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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0:59:48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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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gray><colcolor=#fff> 박경철
朴慶哲 | Park Gyeong-chul
파일:박경철.jpg
출생 1964년 11월 10일 ([age(1964-11-10)]세)
경상북도 안동시
신체 177cm, 77kg
학력 덕원고등학교 ( 졸업)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 의학 / 학사)
직업 의사, 작가, 강사
가족 배우자 정은승, 슬하 2남 1녀[1]
종교 가톨릭^(세례명:안토니오)^
블로그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소개2. 생애3. 작가 박경철4. 주식 고수 박경철
4.1. 시골의사 박경철이 말하는 투자
5. 강사/방송인 박경철6. 정치 활동7. 안철수의 절친 박경철8. 근황9. 저서

[clearfix]

1. 소개

대한민국 의사. 대장항문외과 & 외상외과 전문의, 부검의, 타칭 주식고수[2], 칼럼니스트, 방송인, 작가 등 의료직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 생애

덕원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대전나사렛예수병원[3] 등 여러 병원을 거쳐서 2001년 고향 안동시에서 개업하였는데 한때 개인병원 전국 환자 수 3위를 달릴 정도로 성공했다. 참고로 개업은 경찰관이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4]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종합병원 의사 월급으론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자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한다. 이때도 주변 동료들이 적금을 깨거나 대출을 받아 도와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고 1년 365일 쉬지 않고 진료하는 성실성 덕에 성공해서 모든 빚을 청산했다고. 다른 여러가지 활동 때문에 주말에만 진료하며 주중에는 같이 개업했던 동료들이 맡는 식으로 운영했었으나 현재는 폐업했다.

2007년 한때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을 맡아서 일했는데 빈민층을 위한 의료복지 확대와 각종 의료제도 개선을 주장했으나 결국 3개월만에 사퇴했다. 당시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 의료행위로 돈 벌려고 해서는 안 되고, 돈 못 벌고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빈민층에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 대한민국 대부분의 의사들이 아직 그 정도 양심은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이것 말고도 잘했냐/못했냐를 떠나 여러가지 이슈에 오르내리는 바람에 신나게 까였으며 당시 약제 성분명 표기를 가지고 시민단체와 충돌하기도 했는데 "복제약은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리지날을 써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해프닝도 있으나 최초 세무조사 의혹을 공개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조사"라는 단어밖에 못 들었고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다가 세무조사라고 잘못 한 데 원인이었고 이것을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 중에 하여 기사화된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선 성형외과 치과 같이 거액의 현찰박치기를 많이 하는 병원 말고는 세무조사의 타겟이 잘 되지 않는다. 환자들의 진료기록이 거의 대부분 건강보험공단의 전산자료로 실시간 집계되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 국민건강보험과 보험급여 때문에 진료 자체가 전산상에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앞서 언급된 성형외과 치과는 현찰도 현찰이지만 비급여 의료 대상이 많기 때문이다. 성형외과에서 벌어지는 의료서비스의 대부분은 생명이나 환자 후생에 관련이 없으니 건강보험 급여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당국에서 파악이 힘들다. 피부과도 미용 목적의 서비스는 똑같다. 치과는 치료의 상당수는 급여대상이지만 치료 후 이에 충전재를 넣는 상황에서 아말감을 제외하면 거의 급여가 안 된다. 신경치료이니 스케일링이니 하는 것보다 치과 충전재 값이 훨씬 비싼 이유다. 아말감으로 때우면 정말 엄청나게 싸다.

3. 작가 박경철

본인과 주변의 의사들이 실제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글을 연재한 네이버 블로그가 인기를 얻으면서 파워블로거 인증을 받았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쓴 경험담들 중 감명깊은 것을 모아서 2005년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출판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5] 독버섯 사건이나 치매노인 관련 사건[6], 여호와의 증인 수혈거부 사건[7], 뇌사와 장기이식 같이 임팩트 있는 회고록은 오래도록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고된다.

2005년 소설가 권지예가 그의 글을 표절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2011년 가을에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란 에세이집을 출판하여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외에도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2 등의 서적을 출판하였다.

2013년 2월엔 페르시아 문명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이란에 취재하러 갔는데 트위터에 관련 사진들이 많이 올라왔다. 트위터 얘기가 나와서 추가하자면 밤마다 야식 트윗을 올려서 팔로워들에게 악마의 유혹을 날리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2013년 이후론 블로그 활동이 없었다가 2023년 자신을 사칭하는 주식 리딩방이 생기자 이를 경고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4. 주식 고수 박경철

대학 재학시절부터 주식에 관심을 가져서 독학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주식투자 예상을 선보였다. 특히 주요 고비 때마다 맞아 떨어지는 예측을 몇 번 하여 많은 개미들이 신뢰하는 투자분석가가 되었다. 본인의 투자계좌 인증 이력은 없다. 이런 공로로 2006년 증권사가 선정한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업계 종사자가 아닌 외부인으로 최초라고 한다. 박경철이 했던 주요 예측을 살펴보면
반면 그의 예측이 엇나가 보일 때도 있는데 2008년 이후 그는 매도론을 설파했지만, 2년 후 종합지수는 2300까지 상승했다. 이를 두고 그의 영향력 때문에 거기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책임론이 있는데 정확한 이야기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얘기한 시점에서는 이미 주가가 상당히 극단적인 고점에 가까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매도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시장은 800 선까지 하락했기 때문에 이때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관심을 끊거나 깡통계좌가 속출했으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추가로 보충하자면 박경철의 증시 분석은 주로 [9]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비 전문가 또는 아마추어가 주식투자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신뢰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투자기법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주식에 유명한 이론인 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 을 근거로 하여 그 주식에 대한 고유 가치(Intrinsic Value)와 시장 가치(Market Value)를 비교하는 고유 가치 분석(Fundamental Analysis Technique) 또는 그래프 분석을 통한 기술적 가치 분석(Technical Analysis Technique)이다.[10] 하지만 그의 매수와 매도 시점에 대한 것은 이러한 전문적인 이론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기관 투자자의 기법과 거리가 멀다.[11][12]

기관 투자자들은 이러한 전문적인 지식들, 특히 CAPM을 근거로 한 기본적인 수학적인 지식을 3차에 걸친 CFA 시험을 치러 합격하는 데다 이쪽으로 빠지는 학생들은 주로 비즈니스 과목 출신으로 대학에서 회계에 관련된 지식도 필수적으로 배우지만 그는 회계 장부에 대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이러한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적다는 점과 이런 애널리스트로서[13] 기본적인 자격증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증시 전문가로 언론에 소개되어 투자자들에게 조언하는 것은 전문적인 조언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14]

개미시점에서 몇 번 맞아 떨어진 예측과 투자전망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고 많은 강연 요청을 받았다.

주식 관련 세미나 중에 농담삼아 주식 관련이 아니라 의학 관련 내용으로 강연을 해보는게 소원이라고 했다고 한다.

4.1. 시골의사 박경철이 말하는 투자

그의 전제는 언제나 이렇다. 개인투자자라면 투자를 하지 마라. 그러나 정 하고 싶다면 이 정도는 알아야 겨우 면허를 딴 것과 같다. 그렇게 내놓은 그의 책들은 분량도 두툼해 보이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만든다. 박경철은 개인투자자들이 시장구조와 심리상 절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개인투자자의 욕심이 그들을 주식시장으로 향하게 만들 것임을 알기에 자신의 지식을 정리해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는 시장이 끊임없이 강세와 약세를 반복하면서 그 모습이 변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의 입장으로는 단순하게 시장을 파악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의 책에 나오는 핵심은 '변동성'이다. 가치란 일관되지 않고 계속 변하는데 이때 가치가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것을 사전에 알아차릴 계량적인 도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급등과 급락을 포착하지 못하면 이득은 못 보고 손해만 커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가 쓴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는 이 변동성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비법이란 없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생각해서 찾아내야하는 것이 투자의 방법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고 지식도 많기에 알량한 지식만을 내새우는 불쏘시개 자기개발서 취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5. 강사/방송인 박경철

주식 관련 글을 쓰다가 방송에 나오게 되었는데 얼굴을 가리기로 한 방송국이 약속을 어겼다. 의도치 않은 얼굴 공개로 인해 어찌어찌 방송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다시 쓰는 기술적 분석이다.> 이 강의 시리즈 마지막에서 하는말이 결국 주식 하지 마라는 것이여서 어쩌면 황당하게도 들리지만 실제로는 진실된 조언에 가까운 말로 받아 들일 수 있다. 이점이 다른 수많은 자타칭 고수와 다른 점인데 기술적인 것을 알려주더라도 나처럼 하면 돈을 번다거나 오른다 떨어진다 따위의 예측으로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들지 않는 인물. 유명세가 더 늘어서 박경철은 주식분석 고수로서 경제관련 방송과 신문사설등 다양한 방식으로 칼럼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출연하고 있으며 각종 강연에도 다니고 있는데 교육·공공기관을 우선순위에 두고있어 차비를 빼면 섭외료가 남지 않을 때도 많았다. 2011년 월 평균 30여회의 강연과 20여개의 고정칼럼 연재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매일 오전 KBS1 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2010년 봄부터 안철수 원장과 함께 전국 대학을 돌면서 개최하고 있는 2인 강연 <청춘콘서트>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김제동, 윤여준, 김미화 등 다른 게스트까지 대동하게 되면서 규모도 커지고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는다. 2011년 9월 대구 영남대학교를 마지막으로 청춘콘서트는 당분간 막을 내렸다.

처음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요청으로 하게 된 1회성 행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경철이 안철수에게 "지방대생에게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게 되고 안철수가 수락해서 2010년 전국을 돌면서 2인강연 행사를 하게 되고 이걸 2011년 정토회 법륜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체계화 한것이 청춘콘서트이다.[15]

6. 정치 활동

주식 고수로 대중에 알려진데다 합리적인 중도개혁 이미지 때문에 정치권의 영입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계속 거절하다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2008년 4월 총선을 대비해서 각 지역별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를 심사해서 결정하는 자리였다. 이 작업 후에 "내가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욕망을 지난 4일간 보았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한마디로 정치인들 더럽게 욕심부리고 뻔뻔하더라 공천심사위 활동만 하고 실제 선거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한나라당, 민주당은 국회의원 공천심사에 외부 명망가를 자주 참여시켰는데 자기들끼리 하면 이해관계가 얽혀서 제대로 되지 않으니 누가봐도 인정할 만한 중립적 인사를 세웠다. 소설가 이문열 한나라당 공천 심사를 맡았다.

그런데 당시 한 인터뷰에서 호남출신 김효석을 칭찬하면서 호성드립을 쳐 지역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서울 출마는 낙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당의 명령이면 호남 지역구 버리고 서울 출마라도 하겠다는 김효석의 대답에 대한 상찬의 의미로 이호성을 언급하였으나 공적인 인터뷰에서 난데없는 살인범 이름 언급이 참 뜬금없을 뿐더러 살인마 이호성과 정치인 김효석 사이에는 같은 호남 +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박경철에게 反호남 성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지만 실제 인터뷰 공개된 시점이 이호성 사건이 일어난 직후이고 디시인사이드에서 호성 드립이 호남 비하로 쓰이기 전에 나온 인터뷰이므로 일방적으로 호남비하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내용으로 나왔지만 공천심사를 당시 한나라당에서 제의를 받았다면 민주당보다 더 열심히 했을거라며 일종의 반한나라입장을 표명한바있다. 정치적으로 안철수와 함께 정치적으로 각광 받는 시점에서 호남비하론, 개인의 여러 깎아내리기 공세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나온 시점이 우연히도 일치한다. 나꼼수에서도 나온 적 있지만 이 시기 보험, 리베이트 등의 조사가 이루어져 힘들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으나 여러모로 실언이며 해당 의혹에 대해 박경철은 그 이후로 해명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김효석은 결국 호남 공천을 받았고 2012년 총선에는 서울 출마를 선언했다.

후술하는 청춘콘서트부터 계속 같이 한 친분 때문에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와 양보 과정에서 최측근으로 부각되었다. 이후 안철수의 정치행보 때마다 항상 세트로 묶여서 거론되었지만 공식적인 직함을 맡은 적은 한번도 없다. 이때문에 2012년 안철수의 대선후보 사퇴, 2014년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합당을 전후한 시기에는 박경철을 안철수 진영의 비선실세로 지칭하는 정치기사들이 여러매체에서 나오기도 했다.[16] 이런 비판 때문인지 2014 새정연 합당 이후 안철수와 멀어지면서 정치활동은 없다.

7. 안철수의 절친 박경철

이전부터 안철수 교수와 인연이 있었던 박경철이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한 때는 2011년 5월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진행한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부터이다. 안철수와 같이 지방 젊은이들의 기를 살려준다는 목적으로 청춘콘서트를 기획했다. 이 과정에서 정토회 법륜과 정토회 산하의 평화재단 윤여준 이사장, 탤런트 김여진 등도 함께 하게 되었다. 이 청춘콘서트에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면서, 박경철은 주식 고수가 아닌 젊은이들이 존경하는 사회인사로써 명망을 얻게 된다.

실제로 안철수와 친분을 주고받는 300여 명의 인물 중에서도 최측근 위치에 있던 박경철은 2011년 9월 1일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통해 불거진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던 5일 동안 안철수 교수의 가장 가까이서 함께 했고...
파일:external/www.cstimes.com/52329_33889_826.jpg
안철수의 불출마 선언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에도 동석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우는 이유를 기자들이 묻자 "예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위 짤이 임펙트가 셌는지 MBN의 개그 프로그램 개그공화국 셰프를 꿈꾸며 코너에서 자주 패러디되었다. 패러디 캐릭터의 이름은 산골의사이며 안철수의 패러디인 안철수 캐릭터 옆에서 무슨 말만 하면 "아름다운 양보에요~" 하면서 안철수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며 안철수에게 바람을 넣는 역이다.

그러나 이후 서로의 정치적 의견차이 때문에 갈라섰다고 한다. 안철수가 SBS 국민면접에서, 2014년에 민주당과 합당 했을 때 쯤, 현재 서로 연락 안한지 오래됐다고 언급하였다.

8. 근황

안철수와 멀어진 2014년경부터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활동이 거의 없다. 블로그 글도 2013년을 마지막으로 새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2015년경에 배우자와 이혼 후 KBS 정은승 아나운서와 재혼했음이 2년 후인 2017년에 뒤늦게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생활 논란이 있었다. 재혼과 동시에 정은승과의 사이에서 1남을 얻었다.

2016년경까지는 곳곳에서 강연을 진행한 것이 확인되며 2017년에 정은승과의 재혼 소식이 알려진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2022년 11월 21일 오랜만에 블로그 글이 올라왔는데 리딩방 사칭에 주의를 당부하는 글이다. 자신의 근황이나 계획에 대해서 언급이 전혀 없는 건조한 글이며 매체 활동을 다시 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2023년 3월 14일에도 추가적인 사칭 피해와 관련된 당부의 글이 올라왔다. # 그러나 블로그에 자신은 리딩방을 하지 않는다고 글을 썼음에도 사칭이 끊이질 않자 자신은 그러한 사기를 치지 않음을 알리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정도의 활동을 재개할 것임을 선언했다. #

2024년 들어 블로그에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은 2010년 이후 14년만이다.

9. 저서


[1] 정은승은 1남만 낳았으며 그 외 1남 1녀는 전처 소생이다. [2] 본인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정체성을 주식전문가가 아닌 의사에 둔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그의 저서에 항상 적혀 있는 수식어는 “시골의사 박경철”. [3] 문화동 서대전네거리 주변에 있었던 병원. 현재 나사렛예수병원은 폐원하고 나사렛회관으로 바뀌었으며 가구갤러리라는 가구전문 아울렛이 들어섰다. [4] 아버지는 1986 아시안 게임 개최를 앞두고 전두환이 대구에 내려오자 3일간 밤을 새서 경호를 맡았고 그로부터 3일 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전두환을 증오한다. [5] 여기 실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는 이 글을 쓴 '나'일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이 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역시 전부가 사실이지만 또 전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나의 이야기나 동료, 선후배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소재로 썼다.'
라는 서술이 있으므로 허구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에피소드가 사실인 건 아니다.
[6]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손자를 고기 재료로 착각해 솥에 넣어 곰탕으로 끓인 끔찍한 사건으로, 본인의 블로그에서는 자신의 경험담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거짓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이 이야기는 구비문학으로 전해지는 <죽은 아들을 묻은 효부> 설화와 정확히 똑같기 때문에 더더욱 그 신빙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해당 설화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다음 논문 참조. 희생제의 전통의 와해와 기괴한 효행담의 탄생 ― <죽은 아들을 묻은 효부>를 중심으로 ― [7] 여호와의 증인 수혈을 교리적으로 금지해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본 책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인턴이 같은 종교의 신자인 환자가 수혈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하지 않자, 박경철과 동료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수혈을 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8] 무릎팍도사 때 나왔던 "50배를 벌었다" 발언이 이 주식 매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상황. [9] 정확히 말하면 자기만의 철학적 체계. [10] CAPM의 주요 골자는 시장 포트폴리오 즉 주식 시장의 주식 구성 비율대로 주식을 구성하는 것이 주식 투자에 있어 가장 최적의 균형이자 최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CAPM이 투자론의 기초 지식이기는 하지만 주식 시장의 절대적 법칙이었다면 워렌 버핏 같은 투자의 귀재는 존재할 수 없다. [11] 물론 CAPM 등으로 대표되는 금융공학적 분석이 수학적 체계는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이른바 '감'에 의한 투자에 비할 때 절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보장한다는 실증적 증거는 많지 않다. 물론 개인이 직접 투자를 할 때는 이러한 이론적 근거를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 (실제로 이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은 한국 대학에도 많지 않다. 그러나 경제학이나 수학, 공학 등의 기본적 지식이 있다면 번역된 교재를 통하여 공부할 수는 있다), 투자가를 평가할 때는 그 운용자의 역사적 수익률을 우선해야지 금융공학적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절대시해서는 안된다. 제도권 내의 펀드매니저들 가운데도 박경철 류의 개인투자자보다 못한 실적을 내는 사람이 태반이다. WWE의 전직 프로레슬러였던 JBL은 특별한 경제학위나 경력이 없는 개인투자자지만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그경험으로 투자자문서도 쓰고 FOX뉴스의 경제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다. 주식투자는 이론과 감을 떠나 실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2] 사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 즈음 케이블 주식방송을 통해 주식의 가치 분석, 기술적 분석, 금융공학적 분석 등에 관한 TV 강좌를 장기간 진행하기도 했으며 이후 주식 투자 관련 서적에서 갖가지 분석 기법에 관한 내용을 저술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가 주식시장에 대한 분석 근거를 '감'에만 둔다고 단순히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가 세상에 알려질 무렵 자주 기술적 분석이나 가치 분석을 공을 들여 설명하던 것에 비해 근래에 들어서는 부쩍 원론적 가치 투자 위주로 이야기하고 주식 직접 투자를 권하지 않고 되도록 간접투자 하도록 권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13] 기관투자에 대해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기관에서는 애널리스트가 투자하지 않는다. 즉 자금을 운용하는건 트레이딩 부서이지 애널리스트들은 그저 분석만 할 뿐이며 CFA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 애널리스트라고 해도 시장을 완전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금융사에서 자자본을 운용하는 프랍트레이딩 부서는 사내에서 지원자를 받는데 애널리스트출신 직원들은 거의 안뽑힌다. 시장분석과 실전투자의 괴리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4] 물론 진짜 기관투자자들은 절대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증시의 기본은 누구보다 먼저 사고, 누구보다 먼저 파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의 기법 중 오드랏 기법(odd-lot thorey)이라는 것은 아예 개미투자자들이 투자한 것의 반대 방향으로 투자하는 기법이다. 코미디 같으나 이 기법은 굉장히 유명하여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이것을 수치화한 것을 잡지에 실고 있다. [15] 일부에선 윤여준 평화재단 이사장이 기획자라고 하나 이건 오해이다. 윤여준은 2011년 청춘콘서트에 게스트로 몇 번 나왔을 뿐이다. [16] 오랜기간 안철수와 함께했던 금태섭은 2015년 출판한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서 박경철이 공식라인을 무시하고 별도 조직을 만들어서 의사결정과정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금태섭은 박경철을 '암장군(暗將軍)'이었다고 실명저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