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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안정환의 국가대표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차범근호, 허정무호 1기
1997년에 있었던 중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처음 선발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다음 해의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1999년 코리아컵 멕시코전에서 A매치 첫 득점을 성공했다.[1]3. 히딩크호
2001년 거스 히딩크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기 직전에 관전했던 2000년 12월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안정환은 한국의 공격을 이끌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월드컵 체제에 들어서면서 히딩크는 안정환을 일종의 밀고 당기기와 길들이기를 거쳐서 히딩크호에 적응시켰다. 훗날 히딩크가 자서전에 언급한 바로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반응하는게 꼭 호마리우와 비슷하다고. 또한 히딩크는 당시 안정환을 스타 의식에 젖은 선수로 판단하여 처음에는 일부러 외면했다고 한다.[2]그러면서 안정환은 히딩크호에 완벽하게 녹아들면서 대표팀 공격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2002 FIFA 한일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날카로운 중거리 슛과 1대1 상황에서 감각적인 칩샷으로 2득점과 1도움을 하면서 한국의 4-1 대승을 이끌었다.[3] 이 때,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손꼽혔던 윤정환과의 콤비 플레이는 일명 "투정환 전술"이라고 불리면서 지금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4]
3.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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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박항서 스태프
핌 베어벡 ·
정해성 ·
김현태 ·
압신 고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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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새긴 판타지스타 |
2002 FIFA 월드컵
한국 /
일본 - 16강전 :
대한민국 vs
이탈리아 연장 후반 12분 (117분) 골든 골(역전골) 득점 장면. 2002년 6월 18일 화요일 22시 55분, 대전 월드컵 경기장. |
미국전 동점골 직후 오노 세리머니 |
2차전 피파랭킹 13위 미국과의 경기에서 헤딩으로 동점골을 득점하며,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 상 북중미팀에 첫 승점을 획득하였고, 안정환은 국민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김동성을 연기하면서 펼친 오노 세레머니는 덤.
3차전이었던 포르투갈전에선 선발로는 처음으로 나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후반 역습상황에서의 1대1 찬스를 넣지 못했다는 게 다소 아쉬웠지만 상관없이 한국은 1-0으로 승리, 16강 진출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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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서도 선발로 나왔고 전반 초반에 크리스티안 파누치의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찼으나 잔루이지 부폰의 선방에 막히며 실축하고 말았다. 다만 페널티킥을 차기 전에 이탈리아 수비수인 마르크 율리아노가 먼저 페널티라인을 침범하는 반칙을 범했음에도 주심이 보지 못하면서 안정환은 페널티킥을 다시 찰 수 있는 기회를 못 받았다.[6][7][8]
전반 18분에 터진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 이후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를 좀처럼 공략하지 못해 패색이 짙어지던중 후반 88분에 터진 설기현의 천금 같은 동점골로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고[9], 연장전 후반 종료 직전 파올로 말디니와의 공중볼 경합을 이겨내고 헤딩으로 극적인 골든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최초 월드컵 8강 진출을 견인했다. 이 골은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를 바꾼 골이자 FIFA 월드컵의 이변으로서 거의 반드시 꼽히기도 하며 안정환 커리어에서 가장 역사적인 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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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준결승전(8강전)인 스페인전에서도 선발로 나와서 풀타임+연장전까지 소화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반 엘게라에게 팔꿈치로 뒤통수를 얻어맞거나, 페르난도 이에로에게 가슴팍에 쿵푸킥을 얻어맞는등 경기 내내 스페인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고생했으나, 주심은 페널티킥도 안주었고 경고/퇴장도 없이 넘어가면서 대한민국은 스페인에게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운재의 활약과 스페인 선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으로 실점하지 않고 승부차기로 갈 수 있었다.
승부차기에서는 네번째 키커로 나와서 골을 성공시켰다. 16강 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중앙을 노려서 넣었는데[10], 꽤 대단한 담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호아킨 산체스의 실축과 주장 홍명보의 골로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전(4강전)인 독일전에선 후반 교체로 들어가서 독일 수비진을 괴롭혔지만 팀은 안타깝게 패배,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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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위 결정전이었던 터키전에서는 선발로 나와서 경기 내내 중거리슛을 여러번 날리며 공격진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였고 상대팀의 골망까지 갈랐으나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인해 골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 득점 장면은 2005년에 개정된 오프사이드 룰 기준이었다면 인정되었을 골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안정환에게 패스가 갈 때 이천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어서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이천수의 위치는 안정환이 패스를 받는 데 전혀 관련이 없으므로 2005년에 개정된 오프사이드 기준으로는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을용, 송종국이 골을 넣으며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했지만, 하칸 쉬퀴르, 일한 만시즈의 연속골과 뤼슈튀 레츠베르 골키퍼의 선방쇼로 결국 3-2로 패하며 4위에 만족해야 했다.
히딩크호의 번외편과 같았던 2002년 11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했다.[11]
4. 코엘류호
2003년 5월 한일전 원정에서 결승골을 넣은 후 세레머니를 하는 장면. 한 달 전 홈에서 일본을 상대로 1-0으로 패배한 우리 대표팀은 안정환의 이 골에 힘입어 원정에서 1-0으로 이기며 복수에 성공했다.
코엘류호는 2003년 출범 직후 경기력은 좋았지만 심각한 득점력 부진에 시달렸다. 위에 언급된 안정환의 득점이 코엘류호 출범 후 3경기 만에 나온 득점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안정환은 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였고, 코엘류 감독 또한 안정환의 능력을 매우 신뢰하여 부임 기간 동안 안정환을 주전 공격수로 낙점했다. 코엘류호 출범 후 4번째 경기이자 2002 한일 월드컵 1주년 기념 경기인 우루과이전에서 0-2로 패하자 아르헨티나와의 친선전을 앞두고 당시 육군 훈련소에서 월드컵 병역 특례로 인해 군사 훈련 중이던 안정환을 차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고, 결국 사상 초유의 군사 훈련병이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일이 발생한다. 비록 교체 카드를 다써서 안정환이 투입되는 일은 없었고 팀도 졌지만 이는 코엘류호의 무력함과 안정환의 위엄을 동시에 나타내는 에피소드이다.[12][13]
코엘류감독은 안정환을 포르투갈의 루이코스타와 비교 했고 "박지성과 안정환 중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의 선수를 선택한다면 당연히 안정환" 이라며 말한것은 안정환을 매우 신뢰했음을 알 수 있다.
5. 본프레레호
본프레레 감독은 주로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을 중용하여 기술은 있으나 신체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점차 밀려나면서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부임 이후 한동안 대표팀과 멀어져있던 이동국을 주전 원톱으로 중용하면서 안정환은 후반 조커로 주로 기용되었다. 초반에 이동국과의 투톱도 사용했으나 생각만큼의 시너지 효과가 없자 다시 원톱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본프레레호 이후부터 안정환은 대표팀 주전 공격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5.1.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16개국 본선에서는 16강 조별리그 2차전과 3차전인 UAE와 쿠웨이트전에서 각각 한 골씩을 넣었다. 안정환의 아시안컵 참가는 이 대회가 유일했는데, 국대 커리어 내내 여러 사정이 작용하여 아시안컵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14]6. 아드보카트호
6.1. 2006 FIFA 월드컵 독일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스태프
압신 고트비 ·
홍명보 ·
정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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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독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 토고전에서 후반전에 박지성이 수비수를 유인하여 흘려준 공을 받아 노마크 상태에서 역전 중거리슛 결승골을 득점하며 첫 원정 월드컵 승리를 이끌었다. 동영상 이어 본선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전에서는 후반 교체로 나와서 경기 내내 밀리던 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히딩크 감독의 평가대로 그야말로 5단 기어 같은 활약. 박지성의 동점골 과정도 사실 중원에서 안정환의 감각적인 원터치 윙패스부터 시작되었다. 토고전이나 프랑스전은 누가 봐도 안정환 투입 전후가 다른게 눈에 보일정도였다. 안정환이 투입되자 공이 돌기 시작하면서 팀의 공격력도 올라갔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이 점을 높이 사서 스위스전에 안정환을 선발로 출전시키려 했다. 현재 박지성, 손흥민과 함께 월드컵 통산 3골로 대한민국 역대 국가대표 선수들 중 가장 득점을 많이 한 선수.[15]
아드보카트 감독은 안정환을 조커로 교체출전 시키는 전술의 이유와 안정환의 체력 등 몸상태의 대해 묻자 "어차피 승부를 걸거라면 안정환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당시 대표팀은 안정환이 선발 출장해서 고립되게 되면 공격을 풀어나가기 어려울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안정환을 후반 승부를 거는 조커로 쓰는 전술을 썼다.
본프레레호나 아드보카트호나 원톱 자리 조커로써 지속적으로 출전했었고 이동국이 부상당하고 나서는 평가전에서 주전 원톱으로 3경기를 출전하여 월드컵에서도 주전 원톱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평가전 결과가 좋지 않았으며 상기한 아드보카트의 의중으로 인해 후반 조커로 출전하였다.
하지만 갑자기 본선 경기가 돼서야 조재진을 풀타임 출전시키고 안정환을 원톱이 아닌 처진 공격수 자리로 교체 출전시켰다. 2002년 보다 폼이 떨어진것은 사실이나 오랜만에 제자리를 찾아 물만난 고기처럼 공격진의 활로를 뚫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여담으로 월드컵 에서 한일월드컵 독일월드컵 1골씩을 기록했다.
7. 베어벡호
월드컵 이후 대만과의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후반 결승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6개월을 FA로 지내면서 경기 감각이 저하되어 이후에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2007년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도 탈락했는데, 당시 베어백 감독은 안정환이 클럽에서 꾸준한 폼을 보이지 못했다면서 선발 제외 배경을 설명했다.8. 허정무호 2기
2008년 5월,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 요르단과의 경기(31일)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 소집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6년 대만전 이후 21개월 만에 대표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2008년 6월 22일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 북한과의 경기 이후 다시 대표팀과는 멀어졌지만, 허정무 감독은 안정환의 경험과 능력을 외면하지 않았고, 2010년 3월 코트디부아르와의 유럽 원정에서 다시 발탁하면서 1년 9개월만에 돌아왔다. 후반 이동국과 교체되어 출전하였고 득점은 없었다.8.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
허정무 정해성 스태프
박태하 ·
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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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 선발되었으나, 감독의 판단에 의해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발탁 당시부터 필드에서 중용하기보단 베테랑으로서 팀 내 기강 및 후배 선수들의 독려 등을 해주라는 목적이었던 걸로 보인다.[16][17] 안정환 본인은 훗날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느낌이 좋았기에 교체 출전으로의 기대도 했었다고 말했는데, 허정무 감독의 선택은 이동국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을 끝으로 안정환의 국가대표 경력은 마무리되었다.
몇몇 팬들은 월드컵의 영웅이었던 안정환을 끝까지 교체 출전시키지 않았던것에 허정무 감독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안정환이라면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고,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이동국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허정무 감독은 2020년 인터뷰에서 안정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몸상태를 체크했지만 경기에 내보낼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이동국을 투입했다고 말했다.[18] 컨디션이 좋았다면 내보낼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다만 '만약 안정환을 내보냈다면'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안정환 본인도 대표팀에 나갈 폼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어서 대표팀 합류를 여러번 고사했다고 한다. 그래도 베테랑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끝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9. 국가대표 은퇴
2012년 2월 29일에 있었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 쿠웨이트전에서 국가대표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쿠웨이트를 상대로 이동국과 이근호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여담으로 안정환은 친선 경기가 아닌, 월드컵 예선전에서 은퇴식을 가진 첫 사례가 되었다.
[1]
여담으로 이 대회는 마지막으로 열린 코리아컵 대회가 되었다. 그리고 전년도에 있었던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 1-3 역전패 이후 리턴 매치이기도 했다.
[2]
당시 안정환은 어떻게든 현지 적응을 하려고 파스타를 먹고 명품을 이월상품으로 걸치며 겉으로 때빼고 광내던 시기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완전 스타지만, 사실 당시의 안정환은 부산의 완전 이적 거부와 가우치 단장의 로스터 관여 등으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던 때라 속이 시꺼멓게 타고 있었다. 참고로 머리 스타일이 장발에서 뽀글이(..)로 바뀐 건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이다.
[3]
한국 축구 역사에 손꼽히는 매우 아름다운 골이다. 직접 보자.
[4]
다만 안타깝게도 윤정환은 패싱력에 비해 활동량과 지구력이 부족한 탓에 2002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들었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표팀이 16강전과 8강전에서 연이어 연장전 혈투를 벌인 점을 볼 때 히딩크의 판단이 옳긴 했지만.
[5]
32강 조별리그
[6]
안정환 본인은 이 코스 선택을 자신의 판단 미스라고 술회했다.
부폰은 키도 크고 팔도 길고 반사신경도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막힐 가능성을 고려해서 아예 구석 높은 곳으로 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실제로
페널티킥 잘차기로 소문난
호날두도 평상시에는 왼쪽 하단 구석으로 깔아차는 페널티 킥을 주로 차지만 부폰을 상대로 할 때에는 왼쪽 상단 부분으로 차거나 가운데로 찼다. 사실 안정환의 킥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고, 전반전이었기 때문에 지구력적인 문제로 킥에 문제가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무릇 모든 페널티킥은 잘 차면 골키퍼가 못 막는 것이기에, 안정환이 잘 찼는데 막혔다 뭐 그런 건 없다.
[7]
원래 PK 키커단이 아니었으나 이탈리아 무대 경험을 살려 특별지명된 듯 보인다. 대회 당시 1번 박지성 2번 이을용 3번 황선홍 4번 홍명보로 알려져 있다.
[8]
이후 저 실축은 예능에서 놀림거리로 쓰이기도 하며 본인도 뭉찬 감독 때 가족 앞에서 PK를 실축한 모태범에게 아직 몇번 더 놓쳐봐야 체육인이 된다라는 진담섞인 드립을 쳤다.
[9]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 안정환은 다른 선수들처럼 설기현에게 달려가 함께 세레모니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 쓰러져 엎드렸다.
페널티킥 실축에 대한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장면.
[10]
스페인의 주전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가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을 보고 중앙을 노렸다.
[11]
정확히는 히딩크호 멤버들의 마지막 경기. 경기는
김호곤 감독이 지휘했고 이날을 끝으로
황선홍,
홍명보는 은퇴했다.
[12]
2010년대 이후 지금 같은 시대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잘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2003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환경은 그렇지 않았다. 우루과이전 당시 한국은 월드컵 4강 신화의 국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2002년의 영웅들에게는 다른 이들과의 같은 형평성도 없어 크고 작은 특혜들이 있었다. 게다가 운동 선수들은 훈련소에 입소하여 각종 군사 훈련을 받게 되면 운동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몸이 급격하게 망가져 상무 자대 배치 이후 다시 몸을 만들어 이전과 같은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이 필수이다.
[13]
결국 안정환의 대표팀 차출은 해서는 안 될 결정이었다. 그러나 워낙에 절대다수의 여론이 안정환의 차출을 강력하게 요구하여 축구협회로써는 이를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왜 코엘류 감독이 안정환을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14]
1996년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2000년에는 페루자에 갓 이적한 후 경기에 자주 나오지 못해서 뽑히지 않았다. 2007년에는 수원에서 그야말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던 시절이라 베어백 감독의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2011년에는 은퇴 직전이라 이미 국대와는 멀어진 뒤였다.
[15]
최다 공격 포인트는 3골 1도움의 손흥민이다.
[16]
왜 굳이 선수 1명의 자리를 낭비했냐는 비난도 거의 없었던게, 우선 안정환은 외모, 실력, 명예 삼박자를 이미 다 갖춰놓은 선수여서 쓸 수 있다면 엔트리에 뽑혀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 또한 안정환처럼 팀 내 기강을 잡을 대선배가 없던 이후
조광래호나
홍명보호의 결속력이 약한 팀 케미스트리를 본 팬들은 이 당시
허정무 감독이 안정환을 데려간 것에 대한 재평가를 하기도 했다.
[17]
게다가 월드컵같은 메이저급 국제 대회에 나설 때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될 경험 많은 고참급이나 미래를 위한 차원에서 유망주들을 넣는 경우가 제법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옆나라 일본이 똑같이 2010 월드컵에서 자국의 레전드 골키퍼
가와구치 요시카쓰를 제 3의 골키퍼로 발탁해 데려가며 무려 팀의 주장을 맡겼고, 월드컵은 아니지만 38세의 나이로 유로 2016에 참가한
아이두르 구드욘센의 케이스도 있다. 후자는 1994년 풋사과던
호나우두, 2002년 이름을 막 알리기 시작한
카카, 대회 최연소 선수였던 2006년
시오 월콧이 대표적이며, 우리나라도 1998년 만 19세의 이동국을 발탁한 적이 있다.
[18]
월드컵 개막 직전에 펼쳐진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는데 생각보다 몸상태가 별로였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최종 명단 발표 이후 훈련 중 한 번은 담이 올라와 국내에서의 월드컵 출정식과 일본 원정에도 출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