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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합중국 제48대 대통령 에밀리오 칸디도 포르테스 힐 Emilio Cándido Portes G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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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847> 출생 | 1890년 10월 3일 |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주 시우다드 빅토리아 | |
사망 | 1978년 12월 10일 (향년 88세)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재임 기간 | 제48대 대통령 |
1928년 12월 1일 ~ 1930년 2월 4일 | |
직업 | 정치인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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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노동자당 → (1929~) |
경력 |
타마울리파스 주지사 제48대 멕시코 대통령 (1928 - 1930) 내무장관 법무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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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의 제48대 대통령. 1928~1934년간 이어진 막시마토 시기의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2. 생애
멕시코 북동부의 타마울리파스 주 출신으로,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로스쿨에 재학하며 당시 입헌군 사령관인 베누스티아노 카란사를 지지했다.1915년 로스쿨을 졸업하자마자 입헌군 측의 법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또한 북부 입헌군에 참여하면서 판초 비야의 군대를 패퇴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후 하원 의원과 타마울리파스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 정권 말기에는 내무장관을 지냈다.
3. 크리스테로 전쟁
크리스테로 전쟁은 멕시코 혁명의 마지막 전쟁이기도 했다. 입헌군 장군들이 제정한 《1917년 헌법》으로 인해 가톨릭 교회들이 헌법에 의해 토지 소유를 제한받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직접적으로 제약을 받게 되었다. 또한 교황청이 파견한 대주교를 추방하고 카예스 법을 제정해 가톨릭의 공개 활동을 금지시키자 가톨릭 교도들이 1928년 크리스테로 전쟁을 일으켰다.그 와중에 카예스 대통령의 전임인 알바로 오브레곤 전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 재선에 성공하지만 취임하기도 전에 가톨릭 테러범 호세 데 레온 토랄에게 암살당한다.
카예스는 국가혁명당(PNR)을 창당하여 살아남은 혁명 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1928년에 임기를 마친 뒤 자신의 부하들을 바지사장 대통령으로 앉히면서 막후 실세로 군림했다. 이 시기를 막시마토 시기라고 부르며, 그 첫 번째 바지사장이 에밀리오 힐이었다.
4. 대통령직 수행
한편 크리스테로군은 정부군의 토벌로 세력이 약화됐고, 1929년 힐 대통령과 크리스테로가 미국의 가톨릭 단체인 콜럼버스 기사단의 중재를 받아들이며 크리스테로 전쟁이 끝났다. 멕시코 가톨릭은 멕시코 정부의 주권을 인정했으며, 멕시코 정부도 영적 부분에서 교회의 권리를 인정했지만 멕시코 가톨릭의 재산권은 1992년까지 제한받았다.그 외에도 대학 파업에 직면하자 의회를 소집하여 상황을 진정시켰고, 결국 멕시코 국립 대학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는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로 이어져 내려온다.
5. 퇴임 이후
이후 1930년 2월, 파스쿠알 오르티스 루비오에게 대통령직을 넘기고 퇴임한다. 물론 루비오도 실권이 없긴 매한가지. 루비오의 재임 동안 힐은 내무장관으로 재직했다. 그 후 국제 연맹의 멕시코 대표로 유럽을 방문하고, 법무장관과 당 대표를 지냈다.이후 1978년 향년 88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