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루스벨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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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대 루 헨리 후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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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엘리너 루스벨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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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대 베스 트루먼 |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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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 ||||
지도자들 & 혁명가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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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루스벨트 | 블라디미르 레닌 | 마거릿 생어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엘리너 루스벨트 | |
아돌프 히틀러 | 윈스턴 처칠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 다비드 벤구리온 | 마오쩌둥 | |
마틴 루터 킹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 마거릿 대처 | 로널드 레이건 | 미하일 고르바초프 | |
레흐 바웬사 | 넬슨 만델라 | 요한 바오로 2세 | 호찌민 | 탱크맨 | |
같이 보기: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건설자 & 거인 부문, 영웅 & 아이콘 부문 | }}}}}}}}} |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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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미국의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순위는 없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된 인물은 헨리 포드와 라이트 형제뿐이다. | ||||
제인 애덤스 <사회 개혁가> |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인권 운동가> |
엘리자베스 아덴 <사업가> |
룬 알레지 <방송 경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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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 <재즈 뮤지션> |
조지 발란신 <안무가> |
존 바딘 <물리학자> |
어빙 벌린 <작곡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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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버네이스 <홍보 책임자> |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지휘자> |
말론 브란도 <배우> |
베르너 폰 브라운 <로켓 공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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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작가> |
월레스 캐러더스 <발명가, 화학자> |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에어컨 발명가> |
레이첼 카슨 <작가, 해양생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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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크로스비 <가수, 배우> |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 |
유진 데브스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 |
로버트 더그래프 <포켓북 창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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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듀이 <철학자> |
월트 디즈니 <기업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
W. E. B. 듀보이스 < NAACP 설립자> |
앨런 덜레스 < CIA 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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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포크 뮤지션>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시인> |
윌리엄 포크너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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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육자> |
헨리 포드 <기업가> |
존 포드 <영화감독> |
베티 프리댄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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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 <경제학자> |
조지 갤럽 <여론 분석가> |
아마데오 지아니니 <은행가> |
빌리 그레이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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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그레이엄 <댄서, 안무가>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영화감독> |
조이스 홀 <사업가> |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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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홈스 주니어 <법학자> |
존 에드거 후버 < FBI 초대 국장> |
로버트 허친스 <교육자> |
헬렌 켈러 <인권 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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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케루악 <시인, 작가> |
빌리 진 킹 <인권 운동가, 테니스 선수> |
마틴 루터 킹 <목사, 인권 운동가> |
알프레드 킨제이 <성과학자, 생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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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콜프 <생명과학자> |
레이 크록 < 맥도날드 창업자> |
에드윈 랜드 <과학자, 발명가> |
윌리엄 레빗 <부동산 개발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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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L. 루이스 <노동당 지도자> |
찰스 린드버그 <비행기 조종사> |
레이먼드 로이 <산업 디자이너> |
헨리 루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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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군인, 정치인> |
조지 C. 마셜 <군인, 정치인> |
루이스 B. 메이어 <영화 제작자> |
클레어 매카델 <패션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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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매카시 <변호사, 정치인> |
프랭크 맥너마라 <신용카드 발명가> |
마거릿 미드 <인류학자> |
칼 메닝거 <정신과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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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E. 메릴 <주식 중개인> |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가> |
로버트 모세 <공무원> |
윌리엄 멀홀랜드 <토목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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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R. 머로 <종군기자> |
랠프 네이더 <소비자 보호가, 환경보호가> |
라인홀드 니부어 <윤리학자> |
존 폰 노이만 <물리학자, 수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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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극작가, 작가> |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물리학자> |
윌리엄 S. 페일리 <방송 경영자> |
잭슨 폴록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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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포스트 <소설가, 작가> |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
재키 로빈슨 <야구선수> |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 <기업가> |
||
리처드 로저스 (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뮤지컬 작곡가, 작사가> |
윌 로저스 <배우, 작가> |
엘리너 루스벨트 < FDR의 아내, 사회운동가> |
베이브 루스 <야구선수> |
||
조너스 소크 <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
마거릿 생어 <사회운동가> |
앨프리드 P. 슬론 <사업가, 산업가> |
벤자민 스팍 <소아과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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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작가> |
로이 스트라이커 <공무원, 사진작가> |
빌 윌슨 < AA 창립자> |
앤디 워홀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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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워런 <대법원장> |
제임스 듀이 왓슨 <생물학자, 유전학자> |
토머스 왓슨 주니어 <사업가, 정치인> |
테네시 윌리엄스 <극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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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윈첼 <신문기자>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
라이트 형제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 |
말콤 엑스 <인권 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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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
{{{#!wiki style="margin: 0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 -15px 0" |
※ 2005년 AOL과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가장 위대한 미국인’ 명단이다.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로널드 레이건 | 에이브러햄 링컨 | 마틴 루터 킹 | 조지 워싱턴 | 벤저민 프랭클린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조지 W. 부시 | 빌 클린턴 | 엘비스 프레슬리 | 오프라 윈프리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빌리 그레이엄 | 토머스 제퍼슨 | 월트 디즈니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토머스 에디슨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존 F. 케네디 | 밥 호프 | 빌 게이츠 | 엘리너 루스벨트 | 랜스 암스트롱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무하마드 알리 | 로자 파크스 | 라이트 형제 | 헨리 포드 | 닐 암스트롱 | |
※ 영문 위키 참고.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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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c2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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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 본명 |
애나 엘리너 루스벨트 Anna Eleanor Roosevelt |
출생 | 1884년 10월 11일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
사망 | 1962년 11월 7일 (향년 78세)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
직업 | 정치인, 사회운동가 |
종교 | 성공회 |
배우자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05년 ~ 1945년, 사별) |
자녀 |
장녀 애나 루스벨트 할스테드 (1906~1975) 장남 제임스 루스벨트 (1907~1991) 차남 앨리엇 루스벨트 (1910~1990) 삼남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주니어 (1914~1988) 사남 존 애스핀월 루스벨트 (1916~1981) |
신체 | 180cm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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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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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래는 자신이 가진 꿈의 아름다움을 믿는 자의 것이다.
미국의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 제32대 대통령 배우자이며 역대 최장기간 재임한 대통령 배우자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다. 처녀일 때도 성씨가 루스벨트였다는 뜻.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가계도상 13촌 숙부이지만, 어느 나라건 13촌은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라 문제될 건 전혀 없다.
장애가 있던 남편을 대신해 오랜 기간 대통령 배우자 자격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남편의 서거로 백악관을 떠난 이후에도 사회운동을 지속했기에 오늘날 미국의 역사에 그녀는 꽤나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현재도 돌리 매디슨[1]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 배우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2. 생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그녀의 뻐드렁니가 예쁘지 않다고 창피해했으며,[2] 아버지[3]의 사랑을 받았지만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10살 때 사망했다. 이후 살기 위해 중노동을 했으며, 영국의 앨런스우드 학교에 들어갔다.젊은 시절. |
1905년에 백부 시어도어의 중매로 프랭클린과 만나 결혼해 여섯 아이를 낳았으며,[4] 1918년에 프랭클린이 비서인 루시 머서와 불륜을 저질러 이혼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프랭클린은 엘리너와 이혼하고 루시 머서와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진지했던 관계였고 엘리너도 이혼을 고려하긴 했지만, 다섯 아이와 프랭클린의 정치 생명 등을 고려하여 화해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를 선택했다. 다만 화해하고 난 뒤로 둘의 사이는 부부라기 보다는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워졌다. 근데 부부사이가 좋았을 시절에도 엘리너는 프랭클린과 성관계를 갖는 걸 싫어했는데, 엘리너는 10년 내내 임신 및 출산만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엘리너는 결혼하자마자 1~2년 꼴로 아이를 낳았으며, 넷째 엘리엇을 낳은 뒤에 4년 후에 다섯째 프랭클린을 낳은게 그나마 텀을 좀 둔 거였다. 물론 이 시절에는 1~2년 꼴로 아이를 낳는게 당연했었는데, 딸 애나에게 임신과 출산을 '참아야 할 시련'이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였다. 모성애도 없었는지 육아를 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엘리너 스스로도 자신은 '어머니'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하기도 했다.
남편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왼쪽)와 함께 |
1921년에 프랭클린이 소아마비를 겪자 그를 대신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6년부터는 '나의 하루'라는 칼럼을 집필했고 1940년 7월에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했다.
프랭클린도 그녀를 정치적 동반자로 아꼈는지, 엘리너의 저서 '내가 기억하는 것들'에 의하면 프랭클린은 보좌진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식사 자리에서 자신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이때 프랭클린의 견해와 반대되는 견해를 심지어 약간은 짜증섞인 어조로 그녀가 말해도 빙그레 웃으며 자기 할 말만 하던 양반이, 다음 날 공식 석상에선 그녀의 의견을 마치 원래부터 자기 의견이었던냥 그대로 말해 당황하기도 했다고 한다.
UN 세계 인권 선언을 들어보이는 모습 |
1945년부터 1951년까지 국제 연합 대사를 지내면서 1946년에는 국제 연합 인권 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세계 인권 선언을 기초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1년에는 여성 최초로 여성 지위 위원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케네디가 재임 중이던 1962년에 뉴욕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3. 평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부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불행을 기회로 만드는 행복의 연금술사라고 불렸다. 적극적인 내조로 장애인이 된 남편 프랭클린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무려 4번이나 연임에 성공시켰다.남편 사후에는 여성 최초로 UN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여성 지위 향상에도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세계인권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엘리너에게는 ' 인권의 대모'라는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처럼 그녀는 대통령의 아내로서 정부 정책에 지지를 호소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고 뛰어난 사회운동가로서 독자적 행보를 걸었고, 흑인들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데도 앞장서는 등 으레 약자들 편에서 활동하던 이 시대의 참된 영부인상이라는 평을 받았다.
뜻밖의 부정적 평가도 있다. 트루먼이 부통령일 당시 맨해튼 계획을 알지 못 하게 막은 장본인이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리 영부인이라도 일종의 월권 행위라는 주장. 다만 설일 뿐이라 단순 루머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로 보안 유지에 철저했다는 소리기도 하다.
4. 여담
-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야 하는 인물'로 가장 많이 언급된다. # 1960년대에 노벨 위원회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었지만 수상이 결정되기 전에 사망하는 바람에 수상이 불발됐다. 해리 트루먼은 엘리너 루스벨트가 평화상을 못받으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 힐러리 클린턴이 존경한 인물이기도 했다. 힐러리는 퍼스트 레이디 시절 시련과 어려움이 닥쳤을 때[5] 엘리너를 떠올리며 위안과 용기를 얻었으며, 항상 자신의 책상 위에 엘리너의 초상화를 올려두었다고 한다. 게다가 엘리너의 초상화와 기념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을 만큼, 그녀를 존경할 뿐만 아니라 닮기 위해 노력했다고.
- 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양성애자였다는 설도 강력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프랭클린의 초선을 취재하던 레즈비언 AP 기자 로리나 히콕과는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극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키스하고 싶다."는 등의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편지들을 매일 보내기까지 했다.
-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여성임에도 키가 180cm로 당시 웬만한 남성들을 압도하는 큰 키를 자랑했다. 미셸 오바마와 함께 역대 최장신 영부인이다. 남편 프랭클린과 찍은 사진에서도 키 차이가 별로 안 난다. 큰 키 때문인지 춤은 잘 추진 못했다.
- 생전 골초였다. 별명 중 하나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핀 영부인'이었다.
5. 매체에서
- 조지 타케이가 자신의 일본인 수용소 경험에 대해서 회고한 그래픽 노블 They Called Us Enemy에 등장한다. 이는 타케이가 젊은 시절 애들레이 E. 스티븐슨 대선후보 사무실에서 일할 때 엘리너 루스벨트를 실제로 만난 일이 있기 때문. 근데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던 아버지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미리 자리를 뜨는데 이는 그가 객관적으로 루스벨트가 위대한 대통령임을 인정함에도 자신의 가족을 모두 수용소로 보낸 남자의 아내를 만나서 차마 악수를 나눌 자신이 없었기 때문.
- Hearts of Iron IV/카이저라이히에서 생디칼리즘 세력인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이 미국을 차지하면 뽑을 수 있는 지도자로 나온다. 성능은 혁명의 영부인[6]: 정치력 획득 +5%, 안정도 +5.00%, 공장 생산량 +10.00%이라는 준수한 성능.
[1]
미국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아내.
[2]
오죽하면 어머니라는 작자가 자기 딸을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다. 아래에 젊은 시절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미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딱히 못생기지도 않은 무난한 외모였다.
[3]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동생인 앨리엇 루스벨트.
[4]
이중 셋째이자
차남 프랭클린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사망했다.
[5]
힐러리 클린턴도 남편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으니,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독자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성공한 점도 닮았다.
[6]
참고로 카이저라이히 세계관상 남편 프랭클린은 이미
소아마비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