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킨 쉬퀴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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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킨 쉬퀴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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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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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하칸 쉬퀴르 Hakan Şükü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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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1년
9월 1일 ([age(1971-09-01)]세) 튀르키예 아다파자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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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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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91cm, 체중 81kg | |||
직업 |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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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선수 |
사카리아스포르 (1987~1990) 부르사스포르 (1990~1992) 갈라타사라이 SK (1992~1995) 토리노 FC (1995) 갈라타사라이 SK (1995~2000) 인테르나치오날레 (2000~2001) 파르마 AC (2001~2002) 블랙번 로버스 FC (2002~2003) 갈라타사라이 SK (2003~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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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12경기[1] 51골[2] ( 튀르키예 / 1992~20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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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보스포루스의 황소 | ||
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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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前 축구 선수. 현역 시절 강력한 몸싸움을 이용한 플레이를 즐겨 했다.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51골) 및 최다 출장 2위(112경기), 쉬페르리그 역대 최다 득점(249골), UCL 터키인 최다 득점(22골) 등의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2 한일 월드컵 3위와 유로 2008 4강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망명 중인 反 에르도안 정부 인사다.
2. 클럽 경력
1987년 지역팀 사카리아스포르에서 16살의 나이에 프로 데뷔했으며, 1990년 여름에는 부르사스포르로 이적하여 2부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1992년, 자국의 명문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하여 첫 시즌부터 리그 30경기 19골을 기록[3]하면서 단숨에 자국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이후에도 소속팀에서 레귤러로 뛰면서 1995년 토리노 FC에서 잠시 뛴 것을 제외하면 2000년까지 갈라타사라이의 주포이자 터키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1999-2000 시즌에는 도메스틱 더블과 함께 팀의 UEFA컵 우승을 견인했다.
자국 리그를 평정한 뒤 2000년 세리에 A 인테르로 이적하면서 5년 만에 빅리그에 다시 도전했으나, 당대 최고 스트라이커였던 호나우두와 크리스티안 비에리에 밀려 제한된 출전 기회를 받았다. 결국 기회를 얻기 위해 2002년 1월 파르마 AC와 1년 반 계약을 채결했으나, 마찬가지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팀에서 방출된 뒤 2002년 12월 9일, 갈라타사라이 시절 인연을 맺은 그레이엄 수네스가 있는 블랙번 로버스 FC로 이적했지만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다.
이후 2003년 7월 7일, 다시 친정팀 갈라타사라이로 돌아온 뒤에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나이를 잊은 듯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5년간 활약한 뒤, 2007-08 시즌이 끝나고 자신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2년 3월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 첫 출전하여 4월 8일 덴마크전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이후 1990년부터 93년까지 터키 대표팀을 지휘한 셰프 피온텍 감독의 눈도장에 들어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하였고, UEFA 유로 1996에도 출전했으나 무득점 끝에 3전 전패 조 최하위로 탈락하게 된다.UEFA 유로 2000에서 터키의 주전 공격수로 출전해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면서 경기의 공식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는 등 국대에서의 활약도 매우 좋았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했는데, 대한민국과의 3-4위전에서 킥오프 11초만에 홍명보가 어설프게 컨트롤하는 공을 뺏어서 정확히 10.8초만에 선제골을 넣어 월드컵 역사상 최단시간 득점 기록을 냈고, 일한 만시즈의 멀티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이 경기의 공식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4]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A매치 100경기 출장을 기록하면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고, 2007년 10월 17일 그리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A매치 112경기에 출장하면서, 터키의 뤼슈튀 레츠베르에 이어 2번째로 최다 출전 기록을 한 동시에 51골로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 그의 삶은 선수 시절의 위상과는 180도 대조적으로 사실상 망가졌다고 봐야 한다.정계에 뛰어들어 국회의원도 해 봤다. 처음에는 에르도안 정부의 당인 정의개발당 소속이었다가 탈당한 이후로는 무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15년, 부인 및 자녀 3명과 함께 미국으로 사실상 망명을 갔다.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 정착해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2018년 12월 문을 닫았기에[5], 현재는 우버 택시를 몰며 생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터뷰에서 하칸의 부친이 감옥에 갇히고 하칸의 아내와 자식들이 괴롭힘을 당하며 터키에 있는 그의 재산 수천만 달러가 몰수당했다고 한다. ## 하지만 하칸은 " 축구 할 때나 이후 국회의원 할 때보다 차라리 지금이 마음이 너무 편하다."는 말을 남겼다.
현재는 미국에서 파트타임 축구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6] 선수 시절의 엄청난 경력과 위상을 감안했을 때 상급 지도자 라이센스만 있다면[7]MLS나 유망 대학 팀에서 감독이나 수석코치를 할 법 한데, 전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反에르도안 정부 인사로서 2016년 6월 SNS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비난한 이유로 기소가 되었으며, 1달 뒤 7월에 발생한 터키 쿠데타에 금전적 지원 등을 통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체포 영장만 발부한 상태이다.
옛날에는 터키 축구의 영웅이었으나 에르도안 지지파 터키인들에게는 많은 미움을 받으면서 찍혀버렸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워낙 논란과 실책이 심한 독재자다 보니 해외나 터키의 반에르도안 계열에서는 쉬퀴르의 이러한 행동을 영웅적으로 보면서 찬양하는 사람들도 많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사카리아스포르 (1987~1990)
- 튀르키예 쿠파스: 1987-88
- 갈라타사라이 SK (1992~1995, 1995~2000, 2003~2008)
-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3위: 2002
- 터키 U-21 축구 국가대표팀
- 지중해 게임: 1993
5.2. 개인 수상
6. 여담
- 알바니아 혈통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가 코소보 프리슈티나 태생이고 어머니는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태생이다. 그의 성은 알바니아 단어로 "Shykyr" 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 은퇴 이후 삶이 망가졌지만 선수 시절 위상은 어디 가지 않아서 튀르키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를 뽑으면 젠크 외즈카차르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이다.
[1]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최다 출장 2위
[2]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3]
컵대회&유럽대항전 포함 47경기 26골
[4]
쉬퀴르는 이후 2004년 6월 2일, 5일 서울과 대구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 2연전에서도 모두 득점을 기록하며 한국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경기 결과는 0-1 터키 승, 2-1 한국 승.
[5]
미국 거주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터키인들의 깽판이 잦았다고 한다.
[6]
*,
*
[7]
은퇴이후 바로 정치를 했기때문에 지도자 자격증을 따지못했다.
[8]
UEFA 소속 모든 국가들을 대상으로 근 50년간의 선수 중 최고의 선수를 선정했다. 터키에서는 쉬키르가 선정되었다.
분류
- 1971년 출생
- 1987년 데뷔
- 2008년 은퇴
- 사카리야주 출신 인물
- 알바니아계 튀르키예인
- 튀르키예의 남자 축구 선수
- 공격수
- 튀르키예의 정치인
- 운동선수 출신 정치인
- 사카리아스포르/은퇴, 이적
- 부르사스포르/은퇴, 이적
- 갈라타사라이 SK/은퇴, 이적
- 토리노 FC/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파르마 칼초 1913/은퇴, 이적
- 블랙번 로버스 FC/은퇴, 이적
- 튀르키예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튀르키예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UEFA 주빌리 어워드 수상자
-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