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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2:48

아스날 FC/징크스

아스날 9번의 저주에서 넘어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아스날 FC

1. 개요

아스날 FC의 각종 징크스에 관한 문서.

스포츠계에서 '저주', '잔혹사' 등의 이름이 붙은 징크스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아스날의 경우 유난할 정도로 이러한 징크스가 많은 편이다. 심지어 그것도 자팀의 아는 팬들만 아는 징크스가 아닌, 타팀 팬을 포함한 축구 팬덤 전체에서도 유명한 징크스들이 몇 개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등번호 9번의 저주였고, 본 문서 역시 당초 등번호 9번의 저주를 설명하기 위해 개설되었으나 아스날에 징크스가 워낙 많아서 편의상 같이 서술하다보니 현재는 다양한 징크스들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

2. 등번호 9번의 저주

아스날 공격진의 빈공을 심각하게 야기하고 있는 징크스로, 이 저주가 없었다면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 감독 재임 기간 중 최소 2개의 우승 트로피를 더 들어올렸을 것이며, 벵거 재임기간이면 그게 몇년인데 미켈 아르테타 감독 3년 차에 여유롭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등번호 9번은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를 상징하는 번호다. 호나우두, 앨런 시어러, 로비 파울러, 파트릭 클라위베르트, 필리포 인자기, 페르난도 토레스, 루이스 수아레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카림 벤제마 등 내로라하는 스트라이커들이 이 등번호를 달고 뛰며 활약했다.

하지만 아스날에서는 니콜라 아넬카, 루카스 포돌스키, 알렉상드르 라카제트를 제외하면 리그에서 10골 이상 넣은 선수가 없을 정도로 대부분이 극심한 부진을 보였으며, 앞서 언급한 세 명 또한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1] 현재까지 징크스로 여겨지고 있다. 오죽하면 폴스 나인을 말 그대로의 의미로 쓰냐며 아스날 서포터, 타 라이벌 구단들의 조롱섞인 비난을 듣는것은 덤.

2.1. 원인

첫째로 아르센 벵거의 벵거볼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벵거볼의 특성 상 1.5선이나 2선 공격수에 중심을 두고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비중이 낮아지므로 1선 센터포워드들이 힘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스날이 빈약한 공격력 탓에 이를 개선하고자 이름 값 되는 정통 9번을 기용하려 드는데, 문제는 그 이름 값 있는 정통 9번들은 죄다 벵거볼의 특성 상 활약을 하기 힘들고, 간혹 스카우터가 안티인지 먹튀급 선수를 데려 온다는 것. 애초에 9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팀이 9번의 진가를 제대로 볼리도 만무하니. 당연하겠지만 벵거가 옷을 벗거나 실리축구로 방향을 바꾸던가, 9번 자리에 벵거볼에 맞는 선수가 와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

따라서 공격력은 공격력 대로 빈약하고 선수는 선수대로 제 기량을 발휘 못하는 것. 실제로 제이미 바디가 이러한 점 때문에 아스날행을 거부했고,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던 로빈 반 페르시 내 안의 작은 아이 운운하며 맨유로 이적한 것도 실은 벵거볼로 인해 애초에 본인의 입지가 불안함을 알고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 사실 반 페르시가 월드 클래스니 어쩌니 하는 것도 2010년대 이후 이야기로 최전성기인 11/12시즌 전까지는 부상 등의 이유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적이 많다. 그전까지만 해도 반 페르시는, '시즌 반' 페르시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13/14 이전 아게로 취급을 당했다.

두 번째 원인은 초창기 벵거가 부임했던 시절 있었던 주전 공격수 티에리 앙리(14번)와 데니스 베르캄프(10번)[2] 중 그 누구도 9번을 달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아스날 역대 최고의 스타 골게터지만, 애초에 둘 다 정통 9번이 아니라 10번이 어울리는 1.5선, 2선 공격수라는 점이다. 애당초 둘 중 하나가 9번을 달았다면 9번의 저주는 언급되지 않거나 언급되더라도 벵거볼이 정착되어 베르캄프는 은퇴하고 앙리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버린 2006~7년대 이후부터 역사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선수들은 주전 공격수로 입지가 워낙에 탄탄했던 탓에 다른 공격수들이 설 자리가 많이 부족했고 당연히 9번을 단 선수는 다른 변수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으로 이 둘에 치여 입지가 부족했을 것이다. 실제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AFC 아약스가 아닌 아스날에 왔다면 커리어가 꼬였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 만일 입단했다면 9번을 주기로 했다고 하니 ...

그리고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부임하고 9번인 라카제트가 아스날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 저주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아스날 팬들은 우나이 에메리 자체를 저주라고 여기고 있다. 에메리가 잘린 이후 미켈 아르테타 부임 이후 시즌 내내 부진하던 라카제트가 막판 다시 부활했지만 이번엔 팀 전체가 저주에 빠진 상황이다. 어느정도는 벵거볼에 익숙해진 팀의 운영철학때문에 정통 9번을 활용하는 공격전술이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것이 영향이다.

이 때문에 벵거가 아닌 다른 감독이 영입한 가브리에우 제주스가 9번의 저주 역사상 가장 큰 분기점이라는 분석이 있다. 밑의 선수들 중 머슨을 제외하면 전부 벵거가 영입한 선수들이기 때문.

2.2. 해당 선수

2.2.1. 폴 머슨

파일:폴머슨9.png
아스날 FC No. 9
폴 머슨
Paul Merson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포지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1995~1996
기나긴 저주의 시작.
9번으로 바꾸자마자 꼬인 커리어, 저주와 인성 문제로 커리어가 나가리되다.

이 저주의 시작은 90년대 중반으로, 원래 1987년 입단해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하던 現 스카이스포츠 해설자 폴 머슨(Paul Merson)이 9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3] 시작된다. 폴 머슨은 원래부터 사생활에 문제가 있던 선수였지만 9번을 단 1995년 이후부터 팀 내 불화와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등 온갖 안 좋은 이슈를 터뜨리며 미들즈브러로 방출되었다. 이후에도 벵거 감독이 도핑 의혹이 있다는 등의 아스날에 적대적인 반응들을 많이 하며 아스날 팬들의 레전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에메리·아르테타 체제 아스날에게는 매우 좋은 평을 많이 하며 레전드라고 인정하는 팬도 꽤 있다.

2.2.2. 니콜라 아넬카

파일:149951887227.png
아스날 FC No. 9
니콜라 아넬카
Nicolas Anelka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포지션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1997~1999
아넬카의 저니맨 여정의 시작. 멘탈 甲 비긴즈
라카제트 이전까지 아스날 최고의 9번,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재능.

그리고 이를 물려받은 선수는 니콜라 아넬카. 시즌 초반 활약은 준수했고 나이치고 골도 꽤나 넣어줬지만, 이 양반의 멘탈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질적인 9번의 저주의 기점. 계속 싸우기만 하다 1998년 시즌 종료 후 바람같이 레알 마드리드로 날아갔다.

사실 아스날에서의 아넬카는 저주와 전혀 관련이 없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인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아넬카는 전혀 자리잡지 못하고 그 뒤부터 수많은 팀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넬카는 EPL의 빅6 중 4 팀에서 뛴 바 있는 특이한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4]

이후 행적은 아넬카 문서에서 참조할 것. 여담으로 아넬카를 팔고 대체자로 사 온 선수는 아스날 레전드로 남았다.

2.2.3. 다보르 슈케르

파일:슈케르9번.png
아스날 FC No. 9
다보르 슈케르
Davor Šuker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포지션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1999~2000
하락세인 선수를 데려온 아스날의 병크.
월드컵 득점왕 출신도 피해갈 수 없었던 저주와 노쇠화.

아넬카가 레알 마드리드로 날라버린 대안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1998년 월드컵 득점왕 크로아티아의 스트라이커 다보르 슈케르를 데려왔다. 똑같이 1998년 월드컵 스타인 팀 에이스 데니스 베르캄프와의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이 선수도 급하게 데려왔던데다 애초에 하향세였고, 9번을 달고 나서 부상과 실력 저하로 먹튀가 되어 완전히 이미지를 구겼다.

2.2.4. 프란시스 제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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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No. 9
프란시스 제퍼스
Francis Jeffers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포지션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01~2003
9번 저주의 정점.
아스날 이후의 커리어마저 꼬여 버린 비운의 유망주

슈케르가 떠난 2001년부터는 에버튼에서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한 젊은 유망주 스트라이커 프란시스 제퍼스가 9번을 이어받는다. 이 선수는 16세에 1군에 데뷔했고, 잉글랜드 U-21 팀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던 선수였다.[5] 에버튼에서도 웨인 루니 이전에 가장 돋보였던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선수가 9번의 저주 정점을 찍고 만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으며, 제대로 출전했을 때도 그냥 못했다고 한다. 다시 에버턴으로 임대이적 한 후 찰튼 애슬레틱, 레인저스 FC, 블랙번 로버스, 입스위치 타운, 셰필드 웬즈데이,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마더웰, 플로리아나 FC, 애크링턴 스탠리 FC를 거치고 2020년부터 에버턴 U-18 팀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코치를 맡던 도중 2020년 8월에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개인 문서도 2022년에 생길 만큼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많이 잊혀진 선수이다.

2.2.5.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파일:Arsenals-Jose-Reyes-top-flies-over-Ga.jpg
아스날 FC No. 9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José Antonio Reyes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포지션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6]
활약 시기 2004~2006
차기 아스날 에이스로 점찍어 놨던 영입이고 무난했지만,
향수병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제퍼스를 에버튼으로 돌려보낸 뒤 9번을 이어받은 선수는 세비야에서 100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한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다른 9번과 비교해 보면 레예스는 기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골 결정력이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7] 원래 레예스의 주 포지션은 윙어이고 아스날에서만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그나마도 2004/05 시즌까지는 데니스 베르캄프가 건재했던 관계로 확실한 주전도 차지하지 못 했다. 그러나 2005/06 시즌에는 베르캄프를 제치고 앙리와 함께 투톱으로 뛰었는데 이 시즌만큼은 꽤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향수병이 심했는지 틈만 나면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불평해 팬들에게 어그로를 잔뜩 쌓았다. 2006년 결국 레알 마드리드 줄리우 밥티스타와 맞임대 조건으로 떠났고 임대가 끝난 뒤[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다만, 레예스가 팀을 떠난데에는 향수병만이 원인이 아니다. 윗짤에도 나와 있지만, 게리 네빌 폴 스콜스의 거친 플레이로 인해서 레예스의 폼이 죽은 것 역시 부정을 할 수 없다. 올드한 로컬 아스날팬들이 아직도 저 둘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

또한, 데뷔시즌 5개월동안은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선수. 하지만 라리가에서는 꽤 오래 활약하고 세비야에서 유로파 3연패의 주역 중 한명으로 아스날을 떠나 만개했다.

2019년 6월 1일, 향년 35세의 나이에 레예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와 그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아스날 팬들은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아스날행을 선택하는 스페인 선수들에게 꽤 영향을 준 선수이기도 하다. 루카스 페레스, 데니스 수아레스, 다니 세바요스 등등.

2.2.6. 줄리우 밥티스타

파일:밥9.png
아스날 FC No. 9
줄리우 밥티스타
Júlio Baptista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06~2007
[밥] 비긴즈.
칼링컵에서만 잘한 반쪽짜리 공격수[9]

그리고 그 9번을 이어받은 밥티스타...그렇다. 콰밥만훈의 그 밥이다.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35경기 10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선 3골만 기록한 채 레알 마드리드로 되돌아갔다.

사실 밥티스타도 레예스와 마찬가지로 주 포지션이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이다.[10] 아스날은 442 전술을 썼기에 밥티스타가 뛸 만한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수 밖에 없었는데 중미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질베르투 실바, 마티유 플라미니가 있으니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앙리를 제외하면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로빈 반 페르시, 시오 월콧이 경쟁자인 공격수 자리에서 뛴 것이다. 문제는 반 페르시는 부상만 없으면 아데바요르, 밥티스타보다 더 나은 투톱 자원이고, 아데바요르는 득점력이 문제였을 뿐 훌륭한 연계 플레이 덕에 앙리와 호흡이 잘 맞았으며 월콧도 빠른 스피드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었지만 밥티스타는 공격수 자리에서 단단한 피지컬 외에는 그 어떤 장점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부진했던 것이다.[11] 그래도 이 해 6골로 리그컵 공동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을 리그컵 준우승에 올려놓는데 일조한다.

어느 9번이나 마찬가지지만 밥티스타의 실패 역시 뼈아팠던게, 밥티스타는 레예스와 무관하게 아스날이 원래부터 눈독을 들이던 선수였다. 아스날의 전술 성향에 맞으면서도 아스날 공격진의 단점이던 피지컬을 메꿔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스날을 무결점으로 만들어 줄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초 예상과는 다른 과정이긴 해도 결국 아스날은 밥티스타를 품는데 성공했으나 대실패로 끝났고, 결국 이후 아스날 선수 구성의 방향도 달라지게 되었다.

2.2.7. 에두아르도 다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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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No. 9
에두아르도 다실바
Eduardo da Silva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포지션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07~2010
날아오르려던 찰나에 최악의 부상을 당하다.
아스날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9번.

밥티스타가 떠난 뒤 아스날에서 9번을 달았던 선수는 브라질 출신 크로아티아 대표 선수인 에두아르도였다. 2007년 여름 아스날에 입단한 에두아르도는 시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주전 입지를 굳혀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지금도 최악의 부상으로 간간히 회자되는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1년 뒤 복귀하긴 했지만 떨어진 경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얘가 부상 안당했다면 반통수가 없었겠지

이후, 에두아르도는 10/11 시즌에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했는데 챔스 조별 리그에서 바로 아스날과 만나게 되었다. 에두아르도는 아스날 원정에서 많은 홈 팬들의 환호를 받았고 득점에도 성공했다. 친정 팀 예우를 위해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아스날 팬들 역시 실점했음에도 에두아르도에게 자기 팀 선수인 것처럼 환호를 해주었다. 에두아르도가 교체될 때 박수까지 쳐주며 훈훈한 마무리를 보여줬다.[12]

2.2.8. 박주영

파일:/image/139/2011/11/29/SK00701_20111129_100401.jpg
아스날 FC No. 9
박주영
Park Ju Young
[13]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포지션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11~2012
메트로 선정 아스날 역사상 최악의 스트라이커 1위.
한국에 아스날 안티가 많이 생긴 이유 중 하나.[14]

아시아산 토템 힐러 릴통수[15]

그리고 에두아르두 이후 1년간 없던 9번을 이어받은 선수는 이나모토 준이치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아스날에 입단한 아시아 선수인 박주영. 한 때, 혼다 케이스케와 함께 아스날 입단 루머가 있었는데 이 때, 벵거가 인터뷰로 혼다는 "No"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박주영에 대해서는 "Yes"라고 대답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 팬들에게 아주 큰 주목을 받았다.[16] 여담으로, 이 때 나왔던 드립이 '박주영 No.9, 혼다 No'

그러나 그의 아스날에서의 활약은 리그컵에서 1골넣은게 겨우다..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없다고 보면 된다.생략이 아니고 없다. 인생 감아차기 득점 이후 진짜 인생을 감아버렸다...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4차전에서 슈팅을 1개도 날리지 못하고 매우 부진했는데, 사실상 이 경기가 아스날에서 박주영의 운명을 갈라 버렸다.

박주영이 이 저주에 걸린 이유를 굳이 들자면, 일단 1공격수인 로빈 반 페르시이 시즌부터 유리몸을 탈출했다.[17] 2공격수는 마루앙 샤막이었는데 샤막은 반 페르시와 타입이 다른 타겟형 공격수로써 전술적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치라도 있었다. 그런데 박주영은 아스날에 전술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고 육각형 공격수였던 반 페르시의 완벽한 하위호환인 작은 육각형 선수였다.[18] 거기에 기량이나 폼에서도 아스날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리저브 경기에서 샤막보다 득점을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다 주워먹기 식인데다 경기력 자체는 부족하다는 코치의 평이 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당시 유망주에 불과했던 미야이치 료가 스트라이커로 뛰는 게 더 낫다고 할 정도.[19] 그 미야이치 료마저도 포지션이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윙어라는 걸 감안하면 아스날 시절의 박주영의 폼이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 알 수 있다.

이후에는 RC 셀타 데 비고, 왓포드 FC 로 임대를 떠나며 반등을 노렸지만 여기서도 부진했으며, 2013-14 시즌 교체로 리그컵 첼시전을 뛴 것을 마지막으로 2014년 6월 방출되었다. 아스날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부진까지 겹치며 완전한 퇴물 선수로 낙인 찍히고선 유럽 활동과 국가대표 경력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20]이후론 K리그로 복귀하며 선수 황혼기를 불태우고 있다.

아스날에서 물러난 아르센 벵거는 자서전을 출판하며 자신이 영입했던 박주영을 언급하면서 "분명 재능이 있음을 의심치 않았던 선수였지만, 자신이 아스날에서 뛰기에 충분한 선수인가를 어필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했다. 그리고 본인이 박주영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했고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그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덧붙였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감독 커리어의 실패작을 거론한걸 보면 뱅거로서도 박주영에 미련과 회한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슛포러브에서 2023년 노장 선수가 된 박주영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아스날 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

2.2.9. 루카스 포돌스키

파일:포돌스키 9번.jpg
아스날 FC No. 9
루카스 포돌스키
Lucas Podolski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포지션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12~2015
레예스, 에두아르도와 함께 그나마 저주 해제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
불안한 중반과 최악의 말년이었으나, 저주를 어느 정도 깼다.

그 후에 등장한 No.9는 FC 쾰른의 강등으로 전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 쾰른과 합의를 봐서 자유 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었던 루카스 포돌스키. 2012/13 시즌의 프리시즌에는 전 9번인 박주영도 같이 뛰었는데 아스날은 9번을 포돌스키에게 주고 박주영에게 30번을 주었으며 이적 시장 후기에 박주영이 셀타로 임대를 가면서 등번호를 정리했다.

포돌스키는 2012년 10-10을 기록하면서 레예스 이후 가장 뛰어난 아스날의 9번으로 저주를 깨리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2013-14 시즌의 시작인 페네르바체와의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10주 결장을 찍게 되어 9번의 저주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리그 경기에 교체 멤버로만 활용되며 아스날 9번의 저주가 계속 이어지나 싶었지만, 월콧의 부상 이후 시즌 막판에만 중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3-14 시즌 40경기 12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짙은 아스날의 2선에서 결정력이 뛰어난 포돌스키의 존재는 팀 공격전술의 다양화를 이끌어냈고, 램지, 월콧의 부상 이후 부진에 빠진 지루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2013-14 시즌 중반까지 이어지던 포돌스키의 이적설은 시즌 막판 대활약 이후 잠잠해졌지만, 2014-15 시즌에는 벤치만 달구다가 인테르로 임대 이적하면서 저주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스날에서 폼이 죽을대로 죽은 포돌스키는 인테르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쳐 반 년간 임대생활을 끝내고 런던으로 돌아왔어도 팬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결국 그는 이적을 결심하고 2015년 7월 4일, 갈라타사라이로 둥지를 텄다. 그리고 아스날은 2016 시즌이 끝날 때까지 9번은 공석이었다.

2.2.10. 루카스 페레스

파일:페레스 9번.png
아스날 FC No. 9
루카스 페레스
Lucas Perez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포지션 윙어,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16~2017
17M을 들여놓고,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한 채 벵거의 쓸놈쓸 병크로 희생양이 되다.
부상과 경쟁자들 덕분에 본인의 클래스를 입증할 기회 조차 없었던 선수.

2016년 8월부로 드디어 이 번호를 쓰게 될 새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전 시즌 데포르티보에서 17골을 넣으며 대폭발한 루카스 페레스. 세르주 그나브리의 이적으로 27번을 달 수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36번, 45번 같은 등번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본인은 존경하는 선배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가 달았던 9번을 선택했다. 16-17시즌 나올때마다 활약이 준수하여 이번에야말로 저주를 깰수 있나 했는데, 문제는 벵거는 이상할 정도로 페레스를 경기에 기용하지 않고 있다. 구너들은 후반기 한없이 부진한 알렉스 이워비 등은 고집하면서 나올 때마다 경기력이 좋은 루카스를 선발로 쓰지 않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에이전트는 선수가 아스날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인터뷰를 했고 무수한 이적설이 나도는 상황. 이쯤되면 벵거가 숫자 9를 싫어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9번을 라카제트에 통보없이 뺏기고 선수의 분노가 폭발, 데포르티보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유없는 무기용에 아무런 말도 없이 번호까지 빼앗아간건 변명 할 수 없는 벵거의 잘못.

에메리 체제에서는 중용 받나 했으나, 2018년 프리시즌 이후 이적시장 막판 웨스트햄으로 이적하고 알라베스에서 다시금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페레스가 9번을 받은 16/17 시즌에는 벵거가 올리비에 지루 대신 알렉시스 산체스를 폴스 나인으로 기용하는 전술을 썼는데 이것이 크게 성공하면서 루카스는 일단 공격수 자리에서 기회를 거의 얻지 못 했다. 남은 포지션은 윙어였는데 경쟁자 중 한 명인 시오 월콧은 시즌 19골을 기록하면서, 두 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21] 또한, 대니 웰벡 알렉시스 산체스와 월콧이 있는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페레스를 압도하는 선수이다. 즉, 벵거가 페레스를 우선시 할 이유는 애초에 하등 없었다. 무엇보다, 스트라이커로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 자리에서 매우 별로였다.

2.2.11.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파일:라카제트 9번.jpg
아스날 FC No. 9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Alexandre Lacazette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포지션 스트라이커
활약 시기 2017~2022
역대 9번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적료 대비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선수[22]
18-19 시즌 아스날 올해의 선수

부상과 적응 등의 문제로 아스날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던 루카스 페레스가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새로 영입된 라카제트가 페레스의 뒤를 이어 저주받은 번호를 물려받았다. 아스날 구단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영입된만큼 저주를 깰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모든 시즌 10골 이상씩 넣어주고, 연계 등 경기력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박종윤 캐스터의 말대로 라카제트가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과는 별개로 골을 넣어주는, 즉 9번이라는 역할로 봤을때는 실패라고 평가되며, 많은 팬들도 라카제트가 영입으로는 중박일지언정 9번이라는 스트라이커로서의 모습으로 저주를 깼다고 보긴 힘들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2.2.12. 현재: 가브리에우 제주스

파일:Jesus 9.jpg
아스날 FC No. 9
가브리에우 제주스
Gabriel Jesus
<colbgcolor=#023474>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포지션 스트라이커, 윙어
활약 시기 2022~
적지 않은 이적료, 증명해야 할 자신의 가치.
기량은 확실하지만, 잦은 부상이 아쉬운 선수.

라카제트가 리옹으로 복귀하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계약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제주스를 비교적 많은 이적료를[31] 지불하고 데려왔다. 밥티스타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브라질리언 9번.

제주스가 득점력이 강한 스타일은 아니라서 영입 당시에도 회의적인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아르테타가 맨시티 코치 시절 공격수 살리기에 일가견이 있었기에 아르테타와 호흡을 맞춰 본 제주스에 대해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최소한 라카제트가 좋았던 시즌 활약은 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

2.3. 9번은 아니었지만 최악이었던 공격수들

22번의 야야 사노고, 29번의 마루앙 샤막, 11번의 카를로스 벨라, 52번이었던 니클라스 벤트너[33] 역시 여기 등재된 9번 선수들과 별 다를 바 없이 활약을 하지 못하고 쓸쓸히 아스날을 떠났다.

다만 벨라는 꽤나 아쉬운 케이스. 애초에 포텐 자체가 벤트너나 다른 선수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당시에 벵거는 벨라가 오직 세컨톱에서만 잘 뛰는 선수라고 판단을 하고 소시에다드에 넘겼다. 그리고 소시에다드에서 벨라는 6년 동안이나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윙포워드와 세컨톱 자리에서 뛰게 한 벵거의 선택이 완벽한 실패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마 벤트너 팔고 벨라를 잡아서 기회를 더 부여했다면 아스날이 우승 트로피를 하나쯤은 더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꽤 활약한 스트라이커는 이제는 금지어가 되어버린 로빈 반 페르시, 알렉시스 산체스,[34] 시오 월콧[35], 대니 웰벡, 올리비에 지루가 있으며, 2019-20 시즌만 해도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활약했으나, 재계약 이후로 거짓말같이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36]

3. 주장의 저주

사실 9번의 저주는 라카제트, 그보다 더 이전인 포돌스키 때부터 깨졌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고 징크스로 취급하지 않는 팬들도 상당하여, 이제는 과거형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그러나 주장의 저주는 아스날의 성적이 추락한 암흑기와 맞물린 점에 아스날 팬들이 입을 모아 아스날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징크스라고 여기고 있다. 그나마 2022년 이후로 마르틴 외데고르가 주장을 맡고 나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2007년 바르셀로나로 떠난 티에리 앙리 이후의 아스날 주장들은 대부분 안 좋게 이별하거나, 좋게 이별했지만 급격하게 유리몸 테크를 타 이후의 선수생활도 고전하거나 아예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하면은 주장직을 박탈당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구너들은 우스겟소리로 "내보내고 싶은 선수에게 주장을 주자"라던가 "영구결번처럼 주장을 공석으로 두자"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주장의 저주는 아스날이 락커룸의 장기적 구심점이 될 선수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한 채 일관되지 못한 선임을 반복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아스날의 입장에서 상당히 억울할 수 있는 주장인 것이, 본격적으로 주장 체계가 위태롭기 시작한 세스크 파브레가스-로빈 반 페르시로 이어지는 두 명의 유사 캡틴은 아스날에서 굉장히 오랜 기간 헌신했다고 믿었기에 구단에서 주장을 맡긴 것이다. 위에 서술된것 처럼 뜬금포로 이들에게 주장을 맡긴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아스날은 선수단을 평가하고 구성하는 입장인 감독직이 그다지 많이 바뀌어온 팀도 아니기에 더욱 아쉬운 점이다. 동시대에 성공적으로 주장단을 운영해온 경쟁팀 중 하나인 리버풀의 경우, 제라드와 캐러거라는 로컬 보이를 구심점으로 견고한 팀 문화를 만들었고 감독이 바뀌더라도 이들의 위상이 흔들리는 일이 없었다. 제라드도 본인과 팬들이 원치 않았던 시점에 팀을 떠나게 되었으나, 이전부터 조던 헨더슨을 후임자로 낙점하고 꾸준히 힘을 실어주었다. 그 덕에 헨더슨도 경기력의 침체를 겪는 중에도 팀에 헌신하면서 내부인들에게 신임을 잃지 않았고, 경기력을 회복하고는 팀의 전성기를 이끈 주장이 되었다. 아스날에게 오랫동안 팀에 헌신할 수 있고, 선수단의 분위기를 대표할 인물을 찾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이며, 현재 주장을 누가 맡느냐를 넘어서 다양한 세대에 그런 선수들이 분포하게 만드는 것이 견고한 선수단을 이루기 위한 숙제가 될 것이다.

여담으로 아스날 주장들이 티에리 앙리처럼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러한 선수는[BAR]로 표기.

3.1. 해당 선수 목록

3.1.1. 윌리엄 갈라스


2006년 첼시에서 애슐리 콜과 트레이드되어 영입되었고, 무려 데니스 베르캄프의 10번을 받았다.[38] 그리고 앙리가 떠난 2007년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팀 동료가 자신에게 선수단에 대한 욕을 한 사실을 구단의 허락도 없이 언론에 공개하여 구단 관계자들을 분노시키고 주장에서 잘렸다. 그 뒤에도 같은 국가대표팀 동료이기도 한 사미르 나스리와 싸우는 등 멘탈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라이벌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

그래도 피치 위에서는 나름대로 성실했으며, 이적과 관련해서도 토트넘으로 떠나긴 했어도 잡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쪽에서는 갈라스는 잽도 안 될 정도로 최악의 통수를 친 선수가 한 명 있었기 때문에 갈라스의 토트넘 이적은 아주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3.1.2. 세스크 파브레가스[BAR]


본격적으로 아스날 주장 = 이적 공식을 대두시킨 케이스.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당시에도 다소간 잡음을 일으켰는데, 차비 에르난데스를 비롯한 스페인 국대 동료들이 아스날 구단 측을 무시하고 "세스크는 바르셀로나로 와야 한다, 바르셀로나 DNA가 있다."나는 개드립을 치면서 구너들을 분노하게 했다. 여기에 세스크 또한 암묵적으로 이를 지지하는 뉘앙스를 보이면서 잡음을 일으켰고, 벵거는 결국 그를 바르셀로나로 보낸다. 그래도 그동안 아스날에서 해준게 있고 이보다 더한 잡음을 일으키고 이적하는 선수들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여론이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세스크지만 바르사에서 세스크는 탄탄한 중원 뎁스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에 2013-14 시즌을 앞두고 아스날이 처음 세스크의 복귀를 추진하고자 했으나 세스크가 거절했고, 아스날은 메수트 외질 영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1년 후, 여전히 바르사에서 주전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세스크는 2014-15 시즌을 앞두고 아스날 복귀를 원한다는 인터뷰를 뿌렸으나, 이미 1년 전에 세스크를 대신해서 영입한 외질이 있기 때문에 벵거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세스크는 지역 라이벌 첼시 FC로 이적하며 아스날 팬의 분노를 유발했다. 과거 세스크가 "만약 내가 첼시로 이적하면 날 죽여도 좋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던 점[40]을 보면... [41]

다만 한국 구너들이 세스크에게 악감정을 많이 가지는데 비해 현지에서는 그래도 생각보다 여론이 좋은 편.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2000년대 중반부터 아스날의 중원을 이끈 에이스였고 팀에 충성하는 모습도 보였던 점이 많이 반영된 듯 하며, 구단 내에서도 세스크가 코치 연수를 받는 걸 도와줬을 정도로 큰 악감정은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같은 리그의 경쟁구단으로 이적한 누구보단 나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1.3. 로빈 반 페르시


파브레가스를 뛰어넘는 아스날 역사상 최악의 주장. 아스날에서 8년 가까이 뛰면서 재능만큼은 확실했으나, 그놈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좋은 폼을 오랫동안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죽하면 반 페르시가 풀 페르시가 되면 리그를 제패할 것이란 드립이 축구 팬들에게 널리 퍼질 정도. 그런데 세스크가 떠나고 주장 완장을 단 2011-12 시즌, 반 페르시는 커리어 처음으로 철강왕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팬들이 친 드립이 더이상 드립이 아니라 사실이 되게 만들며 득점왕에 올랐다. 퍼포먼스 외적으로도 이 시즌의 반 페르시는 정말 대단했는데, 주장 완장을 이어받고 이전의 개망나니 같던 반페르시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멘탈이 갱생되었으며[42], 굉장히 훌륭한 리더십을 보였기 때문이다[43]. 게다가 각종 인터뷰에서 소속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에 팬들 또한 새 캡틴의 근본 넘치는 듯한 모습에 애정을 쏟아 부어주었다.

그렇게 아스날 팬들은 드디어 건강한 반 페르시를 데리고 우승 경쟁에 나설 수 있다고 좋아했으나, 반 페르시는 이러한 팬들의 기대와 벵거의 신뢰를 기만하고 이적을 타진한다. 그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다는 이유로 반 페르시가 선택한 팀은 경쟁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다. 거기에 반 페르시는 이적하면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라고 속삭였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며 구너들의 뒷목을 강타했다.

이후에는 세스크처럼 아스날 시절이 그립다고 입을 털며 구너들의 욕을 먹고 있다.

3.1.4. 토마스 베르마엘렌[BAR]


사실 주장 완장을 달기 전까지만해도 베르마엘렌은 철강왕에 가까운 선수였다. 센터백 한 자리를 도맡으며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준 것은 물론, 안드레 산토스, 키어런 깁스 등 좌측 풀백이 전멸하자 좌측 풀백 땜빵을 들어가기도 했다. 반 페르시 이후 주장으로 선임된 것에서 보이듯 리더십도 갖췄고 멘탈도 훌륭했다.

그러나 2012-13 시즌부터 잔부상이 늘어나 기량이 다소 저하되기 시작하더니, 2013-14 시즌에는 계속된 부상으로 폼이 더더욱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로랑 코시엘니가 치고나오면서 베르마엘렌은 벤치로 밀려나고 말았으며, 결국 시즌 종료 후 여러 클럽과의 이적설에 휘말렸다가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아스날을 떠나게 되었다.

주장이 된 이후 부상으로 폼이 급격이 떨어져서 아스날을 떠나게 되긴 했지만, 그간 아스날에서 좋은 멘탈로 수비진을 이끌며 활약해온 점, 백업으로 밀린 이후에도 잡음 없이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한 점, 이적 당시에도 별다른 뒷말 없이 좋게 헤어진 점을 고려하면 구너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덤으로 바르사로 이적하면서 이적료도 나름 두둑히 챙겨줬고, 바르사가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이적료 추가 옵션까지 발동시켜서 돈을 더 챙겨주기도 했다.

3.1.5. 미켈 아르테타


아르테타는 베르마엘렌이 주장일 적에 부주장이었다 보니, 베르마엘렌이 부상을 당했거나 벤치로 밀려서 공백 상태일 때 주장 완장을 달고 경기를 뛴 적이 많다. 그러면서 이미 오랫동안 검증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아스날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했으며, 베르마엘렌 이후 아르테타가 그대로 주장직을 넘겨받는 것 역시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주장을 달자마자 부상 악령이 아르테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부주장이던 2013-14 시즌에 이미 노쇠화의 기미는 보였어도 그때까지 부상에 신음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대체 주장 완장에 뭐라도 씌인건지 완장을 달자 마자 잔부상으로 고생하더니 발목 부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며 시즌 아웃 티켓까지 끊었다. 결국 주장이 된 이후 2시즌간 딱 26경기를 소화했고, 그나마도 절반이 교체 출전이었다.

그래도 아르테타는 애초에 주장을 비교적 늦게 단 편이라 머잖아 노쇠화가 올 것은 자명했고[45], 그 노쇠화도 부상으로 인해 과할 정도로 가속화된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기 출전은 적었어도 라커룸에서 통솔력을 발휘해 팀을 이끄는 등, 피치 밖에서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토니 아담스 이후 처음으로 아스날에서 은퇴한 주장이 된건 덤.

그리고 은퇴 후 3년 6개월 뒤 아스날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다시 위기의 아스날을 이끌어 가고 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8등까지 추락하고 그 과정에서 비판도 많이 받았으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스쿼드를 착실히 개편한 끝에 다시 한 번 챔스 경쟁을 할 수 있는 팀으로 바꿔놓는데 성공, 2022-23 시즌에는 아예 프리미어리그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2023-24 시즌에도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과 함께 리그 우승 경쟁중이며, 지긋지긋한 챔피언스 리그 16강 징크스도 깨버렸다.

3.1.6. 페어 메르테사커


아스날 입단 후 메르테사커는 일부 극성팬들의 편견 섞인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제 몫을 해내면서 아스날 수비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토마스 베르마엘렌이 이적한 이후로는 부주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미켈 아르테타가 부상으로 자주 나서지 못했기 때문에 메르테사커가 주장 완장을 달고 많은 경기를 소화한 바 있다. 그리고 아르테타가 은퇴하면서 2016-17 시즌부터는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장을 달자마자 부상이 메르테사커를 괴롭혔다.진짜 뭐가 씌여있는거다 이정도면 완장을 넘겨받자마자 장기부상으로 5개월 이탈이 예고되었고, 회복이 늦어지면서 시즌을 거의 다 날려먹었다. 그나마 마지막의 마지막에 간신히 복귀해서 FA컵 결승전에서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맹활약을 선보이며 아스날에 우승에 기여, 부상 여파를 떨쳐내고 폼을 회복한 줄 알았으나... 이것이 회광반조였다는 사실이 다음 시즌부터 바로 입증되었다. 원래부터 다소 둔한 몸을 수비 지능과 신체조건으로 커버하는 스타일의 수비수였는데 몸이 너무나도 둔해진 것. 사실 이미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2017-18 시즌을 앞두고 차기 시즌이 마지막일 것이라 선언하긴 했지만, 본 시즌에 들어가보니 생각보다도 폼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장기 부상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망가져버렸다고. 결국 아쉬움을 남긴채 시즌을 마쳤고 그대로 은퇴했다.

여러모로 전임 주장이던 미켈 아르테타와 거의 똑같은 루트를 밟았다. 부주장 시절에 주장이 자주 결장해서 주장보다 더 많은 경기를 주장 완장을 차고 뛰었고, 그 주장이 팀을 떠나면서 30대에 들어선 나이에 처음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46] 그러나 주장 임명 직후 평소에는 잘 당하지도 않던 장기부상을 당하면서 폼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주장이 된지 2년만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은 메르테사커는 장기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딱히 노쇠화의 기미도 잘 보이지 않았으며, 신체능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 특성상 롱런하기도 유리한 편이었기 때문. 그러나 장기부상으로 몸이 너무 망가지면서 결국 33세의 나이로 다소 이르게 은퇴를 하게 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은퇴 이후 아스날에 남아서 아카데미 매니저로서 유스 선수들을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2021년부터는 U-23팀 감독직을 역임하고 있다.

3.1.7. 로랑 코시엘니


믿는 도끼가 발등을 제대로 찍어버린 사례. 코시엘니는 원래 아스날의 레전드라고 불려도 손색 없는 선수였다. 2010년에 처음 아스날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코듣보'라는 멸칭으로 불릴 정도로 기대치가 낮았지만, 빠르게 팀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이면서 준주전급 선수로 자리매김하더니, 토마스 베르마엘렌이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주전으로 도약, 팀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로는 파트너가 누가 됐든, 그 파트너가 잘하든 똥을 싸든, 언제나 제 몫은 다 해주는 든든한 센터백으로 안착했고, 리그 최고의 센터백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더라도 그 다음가는 수준의 센터백이라고 부르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수비진을 이끌고 통솔하는 능력도 확실했기에 주장단에도 당연히 들어갔다. 이렇듯 코시엘니는 듣보 수준으로 인지도가 낮던 선수를 아스날이 키워서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센터백으로 만들어냈다는 점 때문에 팀의 레전드 선수라고 평가받았고, 나중에는 과장 좀 섞어서 코담스라는 영예로운 호칭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판은 2019년 여름에 완전히 뒤집힌다.

변화의 씨앗은 사실 2017-18 시즌부터 심어졌는데, 시즌 막바지 유로파리그 준결승전에서 코시엘니가 아킬레스건 부상이라는 중상을 입고 이탈한 것이 그 시작이다. 부상으로 이탈한 코시엘니는 페어 메르테자커의 은퇴 후 주장직을 넘겨받았지만 2018-19 시즌 전반기 대부분을 날려야 했고, 복귀 이후로도 한동안 부상 여파로 고생하면서 폼이 잘 안 올라왔다. 후반기에는 반등에 성공하며 역시 코시엘니라는 평을 들었으나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는 호러쇼를 찍는 등 불안감을 남기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렇듯 부상 여파에서도 자유롭지 못한데 2019년 여름 기준 코시엘니의 나이는 33세로 부상+노쇠화로 언제 폼이 훅 가도 이상하지 않았고, 결국 보드진은 코시엘니에게 기본급 삭감과 짧은 계약기간이 주된 재계약을 제시했는데, 여기서 파국이 시작되었다.

아스날의 재계약 제의에 코시엘니는 불만을 품었고, 이에 불법적으로 타 구단과 접촉하고 계약 해지를 요청하더니,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프리시즌 투어 합류를 거부하며 대놓고 태업했다. 당연히 팬덤은 난리가 났다. 주장이라는 선수가 대놓고 팀 합류를 거부하고 이적을 타진하고 있는 상황인데 따지고보면 세스크나 반 페르시도 태업은 안했으니 그들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 더구나 팀에 높은 충성심을 보여온 코시엘니가 이런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은 구너들이 많았다.

결국 코시엘니는 고국 리그의 FC 지롱댕 드 보르도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보르도가 무려 5년 계약을 제시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5년 보장 계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코시엘니를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는 사람들도 꽤 생겨났다. 그러나 입단 오피셜 영상에서 아스날 유니폼을 입은 채로 등장했다가 그걸 벗어서 보르도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촬영, 제대로 구너들을 엿먹이면서 아스날 팬덤에서 코시엘니에 대한 옹호 여론은 거의 다 사라졌다.[47] 물론 아스날 구단의 대우가 너무 짜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코시엘니가 이정도로 막나가는 것은 잘못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 오죽하면 반 페르시 그 이상의 통수라는 평가도 있으니...

그러나 코시엘니는 계약 기간 5년을 마저 채우기도 전인 2021-22 시즌 중반에 1군 스쿼드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한 후 쓸쓸하게 은퇴했다. 아스날에서 은퇴했다면 레전드 대우라도 받고 은퇴했겠지만 보르도로 이적하면서 계약 기간은 기간대로 못 채우고 대우도 대우대로 못 받으며 씁쓸하게 현역 생활을 마감했으니, 코시엘니를 원망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꼴 좋다 소리가 나올만한 결과.

3.1.8. 그라니트 자카


코시엘니가 이적 파동을 일으킨 후 팀을 떠나면서 자카가 주장직을 넘겨받았다. 사실 이전에도 3,500만 파운드의 이적료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며 구너들이 썩 좋아하지는 않는 선수였으나, 그럼에도 팀 내 리더십은 인정받고 있었기에 주장 완장을 받게 된 것.

하지만 주장이 된 이후 경기력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며[49] 팬들에게 더더욱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극성 팬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한 것. 1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FC전에서 자카가 교체되어 나가자 이에 극성팬들이 먼저 패드립을 시전했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자카는 팬들에게 욕설을 시전하고 주장 완장을 바닥에 내팽겨치는 [50] 행동을 보였다. 원인이 어찌되었건 프로스포츠에서 자팀 팬들과의 이러한 직접적인 충돌은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결국 자카는 주장직을 박탈당했다.

다만 이 건의 경우 원인을 제공한 것이 팬들의 과도한 욕설이다보니 과거 안정환의 관중석 난입 사건때처럼 어느정도 이해해주는 여론도 있다. 그리고 이 사건과 별개로 팀 내 리더십은 그 전이나 후나 인정받고 있으며[51], 미켈 아르테타 부임 후 부활해서 폼이 살아나면서 2019-20 시즌 아스날 올해의 선수 후보 5위에도 올랐다. 현재도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아스날 스쿼드에서 중고참으로서 라커룸 리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언급이 없었지만 그 사고를 치고도 주장단에 남아있다가 2022-23 시즌에는 부주장직을 역임했다. 이후 2023년 여름 이적시장에 아스날에게 생각보다 큰 이적료를 안기며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며 팬들과 나름 아름답게 이별하게 됐다. 주장 완장을 찬 채로 큰 사고를 쳐놓고 평판을 회복한 사례.

3.1.9.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BAR]


2018-19 시즌 PL 득점왕을 차지하며 아스날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으나, 사실 주장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어느정도 있었다. 이미 가봉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역임한 만큼 경험 자체는 꽤 있지만, 그라니트 자카 다비드 루이스에 비하면 리더십이나 도르트문트에서도 보여줬던 개인적인 태도 등이 주장을 맡기엔 다소 부족한 것 아니냐는 것이 걱정의 주된 논지. 그러다가 자카가 주장에서 해임되면서 오바메양에게 주장 완장이 넘어왔고, 이후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면서 흠잡을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FA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아스날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적설이 숱하게 나돌았지만 2020년에 재계약까지 체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스날의 주장 징크스가 드디어 끝날것이라는 기대감이 팬들 사이에서 가득했다.

그러나 2020-21 시즌, 재계약 직후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래도 2020-21 시즌의 부진은 어머니의 투병과 그로 인한 병 간호 문제로 프랑스를 계속해서 오가야 했기 때문에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라도 있었으나, 2021-22 시즌에도 부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록만 보면 2경기당 1골씩 넣는 나쁘지 않은 득점력을 보여주는 듯 하나, 이것도 EFL컵 해트트릭으로 스탯 사기를 친거지 리그에서의 성적은 지난 시즌과 별반 다를게 없으며, 결정적으로 경기 내용에서 빅 찬스 미스가 잦고 경기 내 영향력이 크게 떨어지는 등 문제점이 산적해있다. 여기에 잦은 지각 등 팀 내규 위반이 반복되면서 코칭스태프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결국 주장직을 박탈당했다.

주장직 박탈 후 미켈 아르테타의 플랜에서도 완전히 제외되었고, 결국 2022년 겨울 이적시장에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아스날을 떠났다. 한편 아르테타는 남은 시즌은 따로 주장을 선임하지 않고 알렉상드르 라카제트를 주장 대행으로서 잔여 시즌을 소화하게 할 것임을 밝혔으나, 공교롭게도 라카제트 역시 인터뷰에서의 실언과 폼 하락으로 주장 잔혹사를 소소하게 이어가는 한 축이 되고 말았다. 결국 시즌 막바지에는 마르틴 외데고르가 주장 대행 자리를 받았다.

그리고 오바메양은 2022-23 시즌을 앞두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오자 다시금 이적을 타진했고, 결국 첼시 FC로 이적하며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그래도 아르테타가 행운을 빈다고 코멘트를 남기며 어느정도 감정이 해소되는 듯 했으나, 2022년 10월 9일에 바르사 시절 오바메양이 아르테타를 보고 스타 선수를 다루지 못하는 감독이라고 뒷담화하는 영상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이래저래 갈등의 골이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 모양새.[53] 그리고 오바메양은 첼시 이적 후 매번 저점을 갱신하며 아르테타가 자신을 왜 보냈는지에 대한 증명만 계속해내고 있다. 결국 후반기에는 첼시의 UEFA 챔피언스 리그 25인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3.1.10. 현재: 마르틴 외데고르

21-22시즌 오바메양 주장 박탈 사건 이후 남은 경기들을 정식 주장 선임 없이 라카제트에게 주장 대행을 맡겼으나 코로나 이슈 및 폼 하락으로 인한 주전 경쟁에서 뒤쳐지자 아르테타는 시즌 마지막 8경기의 주장으로 외데고르를 선택하여 팀을 이끌게 했었다. 시즌 종료 후 연속되는 주장 잔혹사 때문인지 다음 주장은 자신이 직접 선임한다는 인터뷰를 남겼고, 언론들은 주장 후보로 외데고르 이외에도 이미 주장 선임 경력이 있는 자카와 외데고르 이전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장 후보였던 티어니 등을 꼽았지만 자카는 이미 한번 주장 지위를 박탈당한 전적이 있고, 티어니는 이제는 부상이 상수가 될 정도의 유리몸인데다 프리시즌에도 부상으로 인하여 경기는 커녕 훈련에도 참여를 못하면서 사실상 외데고르 단독 후보라는 분위기가 짙었다. 실제로 프리시즌을 주장 선임 없이 진행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주장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고 플로리다 컵 우승 직후 엘네니가 교체돼서 나왔던 외데고르에게 다시 주장 완장을 넘겨 트로피를 들게 하는 등 팀원들의 지지를 받았었고 결국 7월 30일 부로 공식적으로 주장에 임명되었다.[54] 구너들은 대체로 이미 국대 주장에 라커룸 리더 역을 맡고 있어서 주장 선임이 당연하다라는 반응과 얘마저도 부상에 시달리거나 안좋은 모습으로 탈주엔딩을 찍어버리면 방출 후보들에게 주장직을 넘기자는 반응이다.

외데고르 주장 임명 당시 우려의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외데고르의 성격이 카리스마가 있는 성격이 아닌 조용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던지라 망가질대로 망가진 팀 리더십 체계를 재건하고 선수단을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며 리그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팀을 어떻게 이끄는 지에 대한 의문점도 존재했다.[55] 다만 외데고르는 이미 국대에서 주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더러 카스티야 시절 역대 최연소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주장 역할을 나름 꽤 해본 선수에다[56] 당시 감코진을 포함한 팀 스태프진과 선수단의 신뢰를 받고 있던 점[57], 결정적으로 외데고르 말고는 주장을 맡을 인물이 아스날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58] 때문에 우려에 대해 빠른 진압이 가능했다.

22-23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지난 시즌의 아쉬웠던 내용들을 잘 수습하고 팀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는 평이 많다. 또한 외데고르 이외 주장단인 자카, 제주스, 홀딩 등이 외데고르를 보좌하며 주장직의 부담을 나눠갖는 모습을 보이며 정말 오래간만에 사건사고 없는 주장단을 운영중이다. 주장직을 맡고 난 이후 첫 시즌에는 박살나있던 팀의 리더십 체계를 어느정도 재건해내는데 성공한 셈.

23-24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이전보다도 더 나아진 리더십을 보였다. 단적으로 아스날이 늘 겪어오던 시즌 막바지의 부진[59]을 이번 시즌에는 외데고르의 리더십과 함께 극복한 것이다. 비록 아스톤빌라전의 패배나[60] 그 이전의 경기에서 좋지 못한 모습 때문에 23-24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내어줬지만, 시즌 마지막 라운드까지도 우승 경쟁을 이어갔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호평하였다. 마지막 라운드 종료 이후 팬들에게 전한 연설 또한 현지 팬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국대와 아스날 모두 공수의 핵심이자[61] 주장 역할까지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보니 당연히 구너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쁠 수가 없다.

4. 20번의 저주

9번과 마찬가지로 20번을 단 선수들은 죄다 망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 선수들이 있다.
현재 20번은 조르지뉴가 이어 받았으며, 토마스 파티의 백업으로 싼 값에 데려온 것이니 백업으로써의 가치도 없을정도로 망하지 않는 이상은 누누부터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저주가 깨질 전망이다. 심지어 조르지뉴는 이적 후 계속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스톤 빌라와의 24라운드에서는 아예 팀 승리까지 이끌었다. 이후 아르테타 체제 하에서 준주전으로 착실하게 경기를 뛰고 있으며 새로운 6번 영입생 라이스의 멘토가 되어 빌드업과 경기 조율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는 등 아스날에 부족했던 베테랑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 중이다.

5. 아시아 징크스

체격이 우락부락한 선수들이 워낙 많은 유럽 리그에서 상대적으로 피지컬이 밀리는 아시아인이 성공하기가 몹시 힘들긴 하나, 맨유의 박지성, 토트넘의 이영표 손흥민, 스완지의 기성용, 레스터의 오카자키 신지, 사우스햄튼의 요시다 마야, 맨시티의 쑨지하이, 위건의 알리 알 합시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아시아 선수는 존재한다. 허나 아스날의 경우, 아시아 선수들의 성적은 늘 처참했다.

아시아인이 유럽에서 성공하는 경우, 특히 EPL에서 성공하는 것 자체가 몹시 드문 일이지만, 이게 아스날에서 징크스로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스날이 아시아 시장(특히 일본)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아시아 선수들을 많이 데려온 영향이 제일 크다. 여기에 아르센 벵거의 영입 전략도 한 몫을 했다. 물론 이나모토, 미야이치, 아사노의 경우 유망주로써의 가능성만을 보고 데려왔기에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을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이들은 아스날 소속으로 임대만 전전하다가 아스날 유니폼은 끝내 입지 못하고 방출되었다.[65] 이 선수들 말고도 니클라스 벤트너, 베닉 아포베, 이그나시 미켈, 존 토랄, 토마스 아이스펠트 등 유럽 출신임에도 프로에서 시원찮은 모습을 보여준 아스날의 유망주들이 매우 많다. 다만 아시아인의 왕래가 잦았던 클럽이기에 징크스로 간주되는 것.

특히 한국에서 이 징크스가 많이 부각되는데, 2000년대 초반 아스날과 우승을 다투는 팀으로 라이벌리가 있었던 맨유에는 박지성, 최고 지역 라이벌인 북런던 더비의 토트넘에는 손흥민이라는 매우 훌륭한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된다. 마침 아스날을 거친 대부분의 아시아 선수들이 일본 출신이라는 점도 있고. 이 때문에 구너이건 구너가 아니건 한국 축구팬들은 한국 선수의 아스날 이적설에 대해 반기지 않는 편이다. 구너가 아닌 경우는 박주영을 비롯하여 아스날에서 실패한 아시아 선수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편이고, 구너인 사람들은 상기한 이유 + 악성 팬덤들의 유입으로 팬 커뮤니티의 질이 떨어지게 될까봐 더욱 거부하는 분위기이다.

2023년 현재는 토미야스 타케히로가 아스널에서 뛰고 있는데, 확고한 주전까지는 아니어도 이전에 뛰었던 아시아 선수들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팀 공헌도를 보여주면서 징크스가 깨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5.1. 해당 선수 목록

5.1.1. 이나모토 준이치

현재 일본 J3리그 SC 사가미하라 소속. 아스날에서는 01-02 시즌 임대로 뛰었다. 박주영과 함께 이 징크스 해당자들 중 축구선수로 가장 성공한 케이스지만 하필 실패해도 아스날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약간 억울하게 되었다.

1999 청소년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이었고,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으로도 선발되는 일본 최고의 유망주였다. 이와 같은 활약으로 유망주 수집가 아르센 벵거 감독의 눈에 들어 감바 오사카에서 아스날로 임대를 오게 된다. 하지만 파트리크 비에라, 레이 팔러, 에두 가스파르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출전을 하지 못했고, 감바 오사카로 복귀한다.

허나 시즌 직후 열린 월드컵에서 2골을 뽑아내는 등 일본을 사상 첫 16강에 올리는 데 공헌했고, 바로 다은 시즌 임대를 간 풀럼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 유럽 무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잉글랜드, 터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활약하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5.1.2. 미야이치 료

현재 일본 J1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소속.

아스날이 최초로 완전 영입한 아시아 선수로, 2011년 겨울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스날과 프로계약을 맺었고, 워크퍼밋 문제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반년 임대를 다녀오게 되었다. 이후 11-12 시즌부터 아스날에 합류하여 간간이 기회를 받고 있었다. 시즌 후반기에 티에리 앙리의 임대 영입 등 자리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 볼턴으로 임대를 다녀왔고, 초반에는 잘 하나 싶더니 후반에는 팀과 함께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볼턴은 강등된다. 아스날 복귀 후 이번에는 위건으로 임대를 다녀오고, 부상에 시달리다가 시즌 아웃, 위건 역시 강등되고 만다.

13-14 시즌에는 아스날에서 뛰고 있고, 비슷한 시기에 온 박주영보다는 나으나 그래도 몇 경기밖에 출장을 못하며 밀린 상태. 14-15 시즌은 에레디비시의 FC 트벤테로 임대되었으나 여기서도 거의 2군에서 뛰는 등 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2015년 방출된다.

이후에도 선수 생활이 참 기구한데, 독일 2부의 장크트 파울리에 입단했으나 오자마자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 이후에도 부상으로 별 출장을 못하면서 그렇게 잊혀지는가 했지만, 18-19 시즌부터 중용 받고 있고 나름 활약 중이다. 그러다 2021년 요코하마로 이적하며 J리그에 진출했다.

5.1.3. 박주영

위의 등번호 9번의 저주 문단에 있는 박주영 항목과 박주영 문서 참고.

5.1.4. 아사노 타쿠마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보훔 소속.

도하 참사의 주역으로 한국을 꺾는 주역이었다. 이 활약과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의 활약으로 벵거 감독이 영입했고, 손흥민과 치열한 한일전이 예상되었으나 워크 퍼밋이 나오지 않아 최종적으로 아스날 소속으로 뛴 경기가 전무하다.

슈투트가르트 2시즌 임대를 갔는데 첫 시즌은 준수했으나 두 번째 시즌에는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고 하노버 임대시절에는 13경기에 출전해 경기력은 무난했으나 공격포인트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하노버가 바이아웃을 아스널에 지불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사노를 배제시킬 예정인데 이유가 하노버가 한 경기만 더 아사노를 출전시킬 경우 260만 파운드(약 37억 원)의 바이아웃을 아스널에 지불하며 완전 영입해야 하는 강제 조항이 있어서 하노버는 이 조항을 발동시키지 않기 위해 이후 후반기에는 아사노를 아예 출전명단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하노버에서 임대복귀한 후에는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그를 전력 외로 판단하고 파르티잔으로 이적시킨다. 파르티잔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인 아사노는 2021년 여름에 보훔으로 이적하며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온다.

5.1.5. 현재: 토미야스 타케히로

2021-22 시즌, 볼로냐 FC 1909에서 주전 라이트백으로 뛰던 토미야스 타케히로가 아스날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징크스가 깨질 가능성이 생겼는데, 토미야스의 상황은 전임자들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다.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은 이나모토 준이치, 박주영이나 임대만 다니다가 아스날 커리어를 끝낸 미야이치 료, 아예 워크퍼밋이 안 나와 아스날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아사노 타쿠마에 비하면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이적직후 모든 리그 경기에서 선발출장하며 안정적인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그의 입지는 생각보다 매우 탄탄해보이는데, 이는 엑토르 베예린의 이탈, 그리고 세드리크 소아르스, 칼럼 체임버스라는 상대적으로 쉬운 포지션 경쟁자 뎁스에 기인한다. 게다가 아스날이 5라운드도 채 되기 전 19위로 내몰린 위기 상황에서 영입된 토미야스가 단기간에 현재 4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을 만큼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에 토미야스가 이대로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이제부터 저주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올 시즌 토미야스 본인의 폼만 놓고 보면 보란듯이 징크스를 깨트린것만 같다. 수비력은 물론, 양발을 통해 팀 내 빌드업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등 우려받던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의 본 포지션이 아닌 레프트백에서 뛴 리즈전에서도 평소에 잘 풀리지 않던 왼쪽 공격이 살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히 긴 기간동안 부상으로 이탈한 점은 토미야스가 아시아 징크스를 완벽히 깨뜨렸다고 선뜻 단언하기는 힘들게 한다.

2022-23 시즌에는 윌리엄 살리바의 임대 복귀로 벤 화이트가 오른쪽 풀백으로 이동하면서 주전에서 밀렸다. 물론 이와 별개로 아스날 팬들은 여전히 토미야스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나올 때마다 폼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민심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원래 포지션인 우풀백 뿐만아니라 센터백, 좌풀백까지 소화 가능해서 부상이 잦은 티어니와 진첸코를 대신해서 좌풀백으로 나오는 빈도가 늘고 있다. 다만 후반기 들어서는 다소 불안불안하다. 그리고 스포르팅 CP와의 유로파 16강 2차전에서 장기 부상 티켓을 끊고 시즌 아웃되며 이 분과 함께 실력은 괜찮으나 부상이 모든 것을 틀어막는 케이스로 향하고 있다. 22-23시즌 기준 이반 프레스네다와의 링크가 진하게 나고 있기에 잦은 부상을 극복하지 못할 시 아시아 징크스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23-24 시즌 위리엔 팀버까지 영입되며 토미야스도 떠나보내는 것으로 보였으나, 진첸코의 훌륭한 백업자원으로서 신임을 받았다. 이달의 선수까지 받는 활약에 힘입어 본인도 부상당하기는 했지만 2024년 3월에는 재계약까지 완료, 2027년 6월까지 아스날에 남게 되었다!

6. 10번의 저주

10번도 데니스 베르캄프 이후로는 뚜렷하게 활약하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최근 들어 징크스로 보는 팬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도 스미스로우가 혜성처럼 나타나 10번을 차지하며 저주 소리까지는 가지 않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으나 10번을 달자마자 극악의 유리몸이 되어버렸으며 설상가상으로 감독의 전술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10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6.1. 해당 선수 목록

6.1.1. 윌리엄 갈라스(2006~2010)

갈라스에 대해서는 위의 주장의 저주 항목 참고.

6.1.2. 로빈 반 페르시(2010~2012)

반 페르시에 대해서는 위의 주장의 저주 항목 참고.

6.1.3. 잭 윌셔(2012~2018)

윌셔는 19번을 달고 뛴 2010-11 시즌 화려하게 아스날 1군에 자리잡았으나 2011-12 시즌을 부상으로 완전히 날려먹었다. 이후 반 페르시가 이적하자마자 10번을 물려받았으나 잦은 부상으로 센세이션했던 2010-11 시즌의 폼을 보여주지 못하고 계속 퇴보하게 된다. 여기에 흡연 관련 이슈, 나이트클럽 폭행 사건에도 휘말리는 등 구설수가 많아 점차 아스날 팬들과 벵거의 인내심을 갉아먹었고, 2017-18 시즌 중반기에 잠깐 부활을 논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결국 아스날을 떠나게 된다.

6.1.4. 메수트 외질(2018~2021)

아스날의 클럽 레코드를 갱신하고 화려하게 이적한 외질은 5년 동안은 11번을 달고 환상적인 폼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5-16 시즌에는 도움왕을 차지할 정도. 하지만 10번을 달게 된 시즌에 아스날은 우나이 에메리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이 이후 외질은 전술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렸으며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이 잦았다. 여기에 동료들과 히피 크랙을 흡입하거나 라커룸 분위기를 망친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벵거가 떠나고 난 뒤에는 팀에서 숱한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미켈 아르테타 부임 이후에는 중용 받나 했으나, 결국 다니 세바요스에게 밀리며 코로나가 터진 후 아스날 소속으로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여기에 라커룸에서 분위기를 망치는 고참 선수로 지목되기도 했으며 결국 아스날은 외질에게 주급 보조를 조건으로 상호계약해지를 한 후 페네르바흐체로 이적시켰다.

6.1.5. 에밀 스미스 로우(2021~2024)

에메리가 부임한 2018-19 시즌 화려하게 데뷔하여 이후 벤치에서 차츰 출전 시간을 늘려 나가다 2020-21 시즌 15라운드 첼시전에서 맹활약하며 7경기 무승을 기록하던 아르테타와 아스날을 구해냈다. 이후 시즌 내내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이며 명실상부 팀의 에이스이자 미래로 활약했으며 아스날은 2021-22 시즌 시작 전 스미스 로우에게 등번호 10번을 주며 재계약을 성사시켰다. 2021-22 시즌에는 전반기에 굉장한 활약을 보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까지 승선했으나 후반기에 잦은 사타구니 부상으로 폼 유지에 어려움을 겪으며 좌측 윙 주전 자리를 가브리엘 마르티넬리에게 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 부카요 사카와 함께 리그 10골을 기록한 유이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 사타구니 부상이 2022-23 시즌에도 심해진 양상을 보여주며 결국 2022년 9월 29일 사타구니 힘줄 수술을 하게 되었다. 다만 스미스 로우는 주급도 적은 데다가 문제가 되는 부분이 부상 하나인데다가 나이도 어려서 아직 저주 수준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결국 부상 이후 본인의 좋았을 적의 폼을 되찾지 못하고 입지가 좁아져 매각 자원으로 전락했다. 이후 풀럼으로의 이적이 확정되며 결국 지긋지긋한 10번의 저주를 깨 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스미스 로우는 오히려 아스날 10번의 저주에 쐐기를 박으며 잔혹사의 한 파트로 남게 되는 모양새. 그래도 로우는 SNS에 본인의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장문의 편지를 남긴 바 있어 아스날의 10번 선수들 중에서는 비교적 서로 좋은 모습으로 떠난 편이다[66].

7. 사라진 징크스

7.1. 아론 램지의 저주

램지가 비로소 밥값을 시작한 2012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골을 넣을 때마다 유명인사가 한 명씩 사망하는(!!!) 섬뜩한 저주이다. 아론 램지 본인은 이 저주를 매우 싫어한다.애초에 내가 골넣으면 누가 죽는다는 내용인데 좋을 리가 없다 다만, 이 저주는 헛소리인게... 이 넓은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은 많고, 죽을 나이가 된 유명한 인사가 많다. 다만, 램지가 과거에 골을 넣었을때 빈 라덴이 사망한게 워낙 이슈가 되었던지라...

다만, 현지나 램지 본인은 이 저주를 아주 싫어한다. 아스날팬이라면 이제 언급을 말아야... 하루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아론 램지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램지가 2019년을 마지막으로 아스날을 떠나게 되면서 이 저주 언급은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유벤투스 이적 이후에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7.2. 골키퍼 저주

2012/13 시즌 슈체스니가 호러쇼를 보이면서 시작된 저주이다. 옌스 레만의 폼이 떨어지던 시기인 2007년부터 다비드 오스피나의 등장 시기였던 2015년까지 이어진 저주로, 비록 시기는 짧았지만, 제대로 된 골키퍼가 한 명도 없었던 이 시기가 아스날의 암흑기이기도 했기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다.

골키퍼 저주의 원인은 벵거 사단의 골키퍼 코치였던 게리 페이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저주의 희생자였던 우카시 파비안스키, 보이치에흐 슈쳉스니가 최근 페이튼을 비판하였는데, 페널티킥 코칭을 할 때 " 아자르는 너가 다이빙한 반대 방향으로 슈팅을 할 거야", " 아자르는 이쪽 방향 또는 저쪽 방향으로 찰 거야, 제일 좋은 건 너의 느낌대로 가는 거야"라며 엉터리 코칭을 했다고 밝혔고, 비디오 분석 때도 본인들의 실수 영상을 보여주며 "봐, 너는 완벽하지 않아(...)"라며 축알못이 봐도 당연한 것들만 짚어주고 선수들 기 죽이는 이상한 코칭을 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코칭을 하니 옌스 레만, 페트르 체흐, 다비드 오스피나 등 엉터리 코칭 없이도 잘 하는 클래스 있는 키퍼들이 아닌 이상 골키퍼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부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실제로 파비안스키와 슈쳉스니는 아스날을 떠난 후 각각 스완지 시티와 로마에서 포텐을 터뜨렸고, 현재는 각각 PL과 세리에에서도 수준급 골키퍼로 인정받고 있다.

다행히도 다비드 오스피나 페트르 체흐의 영입을 통해 저주는 깨졌고, 벵거의 사임과 함께 페이튼도 팀을 떠났다. 이후 미켈 아르테타와 함께 부임한 이냐키 카냐 골키퍼 코치 아래에서 베른트 레노[67],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아론 람스데일 등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저주는 완전히 종식되는 모양새. 오히려 이러한 선수들의 성장에 더해 아스날에서 실패하고 타 팀에서 포텐이 터진 파비안스키와 슈쳉스니, 신체조건 문제로 PL을 떠났지만 여전히 좋은 활약은 이어가는 오스피나 등에 대한 평가가 겹치며 2021년 시점에서는 오히려 골키퍼 명가로 평가되고 있다. 코치의 문제로 선수를 키워내지 못했을 뿐, 유망한 골키퍼를 데려오는 안목 자체는 확실했던 셈.

7.2.1. 마누엘 알무니아

개그맨.

옌스 레만의 폼이 떨어질 때 즈음 주전으로 올라왔고, 레만이 이적하자 1번 등번호를 달게 된다. 2008-09 시즌까진 나름 괜찮았고 잉글랜드 귀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귀신같이 폭망. 2009-10 시즌부터 개그맨이라는 오명과 불안정한 경기력으로 우카시 파비안스키에게 밀린 끝에 결국 2012년 왓포드로 방출된다.

7.2.2. 우카시 파비안스키

너무 늦게 터진 비운의 골키퍼.

알무니아의 부진을 틈타 2010-2011 시즌 주전으로 발돋움한다. 개그맨 알무니아보다는 나았지만, 얘도 영... 결국 이후에 등장한 골키퍼 유망주, 비토 마노네 보이치에흐 슈체스니에게 밀려 버린다. 하지만 마노네는 결국 밀어내는 데 성공했고, 2013-14 시즌 슈체츠니의 서브 골리이자 컵대회 골리를 맡아 아스날이 9년 만에 메이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더 많은 출장 시간을 원했던 파비안스키는 2014년 스완지 시티로 이적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스완지 시티에서 꽃을 피우며 폴란드 국가대표팀에서는 아스날 시절 경쟁자였던 슈체스니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 아스날 입장에서는 늦게 터져 안타까운 선수. 그래도 아스날 입장에서 파비안스키를 대신할 골리로 데려온 다비드 오스피나가 잘 해줬기에 아쉬움은 덜 수 있었다.

7.2.3. 비토 마노네

반짝 활약, 이후 잠수

사실 원래 서브 골리였으나 2012/13 시즌 반짝 좋은 활약을 보여 기용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초반에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보이치에흐 슈쳉스니가 부상에서 복귀함에 따라 다시 밀리게 되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선덜랜드 AFC로 이적했다.

7.2.4.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2013/14 시즌 골든 글러브 수상자[68]였으나 흡연과 사우스햄튼전의 대실책으로 버려진 선수. 슈소폭탄

위 4명보다는 확실히 나은 활약을 보였으나 불안불안했던 경기가 더 많았으며, 14/15 시즌 20라운드 사우스햄튼전 대형 사고를 친 데 이어 락커룸 흡연까지 적발되어 벵거 눈 밖에 났다. 그리고 서브 골리였던 다비드 오스피나가 연일 맹활약을 한 데 이어 다음 시즌에는 페트르 체흐까지 가세. 결국 AS 로마를 거쳐 유벤투스 FC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세리에 A에서는 포텐이 터지며 정상급 골리로 대활약중이며, 잔루이지 부폰과의 경쟁에서도 이기고 주전 골리로 활동하고 있다.

7.2.5. 저주 종결

2015년 겨울, 슈쳉스니의 호러쇼에 보다 못한 벵거 감독은 서브였던 다비드 오스피나를 남은 시즌 주전으로 기용하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아스날이 상승세를 타며 리그 3위까지 뛰어올라 막판 첼시의 리그 우승을 저지할 대항마로 꼽힐 정도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15/16 시즌부터 17/18 시즌까지 아스날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월드 클래스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합류하며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남미에서 탑 클래스로 인정받는 다비드 오스피나도 유럽대항전 & 컵 대회에서 주전으로 나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사실 이미 저주는 확실히 끝났다고 봐도 된다.

허나, 페트르 체흐는 나이때문인지 17/18 시즌들어서 급격한 부진으로 무너지고 말았고, 결국 마지막 시즌에는 베른트 레노가 리그에서 주전을 맡았고 체흐는 컵대회에서만 나왔다. 오스피나의 경우는 늘 평타는 치고 있지만, 신장의 한계때문에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 부임 이후에는 SSC 나폴리로 임대 후 이적해 클래스에 맞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체흐와 오스피나가 모두 떠난 2019-20 시즌에도 레노가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다 닐 모페에게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금 골키퍼에 대한 불안감이 제기되었으나, 아스날 짬밥 원탑 선수인 서브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69]가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팀 상승세에 기여하였고 FA컵 우승 & 커뮤니티 쉴드 우승까지 이끌어 낸 이후 20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안겨주며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이로 인해 한 때 골키퍼 저주에 시달렸던 팀이라는 평이 무색하게 골키퍼 명가로 평가가 뒤바뀌었을 정도.

하지만 20-21시즌 들어 레노가 추락하는 팀과 함께 극심한 기복을 보여주고, 마르티네스를 대신해서 데려온 루나르 루나르손은 영입 당시부터 구너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결국 엄청난 호러쇼만 보여줬다. 반면 마르티네스는 빌라에서 리그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빌라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으니 속이 쓰릴 노릇. 결국 21-22시즌을 앞두고 루나르손은 OH 뢰번으로 임대가고, 아론 람스데일에게 옵션 포함 30M이라는 거액을 투자해야 했다. 다행히도 람스데일이 21-22시즌 현재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 활약을 이어간다면 골키퍼 명가라는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인 맷 터너가 서브로 합류한 건 덤.[70]

23-24 시즌은 터너가 노팅엄으로 떠났고 브렌트포드에서 빌드업에 능한 리그 정상급 키퍼 다비드 라야 영입을 하면서 램스데일-라야 경쟁전이 이어지고 있다.

8. 다른 팀의 비슷한 사례

9. 여담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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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넬카는 한 시즌 반짝 후 레알 마드리드 이적, 포돌스키는 첫 시즌을 제외하면 그다지 좋지 못한 경기력과 영향력을 보였으며, 라카제트는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꾸준히 리그에서 10골 이상을 득점했지만 이적료 대비 저조한 득점력과 마지막 시즌의 심각한 부진이 원인이다. [2] 그나마 10번은 스트라이커의 등번호이기도 하기 때문에 베르캄프는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다. 앙리가 잘못했네. [3] 원래 10번이었다가, 얼마 후 아스날의 레전드가 되는 선수가 오면서 9번으로 바꾸게 된다. [4] 아스날,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첼시. 물론 이 당시 맨시티는 이후처럼 높은 위상을 가진 팀이 아니었다. [5] 앨런 시어러와 타이기록인 13골. 이 기록은 2020년 에디 은케티아가 14골을 기록하며 깨진다. [6] 대부분의 커리어를 윙어로 보냈으나 아스날에서는 전술에 따라 4-4-2에선 세컨드 스트라이커, 4-2-3-1에선 본 포지션인 윙어로 활동했다. 이 중 아스날은 4-4-2를 주로 많이 썼기 때문에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더 많이 뛰었다. [7] 리그에서 10골 이상 넣은 시즌이 없다. 아스날은 물론 다른 팀에서도. [8] 전체적인 활약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두 골을 기록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우승에 나름 공헌을 했다. [9] 오죽하면 아스날 시절 별명이 컵티스타였다. [10] 다만 아무리 잘쳐줘도 공격수로 중앙 자리에서 뛰려면 세컨드 스트라이커만 뛸 수 있는 레예스에 비해 밥티스타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뿐만 아니라 최전방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는 있었다. [11] 이 때문에 아스날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밥티스타가 공격수 자리에서 뛴 적이 거의 없다고 알려졌을 정도였으나 의외로 아스날을 떠난 이후에도 AS로마와 말라가 등의 클럽에서도 스트라이커로 뛴 적이 생각보다는 있는 편이었다. [12] 이후, 샤흐타르는 아스날과의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는데 이 때도 에두아르도가 득점했다. [13] 아스날에서는 Park Ju Young을 사용하였다. [14] 다만 한국 축구 팬들 중에서 박주영이 아스날에 입단하기 전부터 아스날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애초에 주전으로서가 아니라 벤트너의 대체자로 영입한 거고 그것도 아스날의 코치가 박주영의 폼이 리저브 수준도 안된다고 하는 말을 할 정도로 경기력이 좋지 않은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안보이는데도 괜히 애꿎은 아스날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욕하고 있다고 분노하는 쪽이 대다수였다. [15] 본래, 릴 OSC로 이적이 확정되는 듯 했는데 아스날이 오퍼를 걸자 릴과 계약을 끊어버렸다. [16] 당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었기 때문에 맨유와 아스날의 경기에 대한 주목도가 아주 커졌었다. 그러나 둘 다 교체 명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둘이 제대로 붙은 적은 없었다. [17] 반 페르시는 훌륭한 실력과 지독한 유리몸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보니 이름과 엮여 "시즌 반 페르시"라는 비아냥을 들었으나, 그 대신 부상 없이 시즌을 풀로 뛰는 "풀 페르시" 모드가 될 경우 리그 득점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평가 받았다. 이러한 의견은 팬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2011-12 시즌에 완벽히 해냈다. [18] 이 점에서 벵거가 왜 박주영을 영입했는지 알 수 있는데 아스날의 전술이 기본적으로 반 페르시를 위주로 짜여있지만 반 페르시가 이전 시즌까지 반 시즌 페르시라고 불릴정도로 유리몸이라 샤막을 베이스로 전술을 고쳐야하는 상황이 나왔다. 하지만 반 페르시정도는 아니어도 나름 육각형 공격수인 박주영이 있다면 반 페르시 위주의 전술을 박주영으로 기동할 수 있게 된다. 즉, 반 페르시가 유리몸이었다면 2옵션 내지는 1옵션도 노려볼만 했지만 반 페르시의 유리몸 기질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3옵션으로 고정되는 선수였다. [19] 미야이치는 실제로 아스날 리저브 경기와 U21팀 경기에서 스트라이커로도 뛴 적이 있었다. [20] 박주영은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 참여하지 못하고 브라질 월드컵 4달 후인 2014년 11월에 은퇴했다. [21] 사실 후반기에 폼이 떨어져 다시 후보가 되었지만 시즌 중반까지 활약이 상당히 좋았다. [22] 수준급의 공격수임에도 득점력과 기복 문제가 있는 편으로, 17년에 이적한 이후로 20/21 시즌이 끝날 때 까지 단 한 번도 리그 15골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결국 21/22 시즌에는 필드골 2골이라는 충격적인 골 가뭄에 빠진 끝에 자유계약 신분으로 팀을 떠나며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10골 이상씩 넣었음에도 9번의 저주를 끝내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23] 위의 9번 선수 중 아넬카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이 정도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4] 사실, 중반에 부진을 한 것도 무릎부상을 달고 뛴게 더 큰 이유였다. [25] 심지어 이 때는 18-19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며칠 앞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컸다. [26] 외질, 오바메양, 콜라시나츠, 귀엥두지 등. [27] 벌룬을 보유한 것 자체는 영국 내에서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흡입하는 것은 자칫하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 웨일스 내에서는 18세 미만에게는 팔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물질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원래 불법이 아니었지만 이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하자 불법이 되었다. 아스날 구단 내에서는 18-19 당시 선수들에게 경고를 주어 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경고했음에도 라카제트는 또 일으킨 것이다. [28] 실제로 아르테타의 343에서 라카제트는 2선으로 내려와 연계를 돕는 딥라잉 포워드 역할을 부여받았다. [29] 오바메양, 은케티아는 커리어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있고, 페페도 그닥이다. 그나마 사카랑 마르티넬리가 유일한 빛. [30] 물론 선수의 개인적인 목표를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지만, 자신이 최근 3연패의 원흉이면서 저따위 얘기를 하다보니 팬들은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3연패를 당하는 동안 자신은 공격수임에도 골을 못 넣으면서 연패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31] 라카제트와 비슷하다. 다만 지난 시즌 깜짝 스타였던 잔루카 스카마카도 PSG로의 예상 이적료가 5000만 유로에 가까울 정도로 스트라이커 시장에 거품이 낀 건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스카마카는 최종적으로 50m보다 싼 이적료로 웨스트햄 유니폼을 입었다. [32] 다만 맨시티에서 본인 자리를 대체한 한 괴물이 미쳐 날뛰는 중이라 득점왕 수상은 힘들어 보인다... [33] 원래 26번이었으나 52번으로 바꾸었다가 아르샤빈이 팀을 떠나면서 공번인 23번으로 바꾸기도 했다. [34] 정확히는 폴스 나인이다. [35] 월콧의 경우에는 이후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36] 심지어,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눈밖에 나는 행동을 자주 하는 바람에 주장까지 박탈당하고, 결국 21-22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그런데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자, 귀신같이 살아나서 멤피스 데파이를 제치고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겨우 반 시즌 뛰었지만 리그에서만 11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23년 여름에 바르셀로나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영입되면서 입지가 줄어들 위기에 처했고, 결국 라이벌 구단 첼시 FC로 이적하며 파브레가스의 길을 따라갔다(...) [BAR] [38] 정확히 말하면 갈라스는 10번을 원한 게 아니라 3번을 받는 것을 불편해서 남아 있던 10번을 받은 것이다. 벵거의 인터뷰에 따르면 스트라이커가 바로 베르캄프의 10번을 받았다면 베르캄프와 내내 비교될 테니 갈라스에게 10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줬다다는 것. [BAR] [40] 세스크 본인은 이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41] 심지어 세스크는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첼시를 비하하는 글을 올려 첼시 팬들에게도 까이는 경우가 있으며, 지역 라이벌로 이적한 주제에 아스날 관련 응원글을 써 내리면서 구너들을 화나게 만들고 있다. [42] 이전의 반페르시는 굉장히 다혈질적인 성격이었으며, 사소한 도발에 욱해서 퇴장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43] 일례로 맨유전의 대패 이후 좌절한 선수단을 붙잡아 두고 응원하러 온 원정팬들에게 인사를 시키기도 하였다. [BAR] [45] 2014년 당시 아르테타의 나이는 32세로 언제 에이징 커브에 직격탄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긴 했다. 그리고 실제로 2013-14 시즌부터 이미 노쇠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참고로 전임 주장이던 토마스 베르마엘렌이 오히려 아르테타보다 3살 연하다. [46] 메르테사커가 주장 완장을 받을 당시 나이는 31세였다. [47] 코시엘니는 약 1년 뒤 해당 행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48] 사실 아스날에 리더십이 좋으면서도 주전 자원인 선수가 자카 말고는 사실상 없었다. 게다가 팀 내 베테랑이란 작자들은 팀 기강을 작살내는 행위들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자카를 주장단에서까지 내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선수들의 말에 의하면 완장만 안찼지 사실상 주장 역할은 자카가 맡았다 라고 했을 정도이며 덕분에 외데고르가 완장을 차기 이전까지는 주장 역할은 사실상 자카가 맡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49] 사실 이건 우나이 에메리의 형편없는 전술이 문제였다. 실제로 아르테타가 오자마자 자카의 폼이 살아났다. [50] 물론 자카가 호날두보다 먼저 시전했지만 호날두는 2번이나 이런 행각을 보인 바 있다. [51]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한동안 자카가 주장직을 계속 수행해오기도 했다. [BAR] [53] 본인은 이에 대해 이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악감정이 남아있었다고 해명했다. [54]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아르테타가 직접 선임했으며 보드진과 팀원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55] 베테랑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세드릭의 경우 주장단에까지 들 정도로 선수단에게 신뢰를 받긴 했었으나 연이은 부상 및 뛰기 위하여 임대 이적을 선택하며 시즌 도중 팀을 떠났었으며 엘네니 역시 어린 선수들을 잘 챙기긴 했으나 장기부상으로 필드 위에서 영향력은 보일 수가 없었다. 사실상 자카가 유일한 베테랑이었던 셈. 그나마 외데고르가 어린 나이 치고는 산전수전 다 겪었던지라 나름 경험이 많긴 했다. [56] 국대 동료 홀란드가 외데고르의 리더십을 칭찬한 적이 꽤 많다. [57] 자카와 램스데일의 경우 외데고르가 주장을 맡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이 있다. [58] 바로 윗 문단에 기재되어 있지만 외데고르를 제외한 나머지 주장 후보들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씩 있던 상황이었다. [59] 원인이 부상도 있고, 아스날 특유의 어린 선수들 위주의 스쿼드에서 오는 약한 정신력 문제를 꼽기도 한다. [60] 당시 외데고르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고 교체됐었는데, 그 직후 연달아 두 골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이 경기로 인해 우승 향방이 사실상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나친 외데고르 의존증에 무너진 셈이다. [61] 아스날 경기를 보면 수비 시 전방압박을 하면서 팀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62] 다만 센데로스는 6번을 달고 뛰었을 때 망한 거라 조금 애매하다. [63] 아스날 2기 한정이며, 아스날 1기 시절에는 16번을 달았다. [64] 다만 누누 타바레스는 마르세유로 임대가서는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으며 원 이적료값보다는 훨씬 비싸게 팔릴 가능성이 높아 좀 애매하다. [65] 그나마 아사노는 반복되는 임대 생활 속에서도 실력 발휘에 성공한 덕분에 분데스리가에 자리를 잡으며 유럽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66] 당장 외질이나 반통수를 생각해보면... [67] 다만 이쪽은 기복이 심해 종종 정신줄 놓은 실수도 보여주는 탓에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특히나 20-21시즌들어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졌다. [68] 사실 이때도 슈체스니 그렇게 잘 했다기보다는 코시엘니-메르테사커 라인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 대세였다. [69] 12-13 시즌 리그컵 레딩전 7-5 대역전극 당시 골키퍼였다. 이 때는 슈쳉스니, 파비안스키, 마노네에 이은 4옵션 골키퍼. 이후 3옵션 골키퍼와 수차례 임대를 거치며 19-20 시즌 세컨드까지 올라왔다. [70] 맷 터너의 경우 후보로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선수라는 평이 많다. 다만 본인 역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으며 램스데일이라는 확실한 넘버원 키퍼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아스날에 오고 싶어했던 선수인지라 언해피가 뜰 확률은 적어보인다. [71] 초반에는 라울 곤살레스와 공존한 탓에 9번을 달았었다. [72] 로베르토 솔다도, 하비에르 사비올라 [73] 물론 2009-10시즌에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빠르게 적응하여 팀의 에이스로 거듭나 2022년 현재는 레알 마드리드 주장이다. 대표팀에서는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로 인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낙마했으나, 이후 유로 2020부터 다시 대표팀에 차출되어 주전을 꿰찰만큼 실력은 확실한 선수다. [74] 최근에 단 선수는 곤살로 이과인 크시슈토프 피옹테크인데, 이과인은 급격히 노쇠화가 온 것이었고 피옹테크는 초반에 19번을 달고 맹활약을 하다가 이과인 이적 이후 9번으로 변경하고 저번시즌 세리에 득점왕 3위가 맞나 싶을정도의 폼 하락을 보여주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한다. [75] 카바니는 21번으로 등번호를 바꾼지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났다. [76] 복귀 전에서 선발출전을 했다가 부상이 재발하면서 출전한지 5분도 안된 시간에 도로 교체아웃된 적도 있었다. [77] 다만 라모스의 경우 선수생활 황혼기에 들어선 지 오래인데다 파리에 오기 전 시즌부터 이미 유리몸 기질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출장 횟수가 적어서 그렇지 일단 나오면 다른 파리 수비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수비를 선보이고 있다. 여긴 다른 이전 4번과는 다르게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유리몸이 문제다. 이러나 저러나 경기에 못나오는 점은 똑같긴 하지만.. [78] 포지션이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어다. [79] 제주스는 맨시티 이적 후 중앙 공격수 자리에서 꾸준히 기회를 부여받았고 가능성도 보여줬으나, 성장이 정체되다가 2021년 들어서야 뒤늦게 브라질 시절 주 포지션이던 윙어 자리에서 감을 잡았다. 하지만 맨시티에는 윙 자원이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제주스와 비슷하게 윙어와 센터 포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훌리안 알바레스까지 영입된데다 필 포든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입지가 더욱 줄게 된 것이다. [80] 완초페가 떠난 직후 주요 공격수로는 윙어 숀 라이트필립스(28번)나 부상으로 고생하던 로비 파울러(8번)가 있었고, 그 후로는 더라이어스 바셀(11번→12번), 공격형 미드필더 일라누(11번)를 거쳐 만수르 인수 후 호비뉴(10번), 등번호를 바꾸기 전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25번), 카를로스 테베스(32번)를 지나 2010년대의 세르히오 아궤로(16번→10번), 에딘 제코(10번)로 이어진다. 범위를 윙어나 세컨톱 스타일의 선수까지 포함해서 비교적 유연하게 잡았음에도 주포라고 할 선수 가운데 9번이 없었다. [81] 결국 손흥민과의 주전경쟁 없이 기존 손흥민의 자리였던 레프트윙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된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