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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8년 12월 13일 |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 |
사망 | 1882년 7월 16일 (향년 63세) |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 |
직업 | 정치인, 대통령 배우자 |
배우자 | 에이브러햄 링컨(1842년 결혼 ~ 1865년 사별) |
자녀 |
장남 로버트 토드 링컨(1843~1926) 차남 에드워드 베이커 링컨(1846~1850) 삼남 윌리엄 월러스 링컨(1850~1862) 사남 토머스 태드 링컨(1853~1871) |
서명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내이자 영부인.2. 생애
1866년 9월 메리 토드 링컨이 링컨의 전기 작가 윌리엄 H. 헌든(William H. Herndon)과 인터뷰를 했는데 메리는 찰스 섬너와 남편 링컨이 "서로 알게 된 이후 절친한 친구였다(great chums after they became acquainted)”고 말했으며 “(링컨이) 죽을 무렵에는 남자 아이들처럼 가까이 지냈다(like boys during his last days)”고 말했고 남북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이 끝나서 같이 기뻐했다(were so glad the war was over)"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배우자 관련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항상 최악의 대통령 배우자로 뽑히는 이기도 하다. 최고의 대통령의 부인이 최악의 평가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 링컨이 결혼식장으로 가면서 "나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남북 전쟁을 맞아 예산이라든지 전쟁 비용이라든지 등 국고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금수저 출신이라는 권력욕 탓인지 평소에도 낭비벽이 심해서 백악관에 들어서자마자 2천 달러의 흰색 바늘뜨개 레이스 숄, 2천 달러의 가운, 1천 달러의 캐시미어 숄에 한 달 동안 장갑 84켤레를 구매했으며 백화점에 외상빚을 지기도 했고 남편에게 뻑하면 고압적으로 굴곤 해서 링컨을 놀래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백악관을 단장한답시고 국고의 돈을 함부로 팡팡 써제꼈으며 심지어 남편이 암살당해 장례식에 참석할 때도 최고급의 상복을 주문했을 정도이며 의회에 품위 유지비가 필요하다고 탄원한 적도 있다. 당연히 언론이나 사람들의 평판은 최악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대통령 배우자는 항상 우아한 옷을 입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수입품을 사서 쓰는 것도 국고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항변할 정도로 여전히 반성하는 모습을 안 보였다. 결국 그녀는 남편이 죽은 지 10년 후에 '정신이상자'로 판명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자식을 잃은 적이 있는데[1] 그 충격이 컸는지 '심령술'에 빠져 버려서 불행한 대통령 배우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의외로 그녀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아예 하지 않은 것만은 아닌데 당시로서는 대단히 좋은 집안과 좋은 학력의 소유자였고 프랑스어에 능통했으며 남북 전쟁 중 부상자 막사를 위문하기도 했으며 남편과 함께 전장을 직접 시찰한 적도 있다. 전대나 후대의 퍼스트레이디들도 그만한 사치는 다 부렸기 때문에 딱히 그녀만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녀가 악처라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링컨 대통령 본인은 무난하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나 다름없는 링컨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행동들이 평가에 더욱 악재로 작용한다.
[1]
삼남 윌리로, 1862년 백악관에서 사망했다. 에이브러햄과 메리 사이에서는 총 4명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중 성인으로 무사히 성장한 자식은 장남 로버트가 유일하다. 둘째 에드워드는 링컨이 변호사일 때 사망했으며 막내인 토드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사망한 지 5년 뒤에 병으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