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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0:29:37

안치홍/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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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안치홍/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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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KIA 타이거즈
3.1. 2009 시즌3.2. 2010 시즌3.3. 2011 시즌3.4. 2012 시즌3.5. 2013 시즌3.6. 2014 시즌3.7. 경찰 야구단3.8. 2016 시즌3.9. 2017 시즌3.10. 2018 시즌3.11. 2019 시즌3.12. 1차 FA
4. 롯데 자이언츠5. 한화 이글스6. 국가대표 경력7. 수상 경력
7.1. KBO7.2. 국가대표7.3. 기타
8. 연도별 성적

1. 개요

한화 이글스 소속 내야수 안치홍의 선수 경력을 다루는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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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울고 재학 시절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2007년 결승전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와의 혈투 끝에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중심타자 및 유격수를 맡았으며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박건우와 고등학교 동기이다.

고교 시절부터 투수와의 수싸움능력에도 강하고, 경기를 보는 시야가 좋았으며 타격기술도 기반이 잘 닦여져 있었다. 손목 힘이 좋아 히팅 파워도 괜찮은 편. 수비 시엔 타고난 스피드나 빠른 순간 가속에 의한 수비보다는 좋은 시야에 유연성과 스탭을 기반으로 한 견실한 수비를 보여준다. 고교시절 유격수로서 김상수, 오지환, 이학주, 허경민 등과 라이벌 관계였으며 2008년에는 U-18 대표팀에 이들과 함께 차출되어 세계대회 2연패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때 대회 최고수비수상[1]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다만 국내고교야구대회에서는 수비 면에서는 어깨가 강한 편은 아니라 프로에 오려면 유격수 수비를 다듬어야 한다는 평이 있었고, 어찌됐던 높은 포텐셜을 가지고 2009년 2차 신인지명 전체 1순위로 입단하였다.[2]

3. KIA 타이거즈

파일:1000000288.jpg

3.1. 2009 시즌

파일:PYH2009102403190001300_P2.jpg

시범 경기 때부터 계속 출장하여 고졸 신인으로서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본래는 1군 물 조금 먹고 2군에서 자기 기량을 쌓아올릴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다시 내야 수비를 볼 예정이었던 이종범 이용규의 부상으로 외야 주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서 안치홍은 좀 더 1군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한다.

시즌 초반에는 3루수로 주로 출장하였으나 실책이 잦아서 결국 2루로 밀려난다.[3] 2루에서는 김종국의 백업요원 수준이었지만, 이미 37살로 노쇠화된 김종국과 조범현 감독의 세대교체 의지[4]로 인해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내내 KIA 타이거즈의 내야가 흔들리면서 김선빈과 함께 수비력 논란도 있었으나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신들린 듯한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수비가 불안하다는 말을 듣고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수비만 줄창 연습했다고.

123경기에 출장해 타율 0.235, 홈런 14개, 38타점을 기록,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타율과 출루율이 꼴찌 바로 다음에다 무려 32볼넷에 103개의 삼진을 기록하는 멘도사 라인급 타격 능력을 보였지만 주전 2루수였던 김종국의 노쇠화와 그보다 나은 장타력 덕에 계속 주전 멤버로 기용될 수 있었다. 시즌 중 1안타 1도루 결연식으로 하나를 할 때마다 1만 원을 적립, 27만 원을 적립했지만 삼진으로 적립하면 39만 원을 적립할 수 있었다.

특히 2스트라이크 이후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유독 큰 약점을 보여 삼진을 양산했다. 또한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기록이 곤두박질을 쳤는데, 전반기 성적이 타율 0.243, 12홈런이었다는 것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안치홍 개인적인 타격슬럼프도 기인했겠지만 상대팀들이 그의 약점인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후반기에 적극 공략했다는 의미도 있다. 결과적으로 OPS는 리그 평균에도 못 미쳤고 출루율은 3할에도 모자랐다. 다음 시즌 그의 타격은 이 약점을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100M를 11초대에 끊을 정도로 주력도 괜찮은 편이지만, 경험 부족인지 도루 성공률은 낮은 편.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부분들이 눈에 띄는 선수다.

693,565표라는 압도적인 표수로 올스타전 멤버로 뽑혀 5회말 투런 홈런을 날리면서 서군의 승리를 이끌어 MVP를 차지, 역대 최초 고졸신인 미스터 올스타이자 최연소 미스터 올스타 자리에 올랐다. 사실 운도 많이 따라준 게, 서군 2루수 경쟁자들이 죄다 약체였다. 오선진, 김민우, 박경수. 과거 서군 2루 올스타 터줏대감이던 김종국도 KIA 타이거즈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체 2위를 자주 했다. 당시 부상으로 받은 것이 기아 포르테 하이브리드. 참고로 이미 운전면허는 따놓았다고 한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7경기 내내 고졸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이고 노련한 수비를 보여줬다. 경기를 즐기는 듯한 플레이들이 압권. 7차전에는 3:1로 추격하는 안타와 5:4로 추격하는 홈런을 뽑아내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7차전은 아무래도 역대급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지만 사실 7차전의 숨은 히어로 중 하나가 바로 고졸 루키 안치홍이었다.

2009 시즌 신인왕 후보 중 유일한 1년차 신인이다.[5] 결국 신인왕은 3년차 중고 신인인 두산의 마무리 이용찬에게 돌아갔다. 이 투표에서 안치홍은 최종투표까지 가는 끝에 2위를 기록하고 KBO 골든글러브 후보에도 올랐지만 정근우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신인왕 투표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친 고창성, 홍상삼을 눌렀고 골든글러브 투표에서는 신명철보다 많은 득표 수를 받으면서 본의 아니게 공정성 시비의 중심이 되었다.[6][7]

고졸 신인으로서 입단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차고 앞으로 깨지기 어려운 최연소 기록들을 세운데다[8] 팀은 우승. 이제 갓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은퇴할 때까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듯하다. [야구멘터리 위대한 승부] (14) 단기전의 하위타선

3.2.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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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연말부터 2010 시즌을 대비해 좌타석을 연습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교시절 수술받았던 왼손목에 아직 통증이 남아있고, 양쪽에 타석을 서는 방법으로 타격 밸런스를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본격적인 스위치 타자 도전은 아니라고 한다. 2010 시즌 들어 루키시즌 최대 약점이었던 바깥쪽 밑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밀어쳐 안타를 만드는 등 작년의 약점을 보완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확실히 2010년 경기를 보면 밀어쳐서 만드는 안타가 많이 늘었다.

수비 면에서도 2009년 한국시리즈를 기점으로 상당히 좋아진 수비로 2루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나, 4월 9일 대구 삼성전에서 연장 11회 병살을 잡으려다 끝내기 송구에러를 범했으며, 4월 23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2-1로 앞서있는 상황에서 병살을 잡으려다 또다시 송구에러를 범하며 로페즈의 시즌 2승을 말아먹었다. 이 실책 이후 로페즈는 강판당했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덕아웃에 들어온 그는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화풀이를 했다.

시즌 초반 밀어치는 타격으로 한 때 3할을 치기도 했으나, 중반 이후 주전선수의 줄부상으로 상위 타선에 들어서는 기회가 많아져 본인의 부담이 컸고 나쁜 공을 무리하게 잡아당기는 안 좋은 타격을 하며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 .268의 타율을 기록하다가(특히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 최근 5경기에서 1할대를 치며 부진) 후반기 들어서며 다시 살아나는 모습. 9월 16일 기준 .289 8홈런 50타점 18도루 8실책을 기록중이며 특히 전년도와 스탯을 비교해보면 홈런과 도루를 바꿔먹은 스탯을 보이고 있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손영민, 유동훈, 나지완과 엄청나게 까이는 존재로 격상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의 타격 부진이 원인인 듯?

득병[9]이라 까였지만 다른 신인들, 특히 오지환이나 김상수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넘사벽급 활약을 보였다. 오지환의 경우 장타력은 확실히 있지만 수비 안정감에서 안치홍에 비해 좋지 못하고(오지환은 유격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상수는 수비 안정감이 좋은 대신 아직까진 타격이 시망.. 하지만 안치홍은 2루수! 수비부담면에선 이 둘에 못미친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오죽하면 한화 한대화 감독이 오선진 깔 때 안치홍과 비교해서 깠다. 오죽하면 정근우와 비교해도 1, 2년때 성적은 안치홍이 훨씬 좋다. 문제는 이게 커리어하이인지 아니면 더욱 더 성장할 것인지.

같이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김선빈과 특히 친한 듯 하다. 그 때문에 둘이 덕아웃에서 장난 치는 꼴을 보기 쉬운데, 웃기는 건 오프라인 온라인 가리지 않고 1년 선배 김선빈에게 대놓고 말을 까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9월 17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콜을 안해 중견수 이용규와 부딪히고 18일 경기에서도 역시 콜을 안해 1루수 김상현과 함께 공을 놓쳐버리는 활약을 펼쳐 안치홍 벙어리설이 힘을 얻고 있다.

2010 시즌 종료 후 성적은 .291 홈런 8 도루 18. 조인성 강정호와 더불어 2010 시즌의 유일한 전경기 출장에 최다 수비이닝을 기록하고 고졸 2년차인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성적이지만, 삼진이 무려 96개... 전체 타자 중에서도 7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삼진을 많이 먹는 타자가 대부분 슬러거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서 힘이 붙으면 홈런 개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라는 예상이 많긴 하지만... 김재현, 이승엽, 김태균, 최정에 이은 역대 5번째로 10대에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다.[10]

3.3. 2011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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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즌 후 왼쪽 어깨 봉합수술을 받았다. 도루시(특히 홈으로 들어올 시) 수비수의 태그를 피해서 왼팔로 베이스터치를 하면서 생긴 부상이라고 한다. 때문에 5월까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졌으나 3월 24일 시범경기에 대타-대수비로 출전하여 독한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본인이 데뷔 이후 3년 연속 개막전 출장에 대한 욕심이 컸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결국 데뷔 후 3년 연속 개막전 출전에 성공했다.

4월 1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유원상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다.

2010 시즌에 이어서 2루수로 출전하면서 김선빈과 함께 키스톤 콤비를 구성하고 있다. 2011 작성시간 기준으로 에러가 5개밖에 없을 정도로 신들린듯한 수비를 보여주며 타 팀에서 부러워 할 젊은 철벽 내야진을 맡고 있다.

그러나 2010 시즌 이후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고생하였다가 결국 6월 11일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011년 초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부상에서 복귀하여 1군에서 시작했을 정도로 2군 경험이 없던 안치홍에게 있어서는 첫 1군 말소.[11] 재활 이후에 6월 23일 넥센과의 강진 어웨이 2군 경기에 첫 출전하여 3타수 1안타(2루타) 1타점을 기록했고 당일 바로 광주 SK전 1군 경기에 등판하여 8회말 선발 2루수 박기남과 교체되어 SK 투수 김광현에게 바로 1군 복귀 안타를 신고하는 괴력을 보였다.

2010년에 있었던 상위타선 울렁증이 2011년에 와서는 다소나마 개선된 모습도 보여주었다. 7월 초 악안면 부상을 당한 김선빈과 허리디스크가 재발한 최희섭이 빠진 상황에서 이범호가 4번, 안치홍은 3번 타순에 오르는 경기가 많았는데 득점권 상황에서도 적시타를 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출장으로 인한 체력저하가 뒤늦게 나타났는지 7월 12일, 13일 연속으로 정신나간 수비를 벌이며 까였다. 특히 13일에는 실책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야수선택으로 인해 패배의 빌미가 되었다. 거기에 2번 타자로 나섰던 7월 19일 한화전에는 선취타점을 올렸지만 2번의 병살타로 공격의 흐름을 까먹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데뷔 이후 빠지지 않고 KBO 올스타전에 3회 연속 출전하였다.

8월 2일 두산전에서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 (1회 선취 2타점 2루타, 8회 쐐기 1타점 2루타 등) 수비에서는 5회말 2사 1루에서 윤석민(2번항목)의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미칠듯한 하이점프캐치로 잡아내는 등 공수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보였다.

8월 28일 SK전에서 9회말 무사 1, 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이는 개인 통산 첫 끝내기 안타이자 2011 시즌 KIA 타이거즈의 첫 끝내기 안타였다.

10월 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타수 1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했지만 실책 2개를 저지르고 도루를 실패하여 빛이 바랬다. 그래도 팀은 스코어 5:1로 이겼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1일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부진. 스코어 0:0인 2회말 무사 1, 2루에서 2루주자 최희섭과 자신을 죽이는 번트 병살타를 친 데다 정줄 놓은 수비를 보이며 0할타자 김선빈과 함께 병스톤콤비의 위엄을 과시했다. 이날 안치홍은 4타수 1안타에 그쳤고, 팀은 2:0으로 무기력하게 졌다.

10월 12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스코어 0:0인 2회말 무사 1, 3루에서 어이없는 스윙으로 폭삼당한 것을 시작으로 어처구니 없는 모습만 선보였다. 유동훈이 1경기를 말아먹었지만 안치홍은 전 경기를 말아먹으며, 이용규, 김선빈과 함께 2011년 준플레이오프를 말아 먹은 역적중 1명이 되었다. 이날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0으로 대패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선발 2루수 겸 6번타자, 4차전은 선발 2루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1타수 2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182, 출루율 .30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비록 안치홍이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망했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 3할을 때려내면서 맹활약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3.4.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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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즌이 끝나고 사령탑이 선동열 감독 - 이순철 수석코치 체제로 바뀌면서 코치진에 의해 안치홍을 3번 타순 키 플레이어로 중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이에 KIA 팬들이 2010 시즌의 악몽을 떠올리면서 과연 잘 할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2011 시즌에서는 3번 타순에 있었을 때 .368 1홈런 6타점(38타수 14안타)을 기록하였지만... 아무튼 이제 막 4년차에 접어드는 어린 키스톤 플레이어에 중책을 맡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듯.

이후에는 선동열 감독이 '공격적인 야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안치홍을 1번 타자 이용규와 함께 테이블 세터진을 구성한다는 방안까지 나왔다. 2번 타석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선빈, 신종길이나 2009 시즌 2번타자로 나왔던 김원섭 등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SK의 정근우가 다시 2루수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칼을 갈면서 각 팀간의 2루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데다 2012년 정초부터 불거져 나오는 악재 소식이 겹쳐지면서 사실상의 KIA 타이거즈의 간판타자로 부각시키려는 프론트나 여론의 움직임으로 인해 프로 4년차인 안치홍의 어깨가 매우 무거워지고 있다.

4년 연속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경기 초반부터 결정적인 수비실책을 저지르는 등 KIA 팬들의 속을 뒤집는 일을 벌였다. 하필이면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의 수비 불안이 2012 초반까지 이어진 것. 거기에 개막전에는 무안타. 그나마 다행이라면 개막전을 제외하고는 연속 안타를 치고 있으며 3번 타자로써의 역할은 어느 정도 하는 중. 다만 박빙 상황에서의 득점권 타율은 여전히 좋지 않다. 여담으로 2012 시즌 KIA 타이거즈의 마수걸이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 미치 탈보트 상대. 그러나 해당 경기는 졌다.

4월 한달간의 성적은 타율 0.299 20안타 7타점 1홈런. KIA 타자들 중 4월의 수위타자이다. 사실상 빈타에 허덕이던 4월 김기아 타선을 지탱한건 안치홍과 최희섭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4월 말까지는 3할대를 유지하던 타율이 결국 2할9푼대로 떨어졌다.

4월 말 약간의 타격감이 하락하였지만, 넥센 심수창 선발 전을 전후로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심수창이 선발로 나왔던 경기에서는 5타수 5안타(1홈런) 5타점을 기록하였다. 타격 상승세에 힘을 입어 5월 초에는 김선빈과 함께 공포의 키스톤 콤비. 공격진을 구성하고 있다. 심지어는 '김기아' 타선이라 불릴 정도의 빈타에 시달리는 기아 타선에서 홈런 3개로 나지완이나 최희섭보다도 더 많은 홈런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후로 김선빈과 더불어 팀의 몰락에 기여한다는 비판을 받는 중. 사실 4월에 잘했던 걸 생각하면 정신적 부담감과 대체할만한 선수가 없는 2루수의 현실때문에 급속도로 체력저하가 왔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범호가 복귀하면서 3루수로 나섰고, 3루를 보던 윤완주가 2루 백업으로 들어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김선빈보다는 조금 나은편이다. 하지만 아직은 덜 돌아왔는지 5월 20일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 직전에 대타로 나왔지만 허망한 타격으로 연패를 늘리는데 일조했다.

허리 부상과 체력 저하로 인해 한때 3할에 육박했던 타율이 2할 6푼 후반대까지 급하락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김기아 타선에서는 그나마 하는 타자라서인지, 6월 19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는 오승환 정현욱에게 고의4구로 걸러지는 위엄을 누리기도. 물론 이 날은 안치홍이 첫 타석 초구 플라이 이후 3연속 안타를 기록하면서 KIA 타선 중에서는 컨디션이 최고조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고, 고의4구 당시 앞-뒤 타석이(6번 타선) 5번 김주형( 최희섭 교체) - 7번 이준호( 나지완 교체)였기도 했다.

6월 26일 히 드랍 더 볼 #

올스타전에서는 동군의 승리에 기여를 하는 결정적인 수비실책(기록은 내야안타로 기록)을 범하면서 서군(KIA, LG, 넥센, 한화) 팬들에게 까임을 당하였다. 마지막에는 양의지와의 묘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

후반기 들어 타율이 3할을 밑돌고, 중요할 때마다 실책을 저지른다는 이유로 틈만 나면 까였다. 본명보다 개치홍이라고 불릴 때가 더 많을 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러브 2루수 유력후보로 떠올랐다. 정근우도 예년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냈고[12], 조성환은 서서히 노쇠화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으며, 고영민은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2군에서 보냈다. 그 외 다른 팀들은 주전 2루수라 할 만한 선수가 딱히 없을 정도로 팀내 경쟁이 치열했다. 그나마 신인왕 서건창이 강력한 라이벌로 꼽혔고, 결국 신인왕의 임팩트 덕인지 2012년 2루수 골든글러브는 서건창이 획득했다.

작년에 비해 실책성 플레이가 아쉬운 한해였지만, 그래도 KIA 타선 내에서의 수훈공로를 인정받아(0.288 3홈런 64타점으로 팀내 타점 1위에 오른다) 1억 2,500만원에서 60%가 오른 2억원에 재계약, 그나마 안치홍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시즌 종료 후 장타력을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3.5. 2013 시즌

파일:201303161446771318_51440a9fba6aa_59_201303161502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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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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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경찰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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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탈락 이후 경찰 야구단에 원서를 넣었다.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안치홍이 선동열 감독에게 입대 의사를 밝혔는데, 선동열 감독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공시라는 말까지 꺼내면서 KIA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 참고로 임의탈퇴 공시되면 군 팀에 입단할 수 없다. 지금까지 국제 대회에서 발탁되지 못해 군 면제 기회조차도 잡아보지 못한 안치홍이 입대마저 맘대로 못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안치홍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정상적으로 입대하였으나, 이 때문에 선동열에 대한 앙금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팬들의 우려가 제기되는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언급하며 안치홍을 압박한 시점이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 직후였기 때문에 KIA 팬 중 이미 선동열 감독은 재계약을 통보받았거나, 애초부터 5년 계약이었을 거라는 확신을 한 사람이 늘었다. 만약 경질 예정이었다면 안치홍의 거취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10월 25일에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아무래도 위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퇴 발표 후 선동열 감독의 해명에서 ' 임의탈퇴 공시'라는 말을 꺼낸 것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안치홍 본인은 처음으로 받은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군 팀에 가고 싶어서 재검을 받았다고 한다. 군 팀에서 뛰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2년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사회복무요원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고. 실제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가게 되면 사실상 주말과 평일 저녁 말고는 야구 연습을 할 기회가 없으므로 현역 판정을 받아 퓨처스 리그에서 뛰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이때 군 입대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편. 국가대표에 승선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때에 맞게 FA 대박도 노려볼 수 있었지만 첫 FA를 커리어 로우에다가 엄청난 FA 한파가 몰아친 2019년에 받게 되었고, 이는 결과론적인 일이지만 KIA를 떠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선동열은 나지완처럼 안치홍에게도 국가대표로 병역특례를 받을수있는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임의탈퇴까지 언급하면서 막았던걸로 추측되며 실제로 2018년 선동열호에 뽑고 우승하면서 안치홍 입장에선 결과론이지만 더 아쉬워졌다.

경찰 야구단에서는 고교 시절 등번호였던 13번을 달게 되었다. KIA 입단 때도 달고 싶었지만 홍세완이 이미 쓰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경찰 야구단에서 8번을 단 선수는 입단 동기인 전준우.[13]

2015년 대만 전지훈련에서 치질 수술을 받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KBO 퓨처스리그에 들어서는 괜히 1군 주전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67경기에 나와 209타수 81안타, 10홈런, 타율 .388, 60타점으로 절륜한 타격 성적을 보여 주었다. (7월 13일 기준) 특이한 사항은 1군 주 포지션이었던 2루수 이외에도 가끔 유격수 1루수 수비도 나온다는 것.

5월 22일에는 경찰 입소 후 처음으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무등 야구장[14]을 찾아서 KIA 타이거즈 2군과 3연전 중 2연전 경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기태 감독, 조계현 수석코치, 김상훈, 유동훈 코치와 만났고, 다른 날에는 허영택 KIA 단장과도 만나면서 군 복무 중에도 구단 차원의 관심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이날 마침 1군도 삼성 라이온즈와 홈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홈 팬들의 관심이 컸다.

6월 22일 체온이 38.5도까지 올라 메르스가 의심되어 인근 한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검진결과 편도염으로 진단받았다. 이어 안치홍은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하여 경찰청 유승안 감독 및 이 소식을 접한 팬들에게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였다. 경찰청 안치홍, 메르스 의심에 '깜짝'...편도염 진단 그럼에도 그 다음날에 출전을 강행하여 벽제 야구장에서 열린 KIA 2군과의 홈 경기에서 팀 선배 한기주에게 삼진을, 임준혁에게는 안타를 날리기도 했다.

이 포스트에서 동료 나지완에 대한 걱정을 남기기도 했다.

2015 퓨처스리그가 종료된 시점에서 안치홍은 91경기 326타석에서 .359/.451/.585, 12홈런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많은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후반기 들어서 지친 모습을 보이면서 타율이 깎이긴 했지만 비교적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1군 주전 선수였던 만큼 당장 퓨처스리그를 폭격하는 것보다는 실전감각 유지가 우선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벽제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것치고는 홈런이 뜻밖에 많이 나오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시즌 후 인터뷰에서는 어깨가 좋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많이 부진했었다고 밝혔다. 훗날 유승안 감독의 이야기에서도 입단 당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잔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2016 시즌 퓨처스리그 개막 때에는 골반 통증 문제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가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경기에 나섰다. 복귀 이후에는 잔부상을 털어내고 본래 클래스를 발휘한 덕분인지 다시 한번 퓨처스리그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퓨처스 시즌 종료 기준으로 59게임 출장 166타수 71안타 57타점 48득점 7홈런에 타율 0.428을 기록했다.

3.8.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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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전역했다. 전역한 뒤 인터뷰를 통해 "해외에 다녀온 선수도 아니고, 이제 군 복무를 마친 선수인데 너무 크게 부각이 돼 부담이 되는 측면은 있다. 반대로 팬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9월 4일 엔트리 복귀가 확정되었다. # 그리고 당일 선발 라인업에 1번타자 2루수로 선발출장한다.

다른 입대 선수들보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다. 같이 전역한 홍상삼이나 전준우는 안치홍보다 그다지 꿇릴 게 없는 성적인데도, 그 둘보다 스포트라이트가 훨씬 더 집중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불펜투수나 외야수와 주전 내야 키스톤의 가치는 꽤 차이가 크다. 더군다나 팀 또한 각각 화수분 두산과 외야자원이 꿀릴 게 없는 롯데인지라...

복귀전에서 안타는 치지 못했지만 볼넷 2개를 골랐고, 8회초 손아섭의 날카로운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하는 호수비를 했다.

9월 6일, 멀티 히트 게임이었지만, 호투하던 메릴 켈리에 밀려 팀은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9월 9일 1군에 등록된지 5일만에, 우측 내전근 손상 1군 말소 되며 사실상 시즌 아웃이다.

9월 22일 기사로는 회복이 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신중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리고 9월 27일 LG전에서 복귀해 2년만에 김선빈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공수에서 거하게 삽을 펐다.

10월 3일 kt전에서도 무안타다. 심지어 1회 빅이닝을 이어가는 와중에 병살을 치면서 공격에서 완전히 삽을 푸고 있다. 같은 경기에서 김선빈은 5타수 3안타의 맹활약을 한지라 더욱 비교되는 부분이다. 다만 수비 부문에선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평가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아쉬운 타격감을 보이며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었다.

3.9.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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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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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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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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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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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시즌에 엄청난 득점권 타율로 해결사 역할을 했던 것에 비해 5월 14일까지 득점권 타율 0.159로 매우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홈런도 1개 뿐이고 5월 14일까지 순장타율이 0.063으로 그야말로 똑딱이 타자가 된 상황. 그 와중에도 3번 타자 붙박이로 출장 중인데 해결사 역할을 영 못해주다보니 스스로 FA 가격을 깎는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김선빈과 몸무게가 많이 증가하여 순발력이 떨어져서 수비에서 문제를 보이는 등 리그 최고의 꼬꼬마 키스톤에서 리그 최악의 키스톤 콤비가 돼가고 있다.

그러던 와중, 5월 15일 자로 부진과 재활로 2군을 간 김주찬을 대신하여 주장이 되었다.

주장이 돼서인지, 김기태가 나가서인지, 5월 중순 이후 급격하게 살아나고 있다. 5월 31일 기준 타율이 0.320(7위)으로 급상승했다. WAR도 1.36으로 10위권 이내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팀 내에서는 최형우와 함께 WAR이 가장 높다.

단, 10개 구단 야수들의 진짜 실력을 드러내고 있는 19시즌의 탱탱볼 검증은 그 역시 통과하지 못했다. 중거리 타자로 작년까지의 장타력은 탱탱볼 덕분임이 드러났다.

피로누적 탓인지 계속 지쳐하는 모습이 보인다.사실 몇 년간 계속 주전 2루수[15]로 별 백업 없이 나왔는데[16]체력이 달리지 않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그렇다고 은퇴 직전의 서동욱과 성장이 더딘 최원준에게 2루를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팀 사정상 계속 이렇게 나온다고 보면 된다. 구단측에서 이러한 상황을 인지했는지 2019 시즌 후 나주환을 영입했다.

지난 시즌들과 달리 주자로서의 가치도 최하급이다.[17]벌크업 여파로 스피드가 크게 감소한 것도 있지만 거의 도루 자체를 시도하지 않고 있으며 주루사 비율도 2점대 중반이었던 지난 시즌과 달리 5점대까지 올랐다. 더 이상은 과거와 달리 믿고 맡길 수 있는 주자로 보긴 힘들지도.

9월 3일 한화전에서 1경기 2실책을 저지르며 경기를 터트릴 뻔했고, 3회말 2번째 실책 이후 문책성 교체되었다.
나중에 손가락 부상을 달고 뛴 게 뒤늦게 알려졌고 그걸 참고 뛰었다가 통증이 점점 심해져 9월 6일 경기선 한 타석만 소화하고 교체되었으며 다음날인 9월 7일에 1군에서 말소되며 완전히 시즌 아웃되었다. 참고로 이 손가락 부상은 지난 6월 21일 잠실 LG전에서 3루 베이스를 터치하다 오른손 중지가 꺾인 거라는데 주장이란 사명감 때문에 그걸 여태 참으면서 경기를 소화했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커리어로우급 시즌인 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게 개판인 주자가치도 문제지만 바빕이 투고타저임에도 0.335이다. 투고타저 여파로 리그 평균이 3할대 초반으로 좀 떨어졌지만 본인만 급격히 오른 것으로 이말인즉슨 상당한 운+안치홍 개인의 기량+FA로이드가 합쳐져서 역대급 시즌을 내도 모자랐다는 말이 된다.[18]

9월 8일 조부상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시즌 내내 손가락 부상 등 잔부상으로 고생한 면도 있어 결국 같은날 우측 중지 부상을 이유로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다. #

FA 직전 시즌을 보낸 것 치고는 전반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남겼는데, 바로 직전 시즌이 커리어하이에 가까운 시즌이라 비교가 되어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 시즌 105경기에 출장해 타율 .315 5홈런 49타점을 기록했는데 장타율이 개인 통산 성적에도 미치지 못하는 .415에 그친 것이 뼈아팠다. 수비수로서도 손가락 부상 및 누적된 피로 영향인지 상당히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팀 내에서 이런 아쉬운 모습을 보인 안치홍보다 홈런개수가 많은 타자는 나지완, 이창진, 프레스턴 터커, 최형우. 이 넷이 다였다. 그들 중 홈런 10개라도 넘긴 타자는 최형우 1명 뿐이었고...

3.12. 1차 FA

원소속팀 KIA 타이거즈와 협상했으나 지난 시즌의 아쉬운 성적 탓인지 계약하는데 지연이 되고 있다. KIA 측은 어떻게든 잡겠다는 입장이지만 계약 조건을 새해가 돼서야 제시하는 등 진전이 안되던 상황.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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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6일, 2+2년 최대 56억에 롯데 자이언츠을 발표하면서, 모든 야구 팬들에게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기사 또한 계약 세부내용이 전례 없이 독특한데, 상호 계약 연장 조항(Mutual Option)[19][20]이 포함된 계약이다. 우선 2년(2020-21) 보장 21억 최대 26억 원[21]이 정해져 있고, 2021시즌 종료 후 구단과 선수 측이 모두 함께 하기를 동의할 경우 2년(2022-23) 최대 31억 계약이 발동되면서 총 4년 최대 56억 계약이 된다. 대신 어느 한 쪽이라도 거부하는 경우엔 바이아웃 1억을 받고 자유계약선수가 될 수 있다.[22] 이예랑 에이전트의 제안을 성민규 단장이 수락한 결과라고 한다.

롯데 팬들은 성민규 단장을 다시 한번 찬양하며 환호하고 있고 KIA 팬들은 설마설마했는데 안치홍을 못 잡았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당장 안치홍의 롯데행 소식이 뜨자마자 바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고,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 서버가 잠시 폭발했다. 다른 팀 팬들도 충격적인 이적이라는 반응.[23]

안치홍은 2루수로서 가치를 인정해 준 롯데를 선택했다고 하며 계약과 동시에 그동안 KIA 팬분들께 감사했다는 자필 편지를 남겼다.
안치홍의 자필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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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치홍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 처음 발을 딛은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지만 제 고향은 광주라고 느껴집니다.
타이거즈팬 여러분의 사랑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결정을 전하는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롯데로 옮긴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제가 했던 20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새벽 복잡한 마음에 혼자 집을 나가 걸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해도 타이거즈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이 저였다는 점에 죄송함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지금까지 제게 주신 성원과 사랑에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타이거즈에서 만들었던 추억은 정말 무수하게 많네요.
우승도 두 번이나 했고, 골든글러브도 수상하고 팬분들의 사랑 덕분에 올스타전도 여러번 나갔습니다.
팬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 모든것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신 KIA 타이거즈 팬들과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팀에서 뛴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설레임과 많은 감정들이 공존합니다.
믿음으로 다가와주시고 방황하던 제 마음을 잡아주신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실한 모습과 좋은 성적으로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열정적인 롯데팬들께 기쁨을 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뜨거운 사직구장에서 제 모든 것을 불태워보겠습니다.

2020년 1월 6일
안치홍 드림

4.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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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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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후 첫 해에는 이름값과 몸값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

4.2.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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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부상은 다소 아쉬웠지만 기대 이하였던 작년과 달리 3년만에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고 전체적으로 지표가 향상되면서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투표 3위를 기록해 안치홍의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한 시즌이 되었다.

시즌 중에 롯데와의 2년 최대 31억원의 연장 계약에 합의하며 2023년까지 롯데에서 뛰게 되었다.

4.3.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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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 굉장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후반기 부진이 옥에티였던 시즌이었다.

4.4.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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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FA를 앞둔 시즌으로, 거의 대부분의 지표에서 전준우와 함께 공격지표를 양분하였다. 그리고 롯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4.5. 2차 FA

2023 시즌 후 2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여전히 2루수 상위권 타격성적, 괜찮은 2루 수비에 1루수로도 뛸 수 있고 주장까지 역임한 베테랑 내야수로 내야가 부족한 팀에서는 준수한 자원이고, 롯데 입장에서도 안치홍이 이탈하면 마땅한 2루수 자리가 없는 지라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24]

11월 20일, 베이스볼코리아에서 단독으로 안치홍의 한화 이글스 행이 근접했다고 보도했고 구체적인 금액은 옵션을 포함하여 70억 이상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한화 이글스와 4+2년 총액 72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되었다. # 4년간 보장 47억원, 옵션 8억원 등 총액 55억원의 계약을 이행하며, +2년 계약에 대해서는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선택권이 부여되는 뮤추얼 옵션이 발동되어 계약 연장 시에는 2년간 보장 13억원과 옵션 4억원 등 총액 17억원 계약이 실행된다. 이로써 안치홍은 4시즌 만에 또 다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안치홍 계약 현장 풀버전

롯데 팬들은 당장 2루수 공백은 큰 우려가 되지만 저 정도 금액과 기간이라면 못 잡을만했다는 반응[25]과 아직 폼이 급락하지는 않을 나이인 안치홍에게 4년 47억도 아깝냐는 반응이 공존하고 있다. 다만 야구부장이 롯데가 샐러리캡 때문에 한화의 오퍼를 못 따라갔다고 언급했으며, 한화 역시 롯데의 샐러리캡 상황을 파악하고 공격적으로 공략하면 전준우와 안치홍 중 한 명을 잡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이를 공략했다고 언급했다.[26]

이로서 롯데는 2루수를 FA,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보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아니면 박승욱, 고승민, 정대선 등 팀 내부 자원들로 내년 시즌 2루를 운영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에서 오선진 최항을 데려오며 급한 불을 껐다.

롯데는 이후 25인 보호명단을 전달 받았으나 보상선수를 받는 대신 보상금 10억 원을 선택했다. 이후 2024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롯데가 한화의 오선진을 지명하면서 롯데 입장에선 안치홍의 이적으로 보상금 7억과 오선진을 보상선수로 받는것과 마찬가지가 되었다.[27] 아무래도 롯데 측에선 안치홍의 보상선수로 오선진을 픽할 생각을 했던 찰나 2차 드래프트에서 뽑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안치홍의 현재 등번호인 13번은 한화에서 최재훈이 쓰고 있고, KIA 시절 등번호인 8번은 후배지만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맡고 있는 노시환이 쓰고 있기 때문에 프로에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등번호를 사용할 것으로 보였고, 등번호 3번을 고르게 되었다.[28]

5. 한화 이글스

5.1.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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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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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국가대표 경력

6.1. 국가대표 잔혹사

고등학교 시절에는 청소년 대표팀에 두 번이나 뽑히며 유격수 5인방에 이름을 올리는 활약을 했지만, 정작 프로에 와서는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다. 데뷔 이후 몇 차례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탈락, 불운을 맛봐야 했다.

6.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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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사사구
6 21 8 1 0 0 5 4 0.380 0.440 0.428 0.868 1 0 3

그간 국대와는 인연이 멀었던 안치홍은 2018 KBO 리그에서의 맹활약으로 데뷔 10년만에 성인 국가대표에 승선하게 되었다. 다만 이번엔 성적을 떠나서, 당시 커리어 하이였던 2014 시즌에 뽑혔을 수도 있었음에도 멀티 포지션 내야수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승선하지 못하여 경찰 야구단에서 병역을 해결한 뒤에서야 뒤늦게 국가대표에 승선시킨 것과 몸상태가 수비 및 주루를 하기에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번 대회의 감독이 군 문제 해결을 놓고 트러블이 있었던 선동열이라는 점에서 팬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 데에서 터졌으니, 4년 전에는 멀티 내야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발탁되지 않았는데 4년 뒤인 2018년에 갑작스레 김하성, 오지환의 건강상 문제로 인해 주 포지션이 아닌 3루 수비를 보게 되었다. 또다른 백업 내야수이자 2루 백업으로 발탁된 박민우도 2루 수비만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루키 시즌 3루 수비를 본 적 있다는 이유로 3루에 투입된 것.

여기에 홍콩전에서는 헤드샷까지 맞는 등, 드러나지 않은 꾸준한 활약을 계속 보이면서 국대 타선을 이끌며 안치홍 개인에게는 잊지 못할 최고의 국가대표 참가였지만 본인이 아닌 국대 엔트리 구성 및 기대 이하의 성과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첫 성인 태극마크의 기억이 본인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7. 수상 경력

7.1.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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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의 KBO 수상 경력
2009 한국시리즈 우승 / 웨스턴 올스타(베스트10) / 미스터 올스타
2010 웨스턴 올스타(베스트10)
2011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웨스턴 올스타(베스트10)
2012 웨스턴 올스타(베스트10)
2014 웨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7 한국시리즈 우승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18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23 드림 올스타(베스트12)

7.2.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안치홍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18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7.3. 기타

안치홍의 기타 수상 경력
2010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선행상
2018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조아바이톤상

8.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안치홍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2009 KIA 123 415 87 13 4 14 53 38 8 32 103 .235 .297 .404 .701 69.5 0.67
2010 133
(1위)
537 134 21 3 8 79 50 18 49 96 .291 .365 .401 .766 101.9 3.24
2011 115 433 119 21 4 5 54 46 9 33 55 .315 .373 .431 .804 117.0 3.28
2012 132
(4위)
558 141 31
(5위)
2 3 60 64 20 42 74 .288 .347 .378 .726 105.6 3.72
2013 118 484 103 15 0 3 56 39 16 52 74 .249 .338 .307 .644 78.4 1.61
2014 126 479 147 31 2 18 65 88 19 33 65 .339 .390 .544 .934 133.4 4.55
2015 군복무 ( 경찰 야구단)
2016 10 43 8 2 0 0 3 1 0 5 8 .222 .310 .278 .587 46.4 -0.13
2017 132 545 154 29 2 21 95 93 7 43 70 .316 .373 .513 .886 123.0 4.39
2018 130 549 169 38
(5위)
1 23 88 118
(5위)
5 36 57 .342
(5위)
.392 .563 .954 140.3 4.98
2019 105 408 114 18 1 5 45 49 4 40 37 .315 .380 .412 .792 123.3 2.84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2020 롯데 124 460 118 28 0 8 49 54 14 35 47 .286 .351 .413 .764 99.1 2.01
2021 119 490 129 30 2 10 58 82 3 52 58 .306 .379 .458 .838 124.3 3.45
2022 132 562 140 27 3 14 71 58 7 51 52 .284 .354 .436 .790 117.2 3.24
2023 121 494 124 20 1 8 57 63 3 49 53 .292 .374 .400 .774 119.1 2.85
KBO 통산
(14시즌)
1620 6457 1687 324 25 140 833 843 133 552 849 .297 .363 .437 .800 110.9 40.69


[1] Outstanding Defensive Player. [2] 중3때 인창중에서 대치중으로 전학갔기 때문에 1차지명 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2차 전체 1순위로 기아로 입단했다. [3] 그리고 이종범을 3루수로 투입시켜보지만, 한 시간도 못 가 포기하고 결국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김상현 박기남을 얻어온다. [4] 이미 이전에 2루에 손지환, 김형철 등을 기용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 때는 누구도 나이든 김종국을 밀어내지 못했지만. [5] 이용찬(3년차), 고창성(2년차), 홍상삼(2년차), 김민성(3년차) [6] 정확하게 말하면 공정성의 시비가 아닌 기자들의 투표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스탯을 기준으로 투표를 하는 개념 있는 기자들은 정근우와 신명철로 나눠지지만 임팩트를 기준으로 투표하는 개념 없는 기자들의 표가 안치홍에게 몰린 것. 이는 2010 시즌 박경완의 골든글러브 논란과 비슷한 경우다. [7] 다만 고졸 루키가 데뷔 첫해에 주전 2루수+ 최연소 올스타 선정+ 최연소 올스타 MVP+ 최연소 한국시리즈 홈런이라는 다시는 나오기 힘들 임팩트를 자랑하기는 했다. [8] 2021년 기준 깨진 건 아직 최연소 올스타 선정( 이정후, 2017) 하나다. [9] 득점권 병신의 준말.. 득점권 타율이 낮아서 붙여진 별명 [10] 이후 10대 나이에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는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2018년에 강백호가 6번째 선수가 됐다. [11] 정확히는 2군(퓨쳐스 리그)행이 아닌 3군(재활군)행이다. 성적은 좋았지만 허리 통증으로 수비나 타격이 어려웠기 때문에 김원섭과 함께 말소되었다. [12] 꾸준히 3할을 찍어주던 타율이 .266까지 떨어진 게 크다. [13] 여담으로 전준우는 입단 초기 등번호 13번을 사용하기도 했다. [14] 이날은 2군 홈 구장인 기아 챌린저스 필드가 공무원 사회인 야구 경기를 위해 대관하면서 함평구장을 쓸 수 없었기 때문. 일요일 경기는 정상적으로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경기를 가졌다. [15] 유격수, 포수, 2루수 등을 합쳐 센터라인이라 하는데,이 라인은 수비 부담이 큰 라인이라 준주전급이라고 인정받는 백업을 두는게 상식이다. [16] 경찰청 때부터 계속 주전 2루수로 나와 제대하고 얼마 안되어 김민우가 은퇴해 버렸다. 그 후 굳이 찾자면 류승현, 황윤호, 유재신이지만 준주전급인 류승현, 유재신도 풀타임 2루수감은 아닌데 황윤호는.... [17] 8월 17일 기준 RAA 수치 -0.32 [18] 성적 비슷한 김선빈은 2할 9푼대의 바빕이라 운이 없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안치홍은 보시다시피 투고타저에서 이례적으로 상당한 운이 따랐다. [19] 언론에서 옵트아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는데, 옵트아웃으로 보기는 힘들다. 옵트아웃은 보통 보장된 기간 중간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지만 이번 계약은 2년 동안 활약한 뒤 계약을 다시 '추가'할 수 있는 권리이다. 만약 옵트아웃이라면 그냥 '4년 최대 56억에 2년 후 옵트아웃 조항 삽입'이라고 나왔어야 맞다.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정반대인 '옵트 인'에 가까운데 왜 옵트 아웃이라 기사화되고 있는지는 의문. [20] 다만 KBO리그는 FA 계약시 새 소속팀에 4년 이상의 보류권이 보장되는데, 안치홍의 계약에는 이걸 취소하고 빠져나올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4년 보류권을 끊고 나온다'에 초점을 맞춘다면 옵트아웃이라고 생각해도 완전히 틀린 것은 또 아니다. FA계약이 끝나도 FA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KBO리그의 특성 때문에 생긴 혼동으로 봐도 될 듯. [21] 계약금 14.2억원, 연봉 2.9억원, 옵션 5억원, 바이아웃 1억원. [22] KBO 규약상 자유계약선수와 FA(Free Agent)는 다른 개념을 지닌다. 안치홍이 2021 시즌 종료 후 얻게될수 있는 자유계약선수 신분은 FA 제도에서 요구하는 보상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이적에 어떠한 제한도 없다. # 다만 시장에 나갈 경우 다년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다. 1년 계약씩 2번을 맺은 뒤에 다시 FA 권리를 얻게 된다... 였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안치홍 측이 비 FA선수도 다년계약이 가능하다는 KBO측의 유권해석을 얻어냈다. 비록 본인은 상호옵션을 발동하면서 이 유권해석의 수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23] 그리고 이번 FA로 KIA-삼성-롯데간 프랜차이즈급 선수들의 삼각 트레이드가 완성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KIA는 2017년에 삼성에서 최형우를 영입했고 삼성은 2018년에 롯데에서 강민호를 영입했고 롯데는 2020년에 KIA에서 안치홍을 영입했기 때문. 물론 노린 건 아니었겠지만 우연히 세 팀끼리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2022년에 KIA가 NC의 프랜차이즈였던 나성범을 영입하고 NC가 롯데의 프랜차이즈인 손아섭을 영입하면서 또다시 의도치 않은 FA 삼각 트레이드가 성사되고 말았다. [24] 안치홍이 이탈하면 그동안 백업으로만 출장한 박승욱, 노망주 길로 접어드는 김민수, 2019년 이후로 외야로 전향했다가 다시 2루수도 도전 중인 고승민,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 2루수도 일단 볼 수는 있는 이학주, 아직 신인에 불과한 정대선 정도 있는 상황이다. [25] 당장 작년에 FA로만 170억을 넘게 쓴데다가 박세웅까지 장기계약으로 잡으면서 260억을 소모해 샐러리캡 자체가 빡빡해졌고 여기에 다음 시즌 핵심 불펜인 구승민 김원중이 풀리는 상황이라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고 보는 시선도 많다. [26] 실제로 한화가 전준우에게도 앞자리가 다른 오퍼를 넣었다고 했지만, 전준우는 잔류를 택했다. [27] 왜 7억이냐면 2차드래프트로 타팀 선수를 지명하면 원소속팀 구단에게 보상금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이다. 오선진이 2라운드에서 지명되었기 때문에 한화는 보상금 3억을 받는다. [28] 3번은 롯데 시절 사용한 13번에서 1을 뺀 번호이기도 하고, 기아 시절 같이 키스톤을 맡았던 김선빈의 등번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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