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7:24

정무(서진)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鄭袤
189년 ~ 273년
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서진의 인물. 자는 임숙(林叔). 정태의 작은 아들, 정묵의 아버지. 아내 조씨.

2. 생애

사례 형양군 개봉현 사람으로 정태가 41세의 나이로 죽자 정무는 작은 아버지 정혼을 따라 강동으로 피난을 갔으며, 정태와 사이가 좋던 화흠, 순유는 정무를 보고 "정공업은 죽지 않았구나!"라고 탄식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정무는 화흠에게 의지했고 화흠이 정태와 사이가 좋았는데, 화흠이 정무를 자식처럼 귀여워해줬고 정무는 17세 때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그 성격은 청정했다.

처음에는 서간과 함께 조식의 문학이 되었다가 사례공조종사로 옮겼으며, 정무는 왕랑에게 허윤, 노지, 왕기 등을 천거했고 이 때 천거한 사람들은 모두 그 이름이 무거워졌다. 정무는 임람이 위풍과 친한 것을 알고 임람에게 위풍은 간사한 영웅이라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충고하였으며 그 말대로 위풍은 반란을 일으키려다가 실패하고 죽었다.(위풍의 난)

상서랑, 여양령 등을 역임했고 여양령일 때 뛰어난 정치를 했으며, 이후 상서우승, 제음 태수, 대장군 종사중랑, 산기상시 등을 차례로 역임하다가 광평태수의 자리가 비자 광평태수가 되어 뛰어난 정치를 해서 그가 떠날 때 백성들이 울 정도였고 광평태수에서 시중, 소부 등을 역임했다.

조모가 즉위하자 왕숙과 함께 예를 갖추어 맞이했는데, 이로 인해 광창정후에 봉해졌으며, 광록훈, 영 종정에 임명되었다.

255년 관구검이 봉기하자( 관구검의 난) 사마사가 스스로 출진했으며, 백관들이 그를 전송했지만 정무는 질병에 걸렸기 때문에 전송하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사마사가 원망하자 왕숙이 정무에게 이를 알려줬다. 정무는 스스로 가마를 내서 사마사를 쫓아가 겨우 따라오자 사마사는 웃으면서 처음부터 올 줄 알았다고 말했으며, 수레에 같은 자리에 태웠다.

사마사가 관구검을 물리칠 계책을 묻자 정무는
예전에 관구검과 함께 상서랑을 지내 그에 대해서 특히 잘 아는데 관구검은 모책을 좋아하나 사정에 통달하지 못하고 전에 유주에서 훈공을 세운 이래 그가 바라는 바가 무한하며 문흠은 용맹하나 꾀가 없습니다. 이제 대군이 출기불의해 강회의 병졸들이 날카로우나 굳지는 못하니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여 그들의 기세를 꺾는 것이 아부가 쓴 것과 같은 장책입니다.
사마사가 그 계책을 택하니 과연 관구검의 군사를 물리치게 된다.

이후 정무는 태상이 되었고 조모가 학문을 좋아해 동당에서 강론할 때 유의, 유식, 정함, 유준 등을 천거했으며, 260년 조환이 즉위했다. 조환을 즉위시킨 공이 있다고 해서 안성정후에 봉해졌고 식읍 1000호를 받았으며. 그 해에 질병으로 실명했고 자주 은퇴를 청했지만 허용되지 않다가 5등작이 신설되었을 때 밀릉백에 봉해졌다.

사마염이 진왕이 되자 작위로 높아졌으며, 10여 년간 병으로 나서고 있지 않을 때도 현명한 사람이나 보좌할 만한 사람을 추천했는데, 태시 연간에 사공으로 임명되었지만 여러 차례 사양하다가 은퇴를 허락받았다. 정무는 의동삼사에 임명받고 사인, 관기와 함께 침상의 휘장, 대자리, 50만 전 등을 하사받았으며, 273년에 사망해 비기, 조복 한 벌, 옷 한 벌, 금 30만, 견포 100개가 주어져 그의 장례에 사용되었고 시호는 원(元)이 주어졌다.

3. 매체에서의 등장

삼국전투기에서는 둥근 머리에 굵은 눈썹을 가진 인물로 등장. 기반 패러디는 불명. 낙가 전투 (1)에서 첫 등장을 한다. 낙가 전투 (2)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위의 사례가 이유인지 뛰어난 정치가라고 타이틀 컷에 소개된다.

낙가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사마사가 관구검, 문흠의 반란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정무에게 전략을 묻자 관구검, 문흠과는 같이 일한 적이 있어 나름 그들을 안다고 생각한다 말한 뒤 관구검은 머리가 좋지만 상황을 읽는 눈이 떨어지며 문흠은 용맹하지만 머리가 모자라니 둘 다 가만히 기다리면 망할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해자를 파고 성을 쌓아 상대의 예기가 꺾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진언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88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88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