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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6:21:05

안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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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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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안익수 안산.jpg
<colbgcolor=#eee><colcolor=#000000> 이름 안익수
安益秀 | An Ik-Soo
출생 1965년 5월 6일 ([age(1965-05-06)]세)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군자리
(現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국적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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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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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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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경영인
소속 <colbgcolor=#eee><colcolor=#000000> 선수 상무 축구단 (1986~1988)
국민은행 축구단 (1988)
일화 천마 (1989~1995)
포항 스틸러스 (1996~1998)
감독 천안-성남 일화 천마 (1999~2005 / 코치)
대교 캥거루스 (2006 / 코치)
대교 캥거루스 (2007)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2007~2009)
FC 서울 (2010 / 수석 코치)
부산 아이파크 (2011~2012)
성남 일화 천마 (2013)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4~2016)
선문대학교 (2018~2021)[1]
FC 서울 (2021~2023)[2]
경영 안산 그리너스 FC (2024 / 대표이사)
국가대표 5경기 ( 대한민국 / 199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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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79c><colcolor=#ffffff> 학력 군자초등학교 (졸업)
군자중학교 (졸업)
문일고등학교 (전학)
숭실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체육학 / 중퇴)
인천전문대학 (체육과 / 전문학사)
용인대학교 (체육교육학 / 학사)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3] / 석사[4])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5])
서명
파일:안익수서명.png
등번호 일화 천마 - 5번
포항 스틸러스 - 4번
대한민국 대표팀 - 13번[6]
별명 넷플익수, 글익수도, 익버지, T 익수푸레스
}}}}}}}}} ||

1. 개요2. 생애3. 선수 경력4. 지도자 경력5. 경영인 경력6. 코칭 스타일
6.1. 전술 스타일6.2. 선수단 운영
7. 논란
7.1. 기성용과의 트러블7.2. 공식 기자 회견 불참7.3. 2023년 팬들과의 트러블 및 사퇴
8. 여담
8.1. 안익수 사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前 감독이자 경영인.

2. 생애

특이하게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관련 기사 중학교 시절부터 축구에 관심이 있었지만 학업 때문에 축구를 하고 있지 못하던 와중이던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생각한 그는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부에 가입해 남들보다 몇 배 노력을 더 했지만 당시 고교 축구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문일고등학교에서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해 문일고 감독의 배려로 선수층이 얇은 숭실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졸업했다.

그러나 축구로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고, 축구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공부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한다. 여담으로 이시기 시험 감독했던 사람이 허재, 김유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학생으로서 축구부에 들어가기는 또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결국 인천전문대학 체육과에 입학해 축구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후 전국 대회 4강에 진출하면서 당시 울산 현대 감독이었던 김호 감독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병역 문제부터 우선 해결하기 위해 상무 축구단에 입대했다.

3. 선수 경력

3.1. 일화 천마

상무를 거쳐 국민은행에서 뛰던 안익수는 1989년, 당시 새롭게 창단한 일화 천마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고 안익수도 입단 초반에는 계속해서 후보를 전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하루에 네 번씩 연습을 하면서 박종환 감독의 눈에 들었고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1990년 시즌에 29경기를 뛰며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았으나 1991년 울산 현대와 경기 중 송주석과 충돌해서 부상을 입게 된다. 꾸준한 재활에 임한 결과 1992년부터 다시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으며 일화의 리그 3연패(1993년~1995년)의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다.

안익수, 발레리 샤리체프, 겐나디, 이종화, 박광현, 방인웅, 하성준 등이 버티던 일화의 수비는 K리그 역대 최강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1994년 김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뽑혀 미국 월드컵에 나가기도 했다.

또한 1995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지금도 안익수는 일화 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로 인정을 받고 있다.

3.2. 포항 스틸러스

1996년 포항 스틸러스에 1억원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안익수의 플레이를 눈여겨본 박성화 당시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영입해온 것. 여담이지만 이 트레이드는 구단 수뇌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 이에 분노한 박종환 감독은 결국 감독직을 사퇴했다고 한다.

포항에 이적해서도 초창기에는 여러차례 고전했었다. 강력한 맨마킹을 기반으로 하던 일화의 3백에 익숙해져 있던 그에게 지역방어를 기본으로 삼는 포항의 4백수비는 그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시즌 초반에는 4백에 적응하지 못해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4백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후반기에는 다시 1군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렇게 입단 1년 만에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 주장직을 맡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등을 일궈내고 챔피언십 MVP를 수상하며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역대 한국인 수비수 최초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회 우승이라는 커리어를 작성하게 됐다.

1997/1998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역시 포항이 우승하며 일화 시절 포함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3연패라는 대업을 이뤘다. 이후 1998년에 은퇴했다.

은퇴 이후 포항의 코치직 및 해외연수 제안을 받기도 했으나 이전에 제안이 왔던 친정 팀과의 약속을 거절하지 못해 일화의 코치로 부임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서 황선홍 포항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 차기 감독 후보군에 잠시 거론 된 적이 있기도 했다. 구단 출신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항인지라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포항은 최진철을 후임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4.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안익수/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경영인 경력

2024년 2월 28일 K리그2 안산 그리너스 FC 대표이사로 선임 되었다.

당시 안산은 2023시즌 내부 비리 등으로 구단의 존폐가 걱정될 만큼 심각한 내홍에 빠져 있었고, 그 영향으로 올해 예산은 대폭 삭감되면서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영입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안익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인터뷰에서는 "사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이 많았다"면서 "구단주인 이민근 시장을 비롯해 여러 지역 인사들의 거듭된 도움 요청을 마냥 회피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밝혔다.

대표이사지만 형식적인 권위는 내려놓았다고 하는데, 안 대표는 "구단에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까지 언급하며 실제로 안 대표는 2024시즌 리그 개막전 경기 당일 경기장에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기자회견실을 직접 청소하기도 했다.

2024년 5월에는 팀을 홍보하기 위해 무료 급식 밥차 행사를 열고 안산 시내 미용실, 소상공인 시장까지 직접 돌아다니며 경기 입장권을 나눠주었다.

2024년 11월 21일 안익수 대표이사는 사임한다는 단독 보도가 나왔는데 기본적인 환경 개선과 시스템, 인적쇄신 등 기본적인 상황에서 개선점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발전하려면 자신보다 전문 경영인이 맡아 이 토대에서 더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

6. 코칭 스타일

훈련 때보다 경기가 더 편했던 감독님이셨습니다.
- 현영민 JTBC 축구 해설 위원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수비 훈련을 하는데, 선수와 선수 사이에 끈을 묶어놓고 훈련을 한다는… #
- 김형일 전 축구선수
태어나면서 처음 공부한다는 느낌이 드는 축구이다.
- 한승규
서울을 택한 많은 이유가 있는데, 안익수 감독님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나와 굉장히 비슷한 점도 영향을 줬다. 그런 팀에 가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 황인범
경기를 직접 하다 보니 너무 좋은 축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의 스타일에 동의하고, 지지한다.
- 정현철

감독 중에서는 사마의와 같은 야전사령관 형이 있고 공명과도 같은 지략가형이 있는데 이 둘을 어느 정도 섞어놓은 느낌의 감독이다.[7]

자기 전술에 대해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8] 책도 많이 읽는 스타일의 감독으로 어느 정도 지략과 전술은 인정받았지만, 선수단 관리 능력 부족과 지나치게 자기 전술에만 의존하는 유연하지 못한 스타일이라는 지적 또한 받는다.

6.1. 전술 스타일

2000년부터 과 비디오 자료를 활용하여 선수들의 전술훈련 계획을 짜기도 했으며, K리그 감독의 P급 라이센스 의무화가 시행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감독 P급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9] 명지대학교 체육학과에서 "K리그와 EPL을 통한 실제 경기 시간과 경기 외 시간에 나타나는 축구 경기력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다.

부산과 성남 감독 시절 드러났던 안익수의 전술적 특징은 질식 수비. 농담 삼아 선 수비 후 수비로 불였을 정도로 경기 내용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에서도 이 빈공은 여전하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곧 잘 쓰는데 K리그 공격수 수준을 거론할 때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뛰어난 공격수들이 즐비한 리그였다면 안통했을 전술이라고.

연령대 대표팀에서 실패를 맛보고 대학 감독으로 내려온 뒤에도 꾸준히 본인이 추구하는 전술에 대해 연구하고 공격 전술의 디테일을 깎았고, 해외 전술 트렌드도 끊임없이 탐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이른바 '익수볼'이라고 대표되는 선문대 시절 4-1-4-1 포메이션인데, 양쪽 풀백을 중앙으로 침투시켜 거의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놓은 인버티드 풀백의 움직임을 가져가게끔 했고, 이로 인해 중앙에 위치한 투 미들을 메짤라 롤로 전진시켜 순간적으로 공격 숫자를 늘리는 전술이 마치 펩 과르디올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수비시에는 6-3-1 대형으로 수비라인을 높이 끌어올려서 촘촘한 간격유지와 철두철미한 압박 시스템 또 라인을 올려 넓게 생기는 뒷공간 대비는 적절한 타이밍에 오프사이드를 트랩을 통해 뒷공간 침투 시도하는 공격수들을 무력화 시키는등 [10] 전공격보다 더 일사 분란하게 수비를 철저하게 준비한다.

서울에서도 이 전술을 그대로 갖고 와 기성용을 포백 자리로 내려와 공을 전개하는 라볼피아나 롤로, 양쪽 풀백인 이태석 윤종규를 인버티드 풀백으로 기용하고, 중앙의 두 명의 미드필더를 전진시켜 전방으로 올라가는 공격 전술로 이전의 무전술로 비판받았던 박진섭 때와는 달리 확연하게 공격 쪽에서의 디테일도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부산, 성남 감독 시절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감독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기본적인 전술 대형은 이렇지만 경기마다 변주를 주기도 하는데, 선수 스타일에 따라 두 풀백 중 한쪽은 클래식한 풀백의 움직임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서는 이를 주로 빠른 측면 돌파에 강점이 있는 김진야가 담당한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의외로 컨셉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4-4-2 전형의 투톱 체제로 전환해 롱볼로 득점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안익수가 펩 과르디올라의 전술 스타일을 가장 유사하게 따라하는 부분이 바로 측면에서의 삼각 대형 유지였는데, 2022 시즌 서울의 공격을 보면 측면에서부터 끊임없이 세 명의 선수가 삼각 대형을 유지하며 공을 주고 받는 모습이 굉장히 많이 보였다. 서울의 선수들이 하프스페이스를 노릴 목적으로 끊임없이 이 대형을 유지하면 상대는 맨투맨수비로 나서야 할지, 지역 방어로 나서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떠한 경우에든 간에 훈련을 통해 습득된 약속된 움직임으로 인해 삼각 대형의 한 쪽에는 공간이 생기게 되고 여기서부터 빠른 전개가 이루어지며 공이 바로 박스 안으로 투입될 수 있게 된다.

2022 시즌 서울은 이러한 전술 스타일 덕분에 대부분의 경기를 점유하면서 공격적으로 주도하는 축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공격 관련 지표에서 거의 모든 부분이 상위권에 위치할 정도로 경기력만큼은 굉장히 뛰어난 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의 퀄리티가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K리그 특성상 수준급의 외국인 톱을 기용하지 않는 2022시즌 전반기의 서울은 좋은 경기력이 득점까지 이어지지 않으면서 경기력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존재했다. xG값이 거의 울산 다음으로 높지만, 정작 박스 안에서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피니셔의 부재로 득점은 중위권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버스를 세운 팀을 상대로 위력이 급감한다는 것이다.[11] 강원에서의 김병수가 그러했듯, 결국 외국인 공격수의 부재(혹은 부진)가 끝까지 발목을 잡으며 '점유율도르', '경기력도르'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은 전술이었다.

일류첸코 합류 이후 결정력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팀으로 돌아오는 듯 했으나, 정작 그 즈음부터 K리그 감독 사이에서 익수볼 파훼법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전술이 간파당하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도 전술적인 고집을 버리지 못해 오히려 더 부진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막판에는 결과를 챙기기 위한 442 두줄 수비 전술, 김주성 전역 이후에는 오스마르와 김주성을 동시에 기용하기 위해 쓰리백을 사용하기도 했다.

2023 시즌에는 또 다시 다른 컨셉의 전술을 들고 왔는데, 우선 황의조의 합류로 인해 일류첸코와의 투톱 전술이 가능해지면서 전술 컨셉을 전체적으로 손보기에 이른다. 안익수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전경기를 풀로 보면서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고, 특히 이 중에서 모로코의 돌풍에 주목을 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2023 시즌 서울은 첫 경기부터 아예 전 시즌과는 180도 다른 전술을 들고 나와 보는 이들을 놀랍게 했다. 점유율 위주의 축구 컨셉을 아예 버리면서 후방 빌드업 비중마저 엄청나게 줄어들었는데, 대신 강한 압박으로 경합 후의 세컨볼 탈취와 빠른 공격 전개로 실제로 모로코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축구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2023 시즌 서울의 전술 컨셉이 이를 유지할지, 상대에 따라 바뀔지 주목해봐야 할 부분.

일단은 전반기 로빈 라운드 동안에는 대성공이었으나 이 전술 문제가 선수들 체력이 많이 깎이는 것이라[12] 우려의 시선도 아예 없지만은 않다.

6.2. 선수단 운영

성격 자체가 강성으로 인해 훈련장에서 선수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화 천마의 3연패 시절 코치의 영향이 크다. 김학범 사단의 영향이 큰데 이는 남기일과 비슷하다.

엄청난 체력훈련으로 선수들의 진을 빼놓는 점이 비슷한 축구 스타일을 구사하는 감독인 김병수와 가장 다른 점이다.

안익수 감독 아래에서는 훈련량도 다른 감독에 비해 훨씬 많고 전술적 디테일을 쌓기 위해 비디오 분석을 통한 팀 미팅 역시 매우 자주 진행할 정도로 선수단은 상당히 가혹한 스케쥴을 요구받기에선수단이 좋아하는 유형의 감독은 아니라는 평. 다만 그만큼 선수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이 요구하는 플레이와 디테일을 주입시키고, 경기장에서도 90분 내내 서서 끊임없이 선수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주입시키는 유형의 감독이다 보니 선수들에게서 '축구를 새로 배우는 느낌이다'라는 긍정적인 평도 받는 감독이기에 여러모로 매운맛 버전의 김병수다. [13] [14]

혹독한 스케쥴을 소화해야하는 만큼 선수단이 본인의 축구를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멘탈적 능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성남 부임 직후에는 야심차게 영입한 유지노가 팀 훈련에서 태만한 모습을 보이자 바로 계약해지하고 이요한과 트레이드 시킨 모습이나, 성남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던 김성환을 전지훈련 집결지에 늦었다는 이유로 바로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끝내 강진욱과 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 선문대 감독 시절에는 “나는 더 이상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과거보다는 조금 유해졌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 감독 부임 이후 인터뷰에서는 “프로페셔널한 선수들에게는 유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조금 엄한 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학 무대에서 쌓은 경험은 21시즌 말 최하위권 탈출을 소망하던 FC 서울에서 처음부터 빛을 발했다. 선문대 시절 안익수 감독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영상을 수십편 분석하며 전술적 장점을 정리했고, 그것을 자신의 방법론으로 구현하며 대학 무대에서 성과를 냈다. 이렇게 쌓인 노하우는 서울에 와서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빠르게 팀을 정비할수 있게 했다. #

그런데 선수진 구성을 할 때 지나치게 엄격한 면이 있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거나, 자신의 눈 밖에 한번 난 선수는 그 선수가 이후에 다시 잘하거나, 해당 선수의 포지션에 가용자원이 부족할지라도 쓰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감독 초기 시절에는 간판 스타 플레이어와 잦은 마찰이 있었는데, 부산 아이파크 시절에 정성훈 이승현을 판 탓에 정말 공격수가 없었지만, 에이스였던 박희도의 플레이 스타일이 개인적이란 이유로[15] 쓰지도 않고 2군에 박았던 적도 있는데, 부산은 시즌 끝까지 공격 자원 부족으로 고전했다. 성남에서도 부임 직후에 김성환, 홍철 등 에이스급 선수들을 이적시키기도 했다. U-20 대표팀 감독 시절 역시 스타 플레이어인 이승우 백승호 활용에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으며 이 시기 국대 팬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 부임한 서울에서도 첫 경기부터 논란을 자아냈는데, 팔로세비치 이인규를 후반전에 교체 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교체를 시키며 본인의 전술적 요구를 수행하지 않는 선수는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일종의 강력한 메세지를 보여주었으나, 이는 축구 관계자들과 팬들 사이에서 꽤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안익수가 이전 감독 시절과 달라진 부분은, 이전의 안익수라면 여기서 재교체한 선수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혹독하게 대했다면, 서울 감독으로 와서는 재교체 당한 팔로세비치를 다음 경기에서 아예 선발로 내세우고 경기 내내 격려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는 확실히 선수에 대한 관리와 동기부여를 시키는 조련술도 나름 갈고 닦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팔로세비치가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성격이며 감독의 전술적 지시를 수행할 능력이 충분할 만큼 높은 클래스의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2022 시즌에는 작년 제대 이후 단 한번도 쓰지 않아 불화설이 나올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아보였던 박동진과의 갈등을 매듭짓고 지속된 선발 출전으로 최전방이 부족했던 서울에 하나의 옵션을 더한 것 또한 이전과 다르게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도 여전히 원톱 스트라이커의 힘이 부족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빌드업에 미련을 느꼈는지 수비수 영입을 요청했다가 프런트가 일류첸코를 사 준다고 하자 바로 수긍하고 공격수 영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이 감독이 최용수마냥 '이 선수, 이 포지션 아니면 안 된다'식의 완강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오래 쌓인 프로 감독 경험으로 인해 강성 성향과 전술 고집에도 어느 정도 현실과는 타협을 할 줄 아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다만 2022 시즌에도 역시 양한빈이 빌드업 과정에서 실수를 연발하자 질책성 교체를 단행했고 이에 화가 난 양한빈이 벤치에서 불만을 표출하자 엄청난 벌금과 함께 잠시 부주장 자리를 박탈하는 과정을 보면 강성 성향의 선수단 관리 방식은 여전하다.

최용수만큼이나 로테이션에 소극적인 감독이다. 대학시절이나, 프로에서나 아슬아슬한 선까지 로테이션 안돌리고 버티다 퍼지기 직전 즈음 한 번씩 로테이션 돌리는 운용으로 일관했다. 교체도 정말 소극적이며, 경기에서 팀의 전술이 잘 먹혀들고 있는 경우에는 매우 늦게 교체를 단행한다는 점은 파울루 벤투와 흡사하다.

선수 영입하는 안목이 좋지 못하는 비판도 나온다. 안익수 감독 자체가 선수가 본인 전술에 대한 이해가 완벽해질 때까지는 선발에 내보내지 않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안익수 체제 아래 서울이 직접 데려온 선수들은 현재까지는 대부분 거의 출장하지 못했거나 출장하더라도 약간의 의문 부호를 자아내는 중이다. 오히려 프런트 픽에 가까운 한승규가 (워낙 기량 자체가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영입하자마자 바로 익수볼에 적응하더니 이후에 선발에 빠르게 나선 것과 대비되는 부분. 국내 선수 영입은 본인이 U-20 대표팀 감독 시절 경험했던 선수들 위주로 알아보는데, 이때의 연으로 인해 임민혁과 이상민이 서울에 합류했고, 김건웅, 이승모 등과 이적설이 나기도 했다. 김신진도 선문대 시절 인연으로 1년차부터 기회를 받았는데 본 포지션이 아닌 센터백에 끼워 넣어가며 출전을 보장해줬다.

그래도 오스마르나 팔로세비치 등 기존의 외국인 선수들은 전술에 맞는 롤에 매우 잘 활용하면서 다행히 황선홍처럼 외국인과의 궁합에 문제를 일으키는 감독은 아니라는 게 확인되었지만, 정작 본인이 감독일 때 영입한 히카르도나 벤은 거의 쓰지 않았다.[16] 이 때문에 외국인 선수 영입 부분에서는 본인의 고집보다는 프런트와의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이 꾸준히 나온다.

이러한 스타일의 장단점은, 선수단을 계속 긴장 상태로 몰고갈 수 있지만 과한 훈련은 선수들 체력을 깎아먹는 것인지라 이게 이어지면 아무리 좋은 전술을 짜도, 선수들이 말을 들어도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은 국가대표가 타 팀에 비해 많은 편이다 보니[17] 선수단의 체력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2023 시즌 더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엄청난 영입으로 인한 사실상의 더블 스쿼드 구축과 일부 선수들의 혹사로 인해 그렇게 보이는 것이며 운도 어느 정도 따라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전술적으로 발전은 상당하지만 그만큼 체력이 심각하게 깎이는지라 차후가 걱정되는 상황.[18]

결국은 최대의 단점인 단조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팬들에게 사퇴 압력을 견디다 못해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7. 논란

7.1. 기성용과의 트러블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인 2012년, 안익수 감독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주역이자 팀의 핵심인 박종우를 2군으로 보내며 "투지를 잃었다. 요즘 기성용처럼 축구를 한다"라고 말하며 논란이 일었고 이에 기성용은 SNS를 통해 "나처럼 공차면 2군에 가는 거냐?"라며 불쾌하게 반응하는 저격성 글을 남기며 논란이 일었다.[19]

2013년에는 안익수 감독이 SNS로 최강희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저격한 기성용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021년 FC 서울에서 둘은 사제지간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역시나 언론에서는 이 떡밥을 물어 안익수 감독에게 기성용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왜곡된 이야기로 불필요한 상황을 양산했다고 말하면서 기성용과도 웃으면서 대화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시즌을 보내면서 안익수 감독은 서울을 부임 당시 최하위에서 스플릿 7위로 마감하며 팬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구단 유튜브 및 기타 영상에서도 안익수 감독과 기성용의 관계는 오히려 좋아보일 정도로 전혀 문제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위의 트러블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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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9일 경기에서 승리한 직후 안익수와 기성용

7.2. 공식 기자 회견 불참

2022년 울산 현대와의 리그 5라운드 종료 후 공식기자회견에 불참하며 징계가 불가피해졌다.

이날 경기에서 후반 36분에 페널티 킥 판정에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설영우와 윤종규가 박스 안에서 볼 다툼을 했고 파울로 선언됐다. 페널티 킥 판정 뒤에 휘슬이 울렸지만, VAR 끝에 판정은 유지되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20]

프로축구연맹 규정 제 38조 12항에 따르면 "경기 전·후 인터뷰를 실시하지 않거나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해당 클럽과 선수, 감독에게 제재금(50만원 이상)을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된 만큼 벌금이 불가피해졌으며 결국 300만원을 부과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FC 서울 팬들은 기자회견에서 판정에 불만을 표출하며 징계를 받는 것보다 이렇게 기자회견 불참으로 인한 강한 메세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징계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안익수 감독을 지지했다.[21] 제재금 발표 후 FC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은 벌금을 모금했고, 안익수 감독의 뜻에 따라 전액을 당시 심각했던 강원, 경북 산불 피해구제에 기부했다.[22] #

7.3. 2023년 팬들과의 트러블 및 사퇴

2023년 27라운드 서울과 대구의 상암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82분에 에드가에게 동점골을 얻어맞고 2-2로 비기자 계속되는 후반 막판 실점이라는 고질병, 황의조의 노팅엄 임대복귀 후 1개월당 1승 페이스로 하락세가 명확한 팀의 상황 등으로 인해 분노한 서울 팬들이 안익수 나가 콜을 외쳤고[23] 이에 주먹을 들어올리는 감정적인 대응을 했다.[24]

평소 엄격하지만 행실이 모난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참지 못한 모양으로, 결국 기자회견에서 적어둔 글을 읽으며 사퇴를 발표했다. 구단 관계자는커녕 같이 일하는 코치들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한다.[25] 이후 김진규 수석 코치가 시즌 종료까지 감독 대행직을 수행했다.

사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익수 감독의 모친상 소식이 들려오며, 그동안 안익수 감독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을 것이라는 여론이 힘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사태에 대해 화났던 서울의 팬들이 화를 가라앉히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안익수 감독이 이전에 선수들이 팬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팬 프렌들리를 습관처럼 강조했었고, 본인도 평소에는 상당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었기에, 이러한 점이 맞물려 이후로는 이 일로 그를 비난하는 서울 팬이 거의 없게 되었다. #

8. 여담

8.1. 안익수 사전

상기했듯 2021년 후반기에 부임하여 12위 꼴등 팀을 7위까지 끌어올리는 기적같은 성적을 거두자 FCSEOULITE에서 시작해 안익수의 이름을 빗댄 별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FC 서울 감독 부임으로 인한 선문대 감독 임기 종료 후 선문대학교 축구부 명예 감독으로 임명됐다. [2] 2021 시즌 도중 부임, 2023 시즌 도중 자진 사임 [3] 체육교육 전공 [4] 석사학위 논문: 프로축구 지도자의 카리스마 리더십유형에 따른 성취목표지향성, 운동몰입 및 팀 응집력의 관계(2005. 6). [5] 박사 학위 논문: K-리그와 EPL을 통한 실제경기시간과 경기외시간에 나타나는 축구경기력 특성에 관한 연구(2010. 2). [6] 1994 FIFA 월드컵 미국 [7] 공명이 전쟁터에 직접 나가지 않은 건 아니나 아예 무장까지 하고 직접 진두지휘한 사마의와는 다른 유형이다. [8] 카타르 월드컵 전 경기를 풀로 봤다고 한다. [9] 2000년에 취득했다. [10]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한 수비 전술에 있어서 만큼은 안익수 감독이 국내에서 가장 독보적이다. [11] 이를 가장 잘 보여준 경기가 14R 성남과의 리그 경기였다. 심지어 당시 1명이 퇴장당했음에도 득점하지 못 했다. [12] 특히 빠른 역습을 중요시하기에 윙어가 매우 중요한 전술이라서 일각에서는 또 나상호, 김진야 혹사당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지난 시즌 후반기 나상호의 부진이 진지하게 혹사 때문일 가능성도 부인 못 하기 때문. 더군다나 23 시즌에는 거의 프리롤 윙어로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나상호가 2023년 전반기에는 이천수급 활약을 하다가 후반기에 슬슬 지쳐가고 있다. 특히 19라운드 슈퍼매치와 24라운드 경인더비에서 퍼진 기색이 역력했다. [13] 대신 그만큼 수비적인 완성도는 매우 뛰어난편이다. [14] 해외로 나가서 비슷한 유형의 지도자라면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있다. 비엘사 감독과 다르게 안익수 감독은 차분한 성격 스마트한 학자면모와 훨씬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추구한다는 차이점은 있으나 매우 혹독한 훈련과 수준 높고 디테일한 전술적인 움직임을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주입, 학구파 기질등 비슷한 면모가 많다. [15] 전임 황선홍 감독이 에이스 박희도 중심으로 팀 전술을 맞춰놓았다. [16] 히카르도는 나중에 심장 이상으로 쓸 수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계약 해지까지 갔다. [17] 국가대표를 배려하라는 게 아니라, 국가대표 훈련까지 소화하다 보니 선수들의 진은 빠지고 결국 퍼지게 마련이라 선수단 체력관리가 의무인 감독 입장에선 당연히 신경써야 한다. 대표적으로, 비록 체력이 더 소진되는 해외파였긴 했지만 22 시즌 전의 김영권이 리그와 대표팀을 오가며 훈련, 경기를 상당히 소화하다 보니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고 결국 이게 터진 21시즌에는 양쪽 모두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국내 복귀를 해야 했는데 문제는 그 뒤에서도 양쪽으로 혹사 당하다 보니 퍼져서 22 시즌 내내 밥값만 겨우 하고 있다. 물론 자기 관리는 프로의 기본이며 고유한 의무이지만 선수가 혼자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감독의 매니징 또한 중요하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아무리 좋은 전술과 맞춤의 선수가 있어도 다치면 못 뛰니까. 참 단순하면서도 고전적인 이유지만 한국에선 이게 잘 지켜지지 않았다가 최근에야 인식이 변하고 있다. [18] 실제로 휴식기 전 포항전에서 극장 동점골을 실점했고, 이어진 슈퍼매치에서는 잠시 밀리기도 하는 등 공수 답답한 모습을 보이다가 상대의 골운 부족과 윌리안의 극장골로 겨우 이겼다. 그리고 대전, 전북과의 이어지는 경기에서 귀신같이 한골도 못넣고 빈공에 시달리다가 1무 1패를 기록하며 7월 12일 기준으로 3위자리까지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결국 26라운드가 끝난 8월 13일 기준 서울은 3위를 전북에 내주고 4위로 쳐졌다. [19] 안익수 감독은 박종우는 기성용 같은 스타일이 아니며, 자신의 발언이 "투지 있는 플레이가 장점이었는데 요즘 기성용처럼 볼을 차려 한다. 투지 있는 터프한 플레이가 종우의 장점인데 그런 것이 사라졌다."라는 의미였다고 확실하게 설명했다. [20] 해당 PK 판정은 결국 경기 후에 오심으로 밝혀졌다. [21] 기자회견에서의 판정 불만 표출은 출전금지라는 징계까지 있는 반면 기자회견 불참은 벌금선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22] 보통 이런 벌금은 구단에서 대납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대납이 된 모양이다. [23] 이 콜은 현장팀의 주도는 아니었다. 딱히 리딩의 주체가 있던 게 아님에도 순전히 경기 내용에 대한 분노로 인해 퍼져나간 것. 애초에 서울 현장팀은 과거에도 응원가 사이사이에 아웃 추임새를 넣도록 해준다거나, 경기 종료 후 아웃콜이 나올 때 제지를 하지 않는 등 간접적으로 팬의 의사를 전달했지 그를 주도하지는 않았다. [24] 주먹감자라는 말도 있는데 이걸 그냥 콱이란 식의 모션에 가까워 보이며 애초에 주먹감자 모양도 아니다. [25] 서울 팬들은 직전 있던 서포터와의 트러블과는 별개로 구단의 어느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은 결정을 발표했다는 사실에 ' 빡종'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당혹스러워했다. [26] 2023 시즌 현재에는 인터뷰 때마다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메세지를..."이 포함된 답변이 많아져서 교수님에 이어 미래의 정치인 밈까지 획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