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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2 21:42:05

한스-헤르만 호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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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한스-헤르만 호페
Hans-Hermann Hoppe
파일:Hans-Hermann_Hoppe_by_Gage_Skidmore.jpg
본명 한스-헤르만 호페
Hans-Hermann Hoppe
출생 1949년 9월 2일 ([age(1949-09-02)]세)
서독 니더작센 주 파이네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가족 굴친 임레 호페 (배우자)
학력 자를란트 대학교 (철학 / 학사)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대학원 (철학 / 석사)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대학원 (철학 / 박사)
종교 불가지론
직업 경제학자 ( 오스트리아학파, 아나코 캐피탈리즘), 정치철학자 ( 우파 자유지상주의, 고자유지상주의)
서명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1. 개요2. 생애3. 활동4. 여담

[clearfix]

1. 개요

독일, 미국의 오스트리아학파, 아나코 캐피탈리즘 경제학자, 고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자

2. 생애

1949년 9월 2일, 서독 니더작센 주의 파이네(Peine)에서 태어났다. 자를란트 대학교를 졸업했고,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에서 유명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지도를 받아 1974년 <행동과 인식>(Handeln und Erkennen)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좌파사상가인 하버마스의 지도를 받길 원했으나, 오이겐 뵘-바베르크(Eugen Böhm-Bawerk)의 마르크스주의 비판 등을 접하면서 좌파의 모순점을 깨달았고,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를 통해 자유시장경제의 지지자로 전향하였다. 하지만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역시 문제가 있음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달았고, 최종적으로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머리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의 엄격한 인간행동학(Praxeology)을 지지하는 아나코-자본주의자가 되었다.

박사 과정을 끝마치고 1976년부터 78년까지는 미시건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그 후 프랑크푸르트 대학교로 돌아와 사회학과 경제학을 주제로 1981년 독일의 교수자격논문시험인 하빌리타치온을 통과했다. 이처럼 여러 대학에서 철학·사회학·역사학·경제학을 폭 넓게 학습한 후 1982년부터 86년까지 독일국립장학재단의 최상위 장학 기금인 하이젠베르크 장학 기금의 수혜를 받는 프리바트도젠트(전임강사)로서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1984년부터 85년까지 1년간 볼로냐의 존스홉킨스 대학교 고등국제학 연구소의 방문 교수로 강의했다.

하이젠베르크 연구교수로서 봉급을 받던 그는 1985년에 라스바드가 재직하던 뉴욕의 브루클린 폴리테크닉에서 라스바드와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막 정착할 시기인 1985년부터 86년까지는 사업가 버튼 블루머트(Burton Blumert)가 이끄는 자유주의 연구 센터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 1986년에는 라스바드와 함께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 되었고, 1995년 라스바드가 영면한 이후에도 2008년에 은퇴할 때까지 재직했다.

터키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굴친 임레(Gulcin Imre)와 재혼하여 현재 이스탄불에서 거주하고 있는 호페는 UNLV 경제학과 명예교수이자, 미제스 연구소의 특별 선임 연구원이고, 정부 권력의 어용으로 전락한 몽펠르렝 협회를 대체할 진정한 자유주의 학술 단체인 재산과 자유 협회(The Property of Freedom Society)를 2005년 창립, 현재까지 회장으로서 2006년부터 터키의 보드룸(Bodrum)에서 매년 연례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자유주의 연구 저널>(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의 편집자로 재직하기도 했다.

3. 활동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논증윤리는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가 1988년에 처음 제시한 자유주의 권리이론의 근본적 방어이다. 수 많은 자유주의 학자가 논증윤리를 받아들였는데, 머리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 월터 블락(Walter Block),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 그리고 스테판 킨젤라(Stephan Kinsella) 등이 대표적이다.

논증윤리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와 칼-오토 아펠(Karl-Otto Apel)의 담론윤리(Discourse Ethics), 라스바드의 의무론적 윤리(Deontological Ethics)에 기초하고 있다. 호페는 언어적 논쟁은 비폭력적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고자 함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비침해성의 원칙(Non-Aggression Principles)' 만이 그 목표와 일치하는 윤리적 입장이므로, 유일하게 언어적 모순 없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페의 접근법은 담론행위(Act of Discourse)에 대한 인간행동학적 고찰이다.

구체적으로, 호페는 논쟁 과정(The Course of Argumentation)에서 그 누구도 자신이 스스로 '상정하고 있는' 그 어떤 전제도 일관되게, 논리성을 갖추면서 부정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논리적 오류 중 하나인 수행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을 범하는 것이고, 논리가 없으므로 설득력을 갖출 수 없다.

이를 통해서 자기소유권과 사유재산권 및 자연권의 옹호 등을 포함한 자유주의(Libertarianism)의 윤리적 입장이 곧 논리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절대적인 진리임을 증명하였다.
논증은 아무 맥락과 근거가 없는 명제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희소한 수단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행동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한 개인이 논증이라는 명제적 교환에 참여함으로써 입증하는 선호가 곧 사유재산임이 나타난다. 첫째로, 만약 우리가 자신의 물리적 신체를 독점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이미 전제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어떤 것도 제안할 수 없었을 것이며, 논쟁의 수단에 의해 제시된 어떤 명제에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논쟁은 서로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상호 배타적 통제를 인정하는 행위로, 이는 말해진 명제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의견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언제나 동의가 가능하다는 명제적 교환으로서의 논쟁의 특색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어떤 규범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소유권이 선험적으로 정당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정말로,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제안한다.”를 말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체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이 정당하다는 규범을 전제했어야만 했다. 자기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실행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그 순간, 그는 이미 반대하고자 했던 바로 그 규범, 자기소유권을 암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The Economics and Ethics of Private Property》, 한스-헤르만 호페

그 외에도 사회과학에서 경험주의 방법론의 부당함과,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의 이론적 파산을 인간행동학적으로 증명했고, 공공재와 치안서비스의 생산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포함한 자연적 질서로서 아나코-자본주의의 이성적 필연성을 가치중립적 기술을 통해 보여준 것이 주된 업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4.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