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멕시코 합중국 제44대 대통령 호세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데라가르사[1] José Venustiano Carranza de la Garza |
|
|
|
<colbgcolor=#006847> 출생 | <colcolor=#000000,#e5e5e5><colbgcolor=#fff,#191919> 1859년 12월 29일 |
멕시코 코아우일라 주 쿠아트로 신니가스 | |
사망 | 1920년 5월 21일 (향년 60세) |
멕시코 푸에블라 주 틀락스칼란통고 | |
재임 기간 | 제44대 대통령 |
1917년 5월 1일 ~ 1920년 5월 21일 | |
직업 | 군인, 정치인 |
신장 | 198cm[2] |
국적 |
[[멕시코| ]][[틀:국기| ]][[틀:국기| ]] |
정당 | 멕시코 민주당, 자유입헌당 |
경력 |
코아우일라 주지사 입헌군 사령관 겸 정부수반(1914 - 1917) 제44대 멕시코 대통령 (1917 - 1920) |
[clearfix]
1. 개요
멕시코의 44대 대통령.2. 생애
1859년 멕시코 코아우일라 주의 쿠아트로 신니가스 마을에서 중산층 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프랑스-멕시코 전쟁에서 최단신인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를 만난 적이 있고 1909년에 코아우일라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고 1910년에 33대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마데로의 선거 운동을 후원하여 1911년 8월 코아우일라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마데로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반란까지 계획했다.
그 뒤 마데로가 살해당하고 독재자 빅토리아노 우에르타가 대통령이 되지만 또 혁명이 터졌고 1914년 8월 15일에 우에르타의 마지막 군대가 항복하고 8월 20일 카란사가 멕시코 시티에 입성하면서 우에르타 정부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1917년 5월에 멕시코의 37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후반기였는데, 재임 중 독일 제국이 멕시코에게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미국을 공격할 것을 제안하는 치머만 전보 사건이 있었다. 물론 카란사는 이 제안을 물리쳤다.
1919년에 에밀리아노 사파타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지만 1920년, 한때 카란사와 동맹을 맺고 판초 비야를 물리치는 데 공헌한 알바로 오브레곤이 카란사 정권과 척을 지게 되었다. 카란사는 비야&사파타와의 관계만큼은 아니었지만 오브레곤과도 양립이 불가능한 관계였는데, 대대로 대농장주 집안이었던 카란사는 농지개혁 추진이나 노동자 권익 보호 등의 개혁에 소극적이었지만 오브레곤은 본인이 자수성가한 빈민이었기에 개혁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카란사가 오브레곤을 위시한 장군들이 제창한 《1917년 헌법》을 무시한데다 급기야 오브레곤의 인망이 높아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껴 정계에서 쫓아내고 체포하기까지 한 것을 계기로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소노라로 달아나 카란사에 대한 반란을 선포한 오브레곤은 사파타의 뒤를 이어 남부 반군을 이끌던 힐다르도 마가냐 세르다(Gildardo Magaña Cerda), 헤노베보 데라오(Genovevo de la O)와 동맹을 맺었고, 이들은 1920년 오브레곤의 성공적인 쿠데타의 주축이 되었다.
1920년 5월 21일에 카란사는 멕시코시티에서 도망쳐 베라크루스로 향했지만 베라크루스 주지사가 오브레곤파임을 알고는 산으로 도망치던 중 부하의 배신으로 시에라 노르테 데 푸에블라[3]에서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