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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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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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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李相睦 | Sang-Mok Lee
출생 1971년 4월 25일 ([age(1971-04-25)]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수창초등학교 (졸업)
경복중학교 (졸업)
성광고등학교 (졸업)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0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0~1993)
빙그레- 한화 이글스 (1993~2003)
롯데 자이언츠 (2004~2007)
삼성 라이온즈 (2008)

1. 개요2. 선수 경력3. 피칭 스타일4. 연도별 주요 성적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투수.

현역 시절 대표적인 별명은 포크볼의 황태자[1] 이다.

2. 선수 경력

2.1. 삼성 라이온즈 1기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214105532309.jpg
당시 빼빼마른 프로 데뷔시절 얼핏보면 왕년의 에이스인 김시진의 얼굴이 흡사 비슷하게 보인다.[2]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삼성에서의 성적은 승패없이 23이닝 소화, ERA 4.70을 기록하였다. 이마저도 데뷔 첫 해인 1990년에 모두 올린 성적이며, 1991년과 1992년에는 1군에 한 번도 올라오지 못했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03년 2인자.png

1993년 6월 14일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빙그레-한화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한화에서 가장 오래 뛰었고 전성기였다 보니 사실상 이상목 하면 한화맨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1993년 트레이드 직후, 그의 포크볼을 눈여겨본 코칭스태프에 의해 꾸준히 계투로 기회를 부여받았던 이상목은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팀명이 한화로 바뀐 첫 해인 1994년에는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렸고, 시즌 중반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며 마운드의 주축이 되었음을 천하에 알렸다. 특히 당시 한화 감독이던 강병철이 그에게 적극 선발 기회를 많이 주었다. 1996년에는 아쉽게 9승으로 10승은 실패하였지만 무려 174⅔이닝을 소화했고 탈삼진 TOP 5에 랭크되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하락세를 타던 한용덕을 밀어내고 3선발로 등극하는 데까지 성공하였다.

1999년에는 한화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커리어 유일하게 우승도 경험해본다. 이 해 성적은 14승 8패 ERA 4.20. 이때 정민철- 송진우에 이어 한화의 3선발로 활약했다. 비록 승리는 못했지만,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도 선발투수로 나섰다.

한화의 그 해 우승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선발로 데뷔 후 최다승인 18승을 올린 정민철(18승), 2선발로 부활한 송진우(15승), 그리고 이상목 이렇게 강력한 3선발이 등판했을 때는 전력을 다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돌려막았다. 당시 마무리 구대성 외에는 선발 외 투수들이 별로였다. 나머지 중간계투들은 ERA 5점대는 기본이요 일부는 6~7점대까지 기록해서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그나마 믿을 사람이라면 팀 사정상 선발 중간계투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출장해 91이닝을 던진 25세의 영건, 김해님 정도[3].그래서 앞의 3선발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 믿음직스럽지 못한 불펜진들이 실점을 불사하며 1~2이닝쯤을 버티고, 구대성이 남은 이닝을 처리하는 식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제이 데이비스, 댄 로마이어, 장종훈, 이영우, 송지만 등을 포함한 강타선의 역할도 컸다. 어쨌든 그렇게 승률 6할이면 우승도 넘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명 3승 2패 전략으로 결국 우승. 그러나 이 시즌 승률은 .554(매직리그 2위, 통합 4위)였고, 승률 6할을 넘긴 팀은 한 팀도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에는 어깨 부상을 당하며 1경기 등판을 끝으로 시즌 아웃되었고,[4] 절치부심해서 회복한 2001년에는 시즌 초반부터 5연승을 달리며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일익을 담당했지만, 중간에 팔꿈치 부상을 당하는 등 부침이 있었다. 2002년에는 중간이 부실했던 마운드 사정으로 인해 시즌 초 잠시 계투로 뛰기도 했지만, 평균자책점은 6점대로 치솟으며 3시즌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03년, 이상목은 15승과 평균자책점 3.55를 기록, 정민태와 다승 경쟁을 하기도 했으나, 17승과 선발 21연승의 대기록을 기록한 정민태에게 골든글러브와 다승왕 모두 빼앗긴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였다. #

한화에서의 최종성적은 72승[5] 88패 ERA 4.43을 기록하면서 롯데로 이적했다.

2.3. 롯데 자이언츠 시절

파일:external/file2.cbs.co.kr/26162746000_61000010.jpg

2003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한화와 협상이 결렬됐고, 4년 총액 22억 원에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다.[6] 하지만 계약 첫 시즌인 2004년 3승 9패 ERA 5.03으로 시원하게 말아먹으며 먹튀 소리를 들었고, 향후 밑에 서술할 DDSM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2005년과 2006년에는 몸값에는 못 미쳐도 선발 투수로써 나름대로의 활약을 보여 주지만(특히 2006년은 12승) 계약 마지막 해인 2007년 1승 ERA 6.69로 정말로 시원하게 말아먹고 방출된다.

FA 계약 4년 동안 22승 28패로 승당 1억 꼴.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2014년까지 롯데의 역대 외부 영입 투수 FA 가운데 가장 성공작이었다. 진짜다. 2013년 FA 시장부터 낀 어마어마한 거품 탓에 꼴랑 1억만으로 1승씩이나 해줄 수 있는 외부영입 투수 FA는 더 이상 없을 지 모른다고 예측 되었으나 손승락이 롯데로 와 맹활약하며 투수 FA 잔혹사를 해결한다.

어쨌든 금액과 기대에 비해 못한 건 사실이었기에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는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그를 방출해버렸다. 롯데에서 방출된 뒤 다시 한화 이글스로 갈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7] 결국 자신의 고향 팀이자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된다.

2.4. 삼성 라이온즈 2기 시절

파일:삼상목.png
은퇴 직전 마지막 시즌.[8]

2008년 시즌을 앞두고 투수오타쿠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고 연봉 1억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15년 만에 친정 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08년 8월 2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⅓이닝 2실점으로 막아 타선의 도움 덕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9]

사실 통산 99승, 2008 시즌 5승[10]을 하기 까지만 하더라도 100승을 눈 앞에 뒀으나 몇 번의 아홉수에 계속해서 100승이 좌절되고 있었다.[11] 그럼에도 선동열 감독의 믿음으로 2008 후반기에서 시작된 첫 경기인 히어로즈전에서 승리해 8전 9기 끝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참으로 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인지, 성준이 못다 한 100승을 그가 올렸다. 만일 히어로즈전마저 승리하지 못했다면 평생 100승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12] 이것으로 인해 삼성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한 또 하나의 반전을 쓰며 조건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2008시즌 최종성적은 31경기 등판(21경기 선발등판)하여 124.2이닝 동안 6승 6패 1홀드 ERA 5.34[13]에 sWAR 1.46을 기록했으며, 특히 전반기까지만 해도 7이닝 이상도 여러번 소화하며 굳건하게 선발진을 지키고 있어서 두 자리수 승수도 바라볼 정도였으나 후반기들어 급격히 지쳐간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선발등판하여 1회에만 5실점했었는데, 시즌 종료 후 후반기 부진과 더불어 이것이 방출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친정 팀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것과, 그 시즌을 6승으로 장식한 점.[14] 무엇보다 통산 100승을 찍고 은퇴하게 되었다는 점.

통산 성적은 439경기 100승 122패 25세이브 1,830⅔이닝 1,231K ERA 4.30. 승에 비해 패가 더 많은 것만 봐도 승운이 유독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롯데 시절 먹튀 이미지 때문에 통산 성적에 비해 그 동안 굉장히 저평가가 심했던 편이다. 사실 100승 투수는 2022년까지 프로야구 40여년 동안 32명 밖에 없을 정도로 쉽지 않은 기록이고,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에서 투수 29위에 해당할 정도로 좋은 성적이다.

3. 피칭 스타일

그의 주무기는 바로 낙차 큰 포크볼이다. 포크의 왕자, KBO 최강의 포크볼러 로 불릴 만큼 포크볼 활용을 잘 한 선수이다. 그 전까지 '동양인은 포크볼을 던지지 못한다'라는 야구계의 속설이 있었는데[15], 그 속설을 일본에서 타파한 선수는 노모 히데오였으며, 대한민국에서 타파한 선수는 이상목이었다.[16]

이상목의 포크볼은 롯데 시절 손민한, 이용훈 등에 전수되었는데 리그 최고의 포크볼로 불렸던 조정훈의 포크볼도 손민한의 영향을 받았고 이용훈은 롯데 투수 코치가 되면서 롯데 젊은 투수들이 포크볼을 전수받고 있다. 롯데가 포크볼 선수가 많은 데에는 송승준의 영향과 더불어 이상목의 나비효과가 있는 셈이다.

99년도 때는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약 147km/h까지 나올정도로 당시 국내 투수 중 구속이 최상위권이 였고 130km대의 슬라이더를 즐겨던졌지만 00년 부상이후 구속이 대폭줄고 슬라이더 속도와 각이 줄면서 포크볼 비중이 늘어났다.

통산 BB/9이 2.0개로, 이는 KBO 역대 4위 기록에 해당하는데 제구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투구 스타일이 볼넷 내주느니 안타 맞는다는 식으로 공격적이었기 때문. 구종 자체는 다양했지만 포크볼 외 구종들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소위 공이 긁히는 날에는 1, 2선발 안 부러운 이닝이터였지만, 포크볼 커맨드가 안 되는 날에는 끝도 없이 연타를 허용하는 등 피칭의 기복이 있었다.[17]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삼성 9 23 0 0 0 - - 4.70 21 1 15 6 15 12 1.57
1991 1군 기록 없음
199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3 빙그레 16 46⅔ 0 2 2 - 0.000 4.82 50 5 16 22 26 25 1.37
1994 한화 37 128 5 8 5 - 0.385 4.01 127 14 34 77 60 57 1.23
1995 32 134⅓ 7 8 5 - 0.467 3.75 129 12 40 112 60 56 1.24
1996 33 174⅔ 9 13 2 - 0.409 3.97 176 10 46 156
(5위)
92
(1위)
77
(4위)
1.24
1997 38 138 6 10 0 - 0.375 4.30 150 19
(4위)
41 101 76 66 1.35
1998 38 174⅔ 9 17 2 - 0.346 4.84 198
(1위)
23
(1위)
41 145 104
(1위)
94
(1위)
1.35
1999 31 172 14 8 2 - 0.636 4.29 161 26
(4위)
37 140 86 82 1.11
2000 1 1 0 0 0 0 - 0.00 2 0 0 1 0 0 2.00
2001 40 101 7 8 5 3 0.467 4.90 125 12 34 69 69 55 1.53
2002 30 62 0 7 3 2 0.000 6.10 70 13 16 47 43 42 1.32
2003 33 185⅓
(3위)
15
(2위)
7 1 1 0.682 3.54
(5위)
203
(1위)
18
(공동 4위)
33 118 78 73 1.2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롯데 19 87⅔ 3 9 0 0 0.250 5.03 112 16 23 51 58 49 1.46
2005 17 101⅓ 6 7 0 0 0.462 3.02 88 8 23 69 35 34 1.03
2006 23 138⅔ 12 8 0 0 0.600 3.25 132 17
(공동 4위)
28 50 63 50 1.12
2007 11 37⅔ 1 4 0 0 0.200 6.69 56 4 14 14 30 28 1.8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삼성 31 124⅔ 6 6 0 1 0.500 5.34 152 8 38 53 79 74 1.45
KBO 리그 통산
(17시즌)
439 1830⅔ 100 122 27 7 0.450 4.30 1952 206
(공동 5위)
479 1231 974 874 1.29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한화 1 1 .000 0 0 0 0 0 0 0 .000 .000
KBO 리그 통산
(1시즌)
1 1 .000 0 0 0 0 0 0 0 .000 .000

5. 기타

6. 관련 문서


[1] 아래에 서술된 내용이지만 포크볼을 잘던져 슬라이더는 선동열, 커브는 최동원, 포크는 이상목이라는 말이 있다. [2] 김시진도 선수 시절에는 그렇게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었다. [3] 99년도 ERA가 4.87, ERA+는 104.6으로 리그 평균보다 살짝 나은 정도였다. 다만 이 해는 역대급 타고투저를 기록한 때라서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이었다. [4] 이는 한화의 부진에 한 원인이 되었다. 당시 정민철의 해외진출과 이상목의 부상, 한용덕의 노쇠화로 인해 송진우, 구대성, 장종훈, 송지만 등이 분전했음에도 한화는 7위를 하고 만다. [5] 개인 통산 100승중 72%를 한화서 기록한셈. [6] 여담으로 이 때 보상선수가 신종길이다. 이상목이 계약 첫 해부터 부진한 사이 신종길은 한화로 이적했던 첫 시즌에 싸이클링 히트까지 치면서 롯팬들은 뒷목을 잡게 되었다. [7] 그도 그럴 것이 이상목이 전성기를 보낸 팀인데다 재활공장장으로 유명했던 김인식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8] 사진 상황이 당시 선동열 감독이 조진호와 이상목을 후보로 두고 결국 이상목을 4선발로 낙점하였는데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상황이었다. [9] 이는 프로 데뷔 19시즌 만에 100승을 달성한 것으로, 최다 시즌 100승 달성자라는 기록을 세운다. 성준처럼 딱 3승 남겨놓고 은퇴한 케이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달성하지 못한 거보단 나았다. [10] 이 5승을 할 때까지는 사실상 팀 내 에이스였다. [11] 기사에서도 나와있듯이 2008년 6월 5일에 시즌 5승을 거둔 후 한 달째 통산 100승을 달성하지 못하여 4전 5기라고 제목이 달렸을 정도다. 심지어 6월 24일 LG전(7⅓이닝 2실점)과 29일 두산전(5⅓이닝 1실점)에서는 호투하고도 팀 타선의 침묵으로 '승수쌓기'에 실패해 만만치 않은 100승의 벽을 실감하고 있었을 정도. [12] 물론 그가 한화에 있었을 때에는 한화의 암흑기였던지라 승수 손해를 본 적이 많았다. [13] FIP는 4.05로 리그 평균 이상이었다. [14] 전년도인 2007년 고작 1승에 그치며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이다. [15] 포크볼 등은 손가락이 길어야 유리한데,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손가락이 짧아서라는 이유. [16] 이상목의 손가락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사실 포크볼이라는 구종 자체가 미국에서 유래했지만 가다듬고 발전시킨 곳은 일본이다. 미국 쪽에서는 포크볼은 잘 안던지고 스플리터를 주로 구사하는데, 이쪽 역시 손가락이 잘 벌어지고 길수록 구사가 쉽고 무브먼트도 좋아진다. [17] 시즌 피안타 1위를 98, 03시즌 두 번이나 했으며, 특히 커리어하이 시즌인 03시즌에는 15승과 3점대 방어율, sWAR 5.60을 쌓았음에도 피안타 마저 203개로 리그 1위를 하는 기이한 스탯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 해에 7월 19일 롯데전에서는 6이닝동안 11피안타나 허용했음에도 무사사구에 단 2실점(1자책)만 하여 승리투수를 따낸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