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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07:07:03

제프 블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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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p Blatter
파일:gettyimages-671135702.jpg
본명 요제프 블라터 (Joseph Blatter)[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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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6년 3월 10일 ([age(1936-03-10)]세)
스위스 발레 주 피스프
학력 파일:로잔 대학교 아이콘.png 로잔 대학교 (경영학 / 학사) (1959년)
재임 제8대 FIFA 회장
1998년 6월 8일 2016년 2월 26일
배우자 그라치엘라 비안카 (2002년 – 2004년)
자녀 코리네 블라터
서명 파일:제프 블라터 서명.svg

1. 개요2. 과거 경력3. FIFA 회장
3.1. 집권 초기3.2. 본격적인 독재 체제의 구축3.3. 5선
4. 비판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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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 출신의 축구행정가이자 제8대 FIFA 회장.

그에 대한 평가는 유능하고 연륜있지만 간교하고 교활하며 타락한 정치인라는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인물로 뛰어난 정치력과 행정력으로 아벨란제의 뒤를 이어 축구 세계화와 피파의 상업적 성공을 이끌었지만 98년 당선될 때부터 뇌물을 썼다는 의혹을 받은 데다가, 피파 회장이 된 뒤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다는 각계의 비난을 계속 받고있으며 내부자금 유용혐의를 받고있는 부패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월드컵에서 횡행하는 유럽 텃세에도 관련이 있다.

2. 과거 경력

스위스 로잔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스위스 아이스하키연맹 사무국장, 시계업체 론진의 스포츠시계 홍보이사 등을 거쳐 1975년부터 FIFA에서 근무했다. 전임 사무총장 헬무트 케저[2]가 피파 내에서 내처지자 그 후임으로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블라터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시기에 피파는 월드컵 전세계 컬러TV중계 및 중계권 판매, 월드컵 참가국 확대, 대형 스폰서십 등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리와 부정, 뇌물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 아무튼 이러한 치적들을 내세우며 1994년에는 자신을 중용한 주앙 아벨란제 회장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조추첨식 당시 아벨란제가 추첨자 명단에서 축구황제 펠레를 독단적으로 제외시켜 버린 사건으로 까이는 틈을 타 아벨란제의 부패를 공격하며 차기 회장 선거에 반대후보로 입후보하겠다고 공언한 것. 그러나 노회한 장기집권자 아벨란제는 이 심복의 하극상을 간단하게 진압했고, 모종의 합의에 의해 블라터는 사무총장직을 4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3. FIFA 회장

1998년 전임 주앙 아벨란제 회장에 이어 제 8대 피파 회장에 당선되었고, 2002년과 2007년, 2011년 그리고 2015년까지(...) 각각 연임되면서 17년간 피파 회장을 장기집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6월 3일, 드디어 사임했다.

3.1. 집권 초기

아벨란제의 장기집권과 각종 부패, 비리, 뒷거래의 난맥상에 질린 국제축구계는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었고 유럽 축구 연맹 회장 렌나르트 요한손이 피파의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1998년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축구 연맹 회장인 이사 하야투와 피파 부회장 정몽준 등도 요한손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아벨란제와 블라터에겐 큰 위협이 되었다. 이미 요한손은 2002 월드컵 일본 단독 개최를 고집하는 아벨란제에 맞서 한국/일본 공동개최 성사에 힘을 보탰고, 아벨란제가 나이지리아 독재자 아바차와의 밀약을 통해 독단적으로 FIFA U-20 월드컵 개최권을 준 것을 문제삼고 나서서 표결을 거쳐 개최지를 말레이시아로 변경시키는 등 여러 차례 아벨란제에 반기를 든 바 있었다.

블라터는 이에 맞서 돈봉투 뿌리기로 대응했다. 주로 국제축구계에서는 힘이 없지만 당당히 피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축구 약체국가들의 대표들이 표적이 되었다. CAF 회장 하야투가 요한손을 공개 지지하였음에도 많은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블라터에게 표를 팔았다. 뿐만 아니라 대리 투표[3], 요한손 지지 회원국에 대한 투표방해 등 노골적인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 결국 블라터는 111표 대 80표로 요한손을 누르고 피파 회장에 당선되었다.[4]

회장이 된 블라터는 권력 공고화에 나서는데 자신의 비선조직 운영 및 외부 이권거래를 문제삼고 나선 사무총장 미셸 젠 루피넨[5]을 숙청했다. 2002년 5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피파 총회에서는 이사 하야투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선거에서는 이렇다 할 반대세력의 움직임도 없이 단독 입후보했기에 당연히 3선 성공에 성공했다.

하지만 블라터 집권 초기가 마냥 순탄하지만도 않았던 것이 2006 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블라터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잉글랜드의 유치경쟁 과정에서 모로코와 잉글랜드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독일과 남아공의 최종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승부가 매우 팽팽해서 24표를 양 국이 딱 12표씩 갈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최종투표에서 동률이 나올 경우 피파 규정은 회장이 개최국을 지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블라터는 남아공을 점찍고 있었다. 그러나 당초 남아공 지지표로 간주되었던 찰스 뎀시 오세아니아축구연맹 회장이 회장 개인의사에 의해 월드컵 개최국이 정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6][7] 기권표를 던졌고 결국 12표 대 11표로 독일이 승리한 것. 뎀시는 사건 일주일 후 피파 및 오세아니아축구연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가히 작은 반란이라 부를만한 사건.

그리고 스위스 검찰에 의해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피파 사무실이 탈탈 털리기도 했다. 2006년 공식 스폰서 마스타카드를 속이고 비자카드와 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마스타카드로부터 소송당해 패소하기도 했고, 재판 과정에서 피파가 행한 온갖 속임수와 부정들이 공개되며 피파의 국제적 위신을 추락시켰다.

3.2. 본격적인 독재 체제의 구축

장기집권을 위해 FIFA의 조례 개정을 획책하여, 4선 연임이 가능하게 조례를 개정했다. 2011년 5월 또 재선되어 4선 회장이 되면 2015년까지 17년 장기집권이 가능해진다. 이때 조선일보에선 블라터의 재선에 정몽준이 필요하다며 정몽준의 부회장 재선 걱정마라고 보도했는데,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블라터가 정몽준 죽이기를 시도한 게 어제 오늘이 아니다. FIFA 내 올림픽 축구 담당도 정몽준 담당인데 올림픽 축구에서 와일드카드 제한에 나이 제한을 계속 들먹였고, 블라터 사임 이후로도 블라터 지지파들이 정몽준에게 6년 자격정지를 내리며 차기 회장선거 출마도 막아버리는 등 정몽준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

2009년 있었던 AFC 회장 선거에서는 자신의 오랜 지기였던 함맘 AFC 회장을 팽하려고까지 했다. 바레인 축구협회 회장 알 칼리파를 함맘의 반대 후보로 출마시킨 것. 알 칼리파가 그동안 AFC 내에서 별 세력이랄 게 없어서 무난하게 승리할 줄 알았던 함맘은 의외로 많은 AFC 회원국들이 알 칼리파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선거전을 치르며 깨닫게 되고 그 배후에 블라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AFC 회장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이 일은 함맘이 블라터에 반기를 들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사전배경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함맘이 먼저 일방적으로 하극상을 일으켰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함맘은 2010년 회장 임기를 제한하는 규정을 제정하는 안을 피파 집행위원회에 상정하고, 2011년에는 피파 부회장 선거에서 정몽준을 지지하고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히는 등 본격적으로 반블라터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블라터는 2011년 1월 6일 피파 부회장 선거에서 요르단의 왕자인 알리 빈 알 후세인을 지지하면서 정몽준의 부회장 5선도 막아버렸고 이로서 정몽준마저 10여년 간 반블라터 노선을 탄 끝에 마침내 패배하게 된다. 이제 피파 안에서 그를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축출되었다. 더불어 그동안 올림픽 와일드카드 폐지 및 참가 나이 제한 21살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올림픽 축구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3월 2일 정몽준에게 명예부회장 자리를 내주었는데 아무런 실권도 없는 그냥 명예직일뿐이다. 물론 블라터 홀로 이거나 먹어라 한 게 아닌 집행위원 만장일치로 명예부회장직을 준 것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함맘이 피파 회장에 도전하겠다고 뜻을 밝혔지만 불가능해보인다. 워낙에 블라터 지지파들이 피파를 장악했고 반블라터파들은 씨가 마른 상황에서 함맘 AFC 회장으로는 아무리 정몽준과 손을 잡았다 해도 어려워 보인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갑자기 함맘이 후보에서 자진사퇴하면서 2011년 6월 단독출마, 4선에 연임에 느긋하게 성공해 2015년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두 번의 선거에서 연속으로 단독입후보 당선. 갑작스러운 함맘의 후보 사퇴를 두고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권을 빌미로 협박했다는 소문까지 자자했다. 그리고 아예 함맘을 피파에서 영구제명시키고 AFC 회장 자리에는 앞서 언급된 바레인의 알 칼리파를 앉혔다. 제대로 토사구팽을 한 셈. 더불어 한 때 자신을 열렬하게 지지하던 북중미축구연맹회장 잭 워너[8]도 가차없이 함맘과 같은 시기에 토사구팽했다. 그리고 잭 워너는 블라터가 사임하자 신나게 숨겨왔던 비리를 털어놓으며 보복 중이다.

3.3. 5선

한국 시간으로 2014년 2월 8일 스위스 공영 라디오에서 "집행위원들이 회장선거에 출마하라고 요청한다면 거절하진 않을 것"이라고 5선 도전의 뉘앙스를 풍기는 인터뷰를 했다. #

2022 카타르 월드컵 선정 문제로 잡음을 겪고 있는데 뜬금없이 프란츠 베켄바워를 뇌물혐의로 기소했다. 베켄바워는 지속적으로 카타르 월드컵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인사인데다 정 개최해야한다면 겨울에 해야한다고 밀고 있는 축구인이라 뜬금포였다.[9] 베켄바워는 조사에 불응했고 블라터는 90일 자격정지 징계를 때렸지만, 베켄바워가 조사에 응하면서 결국 무혐의로 끝났다.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5선에 도전하고 있는 지금, 유력한 대항마인 베켄바워의 명예를 실추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정치적 행보라고 보여진다.

가르시아 보고서 공개 논란[10]으로 블라터가 도덕적, 명분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미하엘 판 프라흐 네덜란드 축구협회장 및 UEFA 집행위원도 블라터의 대항마로 거론되나 국제축구계에 명성과 인맥이 베켄바워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이 걸림돌. 관련 빌트지 보도

이런 와중에 블라터의 지원으로 정몽준을 몰아내고 부회장 자리에 올랐던 요르단 왕자 알리 빈 알 후세인이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블라터 입장에서는 호랑이 새끼를 키워준 셈. 한때 블라터의 오랜 심복이었다가 갈등을 빚고 피파를 떠난 제롬 샹파뉴 전 피파 국제국장 역시 이미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바 있어 블라터 입장에서는 이전처럼 무난무난한 승리는 기대하기 힘들 듯 하다.

거기에 루이스 피구까지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지 시간으로 2015년 5월 27일에 스위스가 갑작스럽게 부패 혐의로 FIFA 임원 6명을 체포하여 미국으로 압송하였다. 체포된 인원은 FIFA 집행위원회의 멤버들로 케이만 군도의 제프리 웹 및 우루과이의 에우헤니오 피게레도 FIFA 집행위원회 부회장 등의 친 블라터 파벌들. 29일에 회장 선거 및 총회를 앞두고 있는 블라터로서는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미국이 카타르 월드컵 개최에 관련된 부정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는 것이 조용히 알려져 왔다. 뇌물이 오가는 과정에서 미국 내에 존재하는 계좌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관련자 체포에 나설 수 있었는데, 아예 미국에서 블라터를 단단히 손봐주려고 하는 모양이다.

2015년 5월 29일(현지시간)에 있은 피파 회장 투표에서 1차 투표 133표 득표(알리 왕자 73표 득표)로 앞서다가 알리 왕자의 후보 사퇴로 FIFA 회장 5선에 성공했다. 80에 이른 나이를 생각하면 북한의 어느 권력자처럼 이대로 죽을 때까지 해먹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당초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야권단일후보 알리 왕자가 예상외로 많은 득표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블라터 독주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진행될 FIFA 부패혐의 수사결과에 따라 임기종료에 앞서 독재체제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1주일이 안 된 2015년 6월 3일, 갑작스레 FIFA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11] 사임 직전까지 5선에 성공하면서 미 법무부의 수사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던 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수사가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에 잽싸게 사임함으로써 여자 월드컵 등의 행사로 출국할 일을 사전에 방지하여 수하의 집행위원들처럼 갑자기 체포당할 일을 최대한 막고, 자신의 반대파가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시간도 조금 더 벌면서 그간의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갈 구석을 만들 계산을 했다는 관측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갑작스럽게 사임을 발표하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내사 위원회까지 구축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간 함께 비리를 저질러온 수하 및 동료들에게 통수를 치고 혼자 도망나왔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데, 아무래도 미국 법무부에게 뭔가 걸려도 단단히 걸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집행위원들도 스위스 안에서 빼도박도 못하게 철창 신세를 지게 된 판에 과연 상황이 블라터의 계산대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12] 한편, 사임 바로 전날 그분께서 블라터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그분의 권능이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6월 26일, 스위스 신문 '블릭'을 통해 "난 사임한 것이 아니다. 임시 총회에서 있었던 선거로부터 결정된 내 회장직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

그러나 2016년 2월 27일자로 UEFA 사무총장이던 잔니 인판티노가 제 9대 FIFA 회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회장이던 시절 받은 혜택을 박탈당했다.

4.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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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4.1. 부패 독재

그는 나에게 스포츠 정치의 섬세함을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었다.
제프 블라터, 호르스트 다슬러에 대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더러운 자식. 내가 모든 걸 가르쳐주었는데도 감사하단 말 한 마디가 없어?
호르스트 다슬러 前 아디다스 회장, 제프 블라터에 대해.
아디다스 로비, 뒷거래 등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 마케팅 관련 돈벌이가 될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손을 뻗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장 블라터의 전임자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에 오른 과정 역시 아디다스의 창업주 아돌프 다슬러의 개입이 있었다. 블라터 역시 론진의 스포츠 시계 홍보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아돌프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맥으로 FIFA에 심어져 철저히 상업적으로 아디다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때 아디다스 임원이었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 오른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블라터는 사무총장 및 회장으로 FIFA에 몸담은 기간 내내 호르스트 다슬러가 세운 국제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ISL에 독점적으로 마케팅 권리를 염가에 넘겼고, 호르스트 다슬러는 이를 매우 비싸게 되파는 형식으로 엄청난 돈을 챙겼다. FIFA뿐만 아니라 IOC도 꾸준히 이런 거래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ISL은 2001년 공식적으로 파산하기 전까지 국제 스포츠 마케팅 업계에서 매우 악명이 높았다. 정몽준이 반블라터 진영의 유력 인사로 떠오르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바로 FIFA 월드컵 중계권이 턱없이 낮은 가격에 넘겨지고 있다며 특혜 문제를 제기하여 ISL의 몰락에 일조한 일이었다.[13] 여담으로 블라터는 ISL이 파산하자 FIFA에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혔다며 ISL을 고소했다(...).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한꺼번에 2010년에 몰아서 해버린 것도 돈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06 월드컵 개최국은 블라터가 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니라 독일로 돌아갔고, 2014 월드컵은 너무나도 뻔하게 브라질이 유치했다 보니 생각보다 쩐을 못 챙겼고 그래서 이후 두 차례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한 번에 해서 쩐을 충당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2011년에는 월드컵 TV 중계권을 자신의 조카 필리프 블라터가 CEO로 있는 회사에 넘기면서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 이 Infront Sports & Media라는 회사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레전드 미드필더 출신 귄터 네처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압둘라 카멜의 합작으로 세운 회사인데, 압둘라 카멜은 블라터의 선거 운동 비용을 지원한 대가로 아랍 지역에서 행사 가능한 FIFA의 각종 이권을 따냈지만 하마스 알카에다에 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장기 독재 역시 블라터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2015년까지 어느새 17년이나 권좌를 지키고 있다. 이는 '태양왕'이란 별명까지 얻은 아벨란제 다음으로 장기 집권이며, FIFA 회장을 이 둘보다 오래 역임한 사람은 역대 가장 존경받는 FIFA 회장이자 월드컵의 창시자인 쥘 리메(33년) 한 명밖에 없다. 그냥 정상적으로 오래 재임한 것도 아니고 온갖 편법과 위법, 민주적 절차 무시, 부정선거 등을 통해 집권 중이라 문제가 되는 것이다. FIFA 직원들 사이에서는 블라터가 자신들의 대화 및 전화 통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은 공공연한 사실일 정도.

심지어 블라터 본인부터가 각국의 독재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 사니 카다피[14]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블라터를 지지하도록 선거 유세를 했었고, 나이지리아의 사니 아바차, 튀니지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등과는 공공연한 친분을 과시했었다.

2015년 7월 20일(한국 시간)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있었던 집행위원회에서 차기 회장 선거를 내년 2월 26일로 확정지은 후 퇴장하고 있던 블라터에게 영국 코미디언 사이먼 브로드킨[15]이 단상으로 난입해 가짜 미화 지폐 뭉치를 블라터에게 던지며 "이 돈이면 2026년 북한에서 월드컵 개최할 수 있나!?"라고 외쳤다고 한다. # 제대로 굴욕당한 셈. 이런 수난(블라터 입장에서는)을 당한 트라우마 탓인지 이제부터는 아예 히키코모리모드로 들어간 것 같다는 소식이다. #

한국 시간으로 9월 23일, 브라질의 축구선수 출신 상원의원 호마리우는 이탈리아의 '가제타델로스포르트'를 통해 "FIFA는 썩었다, 기소된 무리는 앞으로 늘어날 것이고 블라터 역시 그 중 한 명이면 좋겠다."이라고 말했다. 호마리우: "블라터 체포되길 매일 기도한다."

2015년 12월 21일, FIFA 윤리위원회는 블라터에게 8년의 자격 정지와 5만 스위스 프랑(약 5천 916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블라터는 이에 대해 항소 및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으나 결국 8년에서 2년이 줄어든 6년 자격 정지가 최종 확정되었다.

2010년에 FIFA 기금에서 100만 달러(약 12억 원)가 부정하게 관리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

2022년에 미셸 플라티니 유럽 축구 연맹(UEFA) 회장과 함께 무죄를 선고받았다. #

4.2. 인종주의자?

인종주의자라는 의혹도 받고 있으며, 유럽만 중요시하고 아프리카 아시아 등을 무시한다는 소문도 있다. 98년 회장 선거 때 정몽준 FIFA 부회장은 상기한 제프 블라터의 유럽중심 사고방식을 우려하여 레나르트 요한손을 지지했지만 결국은 블라터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회장이 되었기에, 블라터와 정몽준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나쁜 감정을 가져 계속 월드컵에서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정몽준은 FIFA 부회장에서 물러나게 되며 국제 축구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극도로 줄게 된다.

2001년에 개고기 문제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한 적이 있다. 물론 명분은 동물보호지만 사실상 정몽준에 대한 견제에 가까우며 그게 아니더라도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한국 문화에 대해 다분히 경멸과 편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FIFA의 은밀한 거래라는 책[16]에서는 이에 대해 독재자와 결탁하던 FIFA가 개고기를 먹는 것을 도덕성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비꼬았다. 이어서 2002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는 잉글랜드 대표팀과 리버풀 FC 소속의 마이클 오언, 에밀 헤스키, 제이미 레드냅과 프랑스 대표팀과 첼시 FC 소속의 에마뉘엘 프티가 한국의 개고기에 반대하고 압력을 넣기 위한 서명에 동참한 바 있는데, 이 선수들의 행동에 FIFA의 수장인 블래터가 어떻게든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미묘하고 석연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웃긴 건 이들은 역시 월드컵 공동개최국이었던 일본 고래사냥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 그리고 개고기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스위스에서는 지금도 개고기를 먹는 지역이 있다(...).

참고로 이 때 파라과이 대표팀의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는 유럽이 아니라 남미 국가 출신이라서 입장이 다른지 몰라도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 한국의 존중해야 할 문화라면서 지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영국 출신 선수들의 개고기 반대에 대해서는 왜 영국에서는 여우사냥을 그만두지 않냐고 비꼬았다.[17]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행사에서, 행사 노래를 부른 흑인 여성가수와 악수를 한 뒤 얼마 있다 악수한 손을 옷에다 닦는 모습이 그대로 TV로 전세계에 방송되어, 인종주의자라는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 타계를 애도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만 만델라는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고,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이끌어내며 남아공이 월드컵, 올림픽과 같은 국제 무대에 출전할 수 있게 되는 등 남아공의 스포츠 발전에도 혁혁한 공로가 있기에, FIFA의 회장으로써 공식적인 애도의 한 마디조차 안 한다면 매우 큰 문제가 된다. 또한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추구하는 아베 신조와 마찬가지로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2011년 11월 17일 < CNN월드 스포츠 > 인터뷰에서 잉글랜드에서 논란이 되는 인종차별 문제를 두고 "난 인종 차별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 선수가 무언가 확실하지 않은 말이나 제스처를 취했고, 다른 선수가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경기를 한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나면 악수를 한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세계적으로 까이고 있다.

잉글랜드의 흑인 및 남미계 선수들이 속사포 같이 반발하고 트위터에서 그를 비난하자 부랴부랴 변명을 하고 있다.

다만, 이런 인종주의적 행보와는 또 다르게 돈냄새만은 확실하게 맡는 모양인지, 최근 중국, 인도, 남아공, 중동 등등 떠오르는 신흥 경제권들의 축구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꽤나 하고 있으며, 월드컵 대회 유치나 대륙별 월드컵 출전 티켓 배정도 이쪽 국가들을 신경쓰고 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는 답없는 경기력을 보여줬음에도 중국, 인도 등의 시장을 공략하는 등 아시아 지역에 중계권을 판매하기 위해 월드컵 티켓 축소를 고려하지 않는다거나,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의혹에 대해서 유럽 언론이 유럽에서 개최되지 않는 대회라 인종차별에 기반해 비난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한 것으로 보아 돈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도 보여준다.

다만 이것 가지고 블라터만 뭐라고 할 수도 없는데 아시아 시장이 그만큼 엄청난 돈줄이라는 현실도 있다. 애초에 아시아의 인구 1억 넘는 국가들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일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축구의 인기가 대체로 높으며 인구 1억을 넘지 않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축구가 인기가 많은 국가들이 많다. 실제로 피파가 월드컵 관련으로 벌어들이는 수익 절반이 아시아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이다. 이러니 아시아 시장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만 해도 필사적으로 리그 1경기를 아시아에서 치르겠다고 몇년이나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도 아시아 쪽 방영시간에 맞도록 경기시간을 조절하는 통에 자국에서 엄청난 비난을 당해야 했고 유럽 여러 리그팀들이 프리시즌에 아랍에서 동남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친선경기를 가지는 것도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블라터 후임인 인판티노 회장도 질세라 아시아 진출권을 더 늘린다고 나서고 있는 걸 봐도 다를 게 없다.

한편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박주영을 상대로 할리우드 액션을 펼쳐 경고를 먹인 자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미첼 모르가넬라가 한국인들에게 항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모두 다운 증후군 걸린 정신병자 민족인 한국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다 망언 SNS에 적자 직접 나서서 모르가넬라를 국가대표팀에서 영구 퇴출시키기도 했다. 이후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이 모르가넬라를 다시 한 번 뽑아보고자 했으나 반대 여론이 너무 거세 무산되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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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블라터는 독일권 스위스 출신이라 정식 이름은 요제프 블라터가 된다. [2] 1960년부터 21년 동안 피파 사무총장직을 맡아 온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 아디다스 회장 호르스트 다슬러와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 간의 은밀한 유착관계와 공금유용을 문제삼다가 아벨란제에 의해 숙청당했다. [3] 요한손을 지지하던 아이티축구협회 회장이 협회 재정 문제로 피파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자 블라터 지지파인 잭 워너 CONCACAF 회장이 자신의 비서를 대신 참석시켜 블라터에게 투표하라고 시켰다. 이건 뭐... [4] 1협회 1표라는 피파의 선거 규정은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금권선거의 소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끔 피파 집행부를 보면 통가, 파푸아뉴기니, 케이먼제도 같은 별볼일 없는 축구실력의 국가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곤 하는데 이 경우 거의 십중팔구는 어떤 은밀한 거래의 대가라고 보면 된다. [5] BEXCO에서 열렸던 2002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사회자로 나서 유창한 언변으로 식을 진행했던 그 분이다. [6] 블라터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1998년 선거에서 자신을 찍어주면 잉글랜드의 월드컵 개최를 지지하기로 해 놓고 통수를 때린 데 대해 같은 영연방국으로서 분개한 이유도 있다. 뎀시는 글래스고 태생의 뉴질랜드인이기 때문. [7] 사실 잉글랜드도 독일과 유로 96-2006 월드컵을 서로 밀어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엄격히 따지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2018 2022 FIFA 월드컵 유치전에서는 정몽준에게 또 통수를 얻어맞는다. [8]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전 FIFA 부회장을 지냈던 인물. 1990년대만 해도 2002 한일 월드컵 개최 경쟁 당시 한국을 지지하여 지한파로 국내 언론에서 호평하던 인물이었다. 허나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대한축구협회와 FIFA가 보낸 구호금을 빼돌린 사실도 드러났다. # 결국 이 쪽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지지를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로 2015년 9월 FIFA에서 영구 퇴출되었다. [9] 사실 베켄바워 이외에도 전세계적으로 대다수 축구인들이 카타르 월드컵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블라터와 가깝다고 평가되는 미셸 플라티니 유럽연맹 회장도 겨울(1~2월)개최를 지지하고 있다. [10]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행해진 부정부패에 대해 FIFA 윤리위원회 조사관 마이클 가르시아가 조사결과를 350쪽 분량으로 작성하여 제출한 보고서. FIFA는 이를 42쪽 분량으로 축소한 요약본만을 공개했고, 그마저도 일부 왜곡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 가르시아 조사관은 이에 반발하며 FIFA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이고, 이 보고서 원본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UEFA 내 반블라터 세력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11] 다만 새 회장이 뽑힐 때까지는 회장직을 유지한다. [12] 당장 그의 심복이라고 알려진 제롬 필케 전 FIFA 사무총장까지 기소된 상황이고, 그의 FIFA 회장 선출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도 역시 기소된 상황이라 사면초가라 볼 수 있다. [13] ISL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타를 날린 것은 젠 루피넨 전 사무총장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FIFA에서 숙청당해야 했지만. [14] 선수 출신이다. 아버지 빽으로 이탈리아 클럽 AC 페루자 칼초에 입단했던 적이 있다. [15] 예전에 맨체스터 시티 FC의 훈련장에 잠입해 선수인 척하고 잉글랜드 대표팀 비행기에 껴 선수인 척한 걸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열린 칸예 웨스트의 공연 중 무대에 난입한 사람도 이 사람이다. [16] FIFA의 비리에 대해 까발리는 책인데 사실상 블라터의 부정부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반블래터파에 속한 정몽준에 대해서는 잘 생기고 똑똑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17] 사실 칠라베르트의 항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칠라베르트는 호베르투 카를로스에게 침을 뱉는 등 사고를 치고 다녔지만(이 부분은 카를로스가 칠라베르트의 성기를 툭툭 치면서 인디오라고 놀리는 인종차별스러운 발언을 해서 자초한 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가난한 이와 어린이들이 겪는 사회 문제와 그걸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관심이 많고 축구 대회보다는 학교와 병원이 경제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운 조국에게 더 중요하다며 1999년 자국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 출전 거부까지 한 사람이다. [18] 이 무렵 스위스전 오심을 비판하는 합성물에 엘리손도랑 같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예시1, 예시2 [19] 이런 과거 때문인지 훗날 블라터 사임 이후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도 북아일랜드가 오심 등 석연찮은 판정으로 인해 스위스에게 월드컵 본선 티켓을 내주는 일이 생겼을 때에도 국내 축구팬들은 인판티노의 모국인 스위스를 본선에 올리기 위해 편파 판정을 일삼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 스위스와 터키의 예선 플레이오프 전때도 석연찮은 판정 논란이 있었고. [20]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피파에 엄청났다. [21] 그럼 맨유가 16강에 오를 수도 있고 바젤이 아예 탈락이라서 조 꼴찌를 한 오첼룰 갈라치가 대신 유로파리그에 나가는 일이 벌어진다. [22] 애시당초 정식 초청도 아니었다. 영화제 기간동안 야외 상영할 때 상영되었던 것.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 퍼레이드 생각하면 된다. [23] 호주는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오심부터 피파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악감정이 폭발하게 된 건 2011년에 월드컵 유치 비딩을 위해 피파에 쓴 돈이 4000만불이었는데 비해 카타르는 100만불을 쓰고는 유치에 성공해서(...)물론 카타르가 뒷돈을 훨씬 뿌렸을 것이지만, 더구나 당시 호주 축협이 쓴 돈이 국가예산을 사용한 것이 밝혀지면서 프랭크 로이는 사퇴종용까지 받았었다. 호주는 이전부터 월드컵 유치에 대한 의지를 보여왔는데 블라터가 계속 로이에게 '다음에 도전하셈, 다음 번엔 유치국 중 호주만한 나라없음'이란 식의 사탕발림으로 미루게 했는데 광탈한지라, 피파는 그야말로 호주에게 먹튀 겸 빅엿을 선사한 셈. 그래서 블라터가 조사받을 때 로이는 앞장서서 신속한 조사를 촉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