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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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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경제 정보[1]
인구 2,829,741 명[2] 2021년, 세계 134위
경제 규모(명목 GDP) 171억 3,800만 달러(약 19조 원) 2021년, 세계 121위[3]
경제 규모( PPP) 435억 5,300만 달러(약 50조 원) 2021년, 세계 121위[4]
1인당 명목 GDP 6,396 달러 2021년, 세계 110위[5]
1인당 PPP 15,225 달러 2021년, 세계 115위[6]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60.6% 2012년[7]
실업 16.9% 2013년[8][9]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B1 2023년, 14등급[10]

1. 개요2. 상세3. 역사
3.1. 공산정권 시절3.2. 체제전환 초기의 끔찍한 경제 상황3.3.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 이후
4. 무역 구조
4.1. 주요 수출 지역
5. 관련 문서

1. 개요

알바니아 경제에 관한 문서.

2. 상세

2021년 UN 통계 기준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이하 UN 통계 기준) 6,396 달러, 195개국 중 91위를 기록하여 몰도바, 우크라이나, 코소보에 버금가는 유럽 최빈국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에는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던 후진국이었으나 2021년부터는 이 상황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실업률이 높은 편이다. 근로의욕이 높은 편인데도 인프라가 부족해 13~14% 정도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섹터별 GDP 구성이 농업:산업:서비스업=1:1:3 정도로 서비스업은 대단할 것 없이 보통 카페 종업원 등인 경우가 많다. 평균 임금은 $500 정도로 낮지만 이것도 10년 사이에 $200이나 증가한 것이다. 소비액이 꽤 많은 편. 부가가치세가 20%인데 소비 부가가치세로도 정부지출 전체를 충당하고도 상당히 많이 남는다. 최신 지표로 하면 정부지출 이후에도 1,000억 레크가 남는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조 2,000억원 정도.

절대빈곤 인구가 12.5%나 된다. 즉, 일 $1 또는 $2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8분의 1이라는 말. 2020년 기준으로도 국가빈곤선 밑에서 사는 국민이 22%에 달한다. # 그나마 몰도바, 우크라이나만큼의 절대적 극빈층 비율은 적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역은 이탈리아에 많이 의존한다. 수출의 45%, 수입의 33%가 대이탈리아 무역이다.

의외로 산유국이다. 알바니아는 이미 1928년 유전이 발견된 나라이며, 2013년 기준 원유 생산량은 120만 톤이 넘었고, 2017년 기준 석유 매장량은 1억 6800만 배럴로 세계 58위, 유럽 8위[11]다.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등 4개국이 단일 경제시장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 2021년 6월 29일부터는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간에서는 오픈 발칸 시행으로, 2023년 4월 13일부터는 알바니아와 코소보간에는 별도 협정 체결로 알바니아인 또한 협정국에 영주할 수 있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몬테네그로는 여권 대신 신분증으로 출입국이 가능하다.

2024년 IMF 통계 기준으로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8,924달러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최부국 가봉(9,308달러)와 차이를 좁혔다.

도시화율도 1922년 기준 22%였던 게 1960년에도 30.7%였고, 1997년에야 40%, 2009년에야 50%를 넘길 정도로 낮다. 그나마 2019년에는 60%를 넘겨 2023년 현재 알바니아의 도시화율은 64.6%. #

3. 역사

3.1. 공산정권 시절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후 알바니아 인민공화국 바르샤바 조약과 코메콘의 회원으로서 소련과 손잡으며 지원을 받았으나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고 니키타 흐루쇼프의 정책들을 수정주의라 비난하며 1961년 소련과 단교했다. 그 대신 소련과 사이가 좋지 않던 중국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1970년대 중반 마오쩌둥도 죽고, 중국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자 중국 또한 기회주의적이라 비난하면서 독자외교 자력경제 노선으로 밀고 나갔다.

그렇기에 냉전 시기에도 서방과 적대관계가 아니었던 인접국 유고슬라비아, 적대관계였더라도 미국, 서유럽 국가들과 기본적인 교류는 하던 소련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과 달리[12], 알바니아는 스탈린주의에 철저히 경도된 엔베르 호자가 장기 집권하며 어떠한 국가와도 일절 교류하지 않는 극단적인 쇄국정책을 취했다.[13] 타 동구권 국가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지만, 알바니아는 꿋꿋이 철저한 중앙통제 경제정책을 취하며 자본주의적 요소를 일절 거부했다. 물론 체제 붕괴 직전까지 배급제를 고수했으며[14], 병원에서는 여전히 에테르를 사용했고, 티라나 최고의 고급 호텔도 뜨거운 물이 저녁에 1시간만 나왔다. # 물론 코카콜라 바나나가 알바니아에 처음 들어온 해는 1991년이었고[15], 코카콜라 공장이 처음 세워진 해도 1994년이었다. #

3.2. 체제전환 초기의 끔찍한 경제 상황

1992년 민주화 직후 알바니아의 모습.[16][17]

1990년 알바니아의 풍경

결국 알바니아는 공산정권이 막을 내리던 시점에는 명실상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최빈국[18]로 전락했다.[19][20]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여파로 1991년 알바니아도 마침내 동구권에서 마지막으로 47년 간 이어진 공산독재를 종식시키기는 했으나 빈곤이 극심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 경험이 전무했으므로, 체제전환 과정에서 루마니아, 불가리아보다도 어려움을 훨씬 더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90년 -9.6%, 1991년 -28%, 1992년 -7.2%의 경제성장률을 겪으며 알바니아 경제는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공산정권이 완전히 붕괴한 1992년 세계은행 통계 기준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200.85달러로 1990년 617달러였던 것에서 1/3토막났으며,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 기준으로도 극빈국이었다. 어느 정도로 가난한 거냐면, 당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폴 포트가 축출된 지 고작 13년밖에 안 된 적도 기니/ 캄보디아의 1인당 GDP가 269달러/256달러에 2년 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의 현장이 될 르완다가 265달러였고, 모부투 세세 세코가 나라 GDP만한 돈을 해외로 빼돌렸던 자이르가 231달러, 멩기스투 공산정권이 붕괴한 지 고작 1년 정도밖에 안 되었던 데다가 과거 세계적으로 빈국의 대명사였던 에티오피아가 207달러, 최근 50년 간 가장 경제성장이 더딘 나라에 독립 직후 17년간 무려 100만 명이 희생당한 내전이 이제 막 끝난 모잠비크가 203달러로 유럽 국가인 알바니아보다 높았고, 심지어 현재 세계 최악의 극빈국으로 악명이 높은 부룬디(!!!)가 알바니아랑 별 차이가 없는 188.6달러였다! 덕분에(?) 당시 부룬디는 눈 떠보니 유럽 국가랑 비교당했다는 체면치레 아닌 체면치레를 하게 되었다.[21] 당연히 전 세계 국가 중 알바니아보다 가난한 나라는 단 10개국[22]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웃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끔찍한데, 바다 건너 있는 이탈리아는 1992년 당시 1인당 GDP가 24243.5달러[23]로 알바니아의 무려 120.7배였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스도 1인당 GDP가 11,176.46달러[24]로 알바니아의 55.65배였다.[25]

또 평균월급은 11달러(당시 환율로 8천원)에 불과했으며[26] 인플레이션은 800%까지 치솟았고 농업 생산량은 기존의 1/4로, 산업 생산량은 기존의 절반 미만으로 폭락했으며, 실업률은 50%에 머물렀다.[27] 나라 곳곳에는 무장 강도가 들끓었고 빵을 달라는 폭동이 즐비했던 데다가 정부 서비스는 거의 사라졌으며 실업률은 높았고 식량과 연료, 의약품은 부족했다. 물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빵과 자유를 찾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해외로 이주한 알바니아인은 30만 명에 달했고[28][29], 알바니아 국민들은 국제 구호 지원[30]과 해외 근로자의 송금으로 겨우겨우 연명해야 했으며, 암거래와 부패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31]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티라나에서 남쪽으로 45km 떨어진[32] 세리크시에서는 한 여성이 흑백 TV(?!)[33]를 구매하기 위해 18개월 된 자신의 아기를 40만 레크(당시 환율로 300달러)에 이탈리아인 부부에게 파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 1994년 알바니아를 방문한 한 한국인은 알바니아의 열악한 모습이 50년대 말 한국과 같았다고 말했을 정도. #[34] 1993년 8월 3일 뉴욕타임즈 기사에 묘사된 당시 알바니아의 실태는 유별난 수준의 폭정만 없었을 뿐이지 지리적 위치까지 고려하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과 동급에 1970년대 말의 적도 기니[35], 2000년대 말의 짐바브웨[36]와 비교해야 하는, 전란 없이 지상에 도래한 인세의 지옥과도 같았다.[37] 정부도 돈이 없어 대통령 월급이 120달러[38]였고,[39]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40]에 참가한 알바니아 선수단 8명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해 출전경비를 은행에서 차용해야 했다. #

이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 살리 베리샤가 이끄는 알바니아 민주당 정권은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새 경제개혁을 실시하면서 특히 다단계 금융을 활성화했고, 그 결과 1993년을 기점으로 경제가 안정화되었고 1993~1996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10.1%였기에[41] 1995년에는 공산정권 시절 1인당 GDP를 넘어서고[42] 1996년에는 1인당 GDP가 1,035달러로 고속 성장하고 최빈국을 벗어나며 한동안 고속성장을 하는 듯했다. 유럽 내에서도 1994년에는 몰도바와 보스니아를 제치며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자리를 탈출했고 1996년에는 우크라이나도 제치며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4위로 포지션이 대폭(?) 나아졌다.[43] 티라나는 거주이주의 허락이 사라진 틈을 타 이주한 농촌 출신 이주민들로 득시글거렸고, 인프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평균 임금은 지금 한 달에 60달러로 호자 시대의 두 배에 매달 약 20달러 상당의 정부 보조금[44]도 추가로 나왔다. #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거품경제라서 1997년 발생한 금융사기 사건을 겪었는데, 다단기사계의 진상이 밝혀지자 나라는 내전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당시 살리 베리샤가 이끌던 알바니아 민주당 정권은 공산당의 후예인 알바니아 사회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치욕을 당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7년 알바니아의 경제성장률은 -10.9%를 기록하고 1인당 GDP가 719달러로 다시 추락하며 경제가 체제전환 초기 수준으로 파탄날 위기에 처했다.

사실 이 고도성장기에도 가난한 지역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산악지대인 북동부 지역[45]의 경우 경제발전의 혜택을 입기는커녕 화폐경제가 사라지고 물자를 얻는 방식이 원시적인 물물교환(...)으로 대체되는 황당한 지경에 이르렀으며[46] 알바니아 북동부 지역의 1인당 GDP는 100~150달러[47]로 추산되었다. 또 공산정권 시절 일자리를 가졌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면서 비슷한 시기 가난한 염소치기로 살았던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으며, 티라나 대학교 경제학자인 그라모즈 파슈코는 외국 원조, 해외에서 일하는 알바니아인의 송금, 밀수가 국가 소득의 3/4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 빈민이 된 사람들은 공산정권 시절보다 지금이 더 살기 좋다고 여겼다고 한다.[48] #[49]

3.3.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 이후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알바니아는 이후 고속성장을 이어가며[50] 금융사기 사건의 후유증에서 재빨리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1997~1998년에는 몰도바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2위였고, 1999년 우크라이나에 이은 3위, 2000년 세르비아의 폭락과 함께 4위로 다시 포지션이 원상복귀되었다. 1인당 GDP 역시 1999년 다시 1000달러대로 회복하며 1996년 수준을 회복했고 2004년 2000달러대, 2007년 3000달러대를 기록했다. 이렇게 알바니아의 경제는 2002~2007년에는 4~7%대의 중고도 성장을 기록하다 유럽 재정 위기 사태와 함께 3% 내외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IMF는 이런 상황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알바니아의 인구구조가 점차 고령화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IMF의 보고서들에 따르면 알바니아는 재정정책을 잘 운영해 비교적 유럽발 재정 위기의 직격적인 피해를 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유로화 미사용+개도국 버프가 더 크게 작용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개도국 버프가 있다고 해도 정부가 재정 위기라는 주변국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개발정책을 밀어붙여 실효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개도국 버프가 있다면 알바니아는 개발할 여지가 많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도로를 만들 지역은 얼마든지 있다. 알바니아는 만성적인 인프라 부족에 허덕이는 나라기 때문이다. 알바니아의 절묘한 위치 덕분에 여유로운 재정상황을 자랑하 그리스가 도로를 지어주겠다고 나서는 등 알바니아의 위치 덕을 보려는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IMF는 알바니아의 성장률이 점차 회복되어 2015년에는 5%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유럽 전체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치다. 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2007년에 7.8%의 고성장을 기록하는 등 알바니아의 잠재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일단 당분간은 중진국 함정에 신경쓰지 않고 정부주도 개발을 시행해도 괜찮은 단계이기도 하고. 소득분배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도 0.4 정도로 개도국 치고 낮은 편.[51] 정부 부채도 40% 아래로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부채 비율이 계속 감소하는 중. 2008~2017년 4000달러대를 맴돌다[52] 2018년 5000달러대를 돌파했고, 2021년 6000달러대, 2023년 현재 8368달러로 공산정권 시절 빈곤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4. 무역 구조

파일:2021년 알바니아 수출 HS17_4 OEC.png
OEC(The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에 따른 2021년 알바니아의 수출구조. #
위 트리맵은 2021년 알바니아 수출을 2017년도 HS코드에 따라 4단위(호, Heading)까지 분류하였다. 알바니아는 의류·섬유류(Textiles), 광물제품류(Mineral Products), 신발·모자류(Footwear and Headwear), 금속류(Metals), 기계류(Machines), 농산물(Vegetable Products), 식품류(Foodstuffs), 축·수산물(Animal Products), 종이류(Paper Goods), 기타(Miscellaneous), 귀금속류(Precious Metals), 플라스틱·고무류(Plastics and Rubbers), 목재제품류(Wood Products), 화학제품류(Chemical Products), 수송수단(Transportation), 천연피혁류(Animal Hides), 석재·유리(Stone and Glass), 계기류(Instruments), 동·식물성 농업부산물(Animal and Vegetable Bi-Products), 무기류(Weapons), 예술품·골동품류(Arts and Antiques) 순으로 많이 수출했다. 알바니아는 2021년 35.1억 달러를 수출했다.
파일:2021년 알바니아 수입 HS17_4 OEC.png
OEC(The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에 따른 2021년 알바니아의 수입구조. #
위 트리맵은 2021년 알바니아 수입을 2017년도 HS코드에 따라 4단위(호, Heading)까지 분류하였다. 알바니아는 기계류(Machines), 광물제품류(Mineral Products), 금속류(Metals), 의류·섬유류(Textiles), 화학제품류(Chemical Products), 식품류(Foodstuffs), 플라스틱·고무류(Plastics and Rubbers), 수송수단(Transportation), 축·수산물(Animal Products), 농산물(Vegetable Products), 기타(Miscellaneous), 석재·유리(Stone and Glass), 종이류(Paper Goods), 신발·모자류(Footwear and Headwear), 천연피혁류(Animal Hides), 목재제품류(Wood Products), 계기류(Instruments), 동·식물성 농업부산물(Animal and Vegetable Bi-Products), 귀금속류(Precious Metals), 무기류(Weapons), 예술품·골동품류(Arts and Antiques) 순으로 많이 수입했다. 알바니아는 2021년 75.8억 달러를 수입했다.
OEC에 따르면 2021년 알바니아는 35.1억 달러를 수출하고 75.8억 달러를 수입, 40.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가장 많이 수출한 것은 의류·섬유류, 광물제품류, 신발·모자류이며 이 상품군들은 전체 수출의 55.3%를 차지했다. 가장 많이 수입한 것은 기계류, 광물제품류, 금속류, 의류·섬유류, 화학제품류이며 이 상품군들은 전체 수입의 56.7%를 차지했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중국, 독일, 스페인,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이다.

4.1. 주요 수출 지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2006Albanian_exports.png
2006년 알바니아의 주요 수출 지역

5. 관련 문서



[1] http://en.wikipedia.org/wiki/Albania [2]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 [3]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GDP_(nominal) [4]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GDP_(PPP) [5]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GDP_(nominal)_per_capita [6]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GDP_(PPP)_per_capita [7]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ublic_debt [8] http://www.imf.org/external/pubs/ft/scr/2012/cr12100.pdf [9]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unemployment_rate [10] https://www.moodys.com/credit-ratings/Albania-Government-of-credit-rating-806356888?lang=en&cy=can [11] 튀르키예를 유럽으로 볼 시 [12] 특히 소련의 경우 서기장들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 프랑스, 서독, 영국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13] 어느 정도로 호자의 알바니아가 폐쇄적이였냐고 하면 당시 알바니아에는 이렇다 할 항공사조차 없었던데다가 알바니아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꼽히던 1980년대에도 알바니아 국민 대다수는 알바니아를 '유럽에서 가장 번창한 국가'로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호자가 사망한 1985년 기준으로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783달러로, 2023년 환율로는 약 2,206달러였다. [14]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알바니아의 4인 가족은 한 달에 한 마리의 닭만 배급받았고, 평상시에는 빵과 야채로 겨우 연명했다고 한다. [15] 당시 알바니아인들은 누가 먹다 버린 코카콜라 캔을 구매해 벽난로, 자수 도일리, TV 위에 장식으로 두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 [16] 그나마 수도 티라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고, 시골로 갈수록 더 열악해져 특히 산골 오지에 있는 외딴 시골의 경우 50년대 말 한국 같다는 평가와 당시 1인당 GDP 수치가 납득이 갈 수준으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17] 살리 베리샤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집회에 뜬금없이 성조기가 휘날리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사실 당시 알바니아인들은 미국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여겨 '빵과 자유'를 위해 미국을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91년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의 알바니아 방문 당시에는 1991년 기준 인구가 25.5만 명에 불과하던 이 도시에 무려 30만 명이 몰려들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 당시보다 더한 장관이 벌어졌다고 한다. [18] 유의해야 할 게 '유럽의' 최빈국이 아니라 유럽의 '최빈국'이다. [19] 다만 호자에게도 변명거리가 있는 게 애초에 알바니아는 호자 집권 전부터 유럽 최빈국이었다. 기본적으로 농업국이었던 것을 넘어 경상도보다도 좁은 나라의 국토 중 70%가 산악지대라 농사를 지을 땅도 부족하고 알바니아 공국 시절에는 토호들의 힘이 강해 중앙정부가 제 힘을 쓸 수 없을 정도였던 데다가 후술하듯 인구 절대다수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으니 원래부터 잘 살 수가 없는 환경이었던 것. 그나마 호자 정권 시절 교육에 힘을 쏟아부어서 인구의 90%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20] 참고로 1945년 기준 알바니아의 남성 문해율은 34%였고, 여성 문해율은 13%였으며, 남부 지역의 교육 수준이 북부 지역보다 더 좋았다. 이 시점에도 알바니아의 52개 지역 중 남성 문해율이 10%를 밑도는 곳은 2곳이었고, 여성 문해율이 1%를 밑도는 곳은 4곳이나 되었으며, 여성 문해율이 가장 높은 지역의 문해율은 겨우 43.5%였다. 1945년 기준 남성 문해율 1945년 기준 여성 문해율 심지어 이마저 1918년보다는 대폭 나아진 건데, 1918년 기준 알바니아의 문해율은 도시 기준 남성 28.8%, 여성 8.8%였고, 시골 기준 남성 1.8%, 여성 0.1%였다. 당시 알바니아의 도시화율 등으로 추산하면 전체 문해율은 5% 내외로 추정. 1918년 알바니아의 문해율 관련 자료 1 2 3 4 하다못해 탈레반이 1차 집권한 1996년 아프가니스탄의 문해율이 여성 13.5%, 전체 30% 가량으로 1945년 알바니아와 거의 동급이었다. # 또 1972년 소말리아의 성인 문해율이 남성 7.2%, 여성 3.7%, 전체 5.4%였다. [21] 심지어 당시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2024년 환율로 환산해도 452달러도 되지 않는데, 이는 2024년 IMF 통계 기준 예멘, 말라위보다도 낮고 아프가니스탄과 동급이며, 무엇보다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한국의 실질 1인당 GDP가 2024년 가치로 환산한 게 605달러다. 하다못해 기록적인 경제파탄으로 악명 높은 몰도바조차 경제 파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러시아 모라토리움이었던 데다가 최암흑기였던 1999년 1인당 GDP가 399.5달러, 2024년 가치로 755달러로 최암흑기 알바니아보다는 훨씬 양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가관이 따로 없다. 다만 UN 통계 기준으로는 몰도바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20개국 중 하나 수준에 소말리아랑 별 차이 없긴 했다.(...) [22] 부룬디, 네팔, 시에라리온, 우간다, 베트남, 소말리아, 라이베리아, 아제르바이잔, 미얀마, 이라크 [23] 이는 영국, 캐나다, 핀란드보다 높고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와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 이탈리아는 영국 GDP까지 제친 세계 5위 경제대국이었다. [24] 이는 뉴질랜드에 버금가고 전통적인 '선진국의 최소' 포르투갈, 당시 '중진국의 최대'였던 대한민국보다도 높았다. [25] 하다못해 개막장스러운 경제격차로 유명한 그 남한, 북한마저 당시 이탈리아, 알바니아의 경제격차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야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영국보다 부유한 강대국의 최소와 부룬디랑 동급으로 가난한 유럽 국가가 공존하는 판이었으니... 경제 문제도 이러한데 여기다 더해 당시 후술할 난민선 사태와 알바니아 마피아로 대표되는 알바니아인 난민 문제들, 알바니아가 2차 대전 시기 이탈리아의 점령지였지만 공산정권을 수립한 엔베르 호자에 의해 사실상 패퇴했던 경험이 있던 것과 비교하면 90년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알바니아를 어떻게 취급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다만 당시 그리스: 알바니아는 오늘날의 남한:북한과 비슷한 포지션이긴 하다. [26] # [27] 물론 공식 통계에서는 이보다 낫게 나왔다. [28] 당시 알바니아 인구는 323만 명도 되지 않았다. 전쟁도 전혀 없는 나라에서 3년 만에 인구의 9% 가량이 해외 난민이 된 셈. 참고로 ' 아프리카 북한'이라 불리는 것을 넘어 호자 사후 가장 북한 수준에 근접한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독재국가로 악명이 높은 에리트레아의 인구 대비 해외 난민 비율이 2015년 기준 인구의 9~12%다. # [29] 이 과정에서 1991년 8월 8일에는 무려 2만 명이나 되는 알바니아 난민을 실은 블로라(Vlora)호가 이탈리아에 도착했으나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1500명을 제외하면 전부 그 무더운 남유럽의 더위 속에서 야외 경기장에 수용되었다가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알바니아로 송환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 당시 이탈리아 군인들이 울타리 밖에 있는 알바니아 난민들에게 음식물을 던져주는 영상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야말로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의 동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모습처럼 보일 정도이며, 실제로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당국이 알바니아인을 동물처럼 대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이 모습을 보면 19세기 서유럽 사람들도 아일랜드인들을 이 정도로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 같을 정도. 1:26~1:33 참조 그외 90년대 초 알바니아의 난민 사태에 대해서는 이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이 링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리스 군인들이 그리스에 들어오는 알바니아인 난민들을 총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30] 실제로 하술할 1992년 영상에 나오듯 이탈리아 군인들이 알바니아에 식량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31] 출처: 세계의 자유 1992~1993 백서 [32] 참고로 이는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평택시, 안성시 인근 포지션이다. [33] 알바니아에서는 한국보다 1년 낮은 1981년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 물론 이는 공산권에서 루마니아(1983)를 제외하면 가장 늦었다. 다만 루마니아는 원래 70년대 후반 컬러 방송을 시작하려 했으나 대지진 오일쇼크 때문에 컬러 방송이 늦어진 거다. [34] 사실 알바니아에 50m 이상 높이의 건물(티라나 인터내셔널 호텔, 56m, 15층)이 최초로 들어선 게 1979년이었고, 이후 2000년이 되기 전까지 새로 건립된 50m 이상 건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참고로 한국에 처음으로 50m 이상 건물이 들어선 게 알바니아보다 18년 빠른 1961년( 서울시민회관 옥탑, 10층, 약 56.7m)이었다. [35] 다만 이쪽은 당시 독재자이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수도 말라보를 버리고 갑자기 고향으로 잠적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36] 당시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달러로 대표되는 최암흑기 알바니아도 따위로 만드는 경제파탄으로 인해 전란 하나 없이 취약국가지수 소말리아와 비교되는 희대의 파탄국가가 되고 말았다. [37] 기자도 당시 알바니아를 '2차 대전 후 유럽에서 본 적이 없는 빈곤'이라고 표현했다. 당시에도 북아메리카, 일본(당시 중국은 최빈국이었고 한국도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버금가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였던 유럽에 진지하게 아프리카 최빈국과 동급 수준으로 가난한 나라가 있다는 것은 전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38] 2024년 가치로는 270달러다. [39] 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개도국 중하위권 수준 소득이었다. 유럽에서도 벨라루스의 1인당 GDP가 1603달러(2024년 가치로는 3607달러)로 알바니아 대통령보다는 잘 벌었다.(...) 하다못해 1957년 기준 6.25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이승만 대통령의 연봉마저 현재 가치로 800만 원 안팎으로 베리샤보다는 잘 벌었다. [40]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알바니아가 참가한 올림픽이었다. 사실 알바니아는 공산정권 시절 1972년을 제외하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할 정도로 극도로 폐쇄적인 나라였다. [41] 1993년 9.6%, 1994년 8.3%, 1995년 13.3%, 1996년 9.1% [42] 화폐가치 변동까지 감안해도 공산정권 말기 경제수준을 회복했다. [43] 덤으로 1996년 기준 알바니아(1001달러)와 이탈리아(23081.6달러), 그리스(13749.1달러)와의 격차는 각각 4.4%/7.3%로 격차를 대폭 좁혔다. 사족으로 2023년 현재 알바니아(8367.8달러)와 이탈리아(38373.2달러)/그리스(22990.1달러)와의 격차는 각각 21.8%/36.4% [44] 대통령도 개도국 서민만큼 월급을 받았을 정도로 가난한 정부가 갑자기 주민들에게 준 돈이 어디서 나왔냐면 폰지사기였다.(...) 나라에 경제 전문가가 없어서 외부에서 경제 전문가를 초빙했는데 초빙한 사람이 알고 보니 폰지사기꾼이었던 것. 당시 알바니아인들과 정부 고위층들은 폐쇄적인 경제환경 때문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라는 경제원칙도 몰랐기에 폰지사기에 쉽게 넘어갔던 것. 결국 국민 60%가 다단계 사기에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그 폰지사기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는 후술. [45] 아이러니하게도 살리 베리샤 당시 대통령의 고향이 이 지역에 있었다. [46] 공산정권 시절 캄보디아 적도 기니에서도 독재자들이 화폐경제 자체를 부정해서 물자를 얻는 방식이 물물교환으로 대체된 바가 있지만, 이쪽은 진짜로 경제가 망해서 물물교환으로 대체된 거다. 심지어 이쪽은 명색이 유럽 국가인데도 저런 꼴을 당해야 했다. [47] 알바니아 정부 쪽에서는 100달러 쪽이 더 사실에 근접할 것이라고 봤다. 이 정도면 내전을 겪고 있던 라이베리아(63달러)에 뒤이어 당시 전 세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2위(그것도 유럽 국가가!!!) 수준이다. [48] 아마 북한과 동급 취급받던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고 정부가 직업을 배당해주면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 직업을 강제로 수행해야 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렇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49] 비록 기사 작성 날짜를 보면 당시 미국인들은 이 기사를 보고 만우절 농담일 거라 생각했을 것 같긴 하지만(...) 뉴욕 타임즈가 정론지인지라 만우절 농담을 안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만우절 농담 만들려고 일부러 저런 기사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0이다. 이게 더 놀랍다. [50] 1998년 8.8%, 1999년 12.9%, 2000년 6.9%, 2001년 8.3%. 당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2%였다. [51] 증가하고 있기는 하다. 2005년 26.7에서 많이 상승했다. 2008년 기준 상위 10%가 국민 소득/소비의 30%를, 하위 10%가 3.5%를 차지하는 상황. 다만 경제성장 시 지니계수 악화는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52] 2015년 한정 3953달러로 떨어진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