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라틴어: Quintus Aemilius Barbu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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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아버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17년 |
전임 |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
동기 |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
후임 |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
임기 | 기원전 311년 |
전임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
동기 |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
후임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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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집안인 아이밀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아버지는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테아나 시와 동맹을 체결했으며, 루카니아로 진군해 네우루스 시를 기습하여 약탈을 자행했다.기원전 311년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와 함께 2번째로 집정관을 맡았다.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설명이 다르다.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두 집정관은 아풀리아에서 삼니움군을 격파한 뒤 여러 도시를 공략했다고 한다. 반면 리비우스에 따르면, 브루투스는 삼니움을 상대했고 바르불라는 에트루리아를 상대했다. 그는 로마에서 북서쪽에서 30마일 남짓 떨어진 수트리움 시를 포위 공격하고 있던 에트루리아군에 접근했다.
로마군이 접근해오자, 에트루리아군 내부에서는 "그대로 포위하고 있자"는 주장과 "평원으로 나아가 응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는데, 결국 후자가 체택되었다. 바르불라가 수트리움 인근에 도착한 지 이틀 후, 양군이 평원에서 전투를 벌였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전투는 하루 종일 진행되었으며 양자의 사상자가 막대했다. 그러다가 로마군이 예비대를 투입하자 더 이상 전투할 여력이 없던 에트루리아군이 자기 진영으로 후퇴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군은 이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 포위를 뚫을 수 없었고, 에트루리아군은 이듬해까지 포위를 이어갔다.
바르불라는 기원전 310년 지휘권을 신임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에게 넘겨준 뒤 로마에 귀환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는 기원전 281년 집정관을 맡아 타라스(오늘날 타란토)와의 전쟁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