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의 통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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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 ( ( 안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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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비협약) ( 몬테네그로, 코소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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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레프 | 세르비아 디나르 | 태환 마르카 | 북마케도니아 데나르 |
루마니아 레우 | 알바니아 레크 | 튀르키예 리라 | 지브롤터 파운드 |
Leku Shqiptar ( 알바니아어)
1. 개요
알바니아의 통화. ISO 4217 코드는 ALL, 기호는 L로 표기하며 보조단위는 친다르케(Qindarke)이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레쿠라는 단위 자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리키는 축약형 별명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발칸반도의 선주민이라는 자부심이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 보조단위 친다르케는 그냥 알바니아어로 "100"이라는 뜻이다. Cent와 동일한 의미.
2023년 6월 현재 환율은 약 13원. 인플레 추정치(2013년)는 1.7%.
2. 환전
국내 시중은행, 환전소에서는 취급하지 않으며 KEB하나은행 역시 비고시 추심 대상이 아니다.알바니아로 여행, 사업 목적으로 간다면 아래의 외국 통화로 환전이 가능하다.
목록에 있더라도 일부 사설환전소이나 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일리리아 환율창
- 유럽: 유로, 스위스 프랑, 영국 파운드[1], 덴마크 크로네, 노르웨이 크로네, 스웨덴 크로나, 북마케도니아 데나르, 불가리아 레프, 루마니아 레우, 아이슬란드 크로나, 세르비아 디나르, 폴란드 즈워티, 헝가리 포린트, 체코 코루나[2]
- 오세아니아: 호주 달러
- 중동: 이스라엘 신 셰켈, 아랍에미리트 디르함,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카타르 리얄, 바레인 디나르
3.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1기)
과거에는 이탈리아의 입김이 많이 닿았고 이후 1939년에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의 영토를 되찾겠다면서 강제로 편입함에 따라 개혁당했을 정도는데, 2차 세계대전으로 이탈리아가 발을 빼고, 1947년 자치 공산주의 세력이 권력을 얻으면서 추세가 뒤집혔다.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1946년 전에 발행된 것들이라 좌익 임시정부 시절도 병행하여 설명했으며, 보다 공산주의적 용도에 맞게끔 개혁된 시리즈이다. 그래선지 교환비가 명확하지 않다.
3.1. 1945 발행
이전의 은행은 알바니아 "국립"은행 이었지만 점령 후에는 국립을 빼서 알바니아 은행 으로 불렀다. 작은 차이지만 무언가 굉장히 허전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1945년 5월 1일 | |
5 프란카 | |
20 프란카 | |
100 프란카 | |
500 프란카 |
- 이때까지는 프란카 표기를 사용했었다.
- 참고로 지폐 속 인물은 스컨데르베우로, 봉건 귀족이었던지라 공산주의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워낙에 인물이 인물인지라 선정된 듯.
3.2. 1947 발행
레케화가 공식적으로 국가 통화로 지정된 이후 발행된 첫 번째 시리즈.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춘추전국시대 뺨치는 방대한 시리즈를 통합해 주었다.
앞면 | 뒷면 | ||
10L | 파르티잔 | 액면 | |
50L | |||
100L | |||
500L | |||
1,000L |
3.3. 1949 발행
조금 더 노동자를 집어 넣었는데, 이것이 다 구국의 영웅이자 불세출의 전략가이신 위대하신 령도자 덕분이다!앞면 | 뒷면 | ||
10L | 국장 | 액면 | |
50L | 스컨데르베우 | 파르티잔 | |
100L | 총을 든 군인 | 액면 | |
500L | 뜨락또르 / 스컨데르베우 | 볏단을 든 농민 | |
1,000L | 스컨데르베우 / 송전탑 | 광산 노동자 |
4.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2기)
4.1. 1953~76 발행
1976년 새 헌법을 채택한 알바니아는 국호에 사회주의를 추가하게 된다. 다만 그 이전에 발행된 1964년 발행 은행권과 국호 변경 후인 1976년 발행 은행권에는 딱히 차이가 없었다.[3]앞면 | 뒷면 | ||
1L | 수확하는 농민 | 로자파 요새 | |
3L | 포도바구니를 든 여인 | 사란다 마을 전경 | |
5L | 트럭과 증기기관차 | 배 | |
10L | 방직공장의 여성 노동자 | 문화궁전서 대화하는 정부 관료, 나임 프라세리 | |
25L | 추수하는 여성 | 뜨락또르 | |
50L | 군대행진, 스컨데르베우 | 총, 곡괭이, 아파트 건설현장 | |
100L | 아들에게 수력발전소 보여주는 아버지 | 재철소 노동자와 석유시츄 노동자 |
5. 알바니아 공화국(3기)
기나긴 공산주의 독재시기를 거쳐 1991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면서 나라가 뒤집히니 거기에 따라 같이 뒤집혀 만들어진 통화.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로 전환될 때 처럼 알바니아도 엄청난 물가상승을 피하지는 못했기에 보조단위가 전면 폐지되었다.
5.1. 1991 발행
앞면 | 뒷면 | ||
100L | 정유소 | 제철소 인부 / 시추공 / 제분소 | |
500L | 해바라기를 든 소녀 | 산 |
당시 100레크 지폐는 2021년 7월 현 시점에서 이미 회수가 되어 통용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500 레크권을 포함한 모든 현행권이전 지폐들은 2010년 7월 1일부터 회수와 교환을 시작 2024년 1월 1일부터는 교환을 중단해 사용할 수 없는 지폐가 된다.
5.2. 1992 긴급조치 발행
마트에 들어갈때 가격과 나올때 가격기 천지차이일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현행 화폐를 50:1의 비율로 개혁하여 '레크발류트' 라는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 잠깐이나마 발행했다.5.3. 1992 발행
1992년 10월 1일 새로운 은행권이 발표되었는데 1000 레크 권이 1949년 이후로 4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앞면 | 뒷면 | ||
100L | 코르차 민족 전사 동상 | 산맥 / 새 | |
200L | 이스마일 체말리 | 독립기념식 | |
500L | 나임 프라세리 | 촛불 / 산맥 | |
1000L | 스컨데르베우 | 스칸데르베그 성 |
5.4. 1996(2019) 발행
초판은 1997년 7월 11일 발행되었다.이후 2019년 가을부터 도안은 동일하지만 디자인을 수정한 개정판이 발행되었으며 200레크권이 폴리머 재질로 바뀌었다.[4] 또 함께 계획했던 새 고액권 1만레크권도 이 시리즈에 편입되어 2021년 발행되었다.
현행권 | 앞면 | 뒷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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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놀리 | 잡지 / 알바니아 최초의 의회건물 | |
200L | 나임 프라세리 | 그의 생가 / 시 | |
500L | 이스마일 체말리 | 독립기념관 | |
1,000L | 피어테르 보그다니 | 바비 뎨예스 교회 | |
2,000L | 겐티오스 | 부트린트 유적의 원형극장 | |
5,000L | 스컨데르베우 | 크루여 성[5] | |
10,000L | 아스드레니 | 알바니아 국기와 깃발의 찬가 |
5.5. 동전
현재 5, 10, 20, 50, 100레크 5종. 1레크도 존재는 하나 대게 5레크 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져서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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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스컨데르베우 · 조구 1세 · 엔베르 호자 · 마더 테레사 | |
지리 | 발칸 반도 · 아드리아해 · 일리리아 · 오흐리드 호수 · 티라나 | |
사회 | 카눈 · 알바니아 마피아 | |
민족 | 알바니아인 · 알바니아계 미국인 |
[1]
잉글랜드 발행권만 가능
[2]
알바니아에서도 체코/헝가리 환전 사기가 워낙 알려진 탓에 현지인들이 자국에서 환전한다고.
[3]
지폐 우측 하단에 년도가 달라졌고, 일렬번호의 글씨가 조금 얇아졌지만, 이전의 화폐라고 받아주지 않는다는건 없었다.
[4]
본래는 전량 폴리머로 교체할 계획이었으나 최종적으로 200레크만 교체하고 나머지는 기존의 면소재를 유지하기로 했다.
[5]
스컨데르베우가 반(反)오스만 항쟁의 기치를 처음으로 든 곳이자, 이후 그의 본거지가 된 곳.오늘날 크루여에는 스컨데르베우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