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리비우스 덴테르 라틴어: Marcus Livius D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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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리비우스(조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02년 |
전임 |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키우스 게누키우스 아벤티넨시스 |
동기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
후임 | 독재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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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플레브스 가문인 리비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기원전 348년 기병장관을 역임한 것으로 전해지는 가이우스 리비우스는 그의 조부로 추정된다. 기원전 302년 리비우스 씨족 최초로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두 집정관은 로마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고 독재관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아이퀴족을 물리친 뒤 로마로 돌아와서 살루스 신전을 봉헌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뮌처는 아이퀴족은 이미 기원전 304년에 로마군에 결정적으로 패배하여 굴복했기 때문에 이 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간주한다.기원전 299년 폰티펙스(Pontifex, 신관)에 선출되었으며, 기원전 295년 센티눔 전투에 집정관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와 동행했다. 데키우스는 전투가 불리해지자 그에게 스스로 희생함으로써 신이 로마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를 서원하는 데보티오(Devotio)를 행하겠다고 선포한 뒤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보며 서원한 후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집정관이 데보티오를 행했다고 알리고, 직접 군대를 수습해 적에 맞서 싸워 승리에 일조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기원전 282년 법무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