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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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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합중국 제65대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파일:Lenín_Moreno_con_el_líder_mexicano_López_Obrador_Recortado.png
<colbgcolor=#cd1426><colcolor=#ffffff> 출생 1953년 11월 13일 ([age(1953-11-13)]세)
멕시코 타바스코주 테페티탄
재임기간 제65대 대통령
2018년 12월 1일 ~ 2024년 9월 30일[1]
서명
파일: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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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1426><colcolor=#ffffff> 배우자 <colcolor=#373a3c,#ddd>로시오 벨트란 메디나 (사별)
베아트리스 구티에레스 뮐러 (재혼)
자녀 4명
학력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정치학 , 행정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신체 173cm, 75kg
정당
약칭 AMLO }}}}}}}}}

1. 개요2. 생애
2.1. 정치 입문2.2. 제도혁명당 탈당 및 민주혁명당 입당2.3. 멕시코시티 시장2.4. 2006년 대선2.5. 2009년 중간선거와 2012년 대선2.6. 민주혁명당 탈당과 국가재건운동 창당2.7. 2018년 대선2.8. 집권 이후
2.8.1. 2010년대2.8.2. 2020년대
2.9. 퇴임 이후
3. 여담4. 선거 이력5.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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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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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정치인. 전직 제65대 멕시코 대통령이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라고도 불리며 흔히 쓰이는 약칭은 AMLO(암로)이다.

촉망받던 제도혁명당 당원에서 부정선거에 대항하는 야당인사로 변모, 유능한 행정으로 높은 지지를 모은 행정가, 두 번째 정권 교체를 이룰 뻔한 인물, 국가재건운동 소속으로 정권 교체, 멕시코 역사상 가장 높은 재임 기간 평균 지지율[2] 등 알고보면 파란만장한 정치 이력을 지니고 있다.

2. 생애

2.1. 정치 입문

타바스코주 마쿠스파나 출신으로[3]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꿈이었다고 한다. 1972년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AM)에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 시절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정치인으로 입문한 뒤의 삶과는 영 딴판으로 학생운동가 스타일은 아니고 조용한 스타일이었다고 기억되고 있다.

1976년 대학을 졸업한 뒤에 제도혁명당에 입당했고 유명시인으로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한 카를로스 펠리세 #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4] 그가 제도혁명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당시 멕시코 정치가 제도혁명당 일당 우위 정당제 시절이였기 때문이다. 제도혁명당의 대선 득표율은 기본적으로 70%를 넘었고 대통령 선거보다 제도혁명당 경선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졌을 정도였다.[5] 그래서 제도혁명당에 입당해야 정치인으로써 입지와 미래가 보장되었고 제도혁명당 이외의 나머지 정당들은 군소정당에 불과했다.[6]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제도혁명당에 입당한 뒤로 한 동안 타바스코 주 마얀에 위치한 시골에 살았는데 거기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멕시코 토착민 연구소 대표 직함까지 달며 5년간 살았으며 1982년 타바스코 주지사였던 엔리케 곤잘레스 페드로가 당선되면서 제도혁명당 정치위원회 사회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달았고 1983년에 제도혁명당 타바스코 집행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이 당시 제도혁명당이 우경화되어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성향과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후에 멕시코 시티로 발령나게 되면서 멕시코 연방 소비자 보호국으로 발령났으며 연구활동에 전념했다.

2.2. 제도혁명당 탈당 및 민주혁명당 입당

이렇게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한창 제도혁명당 당원으로써 자리를 잡아갈 시기, 유가하락과 외채폭증으로 인해서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이른바 멕시코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멕시코의 경제성장이 막을 내리고 복지정책 축소와 노동규제 완화, 임금수준의 저하로 인한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되었다.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에서의 무책임한 대처까지 겹치며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도 점차 한계를 맞고 있었다. 이렇게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멕시코의 상황과 제도혁명당이 자신의 성향과 반대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1988년 선거를 앞두고 카를로스 살리나스가 차기 대권주자로 내정되자 살리나스가 내세운 정책에 반감을 표하며 제도혁명당을 탈당하고 민주혁명당에 입당해 야당 인사가 되었다. 1988년 대선은 초기 개표에서 민주혁명당 후보인 콰우테목 카르데나스가 앞섰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몇 시간 동안 개표가 중단된 후에 제도혁명당이 이겼으며(일종의 부정선거), 로페스 오브라도르도 타바스코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20%대의 득표를 얻는데 그쳐 낙선했다.

그러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타바스코 주지사 선거에서 금품이 오갔다는 점을 폭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행진에 참여하면서 재기를 노렸고, 연설로 유명세를 탔으며 일부 지방에서 선거무효선언을 이끌어냈다.

1994년 타바스코 주지사 선거에 재출마하게 되었지만 또다시 낙선했다. 그러나 제도혁명당 정부가 부정부패 문제와 경제문제 해결에 지속적으로 실패하여 실망감을 주었고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타바스코 주에서 민영화로 인해 타바스코 주 일대의 공공요금이 올라가자 공공요금 납부거부 운동을 선도했다.

1996년에는 민주혁명당 당대표가 되었다. 당대표로써 멕시코 석유공사가 일으키는 환경오염에 맞서서 원주민들과 어부들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맞서 싸웠고, 이로 인해 피멍이 들기까지 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택에 1997년 중간선거에서 국민행동당과 민주혁명당이 동시에 선전하고, 여당인 제도혁명당이 하원 과반수확보에 실패하는 (당시로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며 입지를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2.3. 멕시코시티 시장

2000년에는 71년간 집권했던 제도혁명당 정권이 종식되고, 만년야당 내지 위성야당 역할이나 수행했던 우파 국민행동당 비센테 폭스의 대통령 당선으로 여당으로 등극했다. 동시에 치러진 멕시코 시티 시장선거에 출마한 로페스 오브라도르도 37.6%의 득표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멕시코 시티 시장이었을 때는 매일같이 언론들과 기자회견에 나서면서 업무집행 내용을 설명하는 등 유능하고 성실한 일집행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특히 카를로스 슬림과 같이 힘을 합쳐서 멕시코 역사지구를 복원하고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하는 등의 인프라 재정비[7], 미혼모와 가난한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는 등 복지를 확충하는 정책[8] 등이 크게 호응을 얻었고, 임기 말에는 멕시코 시티 주민들에게 지지율 90%에 달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후로 멕시코 시티에서는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PRI와 PAN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005년에 부패혐의가 제기되면서 탄핵 위기에 몰렦던 적도 있다. 국민행동당과 제도혁명당이 힘을 합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탄핵하려 했는데 의혹 자체가 석연치 않아서 멕시코 시티 주민들에게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멕시코시티 주민들에게 개혁하라니까 제도혁명당과 붙어먹냐며 비센테 폭스를 격렬하게 비토한 끝에 결국 탄핵은 취소되었고, 검찰총장이 오히려 해임당해 폭스 대통령과 국민행동당도 제대로 망신당했다.

2.4. 2006년 대선

탄핵이 취소된 후,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첫 비 제도혁명당 정부였던 빈센테 폭스에 대한 실망감이 큰 것을 이용하여 민주혁명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

이 때 국민행동당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우고 차베스와 연계짓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내놓았고[9] 텔레비사같은 멕시코 주요 언론들도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과격좌파 인사로 낙인찍으면서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 선거운동은 중산층 상대로 호응을 얻었다. 이때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농촌경제와 빈민층을 살리기 위해서 나프타를 재협상하자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확실히 나프타 체결 이후로도 멕시코의 임금이 정체되고있는데다가 중국이 제조업으로 성장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고 그로 인해서 멕시코의 서민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내수시장은 내내 침체된데다가 80년대 이후의 고질적인 저임금 문제때문에 미국으로 이민가려는 수요는 더더욱 늘어나고 있던 차였고, 값싼 미국산 식료품 덕택에 농촌경제는 황폐해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이 점을 캐치해내면서 나프타 재협상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었는데 펠리페 칼데론과 국민행동당이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나프타 재협상 공약이 중산층을 대상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펠리페 칼데론 국민행동당 후보와의 지지율차는 좁혀져갔다.

개표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을 때까지도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근소하게 우세였지만 이후로 북부 지역[10]과 미국 지역 표가 개표되며 판세가 뒤집혔고 말 그대로 국민행동당의 재집권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멕시코 전체가 난리가 났고 국민행동당 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을 거두었다. 여하튼 부정 여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적어도 상당수 지역에서 매표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제시되는 등 선거 자체는 그리 깔끔하게 치러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도 이 상황에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대항정부를 내세우는 행보를 보였지만 점차 장기화되어가는 시위에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점차 지쳐갔고, 결국 로페스 오브라도르도 뜻을 접고 2007년에 시위를 접고 말았다.

2.5. 2009년 중간선거와 2012년 대선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시위를 접으면서 민주혁명당 내부에서 계파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민주혁명당의 이미지도 추락했으며 멕시코의 주류 언론들도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계속 부정적인 보도를 내놓다.

곧이어 칼데론 대통령이 석유회사 개혁을 명목으로 석유시장을 개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지만 민주혁명당 내에서 중간선거 공천을 앞두고 내분이 크게 일어났다. 한편 칼데론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은 범죄율 감소는커녕 카르텔의 무장화만을 도와주는 결과만을 낳았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국민행동당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추락했는데, 계파갈등 때문에 2009년 중간선거에서 민주혁명당은 반사이득을 챙기기는커녕 오히려 2006년 선거때보다 의석수가 크게 줄어드는 참패를 당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009년 중간선거 참패를 거두고 나서는 당내 내분을 가까스로 재수습했고,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민주혁명당 지지자들의 압도적인 표를 얻으며 경선에서 승리해 2012년 대선에서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

이전에 한번 아쉽게 패배한 전력이 있기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했던 상황이었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엔리케 페냐 니에토가 잘생긴 얼굴과 멕시코주[11]지사로 재직했을 당시의 성공적인 행정, 그리고 우호적인 언론 환경에 힘입어 돌풍을 일으키며 지지율 40-50%대를 넘나들었고,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지지율은 20%대를 오가는데 그쳤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이 상황에 대해 제도혁명당의 과거 부패상을 무기삼아 돌풍을 꺾으려고 했고, 마침 니에토의 몰상식한 발언이 재조명받고, 페냐 니에토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이 크게 힘을 얻으며 상승세를 탈거 같았지만 그것도 콜롬비아 출신 해커의 여론조작 작전에 휘말리면서[12] 역공을 당했고, 결국 2006년 대선때보다도 4% 가량 낮은 31.6%의 득표를 건지는데 그치며 낙선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금권선거와 부정선거를 주장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며[13] 민주혁명당 내에서도 암로의 연속적인 패배로 인해 반 암로 정서가 강해지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2.6. 민주혁명당 탈당과 국가재건운동 창당

결국 민주혁명당에서 입지가 좁아진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012년 말 민주혁명당을 탈당하고 국가재건운동(모레나)을 창당했다. 그러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차기 대권주자가 될지 상당히 불투명한 상태였고, 민주혁명당은 제도혁명당이 주도하는 일종의 대연정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2014년 멕시코 아요트시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 당시 제도혁명당-국민행동당-민주혁명당 3당이 삽질하는 틈을 타서 2015년 중간선거에서 나름대로 선전했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아울러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공약대로 멕시코에 대해 무역전쟁을 시사함에 따라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대해 NAFTA를 박살내려 한다는 공격이 쓸모 없어졌다. 오히려 1980년대 이래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던 멕시코의 임금수준을 상승시켜서 내수시장을 키우자는 방안이 크게 힘을 얻었고, 이로 인해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대한 장애물이 상당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2.7. 2018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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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스 오브라도르는 그 동안 대통령이 되는데 걸림돌이었던 강성이미지를 씻기 위해서 우파 기독교 정당인 사회만남당(PES)과 연합하면서 논란을 일으켰고[14], 이로 인해서 그 동안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지지했던 상당수 좌파 단체들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이후로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지지율이 쭈욱 상승하는 추세가 되었기 때문에 강성 이미지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평을 들었으며, 2018년 들어서는 제도혁명당과 국민행동당-민주혁명당 연합후보를 20% 이상의 차이로 따돌리는 압도적인 후보가 되었다.

2018년 7월 1일 치러진 2018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 53%의 득표율로 화려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수치는 당사자들이 직접 부정선거라고 인정한 1988년 대선에서 살리나스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50.7%)보다도 높은 것이고, 1982년 대선 이후로 최다 득표율을 기록하여 멕시코 민주화 이후로 최다 득표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울러 멕시코 32개 주 중에서 과나후아토 주를 뺀 모든 주에서 승리하였다.

멕시코는 대선과 동시에 상/하원 전원을 교체하는 총선도 치러지는데, 상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압승을 거두었으며 특히 하원에서 국가재건운동을 비롯한 선서연합 3당이 합쳐서 307석을 획득하였다. 1997년 중간선거 이후로 최초로 국가재건운동과 선거연합인 사회만남당, 노동자당이 상하원 모두 과반을 차지해 안정적인 상황에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상당수 지역에서 노동자당과 사회만남당 인물들로 공천했기 때문에 단독정당의 과반획득은 아니지만 선거연합인 노동자당과 사회만남당의 의석수가 대폭 늘어난 것이 자력이 아닌[15] 로페스 오브라도르 효과인 점을 감안하면 큰 의미는 있는 숫자이다.

또한 이 대선날에 9개 주지사 선거도 동시에 치러졌는데 국가재건운동은 멕시코 시티와 모렐로스, 치아파스, 베라크루즈, 그리고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고향인 타바스코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베라크루스의 경우 제도혁명당 소속 하비에르 두아르테 전 주지사의 부패행위로 인해[16] 크게 충격받아 이리 된 모양.

한편 멕시코에 강경 압박을 가하고 있는 트럼프와 대립하여 미국에 할 말은 당당히 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기에 2018년 대선에서도 주요 언론사에서 트럼프와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대화하면 망할 것 같다는 사설을 선거 이전부터 내놓았고, 반대로 진보 성향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논지의 보도를 내놓으면서 트럼프에 당당히 맞서며 패기를 드러내는 거 아니냐는 식의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당선 직후 트럼프와 비교적 온화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고 트럼프를 취임식에 초정하는 등[17] 트럼프에게 유화책을 내밀고 있는데다가 선거 전에 선거부패나 비리 문제로 실컷 각을 세우며 깠던 페냐 니에토와도 일단 나프타 재협상에 집중하며 추가적인 협상전략을 세우자는 얘기를 나누고, 재계 관계자와도 면회하면서 일단 시장을 안정시키고 있고, 그 덕택에 페소화 가치와 주식은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한편 페냐 니에토가 재정을 건전화하겠답시고 임금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주제에 국가채무는 크게 늘려먹은지라[18] 복지확대에 있어서 애로사항이 많다는 모양인데 그래도 부가가치세 인하, 정유소 추가건설을 통한 휘발유 자급자족 및 가격인하, 마약과의 전쟁 중단 및 경범죄자 사면, 최저임금 인상[19], 비동맹 노선[20]을 천명하는 등의 일단 할일은 할 모양이다.

2.8. 집권 이후

집권 직전에 일단 나프타 재협상이 생각보다 큰 마찰없이 타결된데다가 미국으로부터 '불법이민' 단속자금까지 지원받으면서 생각보다 트럼프와 마찰이 크지 않다는 점을 입증시켜놓았다. 경약물 합법화와 멕시코 남부 개발을 대대적으로 진행해서 멕시코 내의 빈부격차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멕시코 신공항 건설반대에 나선만큼 멕시코시티 신공항 건설을 멈추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국민투표를 통해 신공항은 백지화되었고, 당연히 계층간 갈등이 커졌다.[21]

마야선[22]이라는 것을 만들어 유카탄 주의 지역 경제 살리기 위한 비공식 국민투표도 가졌으며, # 실제로 부설이 진행 중이다.

2019년 들어서 난데없이 휘발유를 주유하려고 줄을 서는 일이 벌어졌다. 정확하게는 멕시코 내에서 갱단들이나 페멕스 내부 직원에 의한 휘발유 절도유출사건이 성행하는데 이 때문에 국영석유회사인 페맥스가 매년 30억 달러씩이나 손해를 보고있는 상황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이를 알고있었지만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페멕스의 페멕스 내부 부패로 인한 석유도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송유관 사용을 중지하고[23] 휘발유를 유류차를 이용해서 운송하고있는 중이다. 문제는 유류차가 충분히 준비되지않은 상태에서 휘발유를 실어나르다보니까 유통정체가 발생하는 바람에 상당수 지역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동나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석유절도가 5%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으니 소기의 성과는 거두웠다고 할 수는 있는데 유통안정화가 관건이다. 한편으로는 지금 당장은 불편하지만 미래를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도 되고,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참는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멕시코가 계층간 갈등이 심각한 사회라는 것도 증명된 상태이다. 여담으로 멕시코 시티 등 몇몇 대도시에서는 중 ~ 단거리는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운동도 일어난 상태다.[24][25] 사실 여론조사를 보면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대한 지지율이 70%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압도적이기 때문에 저런 불만여론이 있기는 하지만 부패문제가 너무 심한 것은 사실이니 부패척결을 위해서 감수해야 된다는 여론이 대세인 듯하다. 또한 송유관에 기름도둑이 석유를 훔치려고 구멍을 내고 그 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석유를 가져가려다가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100명 넘게 사망하는 참사도 벌어졌기 때문에 부패척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어쨌든 송유관 보수가 완료되면서 기름도둑의 완전 퇴치는 되지 않았지만 하지만 기름유출이 크게 줄어들면서 일단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는 평.

2020년에 동생이 현금을 전달 받는 영상이 나왔다. 당사자는 선거 자금을 모금해 당에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범죄 사실이 있다면 누구라도 조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필요할 경우 자신도 출두해 진술하겠다고 밝혔다. #

2.8.1. 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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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에 2006년부터 시작된 마약 카르텔과 전쟁중단을 선언하고, 투입된 군 병력을 일부를 국가 수비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런 그의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의 제노포비아 정책으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마약 카르텔 방지를 위해 창설한 국가 수비대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의 이민 및 난민 방지 요구에 따라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와 난민들을 막는데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약 카르텔은 아예 멕시코 전역을 유린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고 있다. 그 이전에는 멕시코시티 수도권 지역은 그나마 치안이 나았다. 그러나 국가 방위대의 이민자 및 난민 방지 투입이 지속되고 카르텔에 대한 토벌을 소홀히 한 결과 2019년 7월부터 멕시코시티 내에서도 마약 카르텔 간 항쟁이나 마약 카르텔이 자신을 비난했던 인사들을 학살하는 살인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유력 마약 카르텔의 후계자를 잡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고, 2019년 11월에는 하루에 살인사건이 100건 이상 발생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지지율은 원래 70% 부근을 유지했을 정도로 지지기반이 탄탄했는데, 10월 이후로는 매주 나오는 여론조사마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시날로아 카르텔의 수장 구스만의 아들을 체포했다가 카르텔한테 군대와 경찰이 협박에 굴복하여 그를 석방시키는 굴욕까지 당했다. # 게다가 2019년 11월 8일 10월에 구스만의 아들을 체포했던 경찰이 마약 카르텔의 보복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사

20년 3월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정책 분야별 지지율에서 범죄 대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8.9%에 그치고 지지하지 않는 응답이 65.6%였다.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을 묻는 문항에도 가장 많은 응답자가 범죄와의 싸움(22.7%)을 꼽았다. 특히 최근 잔혹한 여성살해 사건[26]이 잇따르면서 여성 지지자들이 먼저 등을 돌렸다. 여성의 대통령 지지율은 53.3%로, 남성의 60.3%보다 낮았다.

만연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분노가 커지는 상황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여성폭력 현황이 언론에 의해 조작됐다고 말하거나 여성폭력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돌리는 발언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 그래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

그럼에도 집권 2주년 여론조사에서 60%를 차지했다. #

2.8.2. 2020년대

2020년 3월에 시날로아 카르텔의 마약왕 엘차포 구스만의 어머니와 악수하면서 '존경받는 노부인(respectable old lady)'이라고 불러 구설수에 올랐다. # 2022년 3월에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에 할리스코 주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

2022년 4월 10일. 자신의 임기 지속 여부를 묻는 '셀프 국민 소환투표'에서 예상대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다만 대통령 적극 지지층 중심으로만 투표에 참여한 탓에 투표율은 유효 기준인 40%에 한참 못 미쳤다.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여전히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다는 것이 드러났다. #코로나 정책과 카르텔 대책이 실패하여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28], 사회복지정책의 실시로 멕시코의 저소득층에서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무려 1,500만명이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6개월만에 사회보장 혜택을 받아 절대적 빈곤선에서 벗어났다는 통계도 나왔으며, 장학금 혜택 또한 대학까지 확대되어 제대로 된 직업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또 매일 아침 기자회견을 가지며 언론과 솔직하게 소통하는가 하면, 기업가들과 종종 저녁식사를 가지고 급진적인 개혁 대신 천천히, 확실하게 멕시코를 개혁한다는 신념으로 시장에도 안정신호를 주고 있어 좌우파나 사회적 계층을 막론하고 인기가 있는 편이다.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2023년 초 기준으로도 지지율만 보면 OECD 정상 중 지지율이 가장 높으면서도 안정적인 축에 속한다. 가히 지난 수십년간의 모든 멕시코 대통령을 통틀어 가장 인기가 좋은 대통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2024년이 되어서도 이는 멈추지 않아서 마이티 덕으로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

또한 중남부 지역에서의 지지 기반이 상당히 두터운 편인데, 지지율이 높은 주 10개를 추려보면 바하 칼리포르니아 나야리트, 시날로아를 제외하면 중남부 지역에 집중되어있다. 이 지역들은 오브라도르가 패배한 2006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 2012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도 오브라도르가 앞선 지역들이다.

2024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 소속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파르도 후보가 61%를 득표하면서 큰 차이로 승리했다. 동시에 치뤄진 의회 선거에서도 여권이 하원 500석 중 373석으로 압승을 거뒀다.

2024년 9월 2일 마지막 국정연설을 했다. #

9월 11일 법관을 국민 투표로 선출하는 판사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법부 개편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오브라도르의 숙원 사업이었다. #

해당 개편안이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것과 별개로[29] 멕시코 내에서 지지는 높은 상황이며 대통령 수행 지지율도 79%를 기록, 역대 대통령 퇴임 지지율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30]

2.9. 퇴임 이후

3. 여담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멕시코 전국지방선거 타바스코 주 제도혁명당 (20.90%) 낙선
1994 멕시코 전국지방선거 타바스코 주 민주혁명당 (37.75%) 낙선
2000 멕시코 전국지방선거 멕시코시티 / 연방구역 민주혁명당 (37.75%) 당선 (1위)
2006 멕시코 대통령 선거 멕시코 민주혁명당 (35.29%) 낙선
2012 멕시코 대통령 선거 멕시코 민주혁명당 (31.64%) 낙선
2018 멕시코 대통령 선거 멕시코 국가재건운동 (53.17%) 당선 (1위)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6 - 1989 정계 입문
1989 - 2012 창당

2012 - 창당


[1] 2014년에 멕시코 의회에서 실시된 선거 개혁으로 인해 다음 대통령부터는 6월에 선거를 실시하고 10월에 취임하는 걸로 바뀌었다. 이에 AMLO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적용받게 되어 AMLO는 다른 대통령에 비해 2개월 가량 임기가 짧았다. [2] 6년간 재임하면서 단 한번도 평균 지지율이 60% 미만으로 내려가본적이 없다. [3] 타바스코 소스의 원료가 되는 타바스코 고추로 유명한 지역이다. 물론 타바스코 소스는 멕시코가 아닌 미국에서 제조된다. [4] 다만 카를로스 펠리세는 당선 1년 후에 사망했다.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운 고령이었던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5] 이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된 것은 1988년 대선 이후의 일이다. [6] 그나마 국민행동당 정도가 규모가 컸지만 국민행동당조차도 이 시기에는 선거에서 10%대의 득표율을 올리는데 그치는 말 그대로 만년야당에 불과했다. [7] 슬림은 정치적으로 우파이지만 제도혁명당과 유착해서 이것저것 많이 주워먹으면서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친분관계를 맺는 등 정치적으로 꽉 막힌 인물은 아니다. [8] 이 정책은 당대에 국민행동당이나 제도혁명당 정치인들에게 표퓰리즘 정책이라며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막상 그들도 연금을 주는 정책을 베끼기 급급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시행되게 되었다. 애초에 멕시코 자체가 선거할 때마다 후보자들이 돈이나 상품을 유권자들에게 뿌리는 것이 일상 다반사인 나라라서 설득력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다. [9] 이 캠페인을 내놓은 사람은 안토니오 호세 솔라라는 정치 컨설팅 업자였다. 캠페인은 성공적이었고 이 캠페인이 현재까지도 세계 언론계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막상 제안을 받아들인 펠리페 칼데론이 마약과의 전쟁을 진행하다가 마약 퇴치는커녕 카르텔에 의한 범죄율만 높아진지라 빛이 바랬기는 하지만. [10] 21세기 초반 당시 국민행동당의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이었는데 미국과 경제적으로 연관성이 크다보니까 성향이 우파로 쏠렸다. 민주혁명당의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은 멕시코 시티와 수도권과 가까운 몇몇 지역 (모렐로스주, 게레로주 등) 일대이고, 제도혁명당은 멕시코시티를 제외한 중남부 일대에서 ( 멕시코주 포함) 지지세가 강했다. [11] 멕시코 시티와는 다른 행정구역이다. 경기도와 비슷한 수도권 지역이다. [12] 이 해커는 중남미 여러 정치인들에게 일종의 컨설팅(?)을 했고, 그걸로 먹고살았는데 후안 마누엘 산토스가 FARC와 평화협정을 추진하려 하자 이에 반발하며 수를 쓰려고 하다가, 감옥에서 콩밥을 먹게 되었다. 그래도 석방된 이후로는 이반 두케를 지원하고 이반 두케가 당선되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13] 그러나 금권선거나 해커의 여론조작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14] 특히 우파 기독교 정당답게 동성결혼과 낙태에 반대입장을 보였던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을 지원하자는 성향의 정당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로페스 오브라도르나 국가재건운동보다 우익적인 국민행동당-민주혁명당 연합후보 아니야나 제도혁명당 미드 후보나 동성결혼 이슈를 섣불리 꺼내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요 세 후보 모두 동성결혼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15] 사회만남당은 국가재건운동보다는 국민행동당과 연합하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우익 성향이고, 노동자당은 2006년 대선과 2012년 대선 당시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지원해서 관계가 있기는 하나 전국적인 조직력도 미약하여 중앙정계에서 세력이 큰 정당은 아니었다. [16] 돈 세탁 등이 추궁받고 있으며, 항암 치료가 필요한 소아암 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고 물을 투여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충격이 컸다. 지금 멕시코시티 북부교도소 (Reclusorio Norte)에 구속 수감에 복역중이다. [17] 그 결과 이방카 트럼프가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취임식에 참석했다. [18] 페냐 니에토 재임전보다 국가 채무가 대략 2배 가량이나 늘었다. [19] 다만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로 재계에서도 널리 주장하는 사항이 되었다. 이유인 즉슨, 트럼프가 하도 멕시코에게 압력을 가하다보니 어떻게든 수출길을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 노동자 저임금 때문에 미국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최저임금을 올릴 것을 주장했다. [20] 2015년부터 201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가 속속 우파정권이 집권했고, 멕시코도 이에 발맞추워서 베네수엘라를 크게 압박했고, 거기에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실상 아메리카 주요국가들이 전부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는데(볼리비아와 에콰도르는 경제력이 큰 나라는 아니라서 영향력 자체가 약하다.) 덕택에 안 그래도 높았던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을 크게 높이는데 일조해서 마두로의 지지기반을 내려앉게 만드는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데 동참했다해도 멕시코가 얻어먹은것은 별로 없는 관계로(사실 다른 국가들도 대체로 마찬가지의 일이었으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여기서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데 집중하는 것보다는 미국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면서 발을 빼자고 한 것이다. 즉, 이익이 거의 없는 것보다는 일단 가장 급한 자국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자는 얘기다. [21] 멕시코에서 항공기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비중은 10% 정도밖에 안된다. 따라서 기존 중산층과 부유층은 백지화 반대, 텍스코코 및 에카테펙 데 모렐로스 시민들과 신흥 중산층, 서민층은 백지화 찬성 쪽으로 갈렸다. [22] 마야 열차라고도 한다. 노선명으로 할 경우 마야선. [23] 송유관을 재가동해볼려고 했지만 송유관에 갱단들이나 페멕스 내부 직원에 의해서 구멍이 송송 나있는 상황인지라 도저히 재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24] 멕시코 시티의 경우 대한민국보다는 자전거 타기가 더 유리한 환경이다. 몬테레이는 그 반대. 멕시코시티 기준으로 자전거 운전자는 인도 쪽으로 붙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맨 우측 차로 전체를 먹을 수 있고, 심지어 추월차로 개념이긴 하지만 좌측 추월도 가능할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권리가 더 많다. [2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처음에는 자전거를 이용하기 좋은 도시가 아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이렇게 변모한 것.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 말대로는,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삼자고 주장한다. [26] 7세소녀 납치살해사건 동거녀 토막살해사건 [27] 멕시코 주요 투표는 일요일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들의 결집을 이루기 힘든 측면이 있다. 당장 대한민국만 봐도 중요 선거를 수요일에 실시하는 건 이유가 있다. [28] 같은 당 소속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과 대처 방식이 달랐던 것도 한몫했다. [29] 국제사회에서는 멕시코 사법부의 정치화를 우려하지만, 사실 2024년 멕시코 대선 전에 대법관이 야권 정치인과 접촉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멕시코에서는 그동안에도 멕시코인들 사이에서 불만을 일으켰던 제도혁명당의 사법 유린이 오히려 더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30] 종전 기록은 펠리페 칼데론이 세운 69%였다. 참고로 전임자 엔리케 페냐 니에토는 27%(...). [31] 대부분은 환불이 되지 않는 초저가 항공권 혹은 얼리버드 항공권을 구입해서 탑승했겠지만 대통령 특성상 그때그때 일정이 바뀌기 마련이라 일부 항공편은 변경, 환불이 가능한 풀페어로 탔다는 것도 고려해야된다. [32] 비상구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사고가 났을 경우 승무원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있다. AMLO가 일반 승객들처럼 이에 응해 항공기 사고가 나서 진짜로 승무원들을 도울 경우 승무원을 돕다가 서거할 가능성이 일반석에 앉을 경우보다 매우 높기 때문에 그거대로 또 문제다. [33] 애초 이공계 인사이다보니 대처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34] 다래끼 같은 비전염 질환에 걸린 경우 아무리 아파도 나와서 기자회견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