개에서 69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피홈런이 늘었지만 언행일치갑[27]
2.11.1. 2015 WBSC 프리미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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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조 조별리그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 2.2이닝 5피안타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고, B조 조별리그 미국과의 경기에선 4.1이닝 2실점(2자책) 5삼진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조상우에게 넘겨줬다.
일본 도쿄 돔에서 열린 미국과의 결승전에서도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 4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호투했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3게임 등판하여 12이닝 방어율 3.00(4자책) 4볼넷 13탈삼진을 기록하였고, 1승 1패를 기록했다.

2.12.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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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역사상 2번째 통산 100승 달성!
그러나 부상 이후 아쉬웠던 시즌 마무리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이 예상되기도 하였으나, 2016년 11월 29일 4년 85억(계약금 32억,총 연봉 53억)에 SK와 계약하면서 국내에 잔류하게 되었다. FA 거품이 극심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비싸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파격적인 몸값. 85억은 옵션 제외한 금액으로, 옵션을 포함하면 100억이 넘는다고 한다. # 하지만.....

2.13. 2017 시즌

안식년

2016 시즌 말미부터 계속된 팔꿈치 통증 때문에 계약 직후 팔꿈치 정밀 검진을 위해 2016년 12월 4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한 김광현은 5일 요코하마에 위치한 미나미 쿄사이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고 5일 늦게 귀국했다. 검진 결과는 6일 선수와 구단 측에 통보됐다. 결과는 팔꿈치 내측 인대 손상 판정이 났고 병원 측에서는 재활을 택하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게 나으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내렸다.

결국 구단과 상의 끝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재활기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2017 시즌에 김광현을 마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여론은 일제히 혜자계약-> 구단이 최고대우를 해줬네 로 바뀌었다100억원을 바라볼 것으로 여겨졌던 몸값이 85억에서 멈춘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거기다 공개는 되지 않았지만 옵션을 빵빵하게 걸어서 예전처럼만 해준다면 100억 이상을 챙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하니 구단에서 최고대우를 해줬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애초에 2016 시즌 중후반에 부상으로 1군을 이탈했을 때에도 수술 소견이 나왔었다고.

다만 사실상 3년 85억 계약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 2017년에 나오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FA 취득연수가 한 해 밀리게 된다. 물론 1년 연봉은 준 것이 되지만 그렇다고 3년 85억과는 전혀 다른 개념.

수술은 2017년 1월 4일에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미나미쿄사이병원에서 받았고 이후 재활과정을 거쳐 2018시즌에 복귀를 할 예정이다. 단 SK는 2018시즌 김광현을 위해 투구수와 이닝 제한을 해줄 것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2018시즌 김광현의 복귀 플랜을 확정했는데 2018시즌은 110이닝(2000구이내)으로 이닝 제한을 하기로 확정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 할 경우를 대비해 2018시즌 5월~6월에 복귀시점을 잡을 예정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1월 말 다시 요코하마로 건너가서 재검진을 받은 후 곧바로 후쿠오카의 히사츠네 병원으로 이동해서 2월 21일까지 물리치료와 운동치료를 병행하였다.

5월 27일 LG와의 홈경기에서 5회 이후 클리닝타임에 1루 응원단상에 올라왔다. 재활에 집중하느라 문학구장에 방문한 것은 오랜만이고, 내년에 무조건 복귀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에이스의 버프로 최정과 한동민이 홈런을 쳐서 홈런 공동 1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중계석에도 방문해 이 날 중계를 맡은 skySports 중계진과 인터뷰도 가졌다.

6월 26일 캐치볼 단계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을 잡았다고 한다. 현재까지 재활 페이스는 순조로운 편이며, 향후 두 달 가량 캐치볼과 단계별 투구프로그램(ITP)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7월 17일 와이번스 TV에서 안산에서 실종되었던 실종아동 정유리 양[28]의 아버지와 만나 안산 시내를 돌아다니며 실종 전단지를 돌렸다. 여담으로 지난 시즌이었던 2016년 희망더하기 나눔 켐페인에서 SK 선수단이 실종아동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었는데, 김광현은 당시 정유리 양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었고 정유리 양의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여 이날 하루 정유리 양 아버지와 같이 전단지를 돌렸고, 안마의자를 선물해 드리는 훈훈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8월 21일 단계별 투구프로그램(ITP)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하프 피칭을 준비한다고 한다. 9월에 하프 피칭에 돌입했으며, 10월 초 80%의 힘으로 투구를 할 수 있을만큼 컨디션이 올라왔다. 10월 말에는 재활이 90% 가까이 완료되었다고 하며, 2018 시즌 대비 스프링캠프 참가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현재까지는 재활 페이스가 매우 순조로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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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균성 넉살 이상훈

시즌이 끝난 후인 11월 중순, 조은혜 기자의 인스타그램에 그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장발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본인 말로는 복귀 첫 등판 이후 머리를 정리할 예정이라고...

2.14. 2018 시즌: 부상 복귀 후 첫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광현/2018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김광현장발.jpg 파일:김광현장발인사.jpg
장발이 되어 돌아온 2018년의 모습[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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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나와 팀의 4번째 우승을 확정짓고 환호하는 김광현

다시 돌아온 와이번스 부동의 에이스, 부상을 이겨내고 정상급의 활약을 펼치다.[30]
8년전 처럼 자신의 손으로 V4를 완성한 비룡의 황태자

2.15. 100승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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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좌완 역대 3번째 통산 100승 달성 후. 20대 좌완투수로는 최초다.

승, 이닝, 실점/자책점, 상대팀, 패전 투수 라 쓰고 허용투수, 결승타
53승 - 5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서재응, 임훈
54승 - 5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정현욱, 없음
55승 - 6이닝 무실점, LG 트윈스 최성훈, 정상호
56승 - 5 ⅔이닝 1실점, 롯데 자이언츠 이상화, 최정
57승 - 5 ⅓이닝 3실점, 넥센 히어로즈 한현희, 이호준
58승 - 6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김진우, 없음
59승 - 6이닝 5실점,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 이호준
60승 - 6이닝 4실점, LG 트윈스 이승우, 이호준

김광현의 100승

이분이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100승 때도 이분이 쳐주셨지.
[1] 야구부가 없는 학교라 리틀야구로 야구를 시작했다. [2] 그런데 거기서도 숙소 생활했다는 뒷 얘기가 있다.(...) [3] 4회초에 솔로홈런을 맞으며 1점을 내주었고 김광현이 9회 말 동점홈런을 치며 연장전으로 들어갔으나, 이후 3점을 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4] 98경기 127⅓ 이닝 1승 7패 6홀드 9.16 [5] 98경기 182이닝 3승 4패 1세이브 4.35 [6] 의외로 삼성에 안산공고 출신 선수가 많다. 2017년에 최형우의 보상선수로 합류한 강한울도 안산공고 출신이다. [7] 안산공고는 11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다시 전국대회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8] 이재원도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주전 포수 자리를 완전히 차지했기에 이것도 그렇게 후회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건 이재원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무조건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리그 최악의 팀에서 연평균 180이닝-평자 2.80-14승을 올려주고 300억까지 주고 떠난 에이스와 비견할 만한 선수가 과연 현 KBO에 있을까? [9] 타자 쪽에서는 2017년에 바람의 손자가 슈퍼루키로 크게 활약하였고, 2018년에는 강백호(야구선수)가 슈퍼루키가 될 확률이 크다. [10] 그래서 가지고 있는 별명 중 하나가 비룡의 왼쪽 날개다. [11] 2군으로 내려가기 전, 8월 19일 광주 기아 타이거즈전에서 선발 김원형이 한타자도 책임지지 못하고, 강판당하며 두번째 투수로 김광현이 등판했는데 7이닝 4실점(3자책)으로 호투하였다. 이 날 경기는 초반에 판가름 난지라 김성근 감독이 테스트 겸 올렸다고 추후에 밝혔다. [12] 이전 포스트시즌 탈삼진 기록은 류현진이 갖고있는 삼진 8개다 [13] 이때 김광현이 밝히기로는 위 각주에 서술한 기아전이 엄청 도움이 되었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을 던지다보니 감각이 왔고, 그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2군에서도 훈련에 매진했다고한다 [14] https://youtu.be/E9kMkvuNOr4 [15] 후일 방영된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박경완이 밝히기를 '지금까지 광현이와 배터리를 짜면서 이렇게 두들겨맞은적은 처음이다'라고 회상했다. 다음에 다시 맞설 기회가 있다면 후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리드에 따라오는 투수가 얻어맞는 모습을 보는 포수 또한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16] 마운드엔 투수 최정이 있었다(...) [17] 이전 올스타는 2006년 이진영 김재현, 2007년 김성근감독이 부임한 이후로 최초이다. [18] 전국 야구팬들에게 에이스로 인정받은 것일 수도 있으나, 동부리그의 후보들이 좀 빈약했다. 동부리그 후보로는 김선우, 조정훈, 오승환등인데, 이에 비해 서부리그의 후보들은 봉중근, 윤석민, 류현진, 이현승 등으로 쟁쟁한 투수들로 이루어져있었다. [19] 한 회의 실수로 두번 마운드에 올라와서 강제로 강판 [20] 시즌아웃 당시 2위 구톰슨 2.94, 3위 송은범 2.95. [21] 이때 안면마비 증세로 2010년 아시안 게임에 못 나온다고 하자 뇌경색에 걸린 것을 모르는 악플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김광현이 국가대표에 나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린다 단정짓고 " 이미 군면제까지 받았으니까 배가 불러서 국가대표에 나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안면)마비킴이라며 조롱하였다. 2011년 김광현이 작년의 마비증세가 뇌경색 때문이였다고 밝히자 사과도 않고 실종. 후에 김광현이 직접 밝히길 안면마비 증세보다 악플이 더 아팠다고 밝히며 슬픔을 자아냈다. [22] 2007시즌은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라도 했다. [23] 물론 무어는 계약 당사자인 템파베이 레이스가 낮은 연봉 기간만 쓰고 타 팀에 넘겼기에 손해는 다른 구단이 독박을 썼다. [24] 10월 3일 NC 다이노스전, 개인통산 첫 홀드다. [25] 183개 [26] 144경기라서 당연한 것 아니냐 싶겠지만, 128경기 체제였던 14시즌에도 김광현은 28경기에 등판해 삼진 145개를 잡았다. 삼진 비율이 높아진 것. [27] 시즌 전에 볼넷을 줄 바에야 차라리 홈런을 맞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28] 1991년 8월 5일 안산시 원곡동 인근에서 유괴를 당한 뒤 현재까지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29] 2018년 3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번째 경기에 533일만의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복귀전을 승리로 따낸 후 짧은 머리로 다시 돌아왔다. 자른 머리는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된다고 한다. 여담으로 김광현이 재활 기간동안 길러온 머리를 이발하는 장면을 지상파 3사에서 취재해서 뉴스에 내보냈다. # [30] 이번시즌 최고의 토종 투수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활약을 펼쳐줬다. 토미 존 수술이후 복귀시즌 으로 구단자체 선수 관리차원의 투구수 제한으로 인해 규정이닝을 소화하지는 못했으나 토종투수 전체 1위의 승리기여도를 기록했다. [31] 통산 첫 완봉승 [32] 통산 두번째 [33] 통산 세번째 완봉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