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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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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핵실험2.2. 핵을 가지게 될 수 있었던 이유2.3. 대한민국과의 비교
3. 관련 문서

1. 개요

인도는 1962년부터 핵개발을 하기 시작하여 1998년 5월 11일 마지막 핵실험까지 36년을 핵에 매달렸다. 현재 120기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2. 역사

1947년 인도가 독립할 때만 해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노선에 따라 절대로 핵을 가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자와할랄 네루 총리는 1946년 연설에서 인도가 위협당하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히며 핵개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1962년 중인전쟁에서 인도가 중국에 패배하면서 인도 정부는 핵을 가져야만 한다고 결심한다. 대학들에 원자력학과를 만들었고 학생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 원자력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하였다. 겉으로는 원자력 발전소를 만든다고 하였지만 실제는 핵무기를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

1960년대는 핵만능주의의 영향으로 선진국들이 핵기술을 수출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인도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무기화에 전용할 수 있는 관대한 조건으로 기술 수입을 성사시켰다.

2.1. 핵실험

1974년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에 인도 라자스탄에서 첫 핵실험을 하였다. 작전의 이름은 미소 짓는 부처(smiling Buddha)였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 총리인 인디라 간디는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핵무기임은 분명했다.

이후 24년동안 핵실험을 하지도, 본격적으로 무기화하지도 않은, 전략적으로 모호한 상태로 있었다.

1998년 5월 11일 다시 라자스탄에서 핵실험을 하였다. 이 때의 책임자가 뒷날 인도 대통령이 되는 압둘 칼람 박사이다. 파키스탄의 핵실험이 성공에 가까워지자 인도는 국제 사회의 비판을 감수하고 기존의 전략적 모호함 전략을 파기했다.

2.2. 핵을 가지게 될 수 있었던 이유

인도는 자국의 전략적 중요성과 자체적인 능력으로 북한과 이란보다 약한 제재를 받았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중소관계가 악화되자 소련은 중국 견제를 위해 우호국인 인도의 핵개발을 묵인했다. 미국은 제 3세계의 수장격인 인도와의 관계, 자국에 위협을 주지 않는 국가라는 것을 고려해 핵연료, 반응로나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원자력 기술 수출만 제한받는 약한 제재만 부과했다. 이마저도 인도의 자체적인 기술력 개발로 유명무실한 제재가 되고 말았다. 파키스탄에서 기술을 획득한 북한이나 이란과는 다른 자체 기술력 개발은 핵확산 우려가 상대적으로 낮아 제재의 명분도 적었다. 1998년 핵실험으로 미국과 일본에게서 다시 제재를 받았지만, 21세기 들어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와 거대한 내수 시장 진출을 위해서 미국은 제재를 금방 해제시키고 비공식적으로 핵보유를 인정하고 있다. 파키스탄도 테러와의 전쟁에서 협력의 대가로 제재를 해제받았다.

하지만 러시아나 중국, 영국, 프랑스같이 완전히 자유롭게 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정도 미국의 감시를 받고 있으며 2006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IAEA의 사찰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2.3. 대한민국과의 비교

북한 핵문제가 점점 심해지자 한국에서도 핵무기를 가지자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 사람들이 예로 든게 인도와 이스라엘이었는데 인도는 한국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 핵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우선 미국 본토가 위협을 받기 때문이고, 또한 한국, 일본, 대만이 핵을 가지면 미국은 이 지역에서 사실상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걸 막기 위해서이다. 만약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면 미국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이를 막으려 할 것이다. 어마어마한 경제 보복과 심할 경우 대통령 암살 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1] 미국도 미국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 있을리도 없다. 현재 북한에 UN 경제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듯이 한국에게도 비슷한 UN 경제 제재를 가하라고 난리칠 것이 분명하고, 똑같은 UN 경제 제재라 해도 원래 극단적인 폐쇄 국가인 북한과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에 미칠 영향은 그야 말로 하늘과 땅 차이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쉴드 쳐 줄 수도 없는 것이, 일단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맞지 않는데다, 열받은 중국과 러시아가 너네 미국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우리 동맹국에게 핵무기를 제공하고 핵확산 방지 노력에 협력을 거부하겠다고 위협하면 아예 대책이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란 착각이 있었다.[2]

인도는 중국이라는 강력한 미국의 적을 앞에 두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이용하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한 위의 설명처럼 미국의 반대편에 있는 소련도 묵인했기 때문에 뒤탈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UN 가입은 1971년으로 이미 인도는 열심히 핵무기 개발중이었고, 또한 당시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도 미미한데다 국력도 낮아서 혼자서는 인도를 압박할 상황이 못되었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인구와 7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인도에게 뭐라 할 나라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3. 관련 문서


[1] 박정희가 핵개발을 시도하자 지미 카터가 심각하게 박정희를 어떻게 처리할 지를 토론한 적도 있다. 김재규 CIA가 사주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 [2] 착각이 있다란 수정을 서술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을 제재하는 척만 하면서 사실상 묵인했다. 러시아는 아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러관계를 점점 강화하고 북러상호방위조약까지 맺으면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한 상태다. 즉 미국만 정신 못 차리고 삽질만 한 것으로 계속 삽질만 할 것인지 이를 그만둘 것인지가 관건이 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