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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2:52:40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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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
제11·12대 대통령 전두환 ·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건

1. 개요2. 구속의 배경3. 구속영장 청구4. 타임라인5. 결과6. 재판7. 반응8. 상황
8.1. 범죄 혐의8.2. 여론8.3. 정치적 상황8.4. 등 돌린 친인척/측근들
9. 사면10. 여담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1. 개요

2018년 3월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된 사건. 이는 헌정 사상 4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이다. #

1995년 노태우 전두환 구속된 이후 23년 만에 박근혜 이명박이 1년의 시차를 두고 구속되었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노무현의 경우 검찰 출석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피고인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관련한 모든 수사가 완전 종료되었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2. 구속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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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다스 실소유주 논란,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등으로 논란이 있었고 영장심사를 거쳐 구속되었다.

3. 구속영장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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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9일 서울지검(당시 검사장 윤석열[1])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 전체 증거자료를 포함한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A4용지 80,000장 분량으로, 흔히 말하는 '검찰'박스 32박스에 담겼다고 한다. 게다가 조사한 의혹을 다 명시한 것도 아니다. #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박범석 부장판사를 배당해 22일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할 것인가가 관심사였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데 피의자가 법원에 출석해서 왜 자신이 구속될 필요가 없는지 주장할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3]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3월 2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검찰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이 모두 불출석한다."고 통보하고 법원엔 "변호인은 참석한다."고 서로 다르게 말해서 이 문제로 인해 22일 오전 10시 30분에 예정된 영장실질심사가 취소되었다. 법원은 22일 영장심사를 서류심사로 대체할 것임을 밝히고 예정대로 영장심사가 진행되었다.

4.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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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과

피의자: 이명박
죄명: 특정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
구속영장 발부: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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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명박은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2018년 3월 22일 밤 11시 7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박범석이 영장 발부를 인용하여 구속이 결정되었다. # 여태껏 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한 피의자가 구속을 면한 사례가 없었기에[4] 예상된 일이었다. 더구나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8만 페이지에 달한 데 비해 변호인단이 제출한 서면 의견서는 수백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신봉수 첨단수사 1부장 검사와 송경호 특수부 2부장 검사가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논현동의 이명박 자택에 도착했고 3월 23일 자정에 이명박은 호송차[5]를 따라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서울동부구치소에 입감되었다. 이명박 본인 역시 구속을 직감했는지 21일 새벽에 자필로 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

검찰이 이명박의 신변을 확보한 시각은 정확히 3월 23일 오전 0시 2분이었다. 이는 구속 수사 기간을 하루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검찰의 '꼼수'에 가깝다. 형사소송법에서는 구속기간은 시간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1일씩 산정하기 때문에 만약 단 1분이라도 자정이 되기 전에 먼저 신변을 확보했을 경우 그 하루를 낭비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영장집행 시간을 3월 22일 오후 11시 57분이라고 밝혀 잘못 알려진 시간을 바로잡았다. #

박근혜와 다른 MB 구속영장 ‘이례적 표현’ 왜 들어갔나?

6. 재판

<colcolor=black> 2018고합340 → 2018노2844 → 2020도3972
사건 종결
심급 <colcolor=black> 구형량 <colcolor=black> 선고형량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징역 20년형 · 벌금 150억 원 · 추징금 111억 원 징역 15년형 · 벌금 130억 원 · 추징금 82억 원
2심 서울고등법원 징역 23년형 · 벌금 320억 원 · 추징금 163억 원 징역 17년형 · 벌금 130억 원 · 추징금 57억 8,000여만 원 (확정)
3심 대법원 - 상고 기각
만약 이명박의 뇌물수수 혐의가 전부 인정된다면 최소 11년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었다.

물론 박근혜 때와 같이 매우 사건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1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었고 이명박은 무죄 판결이 나지 않는 한 당연히 항소할 것이기 때문에 약 2년 후에야 사건에 대한 재판이 얼추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어쨌든 이명박은 무려 20여 가지의 혐의를 받았으며 무죄로 판명나거나 15년 이하가 내려진다고 해도 평생을 국민에게 속죄하며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형량은 박근혜보다는 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2019년 9월 6일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20년 및 벌금 150억 원, 추징금 111억 원이 구형되었다. 박근혜의 1심 구형량을 생각하면 상황은 조금 나은 수준이다.

2020년 1월 8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는 형량이 증가되어 징역 23년 및 벌금 320억 원, 추징금 163억 원이 구형되었다. 검찰은 이와 같이 구형하면서 "이 사건은 뇌물수수 160억원, 횡령 350억원으로 중대하다"며 "이 전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남용해 헌법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2020년 10월 29일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명박의 형이 확정되면서 그 역시 2020년 10월 29일 자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박탈되었고 전두환, 노태우도 사망하면서 현재 생존한 전직 대통령 중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는 인물은 2022년 5월 9일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 한 명 뿐이다.

상세한 공판 내용은 이명박/재판 문서로.

7. 반응

7.1. 정치계

7.1.1. 청와대

청와대에서는 김의겸 대변인이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만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고 또 삼가겠습니다. 스스로에게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겠다는 다짐을 깊게 새깁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베트남을 순방 중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했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반응을 보일 시 이래저래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직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 'ㄷㅡ6'라는 의미 불명의 트윗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누리꾼들 사이에선 의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였다. 현실적으로는 단순한 오타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두고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찡찡이가 대신 썼음', '베트남에서 술마셨나 봄' 등의 농담이 나왔다.

7.1.2.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이 국민의 뜻이라며 사실을 고백하라는 입장을 표출했다. #

7.1.3.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은 이 논평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하여 참담하다는 입장과 동시에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

7.1.4.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사법원칙에 따른 마땅한 결과라고 밝혔다. #

7.1.5. 민주평화당

민주평화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당연하다고 하였고 그간 무수히 제기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

7.1.6. 정의당

정의당은 법의 심판만이 남았다며 속죄의 여생을 보내라는 뜻을 밝혔다. # 덤으로 " 본인의 회사를 '내 회사'라 부를 수 없었던 힘든 시간을 잊고 이제는 '다스는 내 것이다'를 당당히 외치길 바란다"며 꼬집었다. ##

7.2. 시민사회

경실련은 이명박 구속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강조하며 검찰의 철저한 추가 수사를 주문했다. #

민주노총은 이명박 재임 기간인 2009년에서 2012년까지는 그야말로 노동탄압과 노조파괴 전성시대였다면서 재벌자본의 뇌물 제공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석기 등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들도 처벌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

구속 당일인 23일에는 'MB구속촛불시민행동'이 축하 파티와 함께 해단식을 열기도 했고 2008년부터 촛불시위를 하며 이명박 반대에 앞장섰던 이명박근혜 심판 범국민행동본부(안티MB)는 31일 '승리 선포' 기자회견에 떡 돌리기, 카 퍼레이드까지 하면서 성대하게 축하 행사를 열였다. #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지는 않았으나 관련자들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반면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 성향의 단체 관계자들은 '정치 보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7.3. 해외 반응

영국  BBC는 지난 2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전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찾기가 어려웠고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많은 열성 지지자들이 지지 혹은 구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자주 여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고 보도하였다. 출처

8. 상황

8.1. 범죄 혐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점을 짚어 보면 다스 실소유주 논란(비자금 조성 및 횡령),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정도가 있으며 그 외 각종 뇌물 혐의 등이 추가된다. 이명박 측은 자신에게 처했던 상황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8.2. 여론

[뉴스+] '권력무상' 느낀 MB…지지자와 측근들도 떠났다
귀가하는 이명박, 태극기는 없었다...박사모도 "구속하라"
“이명박 구속하라” vs 썰렁한 태극기부대…자택 앞 풍경

이명박의 가족이나 측근들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이명박 본인은 착잡하다는 반응을 표했다. #

이명박에게 더 절망적인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민들의 냉담한 반응. 이명박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에 사면초가에 빠졌다.[6]

3월 1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이명박의 구속 수사 여부에 ‘찬성한다’는 67.5%, ‘반대한다’는 26.8%, ‘잘 모름’은 5.7%로 나타나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2배 이상 더 높았다. 지역별로는 광주· 전라에서 찬성 여론이 86.4%로 가장 높았고 서울(73.7%), 경기· 인천(70.0%), 부산· 경남· 울산(63.5%), 대전· 충청· 세종(60.4%) 순으로 나타났다. 오직 대구· 경북(TK)에서만 반대 의견이 44.3%로 찬성(40.0%)보다 소폭 높았다. 관련 기사.

거기다가 이것도 최측근인 김백준의 증언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 건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기 전으로, 포토라인에 선 직후 리얼미터발 이명박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후술하다시피 그 TK에서마저도 이명박 강력 처벌 주장이 이명박 처벌 반대 주장보다 최소 2배 이상 우세했다. 심지어 2021년 5월 기준으로도 박근혜는 사면 찬성 여론이 53.4% 반대 여론이 45.3%인 데 반해서 이명박의 사면에 대해서는 반대로 부정적인 여론인 사면 반대가 53.3%로 ‘찬성한다(43.2%)’는 응답보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박근혜에게는 그나마 태극기 집회라도 있지만 이명박에겐 그런 것조차 없다. 또 ( 박근혜 국정 농단 등의 실정으로 많이 줄었지만) 보수계에서 가장 지지층이 강한 박정희의 콘크리트 지지층에게도 이명박은 민정·공화계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의 후계가 아닌 상도동계 수장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계로, 필요할 때만 박정희를 팔고 평상시에는 김영삼을 훨씬 많이 띄웠다. 이명박이 김영삼의 후계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서인지 몰라도 김영삼한테만큼은 항상 매우 고분고분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보수 지지층 중 호감도가 가장 높은 박정희한테는 존경하거나 호의적인 태도를 그다지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고 무엇보다 박정희의 친딸인 박근혜와 과거 친이 vs 친박의 갈등을 직접 목도한 노령층이 많아[7] 박정희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대경권에서만큼은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후계로 여겨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 줬던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와 달리 박정희의 적손인 박근혜와 오히려 적대적이었던 이명박의 입지는 빈말로도 좋다고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전두환, 노태우 사면 여론과 박근혜 사면 여론, 전두환, 노태우 구속 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김종필 자유민주연합은 TK에서 여론상으로 상당히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8] 이명박의 경우 보수정당계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TK에서조차 이명박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즉, 이명박은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민주당계 정당 - 진보정당 콘크리트 지지층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이미지가 시궁창이고 박정희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보수정당 콘크리트 지지층에서조차도 이미지가 절대로 좋은 편이 아니다.

그 결과 김백준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건이 터지기 이전에는 이명박을 조사해야 된다는 의견이 60% 초중반대에 머물렀고 전직 대통령 신분이었기 때문에 보수~중도우파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지지층 자체를 일정 수준은 가지고 있었으나 노무현 얘기를 꺼낸 사무실 성명과 곳곳에서 터져나온 혐의 때문에 현재는 이명박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거의 사라졌다시피 했으며 심지어 이명박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직후에는 이명박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80%에 달했다. 리얼미터 조사

실제로 친이계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었던 늘푸른한국당은 김백준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 터지고 이명박이 피의자로 전환되면서 얼마 후에 해체됐고 일부는 논의가 오가기도 했던 바른미래당으로 이적하기도 했으나 이재오를 포함한 지도부는 대부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새로운 보수정권 창출은커녕 이명박을 정치적으로나마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TK권과 고령층 위주로 콘크리트 지지층이 남았고 정치적인 재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졌지만 정치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저항하면서 정치적인 방어라도 조금이나마 더 용이하게 할 수 있었던 자유한국당으로 간 셈이다.

여기서 더 가관인 것은 전두환과 노태우와 박근혜는 TK에서나마 사면 여론이 팽팽했고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TK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반면 이명박은 아직까지도 보수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남아있다고 여겨지는 TK나 노년층에서조차도 처벌 여론이 최소 2배 이상 훨씬 우세했다는 점이다. TK 기준으로 여론은 강력 처벌 vs 처벌 반대 - 72.2% vs 23.7%, 50대 기준으로 강력 처벌 vs 처벌 반대 69.6% vs 25.1%와 60대 이상 기준으로 강력 처벌 vs 처벌 반대 68.1% vs 22.0%였다. 이를 통해 이명박은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나 박근혜가 받았던 보수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에서의 지지조차 온전히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는 꼼수다 시절 재야 언론인으로 공권력의 탄압을 피해 이명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던 김어준 주진우는 당당하게 지상파에서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명박을 여러 방면에서 매우 강하게 압박했으며[9] 박영선, 주진우, 김어준 이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부분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강하게 공격해 이명박에게 고발당해 감옥까지 갔다 온 정봉주 전 의원[10]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복권 조치를 취해 피선거권을 회복하면서 주진우, 김어준 못지않게 언론 및 지상파에서는 물론이고 정계 재진출까지 모색하며 이명박을 매우 강력하게 압박했다[11].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피의자가 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검경의 횡포로 인해 당시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 62.5%였고 정당한 수사로 본다는 의견은 32.2%로 정치 보복이라는 의견이 정당한 수사로 본다는 의견보다 거의 2배나 더 높았다. 또 검찰 수사 자체도 공정하지 않게 이뤄졌다는 의견도 58.3%에 달했고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로는 가족과 측근에 대한 과도한 수사 확대, 확인되지 않은 혐의로 망신주기를 가장 많이 꼽았다. 관련 기사

파일:오로지진실만을말하시는분들.jpg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왔던 상호간의 의혹제기는 모두 팩트로 결론이 났다. 같은 보수 진영에서 서로에게 시작된 의혹 제기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이명박을 둘러싼 도곡동 땅 비리, BBK 논란, 다스 의혹이 처음 터져나온 것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었으며 해당 논란들을 꺼내들어 이명박과 친이를 압박한 것은 보수 정치인인 박근혜와 보수 지지자들인 친박이었다.[12]

거기다가 보수 콘크리트 유권자들조차도 이명박 옹호 여론이 적었던 이유는 여론 조사 결과에서 분석해 보면 알겠지만 골수 보수 지지층들이 주로 지지하는 세력조차도 박정희와 박정희의 세력인 민정·공화계[13]나 그 후신인 친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스탠스였지 이명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스탠스가 아니라 골수 보수 지지층도 이명박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14]

게다가 검찰 소환, 구속, 재판 때도 지지자들도 없이 몹시 한산했다. 그러나 그나마 나은 점은 가족, 친지, 측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도와주려고 했고 면회 때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 최종 징역형도 박근혜보다는 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8.3. 정치적 상황

이명박은 자신을 그나마 옹호라도 해 줄 친이 세력이 지리멸렬해졌다.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이라고 칭하면서도 이명박 구원에 소극적이었다.

이를 두고 정두언 전 의원은 친이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초부터 내부적으로 '지리멸렬'했다고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특별시장을 하기 전부터 극도로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악명이 자자해[15] 주변 관계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여지없이 드러난 셈. 이게 어느 정도냐면 이명박이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6급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 씨가 꺼낸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친이계라고 해도 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뭉친 집단이 되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박근혜 전 의원의 눈치를 보거나 뒤에서 접촉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두언 전 의원이 임기 시작 후 대통령 시계를 친이계 의원에게 선물했을 때 필요 없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계파의 수장한테 충성도가 낮은 인물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같은 당 같은 계파의 대통령의 시계 같은 선물을 직접적으로 거부할 정도면 얼마나 이탈이 심각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16]

거기에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이 온 참에 홍준표 전 대표가 쫓겨나다시피 내놓은 새누리당의 당권을 박근혜와 친박이 잡은 19대 총선에서는 친박계가 친이계 중진[17]들을 제외한 친이계 상당수를 공천학살했고[18] 심지어 이명박이 퇴임한 직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칼을 쥔 친박계가 친이계를 포함한 비박계를 싸그리 공천학살했고[19]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타 계파가 아닌 친이계로 분류되는 측근이라고 해 봤자 주호영 김영우, 장제원 정도고 나머지 친이계 - 범친이계는 측근이 아니거나 죄다 홍준표, 김무성, 유승민 등을 수장으로 한 친홍, 친무, 친유로 들어갔다.[20]

또 자유한국당은 친박의 세가 친무 - 친홍에 밀려 약해진 후에도 2020년까지 존재했는데 문제는 친박계 상당수는 이명박을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했던 집단이란 것이다. 자유한국당 세력의 주류가 된 김무성과 홍준표는 친박과는 달리 이명박과 상당한 친분이 있고 김무성과 그의 계파인 친무계가 자유한국당으로 전부 입당하면서 홍준표의 친홍계가 친무계와 힘을 합해 당권을 가지고 있었던 친박으로부터 당권을 빼앗아 오긴 했으나 이명박의 집사인 김백준이 구속되고 국정원 사건이 커지면서 이명박의 신분이 피의자로 전환되자 친이계의 본진이었던 늘푸른한국당 대표이자 친이계의 2인자였던 이재오까지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할 정도로 친이계와 이명박은 빼도 박도 못하게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래서 그런지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의원 및 친홍 - 친무계 정치인들조차 전체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고 문재인 정부 비난에 집중했다.

바른미래당은 당시 원내 의석이 30석밖에 안 되어서 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울 정도였고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친이계 정치인들은 정병국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 때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기 때문에[21] 바른정당 때와는 달리 딱히 이명박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이 별로 없다.[22] 거기다가 이명박과 친이계가 작정하고 키워서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합친 다음 자유한국당까지 흡수하려고 창당했던 늘푸른한국당은 사실상 수장인 이명박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해산되고 지도부들이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다.

어찌 보면 김영삼이 무리하게 3당 합당을 밀어붙인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정파, 정당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 세력인데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상도동계로 대표되는 김영삼의 독재 반대 운동권 정치세력과 소위 박정희,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의 민정·공화계라고 불리는 군사독재정권 세력이 각자의 목적달성을 위해[23] 손을 잡고 만든 정당이었기 때문에[24] 구성원 간의 정치 성향이 제각각이었다.[25] 그리고 그렇게 하여 대권을 틀어쥔 김영삼이 민정·공화계와의 정쟁에서 이겨 민정·공화계를 항복시키고 거기에 재야세력까지 영입해 민주자유당을 확실히 장악한 후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성향, 이념이 다른 정당/정치인이 억지로 뭉친 정당이라 상도동계와 신민주계 그리고 YS키즈를 대변하는 친이와 민정·공화계를 대변하는 친박의 성향이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들 계파끼리 동질 의식 따위 없이 전쟁하는 것처럼 싸워 왔다. 더군다나 자연스러운 주류 계파의 이동이 아니라 서로 학살에 학살을 거듭하여 커 왔기에 같은 당이라고는 하지만 계파 간에는 서로를 원수처럼 보았다. 그래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도 당시 친박이 주류였던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친이계나 몇몇 비박계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친박-친이 계파 수장들이 정계 은퇴를 하거나 대거 낙선하여 정계를 떠나는 바람에 계파 갈등은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잊을 만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나 윤석열 영입 과정에서 당의 일부 인사들이 윤석열에게 반감을 느끼는 등의 모습을 통해 다시금 망령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긴 한다.

심지어 더 가관인 것은 문무일 검찰총장도 파면당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그것도 5년 후에야 구속수사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꽤 큰 데다 전직 대통령 신분의 특성상 어차피 도주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불구속 수사 쪽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이명박 수사에 관한 여론까지 이명박 강력 수사에 고무적이었음을 확인하고 구속수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26]

8.4. 등 돌린 친인척/측근들

세상에 대한민국이 의리라도 있어야지. 형님, 처남, 조카[27], 다 검찰에 불으니 검찰이 어떻게 해요.
TV조선 강적들에서 박지원의 발언. 박지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간관계는 0점”
"검찰만 다녀오면 다들 연락두절"…분통 터지는 MB
10년 전엔 무혐의였던 MB 구속 왜?…등돌린 측근들 폭로 결정적
MB "허위진술" vs 측근들 "지시했다"..대질 신문 이뤄질까
MB, '내편은 없다' 결론…"옛 측근들 허위 진술" 맞대응

우선 정두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 핵심 최측근이자 킹메이커였다.[28] 하지만 이후 논란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은 국회의원 총선에서 빠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가 미움을 사서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면서 내쳐졌다. 이후 남경필, 정태근과 함께 불법사찰까지도 당했을 정도다. @@ 이 정도로 가혹하고도 냉혈한 보복들을 계속 당하자 정두언도 결국은 등을 돌렸다. 이명박의 핵심 측근답게 김윤옥 3만弗 든 명품백 받아 MB캠프, 돈 주고 보도 막았다 등 민감하고도 이명박에게 있어 치명적인 폭로들을 하면서 이명박의 치부를 드러낸다.

조카 이동형은 다스가 이명박의 것임을 증언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까운 다스에서 일하던 친조카의 증언이라서 이명박의 다스는 본인 소유가 아니라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되었다. ‘MB 조카’ 이동형 “다스는 아버지 것”…이상득 소환 앞두고 응급실행 | KBS뉴스 | KBS NEWS 그 외에도 이동형은 본인의 아버지도 월급을 받는다고 하면서 월급사장임을 폭로해 이명박에게 또다시 치명타를 가했다. 이상은 다스 회장 아들 “아버지도 여기서 월급받는다” 이후 부정하긴 했지만 정작 본인의 음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됨에 따라 부정하는 발언은 신뢰성을 얻지 못하면서 종결되었다. 이동형 “다스는 시형이 것…아버지와 나는 희생했다” 녹취 파문

이명박의 최측근 중 하나인 김백준은 처음 이명박을 옹호하는 듯했지만 영포빌딩 문건 등의 실질적인 증거들이 발견되자 이명박에게서 돌아서 검찰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지시로 삼성이 다스 소송비용을 대신 냈다." 등의 진술로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에서 이명박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

또 다른 최측근인 김희중은 이명박의 혐의(특히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해 진술했다.

결국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MB 측근들은 왜 MB를 배신했을까, 김희중의 배신, 이명박 측근들은 왜 등을 돌리나?, MB 측근들의 진술…‘배신’ vs ‘책임전가’ | 뉴스A, '정치보복' 말라는 MB, 정작 등 뒤에서 칼 꽂는 측근들, 핵심 측근들은 왜 연이어 MB에 등을 돌리는 것일까, MB맨 정두언은 왜 폭로의 선두에 섰나, 궁지에 몰려 전면에 나선 이명박… ‘측근 배신에 압박감 느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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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면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원래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을 맡아 당사자를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들이었지만, 상술했듯이 윤석열이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이명박과 화해를 했기 때문에 사면을 내려 준 것으로 여겨진다.

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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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이명박 재판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인과관계의 직·간접적 연결고리만 간단히 기록됨.
전반적인 부분은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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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석열 전 지검장이 당시 검찰총장을 면담한 끝에 MB에 대한 영장 청구를 밀어붙였다. 후일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대통령이 되고 이명박-박근혜와 화해하였다. [2] 실제 청구한 검사들은 신봉수, 송경호 부장검사. [3]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했다. [4] 애초에 영장 기각 확률이 20%도 되지 않는다. [5]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관용차인 K9을 준비했다. 3차장이 검사장급에서 일반 차장검사급으로 환원되면서 3차장에게는 K5가 관용차로 배정되는 데 남자 3명이 K5에 타기에는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6] 앞서 설명한 BBC의 보도에서도 '이명박의 경우 열성 지지층이 부재하다'라는 점을 꼬집었다. 애초에 이명박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 기준으로 무려 전두환을 뛰어넘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통령으로 꼽힌 대통령이었다. # [7] 실제로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 친이계는 19대 때 친박이 친이를 대거 탈락시킨 것 이상으로 지독한 방식으로 친박을 대거 학살하다시피 했는데(19대 새누리당 공천 때는 친이 초/재선이 잘려나갔지 친이 중진들은 거의 다 공천을 받았다.) 김기춘뿐만 아니라 친박의 핵심이자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정계의 중진들이었던 서청원, 홍사덕 등 친박 중 정계 중진들만 골라서 아예 전멸시켰다. [8] 다만 이는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민자당 내에서 민정계와 갈등을 빚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PK 출신인 YS가 TK를 홀대한다는 여론에 따른 TK의 반 YS 정서도 원인이다. [9]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순수한 진실들로 서로의 의혹을 폭로한 게 회자되었다. [10] 박근혜, 박영선, 주진우, 김어준도 이명박에게 맹공을 퍼부은 사람들이지만 정봉주는 저들과도 차원을 달리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박이 직접적으로 정봉주를 고발하면서 그 혐의를 완전히 피해가진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11] 다만 정봉주는 성향에 맞게 복권 직후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신청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 친분이 깊기는 하나 미투 운동 성추행 의혹 연루라는 폭탄이 떨어져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졌다. [12] 다만 이 의혹을 적극적으로 파헤친 인물은 정봉주 전 의원으로, 그래서 그런지 정봉주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고발당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13] 민주공화당과 그 세력의 후신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을 말한다. [14] 실제로 여론 조사 결과에서 보면 알겠지만 보수 진영의 대통령 지지도는 박정희가 1위로, 김영삼+이명박(김영삼의 후계로 분류되는지라 합산한다.)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 [15] 정두언 전 의원도 이명박의 서울시장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았을 때도 주변에서 이를 근거로 만류했다. [16] 다만 친이계 중진이나 최측근이 없었다는 말로까지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친형인 이상득을 제외하고서라도 최측근이거나 소위 영포라인인 이재오, 이병석, 정의화, 최병국, 장제원이나 MB키즈라 불리며 이명박의 총애를 받았던 박형준, 이동관, 임태희, 주호영, 김영우를 생각하면.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들이었던 친문 계열 사람들을 확인해보자. 일부는 그를 등졌으나 그를 등지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시간이 되면 기일에 봉하마을을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참배할 정도다. [17] 이재오, 정의화, 이병석, 주호영 등. [18] 여담으로 18대 총선에서의 친이와 19대 총선에서의 친박이 상호 간에 공천학살을 했던 모양새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18대 총선에서는 친이계가 김기춘, 서청원, 홍사덕 같은 친박 중진들만 골라서 쳐냈고, 19대 때 친이계가 잘려 나갔을 때는 친이계 중진들은 상당수 살아남고 초/재선들이 대거 잘려나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19대 총선에서 어찌됐든 친박으로 당권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이었기 때문에 친박이 자행한 공천 학살 강도는 이전의 친이계보다는 약했던 셈이다. [19] 19대 공천에서는 친이계 중에서 중진들만큼은 거의 다 지켜냈으나 20대 국회에서는 그 중진들마저도 박근혜랑 사이가 나빴던 데다 박근혜가 가장 싫어하는 게 친이계였는데 당시는 이명박이 퇴임해 정치적인 힘을 잃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거의 짤려나갔다. 거기다가 친박이었다가 박근혜와 척을 진 유승민도 짤려나갔고 친유 의원들도 친이계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짤려 나갔다. 그나마 20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 당시 비박계 중에서 세를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남은 게 김무성과 친무계 정도. [20] 측근이 더 있다면 권성동 정병국 정도인데 그마저도 권성동은 제19대 국회에서부터 김무성의 친무 라인에 가까워졌고 정병국은 유승민과 행동을 많이 함께 하면서 친유 라인에 합류했다. 나머지 제20대 국회에서 이명박의 측근이었던 인물들은 대부분 홍준표 - 김무성의 계파로 들어갔으며 이명박의 측근인 장제원도 홍준표 라인에 가까워졌다. [21]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꼽으면서 친이계 내에서 친이계의 본거지면서 원외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이나 역시 규모가 작아서 적극적으로 실드를 치기 어려움이 있는 바른정당보다 규모가 큰 자유한국당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이명박에 대한 방어막을 치고 역공을 가하려던 친이계의 의중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2] 있어 봤자 최측근인 정병국을 제외하면 정운천이나 범친이계 국민의당 출신 정치인 정도이다. [23] 김영삼-대권, 김종필-내각제 개헌, 민정계-여소야대 구도 타파. [24] 거칠게 말하자면 김영삼이 영남을 온전히 먹고 편하게 대통령 되고 싶어서 군사독재정권 세력과 손잡고 만든 정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 정도로 김영삼은 대권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에게 실망하고 이탈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다. [25] 실제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강삼재, 고진화, 김부겸, 김영춘, 김원웅, 손학규, 이우재, 이부영, 박재호 등이 있다. 물론 이들은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급격히 보수화되어 버린 한나라당에 실망하여 열린우리당으로 이탈하거나 정계를 은퇴하였다. [26] 70%가 넘는 여론이 # 이명박의 구속에 찬성 입장을 보였고 윤석열도 구속영장 청구를 제안했다. 만약에 불구속으로 결론을 냈다면 문무일 전 총장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옷 벗어야 할 상황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박상기 법무부장관도 불구속 수사 쪽으로 제안했으나 결국 문 총장과 윤 검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27] 이상은의 아들로, 이 사람과는 동명이인. [28] 이명박의 서울특별시장 선거 지휘를 정두언 이 사람이 했다. 그 덕에 이명박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까지 되었다. 또 이때의 공로로 정두언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재임했다. [29] 기아 K9 1세대로,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전속 관용차였다. [30] 부산MBC 제작. 목요일 23시대는 지역방송을 위한 시간대라 당시 자체편성 중이었다. [31] 공직선거법 상 대통령 선거는 그 임기만료일 전 70일 이후 첫번째 수요일에 치르게 되어 있다. 6공화국에서 대통령 임기만료일이야 2월 24일로 쭉 같았으니 70일을 거슬러 보면 대략 12월 16~19일 정도가 된다. 거기에 대략 5년 주기로 해당 날짜와 요일이 같은 날이 돌아오기 때문에(윤년이 있어 항상 5년은 아니고 최소가 5년이다) 16대, 17대, 18대 대선일은 모두 12월 19일 수요일이었던 것이다. (14, 15대는 18일, 13대는 16일)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는 대선일은 3월 9일을 기준으로 하는 수요일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야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선거일은 법률로 지정하기 때문에 미세하게 바뀔 수 있다. [32] 탄핵 소추안 표결 결과의 불참 1명,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33] 5.16 군사정변, 51.55%로 대통령 당선, 5.16 군사정변과 박근혜 당선 사이의 시간 51.6년. [34] 그러나 이마저도 2021년 12월 31일부로 옛말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는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특별 사면되어 실질적으로는 4년 9개월 만에 형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명박 본인은 특별 사면 대상에서 예외 처리되었다가 2022년에야 사면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