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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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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해마다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1위'를 선정.[1] }}}
<colbgcolor=#A5AAA2><colcolor=#fff> 유아인
劉亞仁 | Yoo Ah-in[2]
파일:유아인 출두.jpg
본명 엄홍식 (嚴弘植[훈음])
출생 1986년 10월 6일 ([age(1986-10-06)]세)
대구직할시 남구
(現 대구광역시 남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4]
현재지 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 143 (포일동) 서울구치소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영월 엄씨 (寧越 嚴氏)[5]
신체 179.5cm[6], A형
가족 아버지 엄영인[7], 어머니, 누나 2명
반려묘 도비, 장비[8]
종교 무종교 ( 무신론)
학력 대구남덕초등학교 (졸업)
상인중학교 (졸업)
경북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양화전공 / 전학)
서울미술고등학교 (서양화전공 / 중퇴)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단국대학교 (연극학 07 / 중퇴)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영상영화학 10 / 학사)
소속사 UAA (United Artists Agency)
병역 병역면제 ( 골종양)
데뷔 2003년 농심 '쫄쫄면' 광고
(데뷔일로부터 [dday(2003-03-14)]일, [age(2003-03-14)]주년)
MBTI X N X P[9]
별명 홍시기, 어몽식, 엄다정[10]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서명 파일:YooAhIn_Signature.png

1. 개요2. 연기 활동3. 예술 활동: 스튜디오 콘크리트
3.1. 개요3.2. 활동 내역
4. 개인 활동
4.1. 글쓰기 활동4.2. 디자인 협업 등 패션 관련 활동4.3. 방송 및 기타 연예 활동4.4. 기부 활동
5. 유아인에 관한 정보
5.1.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대중적 이미지5.2. 연기와 예술에 대한 유아인의 생각들
6.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말하는 유아인7. 출연 작품
7.1. 영화7.2. 드라마
8. 그 외 활동
8.1. 광고8.2. MV, 아트필름 등 기타 영상물8.3. 방송 출연8.4. 기타 경력
9. 수상 내역10. 논란 및 사건 사고11.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유아인2.gif
대한민국 배우.

1986년생으로 본명은 엄홍식이다. 대구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0대 후반 교문 앞에서 캐스팅을 당해 상경한 후 2003년 라면 광고로 데뷔했다.

2. 연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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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장 드라마 《 반올림》에 출연하며 인상적인 캐릭터와 훈내나는 외모로 인기를 얻었고, 2006년 독립영화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스크린 데뷔를 치렀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신인으로서 인지도를 쌓다가 2010년 드라마 《 성균관 스캔들》과 2011년 영화 《 완득이》를 통해 기대되는 라이징 배우이자 충무로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2014년 《 밀회》, 2015년 《 베테랑》, 《 사도》, 《 육룡이 나르샤》의 연이은 성공과 함께 각종 시상식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주목받았으며, 이후에도 드라마, 오락 영화뿐만 아니라 《 버닝》, 《 소리도 없이》와 같은 예술성 짙은 영화의 사이를 오가며 굵직한 필모를 쌓아가고 있다.

2014년에는 아티스트 집단이자 동명의 미술 갤러리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설립해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예술가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3. 예술 활동: 스튜디오 콘크리트

3.1. 개요

2014년 11월 21일 ‘스튜디오 콘크리트(Studio Concrete)’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했다. 웹사이트 인스타그램 유아인은 공동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전시회 서문에서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Founder라고 소개되며,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브랜드 잡지의 발간을 시작으로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5월 1일 갤러리, 라이브러리, 아틀리에 및 숍과 카페가 복합된 동명의 오픈 스튜디오도 열었다.[11] 내부에 카페가 있어서인지 SNS를 통해 ‘유아인 카페’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예술의 문턱을 낮춰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카페로 운영하고 무료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라 한다. 유아인은 공동 대표인 차혜영, 아티스트 권철화, 김재훈, 권바다, 큐레이터 김지은, 에디토리얼 디렉터 박노섭과 머리를 맞대 이 공간을 만들었다. 평소 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들[12]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함께 뭉치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6개월간의 회의를 거쳐 북한남 삼거리에 공간을 마련했다.
파일:external/4ffab16b65d47b1df71ebfe66d09eacbf70618fd4ca0ba1072c2f0e0e393c0bd.jpg
파일:external/t1.daumcdn.net/20160329180811196twjw.jpg
유아인과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창립 크루들

유아인은 스튜디오 창립 배경에 대해 “크루들이 다 제 친구들이지만 전 그들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고 인간성에 감동받았거든요. 이 보석 같은 친구들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룹으로 뭉쳐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웃음). 혼자서는 발을 뻗기도, 몸을 누이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뭉치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힘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똑같이 일해도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누리는 게 있다”며 “똑같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시장 논리로, 나이로, 혹은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상황이 갈라지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나눠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밝혔다.

앞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대중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유아인은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하는 게 아니고 발견에 가깝거든요.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품을 구매하는 일은 내 주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프레임을 씌우고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라며 “엽서 하나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붙이든 마음에 드는 잡지 페이지를 찢어서 책상 옆에 붙이든, 그로 인해 아무것도 아니었던 평면에 깊이가 생기잖아요. 저는 특정한 어떤 걸 팔고 싶다기보다 그런 행위에 동참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개념을 쉽게 느끼게 하는 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과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대중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유명세를 순수 아티스트들의 활동 저변을 넓히는 데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그라치아> 2015년 5월 제2호)를 보면 알 수 있다.

3.2. 활동 내역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소속 작가들뿐만 아니라 김참새, 노상호, 강현선 등 외부 작가들의 개인전 및 협업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내부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회 환원 사업, 영리 기업과의 협력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선 바자회, 럭키슈에뜨 룩북 제작, <톰 페이퍼> 발간, YG Stage 기획 화보 디렉팅, <보그> 20주년 발렌시아가 게릴라 전시회, 버드와이저 특별 기획 전시, 뉴발란스 매장에서 진행된 설치 미술 등. 2016년 5월에는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활동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마련했는데, 유아인이 대표이자 친구로서 크루들에게 남긴 편지글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스튜디오의 설립 의도와 방향 등을 엿볼 수 있으며, 그중 화제가 됐던 것은 다음과 같다. 2015년 5월 편지. 이 밖에도 국제아트페어 아트부산 참여, 송호준, 디구루 등이 참여한 사이키델릭(psychedelic) 전시, 자연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때 ‘Peace for Paris’ 이미지를 만들어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내한 전시 등을 진행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6년 10월에는 새로운 아트 레이블 ‘씨씨알티 에어로스페이스(CCRT Aerospace)’를 선보였다. 메인 컨셉은 우주이며 영상, 퍼포먼스, 음악, 그래픽, 회화, 사진, 패션 등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스토리 형식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유아인은 총괄 기획을 맡았으며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도 참여한다. 자세한 설명. 첫 번째 에피소드는 'Fragile : Handle with care OR'이다. 우주복 스타일의 패션 디자인을 비롯해 '미궁' 연주로 유명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 디자이너 박시영, 일러스트레이터 김세동 등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결과물을 전시회에서 선보였다.[13] 여기에 영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Episode 1 Fragile : 경계의 저편》을 공개했다. 유아인이 출연하고 기획 및 제작을 맡은 8분 가량의 영상이다. 우주를 소재로 한 SF 단편 영화인데, 짧은 영상임에도 퀄리티가 꽤 좋다. 영상 보기. 이 밖에도 아트 레이블의 취지와 참여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는 잡지 화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7년에는 ‘Make Love Not Walls’라는 주제로 디젤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가하거나 미디어 아트전, 사진전, 회화전, 인테리어전 등을 진행했다. 또한, 같은 해 하반기부터는 페미니즘, 성소수자, 아시안 뮤직, 가구 디자인 등과 관련된 청년들의 공동 프로젝트, 다니엘 시저의 내한행사, SJYP의 시즌 프리젠테이션 등 외부 단체에게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덧붙여 5월에는 소속 크루들과 아티스트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인터뷰가 공개됐는데, 이를 통해 크루들의 역할, 갤러리의 운영, 아티스트들의 작업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크루들(1) 크루들(2) 아트 패션 아티스트 유아인은 자신의 역할을 “조력자, 잔소리꾼, 얼굴마담, 글쟁이, 관찰자”라고 표현하면서 “다들 겸양을 떨고 부끄러워하는 듯 하지만 저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대표로서 배워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2018년에는 <BATON>이라는 제목으로 모인 젊은 작가들 4명의 협업전으로 전시를 시작했다. 소개 외부 협업으로 츄파츕스 60주년 전시회와 리빙디자인페어에도 참여했다. 이후 블랙코미디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코넬라의 내한전, 가족과 코끼리를 테마로 하는 장 줄리앙의 두번째 전시, 로봇과 도넛을 주제로 작업하는 에릭 조이너, 개인 사진전, 4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청각에만 집중하는 사운드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유방암 인식 캠페인에 디자인 재능기부로 참여하면서 전시를 진행했고, 발달장애 작가 그룹전을 지원했다. 12월에는 ‘Bring Your Art’라는 컨셉으로 참석자 모두가 전시의 작업자로 참여하는 집단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한 해의 전시를 마쳤다. 당시의 현장 소리와 기획자로서의 느낌을 말하는 유아인의 육성을 담은 음원은 아프로의 작업을 통해 무료 공개됐다.

2019년에는 아르케(ARCHE)의 전시를 시작으로 김재훈과 권철화의 개인전, ‘멀리서 온 친구’라는 주제의 협업 전시 등을 진행했다. 아프로(APRO)가 크루로 합류하면서 소리에 관한 개인전을 열었고, 현대무용가 안은미, 예효승, 양승진과 인디밴드 모임 별 등이 아티스트 토크 등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행사를 위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1월 11일에는 ‘콘크리트 1111’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라이브로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설립 이후 2019년까지 스튜디오에서 개인전 16회, 협력전 18회, 특별 초대전 2회를 열었다고 한다.

2020년을 여는 ‘콘크리트 1111’은 가치를 교환하는 실험으로, 예술과 대중 사이에 놓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색다른 예술 소비 방식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다. 소속 작가인 권철화의 작품을 시작으로 유아인의 개인 소장품과 본인 집[14]까지 최초 물물교환의 대상이 된다. 응모자가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온 교환 대상을 보고 교환을 제안하면, 최초의 물권자는 공모된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교환을 한다. 응모자는 금전을 포함해 신작, 기성작, 발명품, 소장품, 아이디어, 특허 기술 등 형태의 제약 없이 교환 제안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교환된 것들은 같은 해 11월 11일에 ‘공정예술축제 1111’에서 전시된다. 그리고 이 때 전시된 것들은 다음해에 또다른 응모자들의 교환 제안 대상이 되어 그 가치가 순환된다. 이러한 과정은 ‘집단행위예술 1111’을 통해 다큐멘터리, 시리즈 방송물, 음반, 도록 등의 콘텐츠로 생성되고 건축, 공연, 패션 관련 작업들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는 유아인이 권철화에게 “작품에 가격표를 붙여서 파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봤거든. 그러다 ‘예술은 돈이 많은 사람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선입견이 어쩌면 예술과 사람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의미로 <TANGO>[15]의 작품들을 판매가 아닌 물물교환해보는 건 어때? 교환 가능한 대상은 시 한 편이 될 수도, 빼어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는 거지”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 이후 ‘세상 모두가 예술가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참여자를 모으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권철화 작가는 인터뷰에서 “콘크리트는 카페로도 운영하고 있을 만큼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우리의 집단적 형태가 강하게 느껴지진 않을지 생각"한다며 “그걸 깨고 모든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참여하는 놀이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해당 프로젝트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알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 유아인 인터뷰(2019.11.29) 서울라이브 포스트 참여자들의 인터뷰

같은 해 3월에는 4.15 총선을 맞아 투표를 독려하는 Vote Korea 2020 전시회와, 코로나19의 여파로 생활고를 겪는 청년예술가를 돕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4. 개인 활동

4.1. 글쓰기 활동

2006년부터 미니홈피 게시판에 본인이 쓴 글(시와 수필)을 게시했었다. 연기 이외에 글 쓰는 것으로 소통한 적이 많았다고 하는 등 꽤 애착을 가지고 있다. 2019년 인터뷰에서는 “글쓰기는 나의 표현 방식 중 하나고, 내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가까이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팬들이 작가나 시인으로 부른다. 실제로 ‘연기하는 유아인’에 반했다가 ‘글 쓰는 엄홍식’으로 출구 봉쇄된 팬들도 부지기수. 그러나 현재는 미니홈피 게시판이 닫혀서 글을 볼 수가 없다.[16]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미니홈피 시절 다수의 시와 수필을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엄홍식 작은집’ ‘유아인 작은집’으로 검색을 해보도록 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유아인의 글 모음은 대부분 미니홈피 활동 시절(2006년~2011년)의 글들이다.

사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트위터의 멘션들이 더 많이 화제가 된 편이다. 유아인은 2015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트위터 글은 특히 모나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아인은 <씨네21>에 영화 《 클로저》 감상문이나 잡지 <인스타일>과 <무비위크> 등에 본인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이 있다. 특히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Dazed&Confused)>에 6개월간 칼럼을 기고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게시되는 「공짜, 엄마」, 「인디라는 껍질」, 「어제, 오늘」 등의 칼럼은 이 시기에 쓴 글이다.
음악가의 본질은 음악에 있고, 배우의 본질은 연기와 작품이며, 작품은 곧 작가와 감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충분히 창조적인 채로 어디에라도 존재할 수 있다. 미디어의 순기능을 적절히 이용하고 본질을 잃지 않는 영민한 아티스트의 출현은 지극히 반길만한 일이다. 인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대중은 보다 유연해졌다. 만일 우리의 기대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판자촌의 영웅을 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디는 없다.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2년 12월호 「인디라는 껍질」 중에서
내 친구의 외상 장부에 내게 얼마짜리 밥을 몇 번 샀는지 따위의 기록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준 생일 선물이 숫자로 환산되어 응당한 대가로 돌아오지 않아도 서운치 않았으면 좋겠고, 지인의 결혼식에 낸 축의금의 숫자가 내 마음의 크기를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나 내가 낸 10만원짜리 봉투가 마이너스로 돌아오더라도 괘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친과 사별한 또 다른 친구가 장례식에 오지 않은 지인들을 일일이 데스 노트에 적으며 자신이 그들에게 준 것들을 세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게 반쯤 얹혀사는 친구가 그 어떤 부채 의식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친구는 10평 오피스텔로부터 도망갔던 투룸 집 안방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절실한 동지애 이상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어수룩한 낭만을 품는다.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3년 2월호 「공짜, 엄마」 중에서

글을 자주 쓸 뿐만 아니라 시를 자주 읽으며, SNS를 통해 종종 본인이 읽은 시집을 추천한다. 본인의 서른 살 생일에는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수록된 「청춘」을 올렸고,[17]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선물받아 읽었음을 인증한 적도 있다. 2011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읽으면서 무엇을 얻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일 수도 있다. 시는 짧은 글이고, 그래서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짧은 텍스트 안에서 소설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이라는 게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2014년 이후에는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서 쓴 인트로(intro)와 스튜디오 콘크리트 대표로서 쓴 전시회의 서문 등을 통해 유아인의 글들을 읽을 수 있다. 2017년에는 모델 장윤주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와 4시간 동안 대화한 뒤 인터뷰어로서 잡지 <보그>에 글을 싣기도 했다. 2019년에는 미술 월간지 <아트 인 컬처>의 창간 20주년 기획 기사에 참여했다. 큐레이터, 작가, 컬렉터 등 미술 관련인 20명이 참여한 특집이라 그의 글은 ‘배우 유아인’이 아니라 ‘스튜디오 콘크리트 엄홍식 대표’의 이름으로 올라갔다. #

이렇다 보니 책을 내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뽑은 저자로 삼고 싶은 스타에 꼽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배순탁과 김동영 작가가 유아인의 글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다. 유아인은 글에 욕심이 많지만(잡지 <인스타일> 2011년 BIFF 특별호) 이러한 제안들을 정중히 거절했다. 책을 내고 싶지만 개인적인 작업으로 처음 선을 보이고 싶고(주간지 <하이컷> 74호) ‘유아인이 했다’는 이유로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을 수 있다고(2013년 10월 ‘스포츠경향’ 인터뷰)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는 책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시집을 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2016년 팬들과 함께한 《좋아해줘》 상영 후 GV에서는 출간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에는 ‘콘크리트1111’ 프로젝트의 기획자로서 시와 일기 사이의 형태로 2020년에 출간할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 중 하나인 ‘집단행위예술1111’의 일환으로, 출간 전 일부 글들은 ‘콘크리트1111’의 기획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2. 디자인 협업 등 패션 관련 활동

자타공인 패셔니스타로 유명하다. 가끔 너무 실험적이긴 하다만... 함께한 스타일리스트들에 따르면, 패션 지식이 남다르고 핏을 스스로 잡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론치 마이 라이프>를 촬영하면서 본인이 모델로 활동한 잭앤질(Jack&Jill)과 헤지스(HAZZYS)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과정을 공개했다.

특히 디자인에도 직접 참여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지인 남노아의 노앙(Nohant)과 협업하여 해당 브랜드의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을 론칭했다. 협업 아티스트로서 한글과 영문의 조합을 통해 6개 도시의 이름을 나열한 ‘러브 시티’ 티셔츠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작업과정. 이듬해에는 해당 수익금을 기부하여 아름다운 재단에 기금을 조성했다.

2015년에는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과 함께 톰 그레이하운드(Tom Greyhound)를 통해 ‘SERIES 1 TO 10’(원투텐 시리즈) 티셔츠를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2016년부터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직접 출시하기 시작했는데, 숫자와 색깔을 통해 기분을 표현한다는 발상과 디자인으로 반응이 상당히 좋다. 2017년에는 명화 버전, 2018년에는 음식 버전 등 다양하게 디자인을 변경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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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시티 티셔츠 Series 1 to 10 티셔츠

유아인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이름만 빌려준다거나 그럴듯하고 그저 예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을 경험하고 싶었다”면서 참여 이유를 밝혔고, “저와 저의 친구들이 만든 옷을 패션 그 자체로 즐겨주시고, 의미 있는 일을 함께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패션에 관한 소신을 묻는 질문에 “패션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의 만족과 개성 표현을 위해 패션을 과감하게 즐기고, 때로는 패션이 갖는 언어적 기능을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진정한 멋쟁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인터뷰.

2017년 4월 셀러브리티의 패션 권력에 관한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유아인에 대해 "스타일리스트보다 패션을 더 잘 아는 사람" 혹은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신진 디자이너를 띄우기 위해 직접 모델로 나설 정도로 패션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다"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기사에 따르면 연예인이라도 옷 잘 입는 사람보다 옷을 잘 아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변화라고 한다.

2018년 9월에는 패션브랜드 ‘디젤’의 캠페인 ‘헤이트 쿠튀르(Ha̶u̶te Couture)’[18]에 참여해 아시아 측 글로벌 모델로 나섰다. 영상. SNS 시대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헤이트 코멘트를 위트있게 받아치자는 취지의 캠페인으로, 유아인은 ‘cynic(냉소)’라는 키워드를 맡아 해당 철자가 적힌 의류를 입고 LA에서 광고를 촬영했다. 이와 함께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통해 패션필름 <The Interview>를 직접 제작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배우 유아인을 둘러싼 악플이나 사이버 불링, 자기 비하의 풍자, 인터넷 세계에 대한 질문까지 녹여낸 독특한 영상이다. 또한 2018년 이후부터는 까르띠에의 한국 산토스맨을 비롯하여 캘빈 클라인, 버버리 등의 글로벌 앰버서더(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4.3. 방송 및 기타 연예 활동

연기 경력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 등 방송 출연이 드물다. 2007년 EBS < 시네마 천국>의 ‘영화처럼’( 영상) 혹은 2018년 KBS < 영화가 좋다>의 ‘나는 영화인이다’( 영상)와 같은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간간히 등장했던 정도. 무대울렁증뿐만 아니라, 본인의 표현대로 예능울렁증 역시 심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2008년에 출연한 MBC < 공감토크쇼 놀러와>나 2009년에 출연한 SBS <야심만만2>에서 극심하게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때도 청심환을 먹고 왔다고 고백한다. <놀러와>에서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홍보차 동료 배우들과 출연해 막내미를 보여줬고, <야심만만2>에서는 즉흥시를 짓거나 짧게 노래도 불렀다. 2008년 10월에는 < 이주연의 영화음악>를 통해 생애 처음 라디오에 출연했다. 긴장한 와중에도 심야방송에 맞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려줘 한동안 팬들의 소장 리스트에 있었다.

2011년에는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홍콩 재벌과의 클립 영상이 종종 회자돼 출구 방송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팬들 사이에선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면(총 4부작) 오히려 출구가 봉쇄된다는 입구 방송으로 불리기도 한다.[19] 이에 대해 유아인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을 보면서 ‘유아인 싸가지 없어’, ‘개념 없어’, ‘성격 참 더럽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아 진짜 시원해’, ‘솔직하다’고 해주는 분들도 있더라. 그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남자 배우는 항상 멋있고 착하기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배우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무게감이 있고, 진중함을 잃어선 안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무겁고 심각하고 우울하면서도 너무 밝고 어리고 재미있고 유치하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한 사람 속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나”라고 말하면서 시청자들이 일부 오해할 수 있음에도 “나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성균관 스캔들》 이후 하도 나를 멋있게 봐 주셔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 이미지를 깨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완득이》 개봉 즈음 SBS 라디오 < 파워타임>에 김윤석과 출연해 처음으로 보이는 라디오를 경험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YTN 라디오 <뉴스! 정면승부>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팬들이 가장 열광한 라디오 출연은 2013년의 < 씨네타운>이다. 당시 진행자였던 공형진을 대신해 민규동 감독이 임시DJ를 맡았는데, 유아인은 휴식기였던데다 작품 홍보할 때가 아니었음에도 출연해서 팬들이 놀라워했다. 사실은 둘이 미쟝센 단편영화제 때 만났을 때 민규동이 출연을 제안해서 이뤄진 것. 이 방송에서 유아인은 보이는 라디오인 줄 모르고 방송 전 2시간 동안 사우나에 있다가 민낯으로 출연했다. 티브이잡스 영상 같은 해 9월 < 런닝맨> 추석특집에 김해숙과 출연했다. 플라잉체어 미션에서 출연진들이 아인이 안녕~이라고 예언할 때마다 물 속에 빠지고, 오감푸드배틀에서 젤리튀김을 단번에 맞혔다. 송편찾기 미션에서 열심히 레이스를 펼치고 마지막에는 매운갈비찜을 능숙하게 만드는 등 야외 버라이어티 예능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4년 다큐멘터리 <날고싶은 완득이>로 내레이션 데뷔를 했다. 다문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제78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을 수상했다. 풀영상 2017년에는 6.10 민주 항쟁 30주년 다큐멘터리 <6월 이야기>의 내레이션을 했다. 2017년의 청년 세대가 1987년의 청년이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내용으로,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시청자들의 작품들을 묶어서 방영했다. 또한, 2018년에는 시리아 내전 7년을 조명한 <시리아의 목격자들>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한편, 2004년 티오(T.O)의 ‘발자국’으로 첫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한창 《반올림》 방영 시기였는데, 여기서도 그림을 그리는 10대이자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나오며 같은 드라마에 등장했던 이은성과 출연한다. 2016년에 출연한 ‘ㅎㅎㅎ(흥부야)’는 페기 구의 음악을 활용하는 아트필름으로, 흥부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인물로 위트있게 재해석했다. 배경의 그림은 캐스퍼 강 작가의 작품이다. 이후 2019년 페기 구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 ‘Starry Night’에 짧은 시간 우정출연했다. 사진작가이자 영상 디렉터인 요나스 린드스트룀이 연출한 작품으로, 상당히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라 국내외로 주목을 받은 영상이다.

2019년 1월 5일부터 3월 23일까지 KBS 1TV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했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도올 김용옥과 출연했다. 도올이 강의를 맡았다면, 유아인은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현재적인 관점으로 그 의미를 되묻는다. 또한 본인의 경험를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방청객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여러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끌어낸다. 이렇게 방청객들의 참여와 호흡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박동민 PD는 “조명이나 음향도 관객과 강연자가 마음껏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연출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그램의 제목은 유아인의 아이디어였고, 오방신으로 출연한 이희문의 출연도 유아인이 제작진에게 추천한 것이다.

유아인은 무대공포증이 있음에도 매회 250명의 관객 앞에서 3~4시간씩 진행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배우로서 득이 없을 것 같은데 왜 그걸 하냐거나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했지만, 유아인은 마지막회에서 “우리가 함께임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라고 말하며 프로그램 참여 의미를 밝혔다. 사실 그는 2018년 즈음 고민이 많아서 부모님, 친구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연장자인 도올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후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고 관객들과 함께 대화하며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총 12회의 방영분에는 어느 때보다도 유아인의 개인적인 얘기들과 진심어린 고백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혼란스러운 시기 들었던 어머니의 말( 영상 다른 영상)을 털어놓으며 우리 모두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말을 했고,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가족 간의 역할 강요와 성 평등에 관해 운을 띄웠다. 또한 ‘부끄러움’이란 주제로 자신이 10년 전 쓴 글을 읽었는데, 본방 후 요청에 따라 무편집 버전으로 영상이 올라왔다.

4.4. 기부 활동

2013년 1월 유아인이 아름다운 재단에 7,700만 원을 기부했다. 보육시설 아동들의 급식비 인상을 위한 ‘나는 반대합니다 시즌2’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캠페인의 목표액에서 1%를 남겨두고 기부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더 많은 기부 참여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운 재단을 이를 두고 ‘채움을 위한 비움’으로 표현했으며,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참여로 목표액을 100% 달성했다. 또한 기부와 동시에 아름다운 재단에 보낸 이메일의 전문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명인은 기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뜻 깊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진 기부 문화이고, 좋은 뜻을 가지고도 주저했던 저와 같은 많은 분들이 이제는 주저 없이 그러한 기부 문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좋은 일에 앞장서신 선배님들의 발꿈치에라도 따라가고자 애쓰는 저처럼 많은 분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건 행동함으로써 선의를 갖게 되건 기부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음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공개한 유아인의 이메일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2014년 1월에는 ‘러브 시티’ 티셔츠의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아름다운 재단에 뉴키즈유아인기금을 조성했다. 유아인과 브랜드 노앙(NOHANT)이 론칭한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은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From new kidz to new kids’ 캠페인을 벌였는데, 소외계층 아동 청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기금을 조성한 것이다. 뉴키즈유아인기금은 문화 소외 지역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 지원사업’과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거나 퇴소한 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비와 학업보조비를 지원하는 ‘아동양육시설 퇴소거주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기부금을 사용한다. 유아인은 기금을 개설하는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팬들 역시 이러한 뜻에 맞춰 해당 기금에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삶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며 실현케 하는 참된 교육의 장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진 소중한 우리 아이들. 하지만 너무 일찍 불편한 현실을 불행으로 짊어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특별한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아인의 뉴키즈유아인기금 개설 취지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2014년 8월 가수 백지영으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다음 주자로 지목받았는데, 당시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은 놀이와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시각도 많았다. 이에 유아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페인을 너무 꼬아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분장을 한 채로 영화 촬영 중인 관계로(당시 《사도》를 촬영 중이었다) 챌린지 대신 승일희망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스튜디오 콘크리트 차원에서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은 바자회에 개인 소장품을 내놓았는데, 구매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사이즈를 체크하며 직접 옷도 골라줬다고 한다. 바자회의 수익금과 수익금의 5배수가 되는 금액을 유아인이 추가 기부하여 기부금을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기부금 중 50%는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되고 나머지 50%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어린이․ 청소년 예술교육 지원사업처 설립을 위해 사용됐다.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여 환아들의 수술비가 지원된 사실은 10월 14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기사를 보면 DC 유아인 갤러리가 해당 재단에 지속적으로 후원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유아인이 이런 팬들의 뜻에 동참해 후원을 시작한 것이다. 유아인 갤러리는 2010년부터 정기 후원 및 기념일 기부를 이어왔으며, 2017년에는 유아인이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6년 어린이날에도 자선 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이 바자회에서 구입품을 포장해주고 직접 계산도 해줬다는 후문이다. 이 자선바자회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유아인뿐만 아니라 그의 지인들도 참여해 어린이날마다 열리는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20] 같은 해 12월에는 본인이 오디오가이드로 참여한 전시회의 티켓 4,000만 원 상당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유아인은 자신의 기부금이 항상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길 바란다며 많은 아동 청소년에게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급식비 인상 캠페인 참여부터 뉴키즈유아인기금,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 후원, 매년 주최하는 자선 바자회에 이르기까지 유아인은 직접 언급한 대로 '미래세대'인 아동 청소년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관심까지 이끌어내며 꾸준한 기부 활동을 펼쳐 왔다.

5. 유아인에 관한 정보

5.1.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대중적 이미지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작부터 불우하고 반항적인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이러한 이유로 ‘반항아’라는 단어가 유아인의 수식어로 자주 인용된다. 개인적으로도 “유독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고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유아인은 그간 맡은 반항아 캐릭터들이 이미지만 거칠 뿐 오히려 현실 순응적이었다며, 《 사도》의 사도세자 역할이 진짜 반항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의 캐릭터에 있어서 정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 완득이》 언론 시사회에서는 반항아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한 것에 대해 “내가 맡았던 캐릭터가 공통적으로 반항아이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 부모에 반기를 드는 역할, 불우한 환경에 있거나 가슴 속에 응어리가 한가득 있는 캐릭터였다”며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것이고 내가 그 시기에 놓여 있다. 아직 매끈하게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에 관심을 쏟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기존 질서의 의문을 던지는 게 반항아의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미지 덕인지 이준익 감독은 《사도》의 제작기 영상에서 유아인에게 존재하는 반골 기질이 사랑스러워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반항아의 연장선으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 역시 강했다. 학교를 자퇴하는 등 제도권에 어울리지 못했던 유아인의 개인적인 경험도 얹어준 듯. 특히 커리어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비주류적 느낌도 존재했다. 그러다가 드라마 《 성균관 스캔들》 이후 유아인은 스스로 주류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시작했고, 전에는 아웃사이더밖에 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이후에는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 2015년에는 “욕심도 나고 잘 됐으면 좋겠고 인정도 받고 싶다. 반항심이었을까. 예전의 내가 동네 돌아다니는 개처럼 어슬렁어슬렁하며 '나를 어루만져주든 밥을 주든 마음대로 해, 흥'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엔 ‘쓰담쓰담 해줘’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유아인을 또래 배우들과 구분 짓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한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난 늘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또래 배우들을 보면 참 친근하고 예쁜데 나는 왜 이렇게 모났나 싶었다. 남들하고 같이 있으면 3등도 못할 것 같으니까 내 운동장에서 나 혼자 달려서 1등 하겠다는 야심으로 살았다.
잡지 <매거진 M> 124호

덧붙여, 유아인은 한때 인터넷에서 가난미가 있는 배우로 꼽히기도 했고, 왕족과 재벌 역할을 연달아 맡으면서 여러 이미지를 겹쳐놓기도 했다. 본인은 소외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비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고 비극을 연기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종종 밝혀왔다. 필모그래피상 대부분의 작품들이 무거운 편이고 극 중 캐릭터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에 있어서도 짝사랑으로 끝나거나, 불륜처럼 파국이 예상되거나, 쌍방으로 사랑해도 어느 한쪽이 죽었다. 고아이거나 결손가정에서 자란 경우도 많았고, 선악의 구분이 없거나 광인으로 변하는 등 절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맡아 왔다. 그래서인지, 커리어 초반 작품을 함께 했던 노동석 감독은 “외모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내면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고, 정윤철 감독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광적인 느낌까지 변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유아인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또래 배우들과 구분되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편이다. 젊은 배우임에도 자녀를 둔 아버지 역할을 몇 차례 맡기도 했고, 다소 가벼운 터치의 작품들에도 항상 비극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특히 젊은 배우로서 본격적인 로코물이나 트렌디한 작품 없이 아역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오면서 인기를 얻은 점이 인상 깊다. 물론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향상되고 상업적인 노출이 잦아지면서 비주류적 이미지는 많이 지워진 편이다. 또한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나 아티스트 그룹 활동 등이 배우 자체를 트렌디하게 만든 점도 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여전히 마이너적인 것이 본인의 근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마이너 감성으로 메이저 배우가 됐다는 점 자체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청춘과 소년성 역시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스스로 ‘번외편’이라고 밝힌 조태오에 소년성을 부여하고 사도세자 역할 역시 청춘 캐릭터로 접근하는 등 모든 캐릭터를 소년스럽게 해석하는 면이 있다. 백은하 기자와의 <무비스타 소셜 클럽> ‘스타 프리뷰’ 인터뷰에서는 캐릭터에 소년성을 끊임없이 부여하고, 소년성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유정 평론가는 “유아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선 언제나 소년이 공존한다”면서 유아인의 매력은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애매성과 양가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는 “어딘가에 갇히고 붙박인 모습은 유아인의 청춘들을 지배해 온 대표적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구속하고 억압하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태도는 ‘소년성’의 핵심”이라면서 “유아인의 배우로서 성장은 이 청춘 성장물이 사라진 시대, 정확히는 젊은이들의 성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유아인의 인물들이 그 불가능성에 좌절하면서도 기어코 온몸으로 맞서는 소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기사 그렇기 때문에 청년을 다룬 영화 《버닝》을 해석하는 건 ‘유아인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표현도 나온 적 있다. 기사

유아인은 줄곧 청춘물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말했다. 2007년에는 “규정지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찌 보면 위태로운” 청춘의 이미지가 좋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청춘의 얼굴로 동시대 청춘을 대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한다. 주된 관심사가 청춘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맡은 캐릭터들이 청춘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청춘의 액기스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순간의 모습을 담은 멜로물에도 욕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인터뷰에는 순수함에 대한 지향, 불안함, 정제되지 않은 것들, 그 시기 아름다움에 많이 집중했었다고 밝히며, 보다 현실적인 청춘의 실질적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버닝》 등에서의 청춘을 연기할 때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하거나 제 발자취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청춘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이 시대의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호불호가 선명하다는 이미지 역시 존재한다. 주관이 뚜렷하고 솔직하지만 까칠하다는 이미지는 다소 거침없는 SNS의 멘트들로 인한 영향이 큰 듯 하다. 이은주 기자가 “SNS에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때론 그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기획사에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다”고 얘기하듯 기사 유아인의 SNS 활동은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에 최재욱 평론가가 지적하듯 “종종 SNS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나칠 정도로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스타 의식이 넘치고 버릇없고 거만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 평론가가 이어서 얘기하듯이 유아인은 다소 자아가 강하고 고집 있으며 약간의 ‘똘끼’도 남아 있으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고 한다.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약간 차이가 있고 투박할 따름”일 뿐 유아인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성장해왔다는 것이 요지다. 기사

이렇듯 유독 선입견이 많은 편이다. 2014년 잡지 <엘르>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소스를 많이 제공하다 보니 세간의 잣대가 생긴 것 같다”고 선입견이 생긴 이유를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는 시선에는 “진짜 자신 없다. 뭐가 맞는 말인지, 또 정답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것, 아는 것, 해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일이고 생각하고 표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냥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니까” 대중들에게 자신이 “별난 아이로 비치는 것 같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게다가 연기 외적인 활동들이 상당수 배우 유아인의 이미지와 혼합되거나 작품 속 캐릭터를 통해 구축한 판타지를 희석시켜 버리기도 했다. 김혜리 기자는 2011년 씨네21 토크쇼에서 이러한 선택이 수반한 위험[21]을 지적했는데, 유아인 본인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유아인은 규정할 수 없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혜리 기자는 <씨네21> 기사에서 이러한 유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표현과 삶이 동의어인 세대의 아이인 유아인은, 트위터와 미니홈피를 통해 들끓는 자신의 현재를 세상과 교신하며 청춘을 종단하는 전례없는 유형의 스타다. (중략) 21세기 배우 유아인은 일방적으로 팬들이 그를 상상하고 욕망을 투사하도록 도무지 내버려두질 않는다. 뜻대로 알맹이를 채울 수 있는 이미지만 주는 게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 바삐 타전한다. “너의 스타인 나는 이런 사람이니, 함께할 수 있는 한 잘해보자”라고 말을 건다.
김혜리 기자, 출처.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 의하면 섬세하고 세심하다. 또한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편이다. 더불어 배우로서 유아인에 대한 공통적인 표현은 ‘영민하고 영리한 배우’이다. 배우 송강호는 유아인이 자신과 공통적으로 성격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등 비슷한 점이 많아 편했다고 인터뷰했다. 《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입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아주 섬세하고 맑은 영혼인데 까칠하다거나 튄다는 얘기도 더러 듣죠.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가는 걸 보면 훌륭한 젊은이”라며 유아인이 섬세한 타입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

함께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은 유아인이 “앞뒤가 같은 스타일”이라며(2014년 연예가중계),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아서 부럽다고 말했다(2015년 <나일론> 인터뷰). 2016년에는 “섬세하고 센스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까칠하고 당돌하다는 선입견은 다소 확고한 주관에 기인한 듯. 이와 관련해 이한 감독은 유아인을 “따뜻한 마음이 있는 착한 배우”라고 하면서 “일에 있어서 자기의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얘기 하는 게 아직은 나이가 젊은 연기자다 보니 까칠하게 비춰질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터뷰.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에 대해 “홀린다”고 표현했다. 이준익 감독은 유아인이 현재주의자이며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는 친구”라면서 “그가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미래에도 과거에도 얽매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버나드 쇼의 말과 달리 “젊음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배우 정유미는 유아인을 “산”으로 비유하면서 산처럼 많은 것을 담았다고 표현했다. 또한 2019년 장윤주는 그를 두고 “매력이 많은 친구”라고 말했다.

또한 종종 시크한 성격의 소유자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 #1 #2 #3. 인사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래서 2017년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한 배우 강홍석은 처음 만났을 때 유아인이 너무 공손하게 인사해서 놀랐다고 말한 적 있다. 팬서비스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22] 무심한 듯 잘 해주는 츤데레 느낌이 있어서 팬들은 그를 두고 ‘엄다정’이라 부른다. 게다가 팬들 조련이 수준급 영상1 영상2. 영상3. 지인들에게 꽃선물과 함께 손편지나 카드를 자주 써주기도 하며, 기자들에 의하면 솔직하고 배려심이 있다고. #1 #2. 성균관 스캔들》의 김원석 감독은 유아인이 섬세하고 자상하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촬영 중간 졸고 있었던 김원석 감독에게 유아인이 큰 종이에 편지를 써서 햇빛을 가려줬는데 ‘감독님의 피곤한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인터뷰 기사.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은 그에 대해 순수하고 사랑이 넘치며, 따뜻하고 배려심 넘친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이중적 이미지의 공존으로 인해 이런 영상에서 보이는 갭모에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의 혼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아인은 이렇게 사람마다 평가가 확연히 다른 연예인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다고 밝혔다.(2011년 <인스타일> 7월호) 배우로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나인 채로” 사랑받고 싶고,(2013년 10월 ‘아이즈’ 인터뷰)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어도 흥미로운 배우,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2013년 10월 ‘텐아시아’ 인터뷰) 또한 사람들의 호오가 나뉠 지라도 “나 스스로를 드러내고 지키고 싶다. 그러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모델이 되고 싶다”면서 계속 표현할 것이라 했다.(2018년 11월 ‘스타뉴스’ 인터뷰)
저에게 ‘지 마음대로 하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인간적인 모습에 있어서도 거침없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략) 누가 봐도 다 해석이 다르고, 정답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심판대에 올라가는 직업이지만 심판되기 싫었고, 어디에도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갖고 살았어요. ‘어디까지 갈까, 어떤 연기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욕망이 강박으로 변하고 거기에 혼란스러움이 더해져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2015년 9월 30일 ‘스포츠경향’ 인터뷰
어떤 식의 대중적인 평가를 받는지도 알고 있고, 굉장히 호불호가 나뉘는 배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어떨 때 사람들이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혼란스러워 하고 어떨 때 박수치고 어떨 때 야유를 보내는지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 모든 말들이 ‘나를 예뻐해주세요’는 아니에요. 알면서도 모난 내 구석을 드러낼 때도 있고 조금 오그라들고 느끼할 거 알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 때도 있고. 그런 게 재밌지 않아요?
2016년 2월 16일 네이버 V무비채널 ‘배우를 만나다’ 인터뷰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동안 배우로서의 행보가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간다고 자주 설명되곤 한다. 본인 말대로 널뛰기하고 싶어하는 배우이며 하나의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은 것을 목표로 잡았기 때문인 듯하다. 연기를 지칭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단길 아니라고 투정부리지 않고 험한 길 내 발로 잘 걷고 있나 반성한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2013년 인터뷰에서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굉장히 애쓰고 노력하면서 고통과 싸워왔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런 내 자신으로 비춰지고 이해받고 사랑받는 게 너무 행복하다. 오해도 많다. 내비춘다는 것은 동시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거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잘 하든 못 하든, 모습이 말쑥하든 울퉁불퉁하든 다른 재미를 주고 싶다. 참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배우 유아인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덧입혀져 왔다. 이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개성이자 매력이나, 자칫 대중들이 유아인의 취향과 본질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유아인이 대중과의 친밀도가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배우 김윤석이 “아인이는 더디게 발을 내딛을지언정 엘리베이터를 안 탈 것 같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유아인 특유의 영역과 대중성이 더딜지라도 함께 확장하여 본인의 목표처럼 대중에게 혼란을 주면서 흥미로운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유아인은 2011년 <더블유>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쉽고 빠르게 변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며 사람들에게 “유아인이라는 배우는 대수로울 게 없는 아주 사소한 흥밋거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재미있는 걸 꺼내 보이며, 한두 작품이 아닌 큰 그림 안에서 ‘쟤는 뭐지’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 뭔지 알 수 없는 게 내 이미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에는 배우로서 “선입견을 만들고 깨부수는 과정의 반복”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고 다시 깨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시선을 기꺼이 받으며” 세상 한복판에 살아갈 것이라 언급한 적도 있다. 따라서 ‘유아인’은 한 개인이라기 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빚어내는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나같은 배우도 있어야 세상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는, 즉각적인 사랑과 주목을 받는 것 보다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대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이 되는 것이 배우로서 의지이고 목표라고 말했다.

5.2. 연기와 예술에 대한 유아인의 생각들

6.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말하는 유아인

※ 본 문서의 다른 문단에서 인용된 내용과 중복되지 않은 코멘트들만 첨부함.
아인이와 있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어 그 애가 시선을 돌리거나 나로부터 멀어져갈 때면, 그 뒷모습을 왠지 한참 바라보고 있게 돼요. 시간이 곧장 끊기지 않고 점, 점, 점, 말줄임표 같은 게 생겨요.
유아인은 무시무시하게 노련했다. 호흡과 리듬이 이미 체득되었다. 능수능란하지. 아무리 긴 대사를 줘도 한 문장으로 느껴질 만큼 호흡이 좋다. 보통 신인들은 자기 대사 차례만 기다리다가 긴장 때문에 첫 한마디가 깨지면 뒤에 우르르 무너지고 마는데, 유아인은 단칼이다. 그래서 일부러 긴 대사를 많이 줬다. 롱 테이크와 풀 쇼트에서 재능이 더 드러나는 배우다.
유아인은 정말 순수하다. 감정에 솔직하고 생각이 깊은 어른스러운 아이다.
어린 친구가 멋 부리지 않고 연기할 줄 안다. 타고난 것 같다. 촬영은 하면서 ‘내가 만약 이 친구를 놓쳤으면 어쩔 뻔했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유아인은 강단은 있어도 시키는 건 잘 한다. 어떤 때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연기할 때도 있다. 유아인은 자기 안에서 색깔을 찾아나가는 배우다.
평소 당돌한 이미지로 알려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 작업에 매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친구다. 하나하나 안 놓치려는 자세도 좋지만 감각이 뛰어난 후배 같다.
아인이는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와는 달리 정도 많고 의리있는 아이예요. 그리고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은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주는 옷은 항상 신뢰를 가지고 입어주는, 제가 본 배우 중 가장 착한 배우인걸요.
배우라도 촬영자 입장에서는 유아인이라는 모델은 최고이기도 하면서 최악이기도 하다. 최고의 장점은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쉼 없이 움직여주고 표현해주고 말을 걸어온다. 그렇기에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좋고 신이 난다. 최악의 상황은 내가 그 사람을 그 만큼 담아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다.
《깡철이》를 촬영할 때 아인 씨와도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그는 연기 경력이 오래된 만큼 자기 주관이 뚜렷했고 그런 모습이 연기에도 묻어났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자신감이 있는 친구였다. 연기도 굉장히 생동감 있다. 상황에 맞게 툭툭 치고 들어온다. 나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해놓고도 그의 연기를 하나도 받아내지 못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연기 호흡과 톤은 물론이다. 그때 아인 씨가 한 이야기를 마음을 닫고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에는 스스로 개선할 필요를 느끼던 차였다.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었다. 《깡철이》 이후 연기에 관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너무 예쁘게 생겼다. 다 골고루 가졌다. 연기를 잘 하고 그냥 배우 같다. 유아인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자아도 강한 사람 같다. 20대에 벌써 그러면 30대엔 얼마나 멋있게 될까 싶다. 난 20대 때 바보 같았는데, 유아인은 똑똑하다. 배우를 대표해서, 더 나아가 한국 사람 중에서도 오피니언 리더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자꾸 고민하고 노력해서 배우로서 성찰한다면 1~20년 후에 어떤 배우가 될까, 기대가 된다. 계속 가꿨으면 좋겠다. 유아인은 좋은 감독을 만나면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배우다. 그의 앞날을 누구보다 응원한다.
타고난 배우다. 내가 본 유아인의 특성을 이야기하자면 머리가 비상하고 정직하다는 것. 조금이라도 가짜인 것의 이물감을 견디질 못한다. 느낌으로만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감성을 지적으로 통제해가면서 연기한다. 그 나이에.
단순하게 개성 있다는 진부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아인은 문학적인 언사를 동원해야 평가가 가능하다. 유아인은 세상의 유행이나 통설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배우이다.
피아노를 안 배웠는데도 한번만 말하면 금방 이해하고 따라와 항상 감탄스럽다. 또한 무척 어려운 곡을 줘도 그 다음날이면 바로 외워오는 걸 보고 순간 몰입도와 집중력을 가졌음에도 자만하지 않는 엄청난 노력파라는 걸 깨닫게 됐다.
카메라 앞과 뒤의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방식들이 요즘 세대에 적합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공과 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면서도 굉장히 예의를 지킨다.
유아인은 아주 명석한 배우고 더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보는 게, 연기도 연기지만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려는 태도가 있다는 거다. 누군가에게는 겉멋과 객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경험해 본 유아인은 정제되지 않은 것과 본심이 있다. 자신이 누리는 것만큼 이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배우다. 자기가 빛을 쪼이는 동안 그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에 대해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시나리오 쓰면서도 작가들하고 ‘이건 유아인이야’ 라고 말하면서 썼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인간 자체가 어떤 물건이에요. 적어도 내가 그 나이 때 유아인만큼 뜨거웠는가, 유아인만큼 치밀했는가, 그리고 그 치밀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는가.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요즘 친구들이 다 저런가, 아니면 유아인만 유난히 저런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배우예요. 후배지만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작업 이후에도 항상 잔상이 남아있는 아주 인상적인 배우입니다.
유아인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에 대한 절대치가 확실히 있어요. 굉장히 높죠. 야구로 예를 들면, 유아인의 공은 강속구예요. 유아인의 연기는 시속 170km의 강속구로 날아와요. 그것도 돌직구요. 그럼 난 포수 잖아요. 모니터를 보고 유아인이 던지는 강속구를 잘 받아야 해요. 그 엄청난 강속구를 ‘딱!’ 하고 받는 순간 내 손이 얼얼한 정도의 느낌을 제대로 받죠. 그래서 《사도》 때 즐거웠어요.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그걸 경계하고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믿고 연기했다. 정직한 영화의 문법을 정확히 꿰고 있는 게 반가웠다. 사도는 어떤 배우가 하더라도 광기를 표현할 때 기교를 부리고 싶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인은 자기 진심을 믿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대견스러웠다.
정말 훌륭한 배우예요. 《사도》 뿐만 아니라 《베테랑》을 보면서 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유아인의 연기가 놀라운 점은 굉장히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감정에 자신을 내던져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전형적인 느낌으로 연기할 수 있었는데 잔재주나 잔기술을 보여주지 않고 정직하게 연기하더군요. 그 나이에 할 수 없는 연기를 했어요. 《베테랑》 VIP 시사에 갔다가 유아인의 연기가 정말 좋아 기분 좋아 뒤풀이에서 새벽 7시까지 있었어요.
유아인 오빠는 굉장히 섬세한 사람이더라. 제 컨디션이 어떤지까지 안다. 이 타이밍에 뭐가 필요한지 아는 센스가 있다.
인간으로서 유아인은 앞뒤가 똑같은 사람, 악의가 없는 사람이다. 연예인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다. 대중 앞에서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의 모습이 다르기 마련인데 유아인은 정말 똑같다. 그만큼 자유롭고 가식이 없다. 굉장히 부럽다.
유아인 오빠는 굉장히 인상 깊었던 상대 배우 중 한 명이다. 이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드라마 《패션왕》의 캐릭터 ‘강영걸’은 좀 망나니 같은 남자였다. 당시 드라마 관련 리뷰 기사는 ‘남자 주인공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댓글로 온통 도배됐었다. 그런데 유아인 오빠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신나게 임하더라. 막 주목 받기 시작한 젊은 배우가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역할을 즐기면서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유아인 오빠가 끝까지 자기 캐릭터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유아인 씨는 우리가 고민하던 대목에 연기로 그 방향을 알려 준 배우였어요. ‘이야기에 방해되면 내 분량 신경 쓰지 말고 빼세요’란 쿨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고, 열정적이고, 또 순수하다. 그리고 사랑이 넘친다. 10년 전 친구로 만났을 때부터 그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고 난 후에도 한결같다. 어떤 때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 같이 해맑다가 또 어떤 때에는 한 사람을 다 살아본 사람처럼 오백 살 어른이 된다. 파트너로 그리고 친구로서 엄홍식은 참 벅찬 존재다.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의 벅참도 있고, 감격, 기쁨, 희망 따위가 넘칠 듯이 가득하다는 의미의 벅참도 있다.
유아인 선배님은 세심하고, 포용력이 굉장히 넓다. 많은 부분을 말로 하지 않고 공감을 해준다.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큰 사람 같다. 사람에 대한 수용력이 있다고 할까. 되게 인간적이었다. 선배라고 해서, 현장 경험이 많다고 해서 대단하게 뽐내기보다 되려 날 배려해줬다. 그게 저로서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했다.
유아인은 훌륭한 감성을 갖고 있다. 유아인이 또래 연기자 중 가장 뛰어난 배우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유아인 외에 종수가 갖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만한 배우를 찾을 수 없었다.
유아인 씨를 보고 놀라웠어요. 사실 제가 평소에 유아인 씨를 보면 잘 모르겠어요. 이런 스타를 제가 평소에 잘 만나지도 못하고, 스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니까.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거든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그런데 종수가 됐을 때를 보면 실감이 나요. 종수로 나타났을 때는 이 세상, 이 한국의 어느 한 구석에, 저렇게, 저런 표정으로, 저렇게 걷고, 저렇게 말하는, 저런 친구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물론이지만, 저한테도 확실하게 실감을 전해주기 때문에, 어떤 표현이냐를 떠나서, 그것이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놀라운 자기 체화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애정이 있고, 굉장히 다양한 매력이 있는 친구예요. 어릴 때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것 같고, 굉장히 조용했던 걸로 기억해요. 생각이 많고, 진지하고, 자기 생각이 정확하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건강해요. 그리고 배우로서는 어마어마한 포텐이 있죠. 지금까지 우리가 《완득이》도 봤고, 《베테랑》, 《사도》도 보고, 《국가부도의 날》도 보실 거지만, 매번 다른 종류의 폭발력이 있거든요. 《버닝》에서도 놀라운 모습이었잖아요. 우리가 아는 유아인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어요.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포텐이 끊임없이 있을 것 같은 매력이 있는 배우예요.
아인이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성장 과정을 보며 굉장히 뿌듯하다. 또래에서 유아인 만큼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배우가 없다. 유아인이란 배우 고유의 매력과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기대가 된다. (중략) 훨씬 안전한 것을 택해 칭찬 받을 기회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참 좋아한다. 유아인에게는 청춘 같은 느낌이 있어 좋다. 조금 덜 손해보고 덜 미움 받고 사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 그게 유아인 같다.
홍식이는 재미있는 사람이예요. 정말 따뜻한 사람이고요. 프로젝트를 할 때도, 다른 작가를 섭외할 때도 진정성이 굉장한 사람입니다. 사실 저도 작가지만 다른 작가들에겐 큰 관심이 없는데, 홍식이는 다방면에 관심도 많아요. 누구보다 아름답고, 또 누구보다도 아티스트죠. (그리고) 저의 작품을 진정으로 좋아해주고, 저를 많이 일깨워 준 갤러리스트죠.
(유아인 씨와) 친해졌다기보다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유아인 씨를 보면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고민하지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색다른 연예인이다. 어쩌면 연예인이라기보다 아티스트 같다.
유아인이란 배우와 《도올아인 오방간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같이 했어요. 아인 씨가 준비도 많이 해오고 생각도 깊다고 느꼈는데, 방송에서 그런 면을 충분히 담지 못해 제작진으로서 부채감이 있었어요. 방송이 끝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메시지를 보냈는데, 갑자기 같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중략) 그러다 얼떨결에 프로젝트[24] 참여자 전원이 모인 첫 미팅에 가게 됐어요.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인 씨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싶은 지 이야기하다가 울음을 터뜨렸어요. (중략) 그는 좋은 걸 같이 하고, 널리 퍼뜨리고, 의미 있는 일에 모두가 동참했으면 하는 의지가 강한 편이에요. 이 길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외롭게 느껴졌는지, 설득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그때 정신이 확 들었어요. 그 순간 주위의 낯선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이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됐어요.
《도올아인 오방간다》라는 방송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그런 방송은 준비도 많이 해야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다른 작품과 다르다는 점에서 힘들다. 배우가 작품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은 훈련된 것이고, 연습도 할 수 있고 동료 배우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만, 방송은 있는 그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내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 수 있다. 그 방송을 보고, '와 되게 멋있는 친구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작품에서 만나보니까 제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자유롭고 성실했다.
유아인 배우는 다방면에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영화 이외의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굉장히 똑똑해서 놀랐다. 제가 요즘에 제일 좋아하는 소설을 이야기하면 이미 다 알고 있고, 트렌드도 다 알고 있다. 특히, 예술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예도 깊어서.. 저도 미학을 전공했고, 유아인 배우도 예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둘이 최근의 예술 사조라든지 소설 트렌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 대표부터 막내까지 똑같이 대한다. 사람이 좋아서 저희 《소리도 없이》현장에서는 대표부터 막내까지 똑같이 대했다. 촬영 마지막 날 스텝들이 모두 줄 서서 사인을 받았다. 그만큼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반짝이는 별 같은 배우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잘 하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 발견되면 자신의 영향력을 도움이 되는 곳에 쓰고 싶어하는 분이 아닌가 했어요. 제 시나리오가 모든 시나리오보다 나았다고 할 수 없는데 그분에게 운이 좋게 시나리오가 갔었고, 제가 얼마나 딱한지 보셨던 것 같아요.(웃음) 또 제가 신인이기도 하니까 스포트라이트가 자신보다 감독 쪽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고요. 유아인 배우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쓰는 방식, 혹은 그 방향에 대한 고민을 오래 전부터 많이 해온 배우인 것 같습니다.
제게 제지를 한다거나 신인의 어떤 패기와 용기와 의지를 꺾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와 저 사람은 왜 대체 사람이 저렇게 좋아?'라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이 사람이 정말 한순간도 안 편한데 '왜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지?' 하는 이 두 가지 생각을 같이 했던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유아인은 연기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소리도 없이'는 백일몽 같은 판타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고, 대사가 없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유아인의 독특한 텍스처가 공허함을 남기지 않고 영화를 가득 채웠다. 설득력이라는 단어가 사람이라면 유아인일 것이다. #
태인의 캐릭터에 대한 유아인의 해석은 대본의 제안 이상으로 새롭고 생생했다. 매번 만남에서 그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통해 극중 내가 만든 캐릭터 태인의 그동안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고 알게 되었다. 태인은 유아인을 통해 대본을 쓸 때의 느낌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유아인 정말 좋다. 참 좋은 배우다. 현장에서 너무나 진중했고, 제가 느낀 유아인은 맑은 사람 같았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아이 같았다. 순수한 면도 있고 사랑도 넘치고,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림 없이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7. 출연 작품

7.1. 영화

{{{#!wiki style="margin: 0px -11px; color: #fff"
{{{#!folding Filmography
{{{#!wiki style="margin-bottom: -11px"
파일:external/i67.tinypic.com/11awuuw.jpg 파일:external/i63.tinypic.com/34zcd1k.jpg 파일:external/i68.tinypic.com/e7ldeo.jpg 파일:external/i67.tinypic.com/2zswe29.jpg
좋지 아니한가
주연
2007. 3. 1.
정윤철 감독 / 심용태 역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s-2|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주연
2007. 5. 17.
노동석 감독 / 전종대 역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주연
2008. 11. 13.
민규동 감독 / 양기범 역
하늘과 바다
주연
2009. 10. 28.
봉수 감독 / 진구 역
파일:external/i68.tinypic.com/x1isu9.jpg 파일:external/i68.tinypic.com/eqw7pj.jpg 파일:external/i66.tinypic.com/29751u.jpg 파일:external/i63.tinypic.com/2mnn4b7.jpg
[[완득이(영화)|
완득이
]]
주연
2011. 10. 20.
이한 감독 / 완득 역
[[깡철이(영화)|
깡철이
]]
주연
2013. 10. 2.
안권태 감독 / 강철 역
[[베테랑(영화)|
베테랑
]]
주연
2015. 8. 5.
류승완 감독 / 조태오
[[사도(영화)|
사도
]]
주연
2015. 9. 16.
이준익 감독 / 사도세자
파일:external/i66.tinypic.com/ei7a61.jpg 파일:bntl_2.jpg 파일:국가부도_2.jpg 파일:saratitle.jpg
[[좋아해줘|
좋아해줘
]]
주연
2016. 2. 17.
박현진 감독 / 노진우 역
[[버닝(한국 영화)|
버닝
]]
주연
2018. 5. 17.
이창동 감독 / 종수 역
[[국가부도의 날|
국가부도의 날
]]
주연
2018. 11. 28.
최국희 감독 / 윤정학 역
[[#살아있다#|
#살아있다
]]
주연
2020. 6. 24.
조일형 감독 / 오준우 역
파일:sorititle.jpg 파일:흰 가로 이미지.svg 파일:흰 가로 이미지.svg 파일:흰 가로 이미지.svg
[[하이파이브(영화)|
소리도 없이
]]
주연
2020. 10. 15.
홍의정 감독 / 태인 역
[[서울대작전|
서울대작전
]]
주연
2022. 8. 26.
문현성 감독 / 박동욱 역
[[승부(영화)|
승부
]]
주연
미정.
김형주 감독 / 이창호
[[하이파이브(영화)|
하이파이브
]]
주연
미정.
강형철 감독 / 기동 역
}}}}}}}}} ||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고 관객수
2007년 좋지 아니한가 심용태 주연 30만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5] 종대 3341명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양기범 118만명
2009년 하늘과 바다 진구 1.8만명
2011년 완득이 도완득 531만명
2013년 깡철이 강철 120만명
2014년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고경천(얼룩소) 목소리 -
우아한 거짓말 추상박 조연 -
2015년 베테랑 조태오 주연 1341만명
사도 사도세자 624만명
2016년 좋아해줘 노진우 84만명
CCRT Aerospace : Episode 1 Fragile : 경계의 저편 남자 기획, 제작 단편
2018년 버닝 종수 주연 52만명
국가부도의 날 윤정학 375만명
2020년 #살아있다 오준우 190만명
소리도 없이 태인 40만명
2022년 서울대작전 박동욱
[[넷플릭스|
NETFLIX
]]
미정 승부 이창호
하이파이브 기동

7.2. 드라마

<rowcolor=#fff>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시청률
2003년 파일:SBS 로고.svg 똑바로 살아라 미팅남 2 164회 단역 -
2003년~2005년[26]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파일:KBS 2TV 로고(1984-2018) 화이트.svg 반올림 유아인 조연 -
2003년 4월의 키스 어린 강재섭 조한선 아역 -
2005년 드라마시티 《시은&수하》 이민석 주연 단편
2008년 최강칠우 흑산 14.7%
2009년 결혼 못하는 남자 박현규 8.8%
2010년 성균관 스캔들 걸오 문재신 14.3%
2012년 파일:SBS 텍스트 로고.svg 파일:SBS 텍스트 로고 화이트.svg 패션왕 강영걸 10.6%
2013년 장옥정, 사랑에 살다 숙종 이순 11.4%
2014년 파일:JTBC 로고.svg 파일:JTBC 로고_White.svg 밀회 이선재 5.4%
2014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연애의 발견 공방손님 특별출연[27] -
2015년~2016년 파일:SBS 로고.svg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주연 17.3%
2016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태양의 후예 은행원 엄홍식 특별출연[28] -
2017년 파일:tvN 로고(2012-2021).svg 파일:tvN 로고(2012-2021) White.svg 시카고 타자기 한세주 / 서휘영 주연 2.8%
2021년
[[넷플릭스|
NETFLIX
]]
지옥 정진수 -
2024년 종말의 바보 하윤상 -

8. 그 외 활동

8.1. 광고

연도 기업 브랜드 비고
2003 농심 쫄쫄면
2004 형지엘리트 엘리트
NHN 한게임
신진제약 총명시트
동아제약 제1회 고교생 환경캠프 그룹 캠페인
농심 꿀꽈배기
2005 SK텔레콤 SPEED 011
스쿨룩스 스쿨룩스
이현어패럴 블루테일 
2010~2011 LG패션 헤지스
2011 LG전자 옵티머스 블랙
하나은행 하나SK Touch1 카드
2011~2012 오꾸닭 오꾸닭
리복 코리아 리복 클래식 
CJ 올리브영
2011~2013 디아도라 코리아 디아도라
2011~2014 크리스패션 잭앤질
2012 하이트진로 참이슬
삼천리자전거 삼천리자전거
참좋은레져 참좋은여행
한국 후지필름 후지 인스탁스
2012~2013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2013 LG전자 옵티머스 LTE III
2013~2014 LG패션 라푸마(Lafuma)
2013~2015 베이직하우스 더 클래스
I'm David 중국
2013~2016 아모레퍼시픽 미쟝센
필립스 코리아 영킷(Young Kit)
Series 5000
Series 7000
2015~2016 한국맥도날드 맥카페
제이엔지인터내셔날 지프 브랜드
LG유플러스 U+ TV G
LTE비디오포털
iPhone6s
2016 아디다스 코리아 리복 아즈텍
리복 퓨리라이트
지오다노 지오다노
넷마블게임즈 KON
웰크론 세사리빙
2017~2018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2018~2019 OTB그룹 디젤 글로벌
리치몬트 코리아 산토스 드 까르띠에
2019 페르노리카 차이나 앱솔루트 중국
PVH 캘빈 클라인 글로벌
2019~2020 버버리 버버리 글로벌
2020 엔픽셀 그랑사가
2020~2021 유니베라 아임뮨
2020~2022 무신사 무신사
무신사 스탠다드
샹테카이보떼코리아 샹테카이
2021 비케이알 버거킹 몬스터II
2021~2022 바오바이오 미뮤즈
동원F&B 오리진
JNBY그룹 CROQUIS 중국
푸마 코리아 푸마
2022 자비스앤빌런즈 삼쩜삼
오뚜기 짜슐랭
케링 보테가 베네타
네파 네파
종근당건강 아임비타

8.2. MV, 아트필름 등 기타 영상물

연도 제목 내용
2004 발자국 T.O의 뮤직비디오
2007 좋지 아니한가 배우들 녹음버전이 삽입된 뮤직비디오
2012 Only One (드라마 버전) 보아의 뮤직비디오
2016 ㅎㅎㅎ (흥부야) 페기 구의 음악을 사용한 아트필름
2018 The Interview 온라인 세계와 악플을 주제로 한 아트필름
2019 Sender Unknown(隔空投送) 스마트 세대를 주제로 한 Nowness의 시리즈 영상물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 페기 구의 뮤직비디오
2021 자유 새소년의 뮤직비디오

8.3. 방송 출연

※ 연예정보 프로그램 인터뷰, 프로모션 일환의 온라인 방송 등은 제외하며 고정 및 정식 게스트 출연분만 작성함.
연도 제목 채널 출연 내용
2005 < 스펀지> KBS 2TV 68회 게스트
2007 <시네마 천국> EBS 1TV 659회 ‘영화처럼’ 게스트
2008 < 이주연의 영화음악> MBC FM4U ‘아주 특별한 만남’ 게스트
<트렌드리포트 필 시즌2> Mnet 52회 게스트
< 공감토크쇼 놀러와> MBC TV 219회 ‘7인의 패셔니스타’ 게스트
2009 <야심만만2 - 예능선수촌> SBS TV 25회 게스트
2011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 Mnet 리얼리티 예능
< 최화정의 파워타임> SBS 파워FM 보이는 라디오 게스트
<뉴스! 정면승부> YTN 라디오 ‘정면 인터뷰’ 게스트
2013 < 공형진의 씨네타운>[29] SBS 파워FM ‘씨네 특별 초대석’ 게스트
< 런닝맨> SBS TV 164회 ‘위대한 유산’ 게스트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 4> 온스타일 9회 미션 전달자
2014 <다문화20년 청소년보고서 - 날고싶은 완득이> KBS광주 1TV[30]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2017 <6.10 민주항쟁 30주년 - 6월 이야기> KBS 1TV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2018 <희망TV - 시리아의 목격자들> SBS TV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2019 < 도올아인 오방간다>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자
2020 < 방구석1열> JTBC 109회 게스트
< 나 혼자 산다> MBC 350회~351회 게스트
< 박명수의 라디오쇼> KBS 2FM 10월 5일 게스트

8.4. 기타 경력

연도 행사명 활동 내용
2006 대한생명&월드비전 청소년봉사단 ‘해피프렌즈’ 홍보대사
2013 제12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명예 심사위원
2016 전시회 <다빈치 코덱스(Davinci Codex)> 홍보대사 및 국문 오디오가이드
2022 제 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 시상자

9. 수상 내역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2007 대학생이 뽑은 신인배우상 5월의 신인배우상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제3회 평택 피어선 영화제 남자 신인상
2008 제11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올해의 남자 신인연기자상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10 제5회 에이 어워즈(A-Awards) 스타일 부문
KBS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 (with 송중기) 성균관 스캔들
2011 제5회 Mnet 20's Choice Hot 20’s Voice상
제4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SIA) 스타일 아이콘 본상
2012 제3회 올해의 영화상 올해의 발견상 완득이
2013 제9회 환경재단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방송/연예 부문
2015 제3회 마리끌레르 아시아 스타 어워즈 아시아스타상
제15회 대한민국 청소년영화제 인기영화인 남자배우부문 베테랑》 《 사도
제3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사도
제10회 에이 어워즈(A-Awards) 스타일 부문
제1회 셀럽스픽 패셔니스타 어워즈 영화패션 부문 베테랑
제5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영화예술인상 베테랑》 《 사도
제4회 CFDK[31] 어워드 올해의 패션아이콘상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대한민국 톱스타상 시상식
대한민국 톱스타상 베테랑》 《 사도
씨네21 영화상 올해의 남자배우 베테랑》 《 사도
S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육룡이 나르샤
베스트커플상 (with 신세경)
10대 스타상
2016 제7회 올해의 영화상 남우주연상 사도
제11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남자배우상 베테랑
제8회 스타일 아이콘 아시아(SIA) 스타일 아이콘 본상
제10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넥스트 제너레이션상 베테랑》 《 사도
제21회 춘사영화상 남우주연상 사도
제36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베테랑
제5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육룡이 나르샤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제16회 대한민국 청소년영화제 인기영화인 남자배우부문
2017 제19회 한국패션사진작가협회
올해의 아티스트 시상식
올해의 포토제닉상
2020 씨네21 영화상 올해의 남자배우 #살아있다》 《 소리도 없이
2021 제41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소리도 없이
남우주연상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25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 슈발누아 경쟁부문 남우주연상
제30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제15회 아시안 필름 어워즈
제6회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대상 올해의 배우 영화 부문
아시아 셀러브리티상 배우 부문

10. 논란 및 사건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아인/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1. 여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아인/여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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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틀: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1위 참고. [2] 초기 작품들의 영문 크레딧에는 Yu A-in, Yu Aine, Yoo Ain 등 제작사에 따라 모두 다르게 표기됐다. 2012~2013년 즈음부터 해당 표기로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훈음] 심을 [4] 기사 한남동 외에도 이태원동에도 자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32세손 ○相(상), ○植(○식) 항렬. [6] 과거 일본 팬미팅에서 프로필에는 181cm로 되어있지만 정확한 키는 179.5cm라고 직접 인터뷰 했다 [7] 2024년 8월 7일 투병 중 지병으로 사망. 향년 67세. [8] 품종은 둘다 스핑크스다. [9] 언젠가부터 INFP로 궁예가 사실처럼 돌아다니면서 유아인이 직접 말했다는 잘못된 기사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유아인은 자신이 INFP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 2021년 1월 7일 인스타라이브(2분 26초)에서, MBTI 할 때마다 다 다르게 나와서 모른다고 답했다. 2022년 2월 인터뷰에서, INFP로 알려졌다는 질문에 "제 MBTI가 조금 잘못 알려진 것 같은데, 매번 다르게 나와서 저도 헷갈릴 때가 많아요. 최근엔 ENFP로 나오던데요?(웃음)"라고 INFP는 잘못 알려진 것임을 밝혔다. 이후 2022년 9월 기사에 의하면 본인은 INTP와 ENFP가 번갈아 나온다고 밝혔다. 링크 XNXP를 기준으로 자주 바뀐다니, MBTI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10] 팬들이 붙여준 별명. [11] 2016년 초 갤러리 공간을 확대하고, 사무실과 아틀리에는 다른 공간으로 독립했다. [12] 설립 초기와 달리 현재 크루들이 모두 친구들인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매니징, 전시 큐레이팅 등을 맡은 크루들(직원들)이 늘어났는데, 공개 채용 등을 통해 그룹에 소속되었다. 그러므로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프로젝트들을 유아인이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예술활동이라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13] 화제가 됐던 MAMA 비와이 공연 전의 모놀로그 역시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14] 공공미술관이나 마을회관 등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법적인 부분을 고민 중이라 한다. 현재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유아인은 '집'을 선택했다고 한다. [15] 권철화의 2019년 개인전 제목 [16] 갤러리와 게시판이 모두 닫혔다. 하지만 2006년부터 2011년까지의 선곡 리스트는 볼 수 있다. [17] 나중에 이 사실이 <비밀독서단>에 소개되기도 했다. [18]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에서 철자 u를 지워 hate로 만든 말이다. [19] 프로그램을 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홍콩 재벌과 친해진다. 또한, 화제의 영상과 편집된 캡쳐본과 달리 전형적인 츤데레 스타일로 현장 스태프들 중 유일하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이 유아인으로 나온다. [20] 다만 2018년에는 전시 일정 때문에 6월 말에 치러졌다. [21] 유아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이미지가 강렬해지면 그것이 스크린 안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다. [22] 정작 본인은 무뚝뚝한 성격이라 팬서비스가 다채롭지 않다면서, 팬들을 “의리와 우정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고 “나도 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 적도 있다. 2012년에는 “그들은 친한 친구들 같다. 의리를 지키고 싶은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23] 다만 이 인터뷰는 중국어-영어-한국어 삼중역을 거친터라, 유아인이 한국어로 말한 본래의 표현과 다른 의미로 전달된 것일 수도 있다. [24]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1111 프로젝트 [25] 유아인의 영화 데뷔작으로 《좋지 아니한가》 보다 먼저 촬영했다. 유아인 본인이 스크린으로 처음 본(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말함) 자기의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정식 개봉은 2007년 3월에 개봉한 《좋지 아니한가》보다 2개월 늦은 5월에 했다. [26] 2003년 11월부터 방영된 작품이지만, 유아인은 2004년 1월부터 출연했다. [27] 영상 [28] 영상 42초부터 [29] 방송 당시에는 민규동 감독이 DJ 권한을 대행했다. [30] 2015년 2월에 서울 본사에서 네트워크 특선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31] 한국패션디자이너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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