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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3:35:09

니클라스 벤트너

덴마크의 축구감독
파일:893917-20030371-2560-1440.jpg
이름 니클라스 벤트네르[1]
Nicklas Bendtner
생년월일 1988년 1월 16일 ([age(1988-01-16)]세)
국적
[[덴마크|]][[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코펜하겐
신체 조건 194cm / 89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등번호 아스날 FC - 23번, 26번, 52번
선덜랜드 AFC - 23번
유벤투스 FC - 17번 10번
VfL 볼프스부르크 - 3번
FC 코펜하겐 - 32번
유소년 클럽 토르비 볼클럽 (1992~1998)
키외벤하운스 볼클럽 (1998~2004)
아스날 FC (2004~2005)
소속 클럽 아스날 FC (2005~2014)
버밍엄 시티 FC (2006~2007 / 임대)
선덜랜드 AFC (2011~2012 / 임대)
유벤투스 FC (2012~2013 / 임대)
VfL 볼프스부르크 (2014~2016)
노팅엄 포레스트 FC (2016~2017)
로센보르그 BK (2017~2019)
FC 코펜하겐 (2019)
테른비 FF (2020~2021)
지도자 테른비 FF (2020~ / 선수 겸 감독)
국가대표 파일: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81경기 30골 ( 덴마크 / 2006~2018)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평가6. 그 자체가 된 선수
6.1. 벤트너가 정말 실력없는 공격수인걸까?
7. 사건사고

[clearfix]

1. 개요

덴마크 국적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였다.

2. 클럽 경력

2.1.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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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스널 유스 팀에 입단하였다. 2005-06 시즌 아스날 리저브에서 27골이란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였고 2006-07 시즌초 풋볼 리그 챔피언십 버밍엄 시티로 단기 임대 보내졌다. 그런데 갓 성인무대에 데뷔한 벤트너가 버밍엄 시티에 가서 좋은 모습을 보이자 당시 버밍엄 감독 스티브 브루스는 임대 기간을 시즌 끝까지로 연장하였고, 시즌 마지막까지 11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과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금의환향한 벤트너는 아스날과 새로운 5년 계약을 맺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름(?) 성공기류를 탄 듯. 참고로 벤트너의 첫 경기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파리 생제르맹 FC와의 프리시즌 에미레이트컵 토너먼트 였는데, 그는 이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였고,  마티유 플라미니의 2번째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반의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스날에서 유벤투스로 임대가기 전 까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예전에 보여주던 탄탄한 피지컬과 본능적인 골감각은 어디 가고 193이라는 큰 키에 탈압박도 안 되고 드리블이나 개인기도 느려서 스트라이커로서의 자질이 의심되기도 한다. 당시 아스날의 주요 스트라이커는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로빈 반 페르시, 에두아르도 다 실바 등이 있었는데 에두아르도는 골절상 때문에 나가리 되었다 해도 살짝 아쉬운 결정력 외엔 스트라이커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이던 아데바요르와 부상이 많아서 그렇지 몸만 멀쩡하면 충분히 좋은 활약을 보이던[2] 반 페르시를 경쟁에서 이기기도 힘든데 저렇게 부족한 모습만 보이니 팬들에게 불만족일 수 밖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골을 넣는 활약을 선보인 적도 있다.

09-10 시즌에는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26번에서 52번으로 바꿨는데 본인에게 특별한 번호라고 한다. 이미 전 번호의 유니폼을 산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교체 비용을 보상해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2.1.1. 선덜랜드 AFC (임대)

2011년에 버밍엄 시절 은사였던 스티브 브루스가 감독으로 있던 선덜랜드 AFC로 임대 보내졌는데 거기에서도 별 활약이 없었다. 아니 활약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진했다고 보는 게 맞다. 게다가 멘탈도 형편없는 걸로 유명한데 뉴캐슬 시내의 차량들을 파손하는 등 아래는 좋지 못한 멘탈으로 벌어진 한 일화.
벤트너가 피자를 시켰다. 근데 카드 결제가 안 되어서 현금으로 결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벤트너는 피자배달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벤트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나는 너네 피자가게 통째로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나중에 돈 줄 테니까 그냥 피자 두고 가![3]

피자 배달원: 나는 네가 누군진 모르겠는데, 피자값 안 주면 피자 못 줘!

2.1.2. 유벤투스 FC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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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한 성적으로 아스널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임대를 가게 됐는데 운 좋게도 세리에 명문인 유벤투스 FC 로 임대 보내졌다. 구단 측은 싸서 데려왔다고[4] 오자마자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10번을 달라고 요구하는 패기를 보여주며 명불허전 벤트너라는 말을 남기게 하였다.

그리고 2012년 12월에 3개월 부상을 입었다. 아스날에서는 2013년 5월 현재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로 임대간 마루앙 샤막과 같은 처지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아스날에서 뛰었고 몇 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벤트너 평이 더 좋다. 팀에서는 막장테크를 달리고 있지만. 덴마크 국대에선 꽤나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다. 클럽보다는 국대에서 더 빛나는 타입.

벤트너가 유벤투스 임대 기간에 만든 유일한 수확. 와싯이 이를 놓치지 않고 아들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요츠바랑을 패러디하여 벤트너를 요츠바 사이즈로 바꿔놓았다! 그 후 리그 출전 경기 수보다 와싯의 만화에 나온 횟수가 더 많아졌다.

결국 10번을 달긴커녕[5] 10경기밖에 뛰지 못하고 0골을 기록하며 없느니만 못한 활약을 보여주고 다이어트만 하다 리그 우승과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하고 임대가 끝났다. 아스널에서도 방출당할 것이 뻔하며, 팀을 찾아다니고 있는 듯했지만, 높은 주급 때문에 번번히 이적 협상이 결렬되는 모양이었고, 결국 아스널에 남았다! 와싯 세리에 A팀에 이적하여 계속 소스로 써먹고 싶었겠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2013년 3월 13일에 유벤투스에서 유니폼 첫 구매자가 등장했다. 정말 아무도 안 사서 덴마크 언론에까지 기사로 나자, 영국의 '토크스포츠'에서 구매하러 왔다고 한다.-뭐지-

2.1.3. 아스날 FC 복귀

2013-14 시즌 구너들에게 나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번호 23번을 이어받는다고 했을 때, 거부 반응이 구너들 사이에서 간간히 흘렀으나, 곧 방출될 거라는 생각에 잠자코 있었다.

그동안 가출했던 멘탈이 애아빠가 되면서 돌아오며 활약이 갑자기 좋아졌다. WBA와의 리그컵 경기에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고, A매치 데이에선 부폰에게 2골을 선사했다. 8R에서도 지루와 교체돼서 강슛을 날리고 연계를 해주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한편 덴마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1월에 주전이 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와중에 향후 커리어를 어떻게 예상하냐는 질문에 " 레알 마드리드 혹은 바르셀로나에서 뛸 것이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될 것이다."라고 답하며 니클라스 벤트너 신드롬[6]의 주인공임을 다시 입증하였다.

그런데 12월 5일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 경기 시작 2분 만에 헤딩슛으로 골을 넣었다! 거기다 2014년 1월 1일 카디프와의 경기에서는 무지하게 경기가 안 풀리던 후반에 교체로 투입돼서, 후반 87분 결승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직후 부상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후반기엔 다시 잉여가 되었다. 뮌헨한테 진 후 코펜하겐의 택시에서 추태를 부리는 등 벤트너다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결국 계약이 만료되면서 그냥 나가게 되었다.

2.2. VfL 볼프스부르크

파일:VfL-Wolfsburg-v-FC-Krasnodar-UEFA-Europa-League.jpeg.jpg

자유계약 신분이 된 벤트너는 2014년 8월 VfL 볼프스부르크와 2년 계약을 체결하였고 번호는 3번을 달았다.[7][8]

이적 첫 해인 2014-15 시즌에는 18경기 1골이라는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14-15시즌 샬케 04와의 29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팀 최종 훈련에 늦잠을 자서 한 시간이나 지각했다. 뵐페는 샬케전에 벤트너를 선발 출전시킬 예정이였고 주전 공격수 바스 도스트가 컨디션 난조에 빠진 반면 벤트너는 주중 나폴리와의 유로파 리그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었다. 하지만 벤방딱에게 경기 명단에서 제외 시키면서 벌금을 물렸다. 결국 안드레 쉬얼레를 최전방에 배치하는 변칙적인 '가짜 9번' 전술로 샬케 04전에 나섰고, 1-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볼프스부르크 구단 방침상 1분 지각에 100유로 벌금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즉 원래라면 벤트너의 벌금은 6,000유로였어야 한다.하지만 괘씸죄를 물어 5,000유로의 벌금을 추가 지불을 지시했다. 이로 인해 벤방딱은 스스로에게 찾아온 기회도 날려버림과 동시에 총 11,000유로(한화 약 1,3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2015-16 시즌을 앞두고 열린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DFL-슈퍼컵에서 교체 출전 후 동점골을 넣더니, 승부차기에서는 5번째 키커로 나와 성공하며 팀을 슈퍼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해외 커뮤니티는 "Lord Bendtner"라며 칭송 중. 하지만 2015-16 시즌 동안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구단에서는 방출을 논의 중이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2016년 4월 25일 구단은 벤트너와 계약 해지를 하며 소문만 무성한 그의 방출을 확정지었다. 보도 내용에서도 구단의 빡침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용에 따르면 구단은 "벤트너를 잔류시키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고,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빡침을 압축시켜 말했고 이어 "벤트너의 앞날에 행운이 있길 바란다"며 계약 해지를 결심했다고 한다.

2.3. 노팅엄 포레스트 FC

2016년 9월 7일에 영국 축구 2부 리그의 팀인 노팅엄 포레스트 FC에 2년 계약으로 입단했다. 그리고 9월 20일 친정팀 아스날을 리그 컵에서 상대하며 데뷔했다.

그러나 10월 15일 버밍엄 시티전에서는 선제골을 어시스트하였으나 발목 부상을 당해 실려나갔고 한 달 정도 출장하지 못했다. 이후 복귀하여 12월 2일 선두 뉴캐슬을 격침시키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명성을 재확인하나 했지만 이후 8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고, 결국 포레스트가 겨울에 3부 리그 볼튼에서 영입한 포워드 잭 클러프에게도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 벤트너는 포레스트에서 17경기 출장 2골을 기록하였고, 리그 선발 출장은 7경기였다.

2.4. 로센보르그 BK

주전에서 밀려난 벤트너를 2017년 3월 6일 노르웨이 티펠리겐의 최고 명문 로센보르그 BK가 영입하였다. 춘추제를 적용중인 노르웨이 리그여서 3월 이적이 가능하였다. 이적료는 비공개.

2017시즌은 리그 29경기에 나서 19골을 기록했다. 역시 The Lord 답게 부활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것이 이제까지 벤트너가 뛰었던 리그 수준보다 현재 리그가 몇 수는 낮은지라...참고로 노르웨이 리그는 유럽 리그 랭킹 29위를 기록하고 있는 리그이다. 단순 순위로만 보자면 셀틱 FC 레인저스 FC 빼면 한국 내셔널리그 수준이라고 까이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9]보다도 약간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유로파 리그 조별 예선에서는 6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2골이 마케도니아 리그 소속팀에게 기록한 것이다.[10]

2.5. 이후 커리어

2019년 9월 2일 덴마크 수페르리가의 명문 클럽 FC 코펜하겐과 3개월 단기 계약을 맺고 6경기를 뛰었다. 2019년 12월 17일 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소속 클럽을 찾지 못해 무적 상태로 있다 2020년 8월 25일 경기력 유지 차원에서 덴마크 4부 리그 Tårnby FF에 입단했다.

졸지에 무적 신세로 떠돌던 벤트너는 인터뷰를 통해 "음주, 도박에 빠졌었고 정신을 못 차렸다. 벵거 감독에게 심한 욕설을 하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머리를 망치로 치고 기회라는 게 뭔지 이해시키겠다"며 기대를 한몸에 받던 슈퍼 유망주에서 팀이 필요하지 않는 선수로 전략해버린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깊은 후회를 남겼다.

2021년 6월 3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국대에서는 수준급 활약을 해주고 있다.

덴마크의 연령별 대표팀을 차근차근 밟아왔으며 21세 이하 대표팀에 불과 18세의 나이로 선발되기도 했다. 2006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는 엔트리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2006년 8월 16일에는 18세 212일의 나이로 A매치에 첫 출장하였고 폴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32분 만에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다. 9월 1일에는 포르투갈 상대로 4:2로 승리한 경기에서 또 득점에 성공했다. 20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전한 유로 2008 예선에서는 2골을 넣었다.

2010 FIFA 월드컵 지역예선 포르투갈 원정에서 후반 39분에 1:1 동점골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덴마크는 3:2의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포르투갈과의 홈경기에서도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거두었고 알바니아 원정에서도 헤딩으로 득점하며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스웨덴과의 홈경기에서는 야콥 폴센의 결승골을 도우며 덴마크의 본선행 확정에 일조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3경기 모두 출장했고 카메룬과의 2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다만 16강 여부가 걸린 3차전 일본전에서는 부상 이슈로 벤치에 있다가 경기 후반 교체투입되어 덴마크의 탈락을 막지 못했다.

국대 통산 81경기 30골로, 득점을 기록한 상대중에 포르투갈, 독일,[11] 브라질, 이탈리아(2골) 등의 최강의 강호들도 있다. 스웨덴과 세르비아는 덤. 특히 포르투갈을 상대로는 5경기 6골(!). 이 중에서 가장 최근이 2골을 기록한 유로 2012 대회였는데, 팀이 3골을 헌납하면서 패배했다.

2018년 6월 4일 발표된 덴마크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벤트너가 부상으로 빠진것을 목격한 덴마크 국민들은 FIFA에게 월드컵을 연기해달라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으로 타고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매우 유망한 선수였다. 큰 키와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전형적인 타겟맨이라 볼 수 있는데 주력도 괜찮고 연계플레이도 잘한다. 수비라인을 허무는 쇄도도 잘하고 위치선정이 좋아 기회를 잘 잡는다. 피지컬과 큰 키를 바탕으로 포스트플레이와 공중볼 경합을 주로 하는 일반적인 타겟맨의 능력에 다른 능력치도 가졌다.

하지만 터치가 매우 구리다. 무난무난하게 컨트롤하고 잘 나간다 싶어도 중요한 순간에 어이없는 트래핑미스로 기회를 헌납해 수많은 아스날 팬들의 뒷목을 잡게했다.

또한 괜찮은 주력을 바탕으로 직접 드리블도 하는데, 이때 볼 컨트롤이 엄청나게 길다. 짧게짧게 치면서 부드러운 방향전환, 좋은 위치에 쇄도하는 동료에게 패스, 반박자 빠른 슛같은건 아예 안나온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워낙에 볼 컨트롤이 길어서 상대수비와 키퍼가 예상하기 쉽고 패스타이밍을 놓치기 일수였다.

5. 평가

장점을 꼽자면 피지컬이 괴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공격 위치 선정이 상당히 괜찮다. 상당히 날렵한 움직임을 지녔다. 포텐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통곡의 퍼스트 터치, 최전방 수비수 내지는 벽트너[12] 등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또한 희한한 멘탈로 각종 기행을 일삼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아스널이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터지지 않았다. 이렇듯 부족한 기량에 정신력도 최악인 본인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느 축구 선수보다도 큰 야망을 지니고 있어서, 현실 속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겠다.[13]

6. 그 자체가 된 선수

파일:ds121.jpg
리버풀 FC 스티븐 '더 풋볼' 제라드가 있다면, 아스날 FC에는 The Lord Bendtner가 있었다.

파일:7a0e6779f8a21e84a93aca61d5cfddec.jpg
사진에서 보이는 인물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입니다.[14]

파일:벤트너1.jpg
나를 말려줘!
그렇지 않으면 10골을 더 넣어버릴지도 몰라!

파일:베트너2.jpg
리오넬 메시 : 덴마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0득점.

벤트너 : 덴마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4득점.

벤트너들은 메시가 아르헨티나인이라고 변명하겠지.

여담으로, EA 글로벌 피파 모바일 시즌 1에서 한 유저가 벤트너를 제작했는데, 실제로 그 카드를 인게임에서 줬다고 한다.

벤트너 본인도 이 밈을 아는지 자기 인스타그램 소개에 Lord라고 적어뒀다.

6.1. 벤트너가 정말 실력없는 공격수인걸까?

일단 거쳐온 커리어의 면면은 참으로 훌륭하다. 아스날 FC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등이 전성기를 보낸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이고, 유벤투스 FC는 세리에 A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평가받는다. VfL 볼프스부르크 역시 독일에서 알아주는 전통강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가 정말 밈밖에 없는 선수였다면 그가 이런 명문구단에서 커리어를 보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우선 아스날 시절엔 명실상부 주목받는 유망주였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그가 성실히 선수생활을 이어갔다면 정말 포텐이 터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축복받는 하드웨어와 좋은 위치 선점과 헤더 능력, 그리고 의외의 연계능력은 분명 큰 장점이지만 볼 터치가 너무 미숙한데다 결정적으로 게으른 성격에다 프로의식 따위는 1도 없다보니 기복이 엄청 심하다는 것이다.

현재 벤트너는 단순히 밈으로 전락했지만, 최소한 아스날 시절에는 많은 기대를 받았던 유망주였던 것도 사실이고 아무리 공격수가 귀하다지만 그 유벤투스에서 임대 제의가 왔었다는건 벤트너의 능력을 어느 정도 믿음을 갖고 인정받았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의외로 FC 바이에른 뮌헨,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나 국가대표 대항전 큰 경기에서 골을 귀신같이 넣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재능있는 스코어러이긴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페이스를 본인이 게으름이나 피우면서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본인의 능력 자체는 좋은 편이지만 언제나 자신감 과잉에다 최악의 멘탈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걸은 케이스였다. 그래도 최소한 그가 노르웨이 리그에서 양민학살이나 할만한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몇몇 팬들은 진지하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7. 사건사고


[1] 덴마크어 발음: [neklæs ˈpɛnˀtnɐ\]. '벤트너'라는 통용 표기는 독일어 표기법에 이끌린 것으로 엄밀히 따진다면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오죽하면 국내 팬들에게 시즌 반 페르시라고 불릴 정도로 반 페르시는 꽤 심한 유리몸이었다. [3]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ATM기로 같이 돈을 뽑으러 가거나 아니면 무작정 돈을 못 준다고 떼를 쓰지 않고 미안하면서 사과를 먼저 한 뒤에 연락처라도 건네주면서 나중에 통장으로 입금이 가능한지를 물었을 것이다. [4] 로빈 반 페르시, 곤살로 이과인, 에딘 제코 등 S급 공격수를 데려온다며 설레발을 떨던 유벤투스는 벤트너와 아넬카만 데려오며 팬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5] 그래도 나름 트레제게가 달았던 17번을 달았지만 트라오레-엘리야로 이어지는 17번의 저주만 이어갔다. [6] 실력도 안 되면서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하며 챔스에 나가는 팀만을 원하는 벤트너의 야망을 비꼰 말이며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지나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7] 축구에서 등번호 3번은 대부분 수비수인 센터백이나 레프트백이 다는 번호이다. 벤트너는 최전방 공격수임에도 3번을 선택한 것은 3년 이내에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8] 여담으로 클럽팀과 대표팀에서 고정적으로 3번을 선호한 공격수로는 가나 국적의 아사모아 기안(Asamoah Gyan)이 있다. 이 선수는 현재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상강이란 팀에 속해 있는데, 한국선수 김주영이 먼저 3번을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35번을 달고 있다고 한다. [9] 유럽 리그 랭킹 27위 [10] 나머지 한 골은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상대로 기록. [11] 평가전이었지만 독일 홈이었고, 1대0 결승골이였다. [12] 가장 먼저 나온 사례는 2007-08 시즌 후반기의 하이라이트인 아스날-리버풀 3연전(챔스 8강 - 리그 - 8강전. 1, 2차전은 1-1이지만 이후 마지막 경기를 리버풀이 이기며 챔스 4강에 갔다.) 중 1차전에서 최전방 리버풀 골문 바로 앞에서 엉겁결에 슛을 막아내자 리버풀 팬들이 한목소리로 칭송하며 나온 드립이지만 이후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공격력 덕에 아스날 팬을 포함한 만인에게 최전방 수비수로 인정받고 있다. [13] 그 야망 때문에 서양 팬들한테는 벤트느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취급받는다. 그래서인지 벤트너를 펠레 지단, 메시 호날두랑 비교하는 최강드립에다 발롱도르설이 유행이다. [14] 참고로, 이 사진이 찍혔던 경기에서 레반도프스키는 그 유명한 9분 만에 무려 5골을 성공시키면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물론, 벤트너는 보다시피 교체멤버로 몸을 풀고 있던 중이었다. 많이 컸네 짜식 [15] 참고로 이 사건은 2011년 축구계 3대 황당 음식사건으로 불리는데. 하나는 마리오 발로텔리가 친구들과 인도 요리식당에서 밥 잘먹고 심심했는지 주방으로 처들어가 요리 도구로 검투사“놀이”를 벌이다가 15만 파운드[16]의 벌금을 물었고 나머지 하나는 데 헤아의 도넛 먹튀 사건이다.


[16] 한화 약 2억 7천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