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제22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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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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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회
선거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580009><tablebgcolor=#580009> |
노원구 갑
월계동, 공릉동, 하계동 등 蘆原區 甲 Nowon A |
}}} | |||
<colbgcolor=#580009><colcolor=#fff> 선거인 수 | 224,187명 (2024) | |||||
상위 행정구역 | 서울특별시 | |||||
관할 구역 |
|
|||||
신설년도 | 1988년 | |||||
국회의원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우원식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동, 중계동 일부 및 월계동과 공릉동을 포함하는 선거구. 현재 이곳의 국회의원은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인 우원식[1] 의원이다.[2]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인 노원구지만, 갑 지역구는 보수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이 다소 비등한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서울특별시 한강 이북의 대부분의 지역구[3]에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했을 때 노원구 갑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이력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4]이고, 정의당 역시 노원구 갑 의원 선거 시에는 아니지만, 노원구 전반에서 비교적 강세를 나타내며 기반을 다지고 있다.[5][6] 정의당이 전국구 첫 의회 서울특별시 내의 자치구 의회 중 원내 진입에 성공한 몇 안 되는 구 중 하나이다.[7][8]
노원구는 연령대별 인구가 고르게 분포된 편인데다, 특히 월계동에 인덕대학교, 광운대학교, 공릉동에 육군사관학교[9],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등 대학이 밀집한 노원 갑 지역 특성상, 노원 갑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는 2, 30대 투표율에 좌우된다.
청년층 투표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우와 낮게 나타나는 경우 선거 결과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실제로도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표차가 커봤자 극적인 격차로 나타나지는 않는다.[10][11] 워낙 다양한 연령층이 고루 분포되어 그만큼 노인 인구도 많지만, 20~40대 대졸자 인구도 많다.
19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에서 내놓은 김용민[12]이 8년 전 성인인터넷방송에서의 막말 등[13]각종 논란을 빚으며 새누리당 이노근이 당선되었으나,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이 탈환하고 21대 총선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정봉주의 지역구였다. 노원구 갑의 일부인 공릉동 출신으로, 2020년 5월 기준으로도 공릉2동에 살고 있다.
광운대역세권개발사업이나 월계시영아파트의 재건축 등 굵직굵직한 부동산 사업을 앞두고 있다 보니 최근 들어 월계동 지역의 보수세가 크게 강해지고 있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원구 선거구 중에서 유일하게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이겼으며[14],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서울특별시의회 지역구 의석 2석을 국민의힘이 쓸어갔다.[15]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3석, 국민의힘이 2석, 진보당이 1석을 차지하였다.
2. 선거구 조정의 역사
노원구 갑(~제21대) | 노원구 갑(제22대) | ||
<nopad> | <nopad> |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원구 인구 감소로 인해 노원구 을 일부가 이 선거구로 편입하여 새로운 갑 지역구로 개편되었고, 그 결과 (구) 노원구 을에서 하계1동, 하계2동, 중계본동, 중계2·3동이 넘어오게 되었다.
3.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선거 결과
<rowcolor=#fff> 대수 | 당선인 | 당적 | 임기 | 비고 |
양주군 을[16] | ||||
초대 | 이진수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 |
2대 |
|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 ||
3대 | 강승구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 |
양주군 을[17][18] | ||||
4대 | 강성태 |
[[자유당(1951년)|]] |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 |
5대 | 강승구 |
|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 |
성북구 을[19] [20] | ||||
6대 | 서범석 |
[[민정당| |
1963년 12월 27일 ~ 1967년 6월 30일 | |
7대 |
[[신민당(1967년)| |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 ||
성북구 병[21][22] | ||||
8대 | 고흥문 |
[[신민당(1967년)| |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 |
성북구[23] | ||||
9대 | 고흥문 |
[[신민당(1967년)| |
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1일 | |
정래혁 |
[[민주공화당| |
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1일 | ||
도봉구[24] | ||||
10대 | 고흥문 |
[[신민당(1967년)| |
1979년 3월 12일 ~ 1980년 8월 27일 | [25] |
홍성우 |
[[민주공화당| |
1979년 3월 12일 ~ 1980년 10월 27일 | ||
11대 | 홍성우 |
|
1981년 4월 11일 ~ 1985년 4월 10일 | |
김태수 |
[[민주한국당| |
|||
12대 | 조순형 |
|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 |
홍성우 |
|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 ||
노원구 갑(노원구 창동[26], 월계동, 공릉동 일대) [27] | ||||
13대 | 백남치 |
[[통일민주당|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 |
노원구 갑(노원구 월계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28] 일대) | ||||
14대 | 백남치 |
[[민주자유당|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 |
노원구 갑(노원구 월계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본동, 중계2·3동[29] 일대) | ||||
15대 | 백남치 |
[[신한국당| |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 |
16대 | 함승희 |
[[새천년민주당|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
노원구 갑(노원구 월계동, 공릉동[30] 일대) | ||||
17대 | 정봉주 |
[[열린우리당|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
18대 | 현경병 |
|
2008년 5월 30일 ~ 2011년 6월 10일 | [31] |
19대 | 이노근 |
[[새누리당|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
20대 | 고용진 |
|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 |
21대 |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 | |||
노원구 갑(노원구 월계동, 공릉동, 중계본동·중계2·3동[32] 일대) | ||||
22대 | 우원식 |
|
2024년 5월 30일 ~ 현재 |
3.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창1동, 창2동, 창3동, 월계1동, 월계2동, 공릉1동, 공릉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안대륜(安大崙) | 21,754 | 3위 |
|
24.09% | 낙선 | |
2 | 백남치(白南治) | 25,699 | 1위 |
[[통일민주당| |
28.46% | 당선 | |
3 | 박병일(朴炳一) | 24,602 | 2위 |
[[평화민주당| |
27.25% | 낙선 | |
4 | 성정기(成正基) | 10,640 | 4위 |
[[신민주공화당| |
11.78% | 낙선 | |
5 | 유인태(柳寅泰) | 7,575 | 5위 |
[[한겨레민주당| |
8.3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4,013 |
투표율 67.90% |
투표 수 | 90,993 | ||
무효표 수 | 723 |
3.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 하계1동, 하계2동, 중계1동, 중계2동, 중계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백남치(白南治) | 42,487 | 1위 |
[[민주자유당| |
34.91% | 당선 | |
2 | 고영하(高永夏) | 40,517 | 2위 |
|
33.29% | 낙선 | |
3 | 박병일(朴炳一) | 38,684 | 3위 |
[[통일국민당| |
31.7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1,137 |
투표율 68.62% |
투표 수 | 124,292 | ||
무효표 수 | 1,092 |
3.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 하계1동, 하계2동, 중계본동, 중계1동, 중계2동, 중계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백남치(白南治) | 43,859 | 1위 |
[[신한국당| |
36.77% | 당선 | |
2 | 고영하(高永夏) | 41,906 | 2위 |
[[새정치국민회의| |
35.13% | 낙선 | |
3 | 유영래(柳榮來) | 11,503 | 4위 |
|
9.64% | 낙선 | |
4 | 박병일(朴炳一) | 18,529 | 3위 |
[[자유민주연합| |
15.53% | 낙선 | |
5 | 박남수(朴南洙) | 3,479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9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8,266 |
투표율 61.05% |
투표 수 | 121,049 | ||
무효표 수 | 1,773 |
3.4.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월계4동, 공릉1동, 공릉2동, 공릉3동, 하계1동, 하계2동, 중계본동, 중계2동, 중계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동규(崔東奎) | 42,772 | 2위 |
|
36.38% | 낙선 | |
2 | 함승희(咸承熙) | 50,745 | 1위 |
[[새천년민주당| |
43.17% | 당선 | |
3 | 백남치(白南治) | 11,491 | 3위 |
[[자유민주연합| |
9.77% | 낙선 | |
4 | 정창인(鄭昌仁) | 2,422 | 5위 |
[[민주국민당(2000년)| |
2.06% | 낙선 | |
5 | 이상현(李尙炫) | 7,931 | 4위 |
[[민주노동당| |
6.74% | 낙선 | |
6 | 박희택(朴熙澤) | 2,184 | 6위 |
|
1.8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5,106 |
투표율 55.15% |
투표 수 | 118,631 | ||
무효표 수 | 1,086 |
현역 3선 백남치 의원은 신한국당에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유는 교통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김포매립지 용도 변경 등과 관련해 동아건설로부터 8차례에 걸쳐 1억 2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낙천되었지만, 이에 반발해 자유민주연합으로 간 것이었다. 백남치 의원의 빈자리는 전두환 정부에서 동력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에너지 전문가 최동규 후보가 공천되었다.
새천년민주당은 함승희 변호사를 공천했다. 그는 검사 재직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며 정치권을 벌벌 떨게 만들었고, '성역은 없다'라는 책을 낸 스타 검사였다. 외압에 의해 검사복을 벗고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총선에 출마했다.
함승희 후보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43.17%의 득표로 최동규 후보를 6.8% 차이로 제치고 당선된다.
3.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월계4동, 공릉1동, 공릉2동, 공릉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현경병(玄鏡柄) | 26,496 | 2위 |
|
30.58% | 낙선 | |
2 | 함승희(咸承熙) | 23,154 | 3위 |
[[새천년민주당| |
26.72% | 낙선 | |
3 | 정봉주(鄭鳳柱) | 36,992 | 1위 |
[[열린우리당| |
42.69%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36,263 |
투표율 64.29% |
투표 수 | 87,597 | ||
무효표 수 | 955 |
정치권 비자금 수사로 유명해진 검사 출신의 현역 함승희 의원은 원내에 진출하고서도 검은 돈 차단을 위해 '자금세탁방지법'과 '금융정보원법' 등 이른바 ‘돈세탁 방지 관련법’ 입안을 주도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때 탈당하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총선에 출마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정봉주 후보가 공천되었는데, 학생운동 후 말 기자, 문익환 목사 보좌 등을 하다 미국에서 영어교육전문학위를 취득해 외대어학원을 운영하다가 총선에 출마했다. 한나라당에서는 현경병 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을 공천하였다.
스타 검사로 유명해진 함승희 후보였지만, 새천년민주당의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로서 당시 법사위원장 김기춘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들고 가 접수시킨 장면이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보도[33]된 탓인지 탄핵 역풍을 아주 제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34][35] 결국 정봉주 후보가 42.69%의 득표율로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3.6.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월계4동, 공릉1동, 공릉2동, 공릉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봉주(鄭鳳柱) | 26,251 | 2위 |
[[통합민주당(2008년)| |
37.62% | 낙선 | |
2 | 현경병(玄鏡柄) | 29,010 | 1위 |
|
41.58% | 당선 | |
6 | 함승희(咸承熙) | 12,098 | 3위 |
[[미래희망연대| |
17.34% | 낙선 | |
7 | 김의열(金義烈) | 1,795 | 4위 |
[[진보신당| |
2.57% | 낙선 | |
8 | 위인규(魏仁揆) | 613 | 5위 |
[[평화통일가정당| |
0.8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3,108 |
투표율 49.08% |
투표 수 | 70,233 | ||
무효표 수 | 466 |
한나라당에서는 현경병 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이 재출마해 세 후보는 17대 국회에 이어 다시 리턴매치를 갖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과 뉴타운 열풍은 이곳에서도 이목이 집중되었고, 부동산 값이 상승해 수도권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상당한 관심을 내 보였다.
현역인 정봉주 의원은 BBK 의혹 등 여러 활동을 했지만 지역이 크게 변화되지는 않았다는 평가도 많았다. 대신 뉴타운 바람을 타고 지역 개발을 위해 뛰어 왔던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가 주목 받았다. 그러나 함승희 전 의원이 친박연대로 출마하면서 표가 갈리는 상황이 나타났다.
물론 정봉주 후보도 지역 공약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정봉주 후보는 월계동 지역에는 '성북역 인근에 위치한 시멘트기지 이전', '성북역 지하화 본격 추진', '성북역 민자역사 추진', '개방형 자율학교 유치', '어린이 공원 및 녹지조성'을, 공릉동 지역에는 '서울대병원 유치', '4년간 교육예산 1,000억 원 집중 투자', '국내 최초의 IT영재학교 설립'을 내걸었다.
또한 정 후보는 '월계동과 공릉동을 연결하는 '오버브릿지' 건설', '전선 지중화 사업으로 안전한 거리 조성', '경춘선 폐선부지 공원화 사업', '신공덕역 문화복지센터 건립'을 공약했고, 국회에 진출하면 '대학등록금 상환제와 후불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현경병 후보는 '성북역 민자역사 & 초고층 주상복합단지 조성', '월계 뉴타운 지정 및 재개발·재건축을 추진', '동부간선로 확장', '중랑천 개발', '공릉 서울테크노파크 차질 없이 완공' ,'경춘선 폐선부지 주변 개발 및 공원화 사업', '법원 터 일대 복합상업 및 학원가로 조성', '공릉종합스타디움(구 공릉배수지) 2단계 문화체육 공간조성 사업 추진', '100억 원 규모의 노원시민장학재단을 설립', '1호선 석계역~성북역~월계역~녹천역 구간을 지하화' 등 지역 개발 공약을 내놓았다.
결과는 친박연대로 출마한 함승희 후보가 17퍼센트를 득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가 현역 정봉주 후보를 4%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후 이 선거의 당선자 현경병은 2011년 6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대법원으로부터 선고받고 당선무효 처리되었다. 그리고 2위 득표자인 정봉주 또한 2011년 12월, 허위사실 유포죄[38]로 징역 1년의 실형을 대법원으로부터 선고받고 수감되었다.[39]
즉, 이 당시 노원구 갑 주민들은 누구를 찍던 자신들의 국회의원이 당선무효 처리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이 나온다.
3.7.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노근(李老根) | 40,865 | 1위 |
[[새누리당| |
50.06% | 당선 | |
2 | 김용민(金容敏) | 36,083 | 2위 |
[[민주통합당| |
44.20% | 낙선 | |
3 | 김철수(金哲洙) | 1,761 | 4위 |
[[자유선진당| |
2.15% | 낙선 | |
6 | 우승배(禹承培) | 2,913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5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3,388 |
투표율 57.41% |
투표 수 | 82,314 | ||
무효표 수 | 692 |
노원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노근 | 김용민 | 격차 |
전체 | 50.2% | 44.8% | 5.4%p |
현역 새누리당 현경병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2심과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40] 그러나 남은 임기 기간이 1년 미만이었으므로 재보궐선거를 치르지는 않았다.
따라서 현경병 위원 대신 새누리당은 이노근 전 노원구청장을 공천했다. 이노근 후보는 민선 4기 노원구청장으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낙선했다.
한편 정봉주 전 의원은 인터넷 방송 ' 나는 꼼수다'로 인기를 얻고 총선을 준비했지만, BBK 사건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로 실형이 확정되어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다. 민주통합당은 대신 '나는 꼼수다'를 함께 진행했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을 공천하였다.
김용민 후보는 극동방송[41], 기독교TV 등에서 근무하다가 시사평론가로 '시사자키' 등을 진행했고, 이후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을 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되었다. 김용민 후보는 사과했으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이에 민주통합당 이해찬은 사퇴를 권고했으나 문재인, 한명숙 대표는 김용민을 끌어안고 갈 것을 당부했다. 김용민 후보 역시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받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결국 이노근 후보가 김용민 후보를 5.86%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김용민 후보는 동북권에서 패배한 유일한 민주통합당 후보가 되었고, 사실상 민주통합당의 19대 총선 패배를 결정지었다.
현역 국회의원인 현경병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한 시점부터 이노근에게 초반 선거판세가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지만,[42] 이노근 후보가 김용민 후보를 5.86% 차이로 제치고 여유있게 당선되었다.
김용민 후보는 서울 동북권에서 패배한 유일한 야권연대 후보가 되었고, 리얼미터의 조사에 의하면 총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슈로 김용민 막말 파문이 22.3%로 1위를 차지했다.[43]
특이사항이 있다면, 원래 양 당에서 출마하려던 인원들인 현경병, 정봉주 모두 범죄로 인해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대타를 내세워야 했던 선거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두 인물은 이후 사면복권되어 8년 뒤 21대 총선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까지 판박이이다.[44]
3.8.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노근(李老根) | 34,109 | 2위 |
[[새누리당| |
39.37% | 낙선 | |
2 | 고용진(高榕禛) | 36,205 | 1위 |
|
41.79% | 당선 | |
3 | 이형남(李亨南) | 16,309 | 3위 |
[[국민의당(2016년)| |
18.8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0,642 |
투표율 62.29% |
투표 수 | 87,604 | ||
무효표 수 | 981 |
노원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노근 | 고용진 | 격차 |
전체 | 39.1% | 42.1% | 3.0%p경합 |
본선에서는 야권의 표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진 후보가 이노근 의원을 2,096표차로 제치고 초선으로 당선됐다.
동별로 보면 월계동에서는 이노근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앞섰으나[46], 공릉동 지역에서는 고용진 후보가 공릉1동은 653표 차, 공릉2동은 1,114표 차로 이기며 월계동에서 밀린 표를 단번에 상쇄해 버렸고, 관외사전투표에서도 500여표를 앞서며 당선증을 거머쥐게 되었다.
3.9.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고용진(高榕禛) | 53,911 | 1위 |
|
56.78% | 당선 | |
2 | 이노근(李老根) | 36,782 | 2위 |
[[미래통합당| |
38.74% | 낙선 | |
7 | 최나영(崔娜英) | 3,761 | 3위 |
[[민중당(2017년)| |
3.96% | 낙선 | |
8 | 조덕실(趙德實) | 487 | 4위 |
[[국가혁명배당금당| |
0.5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8,917 |
투표율 69.92% |
투표 수 | 96,033 | ||
무효표 수 | 1,092 |
노원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고용진 | 이노근 | 격차 |
전체 | 54.8% | 40.4% | 14.4%p |
이번에는 고용진 후보가 전보다 더욱 여유 있게 이노근 후보를 약 18%p 차로 압살[47]하며, 이 지역구에 장장 24년 간[48] 전해져 내려오던 '재선 불가 징크스'를 극복하고 재선 의원 고지에 올랐다.
반면 이노근 후보는 4년 전 국민의당 후보로 이동했던 표들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득표율이 더 떨어지기만 하며 완패했다.
선거 이후 고용진 의원은 부인과 사별하는 일을 겪기도 했으나, 2021년 5월부터 민주당 수석 대변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완패한 이노근 후보는 선거 종료 얼마 후에 당협위원장 자리마저 내놓고 사실상 정계은퇴를 하게 된다.
이후 공석으로 놓여있던 이노근의 당협위원장 자리는 2021년 1월에 이노근의 전임 의원이었던 현경병이 다시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3위로 낙선한 민중당의 최나영 후보는 2년 뒤인 8회 지방선거에서 3명을 뽑는 노원구의회 공릉동 선거구에 구의원으로 출마해 3위를 기록하며 구의원으로 당선되었다.
3.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 하계1동, 하계2동, 중계본동, 중계2·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우원식(禹元植) | 91,986 | 1위 |
|
58.99% | 당선[49] | |
2 | 현경병(玄鏡柄) | 63,924 | 2위 |
|
41.0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24,187 |
투표율 70.69% |
투표 수 | 158,471 | ||
무효표 수 | 2,561 |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52484><tablebgcolor=#fff,#191919><bgcolor=#152484> 22대 총선 서울 노원구 갑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우원식 | 현경병 | ||
득표수 (득표율) |
91,986 (58.99%) |
63,924 (41.00%) |
+28,062 (△17.99) |
155,910 (70.69%) |
월계1동[A] | 55.50% | 44.49% | △11.01 | 65.57 |
월계2동[B] | 55.40% | 44.59% | △10.91 | 65.70 |
월계3동[C] | 53.07% | 46.92% | △6.15 | 67.92 |
공릉1동[D] | 58.73% | 41.26% | △17.47 | 65.87 |
공릉2동[E] | 57.44% | 42.55% | △14.89 | 68.47 |
하계1동 | 58.54% | 41.45% | △17.09 | 66.83 |
하계2동 | 61.05% | 38.94% | △22.11 | 73.07 |
중계본동[F] | 60.89% | 39.10% | △21.79 | 68.39 |
중계2·3동 | 59.57% | 40.42% | △19.15 | 68.34 |
후보 | 우원식 | 현경병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57.70% | 42.29% | △15.41 | |
관외사전투표 | 66.42% | 33.57% | △29.85 | |
재외투표 | 79.77% | 20.22% | △59.55 |
노원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우원식 | 현경병 | 격차 |
전체 | 60.3% | 39.7% | 20.6%p |
국민의힘에서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현경병 전 의원과 (구) 노원구 을 당협위원장이었던 장일 전 당협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2024년 3월 2일 노원구 갑에 공천신청을 했던 현경병, 김선규 후보와 노원구 을에 공천신청을 했던 김광수 후보가 경선을 치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경선 결과 현경병 전 의원이 공천을 받게 되었다.
진보당에서는 권민경 노원구위원장이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3월 18일 우원식과 단일화하였다. 따라서 노원구 갑에서는 최초로 양자 구도가 펼쳐지게 되었다.
개표 결과 예상대로 우원식 의원이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며 5선 중진이 되었다. 대체로 이전에 이 선거구에 속해 있던 공릉동, 월계동에서는 상대적으로 격차가 적었던데 비해[56] 과거 자신의 지역구였던 중계동, 하계동에서 차이를 크게 벌린 게 승리 요인이었다. 현경병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마한 이노근 전 의원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우원식 의원은 모두의 예상을 깨며 추미애 의원을 꺾고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1]
원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어 국회법 제20조의 당적 보유 금지 규정에 따라 탈당하고 무소속이 됐다.
[2]
2024년 선거구 조정 이전까지는 월계, 공릉
법정동 2개로 관할구역이 아주 깔끔하게 떨어졌었다. 전국에서 몇 안되는 케이스. 관할구역 내 행정동 갯수도 5개로, 역시 전국에서 손꼽히게 적은 편이다. 당장 이 곳과 인구가 비슷한
종로구의 경우 17개 행정동으로 나뉜다.
[3]
이 지역에 걸린 26석 중
용산구(
진영),
은평구 을(
이재오),
서대문구 을(
정두언), 노원구 갑(
이노근)을 제외한 나머지 22석을 야권이 쓸어갔다.
[4]
서울특별시의 여느 자치구처럼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강력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이 지역을 뺏어오지 못한 것은
후보의 경쟁력 때문. 2010년부터 이 지역에서 치른 선거들은 이 19대 총선을 빼면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해 보면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당시의 민주통합당 패배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
노원구 갑 선거구에선 정의당의 포지션을 진보당이 대체하고 있다.
[6]
노원구 병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노회찬 전 대표 때문이다.
[7]
정의당
주희준 전 의원이다. 지역구는
노원구 병에 속한다. 주희준 의원은 또한 호남 출신으로,
호남향우회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의원 중 하나이다.
[8]
나머지 중 하나가
서대문구 을 관할인 서대문구 마 선거구(남가좌, 북가좌동)에서 당선된
임한솔이다. 하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구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신을 키워준 정의당을 탈당한 후
민생당에 입당했으나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9]
다만 보수 성향이 강한
군인 특성상, 육사는 타 학교들에 비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기숙사 학교 특성상 생도들이 육사로 전입신고를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고로 육사가 노원구 갑 지역 공직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지만,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이노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원구 을이나
노원구 병 선거구 유권자인 생도들까지 꾸역꾸역
공릉동 육사 기숙사로 전입을 시켜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전해철 의원실 자료.
[10]
현재 선거구 구성대로 치러진
17대 총선부터의 기록을 보면,
노무현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
박근혜 탄핵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이자
차명진 막말 파동이 일어난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1-2위간 표차가 6%p를 넘지 못한다.
[11]
다만
뉴타운 바람이 불었던
18대 총선에서도 당시 민주당 현역의원
정봉주가 3.96%p차로 아깝게 진 데다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최악의 트롤러
김용민도 크지는 않은 표차인 5.86%p차로 패한 것을 보면 이 지역구의 강력한
민주당계 정당 지지성향을 엿볼 수 있다. 민주당이 큰 악재를 맞은 상황에서도 이 지역구에서 참패한 적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 다만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연대
함승희 후보가 보수표를 제대로 갈랐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당시 한나라당 + 친박연대 표를 합하면 58:37까지 벌어진다.
[12]
나꼼수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던 시절,
정봉주가 구속 수감 됨에 따라 본인 지역구인 이 곳 출마가 좌절되어 대타로 이 곳에 연고가 아예 없던 김용민을 낸 것.
[13]
이 막말 중 노년층을 폄하하는 발언이
강남구 을에 출마한
정동영 후보에게 불똥이 튀어
17대 총선과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정동영의 60, 70대는 투표일에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14]
노도강중에 유일하게 이긴 지역이다.
[15]
월계동에서는 160표 차 박빙이었고, 공릉동에서는
진보당의
표 분산 덕분에 국민의힘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16]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57], 진건면, 진접면
[17]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별내면
[18]
양주군 갑 선거구에서 현재의
양주시,
의정부시 지역과 같이 선거를 치러 오던 별내면이 양주군 을 선거구로 변경되었다.
[19]
돈암동, 종암동, 상월곡동, 하월곡동, 미아동, 장위동, 석관동, 번동, 우이동, 수유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 방학동
[20]
1963년
1월 1일 부로, 노해면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북구의 관할로 들어가게 된다. 노해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공릉동,
월계동,
도봉동,
방학동,
창동,
쌍문동의 9개 동으로 나뉘어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이에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도 종전의 양주군 을 선거구에서 성북구 을 선거구로 조정되었다.
[21]
성북구 월곡동, 장석동, 창동(현 도봉구 창동,쌍문동, 노원구 월계동 지역), 태릉동, 노원동, 도봉동)(출처
http://uci.or.kr/G500:1310377-00010318813)
[22]
성북구의
인구가 증가하여 국회의원
선거구도 2개에서 3개로 분구되어, 지금의 노원구 갑 선거구에 해당하는
월계동과
공릉동은 성북구 병 선거구의 소속이 되었다.
[23]
제9대 총선 부터 제12대 총선까지는
중선거구제를 이용하여 한 선거구 당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에,
성북구 선거구는 하나로 합구되어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24]
1973년
7월 1일부로, 미아동, 번동, 수유동, 우이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도봉동, 방학동, 공릉동, 하계동이
도봉구로 분구되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이에 맞게 종전의
성북구 선거구에서
도봉구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25]
1980년
8월 27일에 사직하였다.
[26]
노원구 을 선거구에 편입됐던 도봉동과 함께 1989년 1월 1일 도봉구 반환 이전까지 1년간 노원구 관할이었다.
[27]
1988년
1월 1일 부로,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구되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도 도봉구 선거구에서 분구되었고, 13대 총선부터
소선거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노원구는 2개의 선거구를 할당받게 된다.
[28]
선거구 조정으로 하계동과 중계동이
노원구 을에서 넘어옴.
[29]
선거구 조정으로 중계1·4동이
노원구 을로 넘어감.
[30]
선거구 조정으로 하계동과 중계본동·중계2·3동이
노원구 을로 복귀.
[31]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 상실.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
[32]
선거구 조정으로 하계동과 중계본동·중계2·3동이 재편입.
[33]
가운데가
김기춘이고, 왼쪽이
함승희.
[34]
현역의원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위를 기록했는데 공릉동 출신에다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던 정봉주 후보에게 진 건 그렇다 쳐도, 과천에서 무소속 1회 출마가 유일한 선거 경력이어서 지역 연고가 없었던 현경병 후보에게 마저 밀릴 정도였으니 탄핵 역풍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35]
여담으로
김기춘은 지역구가 경남
거제시였으므로 탄핵 역풍이고 뭐고 상관없이
17대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36]
잔류한
새천년민주당의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새천년민주당 측 실무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37]
함승희는 이때를 계기로 소위 '진영'을 아예 보수로 옮겼다.
[38]
2018년에 가서야
서울지검
한동훈 3차장이 이끄는 수사팀에 의해
사실로 밝혀지게 된다.
[39]
현역 국회의원이었으면 당연히 배지가 날아갈 사안.
[40]
하지만 선거 1년 후인 2013년 1월에 퇴임 직전의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 되었다.
[41]
민주진영 스피커라는 현주소와 다르게, 여기 재직하던 시절에는 보수성향이었다.
심지어 YS를 지지했으며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찍기도 했다.
[42]
실제로 이때부터 승부가 결정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역 국회의원이 다음 총선을 1년 앞두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직을 잃으면 그 지역구에서 당연히 불리해진다.
[43]
또한 김용민 막말 파문 중 노인층을 비하하는 발언은 이 선거에서
강남구 을에 출마한
정동영 후보에게 완벽하게 불똥이 튀었다. 김용민 막말이 이슈화되면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터져나온 정동영의 60,70대는 투표 안하셔도 된다는 발언이 다시금 회자되었기 때문에 안그래도 민주당의 험지 강남구 을에서 고군분투하던 정동영에게 더욱 큰 악재가 되었고, 결국 본인의 정치인 커리어에서 서울에서만 세 번째 참패를 당했다.
[44]
현경병은 2013년 1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되어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노원구 갑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이노근에게 패배했고, 정봉주는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되어 21대 총선
강서구 갑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기각되고 이후
열린민주당을 세워 최고위원으로 선거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45]
19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아예 연고가 없는
김용민을 냈다 패배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지역 당원들이 역시 지역에 연고가 없는 장하나 의원에게 표를 주지 않은 결과. 실제로 장 의원은 선거에 임박해서야 월계동으로 이사를 왔었다.
[46]
이노근 후보는 월계1,2동에서 승리. 고용진 후보는 월계3동에서 승리.
[47]
4년 전
20대 총선에서는 2.42%p 차로 힘겹게 이겼다.
[48]
즉
1996년 선거 이후 재선 의원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은 2020년 기준 최소 여학생이면 벌써 직장에 갔고, 남학생이면 4학년이다.
[49]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단일 후보
[A]
광운대학교 및
광운대역이 있는 동네.
[B]
인덕대학교 및 월계주공아파트가 있는 동네.
[C]
월계시영아파트 재건축 및
광운대역세권개발사업이 추진 중인 동네.
[D]
다수의 주택가가 있는 동네.
[E]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삼육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및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동네.
[F]
은행사거리가 있는 동네.
[56]
사실 공릉동은 15% 정도의 차이가 난 데 비해 월계동은 10% 초반으로 격차가 더 적었다. 아무래도 공릉동은 과거 우원식 의원의 지역구였던 중계, 하계와 연계가 되는 반면 중랑천 건너 월계동은 독자적인 생활권인 데다 재건축 이슈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 예시로 월계시영아파트 재건축 및 광운대역세권개발사업이 현안인 월계3동에서 유일하게 한 자릿수 격차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