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22:04:47

정봉주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 서울 노원구 갑)
선거구 개편
함승희[1]
제17대
정봉주
제18대
현경병[2]
<colbgcolor=#152484><colcolor=#fff>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정봉주
鄭鳳株 | Jung Bong-ju
파일:정봉주(더불어민주당).jpg
출생 1959년[3] 7월 2일[4] ([age(1959-07-02)]세)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
(現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본관 봉화 정씨 (奉化 鄭氏)[5]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6]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152484><colcolor=#fff> 가족 배우자 송지영[7], 아들 정민규(1997년생)[8], 딸(2000년생)[9][10]
신체 168cm, 74kg
학력 서울연촌국민학교[11] (26회 / 졸업)
휘경중학교 (3회 / 졸업)
경희고등학교 (16회 /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 영어과 80 / 학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 영어교육전문학 / 석사[12])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13] / 석사[14])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 미래학 / 석사[15])
인제대학교 대학원 ( 통일학 / 박사 과정 수료)
병역 병역면제 (수형)[16]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7
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
월간 '말' 기자
신민주연합당 창당준비위원회 기획조정실 차장
열린우리당 어학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 ( 서울 노원구 갑 /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민주당 교육연수위원장
외대어학원 CEO(최고경영자)
정봉주의 전국구 진행자
천안 FC 공격수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열린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구독 31만명[17] }}}}}}}}}

1. 개요2. 생애3. 비판 및 논란4. 여담5. 소속 정당6. 선거 이력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국회의원.

공전의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크게 알리기 시작했다. 나꼼수 활동 중 선거법 위반으로 1년 동안 수감이 되었으며, 이후 팟캐스트 ' 정봉주의 전국구'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소위 '정봉주계'의 수장이 되었다.[18]

2016년 tbs TV에서 <정봉주의 품격시대>를 진행.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 고정 출연. 2017년 3월 6일부터 SBS 러브FM에서 < 정봉주의 정치쇼>를 진행하고 있다.

2007년 이후로 이명박 前 대통령의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 및 과장된 사실이라는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2011년 수감, 2012년 만기출소), 피선거권이 공직선거법에 따라 2022년까지 상실되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29일에 복권하면서 피선거권이 회복되었다.[19] 이후 정치 일선에 복귀하기 위해 서울시장 출마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시도하였으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서 2018년 3월 28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정계에 복귀하여 열린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열린민주당이 흡수합당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를 선언, 경선에서 승리하여 후보가 되는 듯 했지만, 상이군인 비하 막말 논란으로 결국 공천이 취소되었다. #

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

1960년 7월 2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서 아버지 정장덕(? ~ 1991)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경찰서장 출신이라 나름 금수저 집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0] 서울연촌국민학교(26회), 휘경중학교, 경희고등학교 졸업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영어과(80학번)에 입학하여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회장(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이때, 문익환 목사의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 차를 몰래 끌고나와 운전기사를 자처했다고.[21] 1982년 ROTC에 22기로 입교하여 후보생으로 수학하던 중 1983년 민주화 시위 주동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ROTC에서 제명되었다.[22]

대학 졸업 이후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약칭 민언련)[23]의 기관지 지의 초창기 기자로[24] 활동을 했으며, 1989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특별과정을 졸업하여 영어교육전문학 석사 학위 및 TESOL을 취득했다.

귀국 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모교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특성을 살려 외대어학원을 창업해 운영했다.[25] 지금이야 테솔 자격증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정도 경력의 학원 강사면 돈을 잘 벌었을 때였고 실제로 나꼼수에서 말하길 이때 빌딩도 샀다고 한다.[26]

2.2. 정치 입문 이후

민주당 성향이며 김근태 계열의 인물로 평가받는다.[27]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와 전임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새천년민주당 함승희 후보를 모두 꺾고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28]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엄청난 역풍으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비교적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빗대서 탄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정봉주도 이 탄돌이 출신이다. 당시 다른 탄돌이 의원들은 이 말을 듣기 싫어했으나 자신은 떳떳하게 스스로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2006년 3월 2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며 대통합신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2007년 6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17대 대선 후보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29]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곧 승복하고 선거운동을 도왔다고 한다.[30] 그런데 자서전에 의하면 당시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운동권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책을 맡기지 않는 것을 보고 좌절하여 결별하였다고 한다.[31] 당시 경선 상대 캠프였던 정동영 측 인사로 이 시기에 박스떼기의 총책임을 맡던 이재명과 마주치기도 했다. 당시 뉴스도 있다.[32]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사건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치인 중 박영선을 능가하는 자타가 공인한 이명박 저격수. 또한 이명박이 당선된 직후에도 나는 꼼수다 등의 팟캐스트 방송까지 참여하며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정봉주는 " 이명박은 김백준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방산비리 관련 문제로 걸려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명박의 최측근 김백준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건이 걸려들어간 직후에 이명박은 뭔가 겁먹은 듯한 태도로 사무실에서 성명을 발표했고[33] 사무실 성명으로부터 정확히 10일 후 진짜로 검찰이 이명박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였다.[34]

그래서인지 BBK 저격수, MB 저격수는 정봉주의 대표적인 별명으로 유명하며, 구글에서도 이명박과 정봉주가 연관돼서 자동 검색으로까지 등장한다.

때문에 정봉주는 직접적으로 이명박한테 고소당했으며, 또한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찍힌 모양인지 외부자들에서 친이계의 좌장이자 친이계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대표 이재오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그 상황에서 정봉주는 이재오에게 "의리 있는 건 좋지만 이제 의리 버리실 때가 됐는데" 이러면서 이재오에게 은근히 이제 그만 이명박을 버리고 떠나라는 투로 말을 건넸고, 이재오는 "뭐 없는 사람들끼리 의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하면서 정봉주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하기까지 했다(외부자들 47회). 또한 이재오는 외부자들에서 정봉주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면서 지칭하면서 공격하기도 했으니(외부자들 56회)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어느 정도 찍혔다고 봐도 무방할 듯.

그러나 BBK 저격수 활동으로 인해 대선 종료 이후 검찰에 의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다.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08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35]

2008년 8월 29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경영 평생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각종 방송에서 패널로 활동하였고 2011년에는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과 함께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였다.

2011년 12월 22일, 앞서 말한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유포)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10년 간의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

2.3. 실형선고 및 복역

정봉주의 전과 가운데 공직선거법 위반이 있는데, 이게 바로 17대 대선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의 문제점과 의혹에 대한 내용을 기자회견 등에서 언급한 덕분에 생긴 전과이다. 검찰은 정봉주의 BBK 관련 발언들이 허위사실인 데다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기소했는데, 4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1년 실형 판결이 확정되었다.[36] 당시 재판부(판사)는 "정봉주의 발언은 모두 허위사실임이 넉넉히 인정되며, 확정적 고의가 아닌 미필적 고의 역시 허위사실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피고가 인지를 했다면, 허위사실공표의 죄가 성립하기 충분하므로 유죄가 성립된다" 라고 판결하며 결국 징역 1년을 확정하였다. 한편 검찰은 이때 정봉주의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국회의원으로서 검찰에게 할 수 있는 감사의 역할이라고 판단하여 이 부분은 무죄로 판결되었다.

쉽게 말해서 본인이 제기한 BBK 관련 의혹이 허위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거나 인지할 만한 정황이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일부러 퍼뜨렸다는 것. 집행유예도 아니고 실형 1년이면 상당한 중형인데, 고의성이 인정돼서 죄질을 나쁘게 본 데다 이런 저런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중처벌된 것으로 보인다. 정봉주는 수감될 때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2017년 다스 실소유주 논란 이후 이명박이 다스를 명의 신탁으로 차명 소유하며 불법 행위를 한 사실이 수사에서 확인돼 형사처벌을 받자 일부에서 정봉주가 처벌 받은 당시 혐의가 무죄가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고, 정봉주도 이에 동조해 재심을 청구하겠다니 이명박이 고소해 처벌받았다니 하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정봉주가 형사처벌된 혐의에 다스의 차명 소유에 관한 사실은 하나도 없다. 기소되어 처벌 받은 부분은 '이명박이 주가 조작에 직접 가담하였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고의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변호사 사임 전후 관계' 등의 BBK와 관련된 내용으로 다스의 차명 소유와는 무관하다. 또한 이명박은 정봉주를 고소하였다가 후에 고소를 취하하였고 형사처벌된 사안은 이와 관련 없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관한 사실임에도 정봉주는 이명박이 자신을 고소해 처벌 받았고, 이명박의 다스 소유를 주장하다가 억울하게 처벌된 양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정봉주는 자신이 처벌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SNS 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에서도 자신이 '민주화운동'과 같이 사회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것[37]이고 전과가 많다며 자랑하듯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정봉주가 자랑하며 언급하는 전과 중에는 실제로 처벌된 적이 없는 경우가 상당하고, 이는 재판 진행 뿐만 아니라 선거 출마시에 전과 기록 증명을 제출하여 확인이 가능함에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2.4. 출소 이후

2012년 12월 25일 정치인 최초로 사면이나 가석방 조치를 받지 못하고 만기출소하였으며, 이후 개인사업과 함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TBS TV 시사프로그램 <정봉주의 품격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우병우가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출석하고 도망다녔을 때 최초로 현상금을 걸었다. 처음에는 개인돈 200만 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안민석이 동참하면서 500만 원으로 늘어났고, 이후 시민들이 자발작으로 현상금 기부에 참여하면서 830만 원이 더 모였다고 한다. (아주경제) 결국 우병우가 자진 출석을 통보하면서 이 현상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고,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2022년까지는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선거법상 대통령이 복권[38]조치를 취하면 피선거권을 회복할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정봉주와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복권을 시켜주지 않았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정치 성향이 비슷하고 인연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복권이 기대되었고, 전체 국회의원의 무려 42%인 총 125명( 더불어민주당 97명, 국민의당은 소속 국회의원 절반이 넘는 22명, 정의당은 소속 국회의원 전부인 6명)의 국회의원[39][40]이 2017년 11월에 정봉주 복권 요청 탄원서에 직접 서명하기까지 하여 청와대에 탄원하기도 했다. 그런 결과, 2017년 12월 29일, 마침내 특별복권되었다.[41]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2018년 신년 특별사면 발표 영상 2분 40초경.

사면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밝혔으며 진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다만, 자신은 언제나 민주당이라며 민주당 복당 의사는 확실히 드러냈다. 최근,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사실... 그... 이런 날이 안 올줄 알았어요. 감옥 갔다 오고, 웃으면서 살긴 했지만 이런 날은 오지 않았었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죠. 멀리를 못 봐요. 아주 지독한 근시예요. 본인의 재산을 찾아 주겠다는데. 얼마나 감사해요.
- 외부자들 45회 中
2018년 1월 2일 YTN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 복당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고 한다.[42]

이명박의 최측근 김백준이 구속되면서 궁지에 몰린 직후 오랫동안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조사하던 정봉주가 "지금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다음에는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 잘 들었나, MB?"라고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곽한구가 정봉주의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서 화제가 됐다. #

2018년 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 당초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과 달리 당의 요청에 따라 재보궐선거 지역인 노원구 병[43]과 서울특별시장 출마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3월 7일, 이른바 연트럴파크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기사 아래에 나올 미투에 연루되면서, 출마선언을 전격 연기했다. 기사

2018년 3월 23일, 이명박이 진짜로 구속되자 정봉주는 아침에 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나는 무죄임이 확인됐다!" 라는 메시지를 올리고, 곧 이명박이 자신을 고소해서 처벌받았던 재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했으며 3월 27일 오전 10시 30분경에 국회 정론관에서 정식으로 입장을 표현했다. 그러나...

2018년 3월 28일, 후술할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서 잠정적으로 정계를 은퇴하게 되었다. 정계 복귀를 준비하면서 " 안철수가 한 트럭이 와도 나한테는 안 된다"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던 적이 있고 재판이 걸려 있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도 불허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9년 11월에 정봉주 무고 명예훼손 재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다음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복당을 허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 처리가 완료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서 갑[44] 출마를 선언하고 활동 중이었으나, 당에선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2.5. 열린민주당 활동

정봉주는 부적격 판정에 반발하였으나 당의 중진 몇몇이 미래한국당에 대항할 비례정당을 창당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에 비례정당 열린민주당을 만들었는데 뒤늦게 더불어시민당 창당이 결정되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약속과 다르게 중진들이 정봉주를 외면하므로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이후 시사타파 TV의 이종원과 함께 신당 창당을 준비하다가 열린공천으로 후보를 캐스팅하자는 의견으로 마찰을 빚던 손혜원 이동형이 주선하여 두 사람이 함께 열린민주당을 이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손혜원은 정봉주에게 비례대표로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창당 과정 중에 더불어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였으나 처리가 늦어지면서 이중 당적 논란이 불거졌고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더불어민주당이 탈당 처리하였다.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되어 선거활동을 했는데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하였으나 사전 투표를 앞두고 더불어시민당[45]의 네거티브로 인해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던 시점에 진행한 방송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양정철, 이근형, 윤호중 및 지도부를 향해 악감정[46]을 드러냈고 또한 실시간 채팅으로 더불어시민당 지지자들을 향해 욕설을 하며 물의를 일으켰고[47] # 시민당 지지자들의 비난에 실망하여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발언하기에 이른다. 그 영향으로 인해 21대 총선에서 3석만 획득하는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선거 후 손혜원과 약속한 바대로 두 사람은 당에서 모든 직위를 내려놓았다.

2021년 1월 12일에 배포된 열린민주당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재보궐선거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경선에 출마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 2012년 출소 이후 첫 선거 출마이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지만 당내 경선에서 김진애 의원에게 패하면서 본선 출마가 무산됐다. 경선 과정에서 정봉주는 "더불어민주당과 당대당 통합", "서울 토지계급 철폐(강북 용적률 상향 등)"을 주장하였다.

2021년 10월 6일, 오랜 침묵을 깨고 이재명 불가론자는 사회부적응자…내가 바로 대깨문이라고 밝히며 이재명 후보를 응원하고 이낙연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뒤이어 극문 세력에게 강성 친문이 아니라 꼴통 반골들, IS. 친문을 빙자한 반문들이다. 이 방송 와서 댓글 폭파 좀 해봐라. 무슨 X소리냐.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불만인 꼴통들이 있다. 키보드 워리어, 골방 전사,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하루 열 시간 키보드 워리어(악플러)하고 있는 게 정상이냐"고 따지면서 "너희들이 무슨 친문이냐. 이렇게 방송이 나가야 걔들이 정신 차리고 공격을 해댄다. 무슨 '이재명 불가론'이냐. 그럼 정권 넘겨주자는 거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

제20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인 2022년 1월 18일, 열린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합당되면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탈당한 이후 2년만에 민주당에 복당하게 됐다.

2.6. 더불어민주당 복당 이후

복당 이후 20대 대선기간 동안 MBC를 포함한 여러 공중파나 종편 시사프로그램에 민주당 측 패널로 출연하면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상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비판했다. 허나 3월 9일 열린 본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불과 0.7%p 차로 윤석열 당선인에게 석패하면서 정권연장에 실패해 빛을 바랬다.

2022년 6월 1일로 예정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다시 한번 선언했으나, 컷오프되면서 경선도 치러보지 못했다. 컷오프 이후엔 윤호중 - 박지현 지도부를 "신기득권 카르텔 "이라고 비판하면서 "6·1 지방선거가 심히 걱정된다"고 밝혔다. #

이후 이재명 대표 당체제로 들어서면서 교육연수원장에 임명되었다. #

2.6.1.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강북구 을 지역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지역구는 이전 선거에서 무려 64%의 득표율로 당선된 현역 재선 의원 박용진의 지역구다. 1월 12일에는 적격 판정을 받게 되었고 3월 11일, 결선끝에 결국 현역 박용진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게 되었다. # 박용진의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권리당원 투표, 여론조사에서는 모두 박용진 의원이 미세하게 앞섰으나 하위 10%에[48] 들어간 여파로 정봉주가 승리한것으로 풀이되었다. #

그러나 2024년 3월 14일, 과거에 했던 이른바 '목발 경품' 발언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오르고, 연이어 과거 발언 논란이 이어지자 # 이재명 대표가 직접 여러 문제점들을 사유로 공천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비무장지대 발목지뢰' 발언에 대해 해당 장병들에게 직접 사과했다는 말과 달리, 당사자들은 들은 적 없다고 하는 등 거짓말 정황이 드러나면서 결국 날을 넘기지 않고 늦은 오후 당에서 최종적으로 정봉주 후보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였다. # 그리고 당에서는 공천 과정에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지역구에 경선 2위 박용진 의원을 재공천하지 않고 전략 경선을 통해 재선출하기로 결정했다. #
MBC 중계방송 2023년 03월 18일
3월 18일 공천 취소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기자회견문 발표 후 가진 백브리핑에서 "성찰이 부족했던 과거 시절의 발언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정치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저 정봉주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도 "다음부터는 지역 주민들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발언하였다.

2.6.2. 더불어민주당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

2024년 7월 2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직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7월 14일 치러진 예비경선(컷오프)[49]을 통과하며 본선에 진출하였다.

전당대회 초반부에는 원외인사임에도 높은 득표율을 얻어 1위를 차지했으나 전라북도 지역 순회경선에서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에 역전당해 누적 2위로 내려갔다. 서울 지역 순회경선에서는 득표율이 급락하며 6위, 누적 3위로 김병주 후보에게 역전당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당대회 3주차 경기 지역 순회경선을 앞두고, 前 정의당 국회의원 박원석 SBS 김태현의 정치쇼 유튜브 출연 당시 발언[50]에 의해, 사석에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취지로 한 정봉주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당원들의 표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습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이재명 팔이' 무리가 이 전 대표를 망치고 있다", "'이재명 팔이' 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해명 발언으로 당원들 사이에서 비토 정서가 확산되었고 대대적인 '정봉주 낙선 운동'이 벌어졌다. 이는 4주차 마지막 지역이자 큰 표밭 중 하나인 서울 지역[51] 순회경선에 적용되었고, 정봉주는 지역 순회경선 최초로 한 자리수의 득표율을 기록하게 되었다.

정봉주에 대한 비토 정서는 전국대의원 투표[52]와 국민여론조사[53]에도 영향을 끼쳤고, 결국 8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최종 결과 6위로 밀려 낙선했다.[54] 한때 득표율 1위로 원외 수석 최고위원까지 노렸던 적도 있었으나 6위로 추락하기까지는 단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이틀 동안 서울 지역 권리당원 투표, 전국 ARS투표[55], 전국대의원 투표, 국민여론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최종 순위는 30%가 반영되는 국민여론조사에서 갈린 것으로 분석된다.[56]
2.6.2.1. 왜 1위에서 6위로 떨어졌는가
정봉주는 그동안 설화(舌禍)와 사건이 잦다는 우려가 많았음에도 BBK 주가조작 사건 다스 실소유주 논란 이명박과 싸워온 전적 때문에 민주당을 대표하는 전투형 정치인으로 밀어보자는 소위 부채의식이 지지자들 사이에 꽤 있었다. 그러나 상술된 '명팔이' 발언을 계기로 당원들 사이에서 정봉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사라지며 비토하는 여론이 더 강해졌다.

중도층과 정치 저관여층에게는 이미 목함지뢰 경품 발언 등 막말 논란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고 명팔이 발언을 계기로 그나마 남아 있던 당원들의 지지마저 사라지면서 앞으로의 정치 행보가 불투명해졌다.[57]

정봉주의 선거 전략에는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여 투쟁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김민석 후보에게 선두를 뺏긴 후에는 수석 최고위원을 놓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는지 전략을 수정했다.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최고위원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불만을 내비치거나[58] '명팔이' 발언으로 다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성 발언을 하고, 불특정 다수를 저격했다. "'명팔이'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 후보 중에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밝히겠다고만 하면서 명확히 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원들도 후보들도 '우리를 저격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표출하게 되었다.

정봉주 뿐만 아니라 한때 민주당을 나가서 민주당을 비토하던 김민석, 이언주가 있었다. 다만, 이들은 자세를 낮추며 당원들의 분란을 최대한 막아세우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빠르게 봉합했다. 여기다 이언주의 경우, 이언주가 민주당에 복당하자, 이언주를 따라 민주당으로 이적해 이언주를 돕겠다고 하는 등, 자신의 몫을 배 이상 해내기까지 했다.

당장 이낙연계부터가 당원들과 각을 세우다가 민주당을 나갔다. 그런데 이 당원들 대부분 이낙연을 당대표로 지지한 사람들이였다. 그 당원들과 각을 세운 이낙연계 핵심은 나갔으나, 생각 보다는 동요가 크지 않았는데, 이는 박지원이 새로운미래를 저격하면서 호남의 민심 동요를 막은 게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59]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흐름을 보면 당원과 지지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가 명확했다. 그건 윤석열 정권과 더 강경하게 싸우라는 것이였다. 상대에 대한 분노가 클 때에는 더더욱 자기편의 내분을 경계하고자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이재명에 대한 뒷담과 명팔이 발언을 한 이상 정봉주 전 의원의 지도부 입성은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것도 민주당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정의당 인사가 이랬으니, 이미 대선에서 심상정이 들고 나른 표 때문에 정의당을 좋게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2002년 대선 때 후단협 사태를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열린우리당 몰락 81석 민주당 시절, 끊이지 않는 내홍이 벌어졌던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2021년 이낙연이 경선 불복과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을 사보타주 한것, 2023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22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더불어민주당 분당 과정과 이낙연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 등 여러 내부분란을 겪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들과 권리당원들은 내분총질에 대한 트라우마와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봉주의 명팔이 발언은 다시 그 트라우마를 상기시킨것이다 다름없다.

반례로 전현희는 6위에서 윤석열, 김건희 살인자 발언으로 반윤투사 이미지를 얻으며 차석으로 도약하며 수혜를 누렸다.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가진 당원들은 정부여당과 싸울 투사들을 원하고 있는데 명팔이를 뿌리뽑겠다느니, 내부의 암덩어리를 씻어내겠는 말들이 하니 당연히 당원들의 입장에서는 동문 서답으로 들리는 것을 넘어 반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미 얻은 표가 워낙 많았기에 본인이 한 설화에 대해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순위에 변동만 있었을 뿐 어떻게든 간신히 최고위원 입성은 가능했을 것이다. 일례로 5위로 간신히 지도부에 입성한 이언주의 경우에도 중간에 정봉주와 비슷한 설화가 있었으나, 이를 비교적 빨리 사과하며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결국, 정봉주 특유의 당하면 가만 있지 않는다는식의 굽힐 줄 모르는 태도와 반드시 수석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어찌 보면 저번 미국 대선에서의 트럼프를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할 것이다.[60] 결과적으로 초반에 1위로 올라간 것이 최고의원 낙선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꼴이 되었다.[61]

차라리 본인이 주장한 명팔이 척결을 처음부터 앞세우면서 그 세력이나 인물들이 누구인지 공개하는 등의 강력한 행보를 보였다면 어느 정도 공간이 열릴 가능성이 있었다. 진박이나 윤핵관의 예시처럼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내부에서 유력자를 팔고 다니면서 분란을 일으키는것이 흔한데다가, 애초 정봉주 후보 자체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면서 딱히 친명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일종의 별동대 같은 느낌으로 출마했었기 때문이다[62] . 하지만 선거 초반에는 별 말이 없다가 박원석[63]의 폭로 이후 갑자기 스탠스를 바꿔버림으로써 결국 친명, 비명계 양쪽에서 모두 배척받게 되었다. 게다가 명팔이 세력이 있다고 주장은 하면서도 구체적인 인물이 누군지는 당내 분란의 우려가 있다고 공개 하지 않으며 앞뒤가 다른 말을 하고 나중에 가서는 선거 이후 공개하겠다면서 무책임한 행보를 이어갔다. 애초에 당내 분란을 바라지 않았다면, 명팔이 같은 발언도 하지 말아야 했다.

당장 이준석은 대선 국면에서 윤핵관을 언급하면서 핵심 멤버들을 공개해 대놓고 때리거나 대선 이후에도 체리따봉 논란을 시전하는 등, 확실히 공개를 했었기 때문에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마이너스 삼선 중진이라 놀림받는 이준석도 이럴진대, 정봉주는 국회의원을 역임해봤다는 사람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이명박과 싸운걸 어필한것도 본인이 일으킨 분란으로 다 말아먹고, 젊은 2030 당원들 마저도 알고 싶지도 않은데 어쩌라는거냐는 비토를 받는 등 이미 사면초가 상태에 놓여있었다.

게다가 정작 정봉주 본인도 명팔이 논란에서 전혀 자유롭지가 않다. 위에 열린민주당 문단에도 상술되어 있지만,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이재명이 선출되자 바로 지지선언을 하며 이낙연 뮨파들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것도 정봉주 본인이고, 22대 총선 당시 친명행세를 하며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 박용진을 꺾은 것도 바로 정봉주 본인이다.

게다가 강북 을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되고도 공천이 취소되었는데 이것도 과거에 한 발언에 대해 사과를 안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공천이 취소된것이다. 전반적으로 과거도 그렇고 전당대회때도 그렇고 정봉주의 정치 인생에 고질적인 걸림돌이라고 평가받던 '설화(舌禍)' 논란이 이번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평이 많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봉주 본인이 친명도 아닌 주제에 명팔이를 해댄 장본인이다.[64]

최고위원 낙선이후 본인 SNS에 다시 볼 날을 기대하겠다면서 글을 올렸다. # 이후 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던거 같지만 그럼에도 당원들의 선택이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술 더 떠서 정봉주 후보 측 인사가 아예 이재명 대표가 직접 선거에 개입한거 아니냐는 주장을 하자, 이에 이재명 대표 측은 100만이 넘는 권리당원이 있는데 조직적인 움직임이 어떻게 작동하겠냐면서 개입설을 일축했다. #

어떻게 보면 본인이 스스로 정봉주 정치인생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인데, 상기했듯이 최고위원으로 입성한 이언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언주는 과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으로 이적하는 과정에 강경 보수 스탠스를 보이면서 문재인을 엄청나게 비난하는 스탠스를 취했었던 과거 때문에 좋지 않게 본 당원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언주를 뽑기 주저했었던 당원들이 또 탈당하면 어쩌나 이런 시선이 분명히 있었다.[65]

다만, 현재도 문재인과 이재명을 둘다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딱히 문재인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스탠스가 아닌 당원들도 많다.[66][67] 여하튼 이언주가 민주당과 문재인을 비토한 적이 있었다 보니, 토론회에서 당원들에게 사과할 용의가 있느냐는 말을 했고, 이언주는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당원들이 "그럼 한 번 지켜보겠다."고 기회를 준 적이 있다.[68] 정봉주에게 이언주는 완벽한 안티테제였던 셈이다. 강북 을에서 박용진을 이기고도, 공천을 취소 당한 것도 본인이 발언을 한 번도 사과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봉주의 안티테제는 이언주 말고 당장 국민의당 인사들이 이재명 시기에 복당해 다시 민주당에서 기회를 받아 성공적으로 복귀에 성공한 케이스가 정동영, 박지원이다.

또, 민주계 정당 당원들의 스탠스는 대세에 따라서 바뀌는 성향이 있다. 자연스럽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으로 이어져왔다.

국민여론조사를 무려 30%까지 늘렸음에도 당원들이 반발하지 않은 이유는, 당원 여론과 국민 여론이 일치하지 않음을 당원 100%로 바꿨다가 재보궐과 총선을 참패한 국민의힘 때문이다. 국민여론조사에서 30%를 적용한다는 것은 역선택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당원 보다 비중이 크지만 인원수가 적었던 대의원의 비중을 줄이고 권리당원의 비율을 크게 늘리는 것으로 봉합이 됐다.

이 게 모두 이재명 지도부 시절에 일어났던 것이기에 당연하게도 이재명을 비토하는 것이 친명이든 비명이든 당원들에게 좋게 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에 낙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 비판 및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정봉주/비판 및 논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여담

파일:1442191646509148.jpg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평화민주당|
파일:평화민주당 글자.svg
]]
1988 - 1991 정계 입문


[[신민주연합당|
파일:신민주연합당 로고타입.svg
]]
1991 당명 변경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1 탈당


1991 - 1995 복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5 탈당[88]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2000 창당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3 합당[89]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3 탈당[90]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7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7 탈당[91]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창당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92]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2 합당[93]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2 - 2019 당적 상실[94][95]

2019 - 2020 복당[96]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0 탈당[97]


[[열린민주당|
파일:열린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 2022 창당

2022 - 현재 합당[98]
정계 은퇴
정계 복귀[99]

6.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52484><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152484>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1 지방선거 서울 노원 3

[[신민주연합당|
파일:신민주연합당 로고타입.svg
]]
4,769 (39.03%)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갑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36,992 (42.69%)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6,251 (37.62%) 낙선 (2위)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wjdqhdwn (1).jpg 파일:wjdqhdwn (2).jpg
1991년 지선 (서울 노원구 제3선거구) 17대 총선 (서울 노원구 갑)
파일:wjdqhdwn (3).jpg
18대 총선 (서울 노원구 갑) }}}}}}}}}

7. 둘러보기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 제17대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종로 성동 갑 성동 을
박진 박성범 진영 최재천 임종석
광진 갑 광진 을 중랑 갑
김영춘 김형주 김희선 홍준표 이화영
중랑 을 성북 갑 성북 을 강북 갑 강북 을
김덕규 유재건 조순형 오영식 최규식
도봉 갑 도봉 을 노원 갑 노원 을 노원 병
김근태 유인태 정봉주 우원식 임채정
은평 갑 은평 을 마포 갑
이미경 이재오 우상호 정두언 노웅래
마포 을 양천 갑 양천 을 강서 갑 강서 을
정청래 원희룡 김낙순 신기남 노현송
구로 갑
고진화 권영세 이인영 김한길 이목희
동작 갑 동작 을 관악 갑 관악 을 서초 갑
전병헌 이계안 유기홍 이해찬 이혜훈
서초 을 강남 갑 강남 을 송파 갑 송파 을
김덕룡 이종구 공성진 맹형규 박계동
송파 병 강동 갑 강동 을
이근식 김충환 이상경
* 성북 을 신계륜 의원직 상실 (2006.2.10.)
* 송파 갑 맹형규 사퇴 (2006.1.31.)
}}}
}}}}}}

{{{#!wiki style="margin: -7px -10px -10px;"
{{{#!wiki style="margin: -6px 0px -1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419639><tablebgcolor=#419639>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419639><tablebgcolor=#419639>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강기정 강봉균 강성종 강창일 강혜숙
김교흥 김근태 김낙순 김덕규 김동철
김명자 김부겸 김성곤 김송자 김영대
김영주 김우남 김원기 김원웅 김재윤
김재홍 김종률 김종인 김진표 김춘진
김태년 김태홍 김한길 김현미 김형주
김효석 김희선 노영민 노웅래 노현송
문병호 문석호 문학진 문희상 민병두
박기춘 박명광 박병석 박영선 박찬석
배기선 백원우 변재일 서갑원 서재관
서혜석 선병렬 손봉숙 송영길 신국환
신기남 신명 신중식 신학용 안민석
양승조 양형일 염동연 오영식 오제세
우상호 우원식 우윤근 우제창 우제항
원혜영 유기홍 유선호 유승희 유인태
유필우 윤원호 윤호중 이강래 이경숙
이계안 이광재 이광철 이기우 이낙연
이목희 이미경 이상경 이석현 이승희
이시종 이영호 이원영 이은영 이인영
이종걸 이화영 임종석 장경수 장복심
장영달 장향숙 전병헌 정동채 정봉주
정성호 정세균 정의용 정장선 정청래
제종길 조경태 조배숙 조성래 조성태
조일현 조정식 주승용 지병문 채수찬
채일병 천정배 최규성 최규식 최성
최용규 최인기 최재성 최재천 최철국
한광원 한명숙 한병도 홍미영 홍재형
홍창선 }}}
}}}}}}


[1] 선거구 개편 전 노원구 갑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 이다. [2]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인해 재보궐선거 미실시. [3] 호적상 1960년생. 실제로는 1959년생인데, 주민등록을 늦게 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를 1978년에 졸업했다. [4] 생일이 4월 14일이라는 얘기도 있다. [5] 삼봉 정도전의 21대손이다. [6]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예비후보 시절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7] 1963년생. 1983년에 정봉주의 친누님이 운영하던 다방에서 우연히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으나, 이후 몇달만에 정봉주가 학생운동으로 구속되면서부터, 오랜 기간 결별과 재회를 반복하다가 수년간 미국에 유학 갔던 정봉주의 귀국 후 극적인 재회로, 끝난 줄 알았던 관계가 다시 시작되어 1995년에 결혼했다고 밝혔다. 공개한 혼인시점에 거짓이 없다면 1990년대 후반에 이혼했다가 2001년 이후에 다시 혼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8] 2018년에 아들이 군 복무를 시작했을 때 부친 정봉주가 자신의 트위터로 훈련소 수료식에서 자신과 함께 찍은 아들의 사진을 통해 공개했다. 사실 자세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도 자신의 팟캐스트 및 유튜브에서 지나가는 얘기로 아들 이야기를 짧게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언급을 한 방송에서 "우리 아들도 1997년생이라 세월호 학생들과 똑같은 나이라 내 친아들딸들 같은 기분이 들어 당시 집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9] 재혼했다가 이혼한 2번째 부인 김씨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다. 대신 친모 가능성과 별개로, 양육과 어머니 역할은 계속 송씨가 해왔다. 정봉주가 구속되어 있던 시기의 일에 대한 인터뷰에서도, 송씨는 밤에 부친 정봉주를 보고 싶다고 그리워하며 울던 딸을 본인이 끌어안고 같이 잤던 적이 많다고 말했었다. [10] 2012년에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었고,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고 밝혔다. [11] 現 서울연촌초등학교 [12] TESOL 자격증을 취득했다. [13] 교육경영 평생교육 전공 [14] 석사 학위 논문: 사립학교법 개정사례에 나타난 교육정책결정과정연구 : 제17대 국회 1·2차 사립학교법 개정 과정을 중심으로 (2008) [15] 석사 학위 논문: 인구변화요인이 젠더불평등에 미친 영향 : OECD 회원국 비교 연구(1990-2020) (2023 [16] ROTC 후보생 시절 학생운동으로 수감되어 제적 [17] 2022년 9월 15일 기준 [18] 본인 말로는 안민석, 정청래, 김비오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일단 정봉주계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최강욱 한 사람 정도다. 본인의 계파는 아니더라도 일단 안민석, 정청래 의원과는 꽤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 있다. [19] 사면과 복권은 조금 다른데, 정봉주는 선고받은 징역형에 대해서는 이미 만기출소를 했기 때문에 복권 대상자이다. [20] 본인 말로는 80년대초 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정봉주 본인은 갖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민주화운동(학생운동)하는 학생들 중에는 자기밖에 없어서 전설적인 민주화 운동가 문익환 목사를 경찰에 걸리지 않게 자기 차로 시위 및 연설현장에 모셔가기도 했다고. [21] 당시 민주화 운동 인사들 중 차를 몰던 사람이 세 명 있었다고 한다. 서점을 하며 용달차를 몰던 이해찬, 유시춘, 정봉주. 근데 이해찬과 유시춘은 정봉주와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22] 또한 특정 기간 이상 감옥을 갔기 때문에 수형자 병역규정에 의해 자동으로 군면제(정확히는 제2국민역)가 되었다. [23] 당시에는 민언협이라 불렸다. [24] 정봉주가 방송에서 상당히 자주 하는 얘기인데 3번째 기자라고 한다. 첫 번째 기자는 훗날 국회의원이 된 민언련 출신 정치인 최민희, 2호 기자는 훗날 그 최민희와 결혼한 정수웅. 사실 정수웅은 최민희의 후배였고, 최민희은 민언련 들어갈 때 다른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었다고 하는데, 기자 활동을 하다가 그 남자와 이별을 하게 되자 정수웅이 고백해서 연애에 성공하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정봉주와 함께 방송하면서 정봉주가 최민희에게 '기자일 하라고 했더니 2호 기자랑(정수웅) 연애를 해서 결혼했다'고 놀리자 최민희가 '그때 데이트는 3호 기자(정봉주)랑 했다'고 농담으로 받아친 적이 있는데, 정봉주는 '우리 집사람이 이 방송 보니까 조심하라'고 농담으로 넘겼다. 당시 최민희가 연애했다는 진짜 남자친구가 정봉주인지는 알 수 없다. [25] 선거 낙선 후에 자금력이 받쳐줘야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이 형량 다 채우고 만기출소 이후에 생계가 막막해지자, 정봉주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으로 그를 불러 강사 일자리 및 생계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 당시 운동권 출신들은 시위 전과 경력으로 인해 제도권으로 취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었던 교사들도 생계를 위해 사교육계로 많이 진출했었다. [26] 외대어학원은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인 측에서 다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27] 운명의 장난인지, 안타깝게 정봉주가 BBK 사건으로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감옥에 가게 되자마자 바로 일주일만에 김근태가 사망하여 김근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28] 서울이나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은 해당 지역구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지인 출신이 많다. 하지만 정봉주는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공릉동)에서 세습 없이 국회의원이 된 드문 케이스다. 보수정당까지 범위를 넓혀도 종로구에서 3선 의원(16~18대)을 지낸 박진 의원 정도가 끝이다. 서울 21대 국회의원 국회의원 중 자신의 출생지에서 국회의원이 된 케이스는 2명( 노웅래, 김영호)이 더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선친의 지역구를 이어받은 케이스이며, 고민정 의원은 광진구 출생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본인 지역구 출신은 아니다. [29]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이 열린우리당을 흡수합당하면서 원내1당이 되었다. [30] 정봉주가 지지하던 손학규 당시 후보가 경선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 이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이긴 했다. [31] 자서전에 손학규 시절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이 시기가 확실하다. [32] 손학규 캠프와 정동영 캠프의 몸싸움 현장에 이재명은 없었다. 충돌이 있은 후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이재명이 캠프의 연락을 받고 변호를 위해 경찰서로 간 것. 이 때가 이재명과 정봉주의 첫 만남이라고 한다. [33] 한때 이명박의 측근이었으나 지금은 결별한 정두언도 이것을 보고 떨었다고 언급하며 예전에는 설마 그 약은 MB가 걸려들어가겠냐고 했으나, 그 상황을 본 직후 'MB는 종쳤다.'라는 언급을 대놓고 할 정도로 상황이 이명박에게 급속도로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34] 거기다가 정봉주는 이명박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김백준을 잡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김백준을 수사할 때도 반드시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JTBC 뉴스룸에서 지적했다. [35] 이때 당선된 현경병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300만 원 벌금형 확정 판결을 받고 2011년 6월 의원직을 잃었다. 바꿔 말하면, 18대 총선 당시 노원구 갑 주민들은 누구를 찍던 자신들의 국회의원이 임기 도중 궐위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36] 여담이지만, 공직선거법 270조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항소심 선고 이후 상고심은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을 무시하고 2008년 12월 11일 항소심 선고 이후 3개월 안에 판결해야할 상고심을 2년 이상 미룬뒤 후임 대법관에게 넘긴 정봉주 상고심의 주심 대법관이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양승태는 이 건 판결 전에 퇴임 후 중앙선관위원장을 거쳐 이명박 정권 때 대법원장으로 임명받았고, 정봉주 상고심은 후임 이상훈 대법관에 의해 2011년에 12월에야 원심유지 판결로 1년형이 확정된다. [37] 대학생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감옥을 간 건 민주화운동 징역이 맞다. [38] 이미 정봉주는 선고받은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했기에 사면이 아닌 복권 대상이다. [39] 강병원, 강훈식, 고용진, 기동민, 김경수, 김경진, 김관영, 김광수, 김두관, 김민기, 김병관, 김병기, 김병욱, 김상희, 김성수, 김수민, 김영진, 김영호, 김종대, 김종민, 김종회, 김진표, 김철민, 김태년, 김한정, 김해영, 김현권, 남인순, 노웅래, 노회찬, 민병두, 민홍철, 박경미, 박광온, 박남춘, 박범계, 박선숙, 박영선, 박용진, 박재호, 박 정, 박주민, 박주선, 박주현, 박준영, 박지원, 박찬대, 박홍근, 백혜련, 변재일, 서영교, 서형수, 설 훈, 소병훈, 손혜원, 송기석, 송기헌, 송영길, 송옥주, 신경민, 신동근, 신창현, 심기준, 심상정, 심재권, 안규백, 안민석, 안호영, 양승조, 어기구, 오영훈, 오제세, 우상호, 원혜영, 위성곤, 유성엽, 유승희, 유은혜, 윤관석, 윤소하, 윤영일, 윤후덕, 이개호, 이동섭, 이상민, 이석현, 이수혁, 이용득, 이원욱, 이인영, 이재정, 이정미, 이종걸, 이찬열, 이철희, 이춘석, 이학영, 이해찬, 이 훈, 임종성, 장정숙, 전재수, 전해철, 전현희, 전혜숙, 정동영, 정성호, 정재호, 정춘숙, 제윤경, 조배숙, 조승래,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천정배, 최경환, 최운열, 최인호, 추혜선,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홍익표, 황주홍. 총 125명. [40] 정봉주와 원래부터 친한 안민석, 정봉주의 첫 공직선거에서 공천장을 써준 정동영은 물론이고, 정봉주의 지역구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12년만에 다시 꽂은 고용진 의원도 서명에 동참했다. [41] 형을 모두 살아서 사면은 아니고 복권이었다. 정치인과 경제인 중에 정봉주 단 1명 외에는 사면이나 복권된 사람이 없었다. [42] 12:03부터 정봉주의 전국구에서도 동일한 언급을 했다. [43] 참고로 노원구 병은 정봉주와 상당한 친분을 가진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원래 지역구이다. 원래 창원 성산의 국회의원이었던 권영길이 건강 사유로 불출마하게 되자 노회찬에게 대신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해서 노회찬이 잠시 창원 성산으로 내려간 것뿐. [44] 같은 당의 금태섭 의원이 있는 지역구. 나중에 유인태 국회사무총장 밝힌 바에 따르면, 금태섭을 살려내기 위해 이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정봉주와 김남국을 당 지도부에서 주저앉힌 것이라고. [45] 특히 시민당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홍걸 [46] 자신을 모략하고 음해하고 시정잡배에 개쓰레기 취급을 했다며 그렇게 말하고도 앞으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 같냐고 짐승만도 못한 짓이라 비난한 뒤, '내가 영원히 을로 있을 줄 아냐.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을테니 갑과 을이 언제 바뀌는지 한번 보자'고 말했다. [47] 다음날 진행한 욕설 사과방송에서는 윤호중을 향한 욕은 잘못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홍걸을 언급하려다 윤호중을 언급했다고 한다. [48] 참고로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일 경우 경선에서 감점이 무려 30점이다. 하위 20%의 경우 감점 20점. [49] 전당대회 예비경선 과정에 최초로 권리당원 의사가 반영되었다(기존에는 중앙위원 투표 100%).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 투표 50%와 권리당원 투표 50%를 합산하여 상위 8명에게 본선 진출권을 부여한다. [50] 라디오 프로그램이지만, 라디오와 유튜브 동시 송출방송이 끝나면 순수 유튜브 생방송을 한다. 지상파 라디오로 하기 곤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유튜브 방송. 사담과 비슷한 형식을 취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SBS 소유인 유튜브이다 보니 아예 선을 넘는 수준은 말하지 못한다. [51] 민주당이 '호남정당'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꽤 있지만 역사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권리당원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 그 다음이 서울이다. 그간 민주당계가 수도권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져도, 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를 만든 것이 아니다. 호남은 인구 수 대비 권리당원의 수가 많은 지역일 뿐. 그리고 정봉주 본인도 서울 노원구 출신이므로 서울에서 표를 많이 확보했어야 하는 상황이였다. [52] 14% 반영. [53] 30% 반영.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54] 8명 중 5위까지가 당선권인데 5위를 기록한 이언주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단 0.6%p였다. [55] 지역 순회경선 온라인투표 시기를 놓친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투표. [56] 정봉주가 나름 유명세가 있고,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가상 여론조사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차지했기 때문에 국민여론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9%밖에 얻지 못했다. [57] 일부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정봉주가 떨어진걸 아쉬워하는 반응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정말 정봉주가 괜찮아서 라기보다. "정봉주가 지도부에 지도부에 들어가서 명팔이 발언처럼 분란을 일으키고, 목함지뢰 경품 발언같은 막말논란을 일으켜 줬으면 좋겠다."는 역선택 심리에 가깝다. 그나마도, 국민의힘이랍시고, 친윤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윤석열이 설화가 많아져서 윤석열 하나로 충분히 지치는데 정봉주까지 보고 싶지 않다는 여론도 많았기에 이 정도였다. [58] 첫 주 순회경선 이후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김민석 의원이 왜 이리 표가 안 나오느냐"고 한 마디한 영상이 퍼졌다. [59] 사실 박지원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이미 이낙연계가 분열해서 이낙연의 최측근 이개호 의원의 경우, 손절까지 천명하면서 이낙연을 비토해 민주당에 남아 아예 친명계로 넘어가자, 이낙연계의 일부는 비슷하게 탈당을 강행했었다가 1년 만에 망해버린 국민의당 사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탈당을 주저하고 있었던 때에 비명계이자 동교동계 핵심인사인 박지원이 한 방을 크게 날리며(사실 설훈 들으라고 하는 소리이긴 했다.) 민주당이 이재명 중심으로 모아진 게 크다. [60] 트럼프 또한 재임 기간에 많은 설화를 일으키고도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결과 민주당 바이든에게 대선에서 참패하게 되면서 재선에 실패하게 되었다. [61] 실제 정봉주 후보는 컷오프에서 살아왔을때만 해도 5등이라도 좋으니까 최고의원에 입성만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계속 보였었다. 아무래도 그러다가 초반에 1위를 하며 예상밖의 결과가 나오니 "나도 혹시?"하는 마음이 생긴것으로 추측된다. [62] 이재명 당시 후보가 최고위원 후보들을 본인에 차에 태워서 했던 인터뷰에서, 정봉주는 최고위원 후보들 중에서 본인보다 이재명 당시 후보와 오래알고 있던 사람이 있겠냐면서 진짜로 친한 사람은 친한것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발언했으며 이재명 후보역시 정봉주 후보와 인연이 오래되었다면서 여러 얘기를 하기도 했다. [63] 심지어 이 사람은 민주당도 아니였다. [64] 당장 보수정당의 윤핵관'호소인' 같은 경우가 있다. [65] 다만 고민정이 비명계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어 총선에서 재당선되어 자연스럽게 친명으로 간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이언주 본인이 정치를 은퇴할 게 아니라면 죽어도 다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언주 본인도 더 갈 곳도 없다고 자조적으로 셀프디스하기도 했고 뭣 보다, 이언주 지역구부터가 용인시 정인데, 여긴 지역구가 생긴 이래, 계속 꾸준하게 상위 평가를 달렸던 지역구 의원이 연달아 불출마를 선언하는 바람에, 재선한 의원 자체가 없다. 그러니 제발 불출마하지 말고 오래좀 해달라는 의미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용인시 갑이 보수정당 당선자가 3연속 의원직 상실로 민주당 당선자가 나온 것을 생각해보면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기도 하고, [66] 심지어 평산마을에 책방이나 하고있지, 왜 자꾸 등판해서 상왕 행새를 하고 부산 지역 후보들을 방해해서 200석을 놓치게 하느냐, 숨겨진 친윤이냐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문재인의 비호감도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문재인 보다도 못한 사례가 우후죽순 나와서, 문재인 정부가 차라리 낫다는 거지, 문재인 개인이 좋아서 지지한 건 전혀 아니였기 때문에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당장 이시종 전 충북지사, 권영세 전 안동시장부터가 비문 보수계이고, 문재인을 지지한 초강성 지지층 극문들은 이재명이 싫단 이유 하나만으로 뮨파로 변모해 문재인의 뒷통수를 쳤기 때문에 문재인이 만악의 근원이라 생각해 야권의 200석을 문재인 때문에 놓쳤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출구조사에서 유독 부산에서 빗나간 영향도 그 때문이였다. 전재수는 일꾼임을 강조해 오로지 실력으로 전직 부산시장 서병수를 압도적으로 꺾고 3선 고지에 오르기도 했으니. [67] 지방선거가 끝난 뒤, 극문들이 대거 분열하는 일이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였던 윤석열의 반문 행보를 보고, 그들이 가장 혐오했던 이재명 지지로 선회하게 된 계기부터가 이들이 뮨파였기 때문에 싹 제명을 해도 모자랐지만, 이재명은 대사면을 하면서까지 이들을 받아주는 탕평책을 펼쳤다. 따라서 비명계들이 강성 지지자들의 비토를 받을지언정, 이낙연처럼 스스로 나가지 않는 이상, 이들을 내다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보수정당이 이준석계를 내다 버린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인 셈. 물론 뮨파의 핵심인사였던 사람 윤석열 정부에서 자리를 받았다. [68] 이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나와서 더 갈 곳도 없다며, 본인의 실책을 인정한 바가 있다. 따라서 이언주는 그 전부터 탈당은 본인의 실책이였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언주가 민주당에 복당한 이유도 당에서 이재명을 비판한다고 해서 강성 지지자들의 비토를 받아도 징계를 받지는 않지만, 국민의힘은 비슷한 스탠스를 보이면 징계를 때리기 때문. 이미 이준석의 전례도 있고. [69] 충북 청주 FC [70] 그때의 K3리그는 지금과 달리 아마추어와 세미프로가 혼재한 형태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71] 물론 기독교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괄하는 용어이므로, 이 경우는 기독교가 아닌 개신교로 호칭하는 것이 맞는다 [72]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이 밝힌 키는 168cm, 출소 후 몸짱이 되어 보디빌딩 책도 내고 보디빌딩 대회도 준비하던 시기 168cm에 74kg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 남성 평균키는 173~174cm 정도라 정봉주의 키는 다소 작은 편이지만 1960년대 출생자들과 비교해보면 평균에 가깝다. [73] 언론에 공개된 과거사진 중 70년대에 산에서 웃통벗고 무술연습을 하다가 찍은 발차기하는 사진이 있다. [74] 그러나 본인 말로는 싸움 잘하는 학생치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는데 암기과목을 등한시해서 대학에 떨어졌다가 나중에 재수하던 친구가 암기과목을 더 하라고 조언을 해줘서 대학에 갔다고 한다. [75] 오죽하면 이때에 운동까지 하면서 몸까지 만들고 나와 책까지 냈을 정도. 정치범죄자들은 보통 조용하게 지내거나 하는데, 교도관들이 말하길, 다른 정치사범들과는 달리, 굉장히 낙천적이었다고 한다. [76] 공직선거법상 규정도 그렇고, 노원구 조례상으로도 그렇고 월계동 공릉동보다 앞서 언급되어 직제상 서열이 앞선다. 실제로 지역구 후임자 [77] 당시 안철수의 복심으로 불리던 시골의사 박경철에 대해 정부가 세무조사를 했다는 루머로, 후에 밝혀진 바로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78] 본인 증언인데, 그냥 막말수준이 아니라 진짜 욕이었다. 정봉주가 전화를 걸어 "어이, 기자, 어떻게 인간적으로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하자, 기자가 피곤한척 목소리를 깔면서 "여보세요~ 어~ 제가 뭐 기사를 잘못 쓰기라도 했습니까?" 라며 피곤한척하자, 너무 화가 나서 "어? 이 개XX가 지금 어디서 개기름 바른 목소리를 깔고 있어 이 새X가, 야 이 씨XX아!"라고 했고, 기자가 "어어? 이거 너무하신거 아닙니까?"라고 항의하자, "너무하긴 이 개XX야 너 나 정봉주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거지? 모가지를 비틀어버릴까 이 개XX가, 뭐 내가 일부러 괴담을 퍼뜨려? 그래 내가 뭐 말하면 당연히 쫙 퍼지지 내가 (트위터) 팔로워가 20만명인데, 이 씨XX아 너 (피곤한척하는) 목소리 원래 목소리로 안 해? 이 새X가 어디 목소리에 개기름을 발라 목소리를 깔고 있어?"라고 했고, 기자가 상황을 넘기기 위해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걸게요" 라고 하자 "전화하지마 이 쌍X무 새X야"라고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정봉주의 분노에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기자가 실제로 몇시간 뒤에 피곤한 톤이 아닌 원래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건 기자가 "정봉주 선배님 저 OOO기자입니다"라고 하자마자, 분이 안 풀린 정봉주는 "너인줄 아니까 전화끊어 이 새끼야"라고 하고 끊어버렸다고. 주진우는 이 이야기를 듣고 " 조선일보 기자에게 쌍욕하는 정치인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79] 1959년생이 삼수했을 때 대학입학하는 나이다. [80] 과거 팟캐스트 방송에서 말할 때도 그냥 '흥국이가', '김흥국이랑 나랑 친구먹은 사인데' 이렇게 부른 걸로 보아 형동생 사이는 아니다. 근데 문제는 정봉주가 대학시절이나 정치입문 후 좀 불규칙하게 친구를 먹어서 1960년생들하고도 친구를 먹기도 하고, 1959년생과 친구를 먹기도 하고(근데 이쪽은 정치입문 후 빈도가 적다), 반대로 일부 59년생 정치인이나 지인들을 선배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 그래도 59년생과 60년생만 문제지, 대학 동기인 1961년생들과는 친구를 먹지는 않았다. [81] 출생신고가 1년 늦는 이런 케이스로는 홍준표, 안희정, 이재명 등 정치인들도 상당히 있다. 모두 빠른 나이(1, 2월생)가 아님에도, 출생신고는 1년 늦게 하고 학교는 실제나이 만6세(법적 나이 만 5세), 즉 한국나이 8살(법적 나이 7살)부터 다녔다고 한다. [82] 실질적으로 매주 한번은 무조건 갔다고 한다. 또한 안민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봉주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자 이명박을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으며, 문재인 정부로 정권 교체가 된 직후로는 아예 이명박 구속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83] 안민석이 정봉주가 진행하는 방송인 정봉주의 뉴스쇼에 나와서 한 말로는, 정봉주가 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했을 때, 재선에 성공한 안민석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안민석의 보좌관들에게 대신 정책 연구 주문을 하고 잘못하면 혼내기까지 하는 등 비선실세 놀이를 했다고 한다. [84] 정봉주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친노-범친문계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의당 주요 인사들 중 한때는 같은 정당소속이었던 참여계뿐만 아니라 진보신당계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회찬과 심상정, 조승수가 속해있는 계파이다). 더 놀라운 건 정봉주가 복당 원서를 제출한 더불어민주당은 일부 의원이 정봉주 복권에 개인사정으로 서명을 하지 않았지만, 정의당은 소속 의원 전체가 정봉주 복권에 서명을 한 바 있다. [85] 언급된 국민의당 의원들 모두 정봉주 복권 탄원서에 직접 서명한 사람들이다. [86] 같은 서울토박이인 손석희와 비교해 보면, 억양이 확실히 살아있다. 동년배 유명인사들 치고는 서울 억양이 상당히 강한 케이스. [87] 지역구 후임자 고용진 21대 총선 당선 직후 배우자와 사별했다. [88]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위한 탈당. [89]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 [90]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 [91]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92]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 [93]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 [94] 실형선고로 인한 피선거권 박탈 및 당적 상실. [95] 2018년 민주당 복당을 신청하였으나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 복당이 불허되었다. [96] 성추행 의혹 1심 무죄 이후 복당허가. [97] 열린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 [98] 더불어민주당에 흡수 합당. [99] 최고위원 출마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