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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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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예비역의 현역 재임용 | 기본병과장교 | 특별임관 | 현지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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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관련법3. 역사4. 군 복무5. 문제점6. 기타7. 석사장교 출신 인물
병역특례 제도가 특권층을 위한 수단으로 쓰인 것은 전두환 집권 이후 석사장교 제도가 도입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4개월 훈련에 2개월 전방실습만 받으면 예비역 소위로 제대하는 엄청난 특혜가 있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서류를 조작하거나 신검 판정을 위해 뇌물을 쓸 일도 없었던 것이다. 말 많은 이 제도는 전두환·노태우 두 군사독재자의 아들들이 혜택을 본 뒤 1990년 대학원 입학자들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한홍구, <대한민국 史>(2003년)

1. 개요

정식 명칭은 '특수전문요원' 으로, 현재는 폐지되어 사라진 대한민국 국군의 옛 군복무 제도 및 특례조치 중 하나이다. 석사학위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였다.

널널한 훈련 4개월과 전방 소대장 실습체험 2개월을 합해 총 6개월로 병역을 땡칠 수 있는 말도 안되는 제도였기 때문에 창설 당시부터 군사정권 실세의 아들들을 위한 병역특례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제도가 시행된 1982년 당시 일반 병들의 복무기간은 육군 기준으로 무려 33개월이었으니, 군 복무를 5분의 1 미만으로 줄일 수 있었던 제도였다.

특히 운영된 시기도 의미심장한 것이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의 입대를 앞둔 1982년에 생기고 노태우의 아들 노재헌이 전역할 때인 1991년에 없어졌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의도가 뻔했다.

2. 관련법

제39조의2 (자연계교원요원의 귀휴특례) ①국방부장관은 자연계교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의 규정에 의한 자연계교원요원으로서 현역병으로 입영하여 1년이상 복무한 자에 대하여는 동법 제4조의 규정에 의한 의무복무기간을 마칠 때까지 귀휴시킬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귀휴한 자가 자연계교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 제8조제1항 각호의 1에 해당하게 된 때에는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집한다.
③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현역에 복무하는 자의 귀휴기간(第1項의 規定에 의하여 歸休한 날의 翌日로부터 第2項의 規定에 의하여 入營하는 날의 前日까지의 期間을 말한다)은 이를 현역복무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④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귀휴된 자가 그 귀휴기간중 자연계교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 제4조의 규정에 의한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때에는 현역병의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것으로 보고 예비역의 병적에 편입한다.
1979년 12월 28일 일부개정·시행 병역법
제43조 (자연계교원요원으로의 전임) ①국방부장관은 대학원졸업생등의병역특례에관한특별조치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자연계교원요원으로서 현역병으로 입영하여 6월이상 복무한 자에 대하여는 전임시킬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전임기간은 2년 6월간의 교원복무를 마칠 때까지로 하며 전임기간을 마친 때에는 현역복무를 마친 것으로 보고 전임을 해제하고 예비역에 편입한다.
③국방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전임된 자가 대학원졸업생등의병역특례에관한특별조치법 제7조의 규정에 의한 의무불이행자에 해당된 때에는 전임을 해제하고 현역병으로 복무하게 한다. 다만, 동법 제7조제1항제3호의 규정에 의한 의무불이행자로서 그 질병 또는 심신장애의 정도가 군복무를 감당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는 제57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전역 또는 병역면제의 처분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역병으로 복무하게 되는 자의 전임기간은 이를 현역복무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제44조 (특례보충역편입) ①본적지 지방병무청장은 현역병입영대상자 또는 방위소집대상자로서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는 원에 의하여 특례보충역에 편입할 수 있다.
1. 한국과학기술원법의 규정에 의한 한국과학기술원(이하 “韓國科學技術”이라 한다)의 학생
2. 방위산업에관한특별조치법의 규정에 의한 방위산업체(軍工廠ㆍ軍整備部隊 및 軍調達機關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또는 연구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격을 가진 자중 국방부장관이 필수요원으로 인정한 자
3. 병역특례심의위원회가 선정한 공업ㆍ광업ㆍ에너지산업ㆍ건설업ㆍ수산업 또는 해운업분야의 기간산업체(이하 “主要基幹産業體”라 한다)에 종사하고 있는 자(水産業 또는 海運業分野의 경우에는 乘船하여 종사하고 있는 者에 한한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술자격이나 면허를 가진 자
4. 해양경찰대소속 경비함정에 승선하여 종사하고 있는 자로서 해기사면허를 가진 자
5. 병역특례심의위원회가 선정한 연구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자연계연구요원으로서 동위원회가 선발한 자
6. 농촌지도직공무원으로 임용될 자중 농업계대학(專門大學을 포함한다)재학시 농촌지도ㆍ연구 및 봉사활동실적이 우수하여 병역특례심의위원회가 선발한 자
7. 학술ㆍ예술ㆍ체능 또는 기능분야의 특기를 가진 자로서 국가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병역특례심의위원회가 선발한 자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특례보충역편입은 군소요인원의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안에서 과학ㆍ기술의 진흥, 국가산업의 육성 또는 개인특기의 계발에 의한 국위선양등의 국가이익을 위하여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행할 수 있다.
③제1항의 규정에 의한 특례보충역편입대상자의 선발등을 위한 병역특례심의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주요기간산업체의 범위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1983년 12월 31일 전부개정, 1984년 3월 1일 시행 병역법
제1조 (목적) 이 법은 지원에 의하여 자연계교원요원으로 선발되어 병역법의 규정에 의하여 귀휴한 자로 하여금 일정기간 자연과학분야의 교원으로 종사하게 함으로써 자연과학교육발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자연계교원요원”이라 함은 대학(師範大學ㆍ敎育大學 및 專門大學을 포함한다) 또는 중등학교의 자연계교원요원으로 선발되어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학 또는 대학원의 자연과학계학과에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자를 말한다.
자연계교원요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1980년 1월 4일 제정·시행 자연계교원요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
제1조 (목적) 이 법은 대학원의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자 또는 이와 동등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중 우수한 자에게 지속적인 학문연구의 기회를 부여하고 대학의 학생중 자연계교원요원으로 선발된 자를 중등학교의 자연계분야의 교원으로 종사하게 하기 위하여 규정한 병역법상의 특례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이들로 하여금 국가발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①이 법에서 “특수전문요원”이라 함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로서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선발된 자를 말한다.
1.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내대학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한 자(學位取得이 確定된 者를 포함한다). 다만, 의사 및 치과의사 자격을 취득한 자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자를 제외한다.
2. 외국의 대학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자로서 석사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자(學位取得이 確定된 者를 포함한다)이거나 문교부장관이 이와 동등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한 자.
②이 법에서 “자연계교원요원”이라 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학의 자연과학계학과를 졸업한 자(卒業豫定者를 포함한다)로서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선발된 자를 말한다.
1983년 12월 31일 개정·시행 대학원졸업생등의병역특례에관한특별조치법

석사장교 제도의 근거가 된 법은 대학원졸업생등의병역특례에관한특별조치법인데, 이 법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이전 박정희 집권 시기인 1979년에 통과된 자연계교원요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에서 기원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박정희 정부 때 자연계교원요원 제도는 시행되지 않았다.

당시의 병역법에서 현역 입영대상의 귀휴와 전임으로 불리던 형태인 전환복무에 해당되었으며, 1984년 3월 시행 병역법에서는 병역특례 관련조항인 특례보충역 조항에 병역특례심의위원회가 선정한 연구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자연계연구요원 중에서 선발된 자는 원하는 경우에 특례보충역에 편입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다.

1990년 4월 시행 병역법에서 자연계교원요원을 포함한 병역특례 조항과 전환복무 조항이 삭제되면서 병역특례와 전환복무 규정이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로 대체되었는데, 이때 석사장교 제도의 근거조항을 제정하지 않는 형태로 폐지되었다.

3. 역사

1982년 도입되어 1991년 폐지되었다. 석사학위 졸업 시점을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1년까지이므로, 학부 입학학번 기준으로는 1976학번부터 1985학번까지 존재하였다. 석사 학위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봐서 6개월간의 대한민국 육군 사관후보생 훈련과 전방 체험을 거치고 육군 보병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전역을 시키는 제도. 은어로 육개장이라고도 불렸다. '6개월짜리 교'라는 뜻. 시험과목은 자연계(이과)는 영어, 한국사고 인문계(문과)는 여기에 제2외국어가 추가되었다. 다만 해외 유학생은 시험을 보지 않고 서류전형을 치렀다.

1980년까지 카이스트 대학원생에게 주었던 병역특례와 별도로 1979년 '자연계 교원요원확보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있었다. 유신 말기 때의 제도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아들 박지만 외에 박근혜 박근령에게 예비역 육군 장교 신분을 주려 했다는 비판도 있었고, 박정희조차도 결국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이 제도에 따라 서울대학교 자연계 대학원과 충남대학교 공업교육대 졸업생은 병역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고 나머지 기간은 교수요원 또는 교사로 근무하도록 하였다. 인원은 서울대 자연계 대학원 700명과 충남대 공업교육대 800명이었다.[1]

'자연계 교원요원확보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1981년에 '대학원 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개정되었다. 이전에는 서울대 대학원 졸업자만 교수요원으로 선발되었으나 이 개정으로 전국 모든 대학원 졸업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석사장교를 선발하게 되었고, 인문계 출신들도 선발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병역기간도 1년에서 6개월, 그것도 복무기간에 산입되지 않는 사관후보생 기간만으로 단축되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또한 아무래도 시험이 있다 보니 명문대 출신 석사들이 대체로 혜택을 많이 받았다. 윤상운(1989)이 석사장교 제도 개선을 위해 석사장교 출신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약 2/3가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으로 되어 있다. 당시에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졸업생이 나오기 이전이었다. 하지만 1990년에 예편한 어느 훈육대의 추억록에 있는 명부에 의하면 그 훈육대의 전체 120여 명 중 약 60% 이상이 서울대 출신으로 파악된다. 그 기수에는 모두 6개 훈육대가 있으므로 약 750여 명이 예편하였다. 초기 몇 년을 제외하고 1년에 2개의 기수가 운용되었다.

훈련은 영천 육군3사관학교에서 4개월의 육군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고 나머지 2개월은 전방부대에서 실습 소대장으로 육군 사병들과 함께 철책근무와 동계훈련으로 병영체험을 하였다. 실습소대장은 석사를 마치고 입대하였으므로 일반 육군 병사들과는 평균 5살 정도는 나이 차이가 있고, 학부 출신 소대장들보다도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게다가 뭐 군대란 게 당연하게도 석사장교들이 계급도 현역병들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아서 석사장교들은 병사들에게 반말을 썼고 병사들은 석사장교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보통 석사장교들은 대체로 사관후보생 시절 받은 월급을 모아두었다가 실습소대장 시절 현역병들에게 온갖 선물들을 사다 주며 산타클로스 역할을 담당하며 현역병들과 친하게 잘 지내다 갔다고 한다. 이런 것 때문에, 의외로 많은 부대에서 석사장교 후보생이 실습 온다면 병사들이 환영했다고 한다. 어차피 90년대 이전은 ' 소대장 길들이기'등 하극상이 만연하던 시기라 소위도 못 단 사관후보생들이 군복무를 3년 이상한 상병장에게 멋대로 기펼 수도 없었으니 그냥 적당히 얼굴 안 붉히고 있다 가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이다.[2] 반대로 병사들도 자기들과 나이차가 얼마 안 나는 소위 소대장에겐 개길 수 있어도, 당시 사회 분위기상 30대 전후로 병사들과 5살 이상은 차이나는 석사장교 후보생들은 형님뻘 나이대라 함부로 대하기 망설였을 수도 있다.

연도별 선발 인원은 1982년 209명, 1983년 643명에서 시작하여 1984년부터 1989년까지는 1,000-1,200명 수준을 유지하였다가, 1990년 675명, 1991년 506명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제도는 1992년 말까지 존속됐다. 누적적으로는 10년간 9,397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입었다. 선발 시험 경쟁률은 연도별로 다르나 대체로 2:1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카투사처럼 동일하게 석사장교에서 한 번 떨어지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 지난 시점에서 석사장교와 같이 생긴 제도(1981년 신설)인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현재도 위관급 장교 출신 중 전역 시 계급이 육군 소위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석사장교 출신으로 보면 된다. 물론 중위 진급에 실패해서 군대에서 쫓겨나거나 소위로 만기전역[3]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그런 인원은 ROTC에서 한 기수당 6~8명 나오는 수준[4]이며 나머지 출신들은 나오고 싶어도 안 나온다. 그 외에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승선학부 전원이 대한민국 해군 ROTC 입단을 하던 시절, 이들 중 운 없는 일부 현역 임관자[5]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졸업식 날 임관식 겸 전역식을 동시에 치르고 예비역 해군 항해/기관소위가 됐다. 이 제도는 일단 정규 상선사관들보다 훨씬 적은 급여만 받고 망망대해에서 개고생해야 하고, 상선이나 어선 등 배타는 직종의 직장 분위기가 반쯤 군대에 가깝게 살벌한데다, 파면당하거나 하면 다시 군대 가야 하는 등 파리목숨이었기에 딱히 이쪽으로 간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당시 승선학부들은 총원 졸업 및 임관식을 했는데, 정복을 입은 현역 자원들과 근무복을 입은 예비역 자원들은 옷 덕분에 바로 구분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해양대 승선학부의 ROTC 강제 입단이 폐지되어, 승선근무예비역들은 해군 예비역 수병으로 신분이 바뀌며, 승선예비역 근무를 마치면 항해사냐 기관사냐에 따라 갑판 혹은 추기 직별의 해군 예비역 이등병이 된다.

1990년대 종로, 강남구, 여의도 부촌의 동사무소에서는 명문대 석사 출신 고학력자들이 몰려 있는 지역의 예비군 훈련에 가면 비교적 명문대 석사 출신 예비역 석사장교들이 매우 흔하게 관찰되기도 했다. 직장 단위로 예비군 편성을 했고 석사장교 출신들이 다니는 직장은 비교적 몇 개로 정해져있는 편이어서 예비군 훈련에 가면 그 부대에서만큼은 일반 장교보다 석사 장교 출신들이 더 많은 경우가 흔하였다. 당시 인기있던 회사에서는 석사장교가 제대하는 2월 전역자를 겨냥해 5월에 입사하는 인원을 특별모집을 하곤 하였다. 90년대 당시 직장의 분포로 보아 석사장교 출신들의 직장은 여의도와 종로에 주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서면이나 해운대에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제도로 교대출신 예비역 부사관 병역특례 제도가 있다.

4. 군 복무

일단 입대하자마자 육군 학사장교와 똑같은 육군사관후보생 신분을 부여받고 4개월 동안 사관후보생으로서 훈련을 받는다. 그 4개월의 훈련을 다 받으면 2개월간 전방에 사관후보생 계급으로 실습소대장 신분이 되어 전방체험을 하며, 이를 마치면 육군 보병소위 임관과 동시에 전역한다. 그래서 6개월짜리 장교인 것이다. 이 군사교육의 강도는 약하게 편성했다고 한다. 고령을 생각해서라지만, 전두환과 노태우의 아들이 해야 돼서 그렇게 했다는 평도 많다.

당시 3사관학교에서 조교를 했던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들을 예사후보생(예비역사관후보생)으로 불렀고 부유층이라는 배경과, 학력(당시 병사들은 고졸이 가장 많았던 시절), 신분(사관후보생은 상사의 위 소위의 아래)등에 대한 질투심같은 것이 있어 예사후보생들을 더 혹독하게 다루었다. 합법적으로, 소위 FM대로 하는 방식이었는데 워낙 범생이 출신들이 많아 고분고분한 편이기도 하였다. 조교(일반병사)와 후보생간은 상호존대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애초에 대통령 아들들이 군생활 편하게 보내도록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으므로, 그 장본인들이 오던 해는 정말로 노골적이었다.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이 예사후보생으로 온 해인 1985년은 전체적으로 교육일정을 다소 완화시켰다. 이 한 사람에게만 표나게 특혜를 주기는 곤란하므로. 피복과 개인장구, 소총 등도 그해엔 1,000명이 넘는 예사후보생 전원이 신품으로 지급받았다. 전재국만 좋은 것을 줄 수는 없으므로. 당시 조교들이 농반 진반으로 '국회의원 아들은 평민' 이라고 할 정도로 고위층 아들이 많았으며 군사학처(교관단)의 중대령급 장교가 몇년 쓸 예산을 한 기수에 쏟아부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운전병의 전언이 있다.

특히 교육 내용이 이전 기수에 비해 완연하게 강도가 약해졌으며 수학여행 비슷한 것을 넣어 다부동, 포항 등지의 전적지 답사라는 명목으로 16주 정도의 교육기간중 1주일 정도를 여행으로 때우기도 했다. 당시 칸보이(차량대열을 이끄는 찦차)를 했던 운전병에 의하면 저녁 무렵에 포항에서 영천으로 후보생들이 귀대할 때 10여대의 군용버스가 새떼운행을 하고 앞뒤로 찦차가 붙어 선도(맨 앞 찦차 이것을 칸보이차라고 부른다)와 폐쇄(맨뒤 찦차로 민간차량이 추월하여 대열의 중간에 끼는 것을 막는다.)를 하는데 폐쇄차 하는 것이 가장 흥미진진하여, 뒤에 오던 민간인 차량이 추월하려고 하면 중앙선까지 넘어가면서 추월을 봉쇄하였다. 당시는 차가 지금보다는 적었으나 편도 1차선 도로에서 포항과 영천을 잇는 국도를 1시간 이상 이렇게 운행하니 극심한 정체가 발생하여 뒷차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었다. 당시도 민원이 있기는 했지만 폐쇄차를 운전했던 운전병은 '전재국이 타고 있는데 언놈이 시비걸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한시간 이상 곡예운행을 했다. 물론 선탑했던 영관장교의 동의도 있었다.
교육이 이전 기수에 비해 많이 느슨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완전 물교육은 아니었다. 특히 교관이나 조교들도 현직대통령 아들이 있으니 규정대로 즉 FM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6] 또한 전두환 아들이라고 사적으로 봐주는 건 없었고 오히려 전재국이 아버지 욕 안먹이려면 가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서 열심히 한다고 제법 칭찬이 자자했었다.

당시 근무하던 병사나 고졸 장교(마지막 기행사관이 대위급으로 마지막 갑종간부들이 고참소령, 중령으로 있었다)들은 '똑똑한 사람에게 군대 3년보다 더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라지만 사실상 고위층의 특혜라는 것과 뭔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 수준에서는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다. 즉 군사독재 시기 및 그 잔재가 미처 빠지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전두환은 이런 말도 안되는 제도를 거리낌없이 만들고 노태우는 자기 막내아들이 이 제도로 혜택을 본 직후 폐지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제도는 거대한 병역비리라고 할 수 있다. 병역기피보다도 더 나쁘다. 병역기피는 국가예산은 축내지 않지만 이 제도는 국가예산을 소진하고 이들을 가르친 조교와 장교들은 사실 헛짓거리를 한 셈이니 더욱 허탈한 일이다.

당시 영천 3사관학교에서는 석사장교라 불리는 예비역사관후보생과정(예사 4개월훈련+8주 전방실습)) 이외에 3사후보생과정(2년제 대학 졸업자 대상 약 6~9개월 훈련)과 단기사관후보생과정(학사장교 12~16주 과정)과 기타 법무사관, 의무사관(군의관)들도 입교하여 4주간 교육을 받았다. 대구/경북지역 ROTC후보생도 방학때 4주간 입교하여 교육을 받는 등 (육사를 제외한) 육군의 모든 사관후보생들이 3사관학교에서 양성되어 임관했다. 학사사관, 간부사관, 군의관, 군법무관, 군종장교, 기타 기행병과(경리, 교수, 군악, 의정사관 등).

2012년부터는 이 양성과정들이 충북 괴산군에 위치한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3사후보생 과정이 훈련기간이 가장 길고, 석사장교가 그 다음이라고는 하나 그 훈련생활이 다른 장교코스의 훈련생활과는 격이 다르게 편했기 때문에 서류상의 훈련기간을 늘리는 것을 이용해 전두환 아들이 해서 편하게 한다는 비판을 피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교들은 예사후보생을 더 엄격히 다루려고 했으나 체력이 따라오질 못했다. 나이도 나이고 그 나이까지 공부만 하다 온 사람들이라 더욱.

100km 행군을 하면 3사(전문대졸 후보생으로 24~36주정도로 가장 길었으나 21~22세로 가장 어렸다. 단사 즉 학사장교에 탈락해서 오는 4년제 출신자도 꽤 있었다) 후보생들은 가뿐하게 완주를 했고 단사(4년제 졸업자로 흔히 학사장교과정인데 12주 교육으로 당시는 단기사관으로 부름)후보생들도 잘한다는 평을 받았으며 예사후보생들은(석사장교라 부르는) 100km 대신 40km행군을 했는데 2~30% 정도가 낙오했다. (아침 점호 구보에도 열외자가 수두룩)

행군시 보통 2~3명 탈수 있는 엠뷸런스가 맨뒤에 동행하였으나 예사 과정은 아예 버스가 따라갈 정도였다.

앞선 군번(성적순으로 군번 부여함)을 받아야 군생활이 유리해지고 진급에도 평생 따라가므로 특히 의무복무기간이 긴 3사 후보생들이 가장 열심이었고 단사(즉 학사)는 자원이 좋고 나이도 가장 적정하여 훈련 이해도는 가장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예사는 이래가나 저래가나 퇴교만 안 당하면 되므로 교관(대위 소령)들이나 후보생 모두 결사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조교들은 부러운 마음에 뺑뺑이 좀 돌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는 편이었다. 당시 직접 본 이의 소감으로는 그래도 운동과 담쌓았던 공부형 인간 기준으로 즉 나름대로는 힘든 과정이었지 널널한 과정은 절대 아니었다.

또한 석사장교는 6개월의 훈련이 끝나면 소위 계급을 주고 즉시 예비역으로 편입되므로 장교로서의 생활은 단 1초도 하지 않는다. 미국의 ROTC와 비슷한 제도이다.[7]

5. 문제점

제도 창설 초기부터 군사정권 실세 자녀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악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로, 전술했듯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의 입대를 앞둔 1982년에 생기고 노태우의 아들 노재헌이 전역할 때인 1991년에 없어졌다.

석사장교 제도의 근거가 된 법은 위의 관련법 항목 내용대로 대학원졸업생등의병역특례에관한특별조치법인데, 이 법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이전 박정희 집권 시기인 1979년에 통과된 자연계교원요원확보를위한특별조치법에서 기원한 것이고 석사장교와 동일하게 장교로 군대에 가는 것[8]이지만, 정작 박정희 정부 때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미 민군 양쪽 모두 입법에 성공해도 이런 불공평한 제도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희 때 만들려던 제도조차 복무 기간이 두 배 이상이었다.

세금으로 장교 훈련을 받게 해놓고 정작 제대로 된 복무는 안 해서 엄청난 악평을 받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독재자의 자식 특혜를 주기 위해 이런 악랄한 제도까지 만들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제도의 불합리에 저항하기 위해 일부러 석사장교를 지원해 합격한 후 괴롭게 현역병으로 군대를 가서 병장 만기제대를 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 했다 하더라도 국방부에서는 불합격자들 중에서 성적순으로 일종의 추가합격을 시키는 것으로 대응해서 미달 난 자리를 채웠지만 말이다. 덕분에 불합격될 예정이었던 인원들한테 이득을 주게 된 셈이다.

석사학위 소지자들이 사실상의 박사 후보생들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애초에 지나친 학력 프리미엄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석사장교는 서울대학교 명문대 출신들이 거의 90%를 차지했다.

형평성 문제가 야기되어 결국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그 폐해가 크게 남아있다는 주장도 있다. 학부 학번 기준으로 1976~85학번인 현직 교수들의 상당수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는데, 이 시기 한국인 학생들 중 외국 유학을 가는 사람들까지 늘어 전두환이 원하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주의가 실현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6. 기타

훈련 강도는 서울대학교 출신 학자인 김난도가 석사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밝히길 운동에 익숙지 않은 약골 범생이들도 충분히 극복할 정도라고 한다. 서류상의 훈련 내용 자체가 삼사장교 과정이나 학사장교 과정과 특별히 달랐던 것은 아니나 이를 훈육했던 장교들의 증언에 의하면 훈련 종류와 갯수는 일반 장교들과 동일하게 유지하되 그 강도를 최대한 낮추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은 3사에서 같이 교육받는 학사장교나 군종, 간호, 군의관 등[9]과는 달리 담배까지 피우기도 했으며, 전투화를 신는것보다는 활동화를 신고다니며 오와 열도 제대로 안 맞추면서 움직이고, 심지어 어디서 받아오는지는 모를 외부 음식들을 받아와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같이 훈련받는 장교 교육생들 입장에서는 '저것들은 장교는커녕 군인도 아니다'라고 취급했다고 한다.

후보생 사이에 전재국 등 유력인사의 자제가 들어있는 기수에는 훈련강도가 매우 낮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긴 했으나, 서류상으로는 삼사 장교 과정이나 학군장교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석사장교는 주로 공부하던 선생님의 비중이 높고 연령대도 약간 높은 만큼, 태권도나 유격, 200km 행군 시에는 삼사 장교 과정이나 학군장교 과정에 비해 훈련성취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당시 훈육관에 의하면 사격 성적만은 석사장교 출신들이 삼사나 학군장교 과정에 비해 괜찮았다고 한다. 원래 학업 성적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집중력도 그만큼 높기 때문에 시력만 멀쩡하다면 사격은 잘하는 편이긴 하다.

현재 박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병역특례를 제외하면 어릴 때 카투사, 어학병, 공군 병사로 복무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미필 상태로 석사까지 진학했다면 20대 중후반이 되어서 전문연구요원, 교수사관을 가장 선호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학사사관을 선호했었다.[10] 그래서 병, 부사관 입대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현재는 육군 병 복무기간이 18개월까지 줄어 일반병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학사장교는 훈련소 포함 기본 38~39개월이라 육군병 복무기간보다 2배 이상이 더 길기 때문이다.[11] 이 외에도 일과시간 이후 휴대전화 사용 허용, 월급 인상으로 인해 생활에도 다소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공군 학사장교의 경우 병 복무기간이 단축된 이후로 경쟁률이 1대까지 떨어졌다.

이 제도와 같은 형태로 만든 자매 제도가 바로 육군 학사장교인데 훈련은 동일하지만 석사장교처럼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전역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식 장교로서 실제로 3년간 복무한다. 그리고 학사장교는 석사장교와는 달리 장기복무자들도 상당히 많아서 2010년 정현석 장군을 시작으로 현재 최선임자 최진규 중장 등 장성급 장교도 다수 배출한 상태이다.

원래 미군에서는 ROTC를 이렇게 운용한다. 미군이 모병제이기 때문에 ROTC는 정말 뛰어난 극소수만 현역으로 배치하며 나머지는 석사장교처럼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전역해 각군의 전시를 대비한 예비 장교 자원으로 비축(?)되고,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예비역 소집 안 되는 경우도 제법 많다. 하지만 미군 ROTC의 경우, 석사장교와는 달리 훈련 기간이 꽤나 길다. 대학교 재학 4년 내내 훈련받기 때문에 3학년부터 훈련받는 대한민국의 ROTC와는 판이하다. 그래봤자 군복을 입고 있는 기간이 4년인 건 똑같다.

청년 남성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인식은 매우 좋지 않다. 이부망천으로 유명한 정태옥 前 국회의원은 "군대는 원래 힘든 곳."이라면서 사병들의 복지 증대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며 저주 수준으로 엄청 거세게 반대했는데 정작 본인은 석사장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편하게 꿀빤 육개장 주제에 저딴 말이나 갈긴다'고 기성세대의 남성들에게도 무진장 욕을 먹었으며, 조국 등의 경우 역시 젊은 세대들이 공감하는 발언들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 가나 싶었으나 여기 출신인 것이 드러나면서 위선자라고 까는 젊은 남자들이 매우 많았을 정도였다.[12] 사실상 현세대에게 있어 석사장교는 군사재판장에서 장군급 재판장에 입맞춤만 하던 사시 출신 단기 군법무관과 마찬가지로 치킨호크급 이미지이다. 게다가 2024년 현재도 석사장교의 혜택을 본 사람들이 현역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경우가 많아[13], 대학 교수들이 예비군 훈련 때문에 수업 결석한 남학생들에게 불이익 줬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이 제도가 소환된다. "이 제도로 꿀을 빤 놈들이 예비군이나 괴롭힌다."는 식의 비아냥으로 말이다. 예비군 남학생한테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는 단순 논란 행위가 아니라 범법행위다.

복무구분 상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복무기간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6개월 방위병에 빗대어 석사장교를 방위장교라 부르기도 했다. 요즘은 방위병의 후예인 상근예비역에 빗대어 상근장교라고 한다.

7. 석사장교 출신 인물

586세대 SKY 학부 출신이 대다수에 기본적으로 최하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14]들이므로 학벌, 학력 양면에서 당대 톱클래스인 사람들이다. 후술한 인물 대부분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에 고시 합격자 혹은 교수다. 이후 이들이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차지한 위치를 보면, 그야말로 사회의 예비특권층을 위한 제도였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렬은 가나다순이다.
[1] 1979년 6월 5일 동아일보 기사. [2] 어차피 대학원 똥군기 부조리도 어마어마하던 시기라서(사실 지금도 마찬가지) 그걸 풀타임으로 겪고 온 석사들한테 군대에서 이정도 금전거출은 별거 아니었을 것이다. [3] 부사관 출신 예비역이야 어차피 다 같은 '하사 만기전역'이라 호봉 차이(정상적으로 전역을 하면 하사 4호봉, 사고를 치고 전역을 하면 2호봉)만 있을 뿐 계급상의 차이는 없지만, 병 출신 예비역에게는 '상등병 만기전역'에 해당이 되었다. [4] 주 원인이 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초군반) 퇴교. [5] 박봉인 해군 장교보다 상선사관으로 고액 연봉을 받으며 대체복무하는 승선근무예비역을 압도적으로 많이 선호했다. [6] 다만 커리큘럼은 느슨하게 적용하였다. [7] 단, 미국 ROTC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다. [8] 다만 석사장교와 차이점이 있다면 대학원 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일반 장교과정과 동일하게 소위로 입대하고 중위로 제대하는 것이었다. [9] 초군반에 들어가기 전 국간사 생도 외 모든 특수사관 사관후보생들은 육군 3사에서 교육받았고, 현재는 육군학생군사학교로 이관됐다. 해공군에 갈 특수사관 자원도 일단 여기서 후보생을 이수한 뒤 해공군 후반기교육 기관으로 보내진다. [10] 사관학교는 대학 졸업할 때쯤 되면 나이 제한에 걸리기 때문에 입학이 불가능해진다. [11] 박사과정을 밟고 있거나 밟을 예정에 있는 석사생들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학위를 따야 이득이다. 박사과정생들에게 21개월이라는 차이는 엄청난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12] 사회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법조인이 되기만을 꿈꾸며 사법시험에 매진하는 것도 군사정권에 협조하는 거라 생각해서 사시 응시를 안 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 정작 병역은 군사정권이 엘리트 계층에 뿌린 당근의 끝판왕급이었던 석사장교로 땡쳤다는 게 아이러니컬했다. 이 제도는 당대 운동권이 많았던 명문대생 사이에서 문제의식은 공유되었지만 사실 병역으로 인한 시간적 손실이나 군생활 자체의 고충이 없이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편한 제도였기에 많이들 이용했다. 진중권 교수는 이 제도조차 거부하고 현역병으로 입대했었을 정도로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심 하나는 진심이었기에 지금도 석사장교 출신의 지식인들을 싫어한다. [13] 막연한 선입견과 달리 여교수나 면제자 출신 교수들의 차별 행위는 오히려 생각 외로 적은 편이다. 차별보다는 그런 규정을 잘 몰라서 실수한 케이스가 많았던 것이라 점차 시정되고 있는 추세다. 남교수들 중에서도 현역병 출신이 아닌 석사장교, 교수사관, 전문연구요원 등 고학력자들이 많이 복무하는 루트로 복무했던 교수들이 특히 이런 경향을 많이 보인다. 쉽게 말해 아예 안 다녀온 사람보다는 야전 일선에서 구르지도 않고 어줍짢게 다녀온 사람들이 꼴에 군필자랍시고 더 그런 꼰대짓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케바케니 일반화는 금물이다. 비교과 활동 최우수자에게 성적 변별이랍시고 예비군 참여로 인한 결석을 문제 삼아 장학금을 감액해서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어느 교수는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왔고 수업시간에도 가끔 군대 이야기를 들려준 병 출신이었는데도 그런 생각없는 짓을 저질렀다. [14] 특히 행정고시/사법시험 수험생들은 고시 공부가 길어지는 경우 대학 졸업 후 주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이나 일반대학원 법학석사 과정에 들어가서 공부를 이어갔기에(전시근로역이긴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사시 9수 중간에 대학원도 병행하며 석사 학위까지 땄다.), 이 제도로 병역을 가볍게 패스하고 고시공부를 지속했다. 더군다나 행시 출신 관료들은 대학 재학 중에 합격한 사람들도 사무관 생활과 서울대 행대 공부를 병행한 뒤 석사장교로 군대를 때웠다. 또한 교수들도 석사까지 한국에서 하고 병역까지 이 제도로 6개월만에 클리어한 다음에 해외 유학을 가는 게 정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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